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20년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50명을 선정한 순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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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훅 | 릴랜드 스클라 | 킴 딜 | 더프 맥케이건 | 썬더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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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레미 킬미스터 Lemmy Kilmister | |
본명 | 이언 프레이저 킬미스터 Ian Fraser Kilmister |
이명 | 이언 프레이저 윌리스 Ian Fraser Willis |
출생 | 1945년 12월 24일 |
영국 스태포드셔 주 스토크온트렌트 | |
사망 | 2015년 12월 28일 (향년 70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신체 | 키 178cm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
장르 | 하드 록, 헤비메탈 |
악기 | 보컬, 베이스 기타 |
소속 | 호크윈드 (1970~75) 모터헤드 (1975~2015) |
활동 | 1965년 ~ 2015년 |
자녀 | 2명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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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전설적인 로큰롤 밴드 모터헤드의 작곡가이자 리드싱어, 베이시스트였다. 브루스 디킨슨, 오지 오스본, 롭 핼포드와 함께 영국 헤비메탈 그 자체를 상징하는 뮤지션으로 꼽히며, 빠르고 헤비한 음악, 항상 턱을 높게 치켜들고 더 높이 세운 마이크를 올려다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특유의 보컬 자세, 그리고 로큰롤 라이프 스타일로 유명했다.문서명은 레미 킬미스터이지만 보통 성을 떼고 "Lemmy"(레미)라고 불린다.
2. 생애
레미는 1945년 12월 24일 잉글랜드 버슬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안 프레이저 킬미스터(Ian Fraser Kilmister). 친부는 전직 영국공군 군종병이었는데 아내가 레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고 가족을 떠났다. 레미의 어머니는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인 럭비 선수와 재혼을 하였는데 가족들과는 사이가 서먹했던 모양. 집이 가난해서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등 많은 잡일을 하곤 했다. 학창 시절을 웨일즈 서부 끄트머리 지역에서 보냈는데 그 지역의 유일한 잉글랜드 출신인 연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무리들과 자주 주먹다짐하고 싸워댔다고 한다.[4] 어느날 한 남학생이 여자 애들에게 둘러 쌓여서 기타 연주를 하는 것을 보고 그 때부터 악기 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6살 때 비틀즈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후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런던으로 상경한다.1967년 레미는 RThe Rockin' Vickers를 비롯한 여러 록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지미 헨드릭스의 로디로 일하기도 했다. 1971년 스페이스록 밴드 호크윈드에 가입하여 베이시스트 겸 보컬로 활동했다. 원래 레미는 기타리스트 오디션에 지원했으나 베이시스트로 영입되었는데, 리듬 기타리스트로의 경험으로 인해 레미 특유의 독특한 베이스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호크윈드로 활동하면서 앨범을 만들고 투어를 돌다가 1975년 약물 복용 문제로 해고당한다.[5]
호크윈드에서 쫒겨난 후, 레미는 자신의 친구를 포함한 멤버들을 규합해 밴드를 결성했는데, 밴드의 이름이 문제가 되어 방송 출연이 금지되자[6] 밴드명을 Motörhead로 변경하면서 활동을 시작한다. 모터헤드는 1979년 발매된 앨범 Overkill과 뒤를 이어 발매된 Bomber의 흥행으로 이름을 날리며 충성스러운 팬들을 확보한다. 그리고 1980년에 내놓은 앨범 Ace of Spades가 크게 성공하여 명성을 얻었다. 이후 레미는 모터헤드의 멤버가 여럿 바뀌는 와중에도 오랜 세월 꾸준히 활동하며 총 2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밴드는 전 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모터헤드의 대표곡 Ace of Spades |
2015년 12월, 70세가 된 레미는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해 검진을 받게 되는데, 뇌와 목에서 말기 암이 발견되어 남은 생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 받는다. 그러나 레미는 자신이 너무나 거칠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퇴원하여 집에서 그가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다 12월 28일 잠에 들듯이 세상을 떠났다.[7]
2016년 1월 9일 치러진 레미의 장례식 |
3. 음악 스타일
레미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긁으며 울부짖는 보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단순히 긁는 목소리일 뿐만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굵직해서 모터헤드의 거친 사운드를 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보컬 자체에 음정이랄 게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다소 건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모터헤드라는 밴드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다고 여겨진다. 레미의 보컬은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모창하기 어려운 사례중 하나로 꼽히곤 하는데 혹자는 레미를 모창하려면 하루에 술을 한 박스 마시고 담배 한 보루씩을 피면 된다고 농담을 하기도.레미는 베이스를 연주할 때 우선 베이스 앰프의 오버드라이브를 최대치로 설정하고, 기타처럼 코드를 잡고 피킹으로 친다. 그래서 레미의 목소리와 베이스의 소리가 비슷하다고 하기도 한다. 파워 트리오의 기본적인 1기타+1베이스로 큰 소리를 내다보니 베이스 음량도 최대치로 올려놔서 저음역대가 강조되지 않은 단순하고 일직선적인 음악을 하는데 이는 모터헤드의 가장 중요한 컨셉이었다.
다양한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지만[9] 그가 가장 많이 이용한 베이스 기타는 리켄배커 4000 시리즈의 베이스 기타들이다.[10] 이를 기념하여, 리켄배커에서는 4004 모델을 기반으로 레미의 시그니춰 베이스를 발매하였다. 이름하야 'Rickenbastard'. 시그니춰 베이스를 연주하는 레미의 모습. 정식 발매명는 4004LK이다. 그의 베이스는 장례식 때 마지막으로 소리를 낸 후 박물관에 기증이 되었다.
4. 개인적인 삶
당대 유명한 락스타치곤 소박하게도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방이 두개 딸린 작은 임대 아파트에 살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그의 집을 보면 수많은 컬렉션과 잡동사니로 가득 찬 모습인데 본인은 만족하는 듯 하다.아들이 둘 있는데 하나는 레미가 17살에 가진 자식이라 입양을 보냈으며 [11], 다른 아들인 폴 인더는 아버지처럼 음악을 한다. 처음 만났을 땐 자신을 책임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으나,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자기 역시 이쪽 계열 음악과 생활을 하다보니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레미는 공연 뒷풀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주 자신의 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혈육을 소중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번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제작진에게 기념품과 트로피가 가득 찬 자신의 방을 보여줄 때, 이 방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자 옆에 있던 자신의 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 폴은 레미의 공연에 종종 참여하여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으며, 레미가 쇠약해진 후 아버지를 돌보며 임종까지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지금은 프로듀서로 주로 활동하며 폴 인더 킬미스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관중들에게 "이 녀석이 내 아들 폴이오!" 라고 외치는 레미. [12] |
살면서 1,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수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쾌락적인 삶 때문에 가정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으며 최신 게임기인 엑스박스부터 시작해서 옛날 레트로 게임, 솔리테어 전용 터치 모니터 게임기, 카지노용 슬롯 머신 등 게임 자체를 좋아했다. 오락실에서 게임하고 있는 사진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집에 따로 아케이드 게임기를 구비는 해놓았지만, 오락실에 직접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 듯 하다. 종종 그가 좋아하던 LA 자택 주변에 있는 Rainbow Bar & Grill 식당/술집에서 슬롯머신 게임기로 놀기도 했다.
11살 때부터 흡연을 시작한 애연가였다. 좋아하는 담배는 말보로 레드로 하루 두 갑을 꼬박꼬박 피웠다고.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에도 의사와 하루 두 갑에서 한 갑으로 줄이는 것으로 타협봤다고 한다.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잭 다니엘스에 콜라를 섞어 마시는 "잭 앤 코크"를 좋아했다. 주량이 대단해서 그의 집에 방문했던 뮤지션들이 잭 다니엘스를 권유 받아 한 병 받았는데, 다들 이 나눠마시라는 줄 알고 서로 나눠 마시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레미는 다른 병들을 가져와서 1인당 1병씩 주면서 본인은 그걸 맥주 마시듯이 마셨다고 한다. 또 투어를 돌아다닐 때마다 모터헤드의 로드크루들은 각종 장비와 함께 무수히 많은 잭 다니엘스가 들어있는 여러 개의 박스를 챙겨서 투어를 진행했다.
마약의 일종인 스피드를 즐겼으나 과용하진 않았으며 평생토록 술과 담배, 스피드를 즐긴 그조차도 헤로인만큼은 위험하다고 여겨 멀리했다고 한다. 헤로인 중독으로 인해 지미 핸드릭스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의 죽음을 겪은 것과 젊을 적에 사랑했던 여인이 헤로인에 취한 채로 욕조에서 사망해있는 것을 발견한 일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동시대의 많은 락스타들이 쾌락적인 삶을 살면서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켰던 것에 비해 레미는 개인적인 쾌락을 즐겼을 뿐 술이나 약에 취해 한심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는 증언했다. 기껏해야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정도였다고.
나치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이런 쪽에서 안 좋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레미 본인은 그냥 멋있어서 모았던 거라고. 자기가 사귀었던 흑인 여자친구들도 그거 보고 뭐라 안그랬는데 애먼 데서 괜히 트집잡는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살아생전에 술이나 약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음에도 칠십 평생 나치나 인종차별과 관련된 망언은 일절 한 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이자 또는 자유주의자로 여겼으 종교, 정부, 권위를 거부했다. 인터뷰에서 정치와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모든 정치인들은 다 쓰레기들이다. 녹색당이건 뭐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러한 성향에 걸맞게 인종차별주의를 규탄하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이를 "심히 멍청한 짓(So fxxxxxg dumb)"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압적인 이미지 때문에 언뜻 상상이 잘 안가지만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사인이나 사진도 곧잘 해주었다. 후에 모터헤드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필 캠벨이 어린시절, 레미의 전 밴드 호크윈드의 사인을 받고 싶어 호텔을 서성거렸지만, 유일하게 나와서 팬들을 일일이 상대해주고 사인을 해주었던 건 레미 뿐이었다고 한다. 또한 물심양면으로 여성 밴드들의 데뷔와 활동을 도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밀어주던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잠깐 등장해서는 잘 대해달라는 의미에서 "이 여자들은 내 친구들이야!" 라고 관중들에게 외치고 가곤 했다고.
이러한 모습 덕분에 헤비메탈 뮤지션은 물론이고 수많은 메탈 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또래 세대인 퀸의 브라이언 메이는 그의 추도사에서 레미를 두고 "평화주의자이며 생각이 매우 깊고, 진심으로 친구들을 아낄 줄 알았던 사람(Yet as a person he was a pacifist, a deep thinker, and a man who cared profoundly about his friends)"이라고 말하며 그를 기렸다.
5. 여담
* 모터헤드의 음악 스타일이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스래시 메탈의 태동에 큰 모티브가 되었기에, '빅4(슬레이어(밴드), 메탈리카, 메가데스(밴드), 앤스랙스)'를 비롯한 스래쉬 메탈, 80년대 후반 헤비메탈 뮤지션들에게 공통적으로 대부로 존경받았으며[13] 살아생전 그의 영향력은 소위 말하는 영웅들의 영웅. 오늘날까지도 헤비메탈에 입문하는 뮤지션 또는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다 모터헤드의 커버곡을 발견한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스스로 그의 팬임을 언급하는 등 여러 경로로 레미의 발자취를 접할 수 있다.메탈리카와 함께 한 라이브. 최대한의 존중을 보여주는 메탈리카 멤버들의 모습에 레미는 쑥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
* 오지 오스본과는 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 당시 둘다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서로를 알아봤고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각별한 사이였고[14] 오지 오스본이 은퇴를 고려하고 있을 때 레미는 여러 곡들을 써주었고 큰 히트를 첬다.[15] 이 때 써준 대표적인 곡들이 Mama I'm Coming Home,' 'See You on the Other Side,' 'Hellraiser'[16],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 'Desire"가 있다.
레미의 절친한 친구였던 오지 오스본이 2021년에 발표한 레미와의 듀엣버전 Hellraiser |
* 레미(Lemmy)란 예명은 'Lend me'의 변형인데 학창시절에 하루가 멀다하고 돈을 빌려대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 카리스마적인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유쾌한 사람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에 곡을 제공하기도 하였고 BBC의 코미디 패널 예능 프로그램인 <Never Mind the Buzzcocks>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KITKAT같은 과자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고,[17] 공식적으로 그의 마지막 영상은 핀란드 우유 회사인 Valio의 광고일 정도로 재밌는 아저씨로 유명했다. 이 광고에는 그의 즉흥 연기가 담겨져있는데, 우유 광고임에도 불고하고 "난 우유 따윈 절대 안마셔, 이 쉐끼들아"라는 대사를 쳐준다. 그리고 광고가 나가던 해에는 레미가 사망한 다음해라 광고가 끝난 뒤엔 그를 추모하는 글을 보여준다.
* WWE의 프로레슬러로 유명한 트리플 H는 모터헤드의 팬이어서 레미에게 곡을 부탁했고, 흔쾌히 수락한 레미는 트리플 H가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가질 때 2차례 입장곡 라이브를 해 주었다. 정확히는 WWE 담당 작곡가인 짐 존스턴(Jim Johnston)이 기본 코드를 만들어서 그대로 쓰려고했는데 트리플 H가 레미 킬미스터에게 본인의 전용 주제곡 참여를 부탁해 짐 존스턴이 작업한 코드를 기반으로 지금의 The Game를 작곡했고 작업한 김에 짐 존스턴이 작곡한 다른 2곡인 에볼루션의 테마곡 Line In The Sand와 King of King도 모터헤드가 녹음해주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레슬러 트리플 H의 외모나 레슬러로써의 캐릭터도 레미 킬미스터스러운 Bad Ass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 상단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왼쪽 뺨에 큼지막한 사마귀가 두 개 나있었다. 레미 본인은 이것들이 사마귀가 아니라 점이라고 했지만. 레미는 이 사마귀들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놔뒀는데, 그 때문에 이 사마귀들은 레미의 왼쪽 뺨에 붙은 채로 그가 사망할 때까지 몇십년을 함께하였다. 모자와 걸걸한 목소리, 특징적인 수염과 함께 레미의 상징 중 하나로 몇몇 과격한 팬들은 레미에게 사마귀를 핥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18]
[1] 영화 에어헤드에 나온 명대사. 브랜든 프레이저: 레미랑 신이 레슬링을 하면 누가 이길까? / 경찰: 레미? / 스티브 부세미: 땡! / 경찰: 신? / 스티브 부세미: 틀렸어, 이 멍청아. 이건 함정 퀴즈야. 레미가 바로 신이니까![2] 레미라는 인물에 대한 대표적인 찬사라 할 수 있는 대사이지만, 레미 본인은 조금 쑥스러웠는지 "I'm Not GOD, GOD's Taller. (난 신이 아니야, 신이 더 크거든.)"이라 답했다.[3] 게임 둠 이터널에서도 이스터 에그로 이 대사가 나온다.[4] 하지만 현명하게도 보통은 도망치는 편을 택했다고.[5] 호크윈드가 미국 투어를 돌던 중이었는데,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경찰이 레미가 갖고 있던 암페타민을 코카인으로 오인하여 그를 체포하였고, 레미는 며칠 동안 투옥되어야 했다. 결국 이 때문에 공연 몇 개가 취소되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밴드는 그를 해고하기로 하였다고...[6] 밴드명이 Bastard, 즉 개자식이었다...[7] 모터헤드의 매니저 토드 싱어먼(Todd Singerman)은 대외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사망 후에 병세를 공개하려 했지만, 레미는 2016년 초 쯤에는 꼭 공개적으로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는 그의 마지막 공연으로부터 불과 2주 후였다.[8] 모터헤드의 마지막 드러머[9] 깁슨 선더버드나 B.C Rich 베이스도 연주한 적이 있다![10] 4001, 4003, 4000, 4004 베이스를 연주하였다.[11] 너무 어릴때 입양을 보냈고 이때문에 그의 인생을 뒤흔들까봐 아버지가 자신임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12] 폴 인더 킬미스터는 이 순간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회고한다.[13] 2011년 뉴욕에서 스래시 메탈의 빅4들이 함께 모여 콘서트를 하며 모터헤드의 히트곡 overkill을 다함께 연주하기도 했다.[14] 영국 태생이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몇 안되는, 메탈 계열의 음악을 하는 동포였기에 그렇다. 두 사람 모두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것도 친분을 트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15] 레미는 오지에게 몇몇 곡을 써준 대가로 개런티를 받았는데, 그 곡들로 얻은 수익이 여태까지 십여년 넘게 자기가 모터헤드 활동을 하면서 벌었던 돈 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다고도 한다.[16] 이 곡은 모터헤드 앨범에 본인 버전으로도 수록하였다[17] 심지어 이 광고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18] 레미는 그걸 또 허락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