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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21:28:07

2010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연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203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2010년
대한민국 92년
단기 4343년
불기 2554년
간지 기축년 ~ 경인
주체 99년
대만 민국 99년
일본 헤이세이 22년
(황기 2670년)
이슬람력 1431년 ~ 1432년
히브리력 5770년 ~ 5771년
페르시아력 1388년 ~ 1389년
에티오피아력 2002년 ~ 2003년
인류세력 12010년
1. 개요2. 설명
2.1. e-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한 해2.2. 싸이월드의 마지막 전성기와 트위터, 페이스북의 등장2.3. 한일 간 애니메이션 동시 방영 시대의 개막2.4. 남아공 월드컵 개최2.5. 경색된 남북관계2.6. 기후
3. 사건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사망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데뷔
6.1. 가수6.2. 스포츠6.3. 프로레슬링6.4. 만화계6.5. 예능인6.6. 인터넷 방송6.7. 기타리스트
7. 재결성
7.1. 가수
8. 은퇴
8.1. E-Sports8.2. 야구8.3. 프로레슬러8.4. 농구
9. 출시 상품
9.1. 자동차9.2. 식음료9.3. 게임
10. 히트작
10.1. 드라마10.2. 영화10.3. 애니메이션10.4. 특촬10.5. 가요10.6. 개그 코너
11. 최초
11.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
12. 유행어/밈13. 달력14. 인구15. 관련 문헌

1. 개요

2010년은 21세기와 3천년기의 열번째 해이자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2010년대의 첫번째 해다.

2. 설명

장두노미(藏頭露尾) -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
-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2010년 서울의 모습
한국 스포츠의 전성기였던 연도이며 스마트폰이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1][2] 위의 영상을 보면 거리풍경이 아직 2000년대와 동일하다.

남북관계는 그냥 1968년의 재현이다.[3] 3월의 천안함 피격 사건부터 시작해서 11월의 연평도 포격전한국 전쟁 휴전 이후 57년 만에 최초로 북한군이 한국 영토에 포격을 가하여 그로 인해 사망자, 전사자가 나온 사례였다. 그 정도로 남북관계가 휴전 이후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의미했다.[4]

스포츠 방면으로는 한국이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이변을 일으켰던 한 해이기도 했다. 동계올림픽에서는 그동안 쇼트트랙 위주에서 벗어나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등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영광을 얻었고 월드컵에서는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대회는 남북한이 동시에 출전한 유일한 월드컵이기도 했다.

여담 중 공휴일과 관련해서는 달력의 저주가 이전 해에 격심했다고 하지만 이 해도 역시 다르지 않았고 전년과 비슷했다. 설날 당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일요일, 설날 하루 전날, 크리스마스이듬해 신정토요일에 끼면서 14일 연휴 중 엿새가 날아갔다. 추석을 마지막으로 2010년의 평일 휴일은 없었다.[5] 이러한 일은 2004년 이후로 6년 만의 똑같은 일이다.[6][7] 다행히도 부처님 오신 날은 금요일이었고, 추석이 수요일인 덕분에 최장 9일 연휴[8]가 생겼다.[9] 더불어 이 해는 커플들에게도 지옥의 한 해였는데, 발렌타인 데이는 일요일이었던데다 설날과 겹치고, 화이트 데이발렌타인 데이 처럼 일요일이고, 크리스마스는 토요일이었다. 여담으로 3.1절이 월요일이면 휴일이 매우 적으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지옥의 달력이 된다.[10] 이 때에 대체 휴일 제도가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11] 이 해의 똑같은 형태의 다음 사례의 달력으로는 2021년이 있다.[12][13] 그리고 3.1절이 일요일인 해(2015년, 2020년 등)도 휴일이 적은 편이다.[14] 즉 3.1절이 일요일-월요일인 2009년-2010년과 2020년-2021년이 비슷하다. 학생들은 신정, 설날, 광복절, 크리스마스가 거의 방학이다. 그리고 이 해를 끝으로 광복절은 임시공휴일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대체휴일이 적용되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이티칠레에 리히터 규모 8.0이 넘는 대지진이 발생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들썩였던 해이기도 하였다. 특히 아이티 지진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게 되어 국가 현황이 마비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중국 상하이에서 2010 엑스포가 개최되었으며, 이 해 2사분기 중국이 일본의 경제규모를 추월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월드컵개최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부부젤라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하였다.

문화예술 방면으로는 2009년 말에 개국했던 애니메이션 채널 애니플러스Angel Beats!,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일기당천 XTREME XECUTOR , WORKING!!을 자막 방영하며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일본일본 애니메이션 동시 방영을 시작하였다. 기성 만화 중 <원피스>는 정상결전 중후반에서 에이스와 흰 수염의 사망으로 팬들에게 눈물을 선사했고, 샹크스의 패기넘친 전쟁 종결 선언으로 1부를 점차 마무리했다.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은 미래 결전편으로 돌입하며 츠나 vs 뱌쿠란 전으로 대미를 장식하다가, 시몬 패밀리 편으로 돌입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일본에게 강제로 국권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한 사상 최대의 치욕인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했던 해이기도 하며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100주년을 기해 병합의 강제성을 우회적으로 시인하고 조선왕조의궤를 인도하는 "간 나오토 담화"를 발표했다.

이 해에 군입대를 하게 된 10년 군번들이 그야말로 긴장과 불안의 연속에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였다. 2010년에 입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1989년생 ~ 1990년생이다.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전 등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군에 복무 중인 사병들은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진땀을 흘려야 했고 '내가 북한군과 싸워서 죽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심리를 가지기도 하였다. 이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입장에서도 혹시 내 자식마저 천안함이나 연평도 참사로 전쟁이 일어나 죽는 거 아닌가라는 긴장과 불안에 쌓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2010년 말 ~ 2011년 초 사이에 내린 많은 눈과 강력한 한파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고 하는 증언도 존재한다.

사이버 상에서는 2010년 삼일절 사이버 전쟁[15]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2010년 삼일절 사이버 전쟁은 2004년 사이버 갑신왜란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로 이루어진 사이버 전쟁으로, 한국일본의 네티즌들이 서로 맞붙어 싸웠다. 그리고 이 삼일절 전쟁은 실제로 지휘 체계를 구축하고 스파이를 침투시키고 무기를 보급하고 지휘관이 실시간으로 지시를 내리고 적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등 실제 전쟁을 방불케 했다.

독일은 이 해를 기준으로 동서통일 20주년을 맞이하였다. 1990년 10월 이후에 태어난 독일인들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서 통독 세대들의 미래와 향후 활약 등이 점쳐지고 있는데 1945년 이후 선대 세대들과는 달리 동독이나 서독 출신이 아닌 통일 독일 연방 공화국 국적을 바로 얻게 되었던 입장이라 주목되는 편이다. 통일 이후에 태어나 성인이 된 세대들이라 독일 사회에서도 주목이 되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은 이 해 초에 잠시 경인년 '백호'의 해라며 호랑이띠를 잠시 띄워줬다. 그리고 2012년부터 색 + 동물로 본격화시켰다.

한편 2010년은 전년도 10월 1일부로 시범 시행 시작한 우측통행이 이해 7월 1일부터 완전히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10년 올해의 한자는 '暑(더울 서)'이다.[16]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문화 간 이해의 해'와 '생물 다양성의 해', '세계 청소년의 해: 대화와 상호 이해'로 지정했다.

2.1. e-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한 해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방송으로 나가는 경기가 조작된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사실로 밝혀졌으며, 그로 인해 MBC GAME이 폐국되고 하이트 스파키즈, eSTRO, MBC GAME HERO, 화승 오즈, 위메이드 폭스, 공군 ACE, STX SouL, 웅진 스타즈 등 여러 게임단이 연쇄 해체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면서 스타 1에만 편중되어 저작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던 e스포츠에 치명적인 타격을 남겼다.[17]

거기에 스타크래프트 저작권 분쟁까지 겹치며 팬덤의 대분열과 함께 스타크래프트에 편중된 국내 e스포츠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장기적으로 세계 e스포츠의 주도권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버린 한 해였다. 이러한 흑역사 때문에 10년 넘게 계속되어온 준우승 잔혹사를 끊어낸 kt 롤스터의 활약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고, 오히려 팀이 잘 나갈 때만 되면 e스포츠판이 흔들리고 멸망하게 되는 리그 브레이커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2.2. 싸이월드의 마지막 전성기와 트위터, 페이스북의 등장

대략 2003년쯤부터 이어져온 싸이월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했던 마지막 해이다. 2010년까지는 PC 기반으로 서비스를 하던 싸이월드가 훨씬 우세를 보였다.[18] 그리고 MBC 방송 연예대상에서 싸이월드를 통해 투표를 실시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모바일 기반 서비스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고[19],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0년~2013년 이후에는 소수의 이용자마저 잃으며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트위터[20]페이스북은 이 시기부터 사용자들이 급격히 유입되어 싸이월드의 위치를 위협하는 신생 SNS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서비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두 플랫폼은 스마트폰의 보급율 상승과 함께 사용자가 늘어나며 한국 시장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이 후 두 SNS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2010년 처음 싸이월드의 점유율을 뛰어넘었고, 2010년대 중, 후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트위터의 경우 2020년대 중반에도 인기를 끌고 있으나 페이스북은 2022년 이후 몰락했다.

2.3. 한일 간 애니메이션 동시 방영 시대의 개막

2009년 12월 7일에 애니메이션 채널인 애니플러스가 개국하게 되고 애니플러스에서는 일기당천 XTREME XECUTOR, 회장님은 메이드 사마!, Angel Beats!, WORKING!! 네 작품을 첫 동시 방영작으로 선정했다. 이후 2010년 4월부터 동시 방영을 개시하며 국내에서는 사상 최초로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일본 신작 애니메이션을 국내에서 TV 등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한일 간 애니메이션 동시 방영 시대가 개막되었다. 1945년 8월,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년, 1965년 12월 한일협정 및 정상화를 이룬 지 45년 만에 우리 땅에서 케이블 채널을 통해 일본의 최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대(對) 일본 문화 대개방 선포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일이기도 하다. 또한 판권 관리를 맡은 제이제이미디어웍스에서 판권 계약과 동시에 불법 업로더들을 모조리 잡아내기 시작해 그동안 느슨하던 저작권 단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국내에 수입되어 지상파 채널과 투니버스 등의 채널에서 어느 정도 방영을 해 주었지만 대부분 국내 성우가 녹음, 참여한 더빙판으로 방영되었고, 자막 방영은 유일하게 대원방송 계열 채널들에서 했다. 일본 현지에서 분기별로 방영하는 신작 애니메이션은 국내 더빙처리판이 일부 방영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 현지에서 방영이 끝난 이후 국내에서 후방영을 하는 방식으로 갔었으며, 설사 인터넷에서 원본 그대로 본다 하더라도 업로드될 때까지 업로더와 자막러의 역량 등에 따라 하루~이틀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듯 한일 간 신작 애니메이션을 케이블 채널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사례는 애니플러스가 사상 처음이다.

또 신작 일본 애니메이션을 애니플러스 채널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점과 한글 자막 방식으로 방영하였던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애니플러스보다 먼저 개국하였던 애니맥스 코리아가 이와 유사하게 한일 동시 방영을 하게 되었다. 애니플러스는 이후 경쟁 기업인 애니맥스 코리아와의 경쟁에서 승승장구하여 2020년 4분기~2022년 2분기에는 한일 간 동시 생중계와 다름없는 동시 방영 형식을 처음 채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해에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흥행에 부진하였고 평가가 좋지 못하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표적인 암흑기 중 한 해로 평가를 받는 편이다. 특히 여름에 해당되는 3분기에 나온 애니메이션들은 하나같이 혹평이 많다.

2.4. 남아공 월드컵 개최

스페인이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기록을 세웠으며 네덜란드는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0:1로 패했으나 32년 만에 월드컵 준우승의 성과를 얻었다.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만나 아르헨티나에 1:4의 완패를 제외하고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루었으나 우루과이에게 1:2로 석패해 8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2 한일월드컵 대표 출신 선수들이 선수 생활 마지막으로 나온 대회이기도 하다. 대신 대표팀보다 어린 태극 여자 아이들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대한민국 축구 남녀 대표팀 연령을 통틀어서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오빠 대표팀의 8강 좌절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주었다.

또한 그동안 월드컵이 개최되었던 해에는 클럽 축구에서는 유럽 구단의 트레블 기록이 달성되지 않았었지만 이 해 인터 밀란은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현재까지도 월드컵이 개최되었던 해에 트레블을 달성한 유일한 유럽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21]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아 2006 독일 월드컵 때만큼은 아니지만 월드컵 열기가 강해서 빨간 티를 입고 거리 응원을 많이 하기도 했다.

2.5. 경색된 남북관계

2010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격랑과 긴장의 해였다.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나 46명의 군인이 사망하였고 11월에는 다시 북한연평도 포격전을 저질러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해였다. 그리고 상기한 도발들로 말미암아 이명박 정부가 '5.24 조치'를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천안함 사건 당시 민관 합동조사단 측은 '북한 해군 잠수함 어뢰에 맞아 침몰한 것'이라 발표했으나 진보 좌파 사이에선 '좌초설' 등 음모론이 오르내린 바 있었다. 정부 측이 북한에 맞대응할 단계까지 갔다가 지방선거로 야당이 승리하면서 일단은 진정됐다. 그러나 하반기에 연평도 포격으로 험악한 분위기로 갔고, 이명박의 지지율이 50%에 달하며 정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공교롭게도 이 해는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이 해는 그때와는 다르게 북한의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 때문에 첫 남북정상회담의 10주년도 빛이 바랬던 해이기도 하였다.

2.6. 기후

지구 온난화가 빅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2009년 이상 기후를 겪은 후, 이상 기후에 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한 201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해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폭염 현상, 이상 기후가 발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일부 지방은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과 폭설이 심했으며 전국적으로 잦은 폭우가 일어났다. 반면에 태풍은 매우 적어서, 평균의 절반 수준인 14개를 기록했다.[22] 그리고 서울 기준으로 비가 온 날이 많아 강수일수가 1위였고 흐린 날도 많고 맑은 날도 적어 일조시간도 매우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두운 날씨의 우울감을 심어주었다. 당시만 해도 일조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2012~2013년부터 맑은 날이 많아 일조시간도 크게 많아지고, 특히 2014~2019년 기간 동안에는 남해안을 제외하면 순위권 일조일 정도로 반전되었다.[23] 서울 기준 일조시간은 1월과 12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6월과 11월은 많은 편이였으나 2~3월에는 비가 많아서 매우 적었고 4월~5월은 비는 많지는 않았으나 흐린 날이 많아 일조시간이 적었고 7~8월에는 유난히 어두운 해인데 장마철까지 겹쳐[24] 100시간 미만으로 매우 어두웠고, 9월도 상당히 적었고 10월도 비는 적었지만 흐린 날이 많아 조금 적었다. 서울의 강수일수는 역대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의외로 1911년.

사실 기후변화가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크지만, 전년도인 2009년에도 2010년 못지 않게기후변화가 컸다. 이유는 변종 엘니뇨 현상으로, 엘니뇨 답지 않게 저온이 심한 편이었다. 물론 고온도 있어서 기온이 오락가락한 날씨였다. 이 변종 엘니뇨는 2009년 11월에 절정을 찍어 11월 초에 기온이 크게 내려가기도 했고 서울 겨울이 11월 15일에 시작되었으며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 후에 한파가 찾아왔으며 이후로도 더 강해지면서 연말인 12월 31일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채로 2010년이 시작되었다.

2010년 상반기는 엘니뇨 모드키로 이상 저온에 잦은 비와 눈, 그것도 눈의 경우 아예 한번 오면 폭설로 쏟아졌으며 흐린 날씨가 매우 길게 이어져 일조시간도 적은 어두컴컴한 날씨가 이어졌다. 1월 첫 출근날인 1월 4일부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설이 쏟아졌다. 서울에서 25.8cm의 적설량을 기록하며 1937년 적설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눈이 쏟아졌다. 당연하게도 심각한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폭설이 내린 당시 서울 상황. 폭설이 내린 이후 알베도로 기온이 급강하하였고, 1월 6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에서 -26.8°C의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 역시 1주 내내 최저기온이 -10°C를 밑도는 한파가 찾아왔다. 이후 1월 중순까지 한파가 계속되었다. 서울은 13일에 절정을 찍었다.

그래도 대한을 전후로 기온이 올라서 1월 말~2월 초에는 평범한 날씨를 보였으나 설날 연휴를 앞두고 폭설이 쏟아졌다. 수도권 지역에 총 10cm 이상의 대설이 내렸고 강릉시 등 동해안 지역은 60~70cm 안팎의 많은 눈이 내려 귀성객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었다. 이 때문인지 2월 중순에는 다시 내려가서 추워졌다. 그러다가 2월 20일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23~28일에는 4월에 해당하는 초이상 고온에 2월답지 않게 폭우가 내렸다.[25][26] 결국 2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높았다.

그러다가 2월 28일에 비가 온 뒤 3월이 되자마자 기온이 평년 수준으로 회복했으며 3월 7일 이후로는 눈과 함께 이상 저온이 지속되어서 봄 내내 이상 저온이 이어져서 2010년에는 21세기에서 매우 추운 봄이 찾아왔으며 일조시간도 짧은 최악의 봄이었다. 3월 서울 평균기온은 4.3°C로 꽤 낮은 편이었다. 최고기온 평균은 8.1°C로 매우 낮다.[27] 아이러니하게도 전국적으로는 평년과 비슷했고 서울과 가까운 인천시도 5.1°C로 당시 기준 약간 높았지만[28] 잦은 저기압의 통과로 인해서 일조시간도 매우 적었고 전국적으로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특히 대관령 및 강원도 영동 지역은 3월 8~12일 동안 최고 1m의 대폭설이 쏟아지며 큰 피해를 겪었다. 수도권 지역에도 9~10일 사이에 15cm의 폭설이 내렸으며 3월 말에도 강한 소낙눈이 쏟아졌다. 대체로 대한민국의 3월답지 않은 우중충하고 눈이 많은 날씨를 보였다. 또한 3월 일교차가 매우 작았으며 습했고 일사가 거의 없어 기온이 오르지 못해 최고기온 극값이 14°C여서 이상 고온도 사실상 전무했다. 즉 비슷하거나 낮은 날씨만 이어진 셈. 그래도 초순 일부에 최저기온 이상 고온이 있는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리고 3월 20일에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으로 엄청난 황사가 와서 하늘을 뒤덮였다. 3월 22일에는 서울에서 3월 하순 1.8cm 적설을 기록했다. 물론 3월 24일과 30일에 올랐다지만 26일에는 최저기온 -3°C, 최고기온 4.7°C로 매우 낮았다.[29]

3월의 강력한 이상 저온과 꽃샘추위는 끝을 맺지는 않았고 완연한 봄 날씨가 나타나야 할 4월이 되자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훨씬 심해졌다. 4월 초에도 이상 저온이 잦았으며 3월 31일 ~ 4월 1일에 봄비가 온 뒤 급락해서 4월 3일에 최저기온 1°C까지 떨어졌고 이후 9~12일에 풀리나 싶더니 12일~13일에 비가 온 뒤 엄청난 이상 저온을 기록했다. 4월 13일에 서울 낮 최고기온은 5°C에 그쳤고 4월 14일에는 광주 두산 vs KIA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첫 강설 취소가 일어나기도 했다.[30]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결국 서울은 4월 18일[31]에 봄이 시작되면서 19~21일에는 최저 10°C, 최고 20°C를 넘기는 기온을 보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22일부터 비가 내리면서 급락했다. 25일에 다시 풀리는가 하면 26일부터 비가 와서 매우 크게 내려갔다. 강원 산간 지역은 4월 말에 눈보라가 쏟아졌으며 서울은 4월 28일에 최기온 7.8°C를 기록했다. 그리고 중부 일부 지역도 4월 말까지 눈이 내리기도 했다.[32] 3~4월에 유례가 없는 이상 저온 현상은 냉해를 유발시켰고, 전국에서 냉해 피해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또한 2010년 3~4월의 적은 일조시간과 잦은 이상 저온, 폭설은 벚꽃의 개화를 늦추는데 영향을 주어서 벚꽃축제 역시 연기되었다. 서울 기준 곡우 무렵에 개화를 했다. 서울 4월 평균기온은 9.5°C로 1907년 기상관측 이래 5번째로 낮았고 1915년, 1956년과 동일했으며, 전국적으로 강수량은 평년 수준이었으나 강풍이 심하게 불고 흐린 날씨도 잦았다.[33][34]

그래도 5월 첫날에는 최저기온은 낮았지만 최고 기온이 18°C를 찍고 다음날에는 20°C를 넘으면서 날씨가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때 이른 초여름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5월 4일에 27.1°C, 21일에 28.6°C 기록했다. 그러다가 하순에는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그러나 더위가 찾아왔다 보니 평균기온은 1971~2000년 기준 0.1°C 높았다.[35] 따라서 실질적인 봄은 4월 18일부터 6월 1일까지 45일간으로 꽤 짧았고 5월도 초여름 날씨를 보이기도 해서 2010년엔 광복 이후 추웠던 봄인 동시에 사실상 봄이 짧았다.[36][37]

6월 1일는 대관령에서 영하로 내려갔지만 같은 날 낮부터 서울은 기온이 평년 이상으로 오르면서 이른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6월 9~10일에 상당히 더웠다. 대체로 맑고 건조해서 2010년 중에서 드문 날씨가 좋았던 달이다. 장마는 18일에 남부지방, 26일에 중부지방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의 장마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장마가 내렸으며 중부지방은 소나기가 내리거나 소량의 강수량만 뿌리는 등 장마전선이 크게 힘을 바라지는 못했다. 남부지방의 경우 비가 많이 내리면서 7월 11일에는 광주에 191mm의 비가 내렸다. 남은 7월 동안 큰 폭우는 없었고 생각보다 장마는 약해서 서울 기준 7월 강수량은 230mm로 평년보다 다소 적었지만 흐린 날이 잦았기 때문에 서울 일조시간은 90시간으로 상당히 적었다. 중부지방에서도 16~17일 사이에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서울에도 16~17일 이틀 동안 150mm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이후 7월 18일 이후로는 해외 일본에서 폭염이 심해지고 그와 같이 장마가 끝난 남부지방에서 기온이 차츰 올라가며 본격적으로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으로 더위가 1달 이상 이어졌다. 8월 한 달 동안 폭염이 더욱 심화되면서 남부지방 평균기온 최고 순위가 손에 꼽을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38] 심각하고 극단적인 폭염은 없을지언정 33~37°C가 이어졌고 저온 없이 열대야도 이어지는 등 남부지방의 월평균기온이 손에 꼽게 높았다. 또한 이 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경기남부 ~ 남부지방까지 발달했고,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 한랭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부딪히며 대기가 불안정했다. 이로 인해 이 해 8월 한 달 동안의 기온이 겨울처럼 위도별 기온차가 상당하다. 서울과 경기북부는 남부지방에 비해 약하지만 그래도 평년보다 1°C정도 높았으나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이 거의 없고 장마 이후로도 형식적으로 잦은 비가 내리고 오히려 비교적 마른장마인 7월과 달리 8월이 사실상 장마라고 부를 정도로 1달에 600mm의 비가 내리고 매일 비 오는 등 7년 전과 10년 뒤를 연상시키는 8월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일조시간도 96시간으로 매우 적고 한랭기단의 영향도 받아 서울은 폭염이 상당히 적었고, 경기북부는 열대야가 없었다. 그 밖에 중부지방은 상당히 덥긴 더웠지만 가장자리라서 폭우가 많이 발생했고, 남부지방은 매우 더웠고 평균기온 극값 순위까지 있을 정도이다. 일본은 한 술 더 떠서 역대급 폭염을 기록했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서울도 2010년에 폭염일수가 하루 있었다. 중간에 맑았던 8월 9일에 33.3°C까지 올랐다. 단, 경기북부의 파주, 동두천 등은 폭염일수가 평년보다 많았다.(대신 그쪽 지역은 기온이 낮아서 열대야는 거의 없었다.) 철원은 호우일수가 없었다.

8월은 남부지방에서는 폭염이 계속되었고 중부지방에서는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강한 국지성 호우가 잦았다. 서울의 8월 강수량은 598.7mm나 되었다. 이는 2003년 600mm 이후 가장 많은 서울의 강수량이었지만 2020년이 이를 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강수일수[39]24일이나 될 정도로 습하고 비가 잦은 날씨가 이어졌다. 그 유명한 2020년 8월 강수일수가 19일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조시간은 96시간으로 74시간을 기록한 2020년이 더 적었다.

9월 2일, 태풍 곤파스수도권을 강타했다. 곤파스는 과거 기록적인 피해를 남겼던 루사매미보다 세력은 약했지만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한반도가 위험 반원에 들었고, 여기에 빠른 속도로 북상하면서 강풍을 몰고 왔다.

곤파스가 지나간 이후로는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고 오히려 늦더위가 심해서 9월 중순까지 한여름 수준의 평균기온으로 강한 늦더위를 보였다. 빈말 안하고 최저기온 및 최고기온, 평균기온 모두 한여름 날씨였는데 9월 상순에는 비가 자주 내리거나 비가 오지 않아도 흐려서 최저기온이 20~25°C를 넘는 날이 꽤 있었고 구름이 적은 날에는 또 최고기온까지 29~34°C를 보여 완연한 한여름 날씨였다. 서울도 30~32°C를 보였고 남부지방은 33°C도 넘었다. 게다가 강수량까지 엄청났는데 서울 한달 강수량은 670mm를 넘었으며 서울 일조시간도 145시간으로 어두웠다. 9월 6~7일 태풍 말로는 남부지방에 잠깐 뿌리고 지나가나 싶더니 태풍 므란티의 전면수렴대와 므란티가 변질된 온대저기압으로 인해 9월 9일(목요일)~12일(일요일) 4일이나 거의 쉬지않고, 특히 야간 시간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는데, 특히 수도권 지역에는 총 200~350mm에 가까운 집중 호우가 쏟아지기도 했다.[40] 게다가 9월 9일 강화군은 250mm나 내렸다. 또한 이 때 한강이 수위가 높아져 통제되기도 했다.
일강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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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9월 10일 9월 11일 9월 12일

이후 9월 중순(13~18일)에는 고온 건조해서 최저기온은 그래도 18~21°C로 내려갔으나 최고기온은 여전히 28~33°C로 초이상 고온을 보였으며 한여름에 비해서는 쾌적할지언정 8월 중하순 수준의 늦더위를 보였다. 그러다가 19~20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9월 21일에는 수도권 지역에서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강하게 충돌해 대기 불안정으로 인한 전선 형태의 구름이 강하게 발달했다. 4~5시간 동안 260mm의 집중 호우가 쏟아져 광화문 주변이 완전히 침수되고, 강남역, 북한산 등 서울 근교 지역까지 심한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가 하필이면 최장 8일 동안 이어진 추석 연휴였다.[41] 교통 대란과 피해는 말 안 해도 짐작 갈 수준이다. 반면 남부지방은 9월 하순인데도 33도를 넘는 폭염이 발생했다. 당시 폭우의 전개가 자세히 나타나 있다.

폭우가 내린 후 기온이 내려가며 본격적 가을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온이 너무 빨리 떨어져서 9월 28~30일에는 심지어 늦가을 날씨까지 보인 곳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0년의 9월은 한달 내에 늦더위, 폭우, 태풍, 추위가 모두 공존하는 매우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였다.

10월에는 25°C 이상의 늦더위는 없었지만 기온이 올라서 전반적으로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그러나 10월 25일에 기온이 급강하하더니 10월 26일에 서울에서 0.7°C의 최저기온을 기록하며 전국적으로 한파특보가 내려졌다. 한편 일본은 10월 28~30일에 뒤늦은 태풍 차바가 왔다. 대체로 흐렸지만 비는 적었고 서울 기준 0.1도 높은 14.5°C라 그나마 정상적이었다.

이후 11월은 기온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이어졌다. 다만 서울 첫눈은 11월 8일에 내려 평년보다 상당히 일찍 내렸고 전반적으로 쌀쌀해서 0.4도 낮았다.

크리스마스 이전까지는 14~16일 반짝 한파가 찾아온 것 말고는 큰 추위는 없었고 비교적 포근했다. 1~2일에 이상 고온에 비가 왔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12월 23일)부터 기온이 급강하하며 24일(크리스마스 이브)의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5.1°C까지 내려가서 26일까지 강하게 이어졌다.

이후 12월 마지막 주에 기온이 조금 올랐으나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며칠 동안 흐린 날씨가 이어지며 10cm 안팎의 대설이 내렸고, 충청,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29일~31일 사이에 해기차 현상으로 인한 많은 눈이 쏟아졌다. 그 여파로 다음해 1월은 엄청난 한파를 기록했다.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4.5 1.4 4.3 9.5 17.2 23.4 25.8 26.5 21.8 14.5 6.5 -1.3 12.1
평년대비 편차(°C)[42] -2.01.7 -0.9 -2.6-0.2 1.50.9 1.11.0 0.1 -0.4 -1.5 -0.1
전국 월평균기온(°C) -2.0 2.1 5.3 9.7 16.9 22.1 25.1 26.7 21.6 14.3 6.9 0.7 12.5
1973년 이후 순위 38 16 34 52 23 5 17 3 5 22 34 31 23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5.3 °C(0113) 33.8 °C(0805) 49.1 °C
[순별 기온/펼치기·접기]
단위: (°C)
평년대비 편차는 순별 평년으로 비교함
  • 1분기
1월 상순 1월 중순 1월 하순 2월 상순 2월 중순 2월 하순 3월 상순 3월 중순 3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7.2 -4.5 -2.1 -1.6 -1.6 8.9 3.7 3.8 5.2
평년대비 편차 -5.4 -1.7 0.9 0.5 -1.9 7.9 0.6 -1.4 -2.0
  • 2분기
4월 상순 4월 중순 4월 하순 5월 상순 5월 중순 5월 하순 6월 상순 6월 중순 6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8.3 10.1 10.2 16.8 17.0 17.6 23.5 23.1 23.6
평년대비 편차 -1.6 -2.0 -4.1 1.0 -0.1 -1.5 3.0 0.9 0.6
  • 3분기
7월 상순 7월 중순 7월 하순 8월 상순 8월 중순 8월 하순 9월 상순 9월 중순 9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25.4 25.4 26.5 27.7 26.6 25.3 24.7 23.6 17.2
평년대비 편차 1.6 0.8 0.3 1.6 0.7 1.1 1.8 2.9 -1.7
  • 4분기
10월 상순 10월 중순 10월 하순 11월 상순 11월 중순 11월 하순 12월 상순 12월 중순 12월 하순
서울 순평균기온 16.8 15.6 11.4 8.4 6.7 4.3 3.0 -1.6 -4.9
평년대비 편차 -0.1 0.9 -0.4 -1.7 -0.2 0.6 1.1 -1.7 -3.7

3. 사건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2. 가상

4. 탄생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5. 사망

5.1. 실존인물

5.2. 가상인물

6. 데뷔

6.1. 가수

6.2. 스포츠

6.3. 프로레슬링

6.4. 만화계

6.5. 예능인

이 해부터 2011년까지 MBC와 SBS 공채 개그맨이 한 명도 뽑히지 않았다.

6.6. 인터넷 방송

6.7. 기타리스트

7. 재결성

7.1. 가수

8. 은퇴

※ 공식 은퇴 경기, 무대를 가진 날을 은퇴일로 처리한다.

8.1. E-Sports

8.2. 야구

8.3. 프로레슬러

8.4. 농구

9. 출시 상품

히트상품으로 돌아본 2010년 10대 트렌드

9.1. 자동차

9.2. 식음료

9.3. 게임

10. 히트작

10.1. 드라마

10.2. 영화

10.3. 애니메이션

10.4. 특촬

10.5. 가요

10.6. 개그 코너

11. 최초

11.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

12. 유행어/밈

13. 달력

1월2월3월
12 123456 123456
34567897891011121378910111213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4151617181920
171819202122232122232425262721222324252627
2425262728293028 28293031
31
4월5월6월
123 1 12345
4567891023456786789101112
11121314151617910111213141513141516171819
181920212223241617181920212220212223242526
252627282930 2324252627282927282930
3031
7월8월9월
1231234567 1234
45678910891011121314567891011
111213141516171516171819202112131415161718
181920212223242223242526272819202122232425
25262728293031293031 2627282930
10월11월12월
12 123456 1234
345678978910111213567891011
101112131415161415161718192012131415161718
171819202122232122232425262719202122232425
24252627282930282930 262728293031
31

14. 인구

2010년 연말 대한민국 총 인구가 50,515,666명이었다. 이는 2009년 연말 49,773,145명에서 1.47% 증가하였는데, 지속적으로 인구성장률 감소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증가한 이유는,
1. 2009년 대비 출산율 증가(2009년 1.15명⇒2010년 1.23명)
2. 결혼이민 증가와 대한민국 영주권 취득 및 귀화자 급증
3. 2009년 이전 출생신고자에 대한 지연신고 보정치 반영
4.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로 정부의 예측치보다 많은 인구가 추가로 집계된 영향이 모두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파일:인구통계.jpg[75]

15. 관련 문헌



[1] 이 시기까지는 스마트폰 및 SNS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지금에 비해 잘 활성화되지 않았으며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당시 학생들과 젊은층을 대상으로 삼성과 LG가 노리폰, 롤리팝 2, 코비f, 쿠키폰, MAXX 폰 등의 피처폰을 스마트폰보다 더 많이 출시했으나 그 해 가을 아이폰 4의 국내 출시(2010년 9월 10일)~옵티머스원의 출시(2010년 10월 4일) 쯤부터 대한민국에도 스마트폰 대중화가 시작되었다.[2] 2010년 10월 스마트폰 보급률이 10%를 찍었고, 3년 뒤인 2013년 11월에 75%를 돌파하여 2014년을 기점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완벽하게 1인 1 스마트폰 시대와 스마트폰 성숙기에 접어들었다.[3] 1.21 사태가 일어난 년도. 일각에서는 2010년의 남북관계를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1994년 북한 핵 위기,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보다도 최악이었으며, 그 당시보다도 심각했다고 한다. 북한과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 사망자가 나온 사례였으니. 그러나 국민들의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무덤덤하고 아무 일도 없듯이 일상적인 분위기였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1994년과 같은 사재기도 전혀 없다시피 했다.[4] 여담으로 이 해 3월에 입대한 군번은 훈련병 때는 천안함, 일병 때는 연평도, 그리고 말년병장 때는 김정일의 사망까지 다 겪었다. 대개 이 때 군복무했던 세대는 88년생부터 90년생까지가 이에 해당된다.[5] 2010년뿐만 아니라 2021년 등 3.1절이 월요일인 해들이 모두 그렇다.[6] 2004년목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었고 이 해는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었다.[7] 2004년1월2월을 제외하고 3월 1일부터 이 해와 일치했다. 다만, 그 해는 식목일제헌절이 공휴일로 유지되어 있었던 반면 이 해는 식목일2006년에 공휴일이 폐지된 지 4년 뒤였고, 제헌절2008년에 공휴일이 폐지된 지 2년 뒤였기 때문에 이 해에는 당연히 식목일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해는 2004년1월2월 그리고 식목일, 제헌절 공휴일만 제외하면 2004년과 똑같은 형태의 해였다.[8] 그런데 2010년 9월 18일은 셋째 주 토요일이어서 당시 학교에 등교하기도 했었던 학생들한테는 사실상 8일 연휴였다.[9] 그런데 2010년 추석 연휴도 최악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면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으로 엄청난 양의 많은 폭우가 쏟아져서 피해가 정말 많아서, 수도권 한정으로 2년 연속 최악의 추석을 맞았다. 참고로 이전 해는 날씨가 나쁘지는 않았고 좋았으나 추석 당일 토요일+개천절, 다음 날 일요일 중복으로 사흘이나 쉬는 날이 날아가서 최악의 추석 연휴가 되었다. 그리고 이 해는 추석 전날에 하필 가 정말로 많이 와서 2009년과 2010년 추석연휴는 한마디로 최악의 추석연휴였다. 물론 추석연휴에 태풍 매미가 북상한 2003년 추석연휴도 최악이었다.[10] 사실 만약 이 해에 제헌절이 공휴일로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거나 한글날이 이 해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어도 크리스마스와 이듬해 새해 첫날이 토요일에 있듯이 이 해의 제헌절과 한글날은 토요일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11] 만일 현행 대체 휴일 제도가 있었다면 2월 16일(수요일, 설 연휴 대체 휴일)이 대체 휴일로 지정되었을 것이고, 모든 공휴일에 대체 휴일을 적용했다면 6월 7일(현충일 대체 휴일), 8월 16일(광복절 대체 휴일), 10월 4일(개천절 대체 휴일), 12월 27일(성탄절 대체 휴일)이 추가로 대체 휴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12] 사실 전년도 3.1절인 일요일인 해가 2009년 이후 2015년과 2020년이 있으니 2010년 다음에 오는 게 6년 뒤인 2016년이 이 해와 일치해야 했었는데 2016년의 2월에는 윤년인 29일이 있었던 덕분에 3.1절이 월요일인 달력이 삭제되어서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이 월요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흘 연휴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한글날,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에 있었다.[13] 2004년과는 시작은 달랐지만 2021년과는 시작부터 같다. 부처님오신날 (舊 석가탄신일), 설날, 추석이 좀 앞으로 당겨진 것을 제외하면 같다. 수능일도 2010년과 2021년 모두 11월 18일이다. 2010년 당시에는 11월 7~13일의 목요일에 치르니 11월 11일에 치를 듯했으나 정상회담으로 인해 연기되어 18일에 치렀다.[14] 그나마 2015년에는 광복절 전날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되었고 추석 연휴가 대체 휴일이 적용되었으며, 2020년에도 설 연휴에 대체 휴일이 적용되었으며 마찬가지로 광복절 다음 월요일인 8월 17일에 임시공휴일이 지정되어 2009년이나 2010년보다는 상황이 훨씬 양호했다.[15] '경인대첩'이라고도 부른다.[16] 한반도 남부와 일본은 2010년 여름이 더웠기 때문이다.[17] 비단 이 문제는 e스포츠에서 그치지 않고 그다음 해인 2011년부터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어져 4대 프로 스포츠에서 모두 승부조작 사건이 적발되면서 정점을 찍는다.[18] 트위터가 싸이월드의 점유율을 뛰어넘은 해가 2011년이다.[19] 모바일 앱 자체가 없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모바일로는 싸이월드 기능 대다수를 쓸 수 없거나 불편하게 되어 있었다.[20]X[21] UEFA 유로가 개최되었던 해에는 1972년에 AFC 아약스가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1988년에 PSV 에인트호벤이 트레블을 달성하였다.[22] 한편 그해 마지막 태풍 차바는 일본 오키나와 쪽에서 꺾어서 10월 28~30일에 도쿄 코앞까지 갔으며 전면 수렴대로는 일본 전역에 비를 뿌렸다. 반면 한국은 고기압으로 맑았지만 만약에 북서편향되어서 규슈에 상륙했다면 대한민국 관측 사상 가장 늦게 영향을 준 태풍이 되었을 뻔했다.[23] 2020년도 비가 많았지만 서울 기준 1월과 5월, 7~8월을 제외하면 대체로 맑은 달이 많았고 일조시간이 많아서 일조시간이 많은 편이었고 3~4월과 12월은 거의 순위권이었고 10월도 다소 많았고 2월, 6월, 9월, 11월도 조금 많은 편이었다. 또한 강수일수도 크게 많지는 않았다.[24] 단, 7월은 강수량이 적었다.[25] 정작 4월에는 3월, 일부는 2월 하순 날씨를 보였다.[26] 2021년 2월보다도 2월 하순 평균기온이 높다.[27] 저온이 더 심한 2011년 3월보다도 낮고, 2023년 3월과는 8.1°C나 차이난다.[28] 2010년은 2002년, 2005년과 같이 서울보다 인천의 연평균기온이 더 높았다.[29] 그러나 정확히 10년 뒤에는 8.1°C/20.6°C로 정반대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30] 4월 중순에, 그것도 다름 아닌 남부지방 광주광역시에 눈이 내려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건 이상 저온 현상이 매우 심각했다는 증거가 된다. 광주가 눈이 많이 오는 것은 맞으나 4월 중순에 내리는 경우는 2010년 전까지 아예 없었다. 그러나 14년 후에는 이와 정반대로 아예 7월 날씨를 보였다.[31] 통상적의 봄이 절반 이상 지났을 때 시작되었다. 남부지방도 4월 상순으로 상당히 늦었다.[32] 4월 초까지는 적설이 있는 곳도 있었다.[33] 현대인 1991~2020년 기준과 1971~2000년 기준으로 보면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제강점기 평년보다도 1~1.5℃ 낮다. 일제강점기 기준 중위권인 지난달이나 2020년 4월과 달리 106위로 하위권이었다. 특히 서울 평균 최고기온은 14.0℃로 아예 역대 최하위였고 2023년 3월 평균 최고기온보다도 2.3℃ 낮았다. 최고기온 중앙값은 13.55°C로 더욱 처참하다. 흐린 날씨로 일교차가 매우 작아서 8.4°C에 불과했지만 최저기온 평균 역시 2020년 4월보다도 낮았다. 시대를 감안하면 2010년 4월이 1931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34] 만약 2021년 3월이 정확히 하루만 늦었더라면 9.5°C로 2010년 4월과 같을 뻔했고 이틀 늦는다면 10.0°C로 두 자리 수를 기록해 2010년 4월을 그냥 능가했을 뻔했다. 게다가 2010년 4월2023년 3월(9.8°C)보다도 낮았다. 물론 2023년 3월은 하루가 늦었다면 10.2°C, 이틀이 늦었다면 10.9°C, 사흘이 늦었다면 11.4°C, 나흘이 늦었다면 11.7°C로 4월에 가까운 기온이 나올 뻔한 매우 기록적인 기온이기도 하다.[35] 서울은 0.2°C 낮음[36] 그래도 서울 기준 4월 8일부터 5월 1일까지 고작 24일에 불과한 2012년 봄보다는 길다.[37] 이런 3~4월의 이상 저온 현상과 냉해는 2013년에 다시 반복된다.[38] 대구 29.1°C, 김해 29.3°C[39] 강수량이 0.1mm 이상 기록된 날[40] 2010년 9월 말 폭우사태와 2011년에 일어난 한반도 폭우 사태와 2012년에 일어난 중부권 폭우에 묻혀졌는데 이유는 200 mm~300 mm 넘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이후에 벌어질 폭우 피해 사례를 비교하자면 적었기 때문이었다. 2011년과 2012년의 경우에는 아예 장기간 폭우가 쏟아졌으며 한강이 범람하기도 했고 집도 침수되었다.[41] 2010년 당시에는 1,3째주에 학교를 가서 9월 18일에는 등교했고 19일부터 쉬었다.[42] 1971-2000년 기준 평년값이다.[43] 자유무역협정과 비슷한 형태의 특혜무역협정[44] 덤으로 지하철 1•2호선 역명판들을 옛날 HY헤드라인M과 지하철체에서 고딕체로 교체하였다.[45] 단, 2호선의 중동역과 4호선의 서동역은 '동'자를 빼면 역명이 이상해지는지라 '동'자 표시를 그대로 붙였다.[46] 이는 12년 후 치러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때 주최국인 카타르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12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졸전을 치러 아예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47] 한국에서의 경우엔 정식 상용화를 통한 본격적인 정발 날인 9월 18일 10시까지 오픈 베타 테스트를 통한 디지털 발매를 무료로 제공했다.[48] 심지어 1위의 명예까지 동시에 거머쥐었다.[49] 여담으로 이날은 9월 모의고사가 치러지는 날이어서 자칫 헬게이트가 열릴 뻔하였다.[50] 그때의 가격은 동봉된 무제한 이용권 기준으로 69,000원이었다.[51]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했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뜻이다. 출전: 『점강진·번귀거래사』 - 장가구 외[52] 국내에서 1992년에 제작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2차 창작 애니메이션이지만, 스트리트 화이터 III처럼 주인공인 이 이소룡, 제갈셍이란 한국인으로 현지화됐다거나 우라질 도인 같은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온 그 만화다. 만화 속의 첫 장면에서 "서기 2010년, 제3차 세계대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멸망시키고 막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재앙."이라는 해설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국내에서 '스트리트 파이터'가 흥행했을 당시 1990년대 초반이라 감안했을 때 스파2의 실제 배경연도는 의 나이가 1964년 기준으로 27세일 때 1991년이다.[53] 두 만화는 2011년~2013년에 키라라에서 연재됐지만 케이온 완결 직후를 배경으로 다루므로 작중 시간은 2010년이 맞는다.[54] 설정에 따르면 작중 배경이 되는 3월 31일 기준으로 태어난 지 고작 십수일 전이라고 한다. 11일~19일 전 시점으로 추정하면 대략 3월 12일에서 3월 20일 사이가 된다.[55] 스타워즈 시리즈레아 공주로 유명한 캐리 피셔의 아버지이다.[56] 애니메이션에서는 2013년.[57] 6일일 가능성도 있다.[58] 베타 세계선 한정.[59] 알파 세계선 한정[60] 처음엔 상사와의 연락이 끊어진걸 못 견뎌 자살. 두 번째엔 복수귀에게 칼에 찔려 사망.[61] 알파 세계선 한정. 처음엔 8월 13일에 랩에서 라운더의 습격을 받고 사망. 그 후 루트마다 살해되는 날짜가 하루씩 연기되거나 바뀌므로 일자 불명에 기입.[62] 걸그룹 티아라의 디지털 싱글 왜 이러니로 데뷔[63] 정확히는 승부조작 스캔들로 E스포츠에서 영구제명 당한 것.[64] 이때부터 디지털 작화로 변경되었다.[65] 2010년 MAMA 올해의 노래상 수상곡[66] 2010년 멜론 연간차트 1위곡[67] 2010년 KBS 시청자가 뽑은 올해 최고 인기가요상/골든디스크 음반 부문 대상/서울가요대상 대상/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아티스트상 수상곡[68]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2011년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베스트송상 수상곡[69] with 다비치[70] 2010년 골든디스크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베스트송상 수상곡[71] 2010년 MAMA 올해의 가수상/올해의 앨범상/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곡[72] 이후 2011년 11월 27일까지 방송.[73] MBC에서 명절 때마다 정기적으로 방영되고 있는 예능이며 아육대로 유명한 프로그램이다.[74] '~슴다'로 끝나는 무너체(슴다체)는 90년대부터 유행했다.[75] 행정안전부 통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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