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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colcolor=#fff>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朴元淳 | Park Won-soon | |
출생 | 1955년 2월 11일[1] | ||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1178 (現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동장가1길 28-1)[2] | |||
사망 | 2020년 7월 9일 (향년 65세) |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산25-1[3] |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4] | ||
본관 | 밀양 박씨[5] | ||
재임기간 | 제35-37대 서울특별시장 | ||
2011년 10월 27일 ~ 2020년 7월 9일 | |||
제7·8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 |||
2011년 10월 27일 ~ 2015년 4월 20일 | |||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 |||
2018년 8월 14일 ~ 2019년 7월 28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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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2남 5녀 중 차남 | ||
배우자 | 강난희[6] (1957년생) | ||
자녀 | 딸 박다인(1983년생)[7] 아들 박주신(1985년생)[8] | ||
학력 | 장가국민학교[9] (졸업) 창녕영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70회)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중퇴) 단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 / 학사) |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일병 소집해제 (방위병)[10][11] | ||
종교 | 무종교[12] | ||
신체 | 170cm, 71kg, A형[13] | ||
최종 당적 | |||
약력 | 제2회 법원행정고등고시 합격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방문교수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제35·36·37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5·6·7기 / 무소속·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14] 한국상하수도협회 부회장 제7·8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위원장[15] 대통령비서실 아세안 특사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위원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자체위원 (문재인 정부)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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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원순 서울시정 3기 공식 슬로건 내 삶을 바꾸는 서울의 10년 혁명[18][19] |
변호사 시절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인권변호사로 꼽혀왔다. 인권변호사 경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무소속 민선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최초로 3선 서울특별시장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성폭력 가해 문제가 불거지자 임기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 일생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일생 문서 참고하십시오.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퇴임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박원순은 19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도맡아 변호하였다. 특히 서울대 성희롱 사건은 6년간에 걸친 법적 투쟁 끝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소송으로 위법성을 이끌어 낸 역사적인 변론이며, 대한민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언급된다. 또한 여성전범법정 운동에서 대한민국측 검사로 참여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일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여성인권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서 명망을 쌓았고, 여성단체들로부터 대한민국 여성운동에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또한 당시 마로니에 립싱크 사건을 변호하여 당시 가요계에서 최초로 저작권의 개념과 2차저작물과 편곡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 받아내기도 했다. 후에 이는 저작권법 개정에 배경이 된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정착시켰다.[20]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게다가 낙선운동은 보수진영 인사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었고, 진보진영 후보는 범법, 편법 등 각종 문제가 있어도 모르쇠로 일관하여 정치적 편향 문제도 제기되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현존하는 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라며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1] "[ruby(惡,ruby=악)][ruby(法,ruby=법)]이 [ruby(法,ruby=법)]일 수는 없다" 말하며 악법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선거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돌연 정부 비판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 활동에 주력했다. 재벌 개혁 추진과 관련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지원했고,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당) 낙선 운동을 벌였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대정부 투쟁을 거의 하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만 주력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아름다운재단과 네이버와 협력하여 기부사이트 해피빈을 출범 및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반미 운동에 활발히 나섰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에는 SOFA 개정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2003년에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펼쳤는데, 이 반미 투쟁이 그가 노무현 정부에 반대한 유일한 활동이었다. 이 시기 민주당계 정당 등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나 박원순은 이를 거절하고 사회운동에만 주력하였다. 당시 사회활동을 위해 박원순은 인권변호사 시절 매입했던 자택까지 처분하면서 32억원 이상을 기부하였다. 월급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하여 이로 인하여 후에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사망할때까지도 항상 4~6억원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부활동으로 2006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2]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부터 다시 강경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미 선거 때부터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공약을 맹비난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몇개월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나라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되었다.[23] 천안함이 침몰하자 그는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장병을 죽였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맹비난했다.[24] 참고로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에 서울시장 급여 전액을 기탁했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급여 전액이 4년 동안 매달 자동이체로 아름다운재단에 자동이체되었다. # 또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아름다운 가게'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하고 본부 사무실을 방문해 미래 발전방향 브리핑을 듣기도 했고, 여러 기부행사에 동참하며 아름다운재단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다. 박원순도 이러한 이명박을 아름다운 재단 명예고문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과 가게를 적극적으로 도와 준 이명박을 박원순이 맹공격하자 아무리 정치판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사람의 예를 벗어난 것 아니냐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박원순은 이명박이 아름다운재단을 적극 도와줘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을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180도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이 박원순을 사찰하기 전 광우병 촛불집회를 열어 먼저 이명박을 공격한 것은 박원순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명박의 불법사찰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이 당시 이명박정부와 대립각을 세운것과 달리 자신과 이념성향이 다른 정당의 후보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결식 제로운동을 펼치며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극한 대립하고 있던 서울시의회를 지원했다. 민주당의 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오세훈 시장은 자신의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주민투표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못했다. 오세훈은 약속대로 서울시장직을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박원순은 오세훈의 사퇴로 공석이 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지지율이 5%에 머물며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군소 후보 중 한명이었지만, 당시 유력 주자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를 선언하며 자진 양보하자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대거 흡수하였고, 제1야당 민주당[25]과 단일화하여 야권단일후보[26]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반대했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계기가 된 전면 무상급식을 시장 취임후 첫 업무로 결재했다. 그리고 후보 당시 공약하였던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도 실현하였다.[27] 2012년 2월 당선 4개월만에 민주당(민주통합당)에 입당하였다.
서울시장 집권 기간 동안 사람이 우선이라며 개발과 토목 공사를 극도로 싫어하여 '반토목 시장'이라 불리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 재건축과 재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며, 대신 도시재생 정책을 내세웠다.[28] 이러한 도시재생 정책은, 오세훈 시장 때 추진되던 마곡공원 계획을[29] 변경하여 서울식물원을 개관[30]하고, 오세훈 시장 때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된 세빛둥둥섬을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고, 폐쇄된 석유비축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만들어 국제 건축상을 타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세빛둥둥섬 등은 사실상 오세훈 시장 때 추진되던 사업인데 이를 전시 행정이라고 비판해오던 박원순이 본인이 시장이 된 후 계획을 변경하여 개관 후 본인의 업적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31] 또한 재생을 강조한 나머지 슈즈트리 같은 흉물 전시물 논란이 발생되기도 했다. 시장 기간 동안 개발을 제한하고 보존 및 재생 위주의 정책으로 용적률도 크게 제한받았고, 재개발 허가 또한 대단히 받기 힘들어졌으며 또한 뉴타운 재개발 출구전략으로 2020년까지 이명박과 오세훈이 지정한 사업지 683곳 중 394곳을 해제했다(자진해제 60곳, 직권해제 80곳, 일몰기한 도래 254곳) 이러한 개발 억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집값 폭등을 야기하였고 그가 사망하기 이전 이미 서울시 집값은 뉴욕, 도쿄, 런던 등을 세계적인 대도시들을 제치고 OECD 최고로 치솟았다.[32]
재개발을 엄격히 규제하는 상황에서 집값이 치솟으며 비판이 쏟아지자, 2018년 박원순은 도로와 주차장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여 집값을 잡겠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은 물론이고 오마이뉴스,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9년 8월, 북부간선도로 위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아파트를 지어 2025년까지 입주시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또 취임하자마자 공사가 진행중이던 양화대교 보수 공사를 중단하고 영구 보존(방치)할 것을 주장하여 물의[33]를 빚은 것을 시작으로 반토목을 내세우며 각종 사회기반시설 공사 예산을 대거 삭감하여 서울에 예정되어 있던 도로 신설, 확장 공사가 대거 취소되거나, 축소,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예정되어 있거나 추진 중인 간선도로 공사가 대거 취소, 축소되어 서울의 교통난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그나마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추진된 몇 안되는 인프라 사업조차 과거 본인이 그토록 비판하던 민자로 추진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하여 개통된 서부간선지하도로[34], 신월여의지하도로[35] 등은 시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도로로 개통되어 통행료[36]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여 서울시내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시속 50km로 낮추어 서울시의 교통난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논란을 받았다.[37] 취임 직후 오세훈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서울시의 경전철 7개 노선 계획을 백지화시켰다.[38]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 직전 2013년 7월 돌연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한다고 깜빡 발표하여 지지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오세훈 전 시장은 '내가 시장일 때는 전시성 토목행정이라며 반대하더니 본인이 하면 착한 사업이냐'라며 박원순의 내로남불을 지적하며, 경전철을 취소했다가 재추진하면서 결국 수천억원의 기회비용 손실이 생겼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프레시안 등의 언론은 박원순이 본인의 과거 발언을 뒤집고 토목사업을, 그것도 민자로 추진하겠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원순은 "강남3구가 발전한 것은 결국 지하철을 잘 놨기 때문"이며 본인의 경전철 계획을 옹호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기존에 공사중이던 우이선, 서부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노선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또 오세훈이 추진하던 서울 공공자전거시스템이 암초를 맞게 되었다. 원래는 오세훈의 계획대로라면 2011년까지 자전거도로가 완공되어 2011년부터 공공자전거택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은 시민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오세훈이 추진한 공유자전거 사업을 중단하였다. 박원순은 오세훈이 인구밀도와 지형, 교통량 고려없이 자전거 도로를 다수 설치하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세훈의 자전거도로의 문제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임자를 비판하려고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뜯어 예산을 낭비한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 박원순은 이후 시민의 참여라는 명목으로 시민단체 및 시민과 공론화 과정을 대거 포함시켜 사업을 재추진했고[39] 이전 오세훈의 계획과 달리 공공성을 더욱 강화했다. 2015년부터 따릉이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 이후 따릉이는 서울시 공유정책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성을 강화한 만큼 누적 적자가 쌓이고있고 따릉이의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내에 토목공사를 극도로 제한하는 대신 복지 사업에 대한 예산을 크게 늘렸다. 그의 대표 정책인 복지최저기준으로 2013년 UN 공공행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10년 4조원에 불과하던 복지예산이 2019년 12조원까지 늘어났다. 여기에는 역점사업이었던 복지 최저 기준 2.0, 청년수당, 전국민고용보험시범사업등의 정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2019년에는 서울시의 복지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서울케어가 출범하였다. 특히 경남 진주의료원이 적자여서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폐업을 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울의료기관들의 적자에 대해 박 시장은 ‘착한 적자’로 규정하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갔다. 이는 시민들의 관점에서 다소 냉정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지점이었는데, 코로나19라는 위기에 ‘착한 적자’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더 큰 손실과 더 큰 비용과 더 큰 적자를 막은 셈이다. 애초 박원순 시장 재임기의 공공의료 확장은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건강한 서울이 목표였는데, 코로나19로 건강한 모든 시민이 일상의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을 구원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박원순 시장의 재임 당시 복지예산 확대는 박원순 시장의 대표적인 업적이라 평가하는 측과 복지예산의 과도한 확대로 실제 필요한 토목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복지예산 확대와 더불어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 특정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시민단체에 수천억원이 지원되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는 박원순 시장 시절 시민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이 1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제 서울시 정보공개를 통해 조사한 결과 7,000억원 수준으로 그마저도 시민 민간단체에 지원한 예산은 2000억원에 불과하며, 민간위탁금이 5,000억원이다.# 오세훈 시장도 시장에 당선된 이후 시민단체에 1조 지원했다는 언급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으며, 액수는 밝히지않고 전임시장시절 과도한 예산이 시민단체에 지원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서울시의 각종 시설들을 시민단체에 제공했다. 물론 열린광장 운영위원회등 각종 공공장소 사용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되면서 발생한 측면이 더 크다. 이는 오세훈 시장 2기 시절 서울시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제정한 조례를 바탕으로 하므로 박원순이 의도적으로 바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야당(민주당) 성향 단체들의 반정부 집회와 국정농단 사태 촛불 집회가 2017년 5월까지 서울시의 공공장소에서 자주 열렸다. 다만 그때까지 시위는 진보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보수권에서도 태극기집회 등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장이 된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아끼지 않았다. 재개발, 재건축, 청년수당, 천안함, 메르스, 사드 등 수많은 현안에서 사사건건 정부 정책을 비난했다. 국감, 관훈클럽 등에서 정부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냈다. 서울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부 시책에 관해서도 내내 사사건건 반대해 왔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이런 행동을 완전히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을 공격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야당이 감히 남탓을 한다며 야당의 비난을 원천 봉쇄로 뭉개었다. 물론 당시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으로 야당의 지지율이 박살난 상황이라, 박원순에게 큰 영향은 없었다. 사망 직전인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서울시와 정부의 과도한 추경과 나라 빚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있자, 평소에 맹비난하던 미국과 일본의 채무비율을 들며 반박했다.
그러나 2020년 7월 8일, 박원순 시장의 전직 비서가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40] 성추행 가해자로 피소당한 다음 날인 7월 9일 실종되어, 7월 10일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이 사건은 박 시장 본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되었으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그의 성폭력[41]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2.1. 사망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3. 박원순계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계 문서 참고하십시오.4. 비판과 논란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비판 및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4.1. 자질 및 행보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비판 및 논란/자질 및 행보 문서 참고하십시오.4.2. 성폭력 사건
자세한 내용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5. 경력
- 1978년 제8회 법률사무관
- 1978년 ~ 1979년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1년~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86년 초대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위원회 변호사
- 1989년 ~ 1991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1994년 ~ 2001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 1998년 감사원 부정방지위원대책위원회 위원
- 1999년 국회 제도운영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국제법정 공동검사
- 2000년 법무부 민사소송개정 심의위원
- 2000년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 2001년 ~ 2010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 2002년 ~ 2009년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 2002년 ~ 2003년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 2003년 국세청 세정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 2003년 ~ 2011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 2004년 ~ 2009년 포스코 사외이사
-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방문교수
- 2006년 ~ 2011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2011년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무소속, 야권단일)
- 2011.10.27 ~ 2014.06.30 제35대 서울특별시장
- 2011년 ~ 2015년 제4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협회장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새정치민주연합)
- 2014.07.01 ~ 2018.06.30 제36대 서울특별시장
- 2017년 대통령비서실 아세안 특사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더불어민주당)
- 2018.06.30 ~ 2020.07.09 제36대 서울특별시장[42]
- 2018년 ~ 2019년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 2018년 ~ 2019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위원
- 2018년 ~ 2019년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차제위원
6. 저서
6.1. 본인 저작
박원순은 1년 안에만 2~3권 씩을 써내면서 정치인 중에 제일 다작을 하는 축에 들었다.[43] 정치인이 되기전에는 법이나 시민운동 서적이 주를 이뤘고, 서울시장이 된 이후에는 주로 본인홍보용 저작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책은 자신을 3인칭화하여 대체로 박원순 본인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며, 표지도 자신의 사진이 크게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작권법 - 법경출판사 (1986)
- 국가보안법 연구 (총 3권) - 역사비평사 (1990)
- 아직도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1999)
- 악법은 법이 아니다 - 박원순 지음, 프레스 21 (2000)
-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 박원순 지음, 아르케 (2001)
-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 박원순 지음, 중앙M&B (2002)
-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 박원순 지음, 당대 (2002)
-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 참여연대 실천경영론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 부패추방 어떻게 하나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한국인권변론사,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 - 박원순 지음, 두레 (2003)
-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 박원순 지음,논형 (2005)
* 고문의 한국현대사 - 야만시대의 기록 (총 3권) - 박원순 지음, 역사비평사(2006)
- 프리윌(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 박원순지음, 중앙북스 (2007)
-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 전유성, 박원순, 박준형, 희망제작소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7)
-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 박원순 지음, 샘터 (2008)
- 글쓰기의 최소원칙 - 박원순 지음, 룩스문디 (2008)
-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09)
- 희망을 심다(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나눔) - 박원순 지음, 알마 (2009)
-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 박원순 에세이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2010)
- 마을이 학교다, 함께 돌보고 배우는 교육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2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0)
- 마을 회사,공동체를 살리는 대안 경제 - 박원순의 희망 찾기 3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 마을 생태가 답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4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1)
-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로마인 이야기 로마 천년 제국을 이룬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박원순 지음, 석세스티브이 (2011)
-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영국 사회혁신 리포트 - 박원순 지음, 이매진 (2011)
- 희망을 걷다 -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 박원순 지음, 하루헌 (2013)
-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 박원순,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3)
* 박원순의 어린이를 위한 응원 - 권경률, 박원순, 엄윤숙 지음, 생각을담는어린이, (2015) #
-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 - 박원순 지음, 서울시청 사진, 휴먼큐브 (2014)
* 원순씨, 배낭 메고 어디가세요? -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선거 이야기 - 박원순, 하승창 공저 (2015) # - 시간이 지나 제목이 매우 부적절하게 되었는데, 그의 사망 직전 배낭을 매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가는것이 포착 되었기 때문이다.[46]
-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 도올 김용옥, 박원순, 지승호 지음, 통나무 (2016)
-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 -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박원순의 말과 생각 - 박원순, 김홍국 지음, 더봄 (2016)
- 박원순, 생각의 출마 -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과 비전 - 박원순 지음, 더봄 (2017)
- 몰라서 물어본다 - 박원순의 퇴근길 청춘수업 - 박원순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8)
- 한국 경제규칙 바꾸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Korean Economy) - 박원순, 전병유 지음, 서울연구원 (2018)
6.2. 타인 저작
- 청소년을 위한 박원순의 가상 콘서트 - 박원순의 응원 - 원순씨 청소년에 답하다 - 권경률 지음, 폴머 (2012)
- 박원순의 서재 - 박원순 책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찾다 - 권안 지음, 푸른영토 (2013)
- 박원순이 걷는 길 - 임대식 지음, 한길사 (2015)
- W캠프의 비밀 - 서울시장 3선, 박원순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 이인수 지음, 21세기북스 (2018)
- 박원순 죽이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황세연 지음, 중원문화 (2020)
-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지음, 지식공작소 (2020)
- 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 손병관 지음, 왕의서재 (2021)
- 박원순은 살아있다 - 흑서, 잃어버린 9년에 대한 서울시정 평가 - 나연준 , 여명 , 우성용 , 이순호 , 이옥남 , 이종원 , 주한규 , 허현준 , 김재원 지음, 글통 (2021)
- 서울을 바꾸다(혁신가 박원순의 도시혁명 10년) - 서왕준, 김수현, 김영준, 김용창, 윤순진, 이태수, 정선애, 유창복, 이창현 지음, 비타베이타 (2021)
- 서울10년혁명(박원순 서울시정 10년 기록) - 혁신네트워크디딤 지음, 해피스토리 (2021)
- 박원순을 기억하다 - 벗들의 기억으로 그려낸 인간 박원순 이야기, 유석인 외 20명 지음, 메디치미디어 (2022)
7.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 기간 | 비고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1 - 2012 | 정계 입문 |
[[민주통합당|]] | 2012 - 2013 | 입당 |
[[민주당(2013년)|]] | 2013 - 2014 | 당명 변경 |
[[새정치민주연합|]] | 2014 - 2015 | 합당[47] |
| 2015 - 2020 | 당명 변경 사망 |
8.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e1932><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ae1932>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1 | 하반기 재보궐선거 (광역자치단체장) | 서울특별시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158,476 (53.40%) | 당선 (1위) | 초선[48]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새정치민주연합|]] | 2,752,171 (56.12%) | 재선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 2,619,497 (52.79%) | 3선[49]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2011년 하반기 재보궐 (서울특별시장) | 6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 |
7회 지선 (서울특별시장) |
역대 후보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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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유머
9.1. 씨발드립
자세한 내용은 씨발련아 문서 참고하십시오.9.2. 스나이퍼 박
자세한 내용은 스나이퍼 박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여담
- 2019년 국제돌봄엑스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성추행으로 자살하면서 모순적인 상황이 되었다.
- 2009년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앵커의 고별 방송을 했을 때 영상으로 출연했는데 이때 손석희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와 나이가 동갑[50]인데도 나이가 많이 차이 나 보인다며 손석희의 동안의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손석희의 대답은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동안이라기보다는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십니다"였다. 그리고, 손석희가 저 발언을 하기 전에 노회찬 전 의원을 가리키면서 "여기 노회찬 대표님도 저랑 동갑이십니다."라고 팩트로 2연타를 때렸다. 물론 분위기상 손석희와 박원순 모두 가벼운 농담을 한 것이다.[51][52]
이후 JTBC에 특별 출연했을 당시 또 같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때는 "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고 손 사장이 비정상인 거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임 강원도지사인 최문순은 조금 더 심한 상태로 방송국 시절부터 손석희로부터 능욕을 당했다.[53] 박원순 본인은 손석희와의 해프닝이 꽤 기억에 남았는지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손석희의 동안이 문제라는 말을 꺼냈다. 참고로 더 알자면 위에 언급되다시피 이때 나왔던 박원순이 1955년생, 노회찬, 손석희는 1956년생이고 얼굴로 따지면 손석희가 막내다. 여기에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도 56년생이다. 게다가 홍의락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은 박원순, 노회찬, 최문순 보다 1살 더 많다.
*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다고 한다. # 당시에는 둘이 서로 변호사였기 때문에 박변 문변이라는 표현을 써서 친하게 지냈다고. 하지만 19대 대선 때 양측 간의 네거티브 전이 재개되는 등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 평소에 자신이 워커홀릭임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하급자에게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과중하게 업무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KBS 인간의 조건에서 양상국을 만났을 때도 예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시장이 된 이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54]
- 유시민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르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는데 그 이유가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새벽 2시에도 불쑥 전화를 걸어 실무자들이 멘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정의당의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 2에 출연해 했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앞서 말한 방식으로 일을 했더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줄줄이 병원에 실려간다는 하소연이 많아 지금은 일하는 스타일을 바꾸어 칼퇴근을 하는 등 아랫 사람들에게 숨 쉴 틈을 최대한 열어주는 쪽으로 바꿨다고 한다. 21분 21초부터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비서관을 새벽 6시까지 출근시켜 자신의 사적인 조깅에 동행시키더니 밤 11시, 12시까지 부려먹다가 퇴근시키는 갑질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박원순은 이런 갑질 상사 짓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워커홀릭이라고 미화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여러 비판이 있자, 자신을 스스로 옹호하다가 약간은 자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박원순은 자신이 워커홀릭임을 과시하며 사석이나 인터뷰에서 과로사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과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 사람들을 과로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 방문 때 스트레스 측정을 받은 결과, 심각 단계라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실렸다.
-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시절 개인 홈페이지인 원순닷컴에다[55]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도서관 지하에서 7층까지 책을 다 읽었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하버드대 도서관 장서량이 최소 1260만권 이상이었는데 1년 동안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그걸 어떻게 다 읽었냐는 지적이 자연스레 이어졌고, 결국 박원순 측은 이후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며 "지하에서 7층까지의 도서관 책을 모두 읽을 기세로 파고들었다."는 문구로 수정했다.#1 #2
그래도 실제로 상당한 책벌레였던 것은 사실이라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에 도서관을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고, 각종 북 토크 행사 등을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재임기간 마을 도서관 등 중소규모의 도서관이 3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후임 오세훈 또한 박원순 시정 때 도서관을 크게 늘린 것을 잘했다고 평가할 정도.#
- 경상남도 출신이다 보니[56] 같은 당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할 의향을 드러냈던 민병두 의원과 PK의 몇몇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상남도 도지사 중에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며 서울특별시장 3선 대신 경상남도 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외모가 왠지 경남 아저씨 같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각자 소질 있는 분야가 다르다면서 당의 몇몇 인물들이 박원순에게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을 일축하고 서울특별시장 3선으로 간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역대 최초로 민선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남지사는 친문 김경수 전 의원[57]이 차출되었고, 역대 최초로 민주당 당적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었다.
- 2002년 발매한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에서 자신의 유언장을 미리 적어놓았다. 당시 박원순은 유언장 쓰기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생을 마감하기 전 적은 유서와는 별도의 글이다.내 딸과 아들에게유언장이라는 걸 받아 들면서 아빠가 벌이는 또 하나의 느닷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내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유산은 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그토록 원하는 걸 못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고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모여 따뜻한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구나. 그런 점에서 이 세상 어느 부모보다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을 실토한다.가난했지만 내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신 것으로 보면 특히 그렇단다. 우리 부모님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바치신 분들이다. 평생 농촌에서 땅을 파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워 나를 뒷바라지해 주신 그분들은 내게 정직함과 성실함을 무엇보다 큰 유산으로 남겨 주셨다.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지도 못했고, 무언가 큰 가르침도 남기지 못했으니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다. 다만 그래도 아빠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죄를 짓거나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니 그것으로나마 작은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내 부모님의 선한 심성과 행동들이 아빠의 삶의 기반이 되었듯 내가 인생에서 이룬 작은 성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른 생각들이 너희의 삶에서도 작은 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분명 아빠의 변명이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홀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단지 책 보따리 하나 들고 야간 열차를 타고 서울로 와서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컸다. 학창시절에는 감옥도 가고 학교로부터 제적이 되어 긴 방랑의 세월도 가졌다. 긴 고통과 고난의 세월도 있었다.그러나 아빠는 그것에 굴하기는커녕 언제나 당당히 맞서 극복해 왔다. 그런 힘든 나날이 오히려 더 큰 용기와 경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니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진리임에는 틀림없는 듯 싶구나.당연히 너희의 결혼을 치러 주는 것이 내 소망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너희에게 집 한 채 마련해주지 못하고 세간조차 제대로 사주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아라.그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이 아빠에게도 왜 없겠냐마는, 그래도 그런 능력이 안되는 나를 이해해다오. 우리가 약속했듯 대학까지만 졸업하고 나면 나머지 모든 것은 너희가 다 알아서 해결하고 개척해 가렴.그러나 너희가 아무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거창한 부모를 가지지 못했다 해도 전혀 기죽지 말아라. 첫출발은 언제나 초라하더라도 나중은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은 긴 마라톤 같은 것이다. 언제나 꾸준히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란다.더구나 인생은 그렇게 돈이나 지위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너희는 돈과 지위 이상의 커다란 이상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그런 점에서 아빠가 아무런 유산을 남가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큰 유산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내 아내에게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쑥스러워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아내라고 써 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참 잘못했다는 반성부터 앞서는구려.변호사 부인이면 그래도 누구나 누렸을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 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 고되었을 당신에게 무슨 유언을 할 자격이 있겠소. 오히려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내 참회문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오.그래도 적으나마 수입이 있던 시절, 그 돈으로 집을 사고 조금의 여윳돈이 있던 시절, 내가 다른 가족들이나 이웃, 단체들에게 그 돈을 나누어주는 것을 옆에서 말리기는커녕 당신 또한 묵묵히 동의해 주었소. 당신도 내 낭비벽의 공범이었으니 나만 탓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조금이나마 따로 저축이나 부동산을 남겨두었다가 이럴 때 비밀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없는 법.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금이나 고향에 부모님들이 물려주신 조그만 땅이 있으니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자위하지만 그래도 장래 우리 아이들의 결혼 비용이나 교육비에는 턱없이 부족할 테니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구려.그러나 우리가 그랬듯 살아가는 동안 겪는 어려움과 고난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더욱더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 것이니 모든 것은 운명에 맡겨 두는 것이 좋을 듯하오.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게 또 하나 있소. 아직도 내 통장에는 저금보다 부채가 더 많다오. 적지 않은 빚이 있는데, 다행히 나와 함께 일하는 간사가 내가 마구 쓰는 것을 견제하면서 조금씩 적금을 들고 있는 모양이니 조만간 많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그러나 혹시 그걸 다 갚지 못한다면 역시 당신 몫이 될 테니 참으로 미안하기만 하오. 내 생전 그건 어떻게든 다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소.내가 당신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몇 가지 또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있소. 내가 소중히 하던 책들, 이사할 때마다 당신을 고생시키며 모아온 그 책들은, 우리 아이들이 원하면 가지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느 대학 도서관에 모두 기증해 주기를 바라오. 아무래도 법률책이 많으니 고시 관련서만 가득한 서울대 법대에 기증하는 것도 좋겠소. 그 책들은 내가 평생 이 나라와 여러 나라에서 소중하게 모은 것들 아니오? 당신 밥 한끼 사주는 대신 함께 모은 것들이니 한 곳에 전해져 그 분야에 관심있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이미 안구와 장기를 생명나눔실천회에 기부했으니 그분들에게 내 몸을 맡기도록 부탁하오. 그 다음 화장을 해서 시골 마을 내 부모님이 계신 산소 옆에 나를 뿌려주기 바라오. 양지바른 곳이니 한겨울에도 따뜻한 햇볕을 지키면서 우리 부모님에게 못다 한 효도를 했으면 좋겠소. 원컨대 당신도 어느 날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소. 그래서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이 생에서 다하지 못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하오.그리고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 영혼은 그들이 오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요. 내 부음조차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소. 신문에 내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마오.무책임한 남편이 끝까지 무책임한 말로써 이별하려 하니 이제 침묵하는 것이 좋겠소. 부디 몸조심하고 남은 인생을 잘 보내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겠소. 감히 다시 만나자고 할 염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야 또 만나자고 할 형편이오. 어떡하겠소? 다만 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오.모든 가족과 지인들에게오늘날의 나를 만든 많은 분이 계시지만 그 가운데 내 형제들을 잊을 수는 없겠습니다. 어린 시절 내 학비를 보태고 부모님을 돌보던 큰누님과 매형, 아들만 귀히 여기는 집안 분위기와 부모님의 인식 때문에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외지에서 무진 고생만 한 둘째누님, 셋째누님, 시골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돕느라 시집갈 때까지 온몸을 바쳐 일한 넷째누님, 학문의 길을 걷느라 어려우신 걸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한 형님, 그리고 오빠들 때문에 중학교까지밖에 못 다니고 내내 농사일만 하던 막내 여동생.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희생과 헌신에 대해 아무것도 갚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이 아리기만 합니다. 변호사 동생 또는 오빠를 두었으니 뭔가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아픈 가슴만 남았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혹시 그럴 위치가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동생 또는 오빠가 되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에서는 '같은 가지에 태어나 가는 곳 모르겠소'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함께 '같은 가지'로 태어났으며 좋겠습니다.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동네 친구들, 장난꾸러기에 지나지 않던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신 초등학교 선생님들, 많은 꿈을 심어주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함께 유년 시절과 소년시절을 뛰놀며 꿈을 꾸던 친구들, 변호사 일을 하는 동안 나를 도운 사무장과 사무원들, 인권 변론을 함께 하면서 그 어두운 시절을 보낸 동료, 선배 변호사님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에서 함께 희망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잊으면 살고 있는 간사들, 거기에 기꺼이 회원이 되고 도움을 주신 분들.그 모든 분에게 나는 큰 신세를 졌습니다. 많은 배움과 도움을 얻었습니다. 때로는 내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고 억지스런 요구로 손실을 입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꿈꾸어 오던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못다한 몫은 바로 이제 여러분들이 이뤄 줄 것임을 믿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반가운 얼굴로 맞겠습니다.
- 그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 복무에 관련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사건으로 일베 유저 16명을 고소한 것으로 보아 박원순 서울시장 측에서도 일베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심지어 일베에서도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게시글도 비슷한 이유로 고소당했다고 한다.
* 커원저 대만 타이베이 시장인데,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정치 이념 및 행보가 비슷한 사람으로 중화권에서 유명하다.[58] 마침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지 대표 자격으로 방문한 김에 서울에도 찾아가 회담을 가졌다.
- 일본의 정치인 우쓰노미야 겐지와도 정치 이념 및 행보가 비슷한 것으로 유명하다. 둘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면서 사회적 약자, 여성 및 시민사회운동에서 큰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정치계에 입문한것도 동일하다. 덤으로 탈모가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박원순과 달리 우쓰노미야 겐지는 야권후보로 계속 도쿄도지사에 도전하지만 연속으로 낙선해 아직 당선되어본적은 없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분이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을 호평하는지라 2016년에는 서울시에 노무현 거리(노무현 루트)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2020년에 박원순이 사망할 때까지 실현되지는 않았다.
-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때, 조문을 와서 추도사를 읽기도 했었다. 상당히 슬퍼했었다고 한다. #, # 추후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폭력 행사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고 하면서 이명박 측에서 정치 보복이란 말을 쓸 자격이 있냐며 비난했다.
-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박원순은 한때 이명박하고도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데, 반 이명박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이 된 직후로는 이명박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그래도 청와대로 박원순을 직접 불러 독대하면서까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지만 박원순은 친 노무현 반 이명박으로 정치 노선을 굳히게 된다. 실제로 2017년 7월에 냄비받침이란 KBS 프로그램에 박원순이 출연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좋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크게 반발하면서 이명박과의 관계는 '과거 지인일 뿐이다' 라는 뉘앙스로 얘기하면서 이명박을 싫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아마 박원순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명박산성 같은 것들에게서 촉발됐을 거라는 게 정설. 당시 박원순은 광화문광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오세훈 또한 비판한 적이 있다.
- 19대 대선 경선에 출마해서 서울대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공립대학교 통합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5000억 원을 들여 52개 국공립대학교에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적이 있다.#
- 문재인 정부에서 대 아세안 특사로 파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희상, 이해찬, 송영길, 박주민과 함께 외모패권주의의 희생양 아니냐는 농담을 들었다. 실제로 전술한 4인 모두 외모가 정부 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편. 7회 지방선거 이후에는 당선자들 중에서 외모는 최하위권이라는 말도 있었다.
- 동남아시아통(通)으로 분류되며,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서 아세안(ASEAN) 특사로 지명되었다. 서울시장 재임 동안 동남아 정부 관계자와 네트워크를 쌓아왔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대(對)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관계를 미국 등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후 외부자들에 출연하여 "아세안 국가에 도시 외교를 통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가는 김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청와대에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 이왕 가는 김에 특사로 갔다 오라고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했다.#
- 별명으로는 '원순씨'[59]가 있다. 그 외에 '박원숭', '박원숭이', '몽키박' 등이 있는데 이는 이름(박원순)에서 따온 다소 비하적 별명으로 박원순을 싫어하는 쪽에서 거의 사용한다. 입이 돌출입인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박원순은 원숭이라는 별명에 대해 스스로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고 '제가 그 원숭이 한 번 되어볼게요', '원숭이는 재주가 많은 동물이다' 라고 허허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게다가 원숭이띠이기도 하다.[60] 그리고 '씨발아저씨', '씨발갑'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박원순 욕쟁이 드립이란 밈에서 나온 것이다. 박원순 욕쟁이 드립은 문서 참조 바람. 사실, 박원순이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이런 대인배스러운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점이 노무현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노무현 또한 대통령 임기부터 온갖 비하에 갖은 비난을 다 받았지만 그냥 신경쓰지 않고 웃어넘기기도 했었다. 노무현 비서관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보다 더한 것도 겪어봐서 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 80년대 안기부에게 감시 당한 것을 말하는 듯. 하지만, 성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이후로는 '킁킁이', '야스좌' 등으로도 불리면서 원숭이라는 별명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 전 의원을 복권 조치했는데 박원순이 정봉주가 패널로 있는 외부자들 스튜디오에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그런데 그 화환에는 '서울특별시장 내리2선 웬순씨'라고 적혀 있었다.
- 2018년 제주 난민 사태에 대해서 우리도 한 때 난민이었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한다고 했다. # , #
- 탈모가 심했었다. 시장 출마 당시에도 머리가 점점 빠지던 상황이었고 2018년초까지는 정수리가 듬성듬성했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정수리가 풍성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박원순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여 수술설을 부인하면서, 머리숱이 많아진 것은 흑채 덕분이라고 해명하면서 직접 본인의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흑채를 뿌리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월간 조선 기사에 따르면, 박원순이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모발이식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복수(複數)의 관계자가 강남구 신사동의 모 성형외과에서 박원순이 2018년 2월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기자가 병원 측에 “박원순 시장이 그곳에서 모발이식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병원 측은 망설임 없이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고를 올렸지만, 개인적인 문제라 답변이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했다.[62]
- 잠가라 밸브를 시전한 적이 있다. 바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경찰이 소방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수도 밸브를 잠그도록 했다.
- 이른바 '박원순 유니버스'란 짤방들도 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남긴 사진들이 하도 많아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비슷하다고 생긴 밈이다.
- 과거 사법연수원 사람들과의 등산에서 "정치란 보여주는 걸 잘해야 한다고" 라고 말했다고 한다.
-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 때인 2020년 7월 10일 0시, 공교롭게도 《박원순 죽이기》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어그로성 제목과는 달리 박원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 및 평가를 한 책인 듯하다. 어마어마한 우연의 일치라는 것.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11. 수상 내역
- 1998년 - 여성단체연합 제 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 2002년 - 제 15회 심산상 시민운동 및 공로 부문
- 2002년 -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 2003년 - 시민의 신문 올해의 활동가상
- 2003년 -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 2006년 -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
- 2006년 -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 2007년 -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 2009년 - 제15회 불교인권상
- 2014년 - 세계도시 전자정부평가 특별공로상 서울특별시 수상
- 2014년 -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 2016년 -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 2017년 - 제5회 도전한국인상
- 2017년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 소비자권익증진상
- 2017년 - 파리시 명예메달 그랑 베흐메이으(Grand Vermeil)[63]
- 2018년 - 리콴유 세계도시상[64]
- 2018년 -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65]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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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적으로는 1956년 3월 26일이지만 본인이 주장한 실제 생년월일은 1955년 2월 11일(음력 1월 19일)이라고 한다.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56년 3월 26일으로 되어 있다.[2] 홍준표, 박영선도 같은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인데, 두 명은 옆 동네 남지읍 출신이다. 출생 당시에는 남지면. 인근의 강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3] 삼청각과 숙정문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4] 본래 선영인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 묘가 있었으나 2021년 9월, 묘소 훼손 사건이 일어나면서 유족들이 이장을 결심하여 2023년 4월 1일 모란공원으로 옮겨졌다. 이장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모란공원이 민주화 열사들의 묘역이란 점에 박원순이 가도 되는 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모란공원은 사설 묘역이고 민주화 열사들이 많이 묻혀있을 뿐 특별히 그런 사람들만 묻힐 수 있는 곳은 아니며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나 묻힐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논란은 의식했는지 유족들은 새벽 일찍 작업에 나서 이장을 완료했다고 한다.[5] 규정공파 27세손, 혁거세 71세손 ○순(○淳) 항렬.[6]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인연 때문인지 신일희 계명대 총장의 교육 희년(50주년) 기념 행사 때 박원순이 축사 영상을 찍어서 보낸 적이 있었다.[7] 실종 당시 실종신고를 했던 인물. 서울 법대를 졸업했으나 미대에서 편입한 거라 논란이 있었다.[8] 2013년 5월 롯데호텔 임원의 딸과 결혼하였다.[9] 농촌 인구감소로 인해 1993년에 폐교했다.[10] 1969년 작은할아버지에게 양손으로 입양돼 부선망 독자(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외아들)로 8개월 방위로 병역을 마쳤다.[11] 관련 기사[12] 공식적으로는 무종교인이지만, 불교계와 인연이 꽤 깊었다. 또한 이 외에도 개신교, 원불교 등 타 종교계와도 다양하게 교류했었다. #[13] 중앙일보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질문한 특집기사에서 다뤄졌다. 네이버 프로필에도 있다. 박원순의 시시콜콜 100문 100답[14] 후술하겠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시장이다. 무소속 신분으로 서울시장이 된 후 2012년 2월에 민주통합당 입당.[15] 당연직으로 시장직과 겸임[16] 개인 계정, 원래 공식 페이지도 존재했었으나 사후 폐쇄되었다.[17] 현재 박원순 본인의 계정이 비공개 상태다.[18] 3선을 출마하며 내세웠던 슬로건으로 불미스러운 일로 임기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2021년 10월 27일 부로 서울시장 연속 재임 10년을 달성하여 2022년 6월 30일 임기를 마쳤을 것이다. 만약 대권주자로 사퇴했다면 정확히 10년을 채웠을 것이다. 그래도 8년 9개월로 거의 10년을 채우긴 했으며 이 구호는 훗날 박원순의 서울시정을 되돌아보는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19] 참고로 "내 삶을 바꾸는 서울시장"이라는 표어는 2011년 서울특별시장 첫 출마 당시에도 내세웠었다. [20] 참여연대 이전에도 국내에 여러 시민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 해외 NGO 중에서는 민간인권전선, 그린피스, 씨 셰퍼드같은 사례가 압박 시민단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21] 2001년 9월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大토론회」에서 발언한 내용[22] 다만 빚과는 별도로 박원순 본인은 수백만원 월세에 거주했고 외제차를 포함한 고급 차량들을 보유하여 생활 자체는 윤택한 삶을 영위했다.[23]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배후가 누구냐라고 물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 발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24]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인정했지만, 침몰 원인이 이명박 정부에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25] 당시 선출되었던 후보가 바로 박영선. 잘 알다시피 박원순의 사망으로 인해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의 더불어민주당 후보이기도 하다.[26] 당시 선거에서는 아직 민주당에 입당하기 전이었다.[27] 서울시민이 아닌 재학생들에게까지 서울특별시청 예산으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있었으나, 강행했다.[28] 특히, 재건축 아파트의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옛 아파트 건물 일부를 문화유산이라며 남겨두는 정책을 고수했다. (결국 이 층수 제한은 박원순 사후 풀렸다.)[29] 오세훈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마곡 워터프론트사업이 환경파괴 및 수질오염 논란으로 무산되고 한차례 변경된 사업이다.[30] 2021 아시아-태평양 조경상을 수상했다.[31] 박원순이 오세훈 때 추진되던 경전철을 취소했다가 2년 후 본인의 업적으로 재추진하자, 새누리당 박용찬 대변인은 경전철,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모두 박원순이 시장 취임 후 전시행정으로 비판하며 중단시더니 본인이 완성하여 본인의 업적으로 포장하는 것에 대해 위선적이라 비판했다.[32] 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는 반론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절 초기 집값 폭등은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박원순 사망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당측과 박영선은 네거티브 와중에서도 오세훈 시절이 집값이 올랐다는 것을 쟁점화시키지 않았다. 물론 같은 논리로 박원순 시절 서울의 집값 폭등도 박원순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및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견강부회다. 오세훈 시장 초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며 그 시절 집값이 오른 것은 노무현 정부의 공급 억제 정책의 실책었다. 반면, 박원순 시절 서울의 집값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거의 상승하지 않다가 2017년 문제인 정부 출범 이후 치솟았다. 역으로 박원순의 재개발 억제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이 지나치게 폭등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즉 집값 폭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집값 폭등의 주요 동력을 박원순 전 시장이 제공한 측면이 있다. 즉 2010년대 후반 서울과 수도권 집값 폭등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정책 실패가 콜라보로 부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사례다.[33] 물론 그 이전 오세훈 시장때도 멀정한 다리를 뜯는것이라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일단 공사가 시작된 양화대교 공사를 영구 중단하고 공사 중단 상태로 영구 보존하겠다는 박원순의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4] 원래 오세훈 전 시장이 2011년 착공 예정으로 추진했으나, 박원순이 시장에 취임한 후 지연되다가 2016년에 착공되었다.[35] 박원순 본인이 직접 추진한 최초의 인프라 사업이었다.[36] 민자 도로라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37]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 시행되었는데, 박원순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서울시에서 이를 추진해왔다.[38] 당시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서조차 경전철 취소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39] 따릉이 명칭 또한 시민과 숙의과정을 통해 정했다.[40] 박원순 성추행 사건 참조.[41] 법원은 성추행,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은 말로 하는 성폭력에 국한되지만, 법률 상의 용어로서 '성희롱'은 말로 하는 희롱 뿐 아니라 성추행, 성폭행, 강간 등의 범죄를 포괄하는 의미이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성희롱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42] 임기 중 사망.[43] 대만의 리덩후이 전 총통(1.5년에 1권 꼴)을 이겼다.[44] 책 제목은 토마스 모어의 유언에서 비롯되었다.[45] 여러 지식인/정치인들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해 서술, 회고한 내용인데, 박원순은 '우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인을 잃었다' 부분을 서술했다.[46] 몇몇 음모론자들은 책의 제목이 삼각형이라며 박원순 사망의 일루미나티 개입설을 주장한다.[47]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48] 전임자 오세훈 사퇴.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특별시장.
2012.2 민주통합당 입당.[49]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2020.7.9 임기 중 사망.[50] 당시에는 호적상으로 나이를 말해서 1956년생 동갑으로 말하였다.[51] 옆에서 대화를 듣던 노회찬 역시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그릴 만큼 농담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52] 공교롭게도 노회찬과 박원순 두 인물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53] 참고로 손석희와 최문순은 MBC 동기이기도 하다. 1984년 입사했다.[54] 이때 양상국에게 박원순이 추천해 준 책은 미생이다.[55] 현재는 폐쇄됨[56] PK-TK의 접경지대인 창녕 출신이긴 한데 박원순 본인의 정치 성향 상 PK로 분류되는 일이 훨씬 많다.[57] 이 사람 또한 서부경남 쪽인 고성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58] 다만 성격과 시장 당선이후의 상황은 좀 다른데 박원순의 경우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는 반면 커원저는 시의회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칠 정도로 성깔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높은 지지율로 유례없는 서울특별시장 3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커원저는 낮은 지지율로 재선이 불투명하다가 0.2%P차로 겨우 이기며 매우 고전하는 중.[59]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이다.[60] 호적상 생일로 원숭이띠이며, 실제로는 양띠이다.[61] 아마도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다 보니 수도방위사령관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은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의심받는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이었다.[62] 여담이지만, 안철수가 탈모 비하 발언을 했을 때 달렸던 베스트 댓글 중 하나가 ???: 뭐 이 XXX아였다[63] 파리시에서 수여하는 명예 메달 등급 중 최고등급이다.[64] 대표로 수상.[65] 2회 수상.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선출직 서울특별시장.
2012.2 민주통합당 입당.[49]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2020.7.9 임기 중 사망.[50] 당시에는 호적상으로 나이를 말해서 1956년생 동갑으로 말하였다.[51] 옆에서 대화를 듣던 노회찬 역시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그릴 만큼 농담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52] 공교롭게도 노회찬과 박원순 두 인물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53] 참고로 손석희와 최문순은 MBC 동기이기도 하다. 1984년 입사했다.[54] 이때 양상국에게 박원순이 추천해 준 책은 미생이다.[55] 현재는 폐쇄됨[56] PK-TK의 접경지대인 창녕 출신이긴 한데 박원순 본인의 정치 성향 상 PK로 분류되는 일이 훨씬 많다.[57] 이 사람 또한 서부경남 쪽인 고성군에서 태어나 진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58] 다만 성격과 시장 당선이후의 상황은 좀 다른데 박원순의 경우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는 반면 커원저는 시의회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칠 정도로 성깔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높은 지지율로 유례없는 서울특별시장 3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커원저는 낮은 지지율로 재선이 불투명하다가 0.2%P차로 겨우 이기며 매우 고전하는 중.[59]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이다.[60] 호적상 생일로 원숭이띠이며, 실제로는 양띠이다.[61] 아마도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다 보니 수도방위사령관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은 쿠데타 주도 세력으로 의심받는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이었다.[62] 여담이지만, 안철수가 탈모 비하 발언을 했을 때 달렸던 베스트 댓글 중 하나가 ???: 뭐 이 XXX아였다[63] 파리시에서 수여하는 명예 메달 등급 중 최고등급이다.[64] 대표로 수상.[65] 2회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