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1번지 유모어1番地 | |
방영 채널 | KBS 2TV |
방영 기간 | 1983년 4월 2일 ~ 1992년 10월 4일 |
공식 홈페이지 | # |
1. 개요
1989년부터 종영때까지 사용된 오프닝[1]
1986년 10월 18일 방영분 |
1988년 1월 2일 방영분 |
1989년 12월 2일 방영분 |
최초 방영시에는 '유모어 1番地'였지만[4] 1985년에 '번지' 부분이 한글로 바꿨고, 또 1986년 11월경 외래어 표기법의 변경으로 인해 상기 제목이 되었다. 1983년 ~ 1986년 8월말까지는 단편 코미디 프로들로 구성되었다가 나중에는 아르바이트 백과, 손님, 수평선은 말이 없다, 변방의 북소리,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 고정 코너들을 선정하고 틈틈히 단편 개그 코너들을 투입하는 유연한 진행을 보였다.
이 진행은 동일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식 면에선 오히려 쇼 비디오 자키 쪽이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나 애드립 혹은 순간의 자극보다는 콩트나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코미디 연기'를 하는 희극 같은 분위기의 코너가 많았다. 1987년 초에 한 달 정도는 공개 코미디로 전향하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쨌든 2025년 현재에도 유머 1번지 출신 코미디언의 영향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유재석,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남희석 등이 데뷔 시절 활동했던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장수 코미디언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2. 출연진
이 작품으로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지만, 그중에서 독보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개그맨들은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이다. 이들은 개그 스타일도 모두 달랐으며[5] 단순히 일본 개그맨들을 카피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들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는 개그를 선보여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기본적인 진행 대본은 PD가 작성하였지만 세부적인 대본의 작성과 편집은 해당 코너의 담당 개그맨들이 직접 참여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심형래, 최양락, 김형곤은 개그 스타일이 서로 달라 함께 고정 코너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6] 심지어 이 중 최양락과 김형곤은 개그 스타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상극이라 주먹까지 왔다갔다 해서[7] 사적으로도 같이 붙여놓으면 절대로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개그의 대표적인 마스코트인 영구가 탄생하였으며, 군대에 대한 풍자와 개그를 다룬 코너 동작그만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워낙 옛날 프로여서 초기에는 병풍이었던 최양락이 나중에는 주역으로 오르는 등 부침이 상당히 심했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장수 코너를 제외하고 모두 한 번에 다 갈아버리는 식으로 물갈이를 했다. 1985년 4월부터 장두석과 김정식, 임미숙이 출연했던 아르바이트 백과부터 장편 코너가 시작됐으며 1986년 3월경에는 하룡서당에서부터 콤비로 활약한 임하룡과 심형래가 피터팬과 후크선장을 패러디한 수평선은 말이 없다와 카페 지배인인 전유성과 카페 손님인 최양락이 주연으로 나온 손님이 시작되었으며 중간중간에 단편 코너도 같이 방영했다. 1986년 9월 6일 임하룡과 심형래가 출연한 변방의 북소리가 시작되고 동년 11월에 김형곤, 김학래, 엄영수, 양종철 등이 출연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시작된 이후의 방송분들에서부터 지금 시각으로 봐도 나름 재미있는 개그 포인트라든가, 지금도 중장년층들이 기억하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그 이유는 공영방송 특성상 KBS가 편성 심의와 자율 규제 때문에 매우 보수적으로 엄격히 제한이 있었던 탓이 크다.
반면 비슷한 시기 경쟁사 MBC에서는 코미디언들의 유행어를 팍팍 밀어주면서 수많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서세원은 딱히 유행어가 없이 그 특유의 말투로 웃겼지만, 김정렬, 이원승, 배영만, 그리고 후반부의 이경규까지 전부 유행어로 톱스타가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이런 유행어들도 억지 밈처럼 시청자들이 점차 식상해했고, 때를 같이 하여 혜성처럼 떠오른 게 바로 신생 방송국이던 SBS의 신동엽이다.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송해[8][9], 이상해, 배삼룡[10], 최용순, 고영수, 송영길, 임하룡, 김형곤, 전유성, 주병진[11], 최양락, 엄영수(舊 엄용수), 장두석, 김학래, 이성미, 정명재, 김정식, 이상운, 심형래, 이경래, 이선민, 지영옥, 김한국, 김혜정, 김미화, 이봉원, 조금산, 이경애, 임미숙, 김의환, 김용, 팽현숙, 한혜승, 곽재문, 박승대, 서원섭, 양종철, 조문식, 한정호, 김종국, 하상훈, 이현순, 김호남, 임인하, 김정빈, 오성우, 김황우, 성낙앙, 오재미, 김진호, 문정숙, 안숙희, 윤혜영, 이희구, 최형만, 이창훈, 배동성, 김지선, 김현영, 서현선, 서인석, 최영준, 문형주, 김찬,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 남희석, 박수홍, 양원경, 유재석, 최승경, 엄정필, 전효실 등이다.[12]
3. 주요 코너
유머 1번지/역대 코너 참조.4. 몰락
사실 인기가 없는 코너는 그때그때 바로 내려버렸기 때문에 개콘이 나오기 전까지는 KBS 간판코미디 프로였다. 신인인 심형래, 이선민, 이경래, 최양락, 임미숙, 이경애, 김미화, 이봉원, 조금산, 김혜정, 김한국, 팽현숙, 양종철, 곽재문, 조문식 등이 유머1번지 각각 코너들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볼 정도였고 대학 개그제 출신의 유재석, 김용만, 김국진, 남희석 등 새로운 얼굴들도 그때 그때 충원되었다.문제는 1991년 12월 9일에 개국을 한 SBS로 인해 중추를 이루던 개그맨들이 대부분 SBS로 가는 바람에 그 해 가을개편 때 많은 코너가 하루 아침에 없어져버렸다. SBS로 이적한 개그맨들은 잘 나가다가 하필이면 19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사회분위기상으로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SBS를 포함한 모든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개편 시기를 막론하고 강제 종영되는 바람에 몰락하게 된다.
심지어 SBS가 나오지 않던 지방에서도 팬레터를 받을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이적했다고 하는 최양락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잘리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을 갈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나마 간판을 지켰던 임하룡도 결국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MBC하고 KBS 코미디를 동시에 출연했다. 게다가 1995년에 SBS에도 진출하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3사 코미디 동시 출연을 달성한다. 이때 이적한 개그맨 중에는 심형래도 있었는데, 김학래의 증언에 의하면 SBS가 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1992년부터 KBS로 복귀했다고 한다. SBS의 지역민방이 개국된 것은[13] 이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3년 뒤의 일이다. 이후 심형래는 유머 1번지 종영 이후에도 KBS의 각종 개그코너에서 맹활약을 할 수 있었다. 김형곤 역시 같은 시기에 KBS로 돌아왔다.
전문가인 선배들의 도움으로 무명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야 할 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빈약한 실력으로 코너를 맡으니 결과적으로는 아이디어나 연기나 모두 떨어지게 되는 법.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통 코미디보다는 일밤이나 꾸러기 대행진 같은 버라이어티 쇼 예능 쪽으로 코미디 방송의 대세가 바뀌면서 입지가 좁아진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시청률이 떨어지게 되면서 결국 1992년 10월 4일, 통산 478회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 꾸러기 대행진의 MC가 한때 유머 1번지 주축이었던 최양락하고 이봉원이어서 아픔은 두 배였다.[14]
이후 KBS 코미디는 한바탕 웃음으로-명랑극장-코미디 1번지로 근근이 명맥을 이었으나 1990년대 초중반에 이경실, 박명수, 서경석, 이윤석, 김진수, 조혜련 등이 주축이 되어 활약했던 오늘은 좋은 날과 웃으면 복이 와요 등을 내세운 MBC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면서 그마저도 웃으면 좋아요와 웃으며 삽시다를 내세운 SBS에게 지분의 일부를 내주는 암흑기[15]에 빠졌다. KBS가 코미디계의 패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시기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7년 뒤인 1999년에 개그콘서트로 큰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이후 15년간 지상파 3사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16] 2015년 이후 그 개그콘서트마저 쇠락하여 2020년 6월 말을 끝으로 종영되면서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 전체의 코미디 프로는 이로써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될 뻔 하다가 KBS에서 2021년에 개승자로 서바이벌 형식으로 부활하였고, 2023년에 개그콘서트 시즌2로 부활하여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
5. 여담
- 방영초기 부터 높은 인기로 위상이 오른 영향 때문인지 1985년 삼양식품에서 한 신제품 라면을 '라면 일번지' 로 작명하여 발매했었다.
- 흔히 알려진 후기 오프닝[17]은 인기 락밴드 송골매가 작곡하여 연주하였다. 이 곡이 사용되기 전인 1986년 10월 ~1987년 중반까지 사용된 오프닝 곡은 Cartooney Tunes (incl. Happy Birthday) · Videokids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이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인 홍콩 영화 쾌찬차 메인 테마 음악이다. 이 곡이 사용되기 전이었던 1986년 초반부터 1988년 후반까지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으로 장 미셸 자르의 Zoolook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300회 특집에서는 Squash Gang의 Moving Your Hips의 Instrumental 버전을 엔딩곡으로 사용하였다. 시간상 스탭롤을 생략한 회차가 있다.
- 종영 후 KBS 위성1을 비롯해 복지TV와 시니어TV에서도 재편성했다.
- 위에 언급된 유행어 중 다수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극중 되도 않는 개그를 즐겨하던 김성균이 당대의 유행어들을 중독자 수준으로 시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 김형곤이 왕으로 나오는 '잃어버린 왕조'라는 정치풍자 코너를 만들고 녹화까지 마쳤으나 방송되지 못한 일화가 있다.
- 1980년대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홈페이지가 존재한다. 다만 1989년 11월 4일 이전에 방영한 일부 회차들은 안타깝게도 KBS의 자료 관리 불량으로 인하여 다시보기에서 빠져 있으며, 이로 인하여 KBS 공식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공개되지 못한 내용도 많이 있다.[18] 한편 KBS 영상자료실에 1983년 방송분부터 1986년 이전 방송분은 죄다 유실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유머1번지 방송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 366화 에서 '다시보는 코미디'를 선보였으며 당시 신인이였던 김지선이 북한의 해설가로 등장하였고, 장두석이 합창단 지휘자겸 북한군 간부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심형래, 김정식, 엄영수, 이봉원, 이상운은 합창단원 겸 북한군 병사로 등장하였다. 노래연습중[19] 합창단원들이 차례차례 실수를 하여 지휘자에게 사살되자[20] 마지막에 남은 지휘자 마저 실수하여 결국엔 자결하게된다.
- 유머 1번지 400회 특집에서 이수만이 MC로 공개방송을 하였다. 뽐, 복사기 코너를 선보였으며 민해경이 초대가수로 등장했고 홍콩 인기배우 주윤발도 특별출연하였다. 그리고 일부 코너는 기존에 출연했던 개그맨 대신 인기연예인이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400회 기념 케이크를 특별 제작했는데 400회에 맞춰 모든 재료를 400g 정량으로 400명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케이크 컷팅식 때 심형래가 400회를 넘어서 500회, 600회도 계속 재미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바람을 남겼지만 478회로 방영 종지부를 찍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 1991년 4월 20일 408회 방영 이후 KBS 작가파업[21]으로 인해 무려 한달 동안 휴방을 했었다.[22] 한달 뒤 방송을 재개한 1991년 5월 18일 409화[23]를 방영한 이후부터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방영시간을 이동하였다.
- 1991년 9월 22일 추석 특집에서[24] 모든 출연진들이 세계가수를[25] 컨셉으로 <폭소가요제>[26]를 공개방송을 하여 각자의 끼를 발산하였다. 세계 참여가수 뿐만 아니라 세계 초대가수[27]도 재연하였으며 또한 심사위원 까지도 세계 유명인[28]으로 재연하였다. 그리고 일부 참여가수는 노래와 별개로 개그설정이 포함되었다.[29] MC는 임백천과 왕영은이 진행하였다.
- 유머 1번지의 마지막회인 478회에서 '빈대떡 신사'를 선보였으며 서원섭이 요릿집 근무자들과 사장으로부터 봉변당하는 사람, 장두석이 노래부르면서 서원섭을 괴롭히다가 오히려 응징당하는 사람으로 성명 미상 3명이 각각 요릿집 근무자와 사장으로 등장한다. 또 마지막회가 방송된 1992년 10월 4일 유머 1번지 본방 직전, 한국프로야구 1992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낮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가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 1983년 4월 2일부터 1992년 10월 4일까지 정확히 9년 6개월간 방영했었다. 그런데 TV에서는 '지난 10년간 유머1번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고 자막이 나왔었다.[30] 아마도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와 같이 세는 횟수 단위로 한 모양이다. 참고로 마지막회에 스탭롤은 빠졌다.
- 유머 1번지 종영 후 1992년 10월 11일에 후속으로 '웃음 한마당'을 방영했지만 1993년 4월 25일 봄 개편을 앞두고 6개월 만에 종영되었다.
- 1995년 5월 3일 정신적 후속작격으로 '코미디 1번지'를 방영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나친 말장난식 잡담과 해괴한 몸짓, 깜짝쇼식 프로진행 등으로 청소년들의 정서를 해쳤다는 지적 누적과 갈수록 낮아지는 시청률로 의해 1997년 5월 12일 방영한지 2년 만에 종영되었다.
- 1988년 11월 12일 방송분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편에서 폭력묘사하는 장면으로 인해 방송위원회에서 징계처분을 내렸으며 1991년 2월 2일 방송분 꽃피는 봄이 오면편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나와서 방송위원회 징계처분을 내렸으며 1991년 2월 16일 방송분 동작그만편에서 사과를 물고 검을 내려치는 장면으로 인해 방송위원회 징계처분을 내렸다.
[1] 단 타이틀 브금은 1988년 11월경부터 사용하였으며 송골매가 연주했다.[2] 2013년 3월 3일 개그콘서트 - 코미디 40년 특집에서 마지막 무대로 꾸며졌던 코미디는 흐른다의 맨 첫 소절.[3] 여담으로 199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옆 동네에서 방영했던 오늘은 좋은 날.[4] 같은 시기 KBS 1TV에서 방영했던 '유모어 극장'이 이렇게 표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원로 코미디언들이 주축이었다.[5] 심형래는 몸개그, 최양락은 만담, 김형곤은 시사 풍자 개그로 서로 다르다.[6] 다만 심형래와 김형곤은 단편 코너들에서는 같이 나온 적이 많았다.[7] 실제로 김형곤의 운전기사 건으로 인해 최양락이 집단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8] 해당 프로그램의 초창기에 '꼿꼿한 자세' 등의 꽁트에 출연한 사실이 있다. 게다가 이 분은 이 외에도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사극을 하면 훈장이나 사또를 전담했다.[9]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훈장으로 출연한 송해.[10] 1989년 300회 특집 영구야 영구야에서 칠득이 아버지로 특별출연했고, 1991년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왕손(김형곤)의 바보 삼촌 역으로 출연했다.[11] 1983~84년 초창기에 출연하다가 MBC로 이적했다.[12] 보다시피 코미디언 역대 최고의 기수인 KBS 7기 기수들이 유머 1번지의 마지막 세대였다. 그래서 유머1번지 후반기 방송을 보면 김국진, 유재석, 김수용, 김용만 등 거물급으로 성장한 MC들의 당시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13] 1995년 개국 지역민방을 1차 지역민방, 1997년에는 2차 지역민방, 2001년을 3차 지역민방이라 한다. 단, iTV 경인방송은 SBS 네트워크 라인을 쓰지 않고 독자민방이었는데 노사갈등으로 인해 2004년 말에 폐국조치되었으며 경인방송의 TV방송 부문은 2007년에 개국한 OBS경인TV가 승계했다.[14] 정작 이 꾸러기 대행진도 고작 1년 뒤에 종영하고 만다. 아역 탤런트나 유아들을 출연시켜 아동에게 억지 상황을 주고 부적절한 대사를 하게 했다고 방송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고...[15] 그나마 코미디 세상만사 덕분에 코미디 프로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16] SBS의 웃찾사가 2004~2005년 무렵 전성기때 아주 잠깐 개콘의 전성기에 살짝 비비긴 했었고, MBC의 개그야도 2006~2007년에 나름 전성기를 누리긴 했지만, 두 프로 모두 개콘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게 중론이다.[17] 1988년 연말부터 적용했었다.[18] 다만 유튜버 Woober99가 1985년, 1986년~1987년 사이에 방영된 유머 1번지 녹화본을 올려준적이 있으며 현재 계정이 폭파되어 Woober99의 데일리모션 채널에서 볼 수 있다.[19] 노래는 '잘 살아보세' 였다.[20] 물론 직접 연출하지 않고 잠시 퇴장한 상황에서 소리만 연출하였다.[21] 집필 거부.[22] 당시 최고인기를 구가했던 KBS 일일드라마 서울뚝배기 등도 동시기에 한달간의 휴방기를 가진다. 서울뚝배기 / 여담 항목 참조.[23] 동작그만이 이 회차를 끝으로 종영했다.[24] 이 날이 추석연휴 당일 이였었다.[25] 가상참여국가는 이탈리아, 미국, 한국, 남아공, 멕시코, 과테말라, 모리타니, 북한, 피지, 홍콩, 소련, 불명 등 이다.[26] 사실은 1990년 8월 여름방학 특집으로 방영했던 <세계폭소가요제>의 정신적 후속작 이지만 당시에는 유머 1번지와는 별개인 특별프로그램 이였었다.[27] 심신,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28] 찰리 채플린, 마돈나, 존 레논, 미스고구마아가씨(...)[29] 노래가 시작하자 마자 갑자기 엄영수가 진행하는 긴급뉴스속보가 나왔는데 정작 속보가 끝나자 노래도 같이 끝난설정(...), 심지어는 일부 참여가수는 노래전 사망 플래그(...) 설정 까지 있었다.[30] 10년간 이면 1993년 4월 2일이 지나야 맞는데, 10년을 채우지 않았기에 '지난 9년여간 유머1번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