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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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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마이클 스콧
(1977~1981)
제2대
마이크 마쿨라
(1981~1983)
제3대
존 스컬리
(1983~1993)
제4대
마이클 스핀들러
(1993~1996)
제5대
길 아멜리오
(1996~1997)
제6대
스티브 잡스
(2000~2011)
제7대
팀 쿡
(2011~ )
창업주 · 이사회 · 이사회 의장 · 현직 경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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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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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
CEO · 이사회 · 이사회 의장 · 현직 경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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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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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마이크 마쿨라
(1977~1981)
제2대
스티브 잡스
(1981~1983)
제3대
마이크 마쿨라
(1983~1993)
제4대
존 스컬리
(1993~1996)
제5대
마이크 마쿨라
(1996~1997)
제6대
스티브 잡스
(200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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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레빈슨
(2011~ )
CEO · 창업주 · 이사회 · 현직 경영진 }}}}}}}}}

스티브 잡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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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colbgcolor=#FFF,#000>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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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s-3.3.1|그래미 어워드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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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5px"
<colbgcolor=#fff,#353535>1967년게오르그 솔티, 존 컬쇼
1968년듀크 엘링턴, 빌리 스트레이혼,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1970년로버트 무그
1971년크리스 알버트슨, 존 하몬드, 레리 힐러, 폴 웨스턴
1972년비틀즈
1977년토머스 에디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1979년고다드 리버슨, 프랭크 시나트라
1981년카운트 베이시, 에런 코플런드
1983년레스 폴
1984년버르토크 벨러
1985년엘드릿지 R. 존슨
1986년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7년해럴드 알렌, 에밀 벌리너, 제롬 컨, 조니 머서
1989년월트 디즈니, 퀸시 존스, 콜 포터
1990년딕 클라크
1991년밀트 가블러, 베리 골디, 샘 필립스
1992년토마스 A. 도시, 크리스틴 파논,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로렌즈 하트
1993년아흐메트 에르테군, 네스시 에르테군, W. C. 핸디, 조지 T. 사이먼
1994년노먼 그란츠
1995년피에르 코세트
1996년조지 마틴, 제리 웩슬러
1997년허브 앨퍼트, 제리 모스, 버트 배커랙, 핼 데이비드, 알란 제이 러너, 프레드릭 뢰베,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
1998년홀렌드-호지어-홀렌드, 프란시스 W. 프레스톤, 리처드 로저스
1999년갬블 & 허프
2000년클라이브 데이비스, 필 스펙터
2001년아리프 말딘, 필 라몬
2002년톰 다우드, 앨런 프리드
2003년알란 로막스, 뉴욕 필하모닉
2004년게리 고핀 & 캐롤 킹, 오린 키프뉴스, 마리안 멕파랜드
2005년호기 카마이클, 돈 코넬리우스, 알프레드 라이언, 빌리 테일러
2006년크리스 블랙웰, 오웬 브래들리, 알 슈미트
2007년에스텔 액스턴, 코시마 마타사, 스티븐 손드하임
2008년클라렌스 애반트, 잭 홀츠만, 윌리 미첼
2009년조지 아바키안, 엘리엇 카터, 알렌 투생
2010년해롤드 브래들리, 플로렌스 그린버그, 월터 C. 밀러
2011년알 벨, 윌마 코자트 파인, 브루스 룬드벌
2012년데이브 바솔로뮤, 스티브 잡스, 루디 반 겔더
2013년알란 버그만 & 마릴린 버그만, 레오나드 체스 & 필 체스, 알란 W. 리빙스턴
2014년엔니오 모리코네, 릭 홀, 짐 마샬
2015년베리 만 & 신시아 웨일, 리차드 페리, 조지 웨인
2016년존 케이지, 프레드 포스터, 크리스 스트레비치
2017년톰 벨, 모 오스틴, 랄프 피어
2018년빌 그레이엄, 세이무어 스테인, 존 윌리엄스
2019년루 애들러, 애쉬포드 & 심슨, 조니 멘델
2020년프랭크 버클리 워커, 켄 에를리히, 필립 글래스
2021년에드 처니, 베니 골슨, 베이비페이스
2023년헨리 딜츠, 엘리스 마살리스, 짐 스튜어트
같이 보기: 평생 공로상 수상자 · 레전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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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3><colcolor=#fff> Apple 창업주 / 제6대 CEO
스티브 잡스
Steve Jobs
파일:691.jpg
본명 스티븐 폴 잡스 (Steven Paul Jobs)
출생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사망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
캘리포니아 주 팔로 알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1], 79kg[2], O형(Rh-)
학력 리드 칼리지 (철학 / 중퇴)[3]
재산 70억 달러(2011년)
종교 불교[4]
배우자 로린 파월 잡스(1991년 결혼)
자녀 리사 브레넌 잡스(1978년 5월 17일생)[5]
리드 폴 잡스(1991년 9월 22일생)
에린 시에나 잡스(1995년 8월 19일생)
이브 잡스(1998년 7월 9일생)[6]
서명
파일:스티브 잡스 서명.svg
1. 개요2. 생애3. 위상 및 영향4. 경영 철학5. 개인사6. 어록7. 책 출판8. 대중 매체 9. 기타

[clearfix]

1. 개요

Apple, NeXT, Pixar의 공동 창업주이다. Apple의 제 2대 · 6대 이사회 의장이자 제 6대 CEO를 역임했으며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라 평가받는다.

Apple IIMacintosh의 성공을 통해 PC 시장을 개척했으며, iPhone을 통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7] 이를 통해 현재까지도 소비자 전자기기는 마우스터치스크린 방식의 인터페이스 입력 방식을 채택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방식의 선구자로 불린다.

제품 개발에 일조하고, 동시에 Apple의 광고 전략과 프레젠테이션를 지휘하면서 독특한 마케팅 전략과 PT 기술로 신제품 발표회를 성공시키며 마케팅 업계에서는 프레젠터이자 광고인으로 유명하다. 창의적인 생각과 행보로 현재의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스티브 잡스/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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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상 및 영향

파일:stay-hungry-stay-foolish.jpg
"(굶주린 것처럼) 계속 추구하고,
(미련한 것처럼) 계속 시도하라."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축사하면서
맨 마지막에 사용한 인용구. 이는 잡스가 연설에서도 언급했던
Whole Earth Catalog의 1974년 판에 쓰여있던 말이다.

잡스가 생전에 인용했던 말 중 가장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
즉 '무식하면 용감하듯이' 계속 시도해서 얻으라는 말이다.[8]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능력있는 CEO를 넘어 IT계를 주도한 인물이었고 또한 실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회사들을 뛰어난 창의력과 적극성으로 기업 가치를 크게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곤경과 실패, 그리고 몰락 역시 경험했으나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화려하게 재기했다는 점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 암이 아니었다면 그의 열정과 성취욕으로 볼 때 노년까지 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를 창조하고 자사 제품을 새로운 메인스트림의 정점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그의 탁월한 안목을 여러 번 증명하였으며 이런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마우스, GUI, 컴퓨터 그래픽스, MP3 플레이어와 App Store, 터치 스크린 핸드폰, 태블릿 PC 등은 물론 그만의 발명품이나 유물은 아니지만, 이들의 상용화와 보편화를 가속화시키고 인지도를 대폭 높이는 데에 잡스가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2007년 등장한 iPhone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쉬운 인터페이스와 파격적인 디자인은 전 세계 휴대폰 사용자들을 매료시켰고, 이후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는 새로운 기기들의 단순함과 조작의 편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적이고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여, 출시된 제품들을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또한 이미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서 단시간 내에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선구적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던 것을 보면 그의 사업 능력이 상당히 비범했음을 알 수 있다. Apple이나 자기 자신의 이미지 관리와 활용에도 능숙했으며, 20세기와 21세기의 IT시장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낭만은 없는 이야기이지만, 기업활동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해냈다. 2024년 기준 애플의 시총은 3조 달러이며, 대한민국 GDP의 약 1.7배 수준이다. 앱스토어의 2022년 경제효과만 해도 무려 1조 1천억 달러이다. 애플이 대한민국에만 창출한 일자리가 대략 32만 5천개이다.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선 많은 아쉬움과 실망감이 있으나 자신의 카리스마, 추진력, 기획력으로 혁신을 일으키고 기업을 키워내는 능력만큼은 독보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Apple은 한 명의 비전과 창의성을 함께 지녔던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Apple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 Apple 측 공식 반응.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 덕분에 진보했다.
— Apple 이사회 공식 반응.

2021년 10월 5일, 10주기를 맞이하여 Apple 홈페이지에서 그를 기리고 있다.

4. 경영 철학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유명하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발표 방식을 쓰면서 많은 발표자들의 귀감이 되고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은 다음과 같다.

5. 개인사

결론부터 미리 말해두자면 사업가 스티브 잡스는 분명 존경받아 마땅하고 훌륭한 사업가였을지 몰라도 인간 스티브 잡스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인물로,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성격 결함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척을 지기도 했다. 좋지 않은 인성[9] 때문에 한때는 잡스 소시오패스설이 진지하게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적도 많았고 때로는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실제로 잡스는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유명했고,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서적을 보면 거의 반드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걸 볼 수 있다.

따분한 IT계의 인물인 데다가 일반인들이 그다지 존경하기 쉽지 않은 기업가라는 측면에서 잡스가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것은 독특한 일이다. 이것은 그가 상류층 자제들의 결합 - 서민 가정에 입양 - 특유의 기질로 성공 - 성격과 개인의 결함으로 나락으로 추락 - 전과 다른 면모로 화려하게 부활 -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젊은 나이에 사망이라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잡스는 누구의 눈에나 띄일 정도로 대단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수학, 과학에 재능을 보이고 월반도 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도 성격이 사춘기 소년 같았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내심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서부에서 등록금이 비싸기로는 탑을 다투는 리드 칼리지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경제적 부담을 이용해서 부모를 포기시키려 한 것이다. 그래도 부모는 그를 대학에 보냈고 자신의 의도가 좌절된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잡스는 대학으로 떠나올 때 인사는커녕 부모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10] 게다가 대학교까지 부모가 자동차로 데려다줬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부모를 거부하고 캠퍼스 입구에서 돌려보낸 다음 혼자 걸어들어갔다. 결국 리드대를 1학년 1학기만 다니고 중퇴해버렸는데, 주된 이유는 부모에게 가해질 경제적 압박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신 돈과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유롭게 하고자 청강생 신분으로 리드 대학에 18개월간 더 머물러 있었다. 아무튼 대학에 입학할 때 부모에게 모질게 굴었던 것이 잡스 본인에게도 꽤나 마음의 짐이 되었는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한 인터뷰에서 이 때의 일을 본인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취업 이후엔 막장스러운 행동을 제법 했는데,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인, 그리고 애플의 핵심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타리에서 일할 적에 같이 게임용 기판을 개발했는데, 5,000달러를 보너스로 받고서도 700달러밖에 못 벌었다고 속여서 그 절반인 350달러만 워즈니악에게 건네주었던 사례가 유명하다.[11] 그나마도 잡스는 기판 제작을 잘 몰랐기 때문에 워즈니악이 일을 다했고, 4일 뒤에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타리에서 빨리 끝내라고 했다며 워즈니악에게 거짓말로 재촉한 뒤의 일이다. 워즈니악은 이를 모르고 사흘 밤낮을 독감으로 고생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우연히 아타리 측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실망했다고 한다. 절친한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이 지경이었다. 이 일은 아타리의 창업주인 놀런 부슈널도 인정한 사실인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스티브 잡스라는 책을 쓰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이 잡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잡스는 평소와 다르게 입을 다물고 머뭇거렸다가 "그런 얘기가 대체 어디서 흘러 나온 건지 모르겠어요. 늘 제가 받은 돈의 절반을 워즈에게 주었어요. 그것이 제가 워즈와 관련해서 지금까지도 지켜 오는 방식이거든요." 라고 하였다. 워즈니악은 후에 이 문제에 대해 "만약 잡스가 돈 쓸 데가 있어서 그 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면 저는 순순히 동의했을 겁니다. 친구잖아요. 서로 돕는 게 친구 아닙니까. 제게는 언제나 도덕이라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왜 그가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하지만 뭐, 사람들은 다 다르잖아요." 라고 하였다.

잡스는 애플의 얼굴마담이자 사업가이자 영업맨이었고, 워즈니악은 IT 기업인 애플의 기술을 담당하는 개발자였기에, IT 기업으로써 애플을 보자면 사실 워즈니악의 공이 애플에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결국 IT 기업의 본질은 기술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 워즈니악만 있는 애플은 덜 유행할지언정 입소문을 타고 존재할 수 있으나, 잡스만 있는 애플은 존재하기도 힘든 수준으로 비중이 갈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야욕을 위해 워즈니악의 뒤통수를 거하게 친 잡스의 일화는 그의 성격적 결함과 오점으로 남는다. 워낙 잡스가 이미지를 잘 만든 덕에 심지어 애플의 기술이 잡스의 창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수준. 반면 워즈니악은 입지나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전자 기기의 본질과 인문학에 푹 빠져 있어 남에게 날을 안 세우는 성격이라, 잡스와 대립 각을 세우는 등 고생한다.

Apple로 인해 부자가 된 이후 잡스는 이 경향이 더욱 심해져 돈많은 자아도취또라이의 행보를 보인다. 예를 들면 Apple에서 나올 당시, 옛 동거녀였던 크리스앤이 딸 리사를 데려오자 잡스는 그 딸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월 500달러씩 주는 데 그쳤다. 이때 "나는 무정자증이다."라면서 변명을 시도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이 일은 안티들에게 두고두고 까였으며, 잡스 본인도 나중에는 이 일에 관해서는 다소 쪽팔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12][13] 그런데 정작 당시 개발하고 있던 PC의 이름을 'Lisa'로 지었다. 본인도 딸 리사를 이름에 썼다고 인정했다. 딸을 싫어한 건 아니라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Lisa' 컴퓨터는 시장에서 통용되지 못했다.
파일:lisa brennan jobs.jpg
▲ 잡스의 딸 리사 브레넌 잡스. 1978년생이며,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교내 신문에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신문, 잡지에 글을 쓰는 문필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에 아버지 잡스와의 쉽지 않았던 삶 이야기를 다룬 'Small Fry'[14]라는 자서전을 써서 냈다.

잡스는 조직운영 실패를 경험하고 많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서, 딸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잡스가 리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건 1991년에 로린과 결혼한 이후(리사 10대 이후)였고, 리사를 받아들이게 된 것도 리사의 친모가 경제적으로 키울 처지가 안되자 딸(리사)만 잡스의 회사에 남기고 떠나서 그런 것이다. 비록 나중엔 딸을 키웠다고 할지라도 이런 잡스를 좋은 아버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리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분명 있었다. 이름부터 자신이 직접 붙여줬고,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중인 컴퓨터 이름을 애플 리사로 지었다. 또한, 잡스가 젊었고 리사는 유년기였을 때 두 사람이 같이 웃으면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난 아버지고 리사는 뭐가 됐든 딸"이란 식으로 복합적인 감정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리사는 잡스에 대해 좀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애초에 부녀 관계를 인정 안하고 어머니에게 모욕을 준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았겠지만 나중에 화해하고 부녀간의 관계를 회복한 이후에도 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리사는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 나중엔 잡스가 리사의 학비조차 챙겨주지 않자 납부 마감일이 가까워 온 리사는 집 근처에 살던 Macintosh 개발진 중 하나였던 앤디 허츠펠드에게 손을 벌리기까지 했다. 그런 중에 당시 옆에서 힘이 되어주던 고모이자 소설가인 모나 심슨에게 그런 사연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는데 나중에 고모가 그 얘기들을 자신의 소설의 자료로서 그대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리사는 다시 한 번 힘들어했다. 잡스도 그 내용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다.

그런 잡스도 양부모와 친모는 무척 사랑했다. 친모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지 나중에 성공한 이후에 비밀리에 사람을 고용해 찾았는데 그 사실이 양모에게 전해지지 않게 조심했다고 한다. 양모 사후에야 친모와 해후했을 정도였다. 양부에 대해서도 잡스는 늘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Apple과 NeXT에서 제품 개발을 진행할 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는 등의 양부의 철학을 많이 적용했다고 한다. 본인과 아들의 미들네임도 양부의 이름인 을 그대로 사용할 정도다. 게다가 양부모라는 표현조차 좋아하지 않았고 '1,000% 진짜 부모'라는 표현을 늘 강조했다. 계모(아버지 폴 잡스가 사별 후 재혼한 여성)인 메릴린 잡스와도 괜찮은 관계였다고 하며, 잡스 가족이 살았던 집은 계모 메릴린 잡스와 여동생인 퍼트리샤 잡스가 소유하며 현재도 거주 중이다.

하지만 친부에 대해서만큼은 지극히 냉담했다. 잡스는 친부를 만나는 걸 내켜하지 않았고 나중에 친부는 잡스가 자신의 친자인 것을 알고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잡스는 냉담하게 거부했다. 그 사람은 정자 은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 이 친부는 시리아 이민자 출신이었는데 잡스의 친모 쪽 가정의 반대에도 그녀와 연애를 했으나 이후로 그녀와 헤어지면서 갓 태어난 잡스 역시 버렸다. 친모의 경우엔 그래도 대학에 보내줄 만한 입양 가정을 물색하는 등 자신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리움이 있었던 듯하나 친부의 경우 자신을 버린 데다 이후로도 찾지 않았단 점 때문에 악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잡스는 평생 동안 친부를 찾지 않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둘이 이미 구면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잡스는 Apple에서 성공한 이후 회사 근처에서 가끔 찾던 식당의 홀 매니저가 사실은 친부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경악했다고 한다. 당시에 친부는 잡스가 식당에 오면 유명인이 왔다고 좋아하고 잡스도 그런 대접이 나쁘지 않아 팁을 듬뿍 주던 지인 사이였다고 한다.

'또라이 제로 조직'이라는 책에 따르면 잡스는 같이 일하기에는 괴로운 상사였다고 회자된다. 그의 밑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잡스는 확실히 일은 훌륭히 해내지만 이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한테 자신의 뜻이 잘 전달이 안 되거나 자신의 뜻대로 일처리를 못했을 때 심하게 화를 내는 부류의 상사라고 한다. 일례로 Apple사에서 배달 운반용 차를 대량 구입했는데 이 차의 색상이 Apple사 건물의 색상과 잘 매치되는 흰색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가 떼를 쓰는 바람에 회사가 상당한 금액을 다시 들여 차의 색상을 모조리 그가 원하는 대로 바꿔주었다고 한다. 픽사 인수 직후의 사례도 유명한데 직원들을 통보도 퇴직금도 없이 대량 해고시켰고, 갑작스러운 해고는 곤란하니 2주의 유예 기간을 주는 게 어떻냐고 픽사 실무진이 말리자 그럼 2주 전에 통보했다고 생각하라며 무시했다. 대신 부하 직원들에게 자신이 타던 차, 고급 시계 등을 보상으로 주었으나, 상식적으로 적절한 해고방식이 아니었음은 명확하다. 애초에 해고한 모든 인원들에게 저런식으로 보상을 줄수 있을리도 없고, 잡스는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겐 특별한 대우를 해줬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발언권도 잘 주지 않았고 '너는 그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며 퇴직금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예시로, 해당 동영상의 인물은 잡스에게 5번 해고당했는데. 처음 해고할시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다 해당 직원이 직무상 알고있는 경제지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퍼트리겠다고 하니까 이를 무마하려고 해고 결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물론 동영상 제목에서 보듯 본인은 그럼에도 잡스와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지만, 퇴직금을 떼먹힌 모든 직원들이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것이다.

암에 걸렸을 당시에도 환자용 마스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쓰기를 거부하다 아내 로린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렸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도 자신이 주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하려고 했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는 프레젠테이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하 직원을 향해 "넌 내 시간을 낭비할 뿐이야!"라고 일갈을 날렸다고.

이런 잡스의 막장 행보에 관해서는 윌리엄 사이먼 저 'iCon' 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워낙 신랄하게 비판한 터라, 기껏 공룡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와 대립각을 세우며 '정의로운' 이미지를 구축했던 잡스로서는 대단히 화나는 일이었는지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잡지를 맥스토어에서 다 치워버렸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관계는 애플 창립 직전부터 워즈니악을 이용한 일이 있었기에 사이가 멀어졌는데, 애플 2의 설계에도 둘은 포트 수를 두고 대립했고 나중에 워즈니악이 회사를 떠나면서 소원해진다. 아직 잡스가 Apple로 돌아오기 전 워즈니악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잡스에 대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잡스는 워즈니악이 Apple의 주식을 부인이나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극구 말렸다고 한다. Apple은 창업주의 것이 아니라 주주의 것이고, 주식이 없으면 Apple에게 워즈니악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물욕이 별로 없고 베풀어주기 좋아하는[15] 워즈니악은 잡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나눠주었고, Apple의 주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팔아 써버렸다. 심지어 워즈니악을 호구나 멍청한 아저씨 취급하며 무시했다. 워즈니악과 잡스의 관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 폰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그 선봉에 서있는 HTC에게 Multi-Touch 지적 재산권 분쟁도 걸었다. 2011년 7월 판결에서는 HTC의 손을 들어주어 역관광#이 되나 싶었으나 동년 11월 22일 판결에서는 다시 뒤집혀서 Apple의 완승으로 끝났다.

예전 유닉스의 그래픽 UI 등에도 지적 재산권으로 분쟁을 걸려 했지만 측에서 '님들 Mac OS 기본은 우리 유닉스에서 따왔다[16]'라는 내용으로 더 이상 분쟁하지 않았다.

외국 사이트 등을 둘러보면 소시오패스가 성공한 훌륭한 예라고 써있기도 한데 이 사람은 행동 양식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긴 했지만 정확한 진단은 받지 않아서 함부로 취급하긴 그렇다. 아직 소시오패스라는 병명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잡스의 뒤통수치기 행각에 대해서 정리한 글이 있다.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만 담아놓은 이야기로, 잡스의 행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1991년 잡스는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대통령 수출 위원회에 영입이 거론되고 있었다. 때문에 인사 검증 목적으로 FBI가 잡스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FBI와의 인터뷰에서 잡스를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은 잡스에 대해 조용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인물로 칭한 뒤 자신의 집 조경 공사 때는 우리집에 찾아와 공사 때문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인들은 Apple의 성공 이후 그는 때때로 이성을 잃어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는 등의 혹평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Apple의 성공이란 복귀 후를 말하는것이 아니고 젊을 때의 첫 번째 성공을 말한다. 이 당시는 NeXT 사장 시절. 결국 스티브 잡스는 결격 사유 없음으로 결론이 나서 대통령 수출 위원회의 위원으로 공직에 봉사했다.

이 시기에 황야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성이 변화하였는데, 그 과도기적 사건이 바로 광포해서 픽사의 창립 멤버 중 하나이자 부사장이었던 앨비 스미스의 이름을 아예 픽사의 기록에서 말살한 사건이다. 애초부터 그는 그냥 잡스와 안 맞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잡스와 열렬한 회의나 논의를 하다보면 항상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고 서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할 정도로 맹렬히 싸웠다. 그래도 스미스는 하고 싶은 소리를 다했고, 잡스도 스미스와 싸우면서도 스미스를 인정하고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다 마지막 싸움에서 잡스는 스미스의 흉내를 내며 조롱했고, 스미스는 절대로 타인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룰이 있었던 잡스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마구 글을 썼다. 이 싸움 이후 앨비 스미스는 사표를 냈고, 잡스는 사과하면서 회사에 남아달라고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 스미스가 퇴사한 이후 그의 이름은 픽사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이성적인 일에 이성을 잃고 광포한 것은 예전 잡스의 모습이지만 애초에 자신에게 대놓고 대립하는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서 내쫗지 않고 그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싸움 후에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이전의 잡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본래 능력 있는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지만 그 불같고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못 버티고 떠났다. NeXT의 1992년에서 93년간의 1년 동안 부사장급 9명 중 7명이 떠났을 정도. 하지만 이 시기에 인생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잡스의 성격은 변화를 겪는다. 이때의 변화에 대해서는 뉴욕 타임스의 "스티브 잡스가 황야에서 배운 것" #이라는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잡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자신이 지시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에 집착했고 휘하 직원이 뭐라고 조언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잡스는 드디어 부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이전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오로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잡스를 띄우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고 오로지 잡스를 위한 쇼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 이런 모습은 없어지고 각 부분의 담당자들이 자기 파트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pple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의 조너선 아이브, 관리의 팀 쿡, 소프트웨어의 크레이그 페더리기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고,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협상의 에디 큐, 마케팅의 필 실러, 하드웨어의 밥 맨스필드라는 Apple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알고있을 것이다. 이전의 잡스라면 이런 인물들의 건의는 다 묵살하고 자기 멋대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고, 잘된 모든 공은 자기가 차지했을 것이다. 또한 잡스의 독차지 때문에 사람들은 실무진들의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다.

고난을 통해 인간성의 결함이 다듬어진 잡스에게 드디어 능력 있는 인물들을 붙잡아 두고 조화시키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또 한 가지 변한 점은, 이전의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인재를 집어내고 그에게 임무를 맡기기는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동안 사사건건 간섭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는데, 고난을 겪고 복귀한 이후에는 "믿지 못하겠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겼으면 믿으라."는 경구에 충실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복귀한 이후 나중에 iMac이 되는 Apple의 컴퓨터 라인업인 프로젝트 C1의 마케팅을 잡스가 마케팅 전문 회사에 일을 맡겼는데, 이들이 iMac이라는 이름을 뽑아낸 뒤에 잡스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잡스는 Apple에서 C1에 멋진 제품명을 지었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잡스가 보여준 이름은 필 쉴러가 지은 MacMan. 시걸은 잡스에게 MacMan은 소니 제품의 뉘앙스와 여러 가지 이유로 좋지 않다고 말하자 잡스 자신은 MacMan이 맘에 든다며 고집을 부렸다. 최종적으로 iMac으로 결정하기 전까진 고집을 꺾지 않았으나 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꺾은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일화

잡스는 이들에게 MacMan이 Apple의 마케팅 부사장 필 실러의 아이디어라고 밝혀주었다. C1 마케팅을 맡은 마케팅 전문회사의 켄 시걸은 MacMan은 부적합하다 iMac이 낫다고 말했지만 잡스는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 다음 미팅까지 MacMan을 능가하는 다른 이름을 지어오지 않으면 MacMan으로 하겠다고 한다. 두 번째 미팅에서 잡스는 새로 마케팅 회사가 뽑아온 이름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전히 MacMan이 좋다고 하자 켄 시걸은 다시 iMac을 제안했다. 잡스는 iMac이란 이름이 싫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며 MacMan이 낫다고 말한다. 두 번째 미팅 다음 날 잡스는 iMac으로 결정하자고 한다. 나중에 Apple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잡스는 iMac이라는 이름이 어떤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고, 실제로 실크스크린으로 iMac을 C1에 프린트해서 한동안 들여다 보기도 한 뒤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써 iDevice가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의 고집불통 잡스였다면 스스로 뽑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MacMan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고, iPod은 PodMan, iPhone은 PhoneMan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황야에서 고행을 마치고 돌아온 잡스는 비록 그 못된 버릇을 완전하지는 못해도 얼마나마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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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 면접자에게 대놓고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성격에 문제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일련의 사건을 겪긴 했지만 그렇다고 인격문제를 많이 고친 건 아니어서 이후로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 자신의 차량이 도둑에게 털린 경험을 겪고 죽기 직전까지 항상 자신의 차량이 잘 보이는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대곤 했으며, 차에는 번호판도 안 달고 다녔다. 이유는 번호판을 달면 차 디자인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핑계고 단지 회사 바로 입구 장애인 주차공간에 자기 차를 대기 위해서 번호판을 안 단 것이 맞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법적으로 차 구입 후 6개월 안에 번호판을 달아야 하는데 그걸 싫어해서 6개월마다 같은 차인 메르세데스-벤츠 SL 55 AMG를 새로 리스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성격 때문에 잃은 것에는 그 자신의 목숨도 포함된다. 고집을 좀 꺾었다고는 해도 그는 암을 치료하자는 의사들의 말을 처음엔 무시하고 몇 달간 대체의학을 고집하는 바보짓을 벌였다. 마음을 고쳐먹고 늦게 치료를 받았지만 이미 늦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췌장암이 치료가 어렵기는 했으나 비교적 일찍 발견했고 췌장암 중에서도 치료율이 굉장히 높은(1기때 제거시 5년 생존율 75퍼센트) 종류(islet cell neuroendocrine tumor)여서 제대로 치료했더라면 생존했을 가능성이 꽤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병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간성 문제를 Apple의 약점으로 잡고, Apple의 라이벌 소니의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잡스가 사망하자 얼마 뒤, 제작 중이었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에 스티브 잡스를 대놓고 조롱하는 요소를 많이 박아넣었다. 영화를 보면 잡스의 흑역사이자 부정적인 면인 인간성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부정적인 면만 객관적으로 비판하는건 오히려 호평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 영화에 나온 요소들의 대부분은 유언비어이며 근거가 없다. 심지어 객관적이지 못하고 Apple을 향한 소니의 질투심이 드러날 정도로 풍자가 주관적이며, 아예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Apple을 빌런 집단으로 묘사한 점에 대하여 비판받았다. 또한 애플과 잡스의 긍정적인 평가와 업적까지도 모두 부정적이고 편향적으로 묘사한 건 비판받아도 마땅한 요소다.

6. 어록

Think Different
Apple의 슬로건이자 스티브 잡스를 상징하는 말. 본인을 상징하긴 하지만 잡스가 처음 생각한 말은 아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며, 항상 우직하게.[17][18]
이 역시 잡스 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말이지만, 잡스가 만든 말은 아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인용한 말로 『지구백과』를 만든 스튜어트 브랜든과 스태프들이 최종판을 내면서 맨 뒤에 적은 일종의 독자와의 작별인사이다. 어린 시절 이 책을 계속 읽어왔고, 최종판이 나온 대학 시절에 이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One more thing..."
한 가지만 더...
"포커스 그룹(Focus Group)을 통해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직접 물건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19]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Think Different》광고 中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창의성이란 단지 어떤 것들을 서로 잇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해냈냐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 조금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 정말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보았을 뿐이고 그것은 얼마 후 그들에게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아티스트는 베끼고 위대한 아티스트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20]
컴퓨터 시장 내에서 Apple의 점유율은 BMW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가 자동차 시장 내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보다도 더 높다. BMW나 벤츠가 되려고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건가?[21]
나는 지금껏 Apple이 이쪽(컴퓨터) 업계의 소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오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Apple은 이 업계의 Apple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2]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7. 책 출판

사망 직후 전 세계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던 공식 전기가 출간되었다. 책 자체는 2011년 11월 21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잡스 본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집필 속도에 불이 붙음에 따라 한 달이나 이른 2011년 10월 25일 전 세계에 동시에 출간됐다. 제목은 Steve Jobs.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 잡스 자신과 가족,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을 얻었다고. 출판도 안 된 상황에서 국내외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결국 출간 하루 만에 가뿐히 1만 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저자 아이작슨은 책의 서문에서 잡스의 전기를 집필하게 된 연유를 밝혔다. 잡스와 친분이 있었지만 그렇게 허물없이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내 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다소 의아했었고, "당신은 아직 살 날이 많고, 때문에 혁신을 거듭하는 당신의 인생이 아직 더 남아있을 것이므로 전기를 쓸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두 번이나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잡스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은 채 홀로 암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겠구나' 싶은 충격과 안타까움에 집필 요청을 수락, 곧바로 기록과 저술에 착수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전기에 관해 "내가 마음에 안 들어할 법한 이야기도 들어있겠지요?"라고 물었는데, 아이작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알겠습니다. 열받고 싶지 않으니 지금은 읽지 않겠습니다. 한 1년쯤 뒤에 읽어보죠 뭐.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다면요."라고 답했다. 이 때는 이미 자신이 췌장암 투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였기에 씁쓸한 농담을 던진 것. 안타깝게도 잡스는 이 말을 한 지 두 달 좀 안 된 시점에 세상을 떠났고, 자신의 전기를 읽어보겠다는 말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아이작슨에 의하면, 아직 미공개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 등 Apple의 전략 사정으로 올리지 못한 내용이 많으며, 이는 나중에 재발간으로 보태겠다고 밝혔다.[23] 이 내용 중에 계속 떡밥이 나오는 새로운 TV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은근 많다.

전기로서 상당부분 중립적으로 서술되었다. 잡스가 앱스토어를 반대한 사실도 쓰여져 있으며, 발간 초기 곽재식은 잡스에 대해서는 안 좋은 면을 가감 없이 적었고 오히려 워즈니악을 멋진 시람으로 표현했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2015년 iPad Pro의 발매로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러스 혐오가 주목받자 일부 극성 Apple 팬들이 "잡스의 스타일러스 발언은 iPad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공식 전기에는 잡스가 태블릿에 스타일러스를 넣는 것을 혐오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다.

그리고 현 CEO 팀 쿡은 Apple Pencil이 스타일러스가 아니라 펜슬, 즉 연필이라고 반박했다. 분명 iPad Pro에 펜슬을 쓰는 모습을 보면 잡스도 기뻐할 거라고 한다.
잡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태블릿 PC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그래서 노트북 컴퓨터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니 Apple은 자신이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에 대해 라이선스를 얻어야 한다고 계속 나를 괴롭혔지요. 하지만 그의 기기는 완전히 잘못된 방식을 쓰고 있었어요. 스타일러스가 딸려 있었거든요. 스타일러스가 있으면 끝이에요. 그날 저녁 그 사람은 나한테 그 얘기를 열 번쯤 했을 겁니다. 나는 지긋지긋해져서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했지요. "웃기고 있네. 진짜 태블릿이 어떤 건지 보여주지." 다음 날 잡스는 회사에 출근해 자신의 팀을 모아 놓고 말했다. "태블릿 컴퓨터를 만듭시다. 단, 키보드나 스타일러스가 딸려 있어선 안 됩니다."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해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출처: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2011. 738p
2002년 잡스는 자신이 개발한 태블릿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것은 스타일러스나 펜을 써서 스크린에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그 해에 몇몇 제조업자들이 그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태블릿 PC를 출시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우주에 흔적을 남기진 못했다. 잡스는 PC의 올바른 표본을(스타일러스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출처: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민음사, 2011. 773p

8. 대중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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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는 두 편이 존재한다. 애쉬튼 커쳐가 주연한 《잡스》는 조슈아 마이클 슈턴이라는 주로 인디 영화를 찍었던 경력의 감독이 찍은 영화며, 전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2002년까지의 이야기만 다룬다. 처음에는 독립 영화였으나 커처의 젊은 시절 잡스와의 높은 싱크로율 덕분인지 Apple사에서도 간간히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한국에서는 2013년 8월 29일에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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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별개로 할리우드의 명망 있는 각본가인 에런 소킨이 각본을 쓰고, 대니 보일이 감독을 맡게 된 마이클 패스밴더의 주연 영화 유니버설 픽처스의 《스티브 잡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야말로 스티브 잡스 전기에 기반한 영화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문을 맡고 있는 어떻게 보면 진정한 잡스의 전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잡스 역에 확정된 배우는 크리스찬 베일이었는데, 얼마 안 돼 베일이 하차하고 마이클 패스벤더가 잡스 역을 맡아 2015년 초에 촬영에 들어갔다. 역시 캐스팅 문제와 이로 인한 제작 지연에 계속 시달린 소니도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이어 유니버설 픽처스가 배급을 맡기로 결정했다. 북미에서 2015년 10월 9일에 개봉했다. 북미에서 로스앤젤레스뉴욕에 있는 단 4개의 극장에서만 개봉했는데 한 개관당 평균 13만 381달러를 벌어들이며 주말 3일 동안 52만 1522달러를 벌었는데 박스오피스 16위로 데뷔하며 심상치 않은 대박의 기운을 풍겼다. 한국에서는 2016년 1월에 개봉. 이야기는 1998년 첫 iMac까지의 세 가지 제품 발표를 중심으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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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작 《실리콘밸리의 해적들》(Pirates of Silicon Valley)은 Apple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탄생,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갈등을 다룬 TV 영화로, TV 영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양측에 대한 균형적인 묘사와 고증으로 호평받았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Windows 발표 이후 잡스와 게이츠의 말싸움은 스티브 잡스 전기에도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일화. 잡스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라 잡스는 이 영화를 매우 싫어했지만, 반면 스티브 잡스 역을 맡았던 노아 와일의 연기는 좋아했고, 이후 와일은 Apple의 키노트에 참여해서 잡스 대신 키노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워즈니악은 잡스와 다르게 "영화가 매우 정확하다"며 레딧의 IAMA와 자신의 사이트에서 영화에 대해 언급했고, 크게 호평했다. 다만 의외로 거의 도플갱어에 가까운 게이츠, 잡스, 폴 앨런, 스티브 발머와는 달리 워즈니악은 싱크로율이 그리 좋지는 않다. 실제 워즈니악은 매우 듬직하고 남성적이고 강한 인상인데 작중에 출연하는 워즈니악은 다소 부드럽고 샤프한 이미지이며 모발과 수염색도 달라 워즈라고 언급하지 않으면 딱 봐서는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문명 5 확장팩 신과 왕에서는 위인 계열 유닛으로 나오는데, 위대한 상인이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는 항상 강매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호머 심슨은 물론이고, 리사 심슨과 신도 쩔쩔 맨다. 하지만 바트 심슨은 오히려 이를 악용해서 앱등이들과 잡스를 엿먹였다.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선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iPad의 후속작으로 인간지네 iPad, 이른바 HUMANCENTiPad[24]를 개발한다. 사진 카일 브로플로브스키가 iTunes 업데이트 약관을 읽지 않고 동의했기 때문에[25] Apple에 납치되어 iPad로 일본인 남성과 미국인 여성과 하나가 되는 인체 개조를 당한다. 그리고 이 제품은 이놈의 것이 되고 만다.그러나 카일의 아버지인 제럴드가 앱등이가 되는 조건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잡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품 공개 한 시간 만에 분리 수술을 해준다. 이때 잡스가 카일에게 '당분간 일식은 싫어하겠구나' 라며 개드립을 친다. 그리고 전부터 iPad에 목말랐던 카트먼은 폭발하여 하늘을 향해 신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다가 벼락 맞고 병원에서 울부짖는다.

드라마 《닥터후》에서는 사후세계 네더스피어에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저승인데 iPad가 있냐고 묻자 스티브 잡스도 여기 있는데 뭐 이상할 게 있냐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만화 《세인트 영멘》에서는 천국에 온 후로 영혼 입국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뜯어고쳐놔서 접수 담당인 12제자들이 여러 가지로 한가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에 패러디된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체스터 V. 스티브 잡스같이 혁신적인 위대한 발명가다. 소니 픽처스에서 만든 것이라서 처음에는 Apple에서도 호평을 하고 기대를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이제보니 악질 빌런으로 등장하였으며[26], 이를 알아챈 Apple 또한 분노하여 Apple과 소니의 사이가 잠깐 나빠졌다. 그리고 Apple의 팬들 또한 소니에 반감을 가지고 이로 인하여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의 평가도 까이게 된다.

코미디빅리그에서 김인석이 스티브 잡스를 패러디한 인물을 2개의 코너에서 선보였다. 황천길 닷컴 코너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여 황천길로 가는데 다른 등장인물들이 삼성전자의 제품을 소유했거나 삼성동을 언급하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명사특강 코너에서 다시 선보이는데 이름을 살짝 바꾼 스티브 잡수가 되었다. 소개멘트는 '날 잡아 잡수, 스티브 잡수입니다.'로 시작하며 혁신이랍시고 아이 메주 화이트를 만드는 등 휴대폰 사업을 접는다며 희한한 아이템을 소개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고인드립의 소지 때문에 좋은 반응은 없었고 두 코너에서 모두 금방 새로운 캐릭터를 들고 나왔다.

한국 JTBC의 예능 잡스의 모티브가 되었다. MC들이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를 한다.

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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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 '비커밍 스티브 잡스'에도 쓰여 있다.[2] 말년엔 췌장암으로 59kg까지 줄었다.[3] 인문, 심리 과목등 1학년 1학기 수업만 듣고 중퇴했다. 자서전에 대학을 중퇴한것을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쓰고 있다. 자유로운 공부를 할 수 없고 정해진 과목을 맞춰 들어야 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비싼 등록금 내주신 부모님께 미안해서 중퇴.[4] 일본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승려를 만나서 믿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불교 센터 건립에도 돈을 지원하는 등 불교계에서도 자주 활동했다. 장례도 불교식으로 치렀다.[5]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6] 커머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7] 대내외적으로 현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최초로 발명했고 그러한 개념과 시스템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는 하는데 실직적으로 잡스 혼자서 유일하게 이것을 온전히 발명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잡스가 아이폰 개발을 지휘하여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크게 일조한 인물인 것은 맞다.[8] 월터 아이작슨의 저작 "스티브 잡스"의 108p에는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라고 번역되어 있다.[9] 해고된 인물 중 잡스에 대해 회고하기를 잡스는 자신과 일했던 모든 사람에게 화를 냈다. 빠르거나 정확하게 하거나 등의 일처리를 못 하면 신경질을 냈고 종이 다발 같이 물건을 직원에게 던지는 건 물론 욕을 했다고 하며 심할때는 옷차림을 지적했다고 한다.[10] 미국에서는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은 동등한 관계에서도 모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동양계 유학생들은 오해를 사는 경우가 꽤 많다. 정반대로 어른이랑 대화할 때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것이 오히려 무례로 여겨지는 문화적 차이 때문. 이 때문에 미국 등 서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쪽 방식으로 가치관과 습관이 형성된 귀국자녀들이 귀국한 뒤 고국에서 오해를 사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11] 그리고 나머지 4,650달러는 당연히 잡스가 혼자 꿀꺽했다.[12] 이때를 두고 잡스는 인생에서 후회하는 일 중 하나이며, 그때 그렇게 하면 안 됐다고 나중에 인정했다. 그러나 당시에 회고하기를 자극적인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과, 과거 자신의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 자신이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 등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 이러한 미련한 선택을 했다고.[13] 그러나 리사의 어머니는 기자한테 잡스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이르고 잡스에게 돈을 달라고 때쓰기도 했고, 각종 시연회와 공연을 할 때마다 잡스를 찾아가서 '돈을 안 주면...' 이라는 식으로 횡포를 놓기도 했다. 게다가 월별로 붙여준 돈 말고도 상당 수의 돈을 가져갔는데, 그녀는 받은 돈을 이상한 데 썼고 나중에 잡스가 사준 집 마저 팔아치워버렸다. 게다가 이것은 리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었다.[14] 사전적 의미는 '갓난 물고기, 치어'. '하찮은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15] 그렇다고 해서 워즈니악이 무일푼이 된 것은 절대 아니고, 평생 놀고 먹어도 될 정도의 재산은 있다. 그가 사는 집부터가 시가 100억이 넘는다.[16] 구 Mac OS가 아닌 Mac OS X부터는 유닉스 기반인 NeXT STEP을 옮겨온 거라 유닉스 기반이다.[17] 'foolish'의 표면적인 의미는 '바보 같은'이지만, 이 문장에서 실제 의미는 바보처럼 일관성 있게 무언가를 추구하라는 의미이므로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는 의미의 우리말 '우직하다'가 유사한 해석이 되겠다. 우직하다는 어리석게 보일 정도로 변함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많이 쓰는 긍정적인 표현이다.[18] 혹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말하는 공 사상, 그리고 더닝 크루거 효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자신이 'foolish'한 상태임을 인지하고, 지식 및 세상의 만물에 대해 'hungry'한 마인드를 가진다면, 자아의 발달과 지식과 생각의 성숙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배부른 자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9] 출처[20] 잡스가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피카소가 저 말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실제로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집 중 하나에 적힌 표현이라고도 한다.[21] 출처[22] 1998년, 1세대 iMac의 출시를 앞두고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재밌는 점은 이보다 나중에 이루어진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는 "Apple을 컴퓨터 업계의 소니로 만드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라고 말하며 앞의 발언과 다소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한편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20세기의 소니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재의 SCE를 보면 여전히 Apple과 상당히 유사한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23] 실제로 전기에는 출간 당시 아직 발표하지 않은 iPad 교과서에 관한 언급이 한 문단 정도 넌지시 있었다.[24] Human(인간)+Centipede(지네)+iPad.[25] 약관 중간에 변형 수술에 동의하냐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대로 동의해 버렸다.[26] 배신, 사기, 살인 등 정상적인 인간 뿐만 아니라 웬만한 다른 악당들도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밥 먹듯이 당연히 하고 조커같이 광기 속성도 지니고 있다.[27] 워즈니악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28] 실제로 잡스와 정상적인 대화를 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보자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CEO가 되고 부담감 때문인지, 자신의 목표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29] David Browne, "Joan Baez’s Fighting Side: The Life and Times of a Secret Badass", 「롤링 스톤」, 2017.4.5., 2022년 12월 9일 확인[30] 참고로 잡스는 시연회에서 헤일로를 소개하면서 매킨토시에서 가장 위대한 게임이 될 것이라면서 호언장담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선수를 치고 엑스박스 전용으로 발매하겠다고 한 바람에 잡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31] 스컬리가 해외 출장을 준비하는 동안 잡스가 중역들을 모아 스컬리를 쫓아내려다 걸려서 결국 여기에 빡돈 스컬리가 임원 투표를 행했는데, 아무도 잡스 편을 안들어줘서 잡스가 쫒겨났다.[32] 때문에 문명 5에서 위인으로 등장하는 잡스는 위대한 기술자가 아니고 위대한 상인으로 등장한다.[33] 993 모델의 직전 모델로, 국내에 처음 993이 들어왔을 땐 993이 잡스의 신발이라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992가 잡스의 신발이었다고 한다. 992 모델은 몇 년 동안 판매 소식이 없다가, 2020년 초 4월 즈음 재판됐다. 992 모델이 나온 2006년 이전까지는 그 전 모델인 991을 애용한 듯 하며, 991을 신은 사진들도 여럿 남아 있다.[34] 2022년 8월 5일 88세의 나이로 별세.[35] 참고로 이 옷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공식 전기에 따르면 잡스가 협력 관계에 있는 일본 소니의 공장을 방문했다가 회장인 모리타 아키오를 포함한 전직원들이 전용 유니폼을 차려입은 게 멋있게 보여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소니 쪽 관계자에게 물어서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인 미야케 이세이에게 의뢰하여 유니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들은 잡스는 즉시 그에게 전화를 넣어 Apple 직원용 유니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나중에 미야케가 보내준 견본 중 잡스가 선택한 게 검은 터틀넥이었다. 참고로 미국의 세인트 크로의 제품이라는 것은 그 회사의 언플로 밝혀졌다. 게다가 이 터틀넥을 Apple 직원들에게 소개했더니 야유만 엄청 먹어서 직원용 유니폼으로 쓰려는 생각은 접었고, 자신의 전용 유니폼으로 쓰면 되겠지 하고 몇 벌만 주문했는데, 미야케가 100벌 넘게 보내줘서 반품하거나 버릴 수 없어 그냥 집 옷장에 쌓아뒀다가 맨날 입게 되었다고 한다.[36] 어글리 슈즈 열풍에 잡스가 신었다는 명성까지 겹쳐 992 신발 한켤레만 해도 원가 259,000원인데 2023년 기준으로 리셀가가 50~6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37] 이러한 점 때문에 Apple 이사회는 잡스를 위험 요소로 여기고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잡스가 스스로 존 스컬리를 데려와 주시는 바람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8] 근데 그 당시 매킨토시는 호환 기종도 없었을 뿐더러 2,000-3,000달러나 되는 물건이고 국내에서는 더 비싸게 팔아서 개인용으로 사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80년대 중반에 국내에 많이 팔린 8bit 컴퓨터 가격이 대략 30-50만원 선인데 매킨토시 플러스는 2천달러 대이니. apple ii 호환 기종이면 모를까 그 당시 매킨토시는 잡지에 나오지만 살 수 없는 그런 물건으로 보는게 80년대 현실에 가깝다.[39] 물론 길이 이를 알고 스티브나 스티븐이나 같다는 걸 알고 말한 것은 아니다. 알았으면 바로 반박했을 것이다.[40] 단, Steven은 미국 내에서 발음이 여러 가지가 아닌 데 비해, Stephen은 발음이 여러 가지라서 짓는 사람에 따라 갈린다. 워즈니악은 스티븐 워즈니악이 맞지만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는 같은 Stephen인데, ph를 f발음으로 읽는다.[41] 삼성 애플 소송전이 일어나면서 두 관계는 끊겼지만, 소송을 하기 전에 부품 공급을 담당하던 팀 쿡이 "더 이상 삼성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라."는 충고를 잡스에게 한 적도 있을 정도다.[42] 윈도우와 매킨토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의 UI를 썼지만, 매킨토시가 아이콘을 클릭하는 GUI를 사용하여 컴퓨터계의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애플도 마냥 MS에게 베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게, PARC에서 처음 구현한 GUI를 스티브 잡스가 보고나서 깊은 감명을 받아 매킨토시에도 GUI를 사용한 것이다.[43] 빌 게이츠의 자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터뷰가 인용되고 있지만, 그 인터뷰 역시 시장에서 아이폰이 사실상 유일한 스마트폰이던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미 장기간 소송전을 벌여 서로 사이가 좋을 리 없는 업계 라이벌이 만든 제품을 집에서 사용하느냐고 물어본 것이라, 자녀 스마트기기의 일반적 금지가 정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레퍼런스로 쓰기에는 부적절하다.[44] 심지어 첫째와 둘째는 아이패드 출시 당시 이미 성인이었다.[45] 그나마 피처폰이 시장에 남아 있던 인터뷰 당시와 달리, 2020년대에는 스마트폰 아닌 휴대전화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안 준다는 건 전화기 자체를 안 준다는 것이고, 자녀와의 연락도 함께 포기하는 것이 된다. 학원은 당연히 안 보내야 하고, 매일 아침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하교시간 딱 맞춰서 차를 대기하는 경우이거나, 전교생에게 스쿨버스를 제공하는 특별한 학교이거나, 학교 바로 옆에 집이 있어서 등하교 시간이 극히 짧은 학생 외에는 달성 자체가 불가능하다.[46] 실제로 개발자 스타일은 아니었고 엔지니어로써도 그저 그랬다.[47] 법적공방으로 가면 애플이라는 기업의 규모와 제소자가 자신이 이정도 받을만한 실적을 정리해서 제출해 법정에서 공방을 펼치면 본인 또한 힘들어지니까 그냥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