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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04:11:43

닐 암스트롱

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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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네이선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런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M.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셸턴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러시 하이트 박사 조지프 디레인
해리 & 일라이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달라이 라마 14세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 산 수 치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윌리엄 브룩 3세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군무원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제100 보병대대
제442 보병연대 전투단
군사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전우회 9.11 테러 참사 사망자 라울 발렌베리 애디 메이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럴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 미국의 공군 에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 OSS
2017년 2018년
밥 돌 래리 도비 제2차 세계 대전
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안와르 사다트
2019년
스티브 글리슨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몬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컬럼비아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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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colbgcolor=#FFF,#000>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파일:무궁화장 약장.png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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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교육가·독립운동가
1969
이인
법조인·독립운동가
1969
닐 암스트롱 · 마이클 콜린스 · 버즈 올드린
우주비행사
1969
이종순
제헌국회의원
1969
조동식
교육인
1970
김수환
추기경
1970
백낙준
교육인
1970
이상백
-
1971
유일한
기업인
1976
박일경
교육인
1980
권승렬
독립운동가, 법조인
1982
권영대
교육인
1982
김상만
언론인
1985
이숙종
교육인
1987
이병철
기업인
1989
이방자
교육인, 영친왕비
1991
강영훈
국무총리
1991
김병관
언론인
1994
김호길
교육인
1995
곽윤직
법학자
1996
장기려
의사
1998
고흥문
국회의원
1998
주영하
교육인
2000
이건희
기업인
2002
김재준
종교인
2002
문창모
의학자
2006
김희수
의학자, 교육인
2006
이종욱
의사, WHO 사무총장
2006
정재헌
법조인
2007
권영우
교육인
2007
장훈
체육인
2008
진창현
바이올린 제작자
2009
김정수
정치인
2010
이영덕
국무총리
2010
조용기
종교인
2010
황장엽
북한정치인, 탈북자
2011
이태석
종교인, 의사
2011
김준엽
독립운동가, 교육인
2012
헬렌 펄 매킨지(매혜란)
선교사
2012
김평우
법조인
2012
정몽구
기업인
2013
남덕우
국무총리
2015
권광중
법조인
2016
이근
의사
2017
박한철
법조인, 헌법재판소장
2017
반기문
외교관, UN사무총장
2017
양승태
법조인, 대법원장
2018
김종필
국무총리
2018
노회찬
정치인
2018
박재갑
의사
2018
이석태
법조인
2018
조규광
법조인, 헌법재판소장
2018
한승헌
법조인, 감사원장
2018
정세균
국회의장
2019
윤한덕
의사
2019
이국종
의사
2020
이이화
사학자
2020
전태일
노동운동가
2020
문희상
국회의장
2021
최종태
기업인
2022
박병석
국회의장
2023
송창근
기업인
2023
김박
기업인
2023
자승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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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fffff> 닐 암스트롱
Neil Armstrong
파일:Neil_Armstrong_pose.jpg
△ 1969년 4월 아폴로 11호 준비 당시
본명 <colbgcolor=#fff,#191919>닐 올던 암스트롱
Neil Alden Armstrong
출생 1930년 8월 5일
오하이오 주 와파코네타
사망 2012년 8월 25일 (향년 82세)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직업 우주 비행사, 군인, 항공우주공학자
학력 퍼듀 대학교 (항공우주공학 / 학사, 1955)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 석사, 1970)[1]
경력 6.25 전쟁 참전 (1951~ 52)
제미니 8호 사령관 (1966)
아폴로 11호 사령관 (1969)
신시내티 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1971~79)
계급 중위 (미국 해군)
배우자 자넷 샤론(1956년 결혼 ~ 1994년 이혼)
캐럴 나이트(1994년 결혼 ~ 2012년 사별)
자녀 3명
훈장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의회 명예 황금 훈장
우주 명예 훈장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일본 문화훈장
종교 무종교(이신론)[2]
서명 파일:Neil_Armstrong_Signature.svg.png

1. 개요2. 생애
2.1.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2.2.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2.3. 우주복을 벗은 이후2.4. 사망
3. 기타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

[clearfi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GEMINI-TITAN-8_-_PRELAUNCH_ACTIVITY.jpg
1966년, 제미니 8호의 발사 준비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제미니 8호를 무사히 귀환시킨 덕분에 훗날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선장으로 발탁된다.

파일:Armstrong_Statue.png
퍼듀 대학교 닐 암스트롱 공학관과 USC 비터비 공과대학에 있는 암스트롱의 동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12px-Neil_Armstrong_at_50th_anniversary_of_John_Glenn%27s_first_spaceflight.jpg
2012년, 프렌드십 7호의 미국 최초 지구 궤도 비행 50주년 기념식 연설 장면

1. 개요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발걸음을 내딛으며.[3]

미국우주 비행사이자, 군인, 항공우주공학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첫 발을 디딘 인물 임과 동시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 첫 발을 디딘 인간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사령관이다.

2. 생애

2.1. 우주 비행사가 되기 전

파일:external/53e883591511fe9656d01b8ab78c4f767d41b578f3d7e6b512dbaee57a6c3495.jpg파일:o8ryh2p.jpg
보이스카우트 시절 고등학교 졸업사진

미국 오하이오 주 워퍼코네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는 항공우주공학자의 꿈을 꿨다. 즉, 켈리 존슨처럼 기술자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만들다보면 결국은 조종사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가용 조종 면허를 취득하였다.

그가 17살이던 194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Holloway Plan으로 미 해군에서 학비를 지원받아 MIT와 Purdue 대학에 합격하였고,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옛의 퍼듀 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한다.
파일:external/s3.amazonaws.com/2270539.jpg
군복무 시절 그의 모습
암스트롱은 장학금 조건에 따라 1949년 휴학하고 미 해군 항공대 조종장교로 임관하여 1950년에는 팬서 전투기 조종사로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함경북도 성진시 일대를 정찰하던 중 대공포에 격추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고 한다. # 참고로 당시 비상탈출에 성공해서 무사히 착지한 곳이 K-Site 코드로 K-3인 현재의 포항경주공항이다.3년간 의무복무를 한 뒤 1952년 8월 21일 예비역 중위로 예편하여 1955년 항공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9F-2_Panthers_VF-51_over_Korea_1951.jpg
한국전쟁 당시 편대비행중인 F9F 팬서. 뒤쪽 116번기 기체의 조종사가 바로 닐 암스트롱이다.

그 뒤 그는 NACA[4]와 노스 아메리칸 등 여러 항공우주산업체에서 테스트 파일럿 겸 항공공학자로서 활약했다. 당시 이야기가 좀 있는데, 척 예거가 최초의 초음속 비행을 성공시킨 뒤 그 뒤를 이어 마하 2를 돌파한 테스트 파일럿 스캇 크로스필드가 X-15 프로그램이 발족하자 평소에 상업용 기체만 대량생산하던 노스 아메리칸 항공에게 이걸 맡기는 것이 영 못미덥다고 NACA에서 노스 아메리칸에 파견근무를 하려던 차에 X-15 엔지니어에게 파견근무 지원을 거절당하자 아예 리 앳우드 사장[5]의 허락을 받아 NACA에서 노스 아메리칸으로 이직[6]해버리자 NACA의 전속 테스트 파일럿 자리가 비어서 뽑힌 것이 20대 중반의 암스트롱이었다.
파일:external/www.nasa.gov/697256main_ECN-151FRCpilots1962-cropped.jpg
X-15 1기 테스트 파일럿들의 단체 사진.
앞줄 좌측부터 밀트 톰슨(Milt Thompson), 잭 매케이(Jack McKay), 빌 데이나(Bill Dana).
뒷줄 좌측부터 암스트롱, 브루스 피터슨(Bruce Peterson), 스탠리 버처트(Stanley Butchart), 조 워커(Joe Walker).
암스트롱의 얼굴은 다른 이들보다 대여섯살은 어려 보인다.[7]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Pilot_Neil_Armstrong_and_X-15_-1_-_GPN-2000-000121.jpg
X-15의 테스트 비행을 마치고.
사실 이 시절의 커리어를 감안하면 초창기 우주 비행사들 중 테스트 파일럿 경력으로는 최고였다.[8][9] 1958년 이미 NACA/미합중국 공군/노스아메리칸/더글러스 등의 군수산업체에서 뽑은 Man in Space Soonest, 이른바 MISS 프로젝트에서 최연소로 뽑힌 바 있으며, 이전에 노스 아메리칸 사에서 X-15의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수십 km의 고도까지 초음속으로 비행하며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는 등 X 실험기 시리즈 연구 등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된 인물이었다.

또한 X-20 다이나 소어 프로그램에서 선발되기도 했으며, 이때 X-20의 탈출 절차로 RTLS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도 암스트롱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도움을 주었다.이 시절의 공로 덕에 STS-51-L 챌린저 참사에서도 진상조사를 위해 꾸려진 로저스 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임명되기도 했고, 2014년에는 캘리포니아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파입된 NASA 드라이든 비행시험센터가 암스트롱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2.2.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

1962년에 NASA의 우주 비행사가 되어[10] 1966년에는 제미니 8호의 사령관으로서 인류 최초의 지구 궤도상 우주선 도킹에 성공했으며 그 이후 갑자기 심한 스핀에 빠지며 NASA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의 인명사고 위기에 빠졌던 제미니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귀환시켰다.[11] 이후 제미니 11호의 백업 멤버가 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4px-Apollo_11_LLRV_1.jpg
아폴로 11호 훈련 도중 달 착륙선의 조종연습을 위해 개발된 VTOL 항공기 LLRV(Lunar Landing Research Vehicle) 1호를 조종하다 조종 불능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기체에서 급히 사출하여 목숨을 건졌다.
한편 암스트롱은 우주개발 역사에서 달 착륙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NASA에 소속된 '민간인' 신분으로서 지구 궤도에 올라간 기록은 암스트롱이 최초이기 때문. 당장 버즈 올드린만 해도 공군 현역이었고,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미션의 군인들은 별을 단 인물도 꽤 있다.[12] 6.25 전쟁 이후 예비역 중위가 되었지만 그나마도 곧 때려치고 민간 테스트 파일럿이 된 경우다.

그리고 1969년, 39세의 나이에 아폴로 11호의 사령관 자격으로 동료 우주비행사인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달을 향한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대망의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한국 시각), 고요의 바다로 명명된 표면에 착륙하는 대업적을 이룸으로써,닐 암스트롱인류 역사상 최초지구 이외의 천체에 첫을 디딘 인물이자,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딘 인물이라는 무려 2개의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동시에 얻게 되면서,당시 우주경쟁국이자 라이벌소련을 포함한 전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달 착륙을 다룬 다큐멘터리 Rocketmen에 의하면, 달 착륙 전에 착륙 예정지에서 떨어진 곳으로 향하고 코드 1201 에러가 반복해서 일어났는데 이때 휴스턴에서는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연료가 1분치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는데, 이때 닐 암스트롱이 실력[13]을 발휘, 착륙선을 수동으로 제어하여 무사히 안착한다. 그는 달에 첫 발을 내딛을 자격이 충분했다.

아폴로 계획 항목에 자세히 적혀져 있지만, 아폴로 11호는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컴퓨터는 커녕 1세대 iPhone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와 계산기를 갖고 우주공간을 며칠이나 돌아서 결국 달 착륙에 성공하였다. 1969년 당시에는 그 정도 기술조차 미국이란 나라가 국가 예산의 몇 %를 때려박아가며, 전국에서 최고의 영재들을 갈아서 에밀레종이라도 만들 기세로 퍼부어야만[14] 우주선 1대의 공간 안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달 착륙 장면은 지금처럼 인터넷 같은 것이 막 보급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5억 명 이상이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미 국가인 온두라스엘살바도르벌이던 전쟁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잠시 휴전을 맺고 전투를 중단할 정도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이전까지 소련에 뒤처져 있던 미국의 우주개척 분야에서 자존심을 회복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더욱 자세한 설명은 아폴로 계획 문서의 '아폴로 11호' 문단으로.

2.3. 우주복을 벗은 이후

달 착륙 이후 닐 암스트롱은 미국 신시내티대학에서 공학 교수로 재직하는 등 꾸준히 우주개발 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다. 한편 달 착륙에 성공한 뒤인 1969년 11월에 당시 비행을 같이한 두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대한민국에 방문하였으며, 이어 1971년에는 미국 평화봉사단 자문위원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 것에 큰 압박감을 느끼고 대학 교수로서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RIAN_archive_837790_Valentina_Tereshkova_and_Neil_Armstrong.jpg
1970년 소련의 즈뵤즈드니 고로도크에 있는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방문.
암스트롱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여성은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이다. 뒷배경 사진 속 인물이 바로 고인이 된 유리 가가린.

암스트롱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 폭발 참사에 대한 조사위원회에도 참가했다. 다만 이때는 NASA가 내세운 얼굴마담 역할이 좀 있었다.[15]

암스트롱은 2011년 ~ 2012년 사이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위기 등의 이유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우주개발 관련 예산을 축소했던 것과 관련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비판하는 등 미국 정부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2.4. 사망

2012년 8월 25일에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외신에 따르면 닐 암스트롱은 관상동맥 협착 증세가 발견돼 수술했지만, 노환으로 인해 몸이 버티지 못하여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아폴로 3인방 중 가장 먼저 별들 사이로 여행을 떠났다.
영결식 영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4px-Neil_Armstrong_burial_at_sea_%28201209140008HQ%29.jpg
장례식은 9월 13일 워싱턴 국립 대성당(성공회 성당)[16]에서 치러졌다.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 봉분을 만들어 매장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하여 미국 해군에 의해서 대서양 바다에 유골이 뿌려졌다. 산골은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필리핀 시'함이 담당하였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수십차례 소티를 기록했던 참전용사이기도 했기에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역시 유족에게 성조기를 보내며 조의를 표했다. 2010년 한국 전쟁 발발 60주기에 맞춰 한국에 초청할 계획도 있었지만 건강 문제로 무산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다녀온 사람 중 한명이라서 그의 영결식에서도 Fly Me to the Moon이 조곡으로 나왔다.

3. 기타

인터뷰어 : "달 착륙은 가짜입니까?

닐 암스트롱 :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하죠. 그것들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음모론은 나에게 결코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언젠가 누군가가 그곳(달)으로 다시 날아가, 내가 두고 온 카메라를 집어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
"Was the moon landing faked?"

"People love conspiracy theories," he replied. "I mean, they are very attractive. But it was never a concern to me because I know one day, somebody is going to go fly back up there and pick up that camera I left."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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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AOL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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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SC 졸업논문 주제가 무려 달 착륙 테크닉[2] "... Although Neil was a deist and not a doctrinally religious man," / James R. Hansen, "First Man: The Life of Neil A. Armstrong" (2018), 382쪽, #[3] 한때 이 말에서 'a'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음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약하게나마 'a'가 발음된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한 단어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영어 문법상으로는 인간인가, 한 남자인가 하는 중요한 의미상 차이점이 발생하므로 명확히 밝혀낼 필요가 있다. a가 없이 그냥 man이었다면 뒤의 mankind와 사실상 같은 의미가 되기 때문. 암스트롱은 처음에 a를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녹음된 것을 듣고 본인도 '안 말한 건가?'라며 갸웃거렸다고 한다.[4] 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스푸트니크 쇼크 이전 NASA의 전신[5] 이 사람은 훗날 아폴로 1호 화재 참사로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6] 노스 아메리칸은 이 시절부터 초고고도, 초음속 항공기 개발 노하우를 쌓아가며 XB-70을 만들고 아폴로 사령선, 새턴 2단 로켓, 그리고 우주비행기의 상징이 된 우주왕복선 오비터 제작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7] 다른 이들은 전부 이 시기에 30대의 나이였으며 이후 NASA가 우주비행사를 뽑을 때도 너무 나이가 많다고 지원이 반려되었다.[8] 미군이 테스트 파일럿을 많이 양성하고 써먹는다고는 하지만 정기적으로 전투비행대에 순환배치되는 원칙이 상존하기 때문에 전업 테스트 파일럿만큼의 기량과 경력을 쌓기엔 힘들다. 오늘날에는 민간 산업체에서도 공군 경력 꽤 있는 베테랑을 선호하기 때문에 좀 덜하다고는 하지만 이 시절에는 암스트롱처럼 큰 전쟁의 참전 경력으로 검증된 경우 군생활을 그만두고 일찍 전업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도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다.[9] F-4의 개발과정에서 크게 활약했던 존 영짐 러블 역시 제미니를 앞두고 함께 선발된 9인 중에서도 특히 암스트롱이 최고라고 여겼을 정도이다.[10]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하기도 전인 1958년에 조직된 MISS의 멤버들 중 유일하게 NASA의 35세 이하라는 우주 비행사 지원 자격을 만족하였다. MISS에서 함께 활약했던 동료들은 암스트롱보다 최소 6살은 많은 이들이었던지라 암스트롱을 제외한 이들은 1961년 머큐리 계획이 발표될 적에 이미 35세가 지났다. 이들은 테스트 파일럿으로 계속 활약하다 XB-70 사진 촬영 후 허무하게 사망한 조셉 워커처럼 젊은 나이에 창공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우주에 나가지 못한 채 연구에 전념하다 은퇴한 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로 작고하였다. 결국 2010년 사망한 로버트 화이트에 이어 마지막 생존자였던 암스트롱마저 2012년 타계하며 MISS의 멤버들은 더 이상 남지 않게 되었다.[11] 이 임무 직전에 제미니 9호 승무원 엘리엇 시와 찰스 배셋이 T-38 사고로 순직하여 여론이 뒤집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암스트롱은 자신과 데이비드 스콧의 목숨을 구한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주계획 전체가 좌초될 위기에서 NASA를 구해냈다.[12] 우주에 올라간 기록으로는 MISS 시절의 동료 조셉 워커가 앞선다. 소련의 민간인 여성 발렌티나 테레시코바(후일 소련 공군 장성이 되긴 하지만 당시에는 민간인 신분이었다.)의 우주 비행 한 달 후에 X-15의 플라이트 90, 플라이트 91에서 고도 100km를 돌파하며 미국에서 인정하는 '우주 비행사'의 자격을 만족하였다. 사실 살짝 만족한 것이긴 하나, 어쨌든 우주 비행을 여러 번 다녀온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MISS의 멤버들 중 암스트롱을 제외하면 우주를 실제로 경험한 유일한 인물.[13] 암스트롱은 그간 여러 차례 있었던 임무 도중의 급박한 위기 극복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돌발 사태로 인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아폴로 11호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14] 당시의 컴퓨터코딩 작업이다. 코딩 부분 영상은 자기 코어 메모리에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장면이다. 자기 코어 메모리는 1960년대 당시 내구성과 집적도가 가장 우수했지만 프로그램의 1비트마다 전자석의 극성을 맞추고(극성을 반대로 맞추면 비트가 반전되어 오작동을 일으킨다) 전선으로 꿰는 노가다를 통해서 제작되었다. 반도체 기반의 SRAM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기였다.[15]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였던 샐리 라이드도 이러한 케이스로 조사위원회에 참가했다.[16]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 5주년에 맞춰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 월석을 기증하였고, 그 월석이 중앙에 놓인 남쪽 방향 스테인드 글라스는 스페이스 윈도우로 불리고 있다.[17] 심지어 암스트롱이 6.25 전쟁미국 해군 소속으로 참전한 인물이었음에도 말이다![18] 다만 달 착륙 당시에는 이 사실을 북한 매체에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암스트롱이 처음 언급된 것은 2001년 출판된 조선대백과사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BBC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19일 쓴 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대다수가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19] 조사위원들은 파인만이 딸에게 전해주려는 거라고 생각하며 허허허 웃기만 했다.[20] 미군은 병참선이나 관측선 같은 비전투 함정들에는 역사적/영웅적 탐험가나 선지자, 개척자들의 이름을 따오고 있다. 예를들어 루이스 앤 클락급 병참선의 루이스와 클락은 아메리카 서부를 처음 탐험했던 이들이며 해당 클래스의 2번함은 여성 아메리카 원주민으로서 이들의 가이드를 맡았던 사카자위아다. 3번함은 미국 최초의 우주인 앨런 셰퍼드이고, 7번함은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심해잠수사로서 영화 맨 오브 오너의 실제 주인공인 칼 브래시어 원사의 이름을 땄으며, 9번함은 제국주의 시대 일본 에도 막부의 개항을 이끌어낸 매튜 페리 제독의 이름을 땄다. 심지어 5번함에는 로버트 피어리까지 있다. 그리고, 닐 암스트롱급 해양 관측선 2번함은 당연히 샐리 라이드.[21]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 1969년의 일이다.[22] 닐이 장남이고 여동생 준과 남동생 딘 암스트롱이 있다.[23] HBO 제작, 아폴로 13의 주연 배우인 톰 행크스가 아예 아폴로 계획 전체를 다루는 미니시리즈를 제작해보자고 의기투합하여 만든 12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이다.[24] 한 독자가 동료가 될 것이라는 장난식 예언을 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