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9 21:02:56

두문불출

고사성어
막을 아니 나가다

1. 개요2. 관련 문서

1. 개요

[명사]
1. 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함.
2. 집에서 은거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아니하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의 첫 출전은 중국 춘추시대 좌구명의 역사서 국어(國語)[1]이다. 이 당시 두문(杜門)은 문을 닫아 걸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마천사기 상군열전에서도 사용했으며, 당태종 대의 역사서인 진서에서도 사용되었다. 결정적으로 고려의 문신 이규보가 "두문불출"이란 단어를 편지에 실제로 사용했으므로, 최소한 13세기 초반부터는 익히 사용되었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이성계고려의 공양왕을 폐위[2]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절대로 두 임금은 섬길 수 없다며 충성을 다짐한 일부 유생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두문동(杜門洞)[3]에 거주하며 속세나 사회와의 접촉을 일절 끊고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두문동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이 '두문불출'에서 유래된 것이며[4], 두문동 72현 중에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단 3명 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맹가'로, 성씨만 전해진다. 다 자세한 것은 두문동 72현 전설 문서로...

현재에는 주로 집에만 있고 외출을 일절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2020년대 초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난 2003년 경의 사스와 2009년 경의 인플루엔자, 메르스 사태 등을 비롯한 그 이전에 유행했던 전염병 시즌에도 시행한 적이 없는 초강수의 케이스가 되었다.

2. 관련 문서



[1] 이 당시 '국어'는 여러나라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2]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이성계였다.[3] 현재 북한의 개풍군 광덕산 서부 지역.[4] 조선왕조실록 영조 16년 9월 1일 기사 중에는 본도의 대족 50여 집이 문을 꽉 닫고 나오지 않아서 그 동리를 두문동이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