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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밴 헤일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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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an Halen(앨범).jpg
파일:Van Halen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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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air warning.jpg
파일:Diver Down.jpg
Van Halen
1978.02.10
Van Halen II
1979.03.23
Women and Children First
1980.03.26
Fair Warning
1981.04.29
Diver Down
1982.04.14
파일:1984 album.jpg
파일:5150.jpg
파일:OU812.jpg
파일:For Unlawful Carnal Knowledge.jpg
파일:Balanceevh.jpg
1984
1984.01.09
5150
1986.03.24
OU812
1988.05.24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1991.06.17
Balance
1995.01.24
파일:Van Halen III.jpg
파일:A Different Kind of Truth.jpg
Van Halen III
1998.03.17
A Different Kind of Truth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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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밴 헤일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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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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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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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5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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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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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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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제프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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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킹 척 베리 에디 밴 헤일런 듀언 올맨 피트 타운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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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해리슨 스티비 레이 본 앨버트 킹 데이비드 길모어 프레디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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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앳킨스 프랭크 자파 버디 가이 앵거스 영 토니 아이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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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쿠더 빌리 기븐스 프린스 커티스 메이필드 존 리 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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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로즈 믹 테일러 디 에지 스티브 크로퍼 톰 모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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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론슨 마이크 블룸필드 휴버트 서믈린 마크 노플러 링크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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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가르시아 스티븐 스틸스 조니 그린우드 머디 워터스 리치 블랙모어
51위부터는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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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회사 깁슨에서 2010년 발표한 "50 Greatest Guitarists of All Time"의 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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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 척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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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벡 에디 밴 헤일런 쳇 앳킨스 로버트 존슨 피트 타운젠드
1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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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밴 헤일런
Eddie Van Halen
파일:에디 밴 헤일런옹.jpg
<colcolor=#00B3FA><colbgcolor=#000> 본명 에드바르트 로더베이크 판할런
Edward Lodewijk van Halen
출생 1955년 1월 2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성장지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사망 2020년 10월 6일 (향년 65세)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음악가
소속 파일:Van Halen.png 밴 헤일런 (1974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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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00B3FA> 부모님 얀 판할런
오이제니아 판할런[1]
배우자 밸러리 버티넬리 (1981 - 2007, 이혼)
제니 리스제스키 (2009 - 2020, 사별)
형제 알렉산더르 판할런
자녀 슬하 1남
볼프강 판할런
신체 173cm, 70kg
장르 하드 록, 헤비 메탈, 글램 메탈
활동 기간 1964년 - 2020년
사용 악기 기타, 키보드, 드럼
레이블 워너브라더스, 인터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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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생애
3.1. 유년기3.2. 밴 헤일런3.3. 사망
4. 연주 스타일5. 사용 장비
5.1. 기타5.2. 앰프
6.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판할런.jpg
진정한 신사이자 진정한 천재
기저 버틀러
미국, 네덜란드의 음악가.

2. 상세

"신참 밴드나 후배 뮤지션들이 한결같이 성공하려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한테 물어 보는 게 참 재미있다. 우선 그 '성공'의 의미부터 내게 설명해주길 바란다. 단순히 록스타가 되는 것이 목표인가, 아니면 음악 자체를 사랑해 평생 직업으로 하는 게 목표인가?"
태핑 기법을 록 기타 연주계에서 대중화 시킨 사람[2]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다양한 음향학적 실험을 전개한 전설적인 하드 록, 메탈 기타리스트이다. 데이비드 리 로스와의 기타-보컬 콤비는 정말 유명하다.

소위 기타리스트들의 슈퍼 기타리스트로 불리우며 에디의 기타 톤, 연주 기법 [3], 사운드의 접근법, 주옥같은 리프 메이킹, 끝내주는 디자인 감각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요소들로 국내외 락/메탈 팬 및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기타 연주, 혹은 더 나아가 헤비 메탈, 하드 록 계열에서 에디 밴 헤일런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형제 성을 딴 밴드 밴 헤일런과 함께 등장해 새로운 일렉트릭 기타 주법, 이펙트 및 장비와 키보드 연주로 헤비메탈 작법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렉트릭 기타뿐만 아니라 키보드 연주에도 두각을 드러낸 음악적 천재로 불린다.

그는 60세인 2015년까지도 화려한 연주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젊은 시절부터 이어온 흡연으로 후두암에 걸려 결국 2020년 10월, 별이 되었다.

3. 생애

3.1. 유년기

195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네이메헌[4][5]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가족 전체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가족이 음악인 집안[6]이라 어렸을 때부터 형 알렉스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지만, 딱딱하고 체계적인 클래시컬 교육에 진절머리를 내 부모님과 한창 대립했다고 한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 보다 귀로 듣고 카피하는 걸 선호했고 또 한 음 한 음 따라 치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미해 즉흥연주 하는 걸 선호했다. 물론 정식 교육을 받은 음악인인 부모님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록 유망주답게 끝까지 반항해 지금도 악보는 잘 읽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이토록 자유로운 자기류 음악 공부는 나중에 기타 연주와 키보드 연주에도 상당한 유연성을 가져다 주었으니 말짱 도루묵은 아니었던 셈. 실제로 콩쿠르에도 몇 번 나가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피아노에는 점점 관심이 멀어지게 되고, 형은 기타를, 에디 본인은 드럼에 매진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다가 형이 오히려 드럼에 대단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악기를 바꿔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 한건 초등학교 4학년때 첫 밴드 브로큰 콤스를 결성할 때였다. 이 시기에 일화가 있는데, 존 본햄이랑 앉아서 술 마시던 리치 블랙모어에게 공연 후 사인을 받으러 갔다가 꺼지라고 욕설을 들었다고... 이때 부터 형 알렉스는 드럼, 에디는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해 점점 세월이 지나며 실력을 갈고 닦으며 여기저기 아마추어 무대를 진전하다 17세 때 밴 헤일런의 전신이 될 만한 밴드 제네시스[7]를 결성. 이때 잘 하지도 못 하는 메인 보컬을 싫증내던 에디는 보컬 오디션에는 탈락했지만 무대 장비는 계속 해서 빌려주던 대학교 친구 데이비드 리 로스를 경제적인(...)[8] 이유로 고용을 하고 원래 베이시스트였던 마크 스톤은 마이클 앤서니로 교체해 밴드명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와 겹치니 새롭게 맘모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리 로스가 맘모스라는 밴드명은 뭔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던지 그냥 밴 헤일런 형제의 이름 자체가 산타나 같이 느낌이 좋다고 열심히 설득해 결국 밴드명이 밴 헤일런으로 바꾸게 된다.

70년대 중후반 주변 고등학교에 전단지를 돌려가며 본인들을 홍보해 무대에 서고, 선셋 스트립에서 나름 잘 나가던 나이트 클럽 '가자리'에서 연주도 하게 된 밴 헤일런은, 결국에는 유명 스튜디오에서 첫 데모 테이프도 녹음 하게 되는 기회도 부여받고 여러 유명 클럽을 전전하며 인지도를 쌓게 된다. 그러다가 당시 최고의 밴드였던 KISS의 진 시몬스의 관심을 끌어 두번째 데모 테이프를 녹음하게 되지만, 어쩐지 말도 안 듣고 하니 질렸는지[9] 진 시몬즈는 성공의 가망이 없다고 곧바로 손을 떼게 된다. 그렇게 버려진 밴 헤일런을 발굴한 건 오히려 워너브라더스 뮤직의 프로듀서 두 명이었다. 비록 소규모 무대였지만 성공의 예감이 든 두 프로듀서는 곧바로 계약을 체결. 몇주간의 전문 스튜디오에서 앨범 작업을 통해 대망의 데뷔 앨범인 "Van Halen I"을 내놓는다.

3.2. 밴 헤일런

이후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밴 헤일런 항목 참조.

에디 밴 헤일런은 1집에 수록된 Eruption#이라는 곡으로 록기타계에 투핸드 태핑 주법을 널리 퍼뜨렸다. 또한 마이클 잭슨Beat It의 기타솔로를 연주해서 주목받기도 했는데, 멤버들에게는 밴드외적인 활동에 대한 양해를 미리 구하려고 했으나 모두 휴가등의 이유로 연락이 안되자 그냥 스튜디오로 가서 녹음했다고 한다.[10] 참고로 솔로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유명한 세션 기타리스트인 폴 잭슨 주니어와 TOTO의 현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가 연주#.

3.3. 사망

한국 시각으로 2020년 10월 7일(현지 시각 10월 6일 오전), 아들 볼프강 밴 헤일런이 트위터로 에디 밴 헤일런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2019년 후두암 투병 사실이 밝혀졌을 당시, 투병 5년차였다고 한다.

한편, 에디 밴 헤일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골초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에디는 담배 이외에도 어렸을 적부터 담배, 마약을 즐겨해 잦은 투병 생활을 했다.[11] 결국 이 담배 때문에라고 할 정도로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판정을 받아 수술을 받았고 금연에 실패하여 다시 담배를 피워서, 2015년경에 후두암 판정을 받았고, 결국 2020년 10월 6일 별이 되었다.

그는 흡연을 하는 모습이 아이콘이 될 정도로 흡연자의 상징이었지만, 되려 이로 인해 사망할 정도로 흡연이 왜 위험한지 알려주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그의 과거 동료였던 보컬 새미 헤이거와 마이클 앤서니가 그를 추모하는 영상을 올렸다.

4. 연주 스타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연주, 이펙트 및 톤은 당대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다. 기존의 고전적인 하드록 기타 연주 스타일에서 변화의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건너뛴듯한 혁신적인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더 빠르고,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헤비메탈 기타 연주로 등장과 함께 락 기타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이른바 'Game Changer'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연주를 들으면 락/메탈 기타 연주에서 흔히 들어본듯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그러한 스테레오타입같이 들리는 연주 스타일의 상당수가 에디 밴 헤일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슬래시는 자서전에서 마치 록 음악 업계가 한번에 뒤 바뀐 느낌이 들었다고 썼다. 레드 제플린딥 퍼플을 카피하던 동네 기타리스트 청년들은 이제 밴 헤일런의 모든 것을 카피하려고 들었다고. 우선 에디 밴 헤일런의 전가의 보도 태핑 주법은 재즈 기타, 혹은 컨트리 뮤직 기타에서 가끔 쓰이는 주법을 헤비메탈에 도입[12]해 대단히 유려한 3단음 클래시컬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트레몰로 피킹, 얼터네이트 피킹과 레가토 피킹을 섞어 새로운 방식의 속주를 보여주어 지미 페이지리치 블랙모어 두 명의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동시대 기타리스트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에디 밴 헤일런의 영향은 기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도 크게 미쳐, 슈퍼스트랫 기타와 플로이드 로즈 트레몰로 브릿지의 유행을 불러왔다.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플로이드 로즈를 활용한 다이브 밤 주법을 비롯, 트레몰로 바를 활용한 여러가지 주법을 선보였다. 리프 메이킹에 있어서도 드랍 튜닝, 70년대의 블루스 락의 영향력 외 펑크적인 주법이나 일렉트릭 시타르, 아예 키보드로만 연주하는 메인 리프연주를 도입하는 등 독창적이고 참신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가며 80년대 헤비메탈의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을 세웠다. 잉베이 말름스틴이 등장하기 전까지 70년대와 80년대 사이 헤비메탈/하드록 의 음악적인 차이를 가장 많이 벌려놓은 장본인중 하나이다. 에디 밴 헤일런의 특징을 가장 잘 정리해놓은 곡이 바로 데뷔 앨범의 기타 솔로곡 Eruption[13]인데, 이 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 솔로에서 10위권을 벗어나는 일이 없을 정도.



태핑시의 어택감에 맛깔남을 더해주는 MXR 페이져 90 (Phase Shifter : 일명 오렌지블럭)를 사용해,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만의 특유한 스트라이프 모양의 스크립트 모드가 추가된 페이져 모델이 따로 있으며, 폴 길버트 등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애용하고 있다.

파일:mxrphase90.png


5. 사용 장비

5.1. 기타

여러 기타를 사용했지만, 가장 유명한 건 위 사진에서도 나오는 샤벨에서 넥과 바디를 구입하여 색칠하고 조립한 '프랑켄슈타인 스트랫'[14]이겠다.

이 프랑켄스트랫은 처음에는 흰색 바탕/검은색 스트라이프[15][16]였으나, 밴드와 앨범들이 히트하게 된후 그 유명세를 타 여기저기서 모조품들이 나오자 여기서 빨간색으로 또 칠하게 된다. 그리고 이 빨/흰/검 스트라이프는 에디의 상징이 된다.[17]

프랑켄스트랫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읽어볼 것.

1980년대 중반에는 크레이머의 엔도서가 되어 크레이머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다. 3색 스트라이프까지 칠해서.

1990년대에는 뮤직맨에서 만든 'EVH'[18][19]라는 시그니처 기타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피베이로 엔도서를 옮긴 후에도 볼프강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디자인의 기타를 사용했고, "EVH"라는 자신만의 기타/기타 앰프/기타 액세서리 회사를 차린 후에도 볼프강 기타를 생산하여 판매중이다.

그리고 EVH 회사에서는 오리지널 프랑켄스트랫 스타일의 페인팅이 된 기타를 'EVH 스트라이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판매중이다.

5.2. 앰프

초기에는 당대의 락 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마샬 Plexi Super Lead 1959 앰프를 사용했다. 1992년부터는 자신의 시그니처 앰프인 Peavey 5150[20]을 사용했고, EVH 브랜드를 런칭한 후에는 EVH 5150으로 이름과 디자인을 변경했다. 피베이에서도 기존 5150 앰프를 6505로 이름만 바꿔서 계속 생산하고 있으며, EVH 5150과 피베이 6505는 본질적으로 뿌리가 같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EVH 기타처럼, EVH 앰프도 펜더가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EVH 5150은 특유의 금속성 섞인 강렬한 드라이브 사운드가 특징인 고출력 하이게인 앰프로, 헤비메탈 사운드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앰프 중 하나이며, 많은 헤비메탈 계열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고 있다.

6. 여담

Jimmy Page is an excellent producer. Led Zeppelin and Led Zeppelin II are classics. As a player, he's very good in the studio. I never saw him play well live. He's very sloppy. He plays like he's got a broken hand and he's two years old. But if you put out a good album and play like a two-year-old live. What's the purpose?
지미 페이지는 훌륭한 프로듀서예요. "Led Zeppelin"과 "Led Zeppelin II"는 고전 명작이죠. 연주자로서 그는 스튜디오에서는 기타를 아주 잘 칩니다. 하지만 전 그가 라이브에서 기타를 잘 치는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페이지의 라이브 연주는 엉성하기 짝이 없죠. 그는 팔이 부러진 2살짜리 아기처럼 기타를 연주해요. 만약 스튜디오 앨범에서 기타를 훌륭하게 치는데 정작 관중들 앞에서는 2살짜리 아기의 실력으로 기타를 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에디 밴 헤일런, 1981년

[1] 자바인과 인도네시아 화인 그리고 네덜란드인 혼혈이라 한다.[2] 흔히 태핑 기법을 록 음악에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지만, 태핑 기법을 록 음악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은 제네시스의 스티브 해킷이다.[3] 화려한 태핑이나 테크닉이 아닌 기타를 다루는 스킬 자체가 말도 안되게 능숙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솔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에디의 배킹 플레이는 기타리스트들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4]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가톨릭이 주류인 곳이라서 에디 본인을 포함한 가족 대다수가 가톨릭교도였다. 그리고 성씨를 네덜란드어로 발음하면 판 할런이 된다.[5] 여담으로 모계쪽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혼혈인이다.[6] 아버지가 클라리넷 연주자로 후일 형제들의 앨범에 참여한 적도 있다.[7] 필 콜린스로 유명한 동명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는 관계가 없다.[8] 데이비드 리 로스는 아버지가 의사였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대인 중산층 출신이다. 그래서 밴드 내에서 회계와 마케팅 등 음악 외의 경제 관련한 일들은 거의 다 리 로스의 업무였다.[9] 몇 번이나 고쳐 바꾼 이름 밴 헤일런을 'Daddy Longlegs'(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바꾸라고 강요했으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10] 에디가 바빠서 그냥 마스터링테입에 녹음했다는둥 전화상으로 녹음했다는 둥의 말도 안되는 소문이 있는데,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인 퀸시존스나 마이클 잭슨이 Thriller 앨범제작에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안다면 그런 헛소리는 안할것이다.[11] 무려 그가 12살이었을 때 부터 흡연과 음주를 시작했다고 한다.[12] 그러나 에디 밴 헤일런이 태핑 주법을 개발한 건 아니다. 본래 재즈 기타에서 사용되고 있던 주법이기도 했고, 록 기타에서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60년대에 여러 록 기타리스트들이 선보인바 있었고, 심지어는 70년대 초반에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해킷이 71년도에 연주한 바 있고 역시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Yes의 스티브 하우 같은 기타리스트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 전에 이미 클래식의 바이올리니스트들도 즐겨하던 주법이다. 딱히 새로울게 없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딱히 새로울 게 없다는 주법을 당당한 실전 무기로 내세워 음악사에 혜성처럼 나타나 당대 일렉기타 연주자들의 트렌드와 록음악의 변화를 주도하고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장본인이 에디 밴 헤일런임에 대해서는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그 누구라도 폄하하고 깎아내리지 못한다.[13] 태핑 자체는 킹크스의 원곡을 커버한 첫 싱글인 You Really Got Me의 기타솔로에도 태핑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14] 흔히 줄여서 '프랑켄스트랫'이라고 많이 부른다. 그리고 이 기타는 슈퍼스트랫의 시초가 된다.[15] 이때의 모습은 Van Halen의 앨범 커버에서 확인할 수 있다.[16] 이런 식으로 페인팅하려면 검은색 바디에다가 줄무늬를 하고 싶은 부분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인 후 흰색으로 칠해야 한다.[17] 다만 이 5150 완전체판도 열심히 카피모델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존재하고 기타 페인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실력에 자신이 생겼을 때 시도해 보곤 하는 컬러링 패턴이 많다. 오리지널 말고도 초창기의 흰검/검흰 스트라이프나 중반기 검은색/노란색 스트라이프, 후반기의 흰/검/파 패턴 혹은 흰/노/파 패턴 등등.[18] 이후 뮤직맨의 간판 일렉트릭 기타가 되는 AXIS의 베이스 모델이 된다.[19] 여담으로 에디 밴 헤일런의 줄임말이며 예명이다.[20] 5150은 1986년 발표한 밴 헤일런의 7번째 앨범 제목으로, 정서 불안자를 가리키는 캘리포니아 주 코드 번호이다.[21] 보통 팬들은 이 모습을 가리켜 “기타가 담배를 핀다”고 하기도 한다. 이걸 마왕이 따라하다가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고 학교 밴드에서 퇴짜를 맞은 일화도 있다. 그의 전매특허이긴 한데, 당시 록밴드 기타리스트 상당수는 이 행위를 꽤 자주 했다. 더 폴리스의 기타리스트 앤디 서키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Every Breath You Take의 뮤직비디오를 잘 보면 플랫에 담배기 끼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2] 커트 코베인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당시 너바나의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들어온 팻 스미어에 대해 조금 안 좋게 말을 했다. 팻은 모계 쪽으로 아프리카인의 피가, 부계 쪽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가 흘러 피부색이 다른 너바나 멤버들보다 살짝 어두웠는데, 크리스 노보셀릭이 에디에게 팻을 소개하자 에디는 "아 뭐야, 이 까만 친구야?(Oh no, not a dark one.)" 비슷한 투로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자넨 뭐야? 인도인? 멕시코인인가?(What are you? Are you like a Raji or something? Are you Mexican?)"라고 하고선 커트에게 "나 이 멕시코 친구 기타 좀 연주해보자!(C'mon let me play the Mexican's guitar)"라고 했다고 한다. 팻 스미어는 이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사실 에디 역시 모계 쪽으로 인도네시아인과 자바인의 피가 흐르는, 따지자면 쿼터(Quarter)에 가깝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위대한 기타리스트라고 해도 이것은 나름대로 부적절한 언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네덜랜드에서나 미국에서나 백인 혼혈이라서 인종차별을 여러번 겪은 것을 생각하면 본인 과거사를 잊고 흑인계인 팻 스미어에게 인종차별을 저지른 셈이다.아니면 자기 딴에서는 이런걸 농담이랍시고 던져댄걸지도 모른다(...)[23] 커트 코베인은 정치관이 강성 진보 성향이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인종 차별, 여성 차별 등에 매우 민감히 반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