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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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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Fork
파일:포크.jpg
1. 개요2. 역사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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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커틀러리의 일종으로, 끝이 두 갈래 이상 갈라진 꼬챙이 형태의 식기.

음식을 찍어 먹거나 얹어 먹을 때 사용한다. 찍어먹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끝으로 찌르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스테이크 등을 찍어먹기에 적합하다. 찍어먹거나 얹어먹는 경우 이외에도 파스타 등을 먹을때에도 사용한다. 보통 음식은 포크 하나만 이용해 떠먹거나 테이블 나이프와 함께 이용하여, 포크로 찌르고 나이프로 썰어 먹는 게 서양 식사 방법.

2. 역사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유래한 식사용 도구로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고대 문명 유적지에서 원시적인 포크 형태의 도구가 발견된다. 중국 치자 문명(기원전 2천 년경, 齊家)에서 사용한 뼈로 된 포크가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한 시대 무덤에선 돌로 조각한 포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1] 고대 이집트에서는 포크를 조리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고대 로마에서는 으로 포크를 만들기도 하였다. 영어 단어 'fork'는 라틴어 'furca'에서 유래하였는데, 쇠스랑을 의미한다. 고대의 포크는 용도가 다양하였는데, 주로 조리 도구로 사용되었다.
파일:1952.7_o2.jpg
시리아 지방에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4세기 동로마 제국 시대 포크

포크를 식사용 도구로 처음 쓰기 시작한 때를 고대 로마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포크가 대중에게 보급되고 여러 지역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동로마 제국의 공이 크다. 4세기에는 동로마 제국 전역의 식탁에 포크가 오를 정도로 널리 퍼졌다. 가까운 근동페르시아로도 포크 문화가 전파되어, 9세기에는 중동 지역에서도 널리 쓰이는 식사용 도구가 되었다. 다만 고대 로마 시대의 연회 등을 그린 그림을 보면 로마인들도 맨손을 음식을 집어 먹기는 매한가지였다.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에서 포크 문화는 사라지고 게르만족의 수식(手食) 문화가 자리 잡았다.[2] 이런 과거 서양의 흔적은 현재도 곳곳에 남았다. 특히 지금도 서양 식사법에서 주식인 만큼은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 않고 손으로 떼어 먹는 것이 기본적인 식사 예절이다.[3] 또 격식이 있는 서양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후에 핑거볼(finger bowl)이라고 하여 손가락을 씻는 물이 담긴 그릇을 식탁에 내놓는데, 옛날 서양식 식사 예절의 흔적이다. 중세 시절부터 서양에서는 음식을 모두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고, 그래서 식사를 마친 후 음식이 묻은 손가락들을 핑거볼에 넣고 씻었다.[4]

포크가 다시 서유럽 세계로 전파된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해서였다. 10세기 동로마 제국의 중흥기를 만든 황제 요안니스 1세의 조카 테오파노가 신성 로마 제국오토 2세의 황후로 갈 때 포크가 서유럽에 다시 소개되었는데,[5] 이렇게 전해진 포크는 11세기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해 이탈리아반도에 널리 보급되었다. 바로 파스타 식문화 때문. 본디 파스타도 손으로 먹던 음식이었지만 결국 포크를 사용하게 되면서 포크가 지금처럼 촘촘한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고대 로마의 문화를 중흥하는 와중에도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포크를 꺼렸다. 가령 베네치아 총독의 후계자 도메니코 실비오(Domenico Silvio)가 동로마 공주 테오도라와 결혼했을 때 테오도라가 포크를 가져 왔는데, 이를 보고 페트루스 다미아니(Petrus Damiani) 주교가 강력하게 비판하여 일련의 스캔들이 될 정도였다. 문학 작품을 봐도 포크에 대해서 '이탈리아 놈들이나 쓰는 것' 혹은 '계집애들이나 쓰는 것'이라 폄훼했다. 일부 교회학자는 하느님이 주신 손은 본질적으로 깨끗하기 때문에 포크를 써서 식사하는 것은 과도한 섬세함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가톨릭의 총본산인 이탈리아에서는 잘만 썼는지라 교리 차원에서 일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고, 각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각지 성직자들이 성경을 끌어와서 정당화한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후 중세 서유럽 지역에 포크는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실사용보다는 과시용에 가까웠다.
1363년에서 1380년까지 재위한 프랑스의 샤를 5세가 남긴 재산 목록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포크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식사용이라기보다는 과시용에 가까웠다.
1533년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Caterina de' Medici)이 프랑스의 앙리 2세에 시집가면서 자신의 요리사들과 모든 식탁 도구들을 함께 가져간 것을 계기로 프랑스에 소개된 바 있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약 1세기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략) 17세기경 이탈리아 일부 사람들이 포크를 쓰기 시작했지만 항간의 조롱거리에 불과했다.[6] 특히 남자가 포크를 사용하면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사람 또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다.
조경숙, 이미혜. 동서양 취식(取食)도구 문화에 대한 고찰 ― 포크와 나이프, 스푼식문화권(食文化圈)과 저식문화권(箸文化圈) ―[7]
다만 다른 유럽 지역으로 퍼지기는 상당히 늦었다. 15세기면 지중해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16세기 이후에 서서히 도입되었다. 당시까지도 사람들에겐 포크 사용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었다. 한 예로 1608년 영국인 토머스 코리어트(Thomas Coryate)가 유럽을 돌아다닌 여행기를 편찬했는데, 여행하며 포크 문화를 배워 영국에 알린 탓에 퍼시퍼(furcifer), 즉 포크잡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었다.

프랑스 왕국에는 17세기에도 보급이 덜 되어 루이 14세가 식사 때 자신은 손과 칼 외에는 다른 건 써본 적 없다며 다른 황족들도 포크를 못 쓰게 했다고 한다. 당시 포크를 사용하면 남자답지 못하다 여겼다고.[8] 전 유럽에서 포크를 사용하게 된 때는 적어도 18세기 이후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포크가 대중화됨도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운동 이후의 일이다.

초기의 포크는 고깃덩이를 요리하고 먹기 위한 도구로 갈래가 두 개였지만, 한쪽 축을 중심으로 고기가 빙빙 돌게 되는 문제점이 생겨 개량을 거친 끝에 19세기가 되어 네 갈래 포크가 가장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포크로 자리 잡았다.

3. 기타

숟가락 끝이 포크의 형태를 띠고 있는 스포크라는 물건도 존재한다.

체스에 포크라는 기술이 있다. 포크의 끝 부분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는 것처럼 기물 하나로 여러 기물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체스/전술 문서 참고.

스타크래프트프로토스 종족의 별명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프징징 문서 참조.

하드코어 경기를 주로 가지던 프로레슬러 압둘라 더 부처가 시그니처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Fork, Threek, towk... 하는 이 있다. #

광기의 군주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이름하여 소름 돋는 포크(Fork of Horripilation)(...). 자세한 내용은 여기 나와 있다.

일본에서는 면발로 만든 포크가 나왔다. #

알쏭달쏭 캐치! 티니핑에 등장하는 얌얌핑의 소품이다.


[1] 우스갯소리로, 중국은 포크랑 젓가락 둘 다 발명했으나 지금은 젓가락만 쓰는 걸 보면 젓가락이 훨씬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중국이 누구보다도 먼저 포크를 발명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중국'도' 다른 고대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포크를 발명했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2] 그래서 이후 유럽 세대들은 왕족, 귀족이라 하는 양반들이 온갖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으면서 손가락에 묻은 양념 쪽쪽 빠는 광경을 수백년동안 보게 된다. 로마 몰락의 반동으로 인한 중세 유럽의 생활상에 어느정도 과장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식사예절 면에서는 가히 암흑시대라 칭할만 하다. 십자군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킹덤 오브 헤븐에 이런 식사가 제법 잘 묘사되었다.[3] 이런 문화는 기독교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 예수가 빵을 들어 자신의 살이라고 했기에 꼭 그게 성체가 아니더라도 감히 예수의 살이나 같은 빵에 칼을 대는 것을 신성 모독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일종의 기독교적 전통일 뿐 강제되는 사항은 아니다. 애초에 당시의 빵은 너무 딱딱해서, 칼 수준이 아니라 도끼로 찍어서 잘라내야 했다. '빵을 자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라는 표현의 유래도 이것이다.[4] 핑거볼에 레몬을 태워 주기도 하는데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아시아인들이 서구권 레스토랑에 갔다가 레몬수 정도로 생각하고 손을 씻어야 할 핑거볼을 마셔버려 망신을 당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5] 동로마의 황녀가 외국으로 시집가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전임 황제 니키포로스 2세가 군사적으로는 탁월했지만 외교적으로 서유럽과의 관계를 망쳐놓았는데, 이 결혼으로써 서유럽과 동유럽의 관계가 회복되었다.[6] 심지어 포크를 쓰는 사람들을 놀리는 코미디까지 있었다(...)[7] 한국조리학회지 제9권 제1호(2003)[8] 당시 유럽의 식사 문화에서는 고기처럼 메인이 되는 좋은 요리는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 식사 주최자 등 그 식탁에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칼로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 흔했다. 고기를 잘라 나눠주는 것도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위를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했다. 이미 잘린 음식이 제공되어 칼이 필요 없었기에, 보통은 포크 같은 식기를 쓰지 않고 손만 써서 먹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서양의 바베큐 파티 같은 곳에서 연장자가 고기를 굽고 나눠주는 게 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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