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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2:32:42

남양유업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유제품 제조사 (점유율 기준)
파일:서울우유 로고 가로형.svg 파일:매일유업 로고.svg 파일:남양유업 로고.svg파일:남양유업 로고 화이트.svg 파일:빙그레(기업) 로고.svg파일:빙그레(기업) 로고 컬러 화이트.svg

남양유업
NAMYANG DAIRY PRODUCTS | 南陽乳業[1]
파일:남양유업 로고.svg파일:남양유업 로고 화이트.svg
<colbgcolor=#e91c23><colcolor=#fff> 정식 명칭 남양유업 주식회사
영문 명칭 NAMYANG DAIRY PRODUCTS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64년 3월 13일
창업자 홍두영
대표 집행 임원 김승언[2]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240[3]
업종명 액상 시유 및 기타 낙농제품 제조업
상장여부 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78년 ~ 현재)
종목코드 003920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OSPI200
직원 수 2,070명 (2023년 12월 31일 기준)
자본금 46억원 (2023)
매출액 연결: 9,967억 6,335만 8,982원 (2023)
별도: 9,722억 6,398만 285원 (2023)
영업이익 연결: -723억 5,444만 3,617원 (2023)
별도: -666억 4,129만 9,862원 (2023)
순이익 연결: -670억 9,991만 9,179원 (2023)
별도: -647억 7,607만 20원 (2023)
자산총액 연결: 7,906억 7,846만 8,255원 (2023)
별도: 8,597억 6,848만 2,161원 (2023)
부채총액 연결: 1,124억 4,750만 9,970원 (2023)
별도: 1,833억 5,286만 9,152원 (2023)
부채비율 연결: 16.58% (2023)
별도: 27.11% (2023)
홈페이지 파일:남양유업 로고.svg파일:남양유업 로고 화이트.svg
모기업 한앤컴퍼니

1. 개요2. 역사
2.1. 2010년대 이후: 상표를 숨기는 기업2.2. 구 오너 일가
3. 지배구조4. 비판 및 사건 사고5. 로고6. 상품 목록
6.1. 유제품
6.1.1. 우유6.1.2. 발효유6.1.3. 분유6.1.4. 치즈6.1.5. 음료6.1.6. 두유6.1.7. 커피
6.2. OEM/ODM제품
7. 브랜드8. 기타

[clearfix]

1. 개요

남양유업은 분유·시유·발효유 등의 유제품과 음료·커피 등의 제품을 생산, 가공 및 판매하는 유제품 전문가공업체로 한국의 3대 우유 업체[4]중 하나이다. 주요 사업은 분유·시유·발효유·치즈 등의 유가공 제품 및 음료 제품 등의 생산과 판매이며 사료판매업, 창고업, 기타식료품 제조 및 판매업, 음식점업, 부동산 임대 및 공급업 등도 사업 영역에 들어간다. 사훈은 '성실한 자세, 창조적 사고, 책임있는 행동'.

노조는 한국노총 화학노련 소속이다.

사명의 '남양'이 언중들 사이에서 2가지 발음으로 나뉜다.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나먕]유업'이 맞으나, ㄴ 첨가를 하여 '[남냥]유업'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어문 규범대로라면 '남'과 '양' 사이는 형태소 경계가 아니므로 ㄴ 첨가를 하지 않는다. 남양유업 측의 PR자료 등에서는 아래와 같이 규범 형태인 '[나먕]유업'을 사용한다.

2. 역사

1964년 홍두영(1925년[5] ~ 2010년) 창업주가 남양유업주식회사로 설립했는데, 우유사업보다 분유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1970년대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우량아 선발대회"의 주관 스폰서로서 산모들에게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고,[6] 1980년대 들어 우량아 선발대회가 끝났음에도 신생아 육아 관련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덕택에 남양유업의 분유판매는 꽤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에는 3.4 우유가 유명했었다. 이름처럼 지방함유량이 3.4%였다. 그런데 이 우유 광고가 삼청교육대를 연상케하는 컨셉이라 나중에 재발굴될 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우유 사업에 뛰어든 뒤 꾸준히 성장하다가 1990년대 중반에 내놓은 '아인슈타인'이 센세이션에 가까운 대박을 터트리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2005년에는 산양분유 사업에도 진출하였었지만 2006년 9월 '사카자키균 파동'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으면서 1년여 만에 산양분유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

2005년 3월 주한미군은 물론 전세계 미군과 미군 내 학교와 병원에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유제품 독점 납품권을 따낸 뒤 그해 4월부터 우유와 발효유의 납품을 시작하였다.

2.1. 2010년대 이후: 상표를 숨기는 기업

하지만 2013년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이후로는 비도덕적인 기업이라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널리 퍼져 2020년대까지도 불매운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소비자의 반감을 사게 된 이후, 여러 남양유업의 악행들이 밝혀지고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여직원에 대해서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강등, 임신하면 퇴사를 압박했다는 차별/갑질 이슈가 알려졌으며, 이때까지의 제품 마케팅 방식도 지극히 비도덕적이었다는 것 또한 다시 회자되었다.

기실 저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은 그저 화룡점정이었을 뿐 그 전까지도 남양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동종업계에서 비도덕적인 네거티브 마케팅을 일삼는 회사로 악명이 높았고, 그 탓에 기업의 도덕성에 예민한 소비자들은 이미 일찌감치 불매를 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7]

예를 들면 남양유업을 급성장시킨 아인슈타인 우유는 DHA 함량을 과대 광고했으며, 커피믹스 제품에서는 카제인나트륨을 마치 인체에 유해한 첨가물인 양 선동해서 다른 회사들의 인스턴트 커피믹스에 대한 불안을 부추겨서 시장에 진입했다. 또한 발효유 불가리스 역시, 불가리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독일산 발효균을 씀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와 연관짓는 마케팅을 시전하고, 적반하장으로 진짜 불가리아 국영 기업의 라이센스를 받고 발매한 매일유업의 제품에 대해서 표절 소송을 걸어 이름을 바꾸게 만든 전적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남양유업은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냈다. 또한 소비자들의 공포나 몰이해를 이용해서 제품의 효능을 과대광고하거나, 특히 타사의 제품을 위험한 제품인 양 느껴지게 하는 네거티브 광고 행태를 기회만 나면 활용하고 있어 애초부터 비도덕성이 기업의 체질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 이미지가 너무 나빠져 변화가 필요해지자, 2014년 5월에 31년 동안 남양유업에서 근무했던 이원구 신임 대표이사가 취임해 '착한 경영'을 회사의 새로운 미래가치로 선정했다. '착한 경영'의 첫번째 시도는 한국복지협의회와 협약을 맺고 매달 2천 상자 규모의 우유 음료를 결식 아동과 독거노인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2011년 초만 해도, 상장된 유업 회사들 중에서는 주가가 가장 높았다. 순수 유업으로는 KOSPI200지수에 포함된 유일한 종목일 정도. 시가총액은 6,264억 원으로 매일유업의 1,835억 원보다도 훨씬 컸다.

하지만 2013년 대리점 강매 사건으로 인해 주가에 타격을 입었고, 2013년 5월 27일 기준 시가총액 6,883억 원으로, 시가총액 6,472억 원인 매일유업과 점점 격차가 좁아졌다.[8] 2013년 연간 매출은 9.9% 감소하였고 영업이익 174억 5600만 원 적자로 1994년 이래 최초로 적자로 돌아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사건 후부터 2014년도 초까지는 8~90만 원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14년 5월 22일에는 96만 5천 원으로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회복세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9]

하지만 무리한 경쟁과 중국의 영향으로 다시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 사건의 영향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는 중으로 6월 17일경에는 77만 원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2017년 들어서도 2012년 매출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7년에 들어서면서 영업이익률이 92%나 급감하면서 수익률이 크게 하락했다. 갑질 사건 이후 남양의 시가총액은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는 맞지만 1년 사이에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매출액의 큰 변동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지 개선과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가 늘어났음에도 큰 변화가 없음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 국내 이미지 악화 타개를 위한 해외 수출도 사드 논란으로 인해서 타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저출산으로 인한 신생아 감소로 인해 주 수익품목인 분유 판매량에도 타격을 입자 외부 인사를 들이면서 회사 경영 구조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관련 기사

이후, 남양유업은 자사의 로고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 중인데 대표적으로 백미당이 있다. 그 외에 대학우유의 제조를 맡았으나 해당 대학 산하 우유 로고가 적혀있어 자세히 보면 남양유업과 관련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선 남양유업의 제품 중 이렇게 로고나 제조사 이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제품을 판별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남양 혹은 자회사의 신제품이 나오면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이 때 글의 내용엔 "좋은 남양 제품을 소개한다.", "남양인지 꼭 확인하시고 구매합시다." 등등의 좋은 말만 잔뜩 써 있지만, 영업 방해로 고소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일 뿐 그 속뜻은 불매하자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내리게 할 수도 없는 게 '남양제품 좋다면서 왜 남양제품 알리는 것을 막는가?'라는 스트라이샌드 효과까지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남양유'이라 하여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남양제품인지 여부를 판별해주는 웹도 등장했다. 해당 웹페이지

2020년 총 매출액은 9,536억 7,200만원으로 결국에는 11년 만에 매출액 1조원대가 깨졌다. 영업적자 전환은 덤. # @

2021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남양유업 세종공장에 2개월 영업정지를 내렸다.[10]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주가 조작 의혹도 있다.

2023년 7,62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출 감소세를 이어갔다.

2024년 2분기까지 무려 20분기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내다가 2024년 3분기에야 간신히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마저도 계속 이어질지 의문인 상황이다.

2.2. 구 오너 일가

파일:남양유업 가계도.png
남양유업 가계도

기업 자체의 논란거리 외에는 창업자의 외손주인 황하나가 마약 관련 이슈로 잊힐 만하면 한번씩 뉴스를 타주면서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남양유업의 노력에 야무지게 찬물을 끼얹어 주고 있다.

그런데 황하나의 어머니 홍영혜는 사실 창업주 홍두영서녀라는 말이 있다. 소문이 사실이건 아니건 홍영혜 일가는 경영권과 연이 전혀 없고, 큰오빠 홍원식과도 20여년간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고로 남양 입장에서는 이 문제만큼은 진짜 억울할 만도 한 셈. 굳이 가족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황하나의 외삼촌(그것도 이복외삼촌) 홍원식보단 이미 작고한 외조부 홍두영이나 황하나의 부모에게 물어야 맞긴 하다. 남양측의 해명대로 황하나 일가와 현재 남양과의 관계는 창업주(현 회장의 아버지)와 혈연관계라는 것, 딱 거기까지가 다고 회사와 진짜로 완전히 무관한 상태기에[11] 남양측도 기업과 무관한 사람이니 엮지 말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론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결국 불가리스 과장광고 사건의 여파로, 홍원식 회장은 2021년 5월 4일부로 대국민 사과를 열어 '회장직을 사퇴하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조카 황하나 문제에 관해서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2021년 5월 27일, 홍원식 전 회장을 비롯한 홍씨 일가가 경영권을 포함한 주식 지분 전체를 사모펀드한앤컴퍼니 유한회사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53.08%의 지분을 3,107억원에 매각한다. 57년을 이어오던 경영권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2021년 7월 30일, 예정되어 있는 임시 주주 총회를 갑작스레 취소한다. 여기서 남양유업 오너일가가 가진 지분을 넘기는 안건을 상정하기로 되어 있었고 회의가 끝난 후 한앤컴퍼니와 지분매각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이 안건을 빼버리고 주주 총회도 6주뒤인 9월 14일로 연기해버렸다. 한앤컴퍼니는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 법적대응도 언급했다. #

8월 말, 사퇴한다던 홍원식이 3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또한 회삿돈 유용 의혹을 받아 해임된 장남 홍진석 상무는 5월 26일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복직했다.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도 미등기 임원으로 승진했다.# 오너 일가 그 누구도 결국은 책임지지 않은 것. 이로 인해 과연 경영을 쇄신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홍원식 회장이 한앤컴퍼니 측에 주식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매각이 무산되었다는 보도가 떴다.# 사실상 기존 오너가 다시금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것. 이에 주가는 급락. '매각 쇼'에 불성실공시로 추가 처벌까지 받게 생겼다.

이 와중에 2021년 11월 대유홀딩스에 3200억에 지분을 매각하는 양해서를 체결하고 계약금 320억을 받았는데 계약 조건을 지키지 않은데다 법원이 가처분을 통해 무효화 시키면서 2022년 3월 15일 자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전문가들은 대유가 선납한 320억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중.

2022년 9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한앤컴퍼니의 주식양도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홍원식 일가의 "외식사업부 분할 논의 중 한앤코의 일방적 주식양도 청구"나 "동의받지 않은 김·장 법률사무소의 쌍방대리" 등의 주장은 모두 기각되었다. 판결이 확정된다면 홍원식 일가는 보유주식 전액을 한앤코에 팔아야 한다. 이에 홍씨 측은 입장문을 내고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26일, 서울중앙지검은 재벌가에 만연한 마약 실태를 추적해 20명을 적발하고 17명을 재판에 넘겼는데# 그 중 '남양유업 창립자 차남의 아들' 이 포함되어 있다.[12] 간신히 황하나가 잊혀질 쯔음 또 마약 이슈가 터진 셈이다.

2023년 11월 한앤코는 홍 회장을 상대로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으로 선임된 남양유업 감사가 회사를 대표해 홍 회장을 상대로 한 5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있다. 두 건 모두 2024년 3월 14일 첫 재판이 열린다.#
갑질, 거짓말, 외손녀 마약…60년 창업주 일가 경영 '끝' / SBS 8뉴스
2024년 1월 4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한앤코가 홍 회장과 가족을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따라서 지난 1964년 창립한 남양유업 오너 경영이 2세 경영을 넘기지 못한 채 6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

3. 지배구조

2024년 6월 기준
<rowcolor=#fff> 주주명 지분율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한앤코유업홀딩스
52.63%

4. 비판 및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남양유업/논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이후 회사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심지어 경쟁사 제품을 허위 비방하는 글까지 작성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며 회사 브랜드 가치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양도 이를 알고 있는지 신규 제품에는 남양 로고를 작게 넣거나, 아예 빼버리거나, 빨대 등으로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마저도 찾아내 먹을 것처럼 글을 써 공유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 남양의 브랜드 가치는 아무 것도 안 적혀 있는 것만도 못한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13]

5. 로고

파일:남양유업 1세대 로고.jpg 파일:남양유업 2세대 로고.jpg 파일:남양유업 3세대 로고.jpg 파일:남양유업 로고.svg
1964년 ~ 1978년 1979년 ~ 1996년 1996년 ~ 2014년 2014년 ~ 현재

6. 상품 목록

파일:남양유업 로고.svg파일:남양유업 로고 화이트.svg 남양유업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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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품
맛있는우유GT 아인슈타인 초코에몽 산양유아식 임페리얼드림
불가리스 이오 떠먹는 불가리스 드빈치
커피/기타
프렌치카페루카스나인 써핑쿨 17차 앳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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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된 제품은 †로 표기한다.

6.1. 유제품

6.1.1. 우유

<rowcolor=#fff> 상품 이미지 상품명 세부 상품명 Note
파일:남양_맛있는우유.png 맛있는 우유
파일:남양_아인슈타인.jpg 아인슈타인
파일:초코에몽.jpg 초코에몽
파일:남양유업_초코에몽시그니쳐.jpg 초코에몽 시그니쳐
파일:남양유업_아침목장우유.jpg 아침목장 우유
파일:남양유업_옳은유기농우유.jpg 옳은 유기농 우유
파일:남양유업_앞선아이.jpg 앞선아이
파일:남양유업_하루근력.jpg 하루근력 중장년우유
파일:남양유업_34우유.jpg 3.4 우유
파일:남양유업_오미남오미녀.jpg 오미남 오미녀
파일:남양유업_깜유.jpg 깜유 검은콩 우유
†칼로리를 뺀
†남양밀크
†다우
VIP 비타민 우유

6.1.2. 발효유

6.1.3. 분유

6.1.4. 치즈

6.1.5. 음료

6.1.6. 두유

6.1.7. 커피

6.2. OEM/ODM제품

7. 브랜드

8. 기타



[1] 오너 일가인 '남양 홍씨'의 본관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것이다.[2] 1976년생.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졸업. 남양유업 수석본부장, 경영혁신위원장, 경영지배인을 지냈고, 건강한사람들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3] 2017년 1월 이전에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120 (남대문로1가 18)[4] 서울우유협동조합, 매일유업, 남양유업[5] 1919년생이었다는 얘기도 있다.[6] 이때 우량아 선발대회 초기 우승자가 우리가 아는 가수 겸 작곡가 주영훈.[7] 만약 애초에 남양이 이미지가 좋은 회사였다면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은 폭언을 일삼은 영업사원의 개인 일탈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그렇지도 않은데다가 후속조치 또한 엉망이라 사태가 점점 커져갔던 것.[8] 남양유업이 강매사건의 여파로 부진한 동안, 반사이익을 얻은 매일유업의 주가가 상당히 많이 상승했다.[9] 하지만 110만 원이 넘던 원래 주가를 생각하면 여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4만 원이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9만 원 올라간 건 고작 37.5% 정도. 결과적으로 반도 회복 못 했다. 그만큼 사건의 여파가 컸다는 반증이라고 할수 있는 부분.[10] 영업정지는 현행법상 2개월까지만 가능하다. 즉, 가능한 범위내에서 최대의 중징계를 때린 것.[11] 범롯데가신동학과 비슷하다.[12] 가계도에서 볼 수 있듯이 창립자 차남의 아들은 1명 밖에 없다. 이름만 복자 처리 했을 뿐 실제로는 누구인지 뻔하다.[13] 자사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백미당은 남양이라고 이름을 내걸지 못해서 Since 1964라는 창업연도를 대신 내걸었는데, 그래봤자 1964년에 창업해서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유업회사는 남양밖에 없어서 가린 의미가 없다.[14] 당시 광고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초상을 CG로 입히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했던 배한성의 '모차르트도 넘어간 맛'이라는 나레이션까지 삽입되었다.[15] 뇌전증 환자들을 위한 케톤 식이요법용 특수조제식품. 저탄고지 다이어트 용으로도 많이 마신다.[16] 2006년 이전에는 '生 시리즈'와 'DHA 오렌지 100/포도 100'이었으며 2006년 'the 本 시리즈'로 리뉴얼을 거쳐 2009년 '앳홈'을 출시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17] 김태희이 모델이라, 김태희 커피라고 불리기도 하고, 참고로 맥심커피믹스는 김연아 커피라고 불리기도 함[18] 현재는 부산우유에서 위탁생산함[19] 에이클래스 우유 900mL 제품은 매일유업에서 생산한다.[20] 한때 생산물량이 부족하여 일부 제품을 남양유업에 위탁생산하였으나, 2019년 7월부터 전량 연세우유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연세우유 측에 확인 받음.[21] 계열사 남양F&B가 생산하고 BGF리테일에 납품[22] 1980년대 초기 제품이 아닌 2019년 복각판.[23] FN으로 표기된 제품 한정.[24]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이 이마트의 PB상품 브랜드명이며 이마트 산하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에서 따온 이름은 아니다.[25] 봉명그룹 계열 식품 제조 회사. 구 삼주유업.[26] 다만 2004년 전라남도 나주시에 커피 가공 공장을 신설하기는 했다.[27] 기사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남양유업이 남양알로에의 인지도를 저렇게 이용해먹은 시기는 남양유업의 회사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인 2010년대 초반도 더 전의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말해 남양유업이라는 회사 자체가 이미 저 때부터 싹수가 보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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