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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04:54:21

존 페트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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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시어터 멤버
現 멤버 포지션 前 멤버
존 페트루치 기타 크리스 콜린스 (보컬)
찰리 도미니치 (보컬)
케빈 무어 (키보드)
데렉 쉐리니언 (키보드)
마이크 맨지니(드럼)
존 명 베이스
제임스 라브리에 보컬
조던 루데스 키보드
마이크 포트노이 드럼
존 페트루치
John Petr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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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John Peter Petrucci
존 피터 페트루치
출생 1967년 7월 12일([age(1967-07-12)]세)
미국 뉴욕 킹스 파크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소속
밴드
드림 시어터(1985년 ~ 현재)
Liquid Tension Experiment(1998년 ~ 현재)
장르 프로그레시브 메탈
레이블 Inside Out
활동 1984년 ~ 현재
악기 기타, 배킹 보컬
1. 개요2. 생애3. 연주 스타일 및 특징4. 솔로 및 밴드 활동5. 사용하는 장비6. 디스코그래피7. 외모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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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 시어터기타리스트.

2. 생애

현존하는 밴드중 최고로 손꼽히는 테크니션 집단인 드림 시어터의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모범생적이고 성실한 이미지, 그에 걸맞은 초절기교의 플레이를 보여줘서 많은 기타키드들, 현직 프로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의 존 페트루치 관련 영상에선 그를 신급으로 모시는 리플들이 많다 기타 예수. 실제로 그의 초절정 기교와 능수능란함은 이미 전세대 초고수들을 뛰어넘는다고 대놓고 입에 담을 정도. 그리고 독창적인 기교파 기타리스트는 보통 솔로 아티스트들이지만, 30여년의 시간동안 한 밴드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는 원 밴드맨 기타리스트는 흔치 않다는 점 때문에 더 주목받는다.[1] 여러모로 락,메탈 신을 대표하는 정파 무림 고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타리스트다. 모난 데가 딱히 없이 고루고루 잘해서 그를 신봉하는 후배 뮤지션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5년 G3에 초청되어 지금까지 객원 기타리스트중 가장 많은 참여도 하고 교육자와 이론가로서 클리닉도 활동도 활발한, 현재 메탈 신에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기타리스트 중 하나. 월드클래스 연주자라도 주법이 맘에 안들면 씹고 보는 잉베이 맘스틴도 존을 상당히 호평했다. 그 내용은 후술.

존 페트루치는 8살때 부터 기타를 시작했는데, 그의 누이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것에 영향을 받아 기타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기타 연주를 그만두게 되었다[2]. 12살때 그의 친구인 케빈 무어가 그에게 자신의 밴드에 들어와 줄 것을 요청하며 기타를 다시 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레인보우, 블랙 사바스 등의 밴드들을 카피하였으며 점차 메탈리카, 러시, 예스, 오지 오스본 등의 밴드에 심취하게 된다.

이후 자신을 밴드의 길로 이끈 케빈 무어, 롱 아일랜드 시절 근처살던 음악 친구인 존 명과 함께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 진학하였으며 그 곳에서 훗날 드림시어터의 드러머가 된 마이크 포트노이와 만났다. 이들은 버클리에서도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 밴드 머제스티(Majesty)를 결성[3]하고, 이 밴드 이름이 저작권 침해로 원조 밴드에게 소송이 걸리자 이름을 드림 시어터로 바꾼 후 1989년 드림시어터 1집 'When Dream And Day Unite'로 데뷔한다.

3. 연주 스타일 및 특징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Under a Glass Moon의 기타 솔로 그의 테크닉이 거의 다 들어있는 곡 중 하나인 Glasgow Kiss
화려한 테크닉과 정확성을 볼 수 있는 기타 솔로 시연 영상 필링이 가미된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Another Day의 기타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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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orig03.deviantart.net/john_petrucci_by_noonxy2000.jpg|width=100%]]
존 페트루치
기타계의 예수님
1990년대 이후의 록/메탈계의 대표적인 테크니션

기존 위대한 선배들인 지미 헨드릭스,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이 혁신적인 플레이를 들고 나와서 개성적인 스타일로 확고한 세계를 구축했다면, 존 페트루치는 버클리 음대 진학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기타리스트답게 그 모든 스타일을 집대성해서 자신의 플레이로 엮어낸 유형이다. 평범한 기타리스트는 이것저것 정신없이 베끼기만 하다가 졸속스러운 카피캣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페트루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이 받은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부 합쳐서 자신의 스타일로 녹여내는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 혁신가보다는 통합자라고 볼 수 있는 타입의 기타리스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그의 연주 정확도. 테크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엄청난 것으로서, 주 무기인 얼터네이트 피킹은 폴 길버트와 함께 말할 필요가 없는 명품. 경이로운 정확도를 자랑한다.[4] 그리고 얼터네이트 피킹 뿐만 아니라 온갖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여러가지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보이거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프렛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즉흥 연주(임프로바이제이션)을 적재적소에 넣으면서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장기.

일반적인 테크니션 락/메탈 기타리스트와는 뚜렷히 차별되는 페트루치의 또 다른 연주 특징 중 하나는 재즈 등 다른 장르의 이론들에 기반한 화성학과 복합적 퓨전 리듬 활용을 적극적으로 섞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록 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펜타토닉 스케일, 블루스 마이너 스케일같은 비교적 간단하고 돌려쓰기 좋은 스케일들 외에도 얼터드 스케일, 홀 톤 스케일, 재즈 마이너 스케일,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 등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스케일을 사용하여 곡을 가꾸어 나간다. 리듬적인 부분 또한 각종 변박자에 이은 스윙, 셔플, 칼립소 리듬 등 매우 다채롭다. 버클리 음악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음악인다운 이론적 탄탄함 또한 그의 무기 중 하나라는 것.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흔히 기타리스트들이 좋아하는 간지나고 멋있는 리프를 뽑는데 있어서 감, 기교, 필링만이 아니라 기술적이고 완성도 높은 리프를 구상하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폭넓은 이론은 물론 박사님처럼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는 개인 연구 시간도 필요하다는, 즉 공부할 게 상당히 많다는 결론이 나오고, 더불어 테크닉과 리듬의 연습도 해야하는데 이렇게 죽어라 따라치다보면 그의 반의 반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표면적인 부분만 흉내가 가능하고 근본적인 부분, 필링이나 깊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톤에 있어서는 The Glass Prison에서 보여주는 다임백 대럴 스타일의 아르페지오 또는 뮤즈등으로 대표되는 모던 록 성향의 멜랑콜리한 톤을 활용한 Never Enough같은 트랙까지 테크닉과 톤의 개발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무지막지한 노력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일렉트릭 기타 명장.

과거 기타월드지에서 잉베이 맘스틴에게 여러 기타리스트들의 곡을 블라인드 테스트로 들려주고 평가를 받는 방식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번역본, 존 페트루치의 Under a Glass Moon 기타 솔로를 들려줬을 때 '내가 시디로 갖고 있는 곡이다.'라면서 연주자를 바로 지목했으며, '스티브 바이를 연상케 하는 톤으로 시작되는군.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하모닉 마이너 진행 비슷한 연주를 한다. 그러다가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 스티비 레이 본이나 지미 헨드릭스 풍의 진행으로 이끄는 걸. 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5] 나쁜 얘기는 못하겠다. 사운드가 멋지고 야심차기 때문이다. 몇 년 후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라는 평을 남겼는데, 이 인터뷰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꽤 유명하다. 잉베이가 싫어하는 구석이 있는 사운드를 쓰는 기타리스트를 나쁜 이야기는 할 수가 없고, 사운드가 좋고 야심차다고 칭찬하는 인터뷰는 정말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흥적 연주보다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플레이 또한 특징. 이는 드림 시어터 전체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래서 뛰어난 테크니션임에도 밴드지향적 성격이 짙다고 평가되었었다. 근데 연주를 들어보면 이제 단지 밴드지향적인 플레이가 아예 다른 기타리스트와 차별화된 특징으로 변했으며, 이제는 또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의 기본 양식으로 자리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오해(?)는 사실 어찌 보면 드림씨어터의 철저히 계획된 사운드의 속성에서 탄생한 일종의 형식성에서 나오게 되는데, 드림씨어터의 곡들은 철저하게 앨범/라이브 오리엔테이션 양자를 포용하도록 설계되었고, 이런 꽉 짜인 설계개념 하의 연주 스타일은 언듯 밴드 지향적이면서도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개념을 탄생시키게 되는 형태로 자리하게 된다. 사실상 리듬기타와 리드기타 시스템을 "기타"로 통합시키는 원기타 시스템의 기반으로 자리하면서 결국 페트루치 스타일의 가장 기본적인 룰로 자리하게 된다.[6][7]

자주 비교되는 기타리스트로는 동 장르 계열에서는 마이클 로미오, 퓨전 쪽에서는 거스리 고반이나 그렉 하우 등이 거의 유일하다. 위의 서술처럼 그는 통합자인데, 실제로 스티브 바이의 프레이즈, 폴 길버트조 새트리아니의 테크닉을 인용해서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한 단계가 있었으므로 무리는 아니지만, 테마 전개라는 측면에서는 상호 우위라는 평가가 지배적. 단지, 마이클 로미오와 비교될 때만 독창성 부분에서 약간의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마이클 로미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런 무지막지한 재즈 퓨전을 때려박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8] 다른 기타리스트와 비교되는 특징이기도 한데, 그는 기본적으로 폴 길버트와 같은 풀피킹을 기본으로 한 기타리스트이다. 다만 톤메이킹이나 리프의 해석에 있어서 사실상 Octavarium 이후로 다른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연계가 줄어들고 드림시어터 라는 밴드의 음악이 점차 매뉴얼화 되면서 매너리즘이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조금 있는 편. 그리고 최근에는 리듬 파트의 크런치 톤에 코러스 이펙트를 많이 넣는다고 약간 까인다.[9] 또한 이는 사실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시그니처를 아이바네즈에서 뮤직맨으로 갈아탄 이후 기타의 톤이 너무 헤비해져 다소 둔하게 들리기도 한다만, 이는 사실 취향의 문제이므로 딱히 비난점이 되지는 않는다.

페트루치는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반드시 꼽히는 인물이고, 스티브 바이와 함께 7현 기타의 대중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거장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기타리스트이다.[10] 심지어 활동한 지 30년이 지난 이후 현재에도 뮤직맨에서 그의 시그네쳐 장비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또 속속히 개발되고 있으며, 드림시어터의 신보가 나오면 버클리 음대에서는 Guitar Night 축제에서 이들 곡을 후배들이 시도때도 없이 트리뷰트 하고있다 웃기는 건 Liquid Tension Experiment은 이제 활동도 안하는데 무슨 대학원 시험도 아니고 ACID RAIN을 졸업작품으로 선택하는 인원이 그리 많다고 한다. 사실상 향후 락/메탈기타계를 "선도"하는 인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간혹 페트루치를 두고 '테크닉에 치중해서 필링을 가미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로, 테크닉에 치중된 기타리스트들은 손가락을 빠르게 돌리는 것에만 집중하여 필링을 가미할 줄 모른다는 편견이 어느정도 들어간 평이다. 하지만 존 페트루치를 잘 알고 그의 많은 음악을 깊게 들은 리스너들은 그가 단순한 테크닉만 보여주는 테크니션이 아닌 필링도 엄청나고 완급조절도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는 점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미국/일본 기타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그의 발라드 곡이나 블루스 연주를 들어보니 왜 일반 테크니션들과는 차원이 다른 넘사벽인지 알겠다."라는 내용일 정도로 그의 필링을 가미한 연주는 매우 훌륭한 편이라 평가된다. Live Forever의 기타솔로 94년도에 촬영된 블루스 연주

4. 솔로 및 밴드 활동

드림 시어터 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 마이크 포트노이, 조던 루디스, 토니 레빈과 결성한 수퍼 그룹, Liquid Tension Experiment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11] 아주 작정을 했는지 그러지 마 오만가지 테크닉을 다 보여준다. Acid Rain라는 곡은 정말 우리같은 인간은 도달할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12] 솔로 앨범으로는 2005 년에 발매한 Suspended Animation가 있다. 그의 이름값에 비해 상당히 늦은 솔로 앨범. 몇몇 기타리스트들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은 졸작들을 양산하는데 비해 이 앨범은 기타키드들에겐 그야말로 MUST HAVE 앨범. 프로그레시브한 작법, 드라마틱한 구성때문에 사랑받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형 레이블이 아니라 인디 레이블에서 발매한 앨범이라 구하기가 쉽지 만은 않다.[13] 2020년, 15년 만의 2번째 솔로 앨범 Terminal Velocity를 낸다는 소식을 냈다. 드러머로 마이크 포트노이가 참여했다!

평상시에는 각종 기타 강연을 다니고 있다. 유투브에 찾아보면 다양한 강연 영상들이 많다. 버클리 음대 출신이 아니랄까봐 이론 부터 시작을 한다(...) 기타를 그냥 감으로 연주하는 타입의 아마추어들을 어버버버하게 만든다. 모든 연주들의 설명을 코드별로 알려주고 간단한 파워코드을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면서 간단한 코드들 조차 어떻게 응용을 하냐에 따라 다양한 연주가 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장비들과 테크닉들을 어떻게 응용을 하냐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사운드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5. 사용하는 장비

완벽주의자 성향으로, 세세한 톤은 물론 곡 분위기에 맞는 세밀한 이펙팅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타리스트다.[14] 오랜 시간 동안 수준 높은 연주와 사운드 메이킹을 해왔던 연주자기 때문에, 그 경험과 노하우가 반영된 시그네쳐 장비들은 세심하게 사용자(본인 포함) 편의를 신경쓰고 있다. 또 사운드를 연구하는 방향과 노하우가 뚜렷해서 앰프, 이펙터, 기타 간의 시너지가 엄청나다. [15][16]

5.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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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시절에는 BC 리치를 쓰다가 메이저 데뷔를 하면서 아이바네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집 Images and Words부터 4집 Falling into Infinity 때까지는 아이바네즈와 엔도서 계약을 맺고 그의 시그네쳐 모델, JPM 시리즈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계약은 오래가지 못했고,[17][18] 1999년 이후에 뮤직맨과 계약을 맺는다.[19]

그때 당시의 뮤직맨은 상술보다 장인 정신이 투철한 회사였기에[20], 그의 요구에 걸맞은 기타, 뮤직맨 JP 시그네쳐를 제작하게 된다.[21]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하며 아직까지 그의 메인 기타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뮤직맨은 2014년에 새로운 시그니쳐 시리즈인 마제스티(Majesty)를 내놓았다. 뮤직맨 모종삽 에디션. 크고 아름다운 모종삽이 박혀있다. 이 마제스티 모델은 바다의 쉐입부터 세세한 여러 부분가지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JP 우려먹기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다. 그러나 직후 뮤직맨이 돈을 벌고 싶어진 건지, 페트루치 본인이 새로운 기타를 원하는 건지, 마제스티의 새로운 시리즈 Artisan을 출시했는데, 전작인 마제스티와 다른 점은 사용된 목재 뿐이지만 사운드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마제스티의 인기를 실감한 뮤직맨은 마제스티 시리즈를 다양화시키기 시작하며 새로운 마제스티 시리즈인 Monarchy를 출시하기도 했다.

보통 기타리스트들은 단순히 유광처리가 된 색을 선호하는데, 페트루치는 반짝이가 첨부된 색이나,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염료를 쓰는 등 연출적인 부분에도 어느 정도 신경쓰는 듯 하다.

5.2. 기타 앰프

앰프는 주로 메사 부기의 앰프를 사용한다.
2집 앨범에서도 사용하고 2014년 Along For The Ride투어에서도 사용중인 메사 부기사의 프리앰프 TriAxis부터, 페트루치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앰프라는 Mark IIC+ , 캘리포니아 사운드로 유명한 Dual Rectifier앰프, Mark lV, Mark V, 그 외에도 많은 수의 메사 부기 앰프를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 신작 앨범 Astonishing 전체를 메사 부기에서 새로 출시한 자신의 시그니쳐앰프 JP-2C를 이용해서 녹음했다한다. 메사부기에서 지금까지 시그니쳐 앰프를 제작한 일이 없었기에 JP-2C 발표후 많은 메사 부기와 페트루치 팬들은 열광했다.

5.3. 이펙터

그 외에도 시그니쳐 페달로 던롭사에서 출시한 JP95 와우페달이 있고, TC 일렉트로닉사의 아티스트로서 TC사에서 유일한 시그니쳐 페달인 Dreamscape 페달을 보유하고 있다. 킬리 이펙터는 아티스트로 홈페이지 메인에 걸려있고, 피크 또한 던롭사에서 나오는 시그니쳐 피크를 몇 가지나 소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보스, 아날로그맨, 메사 부기 등등 상기된 이펙터 외에도 지금까지 많은 이펙터를 사용했다.

주요 이펙터는 예전부터 랙 이펙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주로 사용한 랙 이펙터로는 TC 일렉트로닉사의 딜레이 2290을 많이 사용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랙을 사용했으나, 2011년 A Dramatic Turn Of Events 앨범부터는 오랬동안 사용하던 냉장고 수준의 랙 이펙터가 아니라, 프랙탈 오디오 시스템의 AXE FX II 멀티 랙 이펙터를 사용한다.

5.4. 그 외

픽업은 디마지오 픽업 엔도서로, 2집에서 The Tone Zone, Humbucker From Hell을 사용했으며, 3집부터는 당시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Steve's Special, Air Norton을 장착해 한동안 사용했다. 5집에서 뮤직맨과(앨범 녹음 자체는 아이바네즈 기타로 했다.) 엔도서 계약을 맺으며 한동안 Steve's Special 과 Air Norton을 개조한 커스텀 디마지오 픽업을 사용했으며, 2007년 D-Sonic, 2009년 부터는 Crunch Lab, LiquiFire 시그니쳐 픽업을 출시해 사용했다. 그리고 2013년 새로운 시그니쳐 픽업인 Illuminator 픽업셋을 출시해 사용하고 있으며, 2016년 뮤직맨 16주년 기념기타인 JP16에 장착하기 위해, Illuminator 픽업을 플로이드 브릿지에 맞게 개조한 Sonic Ecstacy을 선보였다. 애당초 Sonic Ecstacy 픽업은 양산화 계획이 없다고 했었으나, 2017년 존 페트루치의 새로운 시그니쳐 픽업으로 공식 출시되고 양산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6. 디스코그래피

7. 외모

잭 와일드만큼 극단적이지 않을 뿐, 엄청난 외형의 변천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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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꽃미모 자랑하던 때 (image and words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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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활동 당시. 배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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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집 전후(움짤은 부도칸 공연 때), 그리고 솔로 앨범 활동 시절 사진. 팬들은 보통 이때쯤 모습을 좋아하고 리즈시절이라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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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보디빌더 로니 콜먼과 팔씨름하는 페트루치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히려 마른 체구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그도 장시간 공연을 소화할만한 체력과 근력을 기르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빠져서 점점 근육이 늘어서 2000년대 중반부터 팔뚝이 점점 커지더니 2010년대 부터는 벌크업한 스톤 골렘 수준으로 몸이 커졌다.[22] 그래서 나온 별명 중 하나가 곰트루치(...) 요즘은 수염도 산신령마냥 미친듯이 기르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에 그의 사진이나 영상이 업로드 되면 팬들은 면도기부터 찾는다. 차도남 뉴요커에서 갑자기 헬스 엔젤스 레드넥 성님이 되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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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팬들도 페트루치의 변화를 이렇게 기억하는 모양. 하지만 밴드내에서 그만큼 파워와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므로 딱히 큰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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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외의 리스너들은 전반적으로 연주자 개인의 역량보다는 소속된 밴드와 밴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끈 연주자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아 물론 잉베이처럼 할 수도 있는데(...) 이런 류의 방식은 연주자 개인의 인성과 협동심에 따라 평가가 널뛸수도 있다는게 문제다. 잉베이처럼 하면 욕먹지만, 산타나의 카를로스 산타나옹처럼 존경받는 기타리스트도 있으니까.[2] 자신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밤에 받아 늦게까지 자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말 낮에 레슨을 받게 되어 여전히 일찍 잠들어야 했고, 기타 치는 것이 재미없어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이후 12살 무렵 무대에서 기타치는 자신의 모습을 꿈에서 보게 되고, 다시 기타를 잡게 된다.[3] 밴드에 집중하기 위해 버클리 음대를 중퇴했다고 하지만 실제 학교의 전산 시스템상에선 휴학처리 되어있다 30년 휴학.[4] 사실 1990년대의 페트루치만 해도 지금처럼 풀피킹으로 슈레딩하는 스타일과는 달리 더블 태핑/아밍/라이트 핸드 등 각종 기술을 골고루 섞으면서 프레이징을 다양하게 변조시킬 수 있는 좀 더 그루비하고 다이나믹한 플레이를 장기를 삼은 연주자였으나, 기타와 앰프 그리고 픽업까지 전부 물갈이하면서 아예 드라이브 톤 자체가 이전보다 더 빡빡해졌기 때문에 이에 어울리는 얼터네이트 피킹이 리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풀 피킹 기타리스트였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작곡에 있어 매너리즘이 찾아왔다는 부분도 여기서 기인한 것.[5] 잉베이는 험버킹 픽업 사운드를 매우 싫어한다.[6] 나중에는 많은 밴드들이 이런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따라해볼 테면 따라해보시던가'에 가깝다. 이런 스타일은 페트루치 하나뿐 아니라, 나머지 멤버 전체가 페트루치와 비슷한 정파 고수스러운 개인 테크닉과 합주의 완성도를 모두 잡으려 하는 장인정신을 가진 덕에 가능하다. 특히나 메탈에서 이런 원기타 시스템은 라이브에서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하는데, 단순히 솔로 리프만 휘갈기다가는 중압감을 잃어버리고 뒤에서 배킹 위주로 가면 곡이 심심해져서 이 두 가지를 잘 섞어내는게 트윈기타 시스템에 비해 기타리스트의 책임감이 막중해지기 마련이다.[7] 이런 존 페트루치의 즉흥 연주를 들어보고 싶으면, 존의 실험적 부업인 Liquid Tension ExperimentThree Minute Warning을 들으면 된다. 무려 28분 33초짜리 연주곡을 LTE 멤버 토니 레빈이 "3분안에 곡 안나오면 집에 가버린다"라고 으름장을 놔서 존, 포트노이,루데스가 그대로 Jam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물이 이것.[8] 재즈 어프로치가 특징인 드림 시어터와는 달리 마이클 로미오가 소속된 심포니 X는 밴드명처럼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인정받기 전까진 짝퉁 잉베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9] 다만 시연 영상에서 기타 혼자만 연주하는걸 들으면 조금 이상하지만 실제 공연의 합주에서는 꽉 찬 듯한 좋은 효과를 준다. 게다가 스테레오 코러스라서 공연장이나 앨범 음원이 아닌 녹음 영상 등을 통해 들리는 소리는 제대로 구현된 소리가 아님을 감안하자.[10] Dream Theater(음반)에서는 전곡이 9곡인데, 그 중 7현 기타를 사용한 곡이 6곡일 정도다.[11] 록계의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모인 드림팀. 하지만 조던 루디스의 드림 시어터 가입으로 '드림 시어터랑 너무 비슷해서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 는 이유로 해체....뒤집어 말하면 대놓고 슈퍼테크니션들로 만든 밴드에 이미 드림씨어터 멤버가 두명, 이 중 한 명이 또 추가로 드림씨어터에 가입할 정도로 이 밴드가 말도 안되는 실력자들이란 소리다. 실제로 토니 레빈도 대단하지만 존 명의 실력은 결코 그보다 아래가 아닌, 드림씨어터 자체만 해도 이미 훌륭한 슈퍼밴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라이브 공연을 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팬이라면 필청.[12] 유투브 영상에 이런 리플이 있을 정도 '3분짜리 솔로에 내가 평생 친 음보다 더 많은 음표가 나온다'[13] 이 앨범 덕에 기타리스트로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수있는 G3에도 참여하게 된다.[14] 배킹이나 아르페지오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이펙팅에 공을 들이는지 알수 있다.[15] 그가 본인 장비를 시연하고 소개할때, 드림 시어터는 1기타 밴드라서 거대하고 꽉 차는 톤을 만든다고 얘기 한다. 그래서 그의 시그네쳐 장비들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빠지는게 없는 빵빵한 성향이고, 장비 간에 연계가 됐을 때 그 강력함이 도드라진다.[16] 국내나 해외의 팬들 중엔 초창기 시절 칼칼하고 경쾌한 기타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지만, 자신의 솔로보다 밴드지향적인 기타리스트인 페트루치가 밴드의 음악을 잡아주기 위해 좀 더 묵직하고 풍부한 톤으로 가게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페트루치 말고도 포트노이 역시 스네어 소리가 4집을 기점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17] 현재 자료를 찾아 보아도 아이바네즈, 존 페트루치 측 어디에도 그런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수 없으며, 서로에 대해 딱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로 미루어 봤을때 특별한 갈등 보다는 그냥 엔도서 계약 기간이 끝났을때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해외의 팬들은 그러한 이유를 계약금을 포함한 계약 조건 차이, 새로운 시그네처 모델 제작 입장 차이, 그리고 그가 존경하는 '스티브 모스'가 뮤직맨 기타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18] 최초의 양산형 7현 일렉트릭 기타는 스티브 바이가 제작에 참여한 아이바네즈UV7이라는 시그네쳐 모델로, 1990년에 생산되었다. 그리고 존 페트루치는 자신이 1994년에 7현 기타를 처음 접해봤으며, 동년 Awake 앨범 녹음에 위에 서술한 스티브 바이 시그네쳐 7현 기타로 녹음했다고 밝혔다. 아이바네즈의 7현 기타를 더 개선하고 싶은 본인의 요구나 입장 차이에서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이바네즈측이 7현 기타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중후반 라이브에서 본인 시그네쳐 7현을 사용하고 있는것을 볼수있다.[19] 존 명야마하 JM 시그네처를 썼으나 페트루치가 뮤직맨으로 갈아타면서 존 명 역시 뮤직맨 베이스로 바꿨다.[20] 그러나 현재의 뮤직맨은 그때와 달라서, 페트루치와 뮤직맨의 엔도스 10주년 모델을 시작으로 매년마다 10주년, 11주년, 12주년, 13주년, 15주년, 2016년 기준 16주년 모델을 내놓는 기가 막힌 상술을 펼치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뮤직맨의 악기들은 제법 비싼 편이다. 근데 항상 돈 들인 값은 꼭 해준다.[21] 300만원대로 저렴한 가격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하이엔드 기타는 500만원을 우습게 넘기고 1000만원이 넘는 것도 많다. 이 정도 가격은 진지하게 음악 활동을 하는 연주자라면 구매를 생각해 볼만한 가격이다. 그리고 가격 만큼,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하는 기타다. 세계적으로 대단히 인기있는 기종이며, 이 기타 덕분에 원래도 상당한 영향력 있던 제조사였던 뮤직맨은 대형 기타 제조 회사로 도약하게 된다.[22] 일주일에 5, 6 일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투어 중에도 이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나태해 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킨다고 한다.[23] 물론 실수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연주 경력이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수많은 라이브 중에 작은 실수 하나 없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24] 일례로 유튜버 타일러 라슨(Music Is Win)에서 페트루치에게 "기타 치는 것을 세 단어로 설명해달라"고 물어봤을 때 "Don't Fuck Up"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댓글에는 수많은 페트루치 팬들이 나타나서 "나 행님 욕하는거 처음 봄ㅠㅠ"이라는 글을 남겼다.[25] Meanstreak라는 여성 메탈 밴드. 공교롭게도 드림 시어터의 베이시스트인 존 명도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와 결혼했고 드러머인 마이크 포토노이도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와 결혼했다사모님 밴드[26] Sunghyun Kim[27] 메탈리카라스 울리히커크 해밋의 연주력 관련해서 자주 까이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제임스 헷필드커크 해밋의 다운피킹 실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하고, 특히 제임스 헷필드는 배킹기타 실력이 업계 최정상급으로 이름 높다.[28] 미국인으로 추정[29] Pull Me Under로 수백번 공연하고 공동 작곡, 작사한 장본인에게, '오 당신 방금 드림시어터 노래 연주 한 거에요?' 하고 물어본 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