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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09:21:39

톰 웨이츠

톰 웨이츠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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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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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톰 웨이츠
TOM WAIT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2011년
후보자격 연도 1999년
후보선정 연도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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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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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의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앨범/노래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사이트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밥 딜런롤링 스톤스데이비드 보위브루스 스프링스틴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라디오헤드레드 제플린닐 영프린스비치 보이스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R.E.M.엘비스 프레슬리칸예 웨스트더 후U2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마일스 데이비스벨벳 언더그라운드너바나더 클래시지미 헨드릭스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마빈 게이핑크 플로이드엘비스 코스텔로스티비 원더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마돈나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더 스미스마이클 잭슨밴 모리슨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토킹 헤즈켄드릭 라마아케이드 파이어아레사 프랭클린비요크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JAY-Z제임스 브라운톰 웨이츠존 콜트레인PJ 하비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킹크스퍼블릭 에너미버즈비스티 보이즈조니 미첼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벡 한센더 큐어존 레논도어즈LCD 사운드시스템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블러크라프트베르크레너드 코헨픽시즈루 리드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조니 캐쉬소닉 유스록시 뮤직오아시스플리트우드 맥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듀크 엘링턴더 밴드아웃캐스트다프트 펑크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사이먼 앤 가펑클프랭크 시나트라척 베리프랭크 오션비욘세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조이 디비전AC/DC윌코오티스 레딩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뉴 오더메탈리카화이트 스트라입스라몬즈더 폴리스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스투지스브라이언 이노엘튼 존뱀파이어 위켄드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섹스 피스톨즈매시브 어택레이 찰스스틸리 댄블랙 사바스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케이트 부시악틱 몽키즈찰스 밍거스패티 스미스포티스헤드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건즈 앤 로지스페이브먼트수프얀 스티븐스알 그린펑카델릭
101위 ~ 4112위: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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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980년대 아티스트
1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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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톰 웨이츠
Tom Waits
파일:external/img.rsrs.co.kr/16490.jpg
본명 Thomas Alan Waits
토머스 앨런 웨이츠
출생 1949년 12월 7일 ([age(1949-12-07)]세)
미국 캘리포니아 포모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장르 블루스, 익스페리멘탈 록, 재즈
직업 싱어송라이터, 배우
배우자 캐슬리 브래넌 (1980년 결혼)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디스코그래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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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톰 웨이츠의 음악을 모른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잃고 사는 것이다."
- 영화 감독 짐 자머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이다. 캘리포니아 주 포모나 출신. 1973년 앨범 Closing Time으로 데뷔하였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유행한 블루스재즈를 기초로 한 악곡과 특유의 쉰 가성, 특기인 피아노에 의한 음유시인 이미지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 이후로는 독창성을 더욱 가미해 ‘루트 음악’에 기인하면서도 전위적인 사운드 때문에 화제몰이를 했다.

배우로서도 활동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짐 자머시 등이 감독을 맡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1999년에는 펑크 락으로 유명한 레이블 Epitaph과 계약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뮤지션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글스, 로드 스튜어트, 브루스 스프링스틴, 라몬즈 등이 그의 음악을 리메이크하였다. 특히 롤링 스톤즈키스 리처즈와 교류가 깊어서 롤링 스톤즈의 앨범 Dirty Work의 코러스로도 참여 함은 물론이고 리처즈 또한 웨이츠의 앨범 Rain Dogs에서 많은 곡의 기타 연주를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어어부밴드가 웨이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살짝은 그로테스크한 음악 때문에 국내에선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지만, 닐 영, 폴 매카트니같은 거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6년 미국 음악 잡지 페이스트 선정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100인 중 4위[1]로 꼽히기도 했다.

2. 생애

1949년 12월 7일,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태어났다. 무난한 유년기를 보내다가 1959년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두 누이와 어머니와 함께 샌디에이고로 이주.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이웃집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깁슨 기타로 기타 연주도 연습했다. 그리고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나폴레옹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밥 딜런의 노래를 밥먹듯이 듣고 히피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잭 케루악과 비트 세대 작가들의 작품에 심취하였는데, 이는 이후 그의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역마의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열여덟살 때부터 맘 맞는 친구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애리조나 주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고는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1971년, 근처에 있는 트루버도어라는 유명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프랭크 자파의 매니저였던 허브 코언의 눈에 띄어 데뷔를 한다.[2]

그리고 엘비스의 [Mystery Train],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비틀즈의 [Rubber Soul], 롤링 스톤즈의 [Satisfaction]이 나오기까지 불과 10년밖에 안 걸렸다고 평가받는 록 음악의 최부흥기였던 70년대 중반기 때 톰 웨이츠 또한 [Small Change]와 [Foreign Affairs]를 릴리즈하며 인지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하지만 허브 코언과의 불평등한 계약[3] 때문에 웨이츠에게 오는 수익이 몇 푼 없었기에 계속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그는 1976년 여름, LA 실버레이크에서 트루버도어 근처에 있는 트로피카나 모텔로 거처를 옮긴다.

트로피카나 모텔로 거처를 옮긴 웨이츠는 시카고의 무명가수였던 리키 리 존스와 만나 많고 탈도 많았던 3년간의 연애를 하지만, 1979년, 존스가 [Rickie Lee Jones]로 그래미 신인상을 받는 등 메이저 가수로서 입지를 한껏 굳힌 반면에 웨이츠는 좋지 않은 투어의 성적과 출연할 수 있던 영화가 무산되는 등 인생 최악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둘은 이별하게 된다. 서른 두 살의 웨이츠는 이별 후 1980년, 허브 코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한다.

80년대가 시작되고 나서, 웨이츠의 음악에는 전위적인 색채가 점점 강해졌고, 이는 커리어 중 최고의 앨범이라고 불리는 SwordfishtrombonesRain Dogs로 나타났다. 이 두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고, 1986년에는 <Franks Wild Years>라는 작품으로 연극계에도 데뷔하는 등, 웨이츠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다. 이에 상업적인 성공도 뒤따라오면서 그의 인생에는 드디어 광명이 찾아왔다. 90년대에는 92년작 Bone Machine이 그래미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음악상을 수상[4], 영화 <다운 바이 로>, <커피와 담배>, <숏 컷>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써의 커리어도 탄탄히 쌓는다. 2001년에는 ASCAP 팝뮤직상에서 공로상을 수상, 2011년에는 역사적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엄청난 다작을 하던 사람이 2006년작 이후로부터는 뜸해지더니, 2011년작 [Bad As Me]로 또 한번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다.

3. 디스코그래피

4. 여담


백문이 불여일견.


[1] 참고로 1위는 밥 딜런, 2위는 닐 영, 3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선정됐다. 놀라운 것은 5위가 폴 매카트니, 그리고 5위 아래에는 키스 리처드, 믹 재거, 브라이언 윌슨, 루 리드, 지미 페이지, 데이비드 보위, 스티비 원더,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조니 미첼 등 2006년 당시에 생존해 있던 이 레전드들을 가벼이 제칠 정도의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증명한다.[2] 이 이후로 트루버도어 클럽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레너드 코헨, 빌리 조엘, 밴 모리슨, 건스 앤 로지스, , 라디오헤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콜드플레이, 데미안 라이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과 밴드들이 데뷔 공연 및 신보 쇼케이스 무대로 서기 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핫플레이스이자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다.[3]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계약서에는 모든 곡의 저작권을 코언이 소유하고 있던 레코드사 비자레/스트레이트와 저작권사인 피프티 플로어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웨이츠에게는 자신의 곡과 앨범 판매 수익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가 일곱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수많은 투어를 해도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물론 웨이츠는 뒤늦게야 불평등한 계약을 깨닫고, 1980년작 앨범은 광고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코언과의 마지막 작업이었으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다. 지금까지도 초기 앨범 7장의 음원 수익들을 웨이츠는 한푼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초기작들은 아직도 리마스터가 안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CD가 전부. 그러다가 합의가 되었는지 2018년 3월 23일에 초기작 리마스터가 발매 된다.[4] 이 때 보인 반응이 아스트랄한데, "웬 얼터너티브냐"면서 팔짝 뛰었다.[5] 우연인지 그는 히스 레저가 생전 마지막으로 나왔던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악마 "미스터 닉(Mr. Nick)"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