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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1:28:22

지미 헨드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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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파일:Are You Experienced.jpg
파일:Axisboldaslove.jpg
파일:Electric Ladyland.jpg
Are You Experienced
1967
Axis: Bold As Love
1968
Electric Ladyland
1968
}}}}}}}}}
}}}}}} ||
파일:지미 헨드릭스 로고.png
지미 헨드릭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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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이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JIMI HENDRIX EXPERIENCE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지미 헨드릭스, 노엘 레딩, 미치 미첼
입성 연도 1992년
후보자격 연도 1992년
후보선정 연도 1992년 }}}}}}}}}

{{{#!wiki style="margin:-10px -10px"<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c1d1f>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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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심볼.jpg 음악
입성날짜 1991년 11월 14일
위치 6627 Hollywood Blvd. }}}}}}}}}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 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놀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파일:BFB7FA20-A75F-49D2-A004-A8C706604E1E.png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2004년 헌액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1960년대: 비틀즈
1970년대: 밥 말리
1980년대: 마돈나
1990년대: U2
2004년 헌액
50년대: 클리프 리처드 & 섀도우즈
60년대: 롤링 스톤스
70년대:
80년대: 마이클 잭슨
90년대: 로비 윌리엄스
2005년 헌액
핑크 플로이드
유리드믹스
아레사 프랭클린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조이 디비전 / 뉴 오더
더 후
킹크스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
2006년 헌액
제임스 브라운
레드 제플린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윌슨
본 조비
프린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조지 마틴
}}}}}}}}}

파일:Grammy.svg
'''[[그래미 어워드#s-5.3.2|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word-break: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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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5px"
<colbgcolor=#fff,#353535>1963년빙 크로스비
1965년프랭크 시나트라
1966년듀크 엘링턴
1967년엘라 피츠제럴드
1968년어빙 벌린
1971년엘비스 프레슬리
1972년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1984년척 베리, 찰리 파커
1985년레너드 번스타인
1986년베니 굿맨, 롤링 스톤스, 안드레스 세고비아
1987년로이 에이커프, 베니 카터, 엔리코 카루소, 레이 찰스, 패츠 도미노, 우디 허먼, 빌리 홀리데이, 비비 킹, 아이작 스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행크 윌리엄스
1989년프레드 아스테어, 파블로 카잘스, 디지 길레스피, 야샤 하이페츠, 리나 혼, 레온타인 프라이스, 베시 스미스, 아트 테이텀, 사라 본
1990년냇 킹 콜, 마일스 데이비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폴 매카트니
1991년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1992년제임스 브라운, 존 콜트레인, 지미 헨드릭스, 머디 워터스
1993년쳇 앳킨스, 리틀 리처드, 델로니어스 몽크, 빌 먼로, 피트 시거, 패츠 월러
1994년빌 에반스, 아레사 프랭클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995년팻시 클라인, 페기 리, 헨리 맨시니, 커티스 메이필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96년데이브 브루벡, 마빈 게이, 게오르그 솔티, 스티비 원더
1997년바비 블랜드, 에벌리 브라더스, 주디 갈란드, 스테판 그라펠리, 버디 홀리, 찰스 밍거스, 오스카 피터슨, 프랭크 자파
1998년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1999년조니 캐쉬, 샘 쿡, 오티스 레딩, 스모키 로빈슨, 멜 토메
2000년해리 벨라폰테, 우디 거스리, 존 리 후커, 미치 밀러, 윌리 넬슨
2001년비치 보이스, 토니 베넷,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밥 말리, 더 후
2002년카운트 베이시, 로즈메리 클루니, 페리 코모, 알 그린, 조니 미첼
2003년에타 제임스, 조니 마티스, 글렌 밀러, 티토 푸엔테, 사이먼 앤 가펑클
2004년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2005년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터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턴,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2006년데이비드 보위, 크림, 멀 해거드, 로버트 존슨, 제시 노먼, 리처드 프라이어, 더 위버스
2007년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먼,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2008년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2009년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2010년레너드 코헨, 바비 다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2011년줄리 앤드류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2012년올맨 브라더스 밴드, 글렌 캠벨,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조지 존스, 더 멤피스 혼즈, 다이애나 로스, 길 스콧 헤론
2013년글렌 굴드, 찰리 헤이든, 라이트닝 홉킨스, 캐롤 킹, 패티 페이지, 템테이션스
2014년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2015년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2016년루스 브라운, 셀리아 크루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허비 행콕, 제퍼슨 에어플레인, 린다 론스태드, Run-D.M.C.
2017년셜리 시저, 아마드 자말, 찰리 프라이드, 지미 로저스, 니나 시몬, 슬라이 스톤, 벨벳 언더그라운드
2018년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2019년블랙 사바스, 조지 클린턴 / 팔리아멘트-펑카델릭, 빌리 엑스타인, 도니 해서웨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샘 & 데이브, 디안 워윅
2020년시카고, 로버타 플랙, 아이작 헤이즈, 이기 팝, 존 프라인, 퍼블릭 에너미, 시스터 로제타 사프
2021년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라이오넬 햄프턴, 마릴린 혼, 솔트 앤 페파, 셀레나, 토킹 헤즈
2022년보니 레잇
2023년바비 맥퍼린, 너바나, 마 레이니, 슬릭 릭, 나일 로저스, 슈프림즈, 하트
같이 보기: 공로상 수상자 · 레전드상 수상자}}}}}}}}}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999><bgcolor=#fff,#191919> 파일:180322_libraryofcongress_900px.jpg파일:libraryofcongress_dark.png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2000년대 등재 앨범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02년 등재
루이 암스트롱 <The Complete Hot Five and Hot Seven Recordings> (1920~1928)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엘비스 프레슬리, Sun Records sessions (1954-1955)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3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The Famous 1938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1971)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1975)
2004년 등재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Pet Sounds> (1966)
올맨 브라더스 밴드, <At Fillmore East> (1971)
존 윌리엄스,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Nevermind> (1991)
2005년 등재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웬디 카를로스 <Switched On Bach>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Daydream Nation> (1988)
2006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7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행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Thriller> (1982)
2008년 등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57)
더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1966)
2009년 등재
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59)
빌 에반스 트리오,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6월 25일)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 ||
2010년대 등재 앨범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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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10년 등재
헨리 맨시니, <The Music from Peter Gunn> (1959)
캡틴 비프하트 앤 히스 매직 밴드, <Trout Mask Replica> (1969)
로저 페인, <Songs of the Humpback Whale> (1970)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1년 등재
빈스 과랄디 트리오, 애니메이션 <A Charlie Brown Christmas> 사운드트랙 (1965)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Purple Rain> (1984)
2012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오넷 콜먼, <The Shape of Jazz to Come> (1959)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 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Soundtrack> (1977)
2013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 (1954)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79)
U2, <The Joshua Tree> (1987)
2014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도어즈,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5년 등재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 (1970)
조지 칼린, <Class Clown> (1972)
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2016년 등재
소니 롤린스, <Saxophone Colossus> (1956)
마티 로빈스, <Gunfighter Ballads and Trail Songs> (1959)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1964)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Remain in Light> (1980)
N.W.A,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7년 등재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웨스 몽고메리,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1960)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Rumours> (1977)
Run-D.M.C., <Raising Hell> (1986)
2018년 등재
덱스터 고든, '''' (1962)
뮤지컬 <헤어>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68)
커티스 메이필드, <Super Fly> (1972)
신디 로퍼, <She's So Unusual> (1983)
<Schoolhouse Rock!: The Box Set> (1996)
JAY-Z, <The Blueprint> (2001)
2019년 등재
더스티 스프링필드, <Dusty in Memphis> (1969)
칩 트릭, <Cheap Trick at Budokan> (1978)
티나 터너, <Private Dancer> (1984)
셀레나, <Ven Conmigo> (1962)
닥터 드레, <The Chronic> (1992)
}}}}}}}}} ||
2020년대 등재 앨범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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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20년 등재
앨버트 킹, <Born Under a Bad Sign> (1967)
지미 클리프, <The Harder They Come> (1972)
팻 메시니, <Bright Size Life> (1976)
자넷 잭슨,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 (1989)
Nas, <Illmatic> (1994)
2022년 등재
듀크 엘링턴, <Ellington at Newport> (1956)
보니 레잇, <Nick of Time> (1989)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The Low End Theory> (1991)
Wu-Tang Clan,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1993)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7)
앨리샤 키스, <Songs In A Minor> (2001)
2023년 등재
Crosby, Stills, Nash & Young, <Déjà Vu> (1970)
더 폴리스, <Synchronicity> (1983)
마돈나, <Like a Virgin> (1984)
퀸 라티파, <All Hail the Queen> (1989)
}}}}}}}}} ||
}}}}}}}}} ||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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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이 2004년 엘비스 프레슬리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로큰롤(Rock And Roll)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선정했다.
롤링 스톤이 직접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중진, 음악평론가 등 총 55명의 패널을 뽑아 이들에게 투표를 실시한 결과다.
2011년 한 차례 개정했으나 기존 아티스트 순위는 거의 변동이 없어 새로 업데이트 된 아티스트에 대한 재평가가 주로 이뤄졌다.
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 스톤스 척 베리
6위7위8위9위10위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브라운 리틀 리처드 아레사 프랭클린 레이 찰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위-50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밥 말리 비치 보이스 버디 홀리 레드 제플린 스티비 원더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샘 쿡 머디 워터스 마빈 게이 벨벳 언더그라운드 보 디들리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오티스 레딩 U2 브루스 스프링스틴 제리 리 루이스 패츠 도미노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라몬즈 프린스 더 클래시 더 후 너바나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니 캐시 스모키 로빈슨 앤 더 미라클스 에벌리 브라더스 닐 영 마이클 잭슨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마돈나 로이 오비슨 존 레논 데이비드 보위 사이먼 앤 가펑클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도어즈 밴 모리슨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퍼블릭 에너미 버즈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재니스 조플린 패티 스미스 Run-D.M.C. 엘튼 존 더 밴드
51위부터는 문서 참조.
}}}}}}}}}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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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위-65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톰 베를렌 존 리 후커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보니 래잇 믹 테일러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조니 마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 스코티 무어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존 메이어 피터 그린 리처드 톰슨 스티브 크루퍼 캐리 브라운스타인
66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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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파일:롤링 스톤 로고.svg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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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비비 킹 척 베리 에디 밴 헤일런 듀언 올맨 피트 타운젠드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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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지 해리슨 스티비 레이 본 앨버트 킹 데이비드 길모어 프레디 킹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데릭 트럭스 닐 영 레스 폴 제임스 버턴 카를로스 산타나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쳇 앳킨스 프랭크 자파 버디 가이 앵거스 영 토니 아이오미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브라이언 메이 보 디들리 조니 라몬 스코티 모어 엘모어 제임스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라이 쿠더 빌리 기븐스 프린스 커티스 메이필드 존 리 후커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랜디 로즈 믹 테일러 디 에지 스티브 크로퍼 톰 모렐로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믹 론슨 마이크 블룸필드 휴버트 서믈린 마크 노플러 링크 레이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제리 가르시아 스티븐 스틸스 조니 그린우드 머디 워터스 리치 블랙모어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조니 마 클라렌스 화이트 오티스 러쉬 조 월시 존 레논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앨버트 콜린스 로리 갤러거 피터 그린 로비 로버트슨 론 애시튼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디키 베츠 로버트 프립 조니 윈터 듀언 에디 슬래시
<rowcolor=#fff>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레슬리 웨스트 T-본 워커 존 맥로플린 리처드 톰슨 잭 화이트
<rowcolor=#fff>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로버트 존슨 존 프루시안테 커트 코베인 딕 데일 조니 미첼
76위부터는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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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최신 버전,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어클레임드 뮤직의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앨범/노래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사이트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밥 딜런롤링 스톤스데이비드 보위브루스 스프링스틴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라디오헤드레드 제플린닐 영프린스비치 보이스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R.E.M.엘비스 프레슬리칸예 웨스트더 후U2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마일스 데이비스벨벳 언더그라운드너바나더 클래시지미 헨드릭스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마빈 게이핑크 플로이드엘비스 코스텔로스티비 원더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마돈나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더 스미스마이클 잭슨밴 모리슨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토킹 헤즈켄드릭 라마아케이드 파이어아레사 프랭클린비요크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JAY-Z제임스 브라운톰 웨이츠존 콜트레인PJ 하비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킹크스퍼블릭 에너미버즈비스티 보이즈조니 미첼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벡 한센더 큐어존 레논도어즈LCD 사운드시스템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블러크라프트베르크레너드 코헨픽시즈루 리드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조니 캐쉬소닉 유스록시 뮤직오아시스플리트우드 맥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듀크 엘링턴더 밴드아웃캐스트다프트 펑크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사이먼 앤 가펑클프랭크 시나트라척 베리프랭크 오션비욘세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조이 디비전AC/DC윌코오티스 레딩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뉴 오더메탈리카화이트 스트라입스라몬즈더 폴리스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스투지스브라이언 이노엘튼 존뱀파이어 위켄드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섹스 피스톨즈매시브 어택레이 찰스스틸리 댄블랙 사바스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케이트 부시악틱 몽키즈찰스 밍거스패티 스미스포티스헤드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건즈 앤 로지스페이브먼트수프얀 스티븐스알 그린펑카델릭
101위 ~ 4112위: 공식 사이트}}}}}}}}}

파일:AllMusic_Text_Logo.svg.png
ALLMUSIC 선정 올타임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통합)
{{{#!wiki style="margin: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6px"
올뮤직의 2017년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세계 최대의 음악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및 웹진으로, '모든 음악'이라는 사이트 이름에 걸맞게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전 세계 온갖 음반, 뮤지션과 그에 관한 정보와 리뷰를 찾아볼 수 있다. 세계의 300만 장 이상의 온갖 음반, 100만 명 이상의 음악가의 데이터, 3,000만 이상 트랙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아티스트의 순위를 매겼다. '통합' 아티스트 순위 리스트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밥 딜런롤링 스톤스데이비드 보위벨벳 언더그라운드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비치 보이스킹크스닐 영지미 헨드릭스더 버즈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위-60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레드 제플린마일스 데이비스브라이언 이노크라프트베르크존 콜트레인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제임스 브라운스투지스소닉 유스핑크 플로이드더 후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블랙 사바스행크 윌리엄스엘비스 프레슬리더 클래시라몬즈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조니 미첼스티비 원더섹스 피스톨즈척 베리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프린스마빈 게이찰리 파커듀크 엘링턴너바나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N.W.A머디 워터스조니 캐시더 큐어더 스미스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닉 드레이크빅 스타R.E.M조이 디비전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루이 암스트롱뉴 오더메탈리카픽시즈샘 쿡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빌리 홀리데이마이클 잭슨밥 말리레너드 코헨라디오 헤드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블랙 플래그프랭크 자파MC5록시 뮤직U2
}}}}}}}}} ||
공식 사이트 : 링크, 기사 : #}}}}}}}}}

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60년대 최고 아티스트
<rowcolor=#000,#fff> {{{#!wiki style="margin: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5px"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비틀즈 밥 딜런 롤링 스톤스 비치 보이스 지미 헨드릭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버즈 더 후 존 콜트레인 아레사 프랭클린
''''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기타 회사 깁슨에서 2010년 발표한 "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의 순위이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 척 베리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제프 벡 에디 밴 헤일런 쳇 앳킨스 로버트 존슨 피트 타운젠드
11위부터는 링크 참조.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7년 영국 대중음악 전문잡지 “Q” 매거진이 'Q magazine 21st anniversary issue- 204 page collector's issue'에서 음악의 판도를 바꿔놓은 21인을 선정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브라운 밥 딜런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크라프트베르크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섹스 피스톨즈 브라이언 이노 마이클 잭슨 마돈나 R.E.M.
퍼블릭 에너미 리 스크레치 페리 이안 커티스 이안 브라운 커트 코베인 라디오헤드 데이먼 알반 }}}}}}}}}

파일:A75A5D13-D37C-4A62-94E4-4B9BA96D570A.png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 2010년 미국의 케이블 음악채널 VH1에서 음악평론가와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종사자 등 총 200명 이상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Top 100' 순위를 정했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마이클 잭슨레드 제플린롤링 스톤스밥 딜런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지미 헨드릭스프린스엘비스 프레슬리제임스 브라운스티비 원더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밥 말리데이비드 보위더 후너바나비치 보이스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마돈나핑크 플로이드U2마빈 게이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브루스 스프링스틴더 클래시AC/DC벨벳 언더그라운드척 베리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닐 영아레사 프랭클린엘튼 존라디오헤드에어로스미스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존 레논블랙 사바스건즈 앤 로지스티나 터너조니 캐시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폴 매카트니플리트우드 맥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킹크스폴리스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밴 헤일런메탈리카레이 찰스조니 미첼알 그린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라몬즈JAY-Z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팔리아멘트-펑카델릭샤데이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빌리 조엘비욘세리틀 리처드퍼블릭 에너미피터 가브리엘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키스스투지스칩 트릭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휘트니 휴스턴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크림제네시스노토리어스 B.I.G.토킹 헤즈도어즈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저스틴 팀버레이크콜드플레이오티스 레딩투팍 샤커데프 레파드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R.E.M.재니스 조플린밴 모리슨더 큐어러시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Run-D.M.C.레너드 스키너드주다스 프리스트에미넴메리 제이 블라이즈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ABBA스틸리 댄어스 윈드 & 파이어커티스 메이필드더 밴드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N.W.A.조지 마이클비 지스비스티 보이즈엘비스 코스텔로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그린 데이LL Cool J펄 잼머라이어 캐리아웃캐스트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저니프리텐더스디페시 모드홀 앤 오츠앨리샤 키스
출처}}}}}}}}}

파일:A75A5D13-D37C-4A62-94E4-4B9BA96D570A.png 선정 가장 위대한 하드 록 아티스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VH1이 2000년 발표한 가장 위대한 하드 록 아티스트 순위.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지미 헨드릭스 AC/DC 메탈리카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너바나 밴 헤일런 더 후 건즈 앤 로지스 KISS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에어로스미스 섹스 피스톨즈 사운드가든 핑크 플로이드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크림 라몬즈 오지 오스본 더 클래시 앨리스 쿠퍼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펄 잼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칩 트릭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모터헤드 이기 팝 러시 머틀리 크루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데프 레파드 도어즈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앨리스 인 체인스 제인스 애딕션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프랭크 자파 야드버즈 MC5 닐 영 & 크레이지 호스 스톤 템플 파일럿츠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Ted Nugent 킹크스 Nine Inch NailsZZ Top 판테라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스콜피온즈 The Rollins Bird재니스 조플린Smashing Pumpkins슬레이어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Thin LizzyFaith No MoreKornSonic Youth블루 오이스터 컬트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White ZombieHeart앤스랙스Bad CompanyNew York Dolls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제쓰로 툴Ministry보스턴SteppenwolfThe Cult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Joan Jett & The Blackhearts롤링 스톤스Husker Du메가데스Living Colour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레너드 스키너드푸 파이터즈Twisted SisterPat BenatarSpinal Tap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본 조비HoleMarilyn MansonRattGreen Day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PixiesQueensrycheKing's XUFOWhitesnake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포리너킹 크림슨ToolLita Ford레인보우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DanzigBlack CrowesLenny Kravitz예스Fugazi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Meat LoafPrimusMountainBed BrainsQuiet Riot
}}}}}}}}} ||
같이 보기: VH1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 ||

{{{#!wiki style="margin:0 -10px"
{{{#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5px"
※ 2015년 빌보드 직원들이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 기준이 아닌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Top 25를 선정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프레디 머큐리 지미 헨드릭스 엘비스 프레슬리 재니스 조플린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폴 매카트니 믹 재거 척 베리 데이비드 보위 패티 스미스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커트 코베인 스티비 닉스 짐 모리슨 조니 미첼 로버트 플랜트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오지 오스본 액슬 로즈 밥 딜런 보노 데비 해리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로라 제인 그레이스 조 스트러머 캐슬린 한나 스티븐 타일러 존 본 조비
같이 보기: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 가장 위대한 록 가수 · 가장 위대한 알앤비 가수 · 가장 위대한 래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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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2D604><colcolor=#8E0A6F>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파일:G5kVWkn.jpg
본명 James Marshall Hendrix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1]
출생 1942년 11월 27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사망 1970년 9월 18일 (향년 27세)[2]
영국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소속 King Kasuals (1962 - 1964)
Jimmy James And The Blue Flames (1966)
The Jimi Hendrix Experience (1967 - 1969)
Band Of Gypsys (1970)
병역 미합중국 육군 제101공수사단 의병 제대
서명 파일:지미 헨드릭스 서명.pn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E2D604><colcolor=#8E0A6F> 가족 아버지 James Allen Hendrix(1919년 6월 10일생)
어머니 Lucille Jeter(1925년생)
동생 Leon Hendrix(1948년생)
동생 Joseph Hendrix(1949년생)
동생 Kathy Hendrix(1950년생)
동생 Pamela Hendrix(1951년생)
학력 가필드 고등학교 (퇴학)
신체 178cm, 70kg
종교 무종교
장르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 록, 애시드 록, 하드 록
활동 기간 1962년 - 1970년[3]
사용 악기 보컬, 일렉트릭 기타
레이블 폴리도르, 리프라이스, 캐피톨, 버클리, 트랙, Sue, PPX, RS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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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일생
3.1. 어린 시절3.2. 세션맨 시절3.3.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3.4. 익스피리언스 해체, 그리고 사망
4. 평가와 영향력5. 사용 장비6. 앨범7. 여담8. 대중매체
8.1. 왼손잡이8.2. 한국에서의 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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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 쪽이 내 심장과 가까우니까.
Shake my left hand man, it's closer to my heart.
1969년 5월 14일 로버트 프립이 처음으로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공연을 감상한 뒤 그에게 남겼던 말.[4][5]
미국의 기타리스트.

2. 상세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록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메인 보컬리스트였다.

1960년대 후반에 주로 활동한 기타리스트로,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물론 취향의 차이에 따라서, 선호하는 기타리스트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순수하게 실력으로 따졌을 때 음악적 성취도가 제일 높은 기타리스트는 지미 헨드릭스임에는 전문가 대부분 이견이 없다.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지만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영국에서부터였고, 초창기엔 활동도 영국에서 더 많이 했다.

롤링 스톤이 발표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자 100명’에서 1위에 등극했다. 자세한 건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문서 참조.

3. 일생

3.1. 어린 시절

파일:external/www.wikitree.com/Hendrix-750.jpg
가족 사진[6]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미국, 인종차별이 합법인 시절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아버지 제임스 알렌 '알' 헨드릭스와 어머니 루실 지터 사이에서 태어났다.[7] 루실이 지미를 출산했을 때는 겨우 17살밖에 되지 않았다. 이 부부는 지미를 낳은 이후에도 5명의 자녀를 가졌으나 가난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 하나둘 입양시키거나 위탁보호 시설로 보냈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서 3명의 자식은 장애, 기형아로 태어났다. 그나마 바로 아래 동생인 레온 헨드릭스는 6살까지는 가족과 같이 살다가 지미의 집에서 가까운 위탁 가정에 맡겨져 어린 시절 두 형제는 자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미의 어머니 루실 지터는 밝은 피부와 직모를 가진 빼어난 용모의 여인이었다. 루실은 알 헨드릭스와 이혼 후 고혈압으로 불과 3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데,[8] 사춘기에 일어난 젊은 어머니와의 사별은 지미 헨드릭스의 성격과 음악에 큰 영향을 준다.

부모의 잦은 부부싸움[9] 끼니조차 잇기 힘든 빈곤으로 어린 지미는 캐나다 밴쿠버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주 보내졌다. 할머니는 지미에게 체로키 인디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직접 숄과 판초를 짜서 손자에게 입혀주었다. 결국 지미의 부모는 이혼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 알 헨드릭스가 지미 형제들에 대한 양육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미의 이모, 할머니 그리고 이웃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보살폈고, 지미 헨드릭스는 이들 사이를 떠돌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다.[10]

어릴 적 일화 중에,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지 못했는데, 지미 헨드릭스 방에 들어가보면 빗자루 지푸라기들이 매일 널려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지미가 빗자루를 들고 방에서 미친 듯이 기타 치는 상상을 하면서 빗자루를 "연주"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하도 빗자루를 기타라고 상상하며 들고 다녀서, 학교 직원이 "얘 기타 안 사주면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악기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지미 헨드릭스가 본격적으로 블루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생긴다. 지미의 아버지가 잠시 형편이 풀려서 낡은 집을 구입하고 하숙을 쳤는데, 하숙으로 들어온 어느 부부가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지미는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로버트 존슨, 라이트닝 홉킨스 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14살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쿨렐레를 찾게 되고, 이걸 가지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들, 특히 "Hound Dog"를 즐겨 연주했다.[11] 물론 악보 따위 없고 그냥 귀로 듣고 따서 연주.

15살에 아버지가 선물해준 5달러짜리[12] 어쿠스틱 기타가 첫 기타다운 기타였고, 이때부터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어깨 너머와 귀동냥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라디오와 음반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귀로 카피했다. 밴드도 결성해서 연주도 했다. 그러나 밴드 음악을 하면서 어쿠스틱 기타는 음량이 작아서 소리가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침내 16살 때 그의 아버지가 'Supro Ozark 1560 S'라는 일렉트릭 기타를 지미에게 선물해준다.[13] 일렉 기타를 손에 넣은 지미 헨드릭스는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시애틀의 한 유대교 회당 지하실에서 첫공연을 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밴드에서 짤리기도 했다. 이후에 지미 헨드릭스는 벨벳톤스(The Velvetones), 락킹 킹스(The Rocking Kings) 등의 밴드에 가입하고,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지미가 밴드 활동에 몰입할수록 그가 학교에 나타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히 학업 성적도 떨어졌다. 결국 지미 헨드릭스는 출석수 미달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원래 왼손잡이였는데, 처음에 아버지가 오른손잡이로 교육을 시켰다. 이는 당시 왼손을 쓰는 것은 악마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14] 그래서 아버지가 방에 있을 때는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 아버지가 방을 떠나면 왼손으로 연주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원래 아버지 때문에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가 정확한 리듬감을 요하는 피킹을 왼손으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왼손잡이 연주로 바꿨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인해 헨드릭스는 양손으로 연주가 가능했다. 이 특이한 스킬은 헨드릭스가 악기점에서 이런저런 기타 오디션을 볼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3.2. 세션맨 시절

뒷줄 제일 왼쪽에서 왼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세션맨이 바로 지미 헨드릭스

1961년 헨드릭스는 도난 차량에 타고 있었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당시에는 입대하는 조건으로 감형을 해주기도 했는데, 지미는 3년 동안 육군에 복무하기로 한다.[15] 그는 제101공수사단에 배치되길 희망했는데, 위험 수당으로 달마다 55달러를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그가 바라던 공중강습사단에 배치되었지만, 곧 군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16]와 캐쥬얼스(The Kasuals)를 결성, 밴드 활동을 계속한다. 기타 천재의 대명사인 지미 헨드릭스이지만 군 부대 내에서 지나치게 연습을 해서 상관으로부터 "그만 좀 하지?"라는 빈정을 들었다고도 한다. 군 복무 시절 지미 헨드릭스는 하루 빨리 제대해서 제대로 음악을 하고 싶어했는데, 결국 소원대로 낙하산 훈련 중 부상을 입고 의병 제대를 한다.[17][18]

막상 제대하고 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제대하고 받은 급여를 버스비도 안 남기고 술집에서 다 써버렸기 때문. 지미는 다시 부대로 되돌아가 동료에게 팔았던 기타를 되찾고 이런 저런 밴드들을 거치면서 세션 활동을 한다. 당시 지미와 함께했던 연주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그는 완전히 기타에 미쳐 있었다. 공연 중 휴식 시간에도 기타를 연습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연습했으며, 각성제를 복용하고 밤을 새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 잠을 잘 때도 기타를 꼭 껴안고 잘 정도로 연습광이었다. 지미는 만나는 기타리스트들마다 기타 연주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기타를 치아로 연주하는 퍼포먼스도 이 시기에 익힌 것이다. 한 번은 '지미 제임스(Jimmy James)'라는 이름으로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서 세션맨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리틀 리처드는 "나보다 옷을 더 멋있게 입는다."는 이유로 지미 헨드릭스를 해고했다.[19] 제임스 브라운의 백밴드에도 몸 담은 적이 있었는데 제임스 브라운한테 쳐 맞고 쫓겨난다.[20] 첨언하자면 리틀 리처드는 자기애의 화신이었고, 제임스 브라운은 평소에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독불장군 스타일이었다. 자유분방한 지미가 이 둘의 눈 밖에 난 것은 당연할 일인 것이다.

1966년, 헨드릭스는 '지미 제임스 앤드 블루 플레임스(Jimi James and Blue Flames)'라는 밴드를 조직하며 홀로 서게 된다. 당시에는 오리지널 곡이 없어서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트록스의 'Wild Thing' 등의 기존 곡들을 커버 연주했었는데, 지미는 원곡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편곡하여 매번 다르게 커버 연주했었다. 어느 날 린다 키스라는 영국 모델이 지미의 공연을 보고 뻑 가버리는데, 당시 키스 리처즈(롤링스톤즈의 그 양반 맞다...)라는 기타리스트와 사귀면서 음악에 조예가 있었던 그녀는 주변의 음악 업계 종사자들에게 지미 헨드릭스를 소개해준다. 마침 투어차 미국에 와있었던 애니멀스(Animals)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가 그녀의 권유로 지미가 연주하는 클럽, '카페 와(Cafe Wha?)'에 들리는데, 헤이 조(Hey Joe)를 연주하는 지미를 보자마자 매니저가 되기를 자청, 영국에서 활동하자고 제안을 한다.[21] 그동안 모리스 제임스, 지미 짐, 지미 제임스로 불렸던 이 청년은 마침내 지미 헨드릭스라는 본명으로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3.3.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채스 챈들러는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에서 데뷔를 시켰는데, 이것은 매우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블루스 리바이벌이 일어나고 있었다. 로큰롤이 영국으로 들어온 후 당시 영국의 젊은 기타리스트들은 로큰롤의 원류 중 하나인 블루스까지 파고들면서 블루스를 재해석하고 있었는데,[22] 채스 챈들러는 '본토박이' 흑인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영국에서 활동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계산했던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에게도 미국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여러 모로 이점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비비 킹, 앨버트 킹, 머디 워터스, 버디 가이 등의 블루스 거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들에 의해 블루스 기타는 이미 정형화되어 고착되어있었다. 보수적인 미국의 청자들과 음악산업 관계자들에게 지미 헨드릭스의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연주는 그저 생뚱맞게 들렸을 뿐이었다.
원곡
지미 핸드릭스의 변형ver[23]

런던에 도착한 지미 헨드릭스는 노엘 레딩을 그의 새 밴드의 첫 번째 멤버로 맞아들인다. 노엘 레딩[24]은 원래 애니멀스의 기타 오디션을 보러 왔었는데, 채스가 베이스도 연주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던 것. 노엘은 베이스는 처음이었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하고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뽑히게 된다. 지미 헨드릭스는 밥 딜런을 닮은 노엘의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그를 뽑았다고 했다.

영국으로 건너간 지 일주일 후,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튼, 두 천재 기타리스트들이 처음 만나게 된다. 채스는 에릭 클랩튼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지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미를 크림(Cream)이 공연하는 장소로 데려갔다. 채스는 그냥 서로 인사 정도만 시켜주려고 했는데, 지미 헨드릭스는 순진한 건지 당돌한 건지 크림과 (즉흥 합주)하고 싶다고 부탁한다. 에릭 클랩튼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두 곡 정도 같이 연주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죠. 나는 괜찮다고 대답해줬지만, 속으로는 '별 웃기는 놈 다 보겠네.'라고 생각했어요." 허락이 떨어지자 지미는 무대로 올라와서 하울링 울프의 '킬링 플로어(Killing Floor)'[25]를 에릭이 이제껏 듣도보도 못한 스타일로 새롭게 커버 연주해버렸다. 에릭 클랩튼은 지미의 연주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곡을 따라가지도 못했다 술회했다. 관객석에는 또 한 명의 천재 기타리스트가 직업인으로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이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제프 벡.

노엘 레딩에 이어 드러머 미치 미첼[26]이 가입하여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라인업이 완성된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아직 싱글조차 발매하지 않은 밴드였지만, 기타를 뒤집은 채로 죽여주게 연주하는 왼손잡이 흑인 기타리스트의 입소문은 런던 뮤지션들과 음악팬들 사이에서 금방 퍼졌다.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영국의 뮤지션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소문이 나고 주목 받는 존재가 되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까지 투어 일정이 잡히고, 훗날 레전드가 되는 음악인들이 지미의 공연을 보고 그의 친구 및 후원자가 되었다. 비틀즈폴 매카트니링고 스타, 롤링스톤즈브라이언 존스, 에릭 클랩튼, 더 후, 제프 벡 등... 비틀즈의 링고 스타는 그의 안 쓰는 아파트를 빌려주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가 미국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출연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출연은 그가 단숨에 록계의 새로운 별로 큰 주목을 받으며 뜨는 계기가 되었다.
피드백 Feedback 사운드로 시작하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대표곡 ‘Foxey Lady’

1966년 12월, 밴드의 첫 싱글 '헤이 조(Hey Joe)'가 발매되고 영국 차트 4위까지 오른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투어 도중 짬짬이 곡을 만들고 녹음을 하여 1967년 정규 앨범 'Are You Experienced'을 발표,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른다.[27] 'Purple Haze', 'Foxy Lady', 'Red House', 'Fire' 등이 이 앨범의 대표적인 곡들이다. 그 해 6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출연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건너간다. 몬터레이 공연의 마지막 곡 'Wild Thing'의 연주 막바지, 기타와 섹스하는 것처럼 기타를 눕힌 채 격렬히 아밍을 하던 지미 헨드릭스는 별안간 라이터 기름을 기타에 붓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기타 앞에 무릎을 꿇고 불꽃이 더 타오르게 하려는 듯한 퍼포먼스를 한다.[28] 이렇게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미국 데뷔 무대는 전설이 된다.
기타 박살!
당시 박살났던 기타의 현재 모습[29]

이후 'Axis: Bold As Love', 'Electric Ladyland' 앨범을 내놓으며 2년간 활동한다. 헨드릭스의 명곡들은 거의 다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한마디로 리즈 시절.

3.4. 익스피리언스 해체, 그리고 사망

1969년, 급조한 밴드의 한계였는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해체하게 된다. 그 후 헨드릭스는 솔로 활동을 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도 참여하였다.

1970년 필모어 이스트에서, 친구였던 빌리 콕스(베이스)와 버디 마일스(드럼)와 함께 결성한 밴드 오브 집시스의 데뷔 공연을 한다. 또 다시 전설이 시작될 것 같았으나, 안타깝게도 같은 해 9월 18일 헨드릭스는 런던의 스마르칸트 호텔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 후 토사물로 인한 질식사[30]로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27세였다.[31]

게다가, 그의 사망 전날 사진들이 꽤나 많이 찍혀있는데,[32] 보통 이렇게 급사한 사람들의 사망 직전 사진이 이렇게 많이 찍히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사진 속에서 그는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즐거운 휴식을 보내고 있는데, 그 다음 날 그가 어떻게 되는 지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친구이자 또 다른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은 지미의 사망 전 지미에게 줄 선물로 왼손잡이용 기타를 구매해 두고 지미를 만나면 주려고 했다. 스스로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음악계는 생각보다 좁아서[33]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공연에 가면 어련히 만날 수 있겠거니 하고 공연장에 갔는데 지미가 없어서 당황했고, 바로 다음 날 지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사진들.

지미 헨드릭스 사망 50일 전의 마지막 마우이 공연. Voodoo Child(Slight Return)을 연주하고 있다.

4. 평가와 영향력

지미 헨드릭스는 틀림없이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주자다.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의 범위와 어휘를 음악가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의 무한한 추진력, 기술력, 그리고 창의적인 적용은 로큰롤의 소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지미 헨드릭스는 오늘날 대중이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소리를 사실상 혼자서 개발해온 인물이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기억되고 있으며, 데뷔한 이래 장장 5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대중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일렉트릭 기타기타리스트의 역사는 이 사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음악 분야에서 '드러머'의 존 본햄과 함께 각 분야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물을 선정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며, 현 시점 거의 모든 리스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위에 선정되었다.[34][35]

일렉트릭 기타는 1950년대 당시 어쿠스틱 기타의 부족한 소리를 메꾸기 위해 발명된 악기였고, 따라서 오랫동안 '마이크 단 어쿠스틱 기타'나 '소리 큰 어쿠스틱 기타'라는 취급이 강했다. 대중적으로 처음 성공한 일렉트릭 기타를 만든 펜더 회사 역시 록 보다는 깔끔한 소리가 요구되는 컨트리 기타리스트를 위해서 작업했다. 일렉트릭 기타 특유의 소리에 대해 연구가 많이 부족했고, 악기가 발명된지 10년이 넘어가도 이미 존재하던 어쿠스틱 기타의 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당시 록의 선두주자라고 불리던 엘비스비틀즈를 들으면 기타의 대중적인 소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지미 헨드릭스. 현대 록 밴드에서 요구되는 '더티/크런치' 사운드는 그가 사용하였던 마샬 앰프의 진공관이 과열되며 나오는 왜곡된 사운드에서 비롯된 것이며, 당시에 막 개발되었던 퍼즈(Fuzz), 와우 페달(Wah Pedal), 유니바이브(Uni-Vibe) 등의 기타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개성적인 일렉트릭 기타만의 톤(음색)을 만들어냈다. 이후 톤 메이킹[36] 실력도 모든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연주 중 피드백 사운드나 격렬한 아밍으로 음정을 벗어난 음, 기타를 앰프 스피커에 부딪히거나 마이크 스탠드에 비벼서 생기는 소리 기타가 박살나는 소리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며, 정확한 음이 아닌 노이즈도 강렬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레코딩에서도 환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37]

이렇듯 그의 음악은 이전에 들어볼 수 없던 기상천외한 사운드로 흔히 기억되지만 사용하는 코드들, 블루스 특유의 송 폼, 펜타토닉 스케일과 블루스 스케일에 바탕을 둔 솔로 즉흥 연주 등 음악 이론적으로는 철저히 블루스를 지향했다. 따라서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분류되며, 만들었던 음악의 형식 등으로 미루어보아(대부분이 12마디 블루스) 스스로를 블루스 음악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처럼 록에 걸맞은 빠르고 스타일리쉬한 주법은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그의 스타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38] 이처럼 선배 음악가들의 결과물을 자양분 삼아 끝없는 상상력을 실천하면서 블루스를 더욱 더 공격적이고 거칠게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시도와 결과물은 블루스를 넘어 록 음악, 특히 본인은 하지 않은 후대의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블루스 록, 헤비 메탈 같은 여러 장르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정체성 중 하나인 '귀를 거칠게 찌르는 고주파의 굉음과 현란한 연주로 청중들을 압도하는 사운드를 뿜어내는 기타리스트의 음악'이라는 정의는 훨씬 늦게 자리잡고, 지금과는 다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왼손잡이였던 지미 헨드릭스는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서 연주했었는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타와 한 몸이 된 듯 신기에 가깝게 연주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지미 헨드릭스는 1960년대에 새로운 기타 연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기타를 넘어 대중음악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 위대한 아티스트들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시 말하자면, 현시대 일반인들이 일렉트릭 기타하면 떠올리는 '좡좡좡' 거리는 거친 찢어질듯한 소리를 이펙터 사용을 통해 거의 최초로 도입하고 이를 전기 소음이 아닌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온 다음, 이런 소음을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지까지 비전을 만들어놓은 인물. 이러한 사운드는 지미 헨드릭스를 통해 음악으로 새로 탄생했고 그의 시도에 영감을 얻은 동시대 기타리스트와 후배들이 발전시켜 나가면서, 일렉트릭 기타로만 할 수 있는 장르까지 새롭게 생겨나면서 이제는 상술한 어쿠스틱 기타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자적인 악기로 독립할 수 있었다.[39] 그의 진취적인 음악으로 인하여 비단 일렉트릭 기타 뿐만이 아닌, 196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전체적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27년이라는 그의 짧은 일생 중 마지막 4년 동안[40]에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27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남들보다 늦은 15세[41]에 기타를 정식으로 시작하였으며, 즉 Are You Experienced를 만든 것은 그가 기타를 정식으로 배운 지 9년이 된 해이다. 다른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대부분 10세 전후에 기타를 처음 접한 것을 감안하면 지미 헨드릭스가 얼마나 천재인 지 알 수 있는 부분.[42]
Jimi Hendrix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Live)
연주력 자체가 뛰어났던지라 다른 뮤지션의 곡들을 커버하는 것에도 매우 능하였는데, 원곡 그대로 카피하듯 커버하기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독창적으로 커버하곤 했다.[43] 그의 라이브 음반을 들어본다면 다른 뮤지션들이 낸 곡들과 그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라이브 곡들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도 있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페퍼상사에 수록된 첫 곡인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를 자신 만의 하드록 스타일로 커버했다. 심지어 나온지 3일 만에 저러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보여줬다! 실제로 원곡자 폴 매카트니도 이를 듣고선 지미의 뛰어난 재해석 및 독창적인 소화 능력을 칭찬하였다.[44][45] 또한, 밥 딜런의 곡인 'All Along The Watchtower'는 오히려 원곡보다도 지미 헨드릭스의 커버 버전이 더 유명하다.[46]

여러 매체에서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의 순위를 정하는 자리를 가질 때 2위부터는 순위 변동이 다소 잦지만[47] 1위는 항상 지미 헨드릭스.[48] 무엇보다 흑인이 아직 많은 차별을 받던 시대[49]와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인해서[50] 영국이 음악 시장을 주로 점령하고 있던 시대에 현재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는 당대 최고의 영국계 백인 밴드인 롤링 스톤즈, 비틀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스타덤에 오른 흑인 미국 아티스트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

사실 지미 헨드릭스는 기존의 흑인 블루스 연주자나 팬들한테는 상당히 멸시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유는 '흑인 음악인 블루스를 가져다가 백인 음악이었던 록 음악에 결합해 백인에 아첨하는 음악만 만들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블루스 리바이벌 당시 고전 블루스를 한창 재해석하던 에릭 클랩튼, 피터 그린 등의 영국의 기타리스트들을 정통 블루스 음악가들은 '테크닉은 있지만 블루스의 느낌을 재현하지 못하는 외국인의 모방'으로 평가받았고, 이는 당시 백인 블루스 아티스트들에게는 일종의 컴플렉스로 작용했다. 실제로도 많은 평론가들이 이 당시의 브리티시 블루스를 고전 흑인 블루스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별개의 장르로 구분한다. 이 때문에 흑인들의 선천적 감성과 필을 모르는 백인들이 지미의 시도를 자신들의 눈으로 해석해 블루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한 것이 블루스와 록의 결합이었고, 이를 갈고 닦은 것이 지금의 록 음악, 나아가 프로그레시브 록,사이키델릭 록,하드 록,헤비메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백인 블루스계의 노력은 미국의 정통 블루스의 입장에서는 흑인 블루스 음악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영국인들의 변화구, 사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출신의 흑인 기타리스트였음에도 정통의 블루스 어법 뿐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적인 어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블루스 록 음악을 완성했다. 이는 에릭 클랩튼을 위시로 한 영국 블루스 록 음악계에서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지만, 미국의 정통 블루스 음악인들의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는 인물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팬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업적 덕분에 블루스와는 1도 관계 없는 뿌리에서 태어난 영국 바깥의 클래식계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같은 후대 음악가에게 있어서도, 지미 헨드릭스가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를 든 이상 안토니오 비발디,니콜로 파가니니같은 거장의 사이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이러한 평판을 어느 정도 신경쓰고 있었다고 하며,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해체 이후 흑인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 오브 집시스를 결성하며 보다 펑크(Funk)소울 음악등 흑인음악에 경도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지미 헨드릭스가 사망하면서 밴드 오브 집시스의 이후 행보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위와 같은 비판적인 시각은 점차 줄어들었는데, 일단 지미 헨드릭스 이전의 정통 블루스 뮤지션들은 이미 노환으로 사망했거나 음악계를 은퇴한 것도 있고, 지미 헨드릭스가 후대에 남긴 영향력이 워낙 거대하기에 위와 같은 비판 의견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에 가깝다. 실제로 헨드릭스가 일부에서 이러한 멸시를 받을 무렵에도 이미 비비 킹, 마일스 데이비스, 조지 클린턴과 같은 흑인 음악의 거장들은 창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헨드릭스의 혁신성을 알아보고 그에 영향받은 음악을 선보였고, 이후 재즈, 소울 음악, 펑크 등 흑인 음악계도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아들여 큰 발전을 이룩했다. 그래서 현재는 미국/흑인 음악계에서도 전설로 평가받는다.[51]

결국,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뮤지션으로써 흑백의 통합을 이뤄낸 인물중 하나다. 백인으로써 흑인음악을 메인스트림에 받아들일 수 있게한 엘비스와는 반대로 흑인으로써 한계를 넘어선 음악을 해, 백인들의 음악을 진보시킨 인물. 그러니 음악의 한계를 넘고 문화 통합을 이끌어낸 사람을 단순한 뮤지션이라고 보면 안된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라는 기계로 하나의 컬처를 새로 만들어낸 문화의 선도자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헨드릭스를 통해 하드 록, 헤비메탈의 정체성이 확립된 이후로 정작 헨드릭스의 뒤를 이을 흑인 하드 록, 헤비메탈 뮤지션이 거의 나오지 못했다는 것. 지미 헨드릭스 이후에 나왔던 전설적인 흑인 음악 뮤지션들은 대다수가 펑크(Funk)디스코, 더 길게 보자면 R&B힙합 쪽의 음악을 했다. 그로 인해 하드 록, 메탈씬은 다소는 백인 위주의 문화로 다시 분리되었고 아직까지도 지속되는 중이다.

기타 실력이 너무나 부각되어 살짝 가려진 감이 있지만, 프론트맨으로서의 역량 또한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으며, 프레디 머큐리, 믹 재거, 짐 모리슨 등과 함께 록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으로 평가받는다. 공연때마다 수준급의 퍼포먼스를 유감없이 보여줬으며, 그 유명한 몬터레이 콘서트나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에서 그의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를 잘 확인 할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빌보드 선정 25대 위대한 록 프론트맨에서 3위에 오른적 있다.#[52]

그에 대한 평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기타의 본좌로 꼽히는 인물이다. 동시에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서도 제일 위대한 거목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일렉트릭 기타의 주요한 주법들 중 대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으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에 항상 1위로 선정될 만도 하다. 굳이 기타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줬는데, 그의 주 장르인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재즈 뮤지션[53]들도 그의 독특한 화성 방식이나 주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후대 등장한 하드 록,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는 헨드릭스를 통해 지금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따라서 사실상 후대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무조건 그의 발자취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미 헨드릭스가 현역이던 시절 에릭 클랩튼[54], 제프 벡, 더 후피트 타운젠드, 브라이언 메이[55] 등 지금에서는 올타임 레전드라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조차 지미 헨드릭스의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했던 혁신적인 음악을 기타와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 듯 연주하는 장면을 본 후에 '기타를 접어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지미의 스킬과 곡 해석력, 감성을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갖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영국의 록 계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록 음악이 발전을 할 수 있었다.

5. 사용 장비

5.1. 일렉트릭 기타

파일:jimi-hendrix-reissue-band-gypsys-vinyl-50th-anniversary.jpg
파일:Jimi_Hendrix_1969_Woodstock.jpg
지미 헨드릭스를 상징하는 기타로, 아래에서도 볼 수 있듯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했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봐도 알 수 있듯 가장 많이, 또 자주 사용했던 악기는 바로 스트라토캐스터였다.

특이하게도 지미는 펜더CBS에 인수된 이후인 1968년에 나온 라지헤드 사양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매우 선호했었는데[56], 지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브 중 하나였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도 올림픽 화이트 색상의 라지헤드 스트라토캐스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지미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위 사진 왼쪽에서 연주 중인, 블랙 뷰티(Black Beauty)라는 이름을 붙여준 검은색 스트라토캐스터를 가장 아꼈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망 바로 전날에 찍은 마지막 사진에서도 해당 기타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래 스트라토캐스터는 컨트리 뮤직이나 상대적으로 소프트한 로큰롤 음악을 위해 만들어진 일렉트릭 기타 모델이었으나[57], 지미 헨드릭스같은 거장이 이 악기를 통해 그 전까지는 들을 수 없던 온갖 혁신적인 사운드를 들려준 이후, 에릭 클랩튼, 데이비드 길모어, 리치 블랙모어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지미의 뒤를 이어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스트라토캐스터에 지금과 같은 록 음악의 이미지가 붙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펜더도 지미 헨드릭스라는 거장이 사용했다던 이 네임벨류를 놓칠 수가 없었는지, 지미 사후 반백년이나 흐른 현재까지도 다양한 관련 모델들을 생산중이다. 이미 지미가 활발하게 활동중이던 1970년에 지미 본인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바디와 넥 거의 전체를 로즈우드로 만든 특수한 스트라토캐스터를 제작하였다가 지미가 이걸 받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적이 있었으며관련 기사,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1997년부터는 정식으로 지미 헨드릭스의 아티스트 시그니처 스트라토캐스터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펜더에서 생산하는 지미 헨드릭스 시그니처 모델들은 그가 생전 오른손잡이용으로 생산된 스트라토캐스터를 뒤집어서 연주했을 때의 모양처럼 헤드스톡 또한 일반적인 스트라토캐스터의 반대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브릿지 픽업도 원본 스트라토캐스터와는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아티스트 시그니처 모델 외에는 펜더 멕시코에서 생산된, 지미가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불태웠던 그 기타를 복각한 모델도 있는데, 이 모델은 존 메이어가 본인의 라이브에서 사용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영상
그가 앨범 레코딩에 사용하였던 1963년스트라토캐스터전당포 사나이들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기타를 라이브에서 연주하지는 않았었기에 그가 이 기타를 연주하는 사진은 따로 남아있지 않았으나, 판매자의 말에 따르면 밴드 오브 집시즈 앨범을 포함한 여러 레코딩에 사용되었던 개체라고 한다.

파일:Jimi_Hendrix_with_1967_Gibson_SG_Custom.jpg
위의 스트라토캐스터보다는 훨씬 적은 횟수이지만 몇몇 라이브에서는 1967년에 생산된 알파인 화이트 색상 SG 커스텀을 사용하기도 했다. 왼손잡이용 기타를 구하기 힘들었던 당시 시대에서 좌우가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SG는 지미의 입장에서 대단히 연주하기 편했기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실제로 아래의 플라잉 V도 마찬가지로 바디가 대칭형이다.

이후 깁슨 커스텀 샵에서 지미가 사용했던 1967년식 깁슨 SG 커스텀을 시그니처 모델로 복각하여 발매하기도 했다.#

파일:Jimi_Hendrix_with_1969_Gibson_Flying_V.png
마찬가지로 자주 사용하던 악기는 아니었지만 와인 레드 색상 플라잉 V 또한 사용하였다. 지미는 생전 총 세 대의 플라잉 V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중 1967년에 생산된 플라잉브이에는 사이키델릭한 무늬를 새겨 사용하였다.관련 영상

마찬가지로 많고 많은 기타들 중 플라잉 V를 채택한 것은 바디가 거의 완전한 대칭형이기 때문에 오른손잡이용 기타임에도 왼손으로 연주했을 때 거의 동일한 연주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5.2. 기타 앰프

파일:Jimi_Hendrix_with_Marshall_Amps.jpg
커리어의 대부분을 마샬에서 만든 기타 앰프와 함께 했으며, 마샬 앰프 하면 생각나는 강렬한 오버드라이브 사운드의 정체성을 형성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지미가 주로 사용했던 앰프는 마샬1959 슈퍼 리드 "플렉시" (1959 Super Lead "Plexi") 였는데, 지미는 이 앰프에 거대한 12x4 사이즈 마샬 캐비넷을 함께 매칭시킨 콤보 세 대를 무대에 놓고 사용했다. 거기에 더해 이 앰프들을 진공관이 터질 수준으로 볼륨을 올려 사용하였으며, 이 세 대의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왜곡된 사운드는 이후 지미 헨드릭스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록 기타리스트들이 애용하는 시그니처 격 음색이 된다.

5.3. 이펙터

파일:Hendrix_Effect_Pedals_Setting.jpg
지미 헨드릭스의 이펙터 세팅
알파벳 순으로 (A) 복스 V846, (B) 로저 메이어 옥타비아, (C) 댈러스 아비터 퍼즈 페이스, (D) 신-에이 유니바이브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 이펙터의 사용에 있어서도 혁신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그가 사용했던 많은 이펙터들이 발매 당시에는 그 난해함과 사용처의 애매함 탓에 철저히 외면받았었으나, 그가 이러한 이펙터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후 기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clearfix]

6. 앨범

파일:Are You Experienced.jpg
Are You Experienced (1967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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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Foxy Lady
  • 2. Manic Depression
  • 3. Red House
  • 4. Can You See Me
  • 5. Love or Confusion
  • 6. I Don't Live Today
Side two
* 7. Maybe This Be Love
* 8. Fire
* 9. 3rd Stone from the Sun
* 10. Remember
* 11. Are You Experienced?
파일:Axisboldaslove.jpg
Axis: Bold As Love (1967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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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one
  • 1. EXP
  • 2. Up from the Skies
  • 3. Spanish Castle Magic
  • 4. "Wait Until Tomorrow
  • 5. Ain't No Telling
  • 6. Little Wing
  • 7. If Six Was Nine
Side two
* 8. You've Got Me Floating
* 9. Castles Made of Sand
* 10. She's So Fine
* 11. One Rainy Wish
* 12. Little Miss Lover
* 13. Bold as Love
파일:external/img3.wikia.nocookie.net/Jimi_Hendrix_-_Electric_Ladyland_(1968).jpg
Electric Ladyland (1968년 10월 16일)
[ 펼치기 · 접기 ]
Side one
  • 1. ...And the Gods Made Love
  • 2. Have You Ever Been (To Electric Ladyland)
  • 3. Crosstown Traffic
  • 4. Voodoo Chile
Side two
* 5. Little Miss Strange
* 6. Long Hot Summer Night
* 7. Come On (Let the Good Times Roll)
* 8. Gypsy Eyes
* 9. Burning of the Midnight Lamp
Side three
* 10. Rainy Day, Dream Away
* 11. 1983... (A Merman I Should Turn to Be)
* 12. Moon, Turn the Tides...Gently Gently Away
Side Four
* 13. Still Raining, Still Dreaming
* 14. House Burning Down
* 15. All Along the Watchtower
* 16. Voodoo Child (Slight Return)

헨드릭스는 생전에 정규 음반 3장과 라이브 음반 1장을 남겼다.

2010년 3월, 미공개 녹음 12곡을 담은 지미 헨드릭스의 새로운 앨범 'Valleys of Neptune'이 공개되었다. 2009년 8월, 계약 기간 만료로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서 소니 뮤직으로 판권이 이적되어 발매되었다.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명의로 낸 앨범들도 모조리 딜럭스 에디션으로 발매. 한국에서도 살 수 있다.

2013년 3월 5일, 마찬가지로 미공개 녹음 12곡을 담은 'People, Hell And Angels'가 전세계 동시 발매되었다.

2018년 3월 9일, 'Both Sides Of The Sky' 앨범이 발매되었다.

7. 여담

http://youtu.be/sjzZh6-h9fM

* 사실 그의 퍼포먼스는 혁신적이긴 하나, 기타를 박살내고 태우는 정도의 광기 어린 짓을 많이 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뭔 미친놈이 저 좋은 기타에 휘발유를 뿌려서 태우나' 할 정도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몇몇 락 매니아들은 이것도 그의 연주기법 중 하나로 분류한다. 확실히 기타가 탈 때 특유의 소리가 나긴 하지만... 흠좀무. 이 행동은 약물과도 관련이 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무대에 오르는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당시 매니저들은 흑인인 헨드릭스를 차별대우를 하거나, 출연료를 받으면 술과 마약을 사서 헨드릭스에게 주고 나머지 돈은 꿀꺽하는 막장 행보를 보였다고. 참고로 기타를 박살내는 건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가 원조이다[68]. 하지만 다른 퍼포먼스를 보면 기타를 단순히 연주하는 게 아닌, 쇼맨십에서도 매우 훌륭한 프론트맨였다는 걸 알 수 있다.[69]

8. 대중매체

8.1. 왼손잡이

왼손잡이로 유명하다. 오른손잡이였단 이야기도 있지만 여러 소스들[76]을 볼 때, 그는 원래 왼손잡이였지만 이후 오른손잡이로 교육받았고, 이로 인해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게 된 사례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다른 기타리스트들도 원래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잡이 기준 운지법으로, 기타 연습을 하던 중 오른손으로는 도저히 피킹이 안 돼서 왼손 기타리스트로 돌아온 사례가 많다.

이는 그의 기타 톤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기타를 보면 스트라토캐스터의 브릿지 픽업이 살짝 기울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높은 현(1번 줄)의 높은 소리를 픽업하고, 낮은 현(6번 줄)의 낮은 소리를 픽업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는데, 지미 헨드릭스는 오른손잡이 기타를 거꾸로 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운드 쉐이핑이 반대로 된다.
또한 스트라토캐스터의 헤드를 보면 6개의 헤드머신이 일렬로 되어있다. 즉 제일 저음인 6번줄이 브릿지-헤드머신의 거리가 제일 짧고 최고음인 1번줄이 제일 길다. 하지만 헤드가 뒤집힘으로서 반대로 저음줄이 더 길어지고 고음줄이 더 짧아져서 저음이 좀 더 타이트해지고 높은 음을 연주할 때 텐션이 낮아 테크니컬한 연주가 용이해진다.

지미 헨드릭스와 대조되는 기타리스트가 바로 딕 데일. 그도 왼손잡이였지만 처음에는 오른손잡이 기타를 뒤집어 들고 연주했었다.[77]

8.2. 한국에서의 인지도

해외 등지에서 기타 부문 불변 최고의 인물이란 평을 받음과는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인지도는 높지 못하다. 밴드 음악을 좀 알면 모를까. 그가 활동했던 당시 유행했던 사이키델릭 록 자체가 한국에서 마이너하기 때문인 것도 있고, 그는 1970년에 죽었는데, 당시에는 대중음악 검열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접하기 쉽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다.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은 미8군을 통해 건너온 스탠다드 팝 시절 이후로는 미국처럼 록큰롤, 브리티쉬 인베이전, 사이키델릭 록 같은 장르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1960년대의 서양 록 씬은 훌쩍 건너 뛰고 1970년대부터야 비로소 서구 록/팝 음악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한 1960년대의 레전드 록 음악가들은 한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찬밥 신세이다.

예를 들어 해외에선 한창 1차 브리티쉬 인베이전 영국 밴드들과 지미 헨드릭스, 도어즈 등의 신진 미국 록 뮤지션들이 음악씬을 점령했던 1960년대 중~후반 시절에 한국 대중들에게 제일 인기 있던 해외 뮤지션은 클리프 리처드, 폴 앵카, 앤디 윌리엄스, 톰 존스 등이었을 정도로 딴 세상이었다.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도 정작 최전성기였던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엔 한국에서는 큰 인기는 없었고, 최전성기가 지난 후인 60년대 후반~70년대 초중반의 라스베가스 시절(살이 찌고 구레나룻을 많이 기르고 트레이드마크 같은 큰 칼라를 바짝 세운 점프슈트를 입고 나왔던 바로 그 시절)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나마도 당시 한국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남진이 후기 엘비스 이미지를 흉내낸 덕에 한국에서의 엘비스의 인지도와 인기도 덩달아 올라간 면이 컸다.

물론 한국에서 영미 록음악이 불모지 시기였던 1960년대에도 미8군을 통해 들여온 음반을 불법복제한 음반(소위 '빽판')이 암암리에 소량 유통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발품 팔며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구해 들었던 극소수 매니아급 음악팬들(오늘날 표현으로 치면 첨단 유행을 달리는 힙스터들)의 이야기기일 뿐이고, 행여 음반이 있더라도 음반을 틀 전축을 갖춘 집도 드물었던 시절이다.[78]

물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기타 교본에서 소개하는 이름으로 알 것이다. 전술한 대로 기타 이펙터들의 활용에 있어 거의 대다수 교본을 만들어낸 사람이니. 그래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지미 헨드릭스를 존경하는 캐릭터가 나오고, 앨범도 라이센스 발매되는 등, 위대함 대비 인지도가 낮은 것이지, 기타 다루는 사람들마저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존 본햄과 더불어 지식채널 e에 등장하기도 했다. #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김태원을 한국의 지미 헨드릭스라고 칭찬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헨드릭스 사인이 마약 중독이라 언급하며 김태원에게 한 방 먹였다...


[1] 태명은 조니 앨런 헨드릭스(Johnny Allen Hendrix).[2] 사인은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 존 본햄의 사인과 똑같다. 최고의 드러머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사람이 같은 이유로 사망한 것이다. 게다가 존 본햄도 지미 헨드릭스 사망 10년 후에 사망했는데, 그것도 같은 9월에 사망했다.[3] 전성기는 1967년 - 1970년.[4] 참고로 당시 로버트 프립은 이전에 결성했던 밴드인 자일스 자일스 앤 프립이 실패하면서 무명 상태였고, 이후 결성한 킹 크림슨은 아직 첫 앨범을 내기도 전이었다.[5] 로버트 프립의 당시 회상[6] 왼쪽부터 아버지 알 헨드릭스, 어린 지미 헨드릭스, 어머니 루실 헨드릭스, 동생 레온 헨드릭스.[7] 지미 헨드릭스의 혈통에는 다인종의 피가 섞여있다. 그의 외조부, 조부는 모두 전직 노예와 백인 주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외조모와 조모도 둘 다 인디언과 흑인 노예의 혼혈이었다.[8] 지미 헨드릭스는 아버지가 장례식에 보내주지 않아서 장례식 당일에는 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울었다.[9] 부모가 모두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있어 정상이 아니다 보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10] 고등학교 퇴학 후에도 친구가 일하는 햄버거집에 마감 시간에 나타나 그날 팔리지 않아 버려진 햄버거감자튀김을 얻어갔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걸음걸이가 어정쩡했는데, 어렸을 때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녀서 였다.[11] 실제로 지미는 1957년쯤에 엘비스의 공연을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또한 영어 위키에서도 지미가 커버한 'Hound Dog'는 엘비스의 버전을 듣고 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본래 'Hound Dog'는 여성 흑인 가수 빅 마마 쏜튼이 발표한 것이고, 리틀 리처드도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12] 여담으로 당시 Stratocaster 한 대의 가격이 200달러 초중반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재가치로 한화 약 45000원쯤 한다.[13] 지미 헨드릭스 사후 저작권을 비롯한 그의 유산이 아버지에게 상속되었다. 이 양반은 2002년에 타계했는데, 그 당시 아들이 남겨준 유산은 무려 8천만 달러로 불어나있었다!!![14] 사실 왼손잡이들이 강제적으로 오른손잡이로 교정된 것은 미국 뿐만 아닌, 한국에서도 흔했던 일이었다. 당장 Right와 오른손의 어원인 '옳은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면 된다.[15] 이는 현재 미군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범죄자들에게 감옥을 갈 건지, 군대를 갈 건지에 선택지를 주는 식으로 병력을 충당한다.[16]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해체 후 지미는 빌리 콕스와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를 결성한다. 전설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17] 이 사실을 바탕으로 나온 곡이 마츠토야 유미 1집 (당시엔 아라이 유미)에 실린 '사랑의 파라슈트'다. 유밍은 지미 헨드릭스 팬이다.[18] 찰스 R 크로스가 집필한 지미 헨드릭스의 전기(국내에서는 <지미 헨드릭스:록스타의 삶>으로 번역 출간)에 따르면 사실은 정신과 군의관을 만나서 정신과적 꾀병을 부려 의병 제대에 성공했다. 동료에 대한 애정, 잦은 자위 횟수, 지속적인 몽정...[19] 사실 이건 핑계고 불성실한 태도가 주된 이유였다.[20] 이 당시 제임스 브라운은 백밴드가 자기가 요구하는 연주를 어기면 벌금을 물리고 수틀리면 후드려패기로 악명이 높았으니(나중에 이 때문에 백밴드 멤버들이 집단 탈퇴를 하고 나서야 이 성향을 고치게 되지만), 지미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안 맞은 건 당연했다.[21] 나름 뉴욕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던 지미 헨드릭스는 영국행을 망설였다고하는데, 채스는 영국에 가면 에릭 클랩튼을 소개시켜준다고 꼬드겼다고.[22] 대표적인 예가 에릭 클랩튼이었다.[23] 이렇게 연주하는 지미 헨드릭스에게 미국인들은 손사래를 쳤지만 영국의 기타리스트들은 엄청난 컬처쇼크를 먹었다.[24] 1945~2003. 원래 기타리스트였으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서는 베이스를 치게 된다. 게다가 <Electric Ladyland>의 몇 곡을 녹음할 때는 녹음 빨리 끝내서 제작비 아끼려고 헨드릭스가 직접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25] 훗날 레드 제플린이 이 곡을 편곡하여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는데, 그 곡이 바로 The Lemon Song이다.[26] 본명 존 그래엄 미첼. 1946~2008.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헨드릭스에 비해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만 이 사람도 3살 때부터 드럼을 친 헨드릭스 못지않은 천재이다. 가입당시 고작 18살이었던 최연소 멤버였으며, 프로그레시브 록의 슈퍼밴드 ELP(Emerson, Lake and Palmer) 가입을 제안받았지만 헨드릭스와 계속 연주하고 싶다고 가입을 거절했다. 만약 그가 가입을 승낙했다면 그룹의 이름은 Emerson, Lake and Mitchell이 되었을 것이다. 헨드릭스 사후에는 특별히 한 밴드에서 연주한 적은 없지만 동시기 여러 밴드와 음반에 참여한 세션맨으로 활동했고.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드러머 8위로 선정되었다.[27] 당시 1위는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참고로 지미 헨드릭스는 이 앨범이 발매되고 사흘 뒤에 동명의 타이틀 곡을 커버했다.[28] 이 퍼포먼스는 지미가 즉흥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 기타 부수기는 이미 피트 타운젠드가 선점하고 있어서 더 튀어보이려고 기타에 불을 붙였다고.[29] 프랭크 자파의 아들인 Dweezil Zappa의 소유인데, 몇 번을 고쳐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아빠가 '너 가질래?'라면서 줬다고(...).[30] 로 인해 가끔 발생하기도 하며 주로 볼케이노라고 불린다. 똑같은 사인으로 사망한 사람으로는 영국 밴드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 호주 밴드 AC/DC의 전직 보컬 본 스콧 등이 있다.[31] 28세 생일이 2개월 앞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천재 뮤지션인 재니스 조플린, 도어즈짐 모리슨도 사망했다.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을 3J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 천재 뮤지션이 한 시기,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천재들은 스물일곱 살을 넘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32] 약 10~20장 정도[33] 1960년대 말 런던 록 음악계는 정말로 한두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다. 일례로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 결성 전에 비틀즈 멤버들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런던 록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는 심지어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아방가르드 밴드였을때부터 더 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에릭 클랩튼과 친분을 맺었을 정도다.[34] 게다가,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에는 척 베리, 비비 킹같은 본인의 선배들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 랭크된다. 즉, 일렉트릭 분야 뿐만이 아닌 기타라는 악기가 생긴 뒤에 등장한, 블루스 록부터 헤비메탈까지의 모든 장르의 기타리스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35] 참고로 가장 영향력이 큰 음악잡지인 '롤링스톤스'에서는 1등이지만, 가장 저명한 기타 전문 잡지인 '기타월드'에서 독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선정한 최고의 기타리스트 랭킹에서는 1위가 에디 밴 헤일런이고 헨드릭스는 4위에 위치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 투표를 한 독자들에게 '지미 헨드릭스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다'라고 해도 딱히 반박은 없을 정도로 지미 헨드릭스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36] 연주자만의 개성적인 톤을 만드는 것.[37] 그렇게 만들어진 사이키델릭풍의 데뷔 앨범 'Are You Experienced'는 록 음악 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증명하듯이, 2020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서 30위에 선정되었다. 비록 2012년 15위에서 2020년 30위로 너프되긴 했지만, 2020년 개정판에서는 록 앨범 대부분이 평가가 낮아졌음을 감안하면, 최고의 록 음악 명반이라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38] 참고로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배울 때 기초적인 백킹(오픈 코드/하이 코드/파워 코드의 운지법과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등 리듬 표현법 등)을 떼고 본격적인 멜로디 연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펜타토닉 스케일이고, 그 스케일 활용의 예시로 지미 헨드릭스와 다른 고전 록 기타리스트들의 프레이즈들을 다룬다. 지미 헨드릭스가 록의 문법 내에서 집대성한 펜타토닉 스케일(+ 블루스 스케일) 프레이즈들은 일렉트릭 기타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39] 지미 헨드릭스 이전의 일렉 기타 소리는 지금의 재즈 기타, 초창기의 일렉트릭 블루스, 엘비스 프레슬리척 베리 등의 초기 로큰롤 사운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40] 다시 말하자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결성 시기인 1966년부터 사망할 시기인 1970년.[41] 한국 나이로 중3에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이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아주 늦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지미 헨드릭스는 유명 기타리스트, 아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것. 대부분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은 더 이른 나이에 기타를 잡기 시작한다. 예외적으로 잭 화이트의 경우 지미와 비슷한 나이에 기타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하여 테크닉을 내세우는 연주보다는 간단하고 중독성 있는 리프를 개발하는 데 능하다. 그런데 지미의 연주는 간단한 리프보다는 새로운 기법과 화려한 연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것을 감안하면... 만약 10년만 더 살아있었어도 그의 작품 세계에 맞는 어마어마한 음반들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42] 대부분 기타리스트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구력을 가지고 나서 서서히 메인스트림에 올라오며, 20년은 쳐야지 기본적으로 세계 제일의 수준까지 가는 것을 감안하면 9년만에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의 거의 모든 기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지미 헨드릭스는 단순히 기타라는 악기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체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위대한 천재들 중 하나이다.[43] 사실 훌륭한 커버란 그런 것이다. 만일 그냥 똑같이 복사해내는 것에 머문다면, 데뷔 전 아마추어 밴드의 연주 연습은 될 수 있어도 기성 아티스트로서는 타 뮤지션의 흉내내기에 불과하니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44] 참고로 폴 매카트니는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 전 영국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때부터 이미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 눈여겨 본 뒤 지미의 데뷔 및 미국 공연 진출 등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45] 지미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커버 공연에 관련된 또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 지미가 이 곡을 연주할 때 본인 연주의 특성상 과격할 정도로 트레몰로 암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문제는 워낙 과격하게 한 탓에 기타의 튜닝이 완전히 나가버렸고, 무엇보다도 이 페퍼 상사 커버곡이 그 공연의 첫 번째 곡이었다는 것. 이에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은 "이제 뭘 어떻게 할 작정이지?"라는 생각으로 지미를 보았고, 지미는 관객석에 있던최선을 다해 숨던 에릭 클랩튼을 불러 "나 이거 줄 좀 맞춰주라."라는 농담을 던졌다고. 참조[46] 이로 인해서 밥 딜런은 후일 공연에서 그 곡의 지미 헨드릭스 버전을 부르기도 했다.[47] 당장 제일 존경받는 기타리스트들 중에선 앞 세대 중에선 비비 킹, 척 베리 등이 있고, 동 세대 중에서만 따져도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 등이 있다. 물론 이분들 역시 지미 헨드릭스를 제외하고 보자면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다.[48] 당장 맨 위에 있는 수상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매체에서 선정한 기타리스트 순위에서 항상 1위에 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0위로 평가받기도 한다.[49] 물론 40년대 후반에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성공과 60~70년대에 무하마드 알리가 복싱계를 호령한 덕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당시에도 많은 차별을 받던 건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인종차별은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등장과 Thriller 앨범 발매 이후부터 제대로 나아졌다.[50] 여담으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매니저였던 채스 챈들러 역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들 중 하나였다.[51] 비슷한 시기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와 함께 소울이나 힙합 쪽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모스 뎁은 그의 곡 'Rock & Roll'에서 헨드릭스를 언급했고 커먼은 Jimi Was Rock Star라는 헌정곡을 발표하기도 했다.[52] 여담으로 1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며 2위는 프레디 머큐리이다. 위 둘이 역사상 최고의 라이브 공연을 많이 선사했던 전설적인 프론트맨임을 감안하면 지미 헨드릭스 역시 위대한 프론트맨임을 알 수 있다.[53] 예를 들자면 그 마일즈 데이비스. 심지어 마일즈 데이비스는 1926년생으로 지미보다도 나이가 무려 16세나 많은 데다가 지미가 유년기였던 1959년, 이미 Kind of Blue라는 역대급 모달 재즈 명반을 발매한, 이미 전설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었다.[54] 지미 헨드릭스랑 생전에 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사람은 블루스 록의 선구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에 지미 헨드릭스를 제외하고 항상 들어가는 수준의 전설이다.[55] 대학교 시절, 스마일 소속 당시. 이 때에는 퀸이 아직 결성되기 전이다. 이들의 지미에 대한 평가는 브라이언 메이의 회고가 대표적인데, 다음과 같다. '분명 저건 기타고, 저건 앰프가 분명해. 그런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거지?'[56] 초창기인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생산된 펜더의 악기들은 그 품질과 사운드 덕에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이후 1964년에 미국의 방송 기업인 CBS에 인수된 이후에는 그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져 별로 평가가 좋지 못했다.[57] 실제로 지미 헨드릭스 이전에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했던 아티스트들은 버디 홀리처럼 지금의 과격한 록 음악의 이미지와는 영 딴 판이었던 인물들이 대다수였다.[58] 1962년에 판매된 최초의 퍼즈 이펙터인 마에스트로 퍼즈-톤(Maestro Fuzz-Tone) 이펙터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당시 퍼즈 페이스의 판매가는 마에스트로 퍼즈-톤의 불과 1/6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했다.[59] 이 탓에 지미는 이 퍼즈 페이스 이펙터를 여러 개 사서 소리가 좋은 개체를 선별하는 작업을 한 적까지 있었다.[60] 이후 2022년에 열린 경매에서 너바나의 프론트맨인 커트 코베인이 사용했던 DS-1 페달이 무려 75,000달러(한화 약 1억 원)라는 가격에 낙찰되며 이 기록은 경신되었다.[61] <Electric Ladyland>를 녹음할 때는 자신의 목소리가 부끄러워서 뒤돌아 서서 녹음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62] 물론 기타리스트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기로 정평난 에릭 클랩튼. 데이비드 길모어, 존 메이어보다는 덜하다. 앞의 셋은 보컬도 상당히 두드러지는 축에 든다.[63] 바로 위의 종교관 링크에서는 지미 헨드릭스가 "낙태에 반대했다"는 논지로 지미 헨드릭스가 다소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다고 쓰여져있는데, 이는 사실 관계에서 상당히 어긋난다.[64] 원곡은 밥 딜런.[65] 무대에서 앰프게인을 한계가 넘어설 정도까지 사용하곤 했다. 연주를 마치고 나면 무대에 셋팅된 음향장비가 모두 맛이 가버리곤 해서 페스티벌 등에선 대부분 마지막 순서였다.[66] 다만 연주 후에 기타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는 언론 노출을 노린 매니저의 지시였다는 설이 있다. 실제 유명 뮤지션들의 이런 기행이나 퍼포먼스 중에는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매니저의 지시인 경우도 많다. 출연료 대신 마약을 사다주면서 기행을 부추긴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이야기도 있다.[67] 덧붙여 이것은 지식채널e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FPS 게임 스펙 옵스: 더 라인의 오프닝 BGM으로도 쓰이는데, 같이 나오는 화면의 성조기는 뒤집혀진 채 너덜너덜해져있다. 항목에서 볼 수 있듯 기존 콜 오브 듀티배틀필드류의 FPS 게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긴 게임이다. 현대판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려보라. 정의인 줄 알았던 것이 광기의 모습을 드러내가는 게임에 걸맞은 BGM.[68] 피트 타운젠드가 공연 중에 기타를 높이 들었는데 천장에 닿아 부숴지자, 일부러 그랬다는 듯이 모두 때려 부숴버린 것이 시초이다.[69] 당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에는 고정 1위로 선정되어 있을 뿐더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에서도 5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현재 로큰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겸 보컬로 평가받는 록 밴드 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존경한 퍼포머 중 한 명이 지미 헨드릭스였다. 같은 팀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증언에 따르면, 지미의 공연을 14일 연속으로 본 적도 있다고...[70] 이때 연주했던 곡은 'Purple Haze'.[71] 국내에선 N.EX.T 1기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이 라이브에서 간간이 보여주었다. 3분 11초에 1초 동안 나온다.또 같은 N.EX.T의 3기 멤버인 기타리스트 김세황도 공연중에 자주 선보였었다.[72] 좀 더 아메리칸 원주민 풍으로 원했다.[73] 둘은 굉장히 친한사이였다. 당시엔 사진작가였고 록 뮤지션들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린다가 폴 매카트니와 친해진 것도 사진 촬영이 계기가 됐다.[74] 다른 버전인 지미 헨드릭스 본인 얼굴 사진에 대한 코멘트는 알려진 게 없다.[75] 여담으로 헐크 호건은 지미 핸드릭스의 곡 ‘Voodoo Child’를 테마곡으로 썼던 일이 있다.[76] 링크 1, 링크 2, 링크 3[77] 때문에 줄 순서를 변경하지 않고 가장 얇은 줄이 위로 올라오게 하여 연주했었다.[78] 만약 그 당시에 지미 헨드릭스 음악이 제대로 들어왔더라도 한국에서는 크게 인기를 얻었을 가능성은 적다. 특히 음악 감상에 있어서 대체로 악기 파트보다 보컬의 영향력을 더 크게 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거기다 지미 특유의 느낌 가는대로 가버리는 자유분방한 연주는 다소 보수적인 음악 씬에서 인정받긴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지미가 영국에서 금방 인정받은 것도 마침 그 시기가 영국에서 로큰롤 부흥이 한창이던 때라 미국의 블루스 등 루츠한 사운드에 관심있던 영국 뮤지션들이 지미 헨드릭스의 재능을 빨리 간파했기 때문에 매우 빨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