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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헷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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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Em All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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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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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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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Metal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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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지미 헨드릭스 척 베리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제프 벡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 나일 로저스 비비 킹 조니 미첼 듀언 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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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노렌 토니 아이오미 프린스 키스 리처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로버트 존슨 메이벨 카터 톰 모렐로 프레디 킹 스티비 레이 본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랜디 로즈 앨버트 킹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제임스 버튼 존 프루시안테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세인트 빈센트 버디 가이 데이비드 길모어 에디 헤이즐 닐 영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해리슨 잭 화이트 브라이언 메이 제리 가르시아 에릭 클랩튼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엘리자베스 코튼 피트 타운젠드 앵거스 영 & 말콤 영 쳇 앳킨스 존 페히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보 디들리 버논 레이드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조니 라몬 스티브 크루퍼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프랭크 자파 디 에지 커티스 메이필드 PJ 하비 엘모어 제임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톰 베를렌 존 리 후커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보니 래잇 믹 테일러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조니 마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알렉스 라이프슨 로버트 프립 스코티 무어
<rowcolor=#fff>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존 메이어 피터 그린 리처드 톰슨 스티브 크루퍼 캐리 브라운스타인
66위부터는 링크 참조.
}}}}}}}}} ||
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제임스 헷필드
James Hetfield
파일:제임스 헷필드.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제임스 앨런 헷필드
James Alan Hetfield
출생 1963년 8월 3일 ([age(1963-08-03)]세)

[[미국|]][[틀:국기|]][[틀:국기|]] 캘리포니아 주 다우니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보컬리스트
소속 그룹 메탈리카
악기 보컬, 기타, Table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음악 활동 이전2.2. 음악 활동
3. 음악 스타일
3.1. 보컬3.2. 연주 스타일3.3. 작곡 & 작사
4. 사용 장비5. 기타

[clearfix]

1. 개요

메탈리카의 보컬 겸 리듬 기타 담당.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음악 활동 이전

1963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시골마을인 다우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수이자 떠돌이 교사였고 어머니는 라이트 오페라 가수였다. 양친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로 어린 시절은 대체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커뮤니티 안에서 자라났고 성장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문신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문양이다. 제임스는 어머니에게 9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14살 때 그의 형에게 드럼을 배운 뒤 이후 기타를 다루게 되었다.

제임스의 아버지 버질 헷필드는 다혈질적인 성격이었고 가족과 제임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제임스가 13살일 때 메모 한 장만을 남겨놓고 집을 떠나버렸다. 이후 제임스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유년 시절을 방황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만 남아있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그래도 관계가 회복되었는지 아버지를 스튜디오에 초대하기도 했으며 [1], 같이 나란히 찍은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제임스의 아버지는 1996년 Load 투어 때 작고했다.

제임스의 어머니 신시아 헷필드는 암에 걸렸는데도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로서 종교적 신념으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고 제임스가 16살 때 끝내 사망하였다. 어머니의 사망은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Mama Said', 'Dyers Eve', 'The God That Failed' 등은 제임스의 어머니의 소재로 다룬 곡이었으며 'Until It Sleeps' 또한 병으로 인한 고통을 다루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아버지의 가출에 이은 어머니의 사망으로 인해 제임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임스의 가족은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2.2. 음악 활동

제임스는 Hit The Lights[2] 등의 자작곡들을 들고 레더 참(Leather Charm), 옵세션(Obsession), 팬텀 로드(Phantom Lord) 등의 밴드를 결성해 보았지만 이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후 그는 라스 울리히의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하여 메탈리카의 공동창립자가 된다. 제임스는 다이아몬드 헤드, 모터헤드 등 NWOBHM의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션으로, 데뷔 초 자작곡이 부족하던 인디 시절 이들의 곡을 많이 커버했었다.

메탈리카 멤버 전원이 그렇듯 엄청난 주당이었는데, 젊은 시절 내내 공연하고 밤새 술판을 벌이고 다음 날 떡이 돼서 다음 투어지에 도착해 술이 깨면 무대에 오르는 생활을 반복하곤 했다. 투어를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버스에서 내려 근처 슈퍼에 잠시 들러 맥주를 싹쓸이하거나, 밤새 술을 퍼먹고 다음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잠이 깨자마자 해장술을 찾는 등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술고래였다. 그나마 데이브 머스테인과 달리 술이나 약에 쩐 상태로 무대에 올라 추태를 부리거나 관객들과 주먹다짐하는 일만큼은 없었다.

취미활동 중 부상을 입어 공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몇 번 있었다. 1986년 Damage Inc. 투어 중인 동년 6월 경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넘어져 손목이 부러진 적이 있으며, 이로 인해 존 마셜[3]이 리듬 기타 포지션의 대타로 연주했으며 밑에 서술 된 1992년 화상 사고 직후에도 마셜이 대타를 맡았다. 1987년 3월에 똑같은 사고를 겪어 SNL 출연이 무산되었으며, 제이슨 가입 기념 스튜디오 커버 앨범 Garage Days Re-Revisited의 녹음이 연기되었다. 2000년 6월에는 제트스키를 타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아예 무대에 서지를 못해 Korn, 슬립낫 등 다른 밴드 멤버들이 그 자리를 메워 주었다.[4]

1992년 8월 8일 몬트리올에서 공연 도중 좌측 반신에 2~3도 화상을 입는 큰 사고를 당했다. 기사 멤버들이 당시 사고를 회고하는 영상 시각효과를 위한 화염 장비가 제임스의 동선과 겹친 것이 문제였는데, 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수백 도 온도의 불길에 제임스는 머리카락이 일부 타고 좌측 안면과 왼팔, 왼손 등등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5] 이 때 메고 있던 ESP 호라이즌 더블넥 기타 역시 불에 타 손상됐다. 제임스는 화상 직후 주저앉아 고통에 몸을 떨다 이송되었고,[6] 다행히 피부 재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사고로부터 15일 후 몬트리올을 재방문해 일찍이 헛걸음을 했던 팬들에게 보상공연을 했다. 하지만 흉터가 심하게 남아 이후 팔뚝부터 손끝까지 문신을 하게 된다. 사고의 원인은 화염 장비 담당자가 예전 화염 장비와 새로운 화염 장비에서 동시에 화염이 나올 것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당연히 예전 화염 장비의 위치에서는 불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참고로 이 공연에서 메탈리카가 한 시간 일찍 철수하고 갑작스레 올라온 건즈 앤 로지스는 잠시 공연을 하다 액슬 로즈가 '지금 이 세팅 맘에 안들어' 하며 집에 가버리는 돌발상황을 만든 탓에 공연이 완전 파토가 났으며, 이는 이 날 몬트리올에서 전설적인 폭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2001년 1월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가 돌연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임스는 크게 상심한다. (자세한 사항은 제이슨 뉴스테드 항목 참조) 또다시 멤버를 잃은 슬픔과 자신의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 결여, 알콜 및 약물 중독이 겹친 제임스는 앨범 작업을 속행할 수 없을 만큼 맛이 가고, 같은 해 여름 재활원에 입원한다. 약 1년간 재활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은 제임스는 퇴원 이후 8집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며 자신이 재활원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그 후 밴드 멤버들간의 관계 재형성을 위해 고생한 과정들을 솔직하게 공개했다.[7] 그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필요하다면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바람직한 대인관계를 맺는 열쇠다"라는 인터뷰를 남기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밴드에 다시 합류해 8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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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tatic.gigwise.com/7790212_JamesHetfield-Moustache.jpg|width=100%]]
바바리안 재활원을 나와 하루에 딱 네 시간만 음악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가족과 빈둥빈둥 논 탓에 2002년부터 2004년 즈음까지 이렇게 살이 불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건강한 근육질 몸매로 여성 팬들을 휘어잡았던 헷필드가 이렇게 변한 것을 두고 많은 팬들이 대경실색했으며, 이 시기를 기억하는 팬들은 이 때를 회고하기를 카툰 시대(Cartoon Era)라고 부른다. 심슨가족에 나올법하게 생겼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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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james.jpg|width=100%]]
이후 투어를 돌 체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체중감량을 했으며, 중간중간 요요가 심하게 오긴 했지만 2011년쯤에는 아예 80년대 중반의 말라깽이 청년에 가까운 몸매를 완성했다. 밴드 결성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공개된 모습으로는 커크 해밋이 부럽지 않은 날씬한 몸으로 되돌아왔다. 왼쪽 두번째 좀 부어보이는 아저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을 위해 약간의 벌크업과 동시에 살을 조금 찌웠다. 살크업 목소리도 회복되어서 머리만 기르면 딱 왕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원형탈모가 찾아왔다. 아앗...아... 2018년 9월쯤부터 다시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목소리가 어느 정도 옛날처럼 돌아와서 "수염이 헷필드의 본체다."라는 등의 유튜브 댓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9월 28일 메탈리카는 10월에 있는 슬립낫과의 호주-뉴질랜드 공연 취소 소식을 알렸는데 제임스가 중독증세로 인한 치료를 다시 받기 위해서라고...

제임스의 음악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두 인물로 뽑을 수 있는데, 스콜피온즈의 원년 멤버이자, MSG의 리더인 마이클 솅커와 지금은 고인이 된 모터헤드의 리더였던 레미 킬미스터다. 기가막힌 작곡 실력과 멜로디를 뽑아내는데는 마이클 솅커만한 사람도 없다고하고, 커크 헤밋 역시 마이클 솅커를 그의 영원한 아이돌로 여기고 있다. 레미 킬미스터의 경우 당시 글램록의 영향으로 호피 무늬의 옷이나 반짝거리는 이미지를 선보였던 선배 밴드들과 달리 미국 남성들의 성향에 맞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음악 스타일 역시 거칠고 당시 10대들이 좋아할만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덤으로 머리는 짧게 잘라도 수염을 계속 기른 이유도 그가 가장 존경하는 레미 킬미스터를 흉내낸 것이라고 한다. 90년대 블랙 앨범 때의 장발+수염은 영락없이 레미를 따라한 것이었고, 수염의 형태 역시 레미의 수염 형태를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3. 음악 스타일

3.1. 보컬

결성 초기 제임스의 보컬 기량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가 즐겨 들었던 다이아몬드 헤드의 보컬 숀 해리스의 모창에 가까운 타입의 보컬리스트였고, 발성과 음역대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제임스가 보컬과 기타를 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메탈리카는 아머드 세인트(Armored Saint)의 보컬리스트 존 부시에게 가입을 제안했는데, 부시가 거절함에 따라 제임스가 계속 보컬을 맡게 되었다.[8][9]

1~2집, 즉 결성 직후인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제임스의 보컬은 천천히 다듬어져 갔다. 초창기에는 자신이 녹음한 음역대를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해 적당한 비명으로 대체했으며 숨이 차면 대충 넘기고 부르기 좋은 부분만 신나게 부르는 '가라오케 메탈 밴드' 수준에 그쳤는데, 2집인 1984~1985년 기간에는 페스티벌의 낮시간대 라인업이나 선배 밴드의 오프닝에 걸맞은 보컬을 보이기 위해 좀 더 정확한 음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3집 시기에 이르러 인디 밴드의 색채를 벗기 시작한다. 1986년 3집 발매를 전후로, 특히 3집 투어를 기점으로 오늘날 흔히 말하는 제임스의 보컬의 전성기가 열린다. 1986년부터 1991년, 더 길게 잡으면 1993년경까지를 전성기로 잡는데, 이 시기 제임스는 생목으로 트윈기타의 디스토션을 잡아먹는 절정의 성량을 자랑하며 메탈 보컬의 아이콘이 된다. 이 시기를 찍은 프로캠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데, 수많은 팬캠과 1993년 라이브 앨범 <Live Shit: Binge & Purge>의 1989년 공연 파트를 통해 그의 전성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전성기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 3/4/5집에 해당한다. 3집 시기는 2집과 4집의 과도기로, 2집에 비해 자신의 음정을 정확히 통제할 수 있게 된 한편 여전히 어린 티가 나는 보컬과 슬슬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파워풀한 보컬의 사이 어딘가의 유니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4집 시기는 포효하는 사자 같은 보컬을 마음껏 뽐내던 시기로[10], 3집으로부터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어린 티가 사라진다. 5집 시기는 무리로 인해 서서히 목이 탁해지는 경향을 보이나 밥 록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을 선보이며 소화 가능한 음역대를 크게 확장했고, 음정을 가장 정확히 짚을 수 있었으며, 팝 감각이 있는 멜로딕한 곡들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균형잡힌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때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는데, 다름아닌 성당 성가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성가대에 가입하면서 소위 "아→아↗아↘아→"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단점과 장점을 살리면서 계속 그 역량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결과 환갑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기복이 없는 보컬 실력을 보여준다.
1991년 Harvester of Sorrow 라이브

1994년, 제임스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며 보컬 역량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0년 5집 녹음 작업을 하면서 목을 풀지 않고 노래를 한 탓에 성대 결절[11]이 생겼는데, 이후 5집 Metallica(음반)의 대히트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총 300회에 달하는 3개의 투어('Wherever We May Roam Tour', 'Guns N' Roses/Metallica Stadium Tour', 'Nowhere Else to Roam')를 소화하며 목에 큰 무리가 온다. 1992년 샌디에이고 라이브에서부터 이미 목소리가 탁해지기 시작하며 어떻게든 이전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쥐어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1993년에 이르면 1980년대의 맑은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 결국 제임스는 1994년부터 창법을 바꿔 생목을 긁는 구간을 점차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호통치듯 질러대던 구간에서 좀 더 팝 감각이 있는 걸쭉한 고음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다.

1995년 차기작 Load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스탠다드 E키로 연주하던 모든 곡을 한 키 낮춰 Eb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12] 마침 Load에 E키 수록곡이 없었기에 악기 교체의 귀찮음도 덜고 원키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기 시작한 제임스의 보컬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Load, Reload 기간 동안 제임스가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음역대는 꽤 낮아진 편으로, 스크리밍 계열의 기법을 접은 대신 묵직한 흉성을 선보이며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의 수록곡에도 많은 고음이 담겨 있으나, 라이브에서의 음정은 매우 불안한 편이었다. 제대로 노트를 찍고자 노력하지만 목이 따라가지 못해 괴성이 튀어나오곤 했다.

1998~1999년은 투어 기간을 줄여가며 목을 관리했고, 대형 프로젝트인 S&M(음반)을 추진하여 좋은 결실을 맺었다. 한편 이러한 단발성 공연과 달리 이어진 투어에서는 계속 성량이 줄고 목이 악화되어 제이슨 뉴스테드의 백업 보컬의 힘을 더 많이 빌리게 된다.

2002년 재활원을 거치며 2003년 다시 투어를 나선 제임스의 보컬은 극적으로 힘이 떨어져 제대로 소화하는 곡이 하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목을 긁지도 못하고 고음을 뽑지도 못했다. 더이상 목에 아픈 곳은 없었으나 40대에 접어들며 젊은 시절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듯한 어정쩡한 라이브를 많이 했다.

2008년 9집 <Death Magnetic> 시기 제임스의 보컬은 이전에 비해 안정되어 악보대로 노트를 찍는 만큼의 기량은 되찾아냈다.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노린 무리한 작곡으로 음역대를 찍는 데에 급급하였을 뿐 제대로 힘을 실어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2009년 한 해 94회의 라이브를 소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메탈리카는 멤버들의 체력 안배와 삶의 질을 위해 투어 회수를 줄였고, 이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최대 30회 선의 공연만을 소화하며 공연 하나하나에서의 라이브 퀄리티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 결과 2011년, 늦게 잡으면 2013년 경부터는 중년의 나이에 걸맞은 노하우를 제대로 습득하여 강력하게 끓어오르는 저음과 초고음의 스크리밍을 모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0집 <Hardwired... to Self-Destruct> 시기는 2002년 재활원을 퇴원한 이래로 가장 깔끔한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 평생 한 번도 레코딩대로 소화해 본 적이 없던 <Ride the Lightning>, <Hit the Lights> 등의 옛 곡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신곡들은 현재 제임스의 보컬 음역대를 제대로 고려하고 쓰여 라이브와 레코딩의 갭이 그리 크지 않다. 한편 젊은 시절 라이브에서 음정을 많이 말아먹어 봉인했던 The Outlaw Torn과 같은 곡들은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에비에비 파묻는 등 예나 지금이나 어떤 부분에서는 참 한결같다.

2017년 2월 3일 코펜하겐의 로열 아레나에서 공연하던 도중 관객들에게 “지금 목소리가 완전 맛이 갔어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평생 해온 일을 갑자기 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라 돌발적으로 말하며 공연을 연기할지 여부를 진심으로 관객들에게 물었고, 관객들은 NO를 외치며 열화와 같은 거부의사를 보냈다. 제임스는 공연을 끝까지 해냈고, 주치의는 당분간 단 한 음도 노래하지 말라고 진단했다. 5일의 공연은 9월 2일로 미루어졌으며, 그 다음 공연인 7일 공연부터는 정상적으로 소화해냈다.

2018년부터는 걸걸한 보컬톤을 되찾으면서 제 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때마침 수염을 기르면서, 수염이 제임스 헷필드의 본체라는 말이 농담삼아 팬들에게서 나오는 중. 좋은 퍼포먼스를 이어갔지만 알콜 중독이 재발하고 코로나 사태도 겹치면서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제임스 헷필드 정도의 나이를 먹은 록 보컬리스트들이 조금씩 목이 맛이 가고 회복이 안되는 와중에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13] 11집 발매 이전과 그 이후까지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드와이어드 투어 이후로 공연 횟수를 조절하면서 목 관리에 성공했으며, 근래 가장 안정적이고 힘있는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

3.2. 연주 스타일

다운 피킹 연주 모음집

다운 피킹 주법의 제왕으로 꼽히는 기타리스트로, 리프의 제왕, 역대 최고의 리듬 기타리스트들 중 하나로 불린다. 메탈리카가 피지컬적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1980년대 중후반 라이브를 보면 대부분의 곡을 앨범보다 130% 이상의 속도로 연주하는데 시종일관 살인적인 파워의 다운 피킹을, 그 미친 듯한 빠르기와 난해한 박자에서 완벽하게 유지하며 노래와 쇼맨십까지 소화하는 것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14] 사실상 메탈리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인 중 하나로, 유수의 기타리스트들도 메탈리카의 곡을 쉬이 커버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15]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젊은 시절 보여준 풀 다운 피킹이 아닌 얼터네이트 피킹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기타 연주는 메탈리카 사운드의 뼈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메탈리카는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메가데스 [16]슬레이어 [17]와 달리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의 구분이 명확한 편인데, 메탈리카가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를 명확하게 구분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제임스 헷필드의 리듬 기타가 탄탄했기 때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견고한 리듬 기타가 메탈리카를 굳건하게 받쳐주었기에 커크 해밋이 마음껏 솔로잉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베이시스트가 근음셔틀과 배킹보단 드러머 박자 맞춰주는 인간 메트로놈 역할을 한 것도

메탈리카의 경우 드러머가 워낙 역량 문제가 심각해 박자 유지를 잘 하지 못했는데, 보통 밴드 같다면 아예 연주가 불가능했을 상황임에도 그럭저럭 연주가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헷필드의 리듬 기타 실력과 베이시스트의 역량 덕분이었다. 헷필드와 베이시스트가 박자가 좋아 칼박을 유지하니 리드 기타와 드러머가 거기에 맞춰 정박으로 연주를 따라가는 모양으로 기형적으로나마 합주와 라이브가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라이브에서 보면 헷필드나 베이시스트 둘 중 하나가 반드시 드럼 앞에서 라스를 마주 보면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다. [18] [19]

기타리스트지만 스트랩을 아주 길게 뽑고 엉거주춤하게 기타를 치기 때문에 라이브에서의 기타솔로가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다. 실수는 거의 없지만 쳐야 할 노트가 그리 많지 않은 널널한 솔로를 짜서 공연한다. 곡들 중 제임스 솔로 파트도 꽤 있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기타 솔로라 하면 떠오르는 현란한 속도의 솔로잉은 거의 없고, 곡의 멜로디를 약간 변주한 감각적인 솔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헷필드의 기타 톤 특징상 메탈리카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야 하므로 솔로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커크의 기타 톤이 솔로잉에 더욱 적합해, 일부러 묵직한 제임스의 기타로 느낌을 살려야만 하는 곡이 아니라면 제임스가 배킹하고 커크가 솔로하는 쪽이 안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편이다. 때문에 메가데스의 트윈기타와는 달리 리듬기타와 리드기타의 구분이 더 명확하다. 제임스 솔로로 가장 유명한 파트는 Nothing Else Matters의 마지막 솔로, Suicide and Redemption의 6분 지점에서 시작되는 솔로, Master of Puppets의 슬로우 파트, The Outlaw Torn의 아웃트로 솔로, To Live Is To Die의 미드템포 솔로 등이 있다. 보컬에 치중하느라 기타에 소홀했던 게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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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를 쥐는 그립이 독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엄지와 검지만을 써 피크를 쥐는데, 제임스는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세 손가락으로 피크를 쥔다. 팔과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두 손가락으로 하는 피킹보다 강하게 줄을 튕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제대로 힘주고 갈기면 그 이상의 소리가 난다. 하지만 이런 그립으로 메탈을 연습하면 스트링 값이 감당이 안되니 주의. 남들이 1번 스트링만 줄창 갈고 나머지 스트링은 녹이 슬어 소리가 변하기 전까지 잘만 쓰는 반면, 이런 그립으로 스트링에 무리를 주면 일주일을 채 못가고 랜덤으로 마구, 골고루 끊어진다. 스트링 값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이 그립을 쓰자. 4집 투어 당시 기타 테크니션의 인터뷰에 따르면 제임스도 한 공연에서 5번이나 줄을 끊어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4집 시기부터 90년대까지는 기타를 매우 낮게 메고 연주했다. 그 덕에 기타를 메고 서있는 실루엣만 봐도 제임스임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비교적 높게 메는 편이다. 또한 마이크 역시 젊은 시절보다 높게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3.3. 작곡 & 작사

작곡 측면에서는 메탈 리프 공장장. 메탈리카는 멤버들이 각자 써낸 리프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아 놓고 퍼즐 놀이를 하듯이 곡을 쓰는 약간 특이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음반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제임스가 써낸 리프가 앨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다른 멤버가 써낸 리프가 확실하게 포함된 경우에는 크레딧에 그 멤버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곡을 구성하는 리프의 대다수는 제임스의 것이다.[20] 또한 오로지 제임스와 라스의 이름만이 크레딧에 오른 곡들은 커크의 기타 솔로 정도를 제외한 모든 파트가 제임스의 작품이다.[21] 기타 실력 또한 높게 평가받으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할 정도.

대부분 노래의 작사는 제임스 헷필드가 전담하고 있으며, St.anger 앨범 작업 당시엔 뒤숭숭했던 밴드 내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커크, 라스가 작사에 참여하고 제임스 헷필드가 이를 보완, 수용하는 모습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4. 사용 장비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이 분류에 대한 설명은 제임스 헷필드/사용 장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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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제임스는 투어를 돌며 몸에 밴 나쁜 행동과 습관들을 집에서 그대로 하다 결국 부인의 손에 쫓겨났다. 부인은 “상담사에게라도 가든가 해서 (그 나쁜 습관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라”라고 말했다. 제임스는 쫓겨나 혼자 살며 가족과 밴드 등 자신의 세계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22], 결국 재활시설을 방문한다.
제임스는 상담사와 7주 동안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해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쌓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모든 좋고 나쁜 일을 털어놓고 상담하며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제임스는 긴 치료를 통해 알콜 및 기타 중독증세, 파괴 충동과 분노, 기타 나쁜 습관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퇴원하였다.#
이후 제임스는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부인 프란체스카를 “내 생명을 수도 없이 구해준 사람”, 자녀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 준 사람들”로 부르며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사건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제임스 헷필드는 알콜 중독을 완전히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알콜 중독과 폭력적 행동을 문제로 밴드에서 쫓겨났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헷필드를 오지게 놀려먹는 등 여러가지로 본인이나 똑바로 하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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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메탈리카 하시는데예' 짤
심지어 이 이벤트는 단발성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에서 검색 때려보면 그의 딸 캘리 헷필드의 스쿨 공연에 매년 참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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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학예회 영상.[24]


[1] 5집 Metallica의 다큐멘터리에서 제임스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2]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된 곡이랑 동일한 곡.[3] Metal Chruch 등의 밴드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이자 커크 해밋의 중학교 친구이자 기타 테크니션이었다.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나이다.[4] 이때 보컬은 제이슨과 다른 밴드 보컬들이 대신하였다.[5] 그나마 불이 올라올 때 섬광 때문에 본능적으로 눈을 찡그리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정면으로 데이지는 않았다고 한다.[6] 커크가 달려가 괜찮냐고 물었을 때 동공과 손이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리는 상태로 피부는 물집이 잡혀 심하게 일어난 상태였다고.[7] 제임스도 제이슨의 활동에 제약을 너무 많은 제약을 걸고 비아냥(" 그 활동으로 티셔츠라도 팔거야?")대는 등 제이슨의 탈퇴에 일조하였지만 제이슨이 잠적해버린 후 그나마 뉘우치는 모습은 보여주었다. 반면에 라스 울리히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둘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8] 반면 제안을 받았던 존 부쉬는 후에 조이 벨라도나의 탈퇴로 인해 보컬 파트의 공백으로 앤스렉스의 보컬리스트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앤스랙스 팬들에게 밴드를 말아먹은 1등 공신으로 원망을 받게 된다(...). 사실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9] 존 부쉬가 메탈리카 30주년 공연에서 메탈리카의 the four horseman를 커버한 적이 있다. 평은 앤스랙스 곡 커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10] 이 당시에 수염을 기르면서 비주얼적으로도 변화했고, 우렁찬 보컬과 함께 제임스 헷필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11] B-Side로 수록되었으며 후일 Garage Inc.에 수록된 <So What>을 녹음하는 중에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원래 반음이 낮은 Load와 Reload, 키가 한참 더 낮은 Sad but True는 원키를 유지했다. Seek and Destroy는 아예 두 키를 내렸다가 2010년대 중반이 지나서 다시 한 키만 내린다.[13] 라이브에서는 반음을 내려서 연주한다.[14] 이런 헷필드의 배킹 기타가 빛나는 라이브가 바로 86년 토론토 라이브인데, 이때 연주한 Creeping Death는 원곡보다 거의 두 배 가량 빨랐음에도 일체의 실수를 허용허지 않고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특히 이 Creeping Death 라이브의 경우 드러머 라스 울리히가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100% 뽑아낸 희귀한 영상 중 하나라 Creeping Death의 레전드 라이브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15]존 페트루치조차도 헷필드 만큼의 파괴력 있는 다운 피킹은 흉내내지 못하는 정도. 단순히 힘의 문제가 아니라 헷필드 특유의 박자 감각 때문에 뉘앙스 카피가 매우 어렵다.[16] 메가데스의 보컬을 담당하는 데이브 머스테인은 애초에 리드 기타 출신이기도 하다.[17] 이쪽은 베이시스트인 톰 아라야가 보컬을 담당하고 있다.[18] 그래서 혹자는 메탈리카의 음악성을 드러머가 되어버린 리듬 기타리스트와 리드 기타가 되고 싶은 드러머의 조합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제임스 헷필드는 드러머보다 더 박자감각이 뛰어나고, 라스 울리히는 멤버들이 만들어낸 리프들을 이리저리 섞어보며 노래를 만들어내고 또 자기가 그 리듬을 살려보려는 드러밍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작곡을 하기 때문이다.[19] 농담같기는 하지만 4집 And Justice For All의 경우, 라스가 만들어낸 드럼 트랙을 따라서 제임스와 커크가 리프를 얹어보는 방식으로 작곡된 곡이 여럿 있다.[20] 다만 Master of Puppets, Creeping Death, Enter Sandman, Battery 같은 곡들은 커크 해밋의 기여가 크다. 특히 one riff song이라 할 수 있는 Enter Sandman의 리프는 커크가 만들었다.[21] 다만 편곡에서 라스의 기여는 절대적이며, 메탈리카 전성기의 특징 중 하나인 드라마틱한 전개와 변박 역시 라스의 영향이 크다. One만 해도 제임스가 혼자 해 보다 잘 안되니 라스가 함께 완성했다. 리프도 의외로 라스가 직접 쓴 것도 많으며, 제임스의 리프들도 라스가 드럼으로 리듬을 치며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2] 아버지는 13세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16세 때 돌아가셨으며, 제임스의 가족은 해체되어 아버지가 다른 형과 살다 독립하였다.[23] 고전 만화/영화/호러 매니아이며, 관련 굿즈를 모으고 있다.[24] 위 사진 꼬마가 저렇게 컸어요. 지금은 이미 대학 졸업 했을 수도(...) 조 새트리아니는 왜 있는데? 심지어 드러머는 머틀리 크루의 토미 리...[25] 근데 "Yeah"를 좀 많이 했더니 밈이 되어버렸다(...) 레딧에서 이런 것까지 만들었을 정도.[26] Load, Re Load가 발매되는 1997년 경에 이런 메이크업을 선보였다.[27] 사실 이는 화상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재미를 붙인 걸로 보인다.[28] 라스 울리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미국을 떠난다고 했고, 커크 해밋은 환경 파괴를 이유로 트럼프를 비난했다. 전 멤버인 데이브 머스테인은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