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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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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II Principe
파일:Machiavelli The Prince title page of a 1550 edition.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원제 II Principe
집필 연도 1513년
출판 연도 1532년[1]
원어 이탈리아어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장르 정치학
주제 정치

1. 개요2. 상세3. 주목할 만한 문장들4. 대중매체에서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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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어: Il Principe[2]
영어: The Prince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책. 군주는 상황에 따라서 비도덕적인 행위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후대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동시에 이 논란은 '현실에 입각한 정치 철학'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상세

군주론이 집필될 당시, 이탈리아는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뭉쳐 있지 못하고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어 힘이 약했다. 반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은 저마다 중앙 집권 체제를 완비한 뒤 군사력은 보잘것없지만 경제 문화적으로는 풍부한 땅인 이탈리아를 노리게 되는데, 이로써 벌어진 전쟁을 이탈리아 전쟁이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맞아 마키아벨리는 하루빨리 이탈리아가 야만인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를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기에 이른다.[3]

『군주론』은 정치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키아벨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저서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남의 역량과 힘이 아닌, '자신의' 역량(비르투; virtu)과 힘(법과 군대)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러기 위해선 필요(네체시타; necessità)에 의해서 비도덕적인 정치 행동을 할 때도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초로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4]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점은 군주론 본문 15장 중에 나오는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당위)와 '어떻게 사는가'(현상)는 매우 다르다"라는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5]

군주론은 신하를 다루는 법, 상비군의 필요성과 용병의 해악, 요새의 기능, 중립의 해악 등 그야말로 통치 지침서로서의 내용에도 충실하다. 여기에 추가로 어떤 도덕적 행동이 실질 통치에 해악을 끼치고, 어떤 비도덕적 행동이 실질 통치에 유용한지를 설명하는데,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도덕적이지 말아야 하며,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심지어 기독교가 지배하던 그 시대에 반종교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델로서 잔인하기로 유명한 동시대의 인물 체사레 보르자를 꼽는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체사레 보르자가 끝까지 철저하게 상대방의 싹을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더 철저하게 했어야 하는데, 마지막에 와서 체사레 보르자는 순진하게 상대방의 호의를 믿었다는 것[6].

물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잔혹하고도 비열한 수단과 방법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서 쓰되, 민중의 안전과 자유라는 공익을 증진시키는 '결과'가 반드시 따라와야 하며, 그 행사는 '일시적'이어야 한다. 즉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쓰는 일시적인 비상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드는 예시들은 거의 대부분 부자, 귀족, 유력자 중에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비열한 방법으로 죽이라는 것이며, 민중들을 죽이라는 얘기는 아니다.[7] 마키아벨리는 민중들을 죽임으로써 얻는 군주의 자리는 '영광'스럽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민심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하도 과감하게 꼬리 자르기 하라는 예시[8]를 드는 등, 군주론을 살펴보면 의외로 민중에 대해서는 극도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민중이 중요한 이유는, 민중이 비르투(virtu)를 가질 때 나라가 부강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르투는 보통 '역량'으로 해석되지만 마키아벨리가 '민중의 비르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보통 '애국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심이 강한 민중들이 있을 때,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 군주와 나라를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소수의 배신으로 나라가 탈취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외부의 침략에도 민중들이 일치단결하여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따라서 그 군주는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뿐더러 나라도 부강해져서 외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에, 그런 나라의 군주는 비로소 위대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잔인하고도 비열한 수단은 이런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경우에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변의 모두가 기만적인 방법을 다 사용해서 혼자 도덕적으로 굴면 도저히 권력을 잡을 수 없고, 그 권력을 가지기만 한다면 '민중의 생명과 자유'를 상대적으로 더 보장할 수 있을 때, 비열하고도 잔인한 방법은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고자 쓰는 필요악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 이는 『군주론』 내에서 거듭되는 주장이며, 마키아벨리의 다른 주저 『로마사 논고』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제한'을 무시하고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되어 버려, 많은 오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군주론』의 단면적인 모습은 잔인해 보이기 때문에 가톨릭적인 사상에 반한다고 판명되어 결국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고, 또한 이후의 독재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대부분 부정하고 좁은 범위의 전술적 쟁점에만 집중하여 의도적으로 오독하고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민중들을 핍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라는 단어는 이런 과정 속에서 극도로 혐오적 단어로 인식되었다. 지금까지도 이런 인식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군주론에서 주장한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획득하고 싶으면 '냉철'하게 현실을 봐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즉, 정치를 분리시켜 본 것일 뿐 부도덕한 시점에서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까치사 강정인 역 군주론 인용이다.
군주가 위에서 말한 것들 중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할 것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상황이란 것이 전적으로 유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파괴할 법한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들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에 관해서는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을 메디치가에 바친 이유가 마키아벨리는 내심 공화정을 옹호했기 때문에 '이 책으로 군주를 극단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결국 군주정을 좌초시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진짜 목적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보다 나이가 23살 어린 군주[9]에게 이런 책을 헌정한 이유가 메디치가를 빨리 몰락시키고 공화정을 다시 수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대부분의 인생을 공화정의 간부로 살았던 사람이며, 『군주론』에서도 잔인한 수단으로 상대방을 배신하라면서 정작 민중에게는 되도록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역설한 점에서 공화주의자로서의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먼저 읽어본 친구들의 반대에 의해 메디치가에는 실제로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만약 이 해석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반대] [찬성]

또 다른 해석은 ‘공화정 준비론’이다. 마키아벨리가 강력한 군주의 존재를 혼란을 수습하고 공화정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강력한 군주가 이탈리아 통일 국가를 먼저 탄탄하게 세운 뒤에, 공화정으로 넘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군주론』 다음에 『로마사 논고』를 지었다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 피렌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대부분의 공화정들은 엄청나게 많은 분열과 혼란, 대립이 있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화정의 발전은커녕 외세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진정 강한 공화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제 정치든 군주국이든 일단 나라의 힘을 기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원래 공화정 옹호론자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먼저 저술한 까닭도 이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주목할 만한 문장들

인간들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꺼이 그들의 지배자를 갈아치우려고 하며, 이런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지배자에게 무기를 들고 봉기하게 만든다. (3장)
비록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지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항상 그 지방 거주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3장)
영토를 획득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분명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항상 칭찬을 받지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없을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하려는 데 실수와 비난이 있다. (3장)
공화정들에는 더 많은 생명, 더 많은 증오, 복수에 대한 더한 열망이 있다. 그들의 옛 자유에 대한 기억은 그들을 잠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길은 공화정들을 제거하거나 그곳에 사는 것이다. (5장)
무장한 모든 예언자들은 획득했고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은 파멸당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한 것들 외에도, 인민들의 본성은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설득하기란 쉽지만, 그들을 설득된 상태로 유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들이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강제로 그들을 믿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6장)
그러나 누구도 결코 자기의 시민들을 죽이고, 자기의 친구들을 배신하고, 신의도 없고, 자비도 없고, 종교도 없는 것을 덕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들은 통치권을 획득할 수는 있어도 영광(gloria)을 획득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아가토클레스가 위험에 뛰어들어 벗어난 능력, 그리고 고난을 이겨내고 극복한 정신의 위대함을 고려한다면, 왜 그가 다른 가장 탁월한 대장보다 못하게 평가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야만적 잔인함과 비인간성은 그의 수없는 범죄들과 함께 그를 가장 탁월한 사람들 중 하나로 칭송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획득한 바를 운이든 능력이든 그 어느 것으로도 귀착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8장)
누군가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어떻게 아가토클레스와 그와 같은 사람들 모두가 수없는 배신과 잔인함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조국에서 안전하게 살았으며, 외적에 맞서 스스로를 지켰으며, 그의 시민들이 결코 그에게 맞서 음모를 꾸미지 않았는지 말이다. 반면 다른 많은 사람들은 불확실한 전쟁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평화로운 시기에서조차 잔인함으로 그들의 국가들을 유지할 수 없었는지 말이다. 나는 이것이 잔인함이 잘못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잘 사용되었는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잘 사용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를 안전하게 할 필연성에서 단번에 행사된 것으로, 지속되기보다 할 수 있는 한 신민들의 유용함으로 전환된 것이다. 잘못 사용된 잔인함은 비록 처음에는 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제거되기보다 증가된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을 준수한 사람들은 아가토클레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신이나 인간을 통해 그들의 국가를 고칠 처방책을 가질 수 있다. 반면 두 번째 방식은 스스로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 (8장)
왜냐하면 모든 도시에는 이러한 두 개의 다른 기질들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기질들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인민은 귀족들에게 명령받거나 지배당하지 않기를 원하고, 귀족은 인민을 명령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욕구들로부터 도시들에서 세 가지 결과들 중 하나가 발생한다. 군주정, 또는 자유[12], 또는 방종[13]이다. (9장)
그러나 인민들에게 대항해서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군주가 된 사람은 반드시 무엇보다 인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가 인민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취할 때에는 손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쁘게 대할 것이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은인에게 더욱 복종하게 되기 때문에, 인민들은 그들의 지지로 군주정을 획득한 사람보다 그에게 호의를 더 베풀 것이다. (9장)
용병을 기반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는 안전을 누리지 못하고 평화 또한 누리지 못한다. 용병은 단결하지 못하고, 권력을 탐내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존재다. 이들은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아군에 대한 신의도 없다. 용병은 전쟁을 회피하며 패배 또한 회피한다. 따라서 용병을 쓰는 군주는 평화 시에는 용병에게 약탈당하고, 전시에는 적에게 약탈당하게 된다. (12장)[14]
내 의도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쓸모가 있는 것을 쓰려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한 상상보다 그것의 실질적 진리를 직접 다루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결코 목도된 적이 없고 실제로 존재하는 지 알 수 없는 공화정과 군주정을 상상해 왔다. 어떻게 사는냐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에서 손을 놓은 사람은 자기의 보존보다 파멸을 배울 것이다. (15장)
따라서 만약 스스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군주는 선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필연성에 따라 선을 사용할 수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도록 배워야 한다. (15장)
그래서 만약 누군가 사람들 사이에서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값비싼 과시조차 감수해야 하기에, 이렇게 하는 군주는 항상 그 같은 행동을 하면서 그의 재원들을 모두 소비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가 후하다는 평판을 유지하려 한다면, 인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혹독한 세금을 부과하고, 돈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들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6장)
왜냐하면 인색함으로 인해 그의 수입이 그에게 충분해지면, 그래서 누구든지 그에게 전쟁을 걸어 오는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인민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군사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항상 조금씩 더 후하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않은 무한정한 사람들에게는 후하게, 그가 주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야박하게 굴게 될 것이다. (16장)
그러므로 그의 신민들을 수탈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가난해서 경멸받지 않게 되도록, 어쩔 수 없이 탐욕스럽게 되지 않도록 그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이 초래되는 것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는 악덕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6장)
따라서 군주는 그의 신민들을 통합되고 충성스럽게 유지하기 위해 잔인하다는 불명예를 개의치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매우 자애롭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무질서가 지속되도록 허용해서 이런 무질서로부터 살인과 약탈이 자행되도록 한 사람들보다, 매우 적은 본보기를 가지고 더 자애로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17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천천히 믿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며, 스스로를 두렵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신중과 인간미를 갖고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해, 지나친 확신이 그를 부주의하게 만들거나 지나친 불신이 그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들지 않아야 한다. (17장)
누군가는 이것도 저것도 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겠다. 그러나 둘을 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만약 둘 중에서 어느 하나가 결여될 수밖에 없다면,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17장)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인간들이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럽고, 가식적인 위선자들이며, 위험은 빠져나가려 하고, 이익에는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17장)
인간은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들이 사악하기에 그들에게 유리한 매 기회마다 깨질 수 있는 의무라는 사슬에 의해 지탱되지만, 공포는 당신을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처벌의 두려움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17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만약 사랑을 획득할 수 없다면, 증오를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두렵게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과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매우 순조로이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7장)
인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속 재산의 손실보다 더 빨리 잊어버린다. (17장)
군주는, 특별히 새로운 군주는 사람들이 선하다는 평판을 갖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준수할 수 없다는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종종 신의를 저버리고, 자비롭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고, 반종교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18장)
따라서 군주는 어떻게 야수의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에, 그는 여우와 사자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고, 여우는 늑대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함정을 알아보기 위해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겁먹게 만들기 위해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사자에 머무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햐지 못한다. (18장)
전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는 법으로, 다른 하나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인간에게 적합하고, 두 번째는 짐승에게 적절하다. 그러나 첫 번째가 종종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에 호소해야 한다. (18장)
이러한 본성을 어떻게 눈가림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지극히 가식적인 사람이자 위선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현재의 필요에 복종적이기에 기만하는 자는 항상 스스로를 기만당하도록 내버려두는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18장)
따라서 군주는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자질들을 갖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말 그것들을 가진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역으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겠다. 그것들을 갖추고 항상 지키면 그것들은 해로운 반면, 그것들을 가진 것처럼 보이면, 즉 자비로운 척, 신의를 지키는 척, 인간적인 척, 정직한 척, 그리고 종교적인 척 등등으로 보이면 ,그것들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어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면, 정반대로 바꿀 수 있어야 하고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도록 해야 한다. (18장)
운명의 바람과 사태의 변화가 그에게 지시하는 바에 따라, 그는 정신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가능하면 선한 것으로부터 떠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18장)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손보다 눈으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모두에게 허용되지만, 느끼는 것은 소수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당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는 반면, 소수만이 당신이 누군지를 느낀다. (18장)
이 소수들은 그 국가의 군주가 옹호하는 다수의 의견에 감히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행동에서, 그리고 특별히 호소할 법정이 없는 군주의 행동에 있어, 사람은 그 결과를 본다. (18장)
그래서 군주가 국가를 획득하고 유지하면, 그 수단은 항상 훌륭하다고 판단되고, 모든 사람에게 찬양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외양과 일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수가 어딘가에 의지하게 될 때, 소수는 발붙일 수 없다. (18장)
군주가 변덕스럽고, 가볍고, 여성적이고, 겁 많고, 우유부단해 보일 때 경멸을 받게 된다. 군주는 이런 것들을 암초로 생각하여 크게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자기의 모든 행동에서 위대함, 기백, 무게감, 그리고 강함을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19장)
그 무엇보다 그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은 탐욕스러워져 신민의 재산과 여자를 강탈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을 반드시 삼가야 한다. 그리고 그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재산이나 명예를 빼앗지 않는 한, 그들은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단지 소수의 야망과 싸워야 하는데, 많은 방식을 통해 쉽게 견제가 될 것이다. (19장)
증오의 대상이 되거나 경멸받는 것을 피하고 인민이 그에게 만족하도록 한다면, 그 군주는 스스로를 충분히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군주가 음모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들 중 하나는 대다수에게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19장)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무장 해제 시킬 때, 당신은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이 겁먹었든지 아니면 신의가 없어서든지 그들을 불신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이런 의견들은 모두 당신을 증오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비무장인 채로 있을 수 없기에, 용병 군대에 의지해야만 하고, 이것의 특성에 대해서는 앞서 기술했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강력한 적들로부터 당신을 지키고 신민들을 불신하도록 할 만큼 좋지는 않다. (20장)
그러므로 그곳에서 최선의 요새는 인민들에게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인민이 당신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다면 요새는 당신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력 봉기를 한 인민들을 도우러 올 외국인들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장)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연성이 짓누르지 않는 한, 군주는 반드시 다른 군주를 공격하기 위해 스스로보다 더 강력한 누군가와 연합해서는 안 된다. (21장)
모든 국가는 항상 안전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것들 모두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의 순리에서 또 다른 불편함에 직면하지 않고 하나의 불편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중함은 불편함의 특성들을 어떻게 파악하는지를 아는 것과 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선택하는 데 있다. (21장)
나는 운명의 여신을 이러한 사나운 강들 중 하나에 비유한다. 그들이 격분하면, 평야를 침수시키고, 나무들과 건물들을 파괴하고, 땅을 이 부분으로부터 들어 올려 다른 곳에 내려놓는다. 모든 사람이 그들이 닥치기 전에 도망가고, 어떤 경우든 그들을 저지하지 못한 채 그들의 힘(impeto)에 굴복한다. 그리고 비록 그들이 이와 같더라도, 마치 평온한 시기에 인간들이 사나운 강에 도랑과 제방을 세워 그것들이 이후 솟아오를 때 수로를 통해 가든지 그것들의 힘이 제멋대로 휘젓거나 지나치게 훼손하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25장)
전적으로 그의 운명에 의존한 군주는 운명이 변할 때 몰락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나는 일을 추진하는 방식을 시대의 특서에 맞추는 사람은 행복하고, 마찬가지로 그의 절차가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믿는다. (25장)
나는 이것을 사실상 이렇게 판단한다. 맹렬한(impeto; 과감히 몰아붙이다) 것이 조심스러운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녀를 제압하기를 원한다면, 그녀를 때려눕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게 처리하는 사람들보다 맹렬한 사람들에게 더 자기 스스로가 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항상 그러하듯이, 여자처럼, 그녀는 젊은이들의 친구다. 왜냐하면 그들은 덜 공손하고, 더 격렬하고, 그리고 그녀를 더 대담성을 갖고 다루기 때문이다. (25장)

4. 대중매체에서

4.1. 어쌔신 크리드 2에서

시민을 살해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냉혹하며, 교리를 어기는 것은 능력이라고 칭할 수 없다. 군주는 이런 식으로 권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코 영광은 얻을 수 없다.
소설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제1부 도입부 군주론 인용
게임에서는 에지오 아디토레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언급했지만, 소설에서는 좀 더 명확히 "체사레를 통해 군주와 권력에 관한 책을 쓸 생각입니다. 또한 당신에 대한 평가와 함께 서술할 계획입니다."라고 언급하여 책이 군주론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여담으로 에치오가 기왕 쓸 거면 짧게 쓰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군주론은 짧고 읽기 쉽게 쓰여진 책이다.

실제 군주론에 익명의 군주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한다. 정말 에지오에 대한 이야기일 리는 없지만.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어떤 군주는 실상 평화와 신의에 적대적이면서도 이를 입에 달고 산다.[15]그가 이 2가지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실천에 옮겼다면 자신의 명성과 권력 가운데 하나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그랬을 것이다.
(인간사랑 출판, 군주론 번역본)

실제로 『군주론』에서는,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의 군주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자리에 '에스파냐 왕 페르난도 5세' 라는 이름이 언급된다. 이는 실존 인물로, 이사벨 1세의 남편으로 유명한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2세를 가리키는 것이다.

페르난도는 아내 이사벨에게 묻힌 탓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여러 번 낚으며[16] 남부 이탈리아 거의 전역을 차지하고 있던 나폴리 왕국 영토를 스페인이 독점하는 업적을 이룩했다.[17] 언젠가 루이의 항의를 받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 왕이, 짐이 그를 두 번이나 속였다고 불평하는군. 하지만 그 바보 같은 놈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짐은 그를 열 번도 더 속여 넘겼기 때문이지.

4.2. 창세기전 시리즈에서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 등장하는 마키아벨리가 기술한 이론이다. 어딜 봐도 1이 모티브. 그러나 위의 군주론이 어디까지나 정치와 도덕의 분리 정도인 반면 이쪽은 현실의 군주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즉 군주에게는 부국만이 미덕이며 그를 위해선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냉혹해져야 하고 이로 인해 흘릴 피와 희생은 중요치 않다는 모토 그 자체의 이론이다. 제국령 각지에 걸쳐 온갖 전횡을 일삼았던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서풍의 광시곡 작중 및 설정에서의 옹호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더욱 극명해진다.[18]

흑태자를 모델로 작성했다고 하는데, 흑태자 본인이 이걸 보면 뭐라 생각할지 참으로 궁금할 노릇. 물론 게임으로 흑태자의 인간적인 면마저 볼 수 있었던 플레이어들이라면 몰라도, 그 세계관 안의 인간들이 봤을 때는 겉으로만 보이는 강한 면모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나올 법한 소리이긴 하다.

창세기전 3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팬드래건 왕국에서는 버몬트 대공의 독단적이고 포악한 국정 운영을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했고, 게이시르 제국에서는 알바티니 데 메디치와 제국 재상 리슐리외가 제국을 이 군주론에 입각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일부러 반란을 저지른다. 즉 당시 안타리아 대륙에 일어난 전란의 상당수를 조장하는 폐해를 끼친 셈. 현대 정치학의 뿌리라고까지 평가받는 현실의 군주론과 달리 이쪽은 그 자체로 꽤나 막장에 가깝다 볼 수 있다. 덕분에 창세기전 플레이어들은 오늘도 버몬트 대공에게 바람을 불어넣은 록슬리를 쿨타임 없이 까고 있다. 록슬리 개객끼 해봐[19]

정작 현실에서의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미움을 받으면 안된다고 하는 입장이었고 은혜를 베풀 땐 한없이 자비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한없이 잔인하기만 하고 온갖 미움은 다 받는 버몬트 대공을 봤으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군주론에선 사랑만 받는 군주가 되느니 미움받는 군주가 낫고, 미움만 받는 군주보다는 미움받으나 은혜로운 군주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점을 제 멋대로 쌩깐 결과. 게다가 마키아벨리의 또 다른 대표작인 '로마사론'이라는 책에서 사적인 수단으로 권력을 차지해서도, 권력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하며 메디치 가문까지 디스했을 정도였으니,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창세기전의 체사레 보르자를 지지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 창세기전의 마키아벨리가 그냥 이름만 마키아벨리고 사상이 전혀 딴판인 사람으로 설정되었다면 모를까 작중에서 이야기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대한민국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집약시킨 물건이나 다름없으니... 창세기전 제작진들이 철학을 공부했을 리는 없었을 테니 진심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파시즘이나 다름없는 무언가로 오해했을 확률이 높으며, 창세기전이 히트를 치면서 대중적으로도 마키아벨리 왜곡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3. 현실주의 용사의 왕국 재건기에서

주인공 소마 카즈야가 이세계로 소환되기 전에 애독했던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엘프리덴의 왕이 되면서 각종 반란 진압이나 부패귀족 숙청을 할 때 이 군주론의 내용을 인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근본이 라이트 노벨인 데다가[20] 작가가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대해 깊게 공부한 건 아닌 모양이라 내용의 깊이는 기대하면 안 된다(...) 그 정도를 넘어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작품 상태로 인해 군주론 같은 명독서마저 평가 절하 될 수준이다.

5. 기타


[1]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1513년에 메디치 가문에 헌상하려고 했지만, 공개적으로 출판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죽고 나서 5년이 흐른 1532년이다.[2] 프린치페는 이탈리아어로 '군주'를 이르는 말이나 일본에선 군주으로 번역하였다.[3] 이는 마지막 장(26장)인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4]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데, 사실과 당위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서양 정치 철학의 개념의 원류이다. 이른바 현실 정치라는 개념이 마키아벨리에서부터 시작한 것.[5]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미덕은 권력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며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효과적인 방법만이 정당하다는 것. 즉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극도의 합리주의적 통치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국부론만 읽어서는 안 되고 '도덕 감정론'을 같이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의 종합적인 사상을 알고자 하면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 『로마사 논고』를 같이 읽어봐야 한다.[6] 실제로 체사레 보르자가 몰락한 것은 추기경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가 교황 율리우스 2세로 즉위한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콘클라베 때 줄리아노는 체사레와 협상을 벌였고 체사레는 줄리아노가 우호적으로 나오는 것을 순순히 믿었다. 그러나 교황이 된 율리우스는 곧바로 "(체사레 보르자의 친부인) 알렉산데르 6세의 흔적은 모두 없애야만 하며 보르자 가문은 그들이 태어난 스페인으로 추방해야 한다!" 라는 폭탄 선언을 해 버린다.[7] 마키아벨리는 민중을 죽일 때는 "명백한 이유와 적절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17장)"고 말하지만,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 잠재적인 경쟁자를 죽일 때는 그런 이유나 명분 없이도 체사레 보르자처럼 거리낌 없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8]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의 집사(레미로 데 오르코)에게 한 지역을 엄격하게 관리하라고 명령하고, 그 지역 민심이 흉흉해지자 곧바로 그 집사의 목을 잘라 민심을 달랬는데, 이를 두고 마키아벨리는 매우 훌륭한 정치의 표본이라고 칭찬한다.(7장)[9]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원래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려고 했으나, 돌연 마음을 바꾸어 당시 메디치가의 햇병아리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기로 결정한다.[반대] : 마키아벨리는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상황을 개탄하고 혼란을 종식시킬 필요성에서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공화정과는 거리가 먼 체사레 보르자를 찬양했으며 사실상 군주나 다름없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자신을 채용할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런 마키아벨리가 구태여 메디치 가문이 붕괴되기를 기대했다는 해석은 근거가 없다.[찬성] : 그러나 이 반대에는 문제가 있다. 메디치가의 좌초를 노렸다고 한다면 군주론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찬양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역설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차피 그들의 좌초를 노린 책이라면 그의 진짜 주장과는 다른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는 평생을 공화정의 주요 간부로 살았던 사람이며, 피렌체의 군주정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다시 공화정 간부가 되기를 바랬다는 점, 심지어 『군주론』에서도 공화주의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가 이후에 저술한 <로마사 논고>에서는 완전히 공화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12]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공화정'을 가르킨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핵심을 시민들의 '자유'에 있다고 본다.[13] 여기서 방종이란, '무정부'를 가르킨다.[14] 카탈루냐 용병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패들을 보면 마키아벨리가 용병들을 경계했던 것이 결코 쓸데없는 노파심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카탈루냐 용병 항목을 참조하기 바람.[15] 각주로 옮김이는 후술되어 있듯,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를 지칭한다.[16] 대표적으로, 나폴리 왕국을 함께 정복하고 그 땅을 나누자고 제안해 놓고서는 정복이 끝나자 뒤통수를 후려친 것을 들 수 있다. 덧붙여, 루이 12세가 어수룩하거나 덜떨어진 암군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비군과 관료제를 정비하고 도로와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겨 1506년에 열린 삼부회에서는 "국민의 아버지"라는 존칭을 받았으며, 군주론의 16장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하여"에서는 전쟁을 계속 벌이면서도 국고를 튼튼하게 만든 모범적인 군주로 평가되었다.[17] 따지고 보면, 스페인이 '스페인 제국'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세력을 확대하는 데는 이사벨의 콜럼버스 후원 못지않게 페르난도의 이탈리아 영토 확보도 중요했다.[18] 설정상 체사레 보르자가 마녀사냥 및 공포 정치로 수많은 소영주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권력을 몇몇 대영주들에게로 결집시켜 이전보다 질서가 생기긴 했고, 클라우제비츠가 그에 대해서 '사리사욕을 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제국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것을 볼 때 어쨌든 성과는 있었지만, 이는 제피르 팰컨이 체사레의 폭주를 저지하면서 낳은 결과일 뿐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으로 포장하는 체사레 본인이 파괴신 부활에 외세 개입 등 끝없는 패악질로 폭주를 거듭했던 걸 보면 결국 문제투성이의 이론.[19] 다만, 록슬리를 클라우제비츠가 소개해 주기 전부터 이미 버몬트는 복수심에 불타는 인간이었다. 단지, 록슬리는 버몬트의 복수를 정당화시켜 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해 줄 수단을 제공해 준 것뿐이다. 그러니까, 버몬트는 원래부터 위험한 성난 호랑이였고, 록슬리는 단지 그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뿐이다.[20] 늑대와 향신료처럼 작가가 지식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증을 살릴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21] 농담이 아니라 1년에 1번꼴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