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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 홍금보 | 원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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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2년 1월 7일 ([age(1952-01-07)]세) |
영국령 홍콩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틀:국기| ]][[홍콩| ]][[틀:국기| ]] (복수국적) |
신체 | 170~172cm, 100kg 내외[3] |
학력 | 우점원 경극 학원[4] |
데뷔 | 1961년 영화 <애적교육> |
직업 | 배우, 영화감독, 프로듀서 |
가족 | 아내 고려홍[5] 딸 홍후유 아들 홍천명, 홍천상, 홍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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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액션 배우, 감독, 프로듀서.
겉모습과 달리 1980년대 전후 홍콩 영화 전성기 시절 크게 활약하고 이후로도 롱런한 액션 배우로, 젊은 시절에는 100kg이 넘는 뚱뚱한 몸매로도 놀라우리만치 날렵한 동작의 쿵푸 액션을 선보였다. 때문에 한때는 몸매는 뚱뚱한데 날렵한 근육돼지들의 별명은 거의 100% '홍금보'였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다. 배우로서 유명하지만 감독 및 프로듀서로서도 뛰어난 경력을 자랑하는 홍콩 영화계의 거물이다.
2. 약력
유년 시절의 이름은 삼모(三毛)로[6], 중국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이름에서 따왔다. 부모가 맞벌이였기 때문에 유년기를 조부모 밑에서 보냈는데, 할머니 전사앵(錢似鶯)은 당대의 유명 여성 액션 배우였고, 할아버지 홍중호도 8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은 영화감독이었다. 홍금보의 부모도 모두 영화업계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홍금보는 중국 영화업계의 로열패밀리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부인은 영화배우 고려홍(高麗虹)[7]일 뿐만 아니라 큰아들 홍천명(洪天明)은 홍콩 TVB MC 겸 배우, 둘째 홍천상(洪天祥)은 가수, 셋째 홍천조(洪天照)는 배우다. 게다가 장녀 홍후유(洪煦愉)도 연예계 진출설이 돈다. 한마디로 홍씨 가문 자체가 예능업계의 로열 패밀리라고 봐도 될 정도다. 1번째 부인은 한국인 조은옥(曺恩玉)이었지만 이혼했고, 1987년작《동방독응(東方禿鷹)》에서 만난 고려홍과 1995년에 재혼했다. 다만 3남 1녀는 모두 전처 소생으로 한중혼혈이다.10살 때 할머니가 우점원(于占元) 중국희극연구학교(경극학교)에 입학시켰고, 8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때 받은 예명이 원룡(元龍)이다. 칠소복(七小福)[8]의 첫째로 활약하며 무대에 섰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당시 동기 가운데 원루(元樓 성룡), 원표(元彪)는 훗날 홍금보와 함께 그 유명한 가화삼보(嘉禾三寶)로 명성을 떨친다. 그 밖에 국내 팬에게 친숙한 인물로는 영화 《쿵푸허슬》에서 돼지촌 주인 부부를 연기한 원화, 원추가 있다. 영화 《트랜스포터》를 공동 감독한 원규도 멤버였다고 한다. 1962년 영화 대소황천패(大小黃天霸,)라는 흑백영화에서 출연하는 7명의 아이들 중에 성룡과 같이 나왔다.
9살 때, 애적교육(愛的教育)(1961)으로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9] 이후 아역으로 몇 작품 더 출연했다.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때는 희극학교를 졸업한 뒤였으며, 처음에는 배우가 아닌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며 무술지도를 연구했다. 1970년, 무술 감독으로 신생 골든하베스트(嘉禾電影有限公司)와 계약했고, 1971년, 《탈명금검(奪命金劍)》으로 금마장 무술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소룡의 《정무문》(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10] 에 참여하였으며, 호금전 감독의 《영춘각지풍파(迎春閣之風波)》(1973)와 《충열도(忠烈圖)》(1975) 의 무술 감독을 맡았다. 또한 이 무렵 허씨 3형제의 《미스터 부》 1, 2탄(1976)에도 참여했다. 한마디로 홍콩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굵직굵직한 작품들의 무술감독을 모두 맡은 것이다.
1977년, 《삼덕화상과 용미육(三德和尚與舂米六)》[11]의 주연 및 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홍금보는 1978년부터 가보영화사, 보상영화사, 보화영화사[12] 등을 차례로 설립하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홍금보는 기존의 쿵푸 영화 스타일을 탈피하고자 다양한 시도 끝에 영춘권에 주목, 영춘권을 소재로 《찬선생과 조전화(先生與找錢華)》(1978), 《패가자(敗家仔)》(1981)[13] 등을 감독했다. 영춘권에 대한 사랑은 먼 훗날 드라마 《영춘(詠春)》(2006)과 영화 《엽문(葉問)》(2008)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는 홍금보의 전성시대다. 1980년에 《귀타귀(鬼打鬼)》의 주연과 감독을 맡아 홍콩식 코믹 호러물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강시선생(殭屍先生)》(1985)[14], 《강시가족》(1986)[15] 등도 연이어 흥행시키면서 강시 붐을 일으켰으며, 《쾌찬차(快餐車)》(1984), 《용적심(龍的心)》(1985), 《비룡맹장(飛龍猛將)》(1988) 등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여 명실상부한 가화삼보의 시대를 열었다. 제작에 감독, 주연까지 도맡아 했던 《오복성(奇謀妙計五福星)》(1983)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복성 시리즈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을 풍미한 이른바 '마담물'의 원조인 《예스 마담(皇家師姐)》(1985)도 홍금보가 제작했다.[16] 이러한 홍금보의 활약으로 홍콩의 쿵푸 영화는 시대극에서 현대물로 변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두한 홍콩 뉴웨이브 물결이 시간이 흐를수록 뻗어 나아가기 시작한 끝에 1990년대 홍콩 영화계가 뚜렷한 세대 교체를 이루자, 홍금보는 골든 하베스트와 결별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새로운 조류를 시험했다.
1997년, 영화 《나이스 가이》를 감독하면서 미국 시장에 데뷔했으며, 1998년 미국 드라마 《동양특급 로형사(Martial Law)》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꽤 높은 인기를 끌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시즌 2 44화로 종결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메달리온》(2003), 《삼국지 용의 부활》(2007)의 제작 및 《엽문》을 감독했다.[17] 《살파랑(殺破狼)》(2005)에선 주연 악역으로 등장해서 견자단을 상대로 기존의 쿵푸 액션이 아닌 종합격투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엽문2》에서는 홍가권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6년에는 《홍금보의 보디가드(特工爷爷)》[18]주연을 맡아 살벌한 조직 범죄자들을 상대로 결코 녹슬지 않은 살상 액션을 보여준다.[19]
3. 출연작
3.1. 영화
1961년 | 애적교육 |
1969년 | 협녀 |
1971년 | 천룡팔강 |
1973년 | 용쟁호투[20] |
1974년 | 중태권단생사결 |
1975년 | 용호문, 밀종성수, 소림문 |
1977년 | 사대문파, 중원호객, 삼덕화상과 춘미육 |
1978년 | 사망유희[21], 비룡과강[22], 천하제일권, 찬선생과 조전화 |
1979년 | 인자무적, 잡가소수 |
1980년 | 귀타귀, 권불유기 |
1981년 | 용자무구 |
1982년 | 제방소수, 패가자, 인혁인 |
1983년 | 촉산, 오복성, 프로젝트 A |
1984년 | 신용쌍향포, 쾌찬차 |
1985년 | 복성고조, 용적심, 하일복성 |
1986년 | 부귀열차[23], 대나팔, 최가복성, 유령병단 |
1987년 | 영환도사, 동방독응, 홍금보의 방삼표, 일옥양처, 몽경영웅, 표가도 |
1988년 | 칠소복[24], 중국최후일개태감, 비룡맹장[25] |
1989년 | 군룡희봉, 칠복성, 칠전사, 표가도 2 - 화촉귀 |
1990년 | 귀타귀 2 - 귀요귀, 화소도, 과부신랑, 팔냥금, 지분쌍웅, 부귀병단, 수호비룡, 상하이 상하이, 칠복장, 용봉타적, 베스트 이즈 하이스트, 브루스 리 특선 |
1991년 | 일촉즉발, 귀도귀, 용가호저, 호문야연, 저승사자, 서부망정, 맹귀입침흑사회, 밀정위룡 |
1992년 | 무림객잔, 오복성 2, 일도경성 |
1993년 | 전신 |
1994년 | 의천도룡기 |
1995년 | 홍콩 투캅스 - 방면전 |
1996년 | 낭만풍폭, 오복성 3 - 운재오복성, 양자경의 스턴트 우먼 |
1997년 | 황비홍 - 서역웅사, 나이스 가이(감독) |
1998년 | 홍금보의 계엄령 : 오리엔탈 드래곤, 홍금보의 계엄령 : 죽음의 링 |
2001년 | 철권 |
2002년 | 촉산전, 플라잉 드래곤 |
2005년 | 맹룡, 살파랑 |
2008년 | 탈수, 삼국지 : 용의 부활, 우슈 |
2009년 | 춤추는 닌자의 전설 |
2010년 | 엽문 2 - 종사전기, 금의위 |
2011년 | 홍금보의 채리불권 |
2013년 | 절색무기 - 네이키드 솔저 |
2014년 | 쌍자신투 |
2016년 | 홍금보의 보디가드 |
2017년 | 풍운대전, 마영정: 상해야인시대, 공수도 |
2020년 | 칠중주: 홍콩 이야기[26] |
2022년 | 맨 온 엣지 |
2024년 | 구룡성채: 무법지대 |
3.2. 드라마
2011년 | 신 소림사전기 |
4. 기타
- 젊었을 적 선역 주인공을 맡았을 때는 유쾌하면서도 친근한 동네 바보형같은 모습을 많이 연기했지만 나이가 든 이후로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높으신 분 역할을 많이 연기하게 되었다. 악역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최종 보스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주는 인간 흉기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견자단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인 살파랑을 보면 알 수 있다.
- 홍금보가 비만인 체형이 된 이유는 10대 후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엄청나게 살이 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100kg 이하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이 우려되어 1987년, 《동방독응(東方禿鷹)》을 촬영할 때는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무려 20kg의 체중을 감량했다. 여느 때보다 홀쭉하고 날렵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뚱뚱한 몸매지만 보기와는 달리 매우 날렵하며, 육중한 몸을 이용하여 타격감이 확실하게 전달되는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 동방독응이라는 영화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고려홍과 결혼하였다. 큰 키[28]와 늘씬한 몸매 서구적인 얼굴 유연한 무술 실력 이 모든 것을 갖춘 그녀에게 반하였고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국 지금까지도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여담으로 고려홍은 1965년생이라서 홍금보와는 띠동갑이 넘는 나이 차이인데다가 이연걸, 견자단, 장만옥, 관지림, 양자경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 입가에 큰 흉터가 있는데, 홍금보 본인은 구순열(언청이) 수술을 받은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청이 수술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아역 출연한 《애적교육》의 장면 등을 보면 언청이의 흔적도, 수술 흔적도 아예 안 보이기 때문. 홍금보가 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 깨진 병에 찔려 생긴 흉터라는 설이 있다. 노년이 되어서는 흉터를 가리기 위함인지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꽤나 어울린다..
- 홍금보 본인은 이소룡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안 했지만, 사실 이소룡은 홍금보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며 그를 데리고 다니며 많이 아껴주었다. 홍금보를 비롯한 칠소복 멤버들 대부분이 이소룡의 작품에서 단역과 스턴트로 고정되다시피 고용되어 이소룡 사망전까지 함께 일했는데, 원규 감독에 의하면 이소룡은 액션 안무를 기획할 때 무조건 홍금보를 반드시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을 정도로 홍금보의 실력을 신뢰했다고 한다.[29]
- 영화상에서 홍금보의 수(手) 기술은 합기도의 동작을 바탕으로 하는데, 칠소복 멤버들 중 단연 최고. 이는 한국의 합기도를 익혔기 때문인데, 한국 합기도 계의 원로이자 왼발의 달인 황인식[30]과의 인연 덕분이었다고 한다. 족(足) 기술은 원표, 공중제비 및 아크로바틱 모션은 원화가 으뜸이라고 한다.
- 하지만 영화상에서 결정타로 자주 쓰이는 기술은 중단 돌려차기 계열의 기술이 많다. 주로 복부나 가슴을 차인 상대가 호쾌하게 날아가는 패턴이 많은데 홍금보의 덩치에 더해 강렬한 돌려차기라는 기술의 특성 덕에 그 위력에 대한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인 듯. 또 다양한 무기술에도 능하지만 특히 단봉을 양손으로 쓰는 단봉술이 뛰어나며 자주 나오는 편.
-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때는 킥복싱 매니아였다고 한다. 그래서 따로 훈련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였는데 마침 아시안계 킥복싱 챔피언인 주비리(周比利)[31]의 경기를 보고 주비리가 있는 캐나다로 가서 같이 영화 찍자고 제안을 하였고 그 제안을 들은 주비리는 흔쾌히 받아주었다고 한다.
- 1999년에 해체한 홍금보의 스턴트 팀인 '홍가반(洪家班)'은 성룡의 '성가반(成家班)'과 함께 홍콩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고난도 스턴트를 소화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홍가반은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다이나믹하고 현실적인 액션의 연출을 중시한 반면, 성가반은 구성원이 똘똘 뭉쳐 아크로바틱한 모션을 토대로 치밀하게 합을 짜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외에도 액션의 리듬감이라든가 구성 등 작은 디테일에서도 둘은 꽤 차이가 나오는 편이다. 성룡 액션과 홍금보 액션의 차이 여담으로, 《비룡맹장》 후반부 공장 격투 장면을 보면 홍금보는 홍가반 멤버들과, 성룡은 성가반 멤버들과만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 홍금보의 액션은 과격하면서 실감나는 타격감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가 출연작은 물론, 무술감독을 맡은 액션작품들 모두 화끈한 타격감을 선보인다. 그러다보니 진짜로 때린 적이 비일비재한데 대표적인 예로 군룡희봉에서 마애적(에디 마허)의 명치에다 있는 힘껏 킥을 날려 병원에 실려보낸 적도 있었고, 프로젝트A에서는 마지막 결투신에서 해적두목 라삼포 역을 맡은 적위의 등에 신호도 주지 않고 체중을 실은 드롭킥을 날려 적위가 큰 부상을 입은 데다가 칠복성에서는 리처드 노튼의 턱에 정타로 어퍼컷을 날려 며칠동안 음식을 먹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액션영화 리뷰와 분석을 전문으로하는 유튜버 JACKIE PARK은 홍금보의 역량은 세계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스턴트맨의 안전을 등한시하는 악독한 무술감독이라고 평가했다.[32]
- 원표 주연의 《집법선봉(執法先鋒)》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즉석에서 무술 지도를 맡았다. 후반부 격납고에서의 치밀하고 살벌한 격투 장면은 홍금보가 연출한 것이다.
- 가화삼보 중에서 원표는 꽤 오랫동안 홍가반 소속의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면서 홍금보와의 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나, 성룡이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한 후부터는 성룡과는 비즈니스상으로만 친한 관계였다고 한다. 홍금보와 성룡 두 사람이 워낙 거물급이라 앞으로도 재결합은 어려우리란 전망이 많다. 이미 하일복성의 촬영 도중에 갈등이 심해서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예 성룡이 나오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시 성룡은 폴리스 스토리의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텍터의 아시아판 추가 촬영 등으로 인해 일정이 많이 바빴다. 당시 성룡은 자신이 단독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의 감독과 무술 감독, 편집에도 관여했기 때문에 자신의 스케줄이 바쁠 경우 가화삼보의 일원으로서 나오는 영화에는 자신의 스턴트팀인 성가반에 자신의 대역을 맡기고 가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 하이라이트 대결씬은 성룡도 참여해 원표, 홍금보와 함께 마무리 짓긴 했다.
홍금보와 성룡은 둘 사이의 불화로 1988년 《비룡맹장》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같이 작업하지는 않았는데, 일단 알려진 사실로는 성룡이 서부극과 쿵푸를 혼합한 영화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홍금보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홍금보가 그런 영화는 홍콩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룡이 1986년, 《용형호제》의 촬영 중 부상으로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사이, 생각이 바뀐 홍금보가 원표를 데리고 《부귀열차》라는 서부극과 쿵푸를 섞은 영화를 찍어 개봉해버렸다.[34] 그러자 화가 난 성룡이 《동방독응》의 출연제의를 거절했고[35] 가화삼보의 《프로젝트A2》를 단독 주연으로 찍기 시작했다. 나중에 같은 칠소복 출신이자 비룡맹장의 감독인 원규의 중재로 화해는 했다.
《비룡맹장》을 촬영할 즈음에는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서로 싸워대는 바람에 주변 스테프들이 굉장히 난감했다고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메이킹 영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그런 위험한 스턴트가 들어가는 액션영화를 촬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단지 성룡이나 홍금보 모두 일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고, 각본 개입은 물론 한 번 결정내린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타입이라 함께 작품을 할 때도 의견충돌이 많았다는 증언은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단기간에 영화를 제작 해야하는 당시 홍콩영화의 시스템과도 관계가 깊다. 다행히 세월이 지난 현재는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나서 풀었다고 한다. 성룡은 자신이 주연한 1995년작 썬더볼트의 무술 감독을 홍금보에게 맡기기도 했고 성룡 주연의 나이스 가이도 감독이 홍금보다. 또한 성룡이 2004년에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홍금보가 단역(황비홍)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정말 사이가 나쁘면 아예 언급을 피하겠지만, 실제로 한국의 예능 프로에 출연했을 때도 농담 반 식으로 홍금보를 언급한 적도 있다.
《비룡맹장》을 촬영할 즈음에는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서로 싸워대는 바람에 주변 스테프들이 굉장히 난감했다고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메이킹 영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그런 위험한 스턴트가 들어가는 액션영화를 촬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단지 성룡이나 홍금보 모두 일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고, 각본 개입은 물론 한 번 결정내린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타입이라 함께 작품을 할 때도 의견충돌이 많았다는 증언은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단기간에 영화를 제작 해야하는 당시 홍콩영화의 시스템과도 관계가 깊다. 다행히 세월이 지난 현재는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나서 풀었다고 한다. 성룡은 자신이 주연한 1995년작 썬더볼트의 무술 감독을 홍금보에게 맡기기도 했고 성룡 주연의 나이스 가이도 감독이 홍금보다. 또한 성룡이 2004년에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홍금보가 단역(황비홍)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정말 사이가 나쁘면 아예 언급을 피하겠지만, 실제로 한국의 예능 프로에 출연했을 때도 농담 반 식으로 홍금보를 언급한 적도 있다.
- 홍금보와 성룡의 관계는 일종의 애증 관계로 보인다. 칠소복이던 시절부터 첫째 역할을 하던 홍금보에게 가장 반항했던 게 성룡이었고, 당시 홍금보가 원표에게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자 대신 나서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홍금보가 칠소복을 영화로 만들자 "홍금보는 어린 시절을 너무 미화했다. 그에게는 즐거운 추억이었겠지만, 우리는 끔찍했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홍금보는 후에 인터뷰에서 불화설을 부인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룡, 원표와 광동어로 말했다가 보통화로 말했다가 왔다 갔다 하니까 그게 오해를 부른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가화삼보의 재결합을 원하기는 하나, 성룡의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성룡 역시 《런닝맨》에 게스트 출연했을 당시, 홍금보와의 사이에 대해 질문을 받자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답변했다.
- 희극학교 시절, 성룡은 첫째 홍금보에게 혼난 적이 많았지만, 영화배우로 대성한 뒤 삼합회의 협박에 시달릴 때 홍금보가 나서서 막아준 것을 고마워한다고 한다. 실제로 홍금보는 삼합회가 홍콩 영화계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며, 삼합회가 배우들을 협박할 때마다 직접 나서서 막았을 정도로 거세게 항의한 사람이다. 이에 홍콩 영화계에서는 홍금보를 큰형님(大哥大)으로 부르며 존경한다고 한다. 모두들 벌벌 떨던 삼합회에 홍금보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들었기에, 한때는 홍금보가 삼합회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간부급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물론 이는 헛소문으로 밝혀졌다.[36] 하지만 그 역시 한계는 있었는지 화소도에 출연'당'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다른 주연급 배우들은 제각기 사유가 있었는데 홍금보만 정확한 출연 이유가 불명이다.
- 성룡과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에 충무로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때 한국인 아내 조은옥(曺恩玉)을 만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데이트 후 호텔방에 같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당시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이었던 터라 프론트에서 부부가 아니면 합방을 할 수 없다고 막았다고 한다. 그러자 홍금보가 발끈하여, "이 여자는 내 아내요!" 하고 말하고 다음날 둘이 영사관으로 가서 결혼 수속까지 쿨하게 밟았다고 한다. 홍금보 슬하의 자녀들은 전부 한국인 전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로 그의 자녀들은 전부 한중혼혈이다. 그러나 홍금보가 인기를 얻으면서 잦은 외박과 음주, 여자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결혼생활 내내 다투다가 14년 만에 이혼했다. 다만 이혼 이후 화해했는지 이후에도 계속 가족간의 교류를 이어 나갔다고 한다. 2012년 장남 홍천명의 결혼식에 조은옥도 참석했다.
- 한국인 아내와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 한국 방송에 출연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홍금보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았고, 이는 세간에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홍금보가 한국어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아내랑 생활하다 보니까 반말만 할 줄 알게 돼서" 라고 했다.[37]
- 성룡같이 자신의 친구들과 같이 나온 영화가 아닌 영화들에서는 홍금보가 여자를 패는 장면이 많이 있다.
- 상술한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성격이 굉장히 불같다. 좋게 말하면 화끈하고 호쾌한 성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지X맞은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자존심도 굉장히 강하여 상술한 성룡[38] 등은 물론 주성치[39] 등 다른 배우들과도 갈등을 빚은 적이 꽤 많은 편이다. 이 때문인지 홍금보를 싫어하는 배우들도 어느 정도 있다.[40] 이처럼 동료나 친구들에게 불같은 성미로 혼을 많이 내긴 하지만 우애도 깊은 편이기도 해서 자신과 동시대에 활동해온 임정영이 40대 중반의 이른 나이로 사망했을 당시에는 그의 죽음을 굉장히 슬퍼했다.
- 그런 홍금보가 대들지 못한 사람이 2명 있었으니, 1명은 석견이고 1명은 용쟁호투의 볼로로 유명한 양사였다. 석견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관록에서부터 넘사벽인 배우라서 그렇다쳐도 양사는 첫만남부터 그의 생김새에 이미 압도당해 기합이 바짝 들었다고 한다.[41] 하지만 양사는 외모와는 달리 인자한 성격이라 스턴트맨이자 무술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던 홍금보를 포함한 후배들에게 잘 대해주었고, 훗날 홍가반의 액션스타일을 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양사는 유독 홍금보의 작품에 조단역으로 자주 출연했다. 양사의 영향이 컸는지 홍금보도 얻어맞는 연기가 아주 일품이다.
- 2000년대 이후부터는 중노년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성룡이 2010년 전후까지 청중년 연기를 주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2007년 12월, 갑자기 사망 보도가 나와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곧 루머로 밝혀졌다. 사망 기사가 터지고서 하루에 생존 확인 전화를 1,000통 가까이 받았다고 한다. 이 때 성룡도 전화를 걸어 "어이, 홍 형, 정말 죽었어?" 라고 장난스럽게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 2020년에 근황 사진이 올라 왔는데 엄청나게 살이 빠져 팬들이 걱정하는 중#. 홍금보 측에서는 건강식을 먹으며 살을 뺀 것이고 건강엔 이상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환갑이 지난 후 여전히 과체중이었던 홍금보는 심장수술도 받은데다 다리 관절도 안 좋아져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였는데 체중감량 후에는 무리 없이 걸어다닌다고 한다.
- 젊은 시절 송강호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려 교수와 인터뷰를 했는데, 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가 누구인가?"라고 묻자 송강호 왈 "아... 홍금보?"라고 대답했다 떨어졌다고 한다.(...)
- 한국에 홍금보라는 동명의 만화가가 있는데 당연히 다른 사람이고, 홍금보도 예명이다.
5. 홍금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홍금보가 자주 활동하던 시기, 비만 체형이지만 쿵푸나 가라테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그가 모티브였을 확률이 상당하다.- 괴짜가족 - 사모한 킨코
- 말죽거리 잔혹사 - 함재복[42]
- 모탈 컴뱃 X - 보라이쵸
- 수권전대 게키레인저 - 권성 엘레펀 킹포
- 스트리트 파이터 4 - 루퍼스
- 아랑전설 - 친 신잔
- 원피스 - 유력 강화 쵸파
- 쿵푸팬더 시리즈 - 포
- 철권 시리즈 - 밥
[1] 광동어로 홍감보우라고 읽으며 보통화로는 훙진바오로 읽는다.[2] 영문명(Sammo Hung Kam-Po)[3] 용적심에서는 더 어리버리한 바보로 보이려고 110kg까지 불린 적도 있었다.[4] 정규교육기관이라기보단 도제식으로 경극 배우를 양성하던 학교였다. 경극 배우는 연기력뿐만 아니라 가창력, 액션 실력까지 겸비해야했고, 아동들을 거의 학대에 가까운 교육으로 가르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패왕별희 초반부에 당시 경극 학교의 이러한 행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따로 읽기, 쓰기를 가르친게 아니라서 성룡 같은 경우는 여기서 10년간 수련을 받았지만, 문맹이었다.[5] 2번째 부인으로 미스 홍콩 출신이다. 영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영화 '황가여장'에서 양가휘의 아내이자 유가령의 시누이로 출연했다. 참고로 그녀도 홍금보와의 결혼이 2번째 결혼이다. 후술되어있듯 홍금보의 1번째 부인은 한국인 조은옥이다.[6] 위에 써있는 영어 이름을 보면 알 테지만, 바로 유년 시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7] 1965년생으로 황백혼혈 여배우. 영문명은 Joyce Mina Godenzi. 보통화로는 가오리훙.[8] 역대 멤버는 총 14인이라 한다. 때문에 말하는 팬마다 조금씩 멤버가 다르다. 가화삼보 외에 원규, 원화, 원덕, 원무, 원태, 원추, 원빈 등이 유명하다.[9] 사족으로,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여배우 임취(林翠)는 외팔이 무사로 유명했던 왕우(王羽)의 첫 번째 부인이다.그리고 증강의 여동생이기도 하다.[10] 중반부에 단역으로 출연했다.[11] 국내 개봉명은 중원호객(中原虎客)[12] 홍금보의 대표작들을 많이 제작한 보화(寶禾) 영화사는 골든하베스트 산하의 홍금보 전용 영화 제작사였는데, 골든하베스트의 추문회 회장이, 홍금보 주연의 영화가 지역 극장에서 2주일 넘게 상영되는 것을 보고 설립을 허락했다고 한다.[13] 홍콩 액션 영화 걸작선에 빠짐없이 꼽히는 작품. 홍금보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꼽았다.[14] 일본 개봉 제목은 《영환도사》, 국내엔 《생과 사》라는 제목으로 해적판 비디오로 먼저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개봉할 때는 《강시선생》으로 개봉했고 정발판 비디오도 강시선생으로 나왔다.[15] 일본의 개봉 제목 《영환도사2》를 국내 개봉에 활용, 《영환도사》로 개봉하여 한국에서도 주연, 임정영은 영환도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16] 홍금보는 예스 마담 초대 주연인 양자경의 데뷔작인 범보(The Owl vs Bombo,1984)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시드니 포이티어가 나온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 1967)" 줄거리를 거의 베낀 것이었다. 우습게도 한국에선 1989년 7월 15일에서야 조연인 양자경이 주연인양 뻥치며 당시 은퇴한 양자경 마지막 영화라고(극장에서 이 영화가 양자경의 마지막 영화라는 자막까지 있었다. 이 영화에는 이후에 예스마담에 함께 출연한 나부락이 에어로빅 강사역으로 잠깐 나온다.) 홍보했었다.[17] 엽문 2 : 종사전기에서는 엽문(견자단 분)의 라이벌로 직접 등장하기까지 했었다.[18] 대략적인 스토리는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치매노인 홍금보가 친한 이웃소녀를 구하려고 악랄한 갱단을 단신으로 괴멸시킨다는 내용으로 택시 드라이버에서 시작된 아저씨나 테이큰 같은 스토리라인의 영화다.[19] 그러나 역시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예전처럼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촬영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짤막한 컷을 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다. 많은 나이와 과체중으로 말년에 관절에 무리가 와서 체중감량 전엔 걷지도 못했을 정도니 아무래도 '날으는 돼지'의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20] 초반부 이소룡과 맞대결하는 인물. 참고로 성룡도 엑스트라로 나왔다.[21] 이소룡의 유작으로, 중반부 로버트 월과의 대결 장면에서 등장한다, 참고로 해당 작품에 무술 감독으로도 참여했다.[22] 이소룡의 영화인 맹룡과강 (ENTER THE DRAGON)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뚱뚱한 용이 강을 건넌다. 는 뜻이 담겨있다. 2020년에 견자단이 리메이크 하기도 하였다.[23] 성룡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 이에 화가 난 성룡은 동방독응에 불참하고 말았다.[24] 실제 칠소복 멤버들의 경극학교 시절 이야기를 다룬 전기영화다.[25] 성룡, 홍금보, 원표의 마지막 동시 출연작[26] 7편의 단편 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첫번째 영화인 수련의 감독을 맡았고, 직접 출연해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다.[27] 그래서 머리 큰 게 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28] 170cm이지만 같은 키를 가진 남편보다 더 컸다.[29] 이소룡의 유작이자 미완성작인 사망유희에서 홍금보는 이소룡과 함께 작품의 무술 감독을 맡았으며 극중 격투기 대회에서 칼의 상대선수로 단역 출연하기도 했다.[30] 맹룡과강에 출연했으며, 사망유희에도 출연 예정이었으나 이소룡의 사망으로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굉장한 속도와 위력을 가진 발차기와 꺾기 기술로 무술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았고, 성룡은 황인식의 무술에 반해 《사제출마》에 주연 악역으로 초빙했다.[31] 영문명은 Billy Chow('比利'는 'Billy'의 음차). 홍콩계 캐나다인이며 실제로 그당시 킥복싱 챔피언출신의 영화배우이다. 대표적인 영화는 이연걸의 정무문에서 이연걸과 생사결을 펼치는 일본군 최종 보스역할을 했으며 주로 악역과 조연으로 많이 나오는 배우이다. 주비리는 사실 영화배우라기보다는 무도인에 더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평점은 그닥이다. 왜냐하면 영화로 번 수익이 훈련비용과 체육관 비용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2가지를 유지하기 위해 노출신, 굴욕신 등 닥치는 대로 찍었다고 한다. 그의 헌신에 동료배우들과 문하생들은 눈물을 흘렸고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32] 반면, 성룡은 홍금보와 마찬가지로 성가반 팀원들에게 항상 위험하고 무모한 스턴트를 시키긴 했지만 스턴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주었기에 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성룡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이끄는 스턴트 팀인 성가반이 당시 홍콩에 존재하던 수 많은 스턴트팀들 중에서 돈도 제일 많고 제일 번듯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성가반 팀원들 모두에게 5만 홍콩달러씩 줄테니 자비로 2만 달러 정도 보태서 각자 자동차 한 대씩을 사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후 성가반이 모일 때면 수 십대의 차들이 똑같이 움직였기에 그 뒤로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저들이 바로 성룡의 성가반이다."라고 알아보게 되었다고.[33] 한국인으로, 본명은 김우석이다.[34] 홍금보는 이 서부극 아이디어를 1997년작 황비홍 서역옹사에서 대놓고 써먹기도 했다.[35] 《동방독응》에서 원표가 맡았던 역할은 원래 성룡이 맡기로 했었다고.[36] 그보다는 홍금보의 집안자체가 가족들 모두 홍콩 예능업계에서 감독이나 배우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온만큼, 홍콩 방송계에서는 인맥이 워낙 탄탄했기에, 삼합회 조직들도 홍금보의 집안을 고려해서 홍금보를 쉽게 건드리기 어려웠을것이라는 추측이 있다.[37] 성룡 역시 배운 한국어가 죄다 반말이라, 당시 장난 삼아 가끔씩 던지는 한국어가 다소 무례해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나이 든 이후에는 한국 방송에 나오더라도 인사말 정도만 한국어로 하고 영어와 중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38] 자존심이 굉장히 센 건 성룡도 마찬가지로 람보 4 촬영 시 실베스터 스탤론과 엄청 싸우는 바람에 결국엔 무산된 적이 있었다. 물론 성룡도 성깔이 있고 엄격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동료들에게는 적절한 상황에서 당근과 채찍을 부여하고 선은 지키는 편이라서 홍금보만큼이나 악명이 높지는 않다. 한 마디로 엄격한 선생님같지만 잘해줄 때는 확실하게 잘해주는 타입이다. 가화삼보의 막내인 원표는 공처가에다가 술자리도 거부할 정도로 사생활이 착실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걸로 유명하고 홍금보와 무술 동기인 원화는 영화에서 악역 전문 배우로 많이 출연했지만 실제로는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아끼는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39] 주성치는 이소룡을 매우 동경하기로 유명한데다가 성룡이나 이연걸과도 사이가 무난한 편이지만 홍금보와는 이러한 불같은 성격으로 인하여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정확히는 쿵푸허슬을 찍을 때 주성치가 홍금보에게 무술 감독을 맡겼는데 영화 제작 중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빡친 홍금보가 영화에서 하차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40] 대표적인 사람이 배우 왕민덕으로 홍금보에게 무술 지도를 받을 때 엄청난 갈굼과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한다.[41] 홍금보도 상당히 다혈질에 수틀리면 물불안가리고 싸움걸기로 유명하다. 그런 홍금보가 바짝 긴장했을정도다.[42] 급우들과 반에서 사망유희 놀이를 자주 했는데 홍금보 역할을 주로 맡은 듯. 급우인 우식이 야 홍금보, 네 똥 굵다 X꺄!라는 대사를 시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