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지미 헨드릭스 | 에릭 클랩튼 | 지미 페이지 | 키스 리처즈 | 제프 벡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비비 킹 | 척 베리 | 에디 밴 헤일런 | 듀언 올맨 | 피트 타운젠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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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 스티비 레이 본 | 앨버트 킹 | 데이비드 길모어 | 프레디 킹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데릭 트럭스 | 닐 영 | 레스 폴 | 제임스 버턴 | 카를로스 산타나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쳇 앳킨스 | 프랭크 자파 | 버디 가이 | 앵거스 영 | 토니 아이오미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브라이언 메이 | 보 디들리 | 조니 라몬 | 스코티 모어 | 엘모어 제임스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라이 쿠더 | 빌리 기븐스 | 프린스 | 커티스 메이필드 | 존 리 후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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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로즈 | 믹 테일러 | 디 에지 | 스티브 크로퍼 | 톰 모렐로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믹 론슨 | 마이크 블룸필드 | 휴버트 서믈린 | 마크 노플러 | 링크 레이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제리 가르시아 | 스티븐 스틸스 | 조니 그린우드 | 머디 워터스 | 리치 블랙모어 | |||||
<rowcolor=#fff>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조니 마 | 클라렌스 화이트 | 오티스 러쉬 | 조 월시 | 존 레논 | |||||
<rowcolor=#fff>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앨버트 콜린스 | 로리 갤러거 | 피터 그린 | 로비 로버트슨 | 론 애시튼 | |||||
<rowcolor=#fff>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디키 베츠 | 로버트 프립 | 조니 윈터 | 듀언 에디 | 슬래시 | |||||
<rowcolor=#fff>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레슬리 웨스트 | T-본 워커 | 존 맥로플린 | 리처드 톰슨 | 잭 화이트 | |||||
<rowcolor=#fff>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로버트 존슨 | 존 프루시안테 | 커트 코베인 | 딕 데일 | 조니 미첼 | |||||
76위부터는 문서 참조. |
같이 보기: 최신 버전,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마크 노플러 Mark Knopfler OBE | |
<colbgcolor=#fff><colcolor=#000> 본명 | 마크 프뤼더 노플러 Mark Freuder Knopfler |
출생 | 1949년 8월 12일 ([age(1949-08-12)]세)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 |
성장지 | 영국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뉴캐슬어폰타인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영화 음악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프로듀서, 기자[1] |
소속 | 다이어 스트레이츠 |
가족 | 아버지 어윈 노플러 어머니 루이사 메리 남동생 데이비드 노플러 (1952년생) |
배우자 | 루이스 설로몬 (1983 – 1993, 이혼) 키티 얼드리지 (1997 – 현재) |
신체 | 183cm |
학력 | 리즈 대학교 (영문학 / 학사) |
종교 | 무종교 (불가지론) |
활동 기간 | 1965년 – 현재 |
사용 악기 | 기타, 보컬 |
장르 | 록, 루츠 록, 블루스 록, 켈틱 록, 펍 록, 컨트리 록, 팝 록 |
레이블 | EMI 레코드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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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프론트맨이자 밴드의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였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44위에 선정되었다.[2]펑크 록과 디스코의 유행으로 인해 고전 블루스 록이 몰락하던 시절 혜성처럼 등장해 1961년형 스트라토캐스터로 블루스 록과 루츠 록의 기타 사운드를 부활시킨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Sultans of Swing의 기타 솔로와 Money for Nothing의 전설적인 기타 리프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또 밴드 내에서 보컬도 맡았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OST인 A Love Idea의 작곡자로 알려져 있다.
3. 생애
1949년 교사인 어머니와 건축학자 어윈 노플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윈 노플러는 본래 헝가리계 유대인이었지만 공산당의 당원에다가 유대인이라는 혈통 때문에 핍박을 피해 영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이었다. 마크 노플러는 7살때 뉴캐슬로 이사를 갔으며,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1973년 리즈 대학교의 영문학을 졸업했다. 이후 그는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동시에 지방 신문사인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에 록 음악 평론가로도 일했다.그는 클럽과 펍에 자주 드나들면서 기타를 치면서 그 댓가로 학비를 벌었다고 한다. 기타는 그의 취미가 되어 제법 잘 치는 수준까지 올라갔고, 형제인 데이비드 노플러, 베이시스트 존 이즐리, 드러머 픽 위서스와 함께 작은 밴드인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만들었다. 밴드 이름을 번역하자면 "극도의 궁핍"으로 당시 마크 노플러의 재정 상태(...)를 반영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78년 최초의 히트곡 "Sultans of Swing"을 발표했다. 이 곡은 처음 발매되었을때 영국에서는 시큰둥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디스코와 펑크 록에 지쳐있던 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뒤늦게 영국에서도 역주행을 시작,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루스 밴드로 거듭나게 되었다.[3] 이후의 행적은 다이어 스트레이츠 항목 참조.
4. 음악적 스타일
에릭 클랩튼, 피터 그린, 지미 페이지 등 1960년대 후반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이 닦아놓은 블루스 록을 계승, 발전시켜 1980년대 영국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타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자주 사용하는 기타는 1961년형 스트라토캐스터. 원래 Sultans of Swing은 어쿠스틱 송이었고, 멤버들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별로 마음에 안드는 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트랫을 잡자마자 본인이 원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란 이후로는 61년형 펜더 스트랫의 광신도가 되었고, 그 후 스트랫 기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다. 5집 Brothers in Arms 이후부터는 깁슨 레스폴 58을 쓰기 시작했다. 그 레스폴로 남긴 명곡이 Money for Nothing인 덕에 에릭 클랩튼, 피트 타운젠드와 더불어 스트라토캐스터와 레스 폴 모두 시그니처 모델이 존재하는 몇 안되는 기타리스트다.[4], 80년대 후반부터는 수제 기타 브랜드인 Pensa 기타[5]의 그의 이름을 딴 MK 시리즈 기타를 주로 애용하고 있다.
그는 음악적으로 에릭 클랩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나 클린톤을 자주 활용한다는 점에서 에릭 클랩튼의 가장 직접적인 계승자로 분류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에릭 클랩튼과 상당한 친분이 있기도 하고, 음악 활동도 같이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필 콜린스, 스팅과 합작을 하기도 했다. 그 곡중 가장 유명한 "Money for Nothing"은 노플러와 스팅의 합작 작품이다.
일렉트릭기타 연주자 중에서는 흔치 않은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로서 피크를 쓰지 않는데, Fender 스트라토캐스터의 클린톤과 핑거스타일 피킹 특유의 섬세한 뉘앙스 표현이 그의 사운드의 핵심.[6] 게다가 핑거스타일로 솔로잉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보자. 모던 기타리스트들 중에도 점차 하이브리드 피킹이나 핑거스타일 위주의 연주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핑거스타일+클린톤의 깔끔한 기타리프로 현시대 젊은 모던 연주자들까지도 폭넓게 지지를 받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이다.
또한, 보컬로서 고평가받는 음악가로, 특유의 힘 쫙 빼고 대충 부르는게 아닌가 싶은 스타일의 개성이 매우 독보적이다.[7] 입문하며 느끼는 조금 낯선감을 떨쳐내면 음악에 완전히 녹여내는, 마크 노플러만의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목소리가 중후해졌는데, 그 때문에 그 대충 노래 부르는 듯한 느낌이 좀 더 멋지게 변했다
솔로로 전향한 이후에는 다이어 스트레이츠 시절과는 달리 컨트리 음악을 주로 하고 있다.
5. 기타
- 1999년에 대중음악에 대한 공로로 4등급 대영제국 훈장(OBE)을 수여받았다.
- 성이 꽤 발음하기 힘든데, 헝가리계 유대계 영국인이라는 복잡한 혈통 때문에 그렇다.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이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꽤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
- 지금까지 결혼을 3번 했다. 현재 결혼한 아내와는 노팅 힐에서 살고 있다고. 꽤 오랫동안 이혼하지 않은 것을 보면 금슬이 좋은 모양이다.
- 여러 음악가들과 친한 관계이며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록스타와도 자주 협업을 한 적도 있다. 그와 협업을 한 뮤지션으로는 필 콜린스, 랜디 뉴먼, 스팅, 밴 모리슨, 티나 터너가 있으며 까마득한 선배인 쳇 앳킨스와도 협업을 했었다.[8] 특히 에릭 클랩튼과는 절친 사이다.[9]
-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재산도 어마어마한데, 그의 재산은 약 9,500만 달러[10]로 추정된다. 2019년 가장 부유한 영국인 음악가 중 39위를 차지했다. 당시 재산은 7,500만 유로. 공연 수입에다가 다이어 스트레이츠 히트곡들, 솔로곡들, 영화 및 드라마 ost 등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했기 때문에 저작권 수입이 엄청날 것이다.
- 엄청난 부에 맞게 자동차 수집이 취미라고 한다. 특히 희귀 클래식 차를 여러 종 가지고 있다고 한다.
- 기타리스트로서 희귀한 기타도 많이 수집했는데, 2024년에 소장한 기타 상당수를 크리스티 경매장에 내놓아서 처분했다. 59년 깁슨 레스폴이 최고 경매가로 87만 6천 달러에 낙찰되었다. 처분 사유는 불명이며, 판매 수익금의 25%는 불우이웃 돕기 목적으로 자선단체 기부하기로 했다.#
- 201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헌액되었는데 헌액식에 참가하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 공룡 마시아카사우루스의 학명 "'크놉플레리'''는 마크 노플러에 성씨에서 따온것으로 탐사대원 중 한 명이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마침 마시아카사우루스의 화석을 발굴하고 있을 때 이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이 공룡의 종명에 밴드의 리더인 마크 노플러의 성을 붙여주면 어떨까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여기에 대해 노플러는 '공룡이라는 것은 분명 어울리는데, 나는 조금도 포악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6. 음반
- Golden Heart (1996)
- Sailing to Philadelphia (2000)[12]
- The Ragpigpicker’s Dream (2002)
- Shangri-La (2004)
- Kill to Get Crimson (2007)
- Get Lucky (2009)
- Privateering (2012)
- Tracker (2015)
- Down the Road Wherever (2018)
[1] 현재는 퇴직 상태. 음악 활동을 하기 전에는 기자였다.[2] 비단 롤링스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매체에서 선정하는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반드시 선정될 정도로 그 실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3]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는 대부분의 영국 가수들의 앨범 판매량 추이를 보면 두 나라간의 시장규모 차이로 미국에서의 앨범 판매량이 월등히 높은 경우가 많은데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미국과 영국에서의 앨범 판매량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만큼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조국 영국에서 정말 큰 인기를 얻은 밴드이다.[4] 완전 할아버지가 된 최근 연주 동영상[5] Rudy Pensa가 만든 미국의 수제 커스텀 기타 브랜드로 대부분의 기타가 7,000달러가 넘을 정도로 상당히 고가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타 이름이 MK로 시작한다. 위의 프로필 사진에 마크 노플러가 쥐고 있는 파란 기타가 바로 Pensa 기타이다.[6] 이외에도 피크를 쓰지 않는 대표적인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는 제프 벡이 있으며, 최근에는 리치 코젠도 핑거 피킹으로 연주를 한다.[7] 이런 이유로 커버하는게 매우 힘든 보컬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창과는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 그냥 말을 늘어놓는 듯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가깝다. 로저 워터스와 비슷하게 본인의 곡에 맞춰 부르는 것에 매우 탁월한 케이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 부르는 스타일의 기준에 대입하기 어렵다. 이렇듯 그의 개성이 독보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면 그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으며, 더군다나 비영어권 사람이 부르면 듣기 더욱 어색하다.[8] 앳킨스와 노플러는 1990년에 Neck and Neck이란 앨범을 발매했고 앨범 수록곡 Poor Boy Blues와 So Soft Your Goodbye는 91년 Grammy Award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9] 에릭 클랩튼과는 자주 협업하여 농담성으로 다음과 같은 농담이 돌기도 한다. 신:"자네는 기타를 얼마나 잘 연주하는가?" 노플러:"에릭 클랩튼이 저의 백업 연주자입니다."[10] 한화 약 1,100억원[11] 노년의 노플러는 노년의 크루이프와 정말 비슷하다.[12] 마크 노플러 솔로 앨범 중 가장 성공한 앨범. AC/DC의 브라이언 존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Life on the Road에서 이 앨범에 수록된 동명의 노래 Sailing to Philadelphia를 둘이 같이 부르기도 했다. 평소에 브라이언 존슨이 좋아했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