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01 | 1902 | ||
앙리 뒤낭 | 프레데리크 파시 | 엘리 뒤코묑 | 샤를 알베르 고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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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랜들 크리머 | 국제법학회 | 베르타 폰 주트너 | 시어도어 루스벨트 | |
<rowcolor=#cd9f51> 1907 | 1908 | |||
에르네스토 모네타 | 루이 르노 | 클라스 아르놀드손 | 프레드리크 바예르 | |
<rowcolor=#cd9f51> 1909 | 1910 | 19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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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 국제평화국 | 알프레트 프리트 | |
<rowcolor=#cd9f51> 1911 | 1912 | 1913 | 1917 | |
토비아스 아서르 | 엘리후 루트 | 앙리 라퐁텐 | 국제적십자위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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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 | 레옹 부르주아 | 얄마르 브란팅 | 크리스티안 랑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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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쇼프 난센 | 오스틴 체임벌린 | 찰스 G. 도스 | 아리스티드 브리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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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 국제난민 사무국 | 국제적십자위원회 | 코델 헐 | 에밀리 그린 볼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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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모트 | 퀘이커 봉사협회 | 존 보이드 오어 | 랠프 번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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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주오 | 알베르트 슈바이처 | 조지 마셜 | 유엔난민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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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피어슨 | 도미니크 피르 | 필립 노엘베이커 | 앨버트 루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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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 함마르셸드 | 라이너스 폴링 | 국제적십자위원회 | 마틴 루터 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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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 르네 카생 | 국제노동기구 | 노먼 볼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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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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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글라데시의 은행.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 금융 사업으로 이들의 생활 여건 개선에 큰 공을 세운 은행으로 유명하다.
2. 상세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1983년 무담보 소액 대출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창업하였다. 첫 고객 대출은 그 이전인 1973년에 이미 시작했었고, 1976년부터 시범적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던 것을 정식 은행으로 설립한 것.이 은행은 큰 성공을 거두어 창업 10년, 첫 대출 20년 만인 1993년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였다. 대출금은 100% 은행 직원들의 예금을 운용 자금으로 사용하였는데 대출해간 고객들이 성실하게 돈을 갚으며 자금 회수율은 무려 99%에 달했고, 780만여 명의 고객 중 60%가 이 소액 대출금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을 시작해 빈곤을 탈출했다.
일각에서는 "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주는데 그들이 어떻게 돈을 갚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은행과 달리 대출자의 채무 변제를 위해 일자리를 주선하고 개인 사업의 창업을 지원하는 등 이들과 적극적으로 동행하며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에 그 실마리가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빈곤 퇴치에 크게 기여한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 은행은 사회적 기업이 어떻게 긍정적인 공헌을 하는지에 관한 사례로 각국에 널리 전파되었다.
대한민국에도 이 은행 시스템에 영감을 얻어 '사회연대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구조의 은행들이 생겨났으며, 경쟁률도 높고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다.
3. 사건사고
최근 들어서는 연간 20∼50%[1]의 고금리를 받고 대출을 내주는 그라민 은행의 대출 정책도 비판의 표적이 됐다. 방글라데시에서도 그라민 은행의 고금리가 서민 생활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유누스 총재의 지지자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해임명령이 대권주자로 떠오른 유누스 총재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공격이라며 반발했으며 유누스 총재는 해임을 거부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방글라데시의 특성상 전반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후반에 들어서는 효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1] 한국 기준으로 사채에 해당하며 한국에서는 이자가 20%를 넘을 경우 개인간의 대출도 불법이다. 근데 이게 대체재면 기존 사채업자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