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1 12:17:42

안경호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30년 1월 18일,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알려졌다.

김일성 시기부터 대남 분야에 종사해왔는데, 1982년 12월, 조평통 과장으로 등장하였으며, 1988년 8월, 조평통 상무위원 자격으로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에 북측 대표로 10차례 출석했다. 1988년 9월, 조평통 서기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89년 11월, 안병수 이름으로 최덕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고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1월, 조평통 부위원장에 이르렀으며 남북회담 관련하여 자주 등장했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4년, 김영삼과 김일성 정상회담 추진 때도 부총리급 예비접촉 북측대표로 나타났으나 김일성이 요단강을 건너면서 무산되었다. 1994년 8월,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이때는 안병수라는 가명을 주로 썼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99년 7월, 김병식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9년 8월,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조평통 서기국장 및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등의 직함으로 동석했다. 2000년 11월, 통일전선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2002년 6월, 최홍희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04년 12월,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장을 맡았으며 2005년 8월, 김기남, 림동옥 등과 방남하여 현충원을 참배했다. 2006년 6월,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 민간대표단장에도 임명되었다. 2007년 6월, 리인모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고령이 문제가 되었는지 2011년 10월에 조평통 서기국장에서 해임되고 강지영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2012년 1월,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2016년 1월 4일에 사망했다. 부고 발표는 없었으나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주었다. 2016년 9월, 애국렬사릉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