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존 스미스 John Smith | |
세례일 | 1580년 1월 6일 |
잉글랜드 왕국 링컨셔 윌로비 | |
사망 | 1631년 6월 21일 (향년 51세 추정)[1]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국적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졸업) |
종교 | 성공회 |
직업 | 군인, 탐험가, 작가 |
서명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군인, 탐험가, 작가. 미국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에 북아메리카 최초의 영국 식민지를 건설한 인물.2. 생애
존 스미스의 정확한 출생일은 불분명하나 그가 1580년 1월 6일 잉글랜드 링컨셔주 앨포드 마을 근처 윌로비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2]1592년에서 1595년까지 스미스는 루스에 있는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King Edward VI Grammar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미스는 처음에 노퍽의 한자 동맹 항구 킹스 린에서 상인의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나 곧 그와 어울리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16살에 바다로 떠나게 된다.[3]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16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음에도 불구, 어려서부터 모험을 좋아하여 네덜란드군에 종군하여 스페인 가톨릭교도들을 쳐부수고, 1604년경 헝가리에서 병사로 종군하여 오스만 제국군의 침입을 직접 봉화를 울려 저지하였으며, 트란실바니아에서 오스만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자신을 포로로 잡은 오스만 군인의 머리통을 부순 후 러시아와 프랑스, 모로코를 거쳐 탈출하였고, 모로코에서 직접 사략선을 지휘하여 스페인 함선을 격퇴한 바 있으며, 마키아벨리와 플라톤을 탐독하여 마스터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의 주장 외에는 근거가 없다.
1607년 아메리카의 포더막 강 체서피크 만에 3척의 배로 진출하여 초기 식민지 개척의 고난기에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체서피크 만 일대를 탐험한 후 1609년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1614년에는 뉴잉글랜드를 탐험하여 모피 등의 귀중품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 뉴잉글랜드의 식민지 개척을 촉진하였다.
자서전에 의하면 한때 인디언에게 잡혔으나 추장딸 포카혼타스의 구명운동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포카혼타스는 당시 12세였다.
3. 여담
토탈 워: 엠파이어에서 제임스타운을 부흥시키는 임무의 초기 주인공으로 등장한다.[1] 세례일을 기준으로 한 그의 나이[2] 스미스의 부모님이 윌로비 경의 소작농이었다고 한다.[3] 존 스미스의 전기 작가인 피터 퍼스트브룩은 스미스가 킹 스린 항구에서 상인의 견습생으로 잠시 일한 것이 그의 모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