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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3:30:31

헤시오도스


1. 개요2. 생애
2.1. 업적 및 의의2.2. 신통기

1. 개요

Ἡσίοδος / Hesiod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교훈 시인이다. 호메로스와는 달리 실재했음이 확실시된다. 《일과 날(Ἔργα καὶ Ἡμέραι[1])》[2] 및 《신통기(Θεογονία[3])》가 널리 전한다.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화려한 이오니아파와는 달리 헤시오도스로 대표되는 보이오티아파는 종교적 ·교훈적 · 실용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2. 생애

호메로스와 달리 헤시오도스의 생애가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교훈시 특성상 개인적인 저술이 서사시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때문이다.

소아시아의 항구 도시에서 무역업을 하던 헤시오도스의 아버지는 그리스 본토로 돌아와 보이오티아 지방의 아스쿠라 마을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기원전 8세기에 태어난 헤시오도스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동생 페르세스는 유력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한 재판으로 헤시오도스의 상속분까지 가로채려고 하였다. 이에 헤시오도스는 페르세스를 훈계할 목적으로 농경 기술과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한 <일과 날>을 지었다고 한다.
"노동은 행복과 번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1. 업적 및 의의

농민의 생활권에 자리 잡고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인 성격을 띤 사상 최초의 문학은 헤시오도스 작품이다. 그의 문학이 흔히 말하는 ‘민중 문학’[4]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서 다루는 소재와 가치관, 인생 목표 등은 농민층, 즉 지주 귀족들에게 억압받는 민중의 것이었다.

헤시오도스 작품의 세계사적 의의는 사회적 긴장과 계급 간 대립의 최초의 문학적 표현이었다는 데 있다. 물론 화해를 말하고 대립의 해소와 위무를 시도하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문학 속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사회 정의를 주장하며 자의와 폭력을 규탄한 최초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때까지 시인에게 맡겨진 종교와 예배, 궁정 생활과 지배자 찬송의 임무를 처음으로 버리고 정치적, 교육적 사명을 떠맡아 피압박 계급의 스승이자 충고자 및 대변자가 된 것이다.

2.2. 신통기

그리스 신화는 헤시오도스 이전에 체계성을 갖추지 못했다. 헤시오도스는 신통기 1022행은 천지의 창조, 신들의 탄생을 매우 소박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계통적으로 서술한다. 혼돈에서 에레보스 (암흑), 지옥(타르타로스)과 밤, 그리고 낮(헤메레)이 탄생한 서사부터 가이아우라노스 사이에서 티탄족의 탄생, 아들 크로노스와 다섯 아이들 중 막내였던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속여 남매들을 구원했는지를 설명한다.

신통기는 헤시오도스의 독창적인 사색이 그 근간을 이룬다.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호메로스의 신들을 종교적으로 순화하고, 제우스가 관장하는 정의에 대한 신뢰를 심으려고 힘썼다. 다만 그러다 보니 그 제우스보다 더 우위에 있거나 아예 제우스를 엿 먹이는 신들(ex. 헤카테, 프로메테우스)도 다 제우스가 알고서도 허락하고 넘어가 준 거란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헤시오도스야말로 탈레스 이전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천지의 창조와 신들의 탄생에 대한 계보 추적과 인간과 이치에 대한 사색이야말로 최초의 철학이라고 한다.
[1] Erga kai Hemerai[2] 이 책에서 그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인간의 다섯 시대가 언급된다.[3] Theogonia[4]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 혹은 서민들이 모이는 주막 같은 데서 항간의 음탕한 이야기들과 겨룰 수 있는 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