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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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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IS의 아프가니스탄 테러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Hamid Karzai International Airport Bombing Terror
2021 Kabul airport attack
حمله‌های ۱۴۰۰ میدان هوایی کابل
[1]
▲ 테러 당일 BBC의 보도
<colcolor=#fff><colbgcolor=#000000> 발생일 2021년 8월 26일 (현지 시각)
발생 위치
[[아프가니스탄|]][[틀:국기|]][[틀:국기|]]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에비게이트)·바론 호텔 인근
유형 자살 폭탄 테러
테러 배후 IS-K[2]
피해 <colcolor=#fff><colbgcolor=#000000> 사망 18명 이상(미군 13명, 영국인 3명 포함)[3]
부상 130명 이상

파일:_kabul_airport_blast_.png
테러 발생 위치[4]

파일:kabulairport-1.jpg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5]

파일:kabulairport-2.jpg
시신이 담긴 관을 차에 싣는 희생자의 친척들[6]

1. 개요2. 사전 징후3. 테러 발생4. 범인과 배후5. 미국의 대응
5.1. 보복 예고5.2. 보복 타격5.3. 민간인 오폭5.4. 미국 내 비판 여론5.5. 미군 희생자와 유해 귀환
6. 탈레반의 대응
6.1. 규탄성명 발표6.2. ISKP 진압
7. 추가 공격 시도8. 국제사회의 반응
8.1. 철수 작전 관련국8.2. 입장표명 국가8.3. 국제 기구 및 단체

[clearfix]

1. 개요

2021년 8월 26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ISKP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카불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철수탈레반의 대대적 공세로 인해 아프간 정부가 공세 단 2개월만에 무너짐에 따라 공항 인근에 피난민들이 몰렸고 결국 혼잡한 틈 속에 IS의 자폭테러가 발생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말았다.

2. 사전 징후

탈레반바그람 기지를 장악하면서 기지 내부에 수감되어 있던 알카에다 조직원은 석방하는 한편 IS 관련 조직원들은 풀어 주지 않았다(이유는 후술). 더불어 아프간 IS 지도자인 아부 오마르 호라사니와 그의 조직원 8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

이 테러가 발생하기 전부터 CIA를 비롯한 각종 정보기관들은 카불 공항을 타깃으로 한 테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는데 당시 카불 공항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과 공항 내부 접근을 차단하려는 미군 병력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상태였으며 이렇게 대중이 밀집된 지역은 테러의 목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정부의 지시 없이는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으며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나토 및 유럽 국가들은 급히 대피작전을 종료하기에 이르렀다. # 영국 국방부 정무차관 제임스 히피는 이슬람 국가(IS) 무장 세력이 곧장 카불 공항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매우 매우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CNN 등 외신에 따르면 8월 25일(현지시간) 테러 직전부터 미 정보 당국은 아프가니스탄 호라산 지방에 본부를 둔 ISIS-K가 카불 국제공항 밖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계획임을 나타내는 매우 구체적인 위협 흐름을 입수했다. ISIS-K는 2014년부터 아프간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4,000여 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 계열이지만 노선이 달라 서로 적대 관계를 형성한다. #

미국 국방부는 테러 발생 전 세 차례 전화 회의를 통해 테러 발생 가능성과 공항 출입구 중 하나인 애비 게이트 등의 폐쇄 문제를 논의했으나 인근에서 영국군이 철수 속도를 높이고 있어 폐쇄하지 않았다.#

3. 테러 발생

2021년 8월 26일 공항 외곽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폭발은 카불 공항 외곽 애비 게이트(Abbey Gate)에서 일어났다. 직후 당연하지만 현장은 아비규환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듯 시신과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최후의 날'처럼 하수구에는 수십구의 사체들이 떠 있었고 외국행 꿈이 담긴 옷가지와 여행 가방 등이 공항 부근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상자와 생존자가 뒤엉켜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카불 시내의 병원들은 테러 현장에서 실려온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폭탄 테러에 뒤이어 동쪽 문에서 총격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미합중국 해병대 12명과 미합중국 해군 의무병 1명, 미합중국 육군 부사관 1명을 포함한 17여 명이 사망했으며 13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https://www.the-sun.com/news/3544925/marines-killed-kabul-airport-explosion-taliban-afghanistan/

해병대와 해군이 있었는데 미국 해병대의 법무, 의무, 군사경찰 업무는 미국 해군이 맡고 있다. 미국 해병대의 의무부대에는 해군 군의관과 의무병이 배속되며 해군 군사경찰이 해병대 피복을 입고 근무한다. 법무는 순수 해병대 출신 법무관도 존재하지만 해군 법무실이 최상급 기관이라 수사, 재판 등은 해군 법무실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물론 민간인들도 많이 사망했으며 그 중엔 아기도 있었다.

#1 #2 펜타곤 발표 현장 상황1 현장 상황2. 현장 상황이 담긴 동영상은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았으므로 열람시 주의.

8월 28일 미국 국방부는 사망한 미군 13명 중 12명이 아프간 전쟁의 단초가 된 2001년 9.11 테러 전후 태어난 20대 초반의 ‘9·11둥이들(9·11 babies)’이며 이 중 2명은 여군이라고 밝혔다. # 13명 중 5명은 2001년 태어났으며 7명은 2001년 당시 3세 미만의 아기였다. 유일하게 ‘9·11둥이’로 분류되지 않은 31세 최연장자도 11세 때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나라 지키는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

두 번째 폭발이 공항 인근 탈출 대기자 숙소인 바론 호텔(Baron Hotel)에서 일어났다고 알려졌으나 자폭 테러 공격은 1회뿐이었다고 펜타곤이 정정했다.#

이후에도 3번째, 4번째, 5번째 폭발 및 도시에서 6, 7번째 폭발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1 #2 #3 # 후속 폭발에 대해 탈레반은 트위터에 미군이 중앙정보부(CIA) 기지를 폭파한 데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지는 '이글 베이스(Eagle Base)'라는 곳으로, 처음에는 벽돌 공장을 개조한 작은 기지였으나 추후 아프간 정보기관의 대테러부대를 훈련하는 데 사용되는 등 활용도가 커졌으며 아프간전 초기부터 사용된 주요 기지라고 한다. 벽은 10피트 높이에 두꺼운 철문은 차량이 들어올 때만 신속하게 열렸다 닫히고 검문도 까다로워 매우 안전하고 침투도 거의 불가능하며 현지인들도 그 존재를 몰랐다.#

4. 범인과 배후

테러 몇 시간 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약칭 ISIL 혹은 IS)의 아프간 지부인 ISIS-K(혹은 ISKP)가 이 폭탄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테러의 희생자 중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세력인 탈레반 소속도 있었으며 IS는 이에 대해 "탈레반이 미군과 평화 협정에 동의한 건 배교행위"라고 언급하였다. IS "카불 공항 폭탄테러, 미군 노린 우리 소행"…90명 사망

자신들이 이 테러의 배후라고 밝힌 ISIL의 지부격인 ISKP의 한국어 정식 명칭을 풀어서 쓰면 '호라산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Khorasan Province)다. 호라산이란 동부,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ISKP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으로 가장 극단주의 색채가 강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ISKP는 IS가 시리아이라크를 중심으로 한창 맹위를 떨치던 2015년 1월에 발족됐으며 조직원들의 대부분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아프간과 파키스탄 과격주의자들로 구성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한때 동지였던 이들이 탈레반을 이탈해 ISKP를 만든 것은 탈레반 정권이 충분히 과격하지 못하고 '유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탈레반이 무슬림의 의무인 '지하드'(성전)를 등한시한 채 평화적 해결 방안 모색 등에 집착했다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대다수 지하디스트들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보다는 IS를 더 매력적으로 여긴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는 체계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지 못해 자체적인 교리 수준이 부실하지만 IS는 창설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바그다드 대학 이슬람학 박사 출신에 IS 창설 이전에는 다른 테러단체들에 이슬람 교리해석 자문을 받아주고 다녔다. 그래서 IS는 교리가 이론적으로는 탄탄하게 정리되어 있어 지하디스트들을 끌어모았다.

ISKP의 거점은 파키스탄 접경 동부 낭가르하르 주로, 이곳은 마약 밀매와 인신매매의 대표적인 통로로 알려졌다. ISKP의 규모는 정확하지 않지만 500명에서 4000명 사이로 추산한다. #

탈레반이 감옥에서 수감 중이던 알카에다와 IS 대원들을 석방했다고 많이 보도되었지만 절반만 진실이다. 알카에다 대원들을 석방한 건 맞지만 IS 대원들은 풀어 주지 않았다. 중요 인물들이나 위험하다 싶은 자들은 따로 끌어내 재판도 거치지 않고 모두 즉각 사형을 집행했는데 주로 총살형으로 집행했다. IS 아프간 지역 사령관 아부 오마르 코라사니와 부하 8명을 처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탈레반과 알카에다, ISIL은 각각 목적과 성향이 제각각인데 다음과 같다. 극단주의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목표를 지닌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는 몇 년 전부터 기반도 없이 작살나 버렸다. 돈을 벌 방법이 없어서 양귀비를 이용한 아편 생산으로 먹고살던 게 바로 현재의 탈레반을 구성하는 군벌들이다. 당연히 현재 탈레반의 주 수입원은 바로 아편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국제 사회가 마약 판매를 주 산업으로 삼는 국가를 내버려두지 않을 게 뻔한 데다 탈레반에게 가장 우호적인 편에 속하는 중국마저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으므로 이로 인한 갈등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중국의 대외정책인 "타국의 내정에는 무관심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가 독재정권이라도 친중이기만 하면 신경쓰지 않는다"에 따라 탈레반이 중국에 마약을 팔지만 않으면 여차저차 협력할 수 있겠지만 만일 탈레반이 만든 마약이 중국에 흘러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이 들키면 그날로 중국은 탈레반의 적대세력이 될 수도 있다.[8] 다만 예상외로 탈레반은 집권 후 모든 아편밭들을 대화회유를 통해(?) 강제로 갈아엎어 버렸다.
요약하자면 탈레반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기들이 왕 노릇하면 그만이다.

5. 미국의 대응

5.1. 보복 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성명

5.2. 보복 타격

당시 공습을 당한 자택의 모습

5.3. 민간인 오폭


* 8월 29일, 카불로 향하던 IS의 자폭차량을 미국이 공습으로 폭격했다. 미군 측 발표에 의하면 민간인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이전에 미국은 IS의 추가 테러가 임박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바이든은 미군의 IS 타격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 가운데 벌어진 미군의 추가 보복 타격인 셈이다. 미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미군이 IS 목표물을 확인하는 즉시 군사적 타격작전을 벌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5.4. 미국 내 비판 여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성급한 철군 과정과 탈레반의 카불 조기점령에 겹쳐 국제공항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전사하고 상당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지가 심각한 타격을 닙었다. 철수를 계획한 대통령 자체는 도널드 트럼프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을 문제로 철군을 한 차례 이상 연기했던 바 있었다.# 이 테러로 인한 미군 전사자 대다수가 9.11 테러 당시 3살 이하거나 9.11 테러 이후에 태어난 10대, 20대 젊은이들이며 전사자 중 한 명인 니콜 지 병장(여/23세)이 해당 테러 일주일 전 아프간인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이 회자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 이러한 만행에 분노한 8해병 연대 1대대 소속과 2해병 연대 1대대 소속의 미 해병대원들이 카불 국제공항내 벽면과 공항 외부 방벽에 IS와 탈레반에 대한 저주섞인 쌍욕으로 이루어진 락카로 쓴 그래피티들을[10] 남겼고 이를 촬영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지만 상부의 탈레반을 자극하지 마라는 경고로 인해 삭제되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의 어느 해병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래피티 자체도 지우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보편적인 미국 국민들은 바이든의 철수 결정 자체는 지지했다는 것이다. 20년간 자신들의 혈세로 전쟁을 끌어왔는데 패도 패도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강성해져만 가는 탈레반 + 도대체가 변하지 않는 아프간 특유의 폐쇄적인 부족주의 내지 배외주의 + 비상식적 종교 원리주의로 인한 제자리 걸음의 민주주의 시도 내지 체제 교체, 아프간 정부의 답이 없는 부정부패로 인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지원 등등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탈레반에 쫓기듯이 떠나는 모습에 불만이 많았던 차에 폭탄테러가 바이든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낸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철수가 1975년 사이공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지리멸렬하고 엉망진창이라서 국제 사회에서 이를 철수가 아니라 사실상 패주로 간주하는 데 있다.[11] 게다가 철수 기간 결정권의 칼자루마저도 탈레반이 쥐고 있다보니 여기에 미국이 일개 민병대 집단한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녀서 생긴 굴욕감, 그리고 뒤죽박죽 철수로 인한 혼란 과정에서 이런 참사가 터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해병대 장교가 군 수뇌부의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처를 크게 비판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지휘권을 박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5.5. 미군 희생자와 유해 귀환

파일:카불 공항 테러 희생 미군 13명.jpg

파일:0003636873_001_20210829223204452.jpg
미군 희생자 유해 운구 장면

이 테러로 사망한 13명의 미군 전사자 유해는 현지시간 8월 29일 미국 델라웨어 공군기지로 귀환하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질 바이든 여사,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등 내외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운구식이 거행되었다. 유족의 요청으로 비공개 운구한 2명의 전사자를 제외한 11명의 전사 장병의 운구 장면이 TV로 생중계 되었다. 더 불행한 건 카불테러로 희생당한 미군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마지막 미군 전사자이자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 또는 그 이후에 태어난 군인들이었다는 점이다.

파일:바이든이 시계를 보는 그 장면.jpg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영결식에서 하품을 하거나 시계를 보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보이면서 비난받았다.

2021년 12월 16일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추서받았다.

6. 탈레반의 대응

6.1. 규탄성명 발표

탈레반의 자비불라 대변인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국제공항 테러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였으며 자국민의 안전과 보호에 세심한 보호를 기울이며 악순환을 철저히 차단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 더불어 미군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테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이며 자신들이 외국 군대에 테러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였다. # #

탈레반 입장에서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 테러의 희생자들 중에는 탈레반 대원들마저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자신들이 명실공히 공식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일단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상황에 IS가 제대로 찬물을 끼얹어 놨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주권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경과 접해 있는 두 강대국들(인도,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고 훗날 서방 국가와의 수교를 위해서도 서구 국민들의 대피를 도와주는 중이었지만 이번 테러로 지금까지 조심했던 것들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특히 자국 외에 피해를 입은 국가가 (탈레반 입장에서) 가장 골칫덩어리인 미국이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에 하필이면 미국을 건드린 IS의 행보에 날을 세우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다.

6.2. ISKP 진압

8월 29일, 탈레반의 범죄수사 책임자 사이폴라 모하메드는 카불 서부에서 총격전을 거쳐 6명을 체포했으며 4명은 자국민이지만 2명은 말레이시아인이라고 더 타임스에 밝혔다. #

7. 추가 공격 시도

8월 30일, ISKP는 공항을 겨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 미군은 방공요격체계 C-RAM을 통해 이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8. 국제사회의 반응

8.1. 철수 작전 관련국

8.2. 입장표명 국가

8.3. 국제 기구 및 단체



[1] 다리어, Hamlahā-ye 1400 maydān-e hawāyī-ye Kābol[2] Islamic State - Khorasan Province. 번역하자면 "이슬람 국가 호라산 주"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의 서아시아-중앙아시아-남아시아 지부이며 호라산이란 동부, 아프가니스탄 서부,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의 역사적 지명이다. 줄여서 IS-K, ISIS-K로 불리며 테러 단체들 중에서도 극단주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3] AP통신 출처 https://apnews.com/article/bombings-evacuations-kabul-bb32ec2b65b54ec24323e021c9b4a553[4] BBC 보도[5] 뉴욕타임스 보도[6] CNN 보도[7] 여기서 탈레반의 모순이 드러난다. 여태껏 반외세를 외쳤지만 정작 안정적인 집권과 정상적인 무역을 위해서는 타국들의 외교적 승인이 필요하다. 중국러시아는 탈레반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 어찌어찌 포섭할 수 있지만 그간의 행보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탈레반이 아무리 숙여 봐야 엔나흐다처럼 파격적으로 전향하지 않는 한 인도 내지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을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8] 중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 위상 떨어뜨리니 좋고 자기를 적대하지 않는다길래 걍 내버려둔 지역 군벌들이 정권 잡더니 지들 돈 번답시고 자국에 마약을 유통시키는 짓거리를 하는 셈이다. 심지어 그게 범죄조직이 하는 거면 그냥 때려잡으면 그만인데 얘들은 마약 생산이 하나의 주력 산업이다.[9] 사실 카불 정부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20년동안 지방 군벌들에 엄청난 돈을 줘서 돈맛을 알았는데 미국이 철수하니 이들은 당연히 그 많은 돈이 날아갔다. 탈레반은 그 돈을 줄 건덕지도 없고 사실상 탈레반이 카불 입성하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처럼 지방 군벌에게 탈레반은 반목대상이었다.[10] 각각의 내용인 즉슨 개같은 탈레반+ 좆같은 ISIS 쓰레기놈들, 엿이나 많이 처먹고 사이좋게 나가 뒤져라. 2021년 아프간(AFG 2021).[11] 소련의 철수는 2021년처럼 수라장이 아니었고 병력을 빼면서도 극단파가 득세하지 못하도록 조치는 해 놓고 나갔으며 친소파였던 나지불라 정권은 소련군이 철수한 후에도 수년간 버텼다.[12] 파일:sgt. Nicole Gee.png[13] 파일:sgt. Nicole Gee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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