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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colbgcolor=#6495ED><colcolor=#fff> 다임백 대럴 Dimebag Darrell | |
본명 | 대럴 랜스 애벗 Darrell Lance Abbott |
출생 | 1966년 8월 20일 |
텍사스 주 에니스 | |
사망 | 2004년 12월 8일 (향년 38세) |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텍사스 주 알링턴 |
사인 | 총기난사에 의한 살해 |
묘소 | 텍사스 주 알링턴
|
직업 | 가수, 기타리스트, 음악가, 작곡가 |
장르 | 헤비메탈, 스래시 메탈, 그루브 메탈, 글램 메탈 |
관련 활동 | 판테라, 데미지플랜, Lebel Meets Lebel |
활동 기간 | 1981년 ~ 2004년 |
레이블 | ACTO, Big Vin, Metal Magic, Rhino, EastWest, 엘렉트라 |
부모 | 부 제리 애벗, 모 노마 애벗 |
형제 | 형 비니 폴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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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wcolor=#fff> "Dimebag Darrell On Stage (1990)" |
그루브 메탈 밴드 판테라의 리드 기타리스트. 90년대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자 메탈신의 전설이다. 그루브 메탈을 정립하고, 판테라의 수많은 명곡들을 직접 작곡한 천재 뮤지션이다.
본명은 대럴 랜스 애봇으로, 스테이지 네임인 다임백(Dimebag)으로 더 유명하다.
2. 상세
<rowcolor=#fff> 15세 무렵 다임백 대럴. Dean 기타와 함께 |
다임백과 그의 밴드 판테라의 등장은 20세기 말 락 메탈 역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평가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팽배했던 락, 메탈의 음악성에 대한 리스너들의 부정적 견해와 얼터너티브 록또는 그런지로 잠식되어버린 메탈씬을 다시 부활시킨 90년대 메탈의 선구자 역할을 해내며 궁극적으로 락 메탈 역사상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도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1990년대 다임백의 메이저 입성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Cowboys from Hell 로 기존의 글램 메탈적인 어프로치와 이미지들을 완전히 탈피하고 거칠고 남성다운 스타일을 강조한 그루브 판테라의 시작을 알렸고 이후 Vulgar Display of Power, "Far Beyond Driven"''' 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판테라는 속된 말로 "빡센 음악"으로 음반 차트의 1위를 차지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기록을 만들어 냈고 동시에 당시 정형화 되어 있던 메탈 음악의 구조적인 한계를 완전히 탈바꿈 시켜버리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부터 밴드 맴버 사이에 잡음과 마찰들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판테라는 해체되었다.
판테라 해체 이후 다임백 대럴은 형 비니 폴과 함께 데미지플랜이라는 새 밴드를 꾸려 계속 음악 활동을 하였으나 새 밴드를 결성한지 1년밖에 안된 2004년 12월 8일, 공연 중 무대위에서 정신병자 네이선 게일(Nathan Gale)의 무분별한 총격이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현장 보안 책임자인 제프리 메이엄 톰슨, 공교롭게도 가해자 네이선과 이름만 같은 네이선 브레이(팬으로 대럴에게 달아나라며 몸으로 막으려다가 사망), 클럽 직원인 에릭 핼크도 이 자리에서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가해자 네이선 게일은 이후 드럼 기술자인 존 캣 브룩스를 인질로 삼다가 출동한 경찰관 제임스 니그지메이어가 쏜 레빙턴 총알을 얼굴에 맞고 얼굴이 반터져 즉사했다. 경찰이던 니그지메이어는 얼굴이 다 터져 죽은 게일의 시체 및 당시 총상으로 죽은 사람들 모습에 후유증을 앓다가 3년 뒤에 경찰을 그만두고 차량부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대럴이 죽은 마지막 공연장인 알로사 빌라 나이트 클럽은 이후에 헐리고 아무 것도 없는 벌판만 남아서 지금도 팬들이 대럴을 추모하며 클럽 터가 있는 곳에 둔 큼직한 바위에 꽃을 바치기도 한다.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1] 한창 활동하던 시기부터 죽기 직전까지 거친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헤비메탈 계에서 실력으로나 인간성[2]으로나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보기 드문 인격자였다. 공식적으로 그를 씹은 사람은 잉베이 말름스틴과 필립 안젤모 정도. 많은 팬들의 사랑과 특출난 기타 연주 실력으로 동료들의 존경과 인정을 한몸에 받으며 갑작스러운 총기 난사 사고로 사망할 때 까지 논란 하나 없이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사망한 지 오래인 2024년 현재도 동료 뮤지션들과 팬들에게 대인배적인 성품으로 나무랄 곳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후에는 할리우드 락 워크에 입성하며 VH1에 의해 지난 25년간 가장 영향력있는 메탈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다. 2011년 롤링 스톤즈 에서는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100 인" 목록에서 다임백을 92위로 선정했으며 그를 "현대 메탈음악의 핵심 인물 중 한 명" 으로 묘사했다. 그의 영향력은 후대에도 계속되어 후에 태동하게 되는 포스트 스래쉬, 뉴메탈 및 메탈코어 장르의 많은 밴드들에게 나아가야 할 좋은 본보기로서 방향성과 청사진을 제시했다.
3. 기타리스트로서
다임백 대럴은 락 음악 역사에서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다임백 대럴의 연주 특징으로는 블루지한 느낌을 바탕으로 한 리프와 특유의 그루브, '면도날' 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만든 피킹 하모닉스와 스퀄링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미들을 줄이고 하이와 로우를 최대로 올린 톤은 카피하기 무척 어려운 유니크함이 있다. 물론 메탈리카를 포함한 다수 스래쉬 메탈 밴드 기타리스트들이 V형 이퀄라이저를 사용하지만 다임백의 톤은 카피해보면 의외로 난해한 면이 있다. 생전에 그가 애용한 브랜드로는 Dean사의 기타[3]와 랜달 앰프가 있다.<rowcolor=#fff> Dimebag Darrell - Randall Clinic (1993.06.03)[4] |
하모닉스 또한 예술이라 기교파 기타리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무려 메가데스의 데이브 머스테인이 그를 탐내기도 했다.
다임백은 기타리스트들 중에는 좀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당대의 라이벌로 꼽힌 잭 와일드의 경우 브리티시 헤비메탈의 카피로 시작해서 미국의 고전 헤비메탈 스타일을 계승해왔지만 다임백 대럴은 어쿠스틱 팝, 포크, 하드 락, 블루스로 시작해서 고전 헤비메탈을 거쳐서 스래시 메탈, 글램 메탈까지 섭렵하며 굉장히 폭넓은 연주를 할 수 있는 테크니션이 되어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시했다.[6]
다임백이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로는 랜디 로즈, 에디 밴 헤일런, 키스의 에이스 프레일리가 있다. 여기서 다임백 대럴의 평을 볼 수 있다.
4. 평가
<rowcolor=#fff> 다임백 , 토니 아이오미 |
<rowcolor=#fff> 다임백 , 롭 헬포드 |
<rowcolor=#fff> 다임백 , 에디 밴 헤일런[7] |
<rowcolor=#fff> 제임스 헷필드 , 다임백 대럴 , 라스 울리히 , 렉스 브라운 |
난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임백 대럴은 엄청난 술꾼이고, 엄청난 기타리스트다.
메탈리카의 커크 헤밋
메탈리카의 커크 헤밋
<rowcolor=#fff> 다임백 , 스콧 이안 |
다임백 대럴은 강렬하며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했던 존재였다. 음악가로서 그는 독창성, 리프, 톤, 기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앤스랙스의 스콧 이안
앤스랙스의 스콧 이안
<rowcolor=#fff> 다임백 , 데이브 머스테인 |
<rowcolor=#fff> 잭 와일드 , 다임백 |
다임백 대럴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였다. 그는 항상 내 마음 속에있으며, 저 하늘 위에 에디 밴 헤일런, 지미 헨드릭스, 랜디 로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오지 오스본 밴드,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
훗날 잭 와일드는, 2022년 필립과 렉스가 재결성한 판테라의 기타리스트를 다시 모집하는 과정에서 다임백의 자리에 나 말고 다른 기타리스트는 있을수 없다라는 자존심을 밀어붙여 연주 스타일이 상당히 다름에도 판테라의 가입에 열성을 보여 결국 앤스랙스의 드럼 찰리 베난테와 함께 재결성한 판테라의 기타리스트로 들어가게 된다.오지 오스본 밴드,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
<rowcolor=#fff> 세바스찬 바하 , 다임백 |
데럴과 판테라는 내가 메탈 밴드를 시작하게된 주된 계기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통이자 위대한 메탈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었고, 전설이다.
Korn의 조나단 데이비스
Korn의 조나단 데이비스
판테라는, 아마 내 생각에 우리 아들 지미와 내가 처음으로 동시에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밴드였을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밴드였고, 다임백은 혁신적이며 열정적인 연주자였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
퀸의 브라이언 메이
이미 10대 시절부터 일찍히 기타 연주에 일가견이 있었던 다임백은 판테라가 유명해지기 전 부터 많은 메이저 밴드들과의 교류 역시 활발했으며 숱한 러브 콜들을 받아왔었다. 에이스 프레일리를 극존경[9]해 KISS의 기타리스트 오디션에도 참가했었고,[10] 그중 유명한 일화가 바로 데이브 머스테인의 메가데스 영입제의. 당시 공석이었던 리드 기타리스트 자리를 채울만한 기타리스트를 모색하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이저 입성전의 다임백에게 먼저 영입제의를 했던 일화는 이미 메탈팬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인지도가 낮았던 다임백은 제의를 수락할 의사도 있었으나 머스테인에게 조건부를 제시했는데 바로 형인 비니 폴을 드러머로써 같이 영입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메가데스의 드러머는 이미 닉 멘자로 확정된 상황이었고, 뽑아놓은 인원을 방출 할 수는 없는 관계로 이 거래는 성사 되지 못했다. 다임백의 영입불발 후 메가데스의 메인기타 공석은 후에 마티 프리드먼이 채우게 된다. 이 일화는 다임백의 실력적인 측면이 같은 동료들도 학을 땔 정도로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가진것으로 유명한 데이브 머스테인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는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일화로써, 팬들로 하여금 만일 다임백이 메가데스로 갔다면, 아울러 지금의 판테라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지금까지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5. 기타
필립 안젤모와의 불화로 판테라가 해산한 뒤 드러머인 형 비니 폴과 데미지플랜을 만들었지만, 공연 중 판테라의 해체의 원인이 다임백 대럴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광팬 나단 게일이 난입해서 쏜 총에 맞아 무대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사고 당시 나단 게일이 권총 베레타 92FS로 쏜 15발 중 3발이 다임백 대럴에게 명중했다. 특히 나단 게일은 이때 단단히 미쳤는데 대럴을 살해한것도 모자라 총기를 마구잡이로 난사하여 그가 쏜 총에 형이자 드러머인 비니 폴도 어깨를 맞아 총상을 입었고 경비원을 포함 관객 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7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나단 게일은 관객 한명을 인질로 잡고 출동한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경찰들에게 사살된다. 공연개막 직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 제대로 대응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더 문제는 사적 감정이 겹친 안젤모의 실언이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필립 안젤모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판테라 해체의 원인을 이야기하다 불화의 극에 달한 다임백을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하필 판테라 사생팬인 게일이 듣기에 이를 팬들에게 다임백을 죽여라라는 암살 명령이라고 과대망상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건사고를 쳐 이 바닥에서 인성좋기로 유명한 대럴, 비니 애봇 형제조차 참지 못한 해체원인 1순위인 주제에 아무 생각 없는 폭언을 한 안젤모는 폭풍까임과 함께 비니가 저놈 오면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뛴 탓에 장례식 참석도 못하게 되었고... 다임백 사망 이후 인터뷰에서 엉엉 우는게 고작이었다.
절친한 친구 잭 와일드는 'In this river'라는 곡으로 다임백을 추모했다. 뮤비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한(물론 본인들은 아니고) 두 꼬마의 모습과(어린 잭 와일드의 모습이 정말 필견) 공연 장면들이 교차편집되는 가운데 잭 와일드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분노와 슬픔으로 도끼로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잭 와일드의 모습도 또한 명장면.
참고로 니켈백의 곡 중 side of a bullet이란 곡은 다임백 대럴에 대한 추모와 그 범인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곡이다. 중간의 기타 솔로는 다임백의 리프를 샘플링 한 것. '그의 형이 보고 있었는데 너는 어떻게 방아쇠를 당겼느냐, 소식을 듣고 나는 울면서 칼로 총알에다 네 이름을 새겼어'라는 가사.
워시번에서 발매된 시그니쳐도 있으나[11] 가장 오래 사용했으며 사망 직전까지 사용한 기타는 Dean의 ML 모델이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기타 바디가 ML과 그를 기초로 한 다임백 시그니처 모델과 레이저백 시리즈.
다만 2021년 여름, 다임백 유가족을 대표하는 리타 헤이니[12]가 딘과의 재계약이 결렬되었음을 알리며 소송전에 들어가는 바람에, 앞으로는 딘에서의 다임백 시그니처 판매가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결국 2022년 기준 카탈로그와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임백 모델들이 사라졌다.
다임은 10대 시절 동네 기타 컨테스트에서도 DEAN의 ML 모델로 입상했으며 이후에도 ML 바디를 개조해서 사용했다. 게다가 사망 직전까지 DEAN의 시그니처 라인업 외에 직접 디자인한 레이저백[13] 시리즈를 런칭하기도 했다. 레이저백 라인의 특징은 날카로운 모서리 디자인과 12프랫에 자리한 면도날 인레이. 헌데 DEAN은 다임백 사후에도 계속 새로운 시그니쳐를 만들어내는데다 가격또한 개념이 없어서 사골 다임백이냐고 까이는 면도 있다. 중국산 OEM제품이 100만원이 넘어가는 모델도 있다.
참고로 예명인 Dimebag의 본뜻은 10센트(Dime. 10센트가 짜리가 들어가는) 봉지(Bag)라는 뜻으로 10불 어치의 마리화나라는 뜻의 속어라는 말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미국 남부에 많은 독사인 방울뱀을 지역속어로 다이아몬드백(Diamondback)이라[14] 부르는데서 다이아몬드백→다임백이라는 식으로 만든 예명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다이아몬드 대럴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했다.
[1] 십대~이십대 초반 사진을 보면 의외로 꽃돌이 타입이기도 하다.[2] 최고의 기타 솔로 선정시 반드시 거론되는 곡인 'Floods'의 기타 솔로 완성도를 베이시스트 렉스 브라운의 연주로 돌린 건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는 일화.[3] 10대 시절 동네 기타 컨테스트에서도 DEAN의 ML 모델로 입상했으며 이후에도 ML 바디를 개조해서 사용했다. 게다가 사망 직전까지 DEAN의 시그니처 라인업 외에 직접 디자인한 레이저백 시리즈를 런칭하기도 했다.[4] 다임백 대럴 기타 클리닉 영상. 다임백 대럴의 레전드 영상하면 항상 손꼽히는 영상으로 영상의 중 후반부에 히트곡을 잼 형식으로 묶어서 연주하는 부분이 이 영상의 백미.[5] 사실 이건 다임백 대럴의 기타 실력 덕이기도 하지만 베이시스트 렉스 브라운의 배킹이 워낙 탄탄했던 것 덕분도 있다.[6] 한국과 달리 영미권의 기타리스트들은 보통 프로 데뷔 후에 장르나 스타일을 바꾸는 케이스가 적다.[7] 다임백의 사망 약 한달 전에 찍은 사진이다.[8] 평소 형제와 친분이 두터웠던 세바스찬은 훗날 드러머 비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9] 키스의 광적인 팬으로도 유명한 다임백은 실제로 오른쪽 가슴에 에이스 프레일리의 얼굴 문신을 하였다.[10] 이는 메가데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자리를 결국 차지한 마티 프리드먼도 똑같다. 아마 둘 다 키 180cm가 안돼서 KISS 오디션에는 떨어졌겠지만.[11] 90년대 중 후반 무렵 딘 기타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인도스먼트를 원하던 다임백 대럴 측에서는 해머, 비씨리치 등 여러 회사의 샘플을 받아본 후 1994년 워시번과 계약하였다. 이때 대표적인 모델이 Dime3 시리즈.[12] 다임백의 오랜 여자친구[13] (레이저=면도날)+다임백의 백[14] 방울뱀의 정식 명칭이 래틀스네이크(rattlesnake). 다이아몬드백은 이 뱀의 뒤쪽을 보면 있는 비늘의 무늬가 다이아몬드처럼 생겨서 붙은 별명이다. 또한 이 뱀이 옆으로 몸을 말았다가 튀어올라 상대를 공격하기 때문에 사이드와인더라는 별명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