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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5:33:10

글렌 굴드

글렌 굴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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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tableborder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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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뮤직 매거진 선정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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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BBC 뮤직 매거진이 전세계 저명한 현역 피아노 연주자 100명에게 레코딩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목록이다. 출처
<rowcolor=#000> 순위 피아니스트
<colcolor=#000><colbgcolor=#fff> 1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2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3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4위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5위 알프레드 코르토
6위 디누 리파티
7위 아르투르 슈나벨
8위 에밀 길렐스
9위 마르타 아르헤리치
10위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11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12위 이그나츠 프리드만
13위 라두 루푸
14위 에드빈 피셔
15위 빌헬름 켐프
16위 머리 페라이어
17위 글렌 굴드
18위 발터 기제킹
19위 요제프 호프만
20위 클라우디오 아라우
○: 생존 피아니스트
†: 목록 선정 당시 생존하였으나 나중에 사망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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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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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gcolor=#FFF,#1f2023>파일:D8FE539D-CCB2-44DA-9D5B-B6EEC0E8759F.png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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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게오르그 솔티 | 클라우디오 아바도 | 존 바비롤리 | 다니엘 바렌보임 | 토머스 비첨 | 레너드 번스타인 | 피에르 불레즈 | 존 엘리엇 가디너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카를로스 클라이버 | 오토 클렘페러 | 사이먼 래틀
카를 뵘 | 에이드리언 볼트 | 세르주 첼리비다케 | 콜린 데이비스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 마리스 얀손스 | 라파엘 쿠벨릭 | 제임스 리바인 | 찰스 매케러스 | 주빈 메타 | 조지 셀 | 브루노 발터 | 구스타보 두다멜
벤저민 브리튼 | 리카르도 샤이 |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 네빌 마리너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유진 오르만디 | 안토니오 파파노 | 트레버 피노크 | 프리츠 라이너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 마이클 틸슨 토머스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성악가 부문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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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 | 플라시도 도밍고 | 마리아 칼라스 | 유시 비욜링 | 자네트 베이커 | 안젤라 게오르기우 | 체칠리아 바르톨리 | 엔리코 카루소 |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 비르기트 닐손 |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 조안 서덜랜드 | 조이스 디도나토
몽세라 카바예 | 르네 플레밍 | 토머스 햄프슨 | 안나 네트렙코 | 레온타인 프라이스 | 브린 터펠 | 프리츠 분더리히
토머스 앨렌 |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 호세 카레라스 | 표도르 샬리아핀 | 캐슬린 페리어 | 시르스텐 플라그스타 | 니콜라이 갸로프 | 티토 고비 | 마릴린 혼 | 한스 호터 |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 군둘라 야노비츠 | 요나스 카우프만 | 사이먼 킨리사이드 | 엠마 커크비 | 제시 노먼 | 안네 소피 폰 오터 | 레나타 테발디 | 키리 테 카나와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피아니스트 & 오르가니스트 부문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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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 마르타 아르헤리치 | 클라우디오 아라우 | 알프레드 브렌델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머리 페라이어 | 마우리치오 폴리니 |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다니엘 바렌보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 에밀 길렐스 | 빌헬름 켐프 |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프리드리히 굴다 |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 | 안젤라 휴이트 | 스테판 허프 | 예브게니 키신 |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 디누 리파티 | 라두 루푸 | 안드라스 쉬프 | 아르투르 슈나벨 | 우치다 미츠코 | 랑랑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min-height:2em"
{{{#!folding [ 현악기 & 관악기 부문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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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 | 자클린 뒤 프레 | 야샤 하이페츠 | 예후디 메뉴인 |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 이작 펄만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모리스 앙드레 | 줄리안 브림 | 제임스 골웨이 | 하인츠 홀리거 | 스티븐 이설리스 | 요요마 | 윈튼 마살리스 | 알브레흐트 마이어 | 안네 소피 무터 | 엠마누엘 파후드 | 장 피에르 랑팔 | 조르디 사발 | 안드레스 세고비아
데니스 브레인 | 정경화 | 아르튀르 그뤼미오 | 프리츠 크라이슬러 | 기돈 크레머 | 나탄 밀스타인 | 존 윌리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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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s-5.3.2|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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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5px"
<colbgcolor=#fff,#353535>1963년빙 크로스비
1965년프랭크 시나트라
1966년듀크 엘링턴
1967년엘라 피츠제럴드
1968년어빙 벌린
1971년엘비스 프레슬리
1972년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1984년척 베리, 찰리 파커
1985년레너드 번스타인
1986년베니 굿맨, 롤링 스톤스, 안드레스 세고비아
1987년로이 에이커프, 베니 카터, 엔리코 카루소, 레이 찰스, 패츠 도미노, 우디 허먼, 빌리 홀리데이, 비비 킹, 아이작 스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행크 윌리엄스
1989년프레드 아스테어, 파블로 카잘스, 디지 길레스피, 야샤 하이페츠, 리나 혼, 레온타인 프라이스, 베시 스미스, 아트 테이텀, 사라 본
1990년냇 킹 콜, 마일스 데이비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폴 매카트니
1991년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1992년제임스 브라운, 존 콜트레인, 지미 헨드릭스, 머디 워터스
1993년쳇 앳킨스, 리틀 리처드, 델로니어스 몽크, 빌 먼로, 피트 시거, 패츠 월러
1994년빌 에반스, 아레사 프랭클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995년팻시 클라인, 페기 리, 헨리 맨시니, 커티스 메이필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96년데이브 브루벡, 마빈 게이, 게오르그 솔티, 스티비 원더
1997년바비 블랜드, 에벌리 브라더스, 주디 갈란드, 스테판 그라펠리, 버디 홀리, 찰스 밍거스, 오스카 피터슨, 프랭크 자파
1998년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1999년조니 캐쉬, 샘 쿡, 오티스 레딩, 스모키 로빈슨, 멜 토메
2000년해리 벨라폰테, 우디 거스리, 존 리 후커, 미치 밀러, 윌리 넬슨
2001년비치 보이스, 토니 베넷,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밥 말리, 더 후
2002년카운트 베이시, 로즈메리 클루니, 페리 코모, 알 그린, 조니 미첼
2003년에타 제임스, 조니 마티스, 글렌 밀러, 티토 푸엔테, 사이먼 앤 가펑클
2004년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2005년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터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턴,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2006년데이비드 보위, 크림, 멀 해거드, 로버트 존슨, 제시 노먼, 리처드 프라이어, 더 위버스
2007년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먼,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2008년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2009년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2010년레너드 코헨, 바비 다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2011년줄리 앤드류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2012년올맨 브라더스 밴드, 글렌 캠벨,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조지 존스, 더 멤피스 혼즈, 다이애나 로스, 길 스콧 헤론
2013년글렌 굴드, 찰리 헤이든, 라이트닝 홉킨스, 캐롤 킹, 패티 페이지, 템테이션스
2014년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2015년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2016년루스 브라운, 셀리아 크루즈,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허비 행콕, 제퍼슨 에어플레인, 린다 론스태드, Run-D.M.C.
2017년셜리 시저, 아마드 자말, 찰리 프라이드, 지미 로저스, 니나 시몬, 슬라이 스톤, 벨벳 언더그라운드
2018년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2019년블랙 사바스, 조지 클린턴 / 팔리아멘트-펑카델릭, 빌리 엑스타인, 도니 해서웨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샘 & 데이브, 디안 워윅
2020년시카고, 로버타 플랙, 아이작 헤이즈, 이기 팝, 존 프라인, 퍼블릭 에너미, 시스터 로제타 사프
2021년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 라이오넬 햄프턴, 마릴린 혼, 솔트 앤 페파, 셀레나, 토킹 헤즈
2022년보니 레잇
2023년바비 맥퍼린, 너바나, 마 레이니, 슬릭 릭, 나일 로저스, 슈프림즈, 하트
같이 보기: 공로상 수상자 · 레전드상 수상자}}}}}}}}}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999><bgcolor=#fff,#191919> 파일:180322_libraryofcongress_900px.jpg파일:libraryofcongress_dark.png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앨범 ||
{{{#!wiki style="margin: 0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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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2000년대 등재 앨범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02년 등재
루이 암스트롱 <The Complete Hot Five and Hot Seven Recordings> (1920~1928)
프랭크 시나트라, <Songs for Young Lovers> (1954)
엘비스 프레슬리, Sun Records sessions (1954-1955)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59)
밥 딜런,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2003년 등재
로버트 존슨, <The Complete Recordings> (1936-1937)
베니 굿맨, <The Famous 1938 Carnegie Hall Jazz Concert> (1938년 1월 16일)
글렌 굴드, <Goldberg Variations> (1955)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Sings the Cole Porter Song Book> (1956)
델로니어스 몽크, <Brilliant Corners> (1956)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 (1959)
주디 갈란드, <Judy at Carnegie Hall> (1961)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1968)
캐롤 킹, <Tapestry> (1971)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1971)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to Run> (1975)
2004년 등재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1959)
제임스 브라운, <Live At The Apollo> (1963)
비치 보이스, <Pet Sounds> (1966)
올맨 브라더스 밴드, <At Fillmore East> (1971)
존 윌리엄스, <Star Wars> (1977)
퍼블릭 에너미, <Fear of a Black Planet> (1990)
너바나, <Nevermind> (1991)
2005년 등재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 <Time Out> (1959)
비비 킹, <Live at the Regal> (1965)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1967)
프랭크 자파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 (1968)
웬디 카를로스 <Switched On Bach> (1968)
스티비 원더,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소닉 유스, <Daydream Nation> (1988)
2006년 등재
피트 시거, <We Shall Overcome> (1963)
벨벳 언더그라운드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 (1973)
사라 본, <Live in Japan> (1973)
폴 사이먼, <Graceland> (1986)
2007년 등재
조니 미첼, <For The Roses> (1972)
허비 행콕, <Head Hunters> (1973)
마이클 잭슨, <Thriller> (1982)
2008년 등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57)
더 후, <The Who Sings My Generation> (1966)
2009년 등재
뮤지컬 <집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59)
빌 에반스 트리오,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년 6월 25일)
더 밴드, <The Band> (1969)
패티 스미스, <Horses> (1975)
윌리 넬슨, <Red Headed Stranger> (1975)
}}}}}}}}} ||
2010년대 등재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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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10년 등재
헨리 맨시니, <The Music from Peter Gunn> (1959)
캡틴 비프하트 앤 히스 매직 밴드, <Trout Mask Replica> (1969)
로저 페인, <Songs of the Humpback Whale> (1970)
스틸리 댄, <Aja> (1977)
데 라 소울, <3 Feet High and Rising> (1989)
2011년 등재
빈스 과랄디 트리오, 애니메이션 <A Charlie Brown Christmas> 사운드트랙 (1965)
러브, <Forever Changes> (1969)
프린스, <Purple Rain> (1984)
2012년 등재
사이먼 앤 가펑클, <Sounds of Silence> (1966)
오넷 콜먼, <The Shape of Jazz to Come> (1959)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라몬즈, <Ramones> (1976)
비 지스 외, <Saturday Night Fever Soundtrack> (1977)
2013년 등재
아트 블래키, <A Night at Birdland> (1954)
린다 론스태드, <Heart Like a Wheel> (1974)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79)
U2, <The Joshua Tree> (1987)
2014년 등재
조안 바에즈, <Joan Baez> (1960)
도어즈, <The Doors> (1967)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Stand!> (1969)
라디오헤드, <OK Computer> (1997)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98)
2015년 등재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1964)
산타나, '''' (1970)
조지 칼린, <Class Clown> (1972)
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2016년 등재
소니 롤린스, <Saxophone Colossus> (1956)
마티 로빈스, <Gunfighter Ballads and Trail Songs> (1959)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1964)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1972)
이글스,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1976)
토킹 헤즈, <Remain in Light> (1980)
N.W.A, <Straight Outta Compton> (1988)
2017년 등재
해리 벨라폰테, <Calypso> (1956)
웨스 몽고메리,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 (1960)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트랙 (1965)
스티브 라이히, 리처드 맥스필드, 폴린 올리베로스, <New Sounds in Electronic Music> (1967)
플리트우드 맥, <Rumours> (1977)
Run-D.M.C., <Raising Hell> (1986)
2018년 등재
덱스터 고든, '''' (1962)
뮤지컬 <헤어>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 (1968)
커티스 메이필드, <Super Fly> (1972)
신디 로퍼, <She's So Unusual> (1983)
<Schoolhouse Rock!: The Box Set> (1996)
JAY-Z, <The Blueprint> (2001)
2019년 등재
더스티 스프링필드, <Dusty in Memphis> (1969)
칩 트릭, <Cheap Trick at Budokan> (1978)
티나 터너, <Private Dancer> (1984)
셀레나, <Ven Conmigo> (1962)
닥터 드레, <The Chronic> (1992)
}}}}}}}}} ||
2020년대 등재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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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등재
앨버트 킹, <Born Under a Bad Sign> (1967)
지미 클리프, <The Harder They Come> (1972)
팻 메시니, <Bright Size Life> (1976)
자넷 잭슨, <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 (1989)
Nas, <Illmatic> (1994)
2022년 등재
듀크 엘링턴, <Ellington at Newport> (1956)
보니 레잇, <Nick of Time> (1989)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The Low End Theory> (1991)
Wu-Tang Clan,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1993)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7)
앨리샤 키스, <Songs In A Minor> (2001)
2023년 등재
Crosby, Stills, Nash & Young, <Déjà Vu> (1970)
더 폴리스, <Synchronicity> (1983)
마돈나, <Like a Virgin> (1984)
퀸 라티파, <All Hail the Queen> (1989)
}}}}}}}}} ||
}}}}}}}}} ||

<colbgcolor=#000><colcolor=#fff> 글렌 굴드
Glenn Gould
파일:04gould3-jumbo.jpg
본명 글렌 허버트 굴드
Glenn Herbert Gould
출생 1932년 9월 25일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토론토
사망 1982년 10월 4일 (향년 50세)
캐나다 온타리오토론토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직업 피아니스트
서명
파일:gould_signature.jp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재단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묘소 마운트 플레즌트 묘지
학력 토론토 왕립 음악원 (졸업)
장르 서양 고전 음악
활동 기간 1945년1982년
혈통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노르웨이계 캐나다인
부모 아버지 러셀 허버트 굴드
어머니 플로렌스 엠마 굴드
배우자 없음
종교 개신교(장로회) → 무종교[1]
악기 피아노, 오르간
레이블 CBS 레코드 }}}}}}}}}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데뷔2.3. 말년2.4. 사망
3. 음악적 면모
3.1. 바로크3.2. 고전파 및 낭만파3.3. 20세기 음악
4. 어록5. 굴드에 대한 말들6. 여담7. 관련 서적

[clearfix]

1. 개요

<nopad> 파일:landgettyimages-498380123.jpg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다.[2] 바흐에 능통한 거장이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 10명을 선정하는 기사에서 항상 들어가는 피아니스트이다.#

매우 특이한 연주스타일과 성격으로 평생 괴짜라는 칭호를 달고살았던 연주자이다. 파티장에서도 장갑을 끼는 등 결벽증이 매우 심했다. 실제로 결벽증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질환을 갖고있던 피아니스트였고, 신경과에서 처방받았던 약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수트케이스에 늘 담고 다닌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토론토의 사우스우드가 32번지에 자리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굴드는 어린시절부터 천부적인 피아니스트였다. 갓 태어난 굴드가 바로 손가락을 움직이는것을 보고, 의사가 '이 아이는 커서 피아니스트 아니면 의사가 되겠군'이라고 했다고 한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후손이기도 하다.[3]

칠레 출신 피아니스트인 알베르토 게레로[4][5] 밑에서 배웠다. 글렌은 어린시절부터 은둔형 폐인끼가 충만했다. 그의 어린시절 친구인 로버트 풀포드는 '글렌은 어린시절부터 늘 혼자있기를 좋아했어요'라고 할 정도였다.

2.2. 데뷔

1955년도에 미국 음반회사인 CBS(콜롬비아)[6]에서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계기로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거장반열에 올랐다. 당시 녹음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6월의 뉴욕에 나타난 굴드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면서 식수로 사용할 두 개의 물병을 지니고 5개의 약병과, 그 유명한 의자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 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 물에 담그고 자신이 가져온 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CBS의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허밍을 녹음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7]

이 음반은 1955년에 녹음하여 1956년 출시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오늘날까지 잘 팔리고 있다. 이는 엄청난 성공이었으며, 글렌의 주위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으나 조용하고 고독함을 즐기는 그에게는 힘든 점도 있었다. 그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듯이 갑자기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왔고, 글렌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젊은 피아니스트가 한 순간에 세계적 거장 반열에 드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늘 고독함 속에서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기던 굴드에게 주위의 관심을 받고 세계의 무대를 왔다갔다 하는 것은 힘든 시련이였다. 그 시기에 굴드는 다양한 정신적-신체적 고통과 병에 시달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30대에 공연 은퇴를 선언했고, 무대활동보다는 녹음활동에 더 열중했다.[8] 사실상 30대 이후로 굴드는 20세기판 히키코모리나 다름없었다, 그의 음악은 원래부터 개성적이였지만, 30대 이후의 녹음을 들어보면 음악 초보자도 굴드 연주라는걸 알 수 있을정도로 완벽한 굴드표 녹음이라는걸 알 수 있다.

2.3. 말년

쉰에 요절한 말년의 굴드는 정신상태 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상태도 엉망이었다. 당시 10년만에 굴드를 방문한 굴드의 친구와 그의 아내는 굴드를 보고 깜짝 놀랬다고 한다. 얼굴은 퉁퉁 붓고 피부는 죽은사람 같아서 젊었을 적의 미모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눈에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9]

이미 그 당시 그는 음악작업보다는 방송작업과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말그대로 피아노는 취미로 치는 수준이었다. 사실 굴드는 젊었을 적부터 자신이 피아노만 잘치는 사람보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모든 분야에 만능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었다. 당시 CBS스튜디오에서 가끔식 연주녹음 작업을 했는데, 죽기 몇 해전부터 굴드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며 자신이 사교성이 없어서 친한 이가 거의 없기에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올 것이라며 말했다. 이렇게 매우 비관적으로 삶과 동시에 다시 한번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20년의 세월동안 과다한 약물복용으로 인해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고, 그의 말년 연주 동영상을 보면 손가락이 가끔식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게 약물 부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굴드의 일기에는 말년에 손가락의 이상을 호소하는 글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굴드는 재녹음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다시 한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81년에 녹음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사실 1982년, 굴드 사후에 발매되었다. 비평가 팀 페이지에 의하면 첫번째 골드베르크 녹음중에서 몇몇 부분이 굴드 맘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재녹음의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2.4. 사망

1982년 9월 27일 굴드는 발작을 호소했다. 그의 비서가 의사를 불렀으나, 굴드의 비상 전화에 질린 의사는 그냥 응급실에나 가라고 했고, 병원을 매우 싫어하는[10] 굴드는 계속 버티다가 뒤늦게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어찌할 방법은 없었고 증상은 갈수록 악화되어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이르자 아버지의 동의 하에 호흡기를 떼고 장례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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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가 나고 자라고 생활하고 죽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골드베르크의 아리아의 처음 몇 마디가 각인되어 있다.

3. 음악적 면모

당대 최고의 명성을 지닌 바흐 음악 스페셜리스트 답게 성부를 나눠 경중에 차등을 준 채로 선적인 흐름을 만드는 식의 바흐 음악에 필수불가결한, 가히 귀신을 방불케하는 수준의 비상한 테크닉을 지녔다.[11] 레전드 피아니스트들 대부분이 그렇다고는 해도 극한의 셈여림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 믿을 수 없는 속주는 역사적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굴드만의 독특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12]

낭만음악을 싫어해서[13][14] 낭만음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19세기 전반부에 쓰여진 독주 기악곡들은 다소의 베토벤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보잘것없는 실패작들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일반화는 쇼팽, 리스트, 슈만... 등에도 해당된다. 당신도 알다시피 초기 낭만파 작곡가들 중 어느 누구도 피아노곡 쓰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아 참, 그들은 페달 사용이나 극적 효과를 내는 것, 사방팔방으로 음들을 흩뿌려 놓는 것은 알았지만 진정한 곡다운 곡은 쓰여진 것이 별로 없다.

그 시기에 쓰여진 음악은 공허한 극적 제스처와 전시효과로 가득 차 있고, 세속적이며 쾌락주의적인 성향이 나로 하여금 흥미를 잃게 했다. 위대한 음악을 접할 때 내가 바라는 모든 기준이 되는 화성과 리듬의 다양성, 대위법적 창안은 이런 곡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15]

한 마디로 굴드는 바흐와 하이든, 그리고 베토벤의 걸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명료한 형식미와 탄탄한 구성, 대위법으로 대표되는 다성음악의 미학을 선호한 반면, 쇼팽과 리스트로 대표되는 낭만파 피아니즘에 대해서는 극불호에 가까웠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레퍼토리에서는 후기 고전주의, 초/중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후기 낭만주의의 황혼과 현대음악의 태동을 각각 상징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의 피아노곡들을 레퍼토리에 포함시켰다. 굴드는 이 두 작곡가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오페라인 카프리치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16]

그리고 쇤베르크와 그 일파의 음악에 대해서는 계속적으로 옹호를 하며 녹음 결과물을 남겼으며, 쇤베르크의 라이벌이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혹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신고전주의 계열에 무조건 적대적인 성향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파울 힌데미트에 대해서는 또 이례적인 호감을 표하며 그의 묻혀버린 기악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데에 힘썼다. 그 외에 그나마 낭만파 작곡가 중에서는 안톤 브루크너를 높게 평가했는데, 보잘 것 없는 낭만파 음악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하는 것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굴드가 좋아했던 작곡가들은 대부분 피아노 작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몇 안 되는 고전, 낭만주의 음반의 해석은 논란이 뜨겁다. 그가 연주한 고전 시대 작곡가 작품의 속도는 대부분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거나 전혀 말도 안 되는 듯한 해석을 집어넣기 일쑤여서 그 작곡가의 음악에 정통한 전문가들에게 욕을 밥 먹듯이 먹는 건 양반이고, 그를 매장시키려는 음악가 집단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굴드의 모차르트 소나타는 어처구니없이 빠른데다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음악에서 중요시하는 음색과 이음줄(슬러)의 표현 대신 냉정하기 짝이 없는 퍼석퍼석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은 또 그 반대로 1, 2악장이 엄청나게 느려서, 1악장의 경우는 트레몰로를 16분음표처럼 연주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반면 피아노 소나타 16번 Op.31-1의 1악장 연주는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아르페지오를 선보여 지금도 많은 청자들이 기겁한다.

따라서 그의 연주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음악은 역시 바흐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바흐 음반에 대해 말하자면, 그 시대의 현재나 과거,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해석과도 일치하지 않는 독창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해석과, 미켈란젤리 같은 대가들과 비견되는, 굴드만이 낼 수 있는 특이한 피아노 음색으로 많은 평론가들이나 매니아, 전문가들에게 바흐의 음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극찬받는다.

헤럴드 쇤베르크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상당히 많이 참고했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음반은 대부분 바흐의 곡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17], 프랑스 조곡, 영국 조곡, 파르티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토카타와 푸가, 이 외에도 리스트 편곡에 의한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 6번(전원) 등이 꼽힌다.[18]

대부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대표곡으로 뽑지만, 그의 다른 음반들을 듣다보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음악으로의 진입을 위한 창문일 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푸가들, 토카타, 하프시코드 협주곡 1번,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 32번 등 조금씩 그가 녹음한 다른 연주들로 영역을 넓히다 보면,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연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모차르트의 경우 대체적인 평은 좋지 않지만 소나타 10번의 경우 실황 연주는 매우 아름답다. 굴드는 녹음된 음반보다는 실황 연주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구하기 어렵다. 게다가 굴드는 연주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어서 레코딩 도중에도 그 콧노래가 희미하게 녹음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굴드의 습관이기도 했는데, 녹음반에 까지 그 소리가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체로는 이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나 굴드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곡의 감상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허밍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허밍에서 느껴지는 음악에 대한 자유로운 갈망과 영혼은 그의 음반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낭만파 작곡가의 몇 안되는 레코딩 곡은 말그대로 클래식하게 연주해서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대표적으로 쇼팽 소나타 3번[19], 스크랴빈 소나타 5번 등.[20]

3.1. 바로크

Bach, Goldberg Variations (rec. 1955)[21]Bach, Art of the Fugue, #1, 2, 4 (rec. 1957)
Gibbons, Fantasy in C major & Allemande (Italian Ground) (rec. 1968)Bach, Partita No.4 (rec.1979)
Byrd, Sellinger's Round (rec. 1971)Bach, Goldberg Variations (rec. 1981)

3.2. 고전파 및 낭만파

Mozart, Piano Sonata K.330 Mvt.2 (rec. 1958)Haydn, Piano Sonata, Hob. XVI:52 Mvt.3 (rec. 1981)
Beethoven, Op.14 No.1 Mvt.2 (rec. 1966)Mendelssohn, Op.30 No.3 (rec.1970)
Wagner,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Act I: Prelude (rec. 1973)Brahms, Op.118 No.6 (rec. 1960)

3.3. 20세기 음악

Webern, Variations (rec. 1974)Berg, Piano Sonata, Op.1 (rec. 1958)
Schoenberg, Op.23 (rec. 1965)Hindemith, Piano Sonata No.3 (rec. 1966-1967)

4. 어록

나의 삶은 곧 내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듭니다.
생활 방식 그리고 일, 이 두 가지가 서로 완전히 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기벽이라고 부른다면 그렇습니다. 나는 기인입니다.

청중을 위한 음악은 그들을 명상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녹음이 좋아요. 연주 중에 정말로 멋진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남길 수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 나처럼 구름 낀 하늘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왔다.
태양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만약 내가 여생을 무인도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어떤 작곡가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해야 한다면, 그 작곡가는 거의 틀림없이 바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다른 어떤 음악도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나를 매우 깊고 일관성 있게 감동시키고, 다소 부정확한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의 모든 기술과 탁월함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 즉 그것은 인간애적이다.”#

5. 굴드에 대한 말들

몇 년 동안 음악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일.
레너드 번스타인#

이렇게 아낌없이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압도적으로 드러낸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없다.
아마도 충분한 시간이 충분한 사랑을 위해 노력한 어느 날 우리는 글렌의 천재성에 대한 진정한 감상에 도달할 것이다.
예후디 메뉴인#

글렌 굴드, '바흐의 가장 위대한 통역사'. 글렌 굴드는 바흐에 대한 자신만의 접근방식을 찾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그의 명성을 받을 만하다. 내가 보기에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바흐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색인 음성 수준에 있는 것 같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그는 하나의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그는 우리 미래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바흐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며, 그의 녹음은 그의 영구적 유산을 구성한다. 때때로, 파르티타(Partitas)에서처럼, 그는 전문가, 음악 애호가 그리고 비평가들에게 음악을 재고하도록 강요했고, 모든 선입견들을 배반했다. 그는 훌륭한 손가락과 음악의 선형적인 요소를 명확히 하는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물론 많은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특정한 종류의 확실한 음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전문가인 피에로 라탈리노(Piero Ratalino)가 호로위츠, 리히터, 미켈란젤리같은 위대한 색채 연주자들이 불러 일으키는 소리와 비교되는 음소리다. 무엇보다도, 굴드의 바흐 해석은 음악을 다르게 들리게 했다 – 템포, 구절, 역동성, 개념에 있어서. 이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요소들이 갑자기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 공연에는 별나거나 매너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음악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다른 전제와 원칙에 따라 작업한 것은 독창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전통적인 바흐 연주, 낭만적인 바흐 연주, 신고전주의 바흐 연주, 현대적 바흐 연주, 음악학적 바흐 연주라고 표현할 수 없다. 어떤 것이든 바흐 연주 역사상 독특한 생명과 정신을 불어넣었다.
― 해럴드 C. 숀베르크[22], The Great Pianists (1987)#

그는 매우 총명했다. 그의 재능은 천재적인 재능이었다. 바흐에 대한 그의 레코딩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의 뛰어난 정신력과 절대적인 식감의 명료성은 독특하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23]#

나의 위대한 영웅 중 한 명.
요요마#

천재.
― 조지 셀[24](George Szell)]#

굴드는 작곡가처럼 연주합니다. 그의 바흐를 들을 때, 저는 마치 바흐가 자신의 곡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에런 코플런드#

굴드는 음악가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작곡가이다.
굴드는 바흐의 작곡에서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실행자의 역할은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자극하고 따라서 가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 머리 퍼라이아[25]#

굴드를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는 매우 독특했고, 그의 연주 방식도 그의 개성에만 어울렸다.
― 안젤라 휴이트[26]#

생동감 넘치는 타건과 파격적인 해석으로 고전에 새 생명을 부여한 피아니스트
Apple Music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캐나다 클래식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여전히 가장 매혹적이고 기념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AllMusic#

굴드를 고독한 오페라의 유령과 비교하는 것을 잘못됐습니다.
그의 내면세계는 풍요로우니까요. 단지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조지프 로디 (Joseph Roddy)

굴드가 전화기, 전보, 텔레비전 등을 좋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사람들과의 대면을 피하기 때문이죠.
캐나다공영방송사 엔지니어

굴드는 정말 특별해요. 그는 삶의 모든것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는 셈하고, 필기하고, 결산표나 도표를 작성합니다.
그 노트들은 연도별로 나뉘어 있죠. 그것은 강박장애입니다.
― 캐나다의 한 저널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 굴드의 연주를 들으면서 흥미를 끄는 것은 베토벤 연주 같은 것에서도 대위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져가는군요. 단지 오케스트라와 조화롭게 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음악을 엮어 긴장감을 만들어 가는겁니다. 그런 베토벤씨는 신선했어요.

오자와 세이지: 정말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가 사망한 후 그러한 자세를 계승하여 발전시킬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짜 안 나왔어요. 역시 그 사람은 천재였나?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 같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어요. 첫째, 그렇게까지 용기 있는 사람이 없죠. 내가 보기엔.#

그렇다면 글렌 굴드가 대중의 마음속에 확고히 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점점 더 인기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악스는 오늘날의 글렌 굴드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그들의 특성 때문에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두 명이라고 믿고 있다. 당신이 굴드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이후 모든 피아니스트는 굴드의 영향을 받아왔다고 액스는 말한다. 그의 의사소통 능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굴드의 연주에는 황홀감도 있었다.

(중략)

글렌 굴드 리더(Glenn Gould Reader)의 작가인 팀 페이지는 굴드의 명성의 장수 비결은 그의 독창성에 있다는데 동의한다. "골드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중단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라고 그는 유명한 조지 셀 킵을 언급하며 말한다. 악에서 굴드의 사랑, 황홀감, 강렬함은 전염성이 있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처럼 굴드는 보기에 좋았다. 둘 다 음악에 솔직하고 진실되게 반응했고, 공연의 열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흥분이 있었다. 어느 콘서트도 같지 않았다. 즉시성과 즉흥성이 있어 청중을 긴장시킬 수 있는 열광케 하는 품질을 만들어냈다.

(중략)

그의 생애 동안 굴드는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명성은 영국과 유럽 일부에서 더 최근에 나타났다. 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굴드는 처음에는 화려하고 피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라모폰의 롭 코원(Rob Cowan)에 따르면 그는 새롭고 젊고 신선하고 반항적이었다. 일종의 음악적 제임스 딘이었다. 굴드는 그가 죽은 후에야 재발매의 현상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그의 삶 동안 굴드는 오랜 음악적 전통과 가치관을 깨고 신뢰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재발매를 통해 헌신적이고 매혹적인 예술가가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그가 우리를 깨웠고 귀를 열어 주었다"고 말한다. 굴드라는 거의 광적인 요소와 결합된 기교, 명료성, 리듬감 있는 추진력은 계속해서 새로운 청취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글렌 굴드는 피아니스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를 한 분야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그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그는 뛰어난 지성이었다. 글렌 굴드는 우리에게 종종 도전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강요한다.
― 그라모폰#

6. 여담

1955년 6월 미국 뉴욕의 오래된 교회에 23세의 청년 피아니스트가 찾아왔다. 한여름이었지만 외투에 베레모까지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그의 장비에는 악보 뭉치 외에도 수건 묶음, 큰 생수 두 병, 서로 다른 색깔과 용도를 지닌 작은 알약 다섯 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음반 녹음을 앞두고 언제나 몸을 움직이는가 하면, 흥분에 들떠서 지휘를 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발레를 하기도 했다. 비스킷을 우걱우걱 씹어먹기도 했다.
1955년 첫번째 레코딩 때의 일화.
*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으면 전업적가(Writer)가 되었을 거라고 했고,[27] 실제로 피아니스트 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대해 많은 저술을 했다. 피아노 실력 못지 않게 필력도 대단했는데, 방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여러 시니컬하기 그지없는날카로운 비평을 남겼다. 다만 문체와 어휘 둘 다 난이도가 높아서 초심자가 가볍게 읽기는 힘들 수 있다.[28]

7. 관련 서적



[1] 내세와 영적 존재를 믿었다. / "Gould on God", ishmaelite.blogspot.com, 2008.1.23.[2] 미국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엄연히 캐나다인이다.[3] 그리그가 굴드의 외할아버지의 삼촌이었다.[4] 굴드의 스승으로서, 피아노 교수법에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피아노에 관해서 둘은 항상 생각이 달랐으며, 실제로 굴드가 성공한 후에 인터뷰 등에서 게레로에 대해 한번도 언급해 주지 않자 게레로는 무척 상처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굴드와 게레로는 할아버지와 손자같이 친했다)[5] 후에 굴드가 말하길, 본인의 스승인 알베르토 게레로는 아주 매력적이고 훌륭한 스승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이유는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굴드와의 대립을 항상 허용해 주었다는 이유. 다른 말로 하면 도제식 교육으로 스승의 말에 절대 복종하며 배우는 것이 아닌, 어렸지만 똘끼 많은 굴드의 음악적 견해를 항상 존중해주고 귀담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6] 현 소니 클래식의 전신.[7]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간구간 굴드의 흥얼거림이 녹음되어 있다.[8] 표면적으로 드러낸 그의 조기 은퇴 이유는 전자 기술의 중요성이라고 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공학은 예술가가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고도 곡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최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로움을 줄 수 있다. 공학은 음악회가 줄 수 있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우며 인간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치명적 불확실성을 제거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라고 장황히 설명했다고 한다.[9] 그래도 굴드는 친구 부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한다.[10] 결벽증이 심했던 굴드는 병원을 병균 창고로 생각했기 때문에 병원 가기를 평생 싫어했다. 실제로 그는 일생에 걸쳐 유일하게 마음 놓고 대할 수 있었던 존재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까지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전화로만 어머니와 대화했다.[11] 왼손-반주/오른손-선율의 구조를 띄는 피아노곡보다 양손이 고르게 역할을 분담하는 바흐의 곡에 더 유리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다.[12] 그의 바흐 이탈리안 콘체르토 3악장이 이런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다. 저런 속도로 연주하면 중반부에 특히 난무하는 이음줄에 의해 손이 꼬이기 십상인데, 너무나도 깔끔하게 지나가며 셈여림 컨트롤까지 완벽하게 처리한다.[13] 그는 '나에게는 1세기의 긴 공백이 있는데 그 경계의 한쪽 끝은 대략 푸가의 기법(바흐의 곡)이고, 다른 한끝은 트리스탄이다(바그너의 악극). 그 사이에 쓰인 모든 음악들은 사랑한다기 보다는 기껏해야 때때로 칭찬이나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뿐이다.'라고 설명했다.[14] 다만 브람스 1번 협주곡은 종종 연주했다. 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까기도 했으며 어떤 작품은 극찬한 반면 어떤 작품은 후려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낮게 평가했다. 그는 4번을 포함한 몇몇 피아노 협주곡과 말기 3개 소나타를 상당히 많이 연주했고, 대푸가(Grosse Fuge)같은 경우는 "베토벤이 쓴 가장 위대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음악 역사상 가장 경탄할 만한 작품"이라고 호평할 정도였는데 비해 나머지 교향곡, 소나타, 상당수의 협주곡들은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 "황당함을 금치 못할 정도"라고까지 혹평했다.[15] 이런 견해를 반영하듯 그의 여러 낭만파음악 녹음은 아예 고의적으로 희화한 것이[31] 아니냐는 의심이 자자할 정도다. 19세기 초반 바로 직전의 활동하던 모차르트도 굴드의 까임 대상이었는데 (특히 후기 모차르트), 대표적인 예시가 그의 모차르트 소나타 8번이다.[16]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인도에 갇혀서 평생 한 곡만 듣고 살아야 한다면 선택할만한 곡이 있냐는 질문에 R.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카프리치오라고 답했다.[17] 유튜브에서는 1964,59,54년도 연주도 볼 수 있다. 55년도와 81년도 앨범도 존재.[18] 유튜브에 글렌굴든의 이름으로 리스트 편곡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 업로드되어 있는데 굴드의 연주가 아니므로 주의하도록 하자.[19] 바그너나 베토벤이 생각나게 플레이한다. 직접 들어보는 것을 추천.[20] 말이 좋아서 색다름이지 엄청난 혹평을 가한 사람들도 많다. 즉 엄청나게 호불호가 갈린다는 소리.[21] 원본은 아니고 실제 굴드의 녹음을 바탕으로 컴퓨터로 연주한 것이다. 그래서 허밍도 들리지 않는다.[22]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평론가다.[23] 다만 아슈케나지는 바흐 이외의 굴드의 레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24]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25] 미국의 거장 피아니스트.[26] 캐나다의 거장 피아니스트. 바흐 스페셜리스트 중 한 명으로 알려져있다.[27] 출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1955년) CD 커버에 수록되어있는 본인의 서술.[28] 굴드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의 사람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깔끔하고 간결한 영어 문체에 비하면 심각할 정도로(...) 고전적인데, 이건 뭐 개인의 스타일이니...[29] 대표적으로 1986년 다케미쓰 도루가 이 상을 받았다.[30] 이 문서의 글렌 굴드의 어록이나 평가들은 해당 책을 많이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