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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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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플리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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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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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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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5년 10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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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키스 리처즈 제프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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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킹 척 베리 에디 밴 헤일런 듀언 올맨 피트 타운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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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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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린
Peter Green
파일:피터 그린.jpg
<colbgcolor=#58ab27><colcolor=#fff> 본명 피터 앨런 그린봄
Peter Allen Greenbaum
출생 1946년 10월 29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타워햄리츠 베스널그린
사망 2020년 7월 25일 (향년 73세)
영국 잉글랜드 에식스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소속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 (1965, 1966 – 1967)
플리트우드 맥 (1967 – 1970, 1971)
부모님 존 그린봄
앤 그린봄
배우자 재인 새무얼스 (1978 – 1979)
자녀 슬하 1녀
로즈버드 그린 (1978 – )
신체 172cm
종교 유대교
활동 기간 1961년 – 2020년
사용 악기 기타, 보컬, 하모니카
장르 , 블루스, 블루스 록, 사이키델릭 록, 재즈 퓨전
레이블 에픽, 리프리스, PVK, 크리올
1. 개요2. 활동3. 생애
3.1. 플리트우드 맥 이전3.2. 플리트우드 맥 시기3.3. 솔로 활동
4. 음악적 성향5. 장비6. 여담

[clearfix]

1. 개요

내가 들어본 음색 중 가장 달콤하다. 피터 그린은 나를 식은땀 흘리게 만든 유일한 기타리스트다.
비비 킹

영국의 음악가. 영국의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초대 리더 겸 기타리스트였다.

2. 활동

플리트우드 맥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은 초대 리더이다. 블루스 록 성향의 기타리스트로 일찍이 에릭 클랩튼의 라이벌로 여겨질 정도로[1] 훌륭한 기타리스트였고, 이를 반영하듯이 롤링 스톤이 선정한 위대한 기타리스트 58위에 올랐다. 블루스 록 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꼽을때, 에릭 클랩튼, 로리 갤러거, 듀언 올맨, 스티비 레이 본과 함께 결코 빠지지 않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다. 그의 영향력은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과 거의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음악 활동 기간이 짧았던 탓인지, 거의 올타임 레전드급으로 평가받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대중들의 인지도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의 명장 급 대우를 받는 음악가이며, 피트 타운젠드마크 노플러, 지미 페이지 등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그의 영향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흔히 플리트우드 맥 하면 린지 버킹햄이나 스티비 닉스로 대표되는 팝 록 시기의 라인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팝 록 이전의 플리트우드 맥, 즉 블루스 록 시기의 밴드는 사실상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LSD 과다 복용으로 인해 폐인이 되어 자기가 만든 밴드에서 가장 먼저 탈퇴했다.

그가 탈퇴한 이후 Rumours가 음반 판매량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2]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대성공하면서 블루스 시기를 이끌었던 피터 그린은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 내에서 피터 그린의 영향력은 지대하여 많은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3. 생애

3.1. 플리트우드 맥 이전

1946년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피터 그린은 형 마이클 그린에게 11살때 기타 코드를 배운 이후 기타를 다루는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15살때 보니 데니스 앤 더 도미노스(Bobby Dennis and the Dominoes)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으면서 런던 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4년이 지나 19살이 되었을때 에릭 클랩튼의 소속 밴드로 유명한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라는 밴드에 들어갔는데, 이 밴드에서 후일 밴드를 같이 하게 되는 믹 플리트우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존 매이얼 앤 더 블루스 브레이커스는 기존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탈퇴한 상태였기 때문에[3] 밴드 내에서는 거의 초보자나 다름 없던 피터 그린이 클랩튼의 뒤를 이을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밴드의 리더였던 존 매이얼이 에릭 클랩튼에 맞먹는 기타리스트가 될거라며 피터 그린을 전폭적으로 밀어줘서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안착할 수 있었다. 밴드에서 그의 기타 실력은 존 매이얼의 예상대로 급속하게 성장했으며, 곧이어 피터 그린에게는 에릭 클랩튼의 라이벌이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다. 또한 "The Green God", 즉 "신"이라는 거북한(?) 별명도 생겨나게 된다.[4]

3.2. 플리트우드 맥 시기

1967년, 피터 그린은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기 위해 브레이커스를 탈퇴했다. 이후 피터 그린은 평고 알고 지내던 음악가 믹 플리트우드 등과 함께 록밴드 "플리트우드 맥"을 만들었다. 밴드의 이름은 베이시스트 "존 맥비"[5]와 드러머 "믹 플리트우드"의 성을 따서 지은 것이었지만, 이는 밴드 내에서 자신만 주목받을까봐 걱정했던 피터 그린이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빼서 지은 것이었고, 실제로는 밴드의 보컬과 기타, 작사 작곡, 프론트맨까지 거의 모든 일을 다 피터 그린이 도맡았었다.

플리트우드 맥은 피터 그린의 주도 하에 3장의 앨범을 제작했고, 블루스 록 성향이었던 이 앨범들은 존 레논을 비롯한 메이저 영국 음악가들에게도 알려지며 상업적, 음악적으로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피터 그린은 이런 밴드의 성공에 오히려 괴로워했다고 한다. 더 좋은 앨범을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감, 그리고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 등이 합쳐져 그의 음악 세계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터 그린은 당시 록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마약 LSD를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마약의 노예가 되어버리면서 정신병이 발병해 음악 활동은 커녕 정상적인 일상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결국 피터 그린은 1970년 5월 유럽 투어 도중 밴드를 탈퇴했다.

3.3. 솔로 활동

밴드 탈퇴 이후, 그는 비비 킹과 세션을 가지기도 하고 1971년에는 플리트우드 맥에 잠깐 다시 가입하기도 했지만 1973년경 약물 남용과 정신병세가 심각해져 음악 활동을 접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1977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더군다나 같은 해, 자신의 회계 매니저를 총으로 겨누며 협박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회계 매니저가 그린의 음악활동 복귀를 바라면서 매번 거액의 돈을 송금했고, 이에 유명세를 부담스러워했던 그린의 꼭지가 터져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만 것이라는 설이다.

다행히 1979년경에는 병세가 호전되어 은둔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약물 중독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지만, 그래도 1970년대 중반보다는 훨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때 피터 그린은 한때 몸담았던 플리트우드 맥이 발매한 앨범 Tusk를 싫어했다고 한다.[6] 1998년에는 플리트우드 맥의 멤버로서 공헌을 인정받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다.

정신병 치료를 위해 그린은 1970년대 에식스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 캔비 아일랜드 [7] 로 이사해 평생을 보냈다. 1978년에는 한 여자와 결혼하기도 했고 슬하에 딸 한명을 두기도 했지만, 1년만에 이혼했다. 2020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음악적 성향

3년간의 짧은 기간동안만 밴드에서 활동했지만 1970년대 후반 플리트우드 맥이 팝 성향으로 전향하기 전까지 그의 영향력은 꽤나 컸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로 플리트우드 맥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단절되었고, 이후로는 에릭 클랩튼과 같은 일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이 대신 그의 유산을 이어받아 블루스 음악을 발전시켰다.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 게리 무어, 에어로스미스조 페리, 주다스 프리스트, 오아시스노엘 갤러거, 메탈리카커크 해밋, 라디오헤드의 콜린 그린우드 등이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역시 생전 피터 그린의 팬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8] The Beatles에는 존이 작곡한 곡중 유독 블루스 음악들이 많았는데 이는 간접적으로 피터 그린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어로스미스의 커버 버전으로 유명한 "Stop Messin' Around"은 그의 대표곡이다. 팝 록 밴드로 유명한 플리트우드 맥의 창시자답지 않게 피트 그린은 에어로스미스나 메탈리카, 주다스 프리스트 등 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5. 장비

그는 1960년대 영국 블루스 뮤지션 중에서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깁슨 레스폴 사용자로 유명했지만, 깁슨 SG텔레캐스터, 스트랫 역시 상당히 많이 사용했다. 앰프로는 존 메이올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스 시절에는 유명한 마샬 JTM45를, 이후 플리트우드 맥과 솔로 앨범시절에서는 오렌지 Matamp와 펜더 Dual Showman Reverb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파일:Gibson_CS_Kirk_Hammett_Greeny_1959_Les_Paul_Standard.png

그의 레스폴 기타는 '그리니'(Greeny) 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9], 1966년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활동할 당시 장만한 깁슨 59년식 레몬버스트 색 레스폴 스탠다드 기타이다. 특유의 Phase Off 기타 사운드로 유명하나, 그가 이를 위해 회로를 따로 설계하였다거나 그러진 않았고 실수에 의해 우연히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피터 그린이 자신의 우상처럼 여기던 에릭 클랩튼처럼 픽업 커버를 벗기려다가 잘못 건드려서(...) 배선이 뜯어저서 픽업이 고장나는 바람에 수리를 맡기게 되었다. [10]

이때 기타를 수리한 사람이 런던의 게라드 가에 거주하던 '샘 리'라는 기타 수리공으로, 이 사람이 브레이드 와이어를 교체하면서 픽업 아래에 들어있는 자석을 반대로 끼워놓고 돌려준 바람에 픽업의 극성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11] 피터 그린은 소리가 달라진 것을 직감하고 원인을 알 수 없어 프론트 픽업을 돌려서 끼워봤으나 소리가 그대로여서 그냥 냅뒀는데, 여타 레스폴과는 다른 특이하게 반대로 끼워진 넥 픽업이 그리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출처

그의 원본 그리니 기타는 게리 무어를 거쳐 2016년에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이 사들여서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

6. 여담


[1] 그런데 피터 그린은 이런 수식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2] 이후 이 기록은 Thriller에 의해 깨지나,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팔린 록 음반에서 5위권 안에 들어간다.[3] 당시 에릭 클랩튼은 지미 페이지, 리치 블랙모어와 함께 런던 음악계에서 유능한 기타리스트라는 소문이 퍼져 몸값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가던 상황이었다.[4] 재미있게도 그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에릭 클랩튼의 별명 역시 "기타의 신"(Clapton is God)이다.[5] 그런데 밴드 결성 당시에는 계약상의 문제로 존 맥비가 플리트우드 맥에 가입하지 못했고, 한달 뒤에 밴드에 합류했다고 한다.[6] 그도 그럴것이 피터 그린은 블루스 계통 음악가였는데, 그가 떠난 이후 플리트우드 맥은 팝 록 성향 밴드로 변해버리고 말았다.[7] 런던 동쪽 반도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8] 레논이 롤링 스톤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크림과 협업해 만든 일회용 슈퍼밴드 "더티 맥"에서 맥은 "플리트우드 맥"에서 따온 이름이었다고 한다.[9] 이 기타의 두 번째 주인 게리 무어가 붙인 별명이다.[10] 1966년 당시의 사진을 보면 튜너도 깁슨에서 기본으로 장착되어 출고되는 오리지널 클루손 제품이 달려있고, 무엇보다 넥 픽업의 방향도 정상적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가 동년 11월에 찍힌 사진을 보면 헤드머신이 그로버 제품으로 교체되었으며, 무엇보다 프론트 픽업이 제거된 상태로 연주하고 있다.[11] 당시에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수리공의 전문적인 수리지식이 부족했고, 그냥 소리만 나면 오케이였기에 당시에는 이런 엉터리 수리가 오히려 흑마술같이 다른 사운드를 내는 비결로 통했다고 한다.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의 경우에도 사용하던 텔레캐스터가 고장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이전과 다른 소리가 났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샘 리”라는 사람의 리페어 실력은 리프렛, 리페인팅은 무난하게 잘 했지만 와이어링 실력은 형편이 없어서 현재에도 그가 수리했던 빈티지 기타들을 제대로 고치는 작업을 많이 한다고 한다.[12] 덧붙여 둘이 모두 탈모가 되었다.[13] 핑크 플로이드는 바렛 시절 사이키델릭 록 성향이었지만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변했고, 플리트우드 맥은 블루스 록 밴드에서 팝 록 밴드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