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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01:34:18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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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사한 구절이 언급된 사례 및 패러디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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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종의 관용어이자 클리셰. 말 그대로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기는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특히 현실이든 창작물이든 대놓고 양지로 가기엔 걸리는 게 많은 뒷세력 등은 죄다 이 법칙을 물리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싱크로율이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임 등에서는 최종 던전이 이 개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조직폭력배 같은 곳에서 비슷한 표현으로 자주 쓰던 말이었는데, 엉덩국의 만화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가 메가히트를 치면서 이 명대사가 유명해지게 되었다.

2. 유사한 구절이 언급된 사례 및 패러디

이것에 대해 말할 때 제일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대사는 절대 엉덩국이 처음 쓴 대사도 개념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 대사가 엉덩국과 유독 이어지는 건 그의 컬트적인 인기와 만화의 병맛으로 인해 임팩트가 커져서 그런 것일 뿐이며 엉덩국도 이 점에 대해 상당히 조심하는지 공식적으로 "이 대사는 자신이 최초로 만들거나 사용한 대사가 아니다"라고 표명했다. 실제로 시기적으로도 엉덩국보다 앞선 때(2010년 11월 7일 이전)부터 거의 비슷한 구조와 의미의 문장이 수도 없이 많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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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련 문서


[1] 판본에 따라 똑같이 과식해서 못 나가다가, 그대로 농부에게 잡혀버리는 버전도 있다.사자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농부는 아니란다[2] 원곡은 최진희의 '믿을 수 없어'라는 곡으로 1991년에 발매되었다. 당시엔 '사랑의 열쇠' '첫사랑'에 밀려 수록곡으로만 남았다.[3] 1653~1733. 호는 '병와'. 제주목사가 되어 제주도에서 온갖 악습을 타파하고(해녀복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횡포를 부리던 지역 유지들을 억제하려 했던 개혁 정책을 취했다. 이러면서도 무척 검소하게 살았고 제주도민들을 아껴서 송덕비를 세워 제주도민들이 칭송했다. 아쉽게도 이런 게 조정에서 안 좋게 보였는지 억울한 탄핵 상소로 벼슬을 그만둬야 했는데, 그 때까지 제주도를 포함해 부임한 곳이 22곳에 달했으며, 그가 부임한 곳마다 살기 좋은 곳이 되어 영세불망비, 송덕비, 유애비가 많이 세워졌다.[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파우스트>>, 9쇄, 서울, 을유문화사, 2021, p.90.[5] 숲 출판사 신들의 계보 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