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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기에 탑승할 5번째 테러리스트였으나 미국에 입국했을 때 불법 입국으로 간주되어 테러 전 추방되었다. | }}}}}}}}} | ||
| <colkeepall> 9.11 테러 September 11 attacks[1] | ||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2WTC에 충돌하는 모습 | ||
| | ||
| 아메리칸 항공 77편이 충돌한 미 국방부 청사 펜타곤의 모습 |
| <colbgcolor=#000><colcolor=#fff> 발생일 |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8시 13분~10시 3분[EDT] [dday(2001-09-11)]일, [age(2001-09-11)]주년 | |
| 발생 위치 |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 |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 펜타곤 | ||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 ||
| 유형 | 하이재킹을 통한 자살 테러 | |
| 원인 | 레바논 내전 및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사건에 대한 복수[3] 알카에다의 반미 · 반서방 · 반이스라엘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걸프 전쟁 이후 미국의 중동 개입에 대한 반발 이스라엘 공군의 무자비한 베이루트 폭격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이스라엘의 후원자) | |
| 테러 주동자 | 오사마 빈 라덴,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 |
| 테러 주동 세력 | [4] | |
| 피해 | <colbgcolor=#000><colcolor=#fff> 재산 피해 | 항공기 AA11, UA175, AA77, UA93기 완파 세계무역센터 모두 붕괴[5] 펜타곤 일부 붕괴 도이체방크 뉴욕지점 사옥 대파[6], 국제금융센터 반파 뉴욕시 GDP 273억 달러 감소[7] 여행 관련 지출 비용 전년 대비 20% 감소 관련 직종 실업자 430,000명 발생 |
| 사망 | 총 사망자 수 2,996여 명[8][9][10] - 세계무역센터 2,606여 명[11] - 펜타곤 125명 - 4개 기체 탑승자 246명 전원 - 테러리스트 19명 | |
| 부상 | 최소 12,000여 명~최대 100,000여 명 분진 피해자 5,771명~75,000여 명[12] | |
| 여파 | • 테러와의 전쟁 선포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 애국자법(2001) 등 미국 정부의 테러리즘 감시 관련 정치적 논란 확산 • 미국 국토안보부 창설 • 아랍계 미국인 등 미국 내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 및 증오범죄 증가 | |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항공기 납치3.2. 첫 번째 충돌: 제1세계무역센터3.3. 두 번째 충돌: 제2세계무역센터3.4. 세 번째 충돌: 펜타곤3.5. UA93편의 추락3.6. 세계무역센터 붕괴3.7. 테러 직후
4. 사망자5.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이유6. 반응과 여파7. 이후8. 음모론9. 기타10. 대중매체11. 외부 링크12. 둘러보기3.7.1. 미국 정부 마비
1. 개요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는 2001년 9월 11일에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가 일으킨 하이재킹 및 자살 테러 사건이다.알카에다 주도의 테러리스트들은 납치한 항공기를 미국의 주요 건물에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테러를 일으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 건물인 펜타곤을 공격하였다. 백악관 또는 미국 국회의사당도 테러 목표였던 것으로 추정되나, 이 공격을 위해 납치된 UA93기는 승객들의 저항으로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광산에 추락했다. 2,977명의 사망자와 최소 6,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유발한 테러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 본토, 그중에서도 중심부[13]가 피격당한 이 테러는 피해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우방국과 적대국을 막론한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 사태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 대한 무제한 응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14] 또한 이 테러는 테러리즘이 단순한 범죄를 넘어 전쟁에 준하는 수준의 안보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월 20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1개월 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작하여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을 일으켰고 이에 탈레반 정권이 일시 축출되었으며[15], 2002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선포,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라크 전쟁(2003~2011) 발발 및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 그리고 최종적으로 2006년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사살과 후세인의 처형, 2011년의 빈 라덴 사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의 부재 및 이라크 공습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 위키리크스 등으로 밝혀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인권 유린 행위 발각, 애국자법(2001)과 같은 감시권한 강화에 대한 논란, 대침체와 더불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고 불리던 미국의 절대 패권 약화에 기여 등 국내외적 영향을 끼쳤다. 이에 많은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9·11 테러를 소련 붕괴 이후 현대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 중 하나로 평가한다.
2. 배경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후 이슬람권 각지에서는 '불신자 공산군'과 싸우는 아프간 무슬림들을 돕기 위한 지하드의 일환으로 궐기한 무자헤딘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16]으로 몰려들었다. 냉전 시기 소련에 맞서던 미국은 CIA를 통해 파키스탄을 경유해 아프간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은 이 과정에서 '마크타브 알키다마트(MAK)'를 세워 아랍권 지원자와 자금을 모집하며 지하드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1988년, 소련군의 철수가 시작되자 전쟁의 명분을 잃은 아랍계 전투원들의 조직화를 위해 빈 라덴은 동료 무자헤딘들과 함께 페샤와르에서 '알카에다(근본·기초라는 뜻)'를 창설했다. 초기에는 아프간 전쟁을 계승한 전사들의 네트워크 성격이 강했으나,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게 된다.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빈 라덴은 무자헤딘 조직의 활용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지원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후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하게 되자 빈 라덴은 사우디 왕가를 타크피르(배교자)로 간주하고 지하드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또한 '아라비아반도의 비무슬림을 추방할 것[17]'이라는 하디스를 인용하며 1996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는 미군에 퇴거를 명령하는 파트와[18]를 내렸다.[19]
알카에다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이슬람권 내 세속 정권[20]을 비난했으나, 점차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국제적 테러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알카에다는 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테러[21]를 감행하면서 전 세계 이슬람 극단주의에 있어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빈 라덴은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과 중동 개입을 규탄하며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미국을 공격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알카에다는 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지의 극단주의자들을 포섭하며 세력을 확대했고, 1999년부터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같은 인물들이 합류해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공격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미제 무기로 베이루트 도심 고층 건물들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것을 TV로 목도하고는 이를 갈면서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마천루, 국방부 청사, 백악관 등 미국 건물들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의 이러한 주장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빈 라덴의 이러한 인식과 KSM의 항공기 납치 구상이 결합되며 9·11 테러 계획의 구체화로 이어졌다 추측할 수 있다.
한편 1999년경 알카에다 군사책임자 모하메드 아테프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제안한 항공기 납치 계획을 채택해 실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는 서방 거주 경험과 영어 능력이 있는 이들을 선발해 약 20명의 납치조를 구성했으며, 이들 중 19명이 최종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탈레반의 보호를 받던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들을 훈련시킨 뒤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차례로 미국에 입국시켰다.[22] 초기 팀은 플로리다 허프만 비행학교 등에서 조종 훈련을 받았고, 2001년 봄에는 추가 인원이 합류했다. 같은 해 7월, 납치조장 모하메드 아타는 스페인에서 알카에다 간부와 회동해 최종 계획을 보고했으며,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작전을 승인하였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실 미국 정보당국도 부분적으로는 알카에다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다. 2000년 1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알카에다 회의 이후, CIA는 나와프 알하즈미와 칼리드 알미드하르가 미국 비자를 소지하고 로스앤젤레스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 정보를 FBI에 제때 전달하지 않았다.
2001년 8월, 요르단과 모로코 등 여러 중동 정보기관들은 미국 측에 알카에다가 미국 내에서 비행기와 연관된 음모를 진행 중이고, 이는 한 달 안에 실행할 것이라는 매우 중요한 첩보를 전달했다.[23] 같은 해 8월 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일일 정보보고(PDB)에서 "빈 라덴, 미국 내 공격을 결심"이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해당 문건에는 미국 내 테러 가능성과 과거 항공기 납치 사례가 언급되어 있었다.
2001년 8월 16일 여름, 알카에다 연계가 의심되던 비행학교 수강생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미네소타의 비행학교에서 보잉 747기의 조종 훈련을 고집하다가 FBI 미네소타 지부의 의심을 받아 체포됐다. FBI 미네소타 지부는 이를 조사하며 항공기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본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지 요원들은 그가 테러와 연계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으나, FBI 본부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광범위한 수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기관 간 정보 공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FBI의 정보 요청을 CIA가 거부하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법적 규제와 기관 간 경쟁적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미국 정부는 2000년 USS 콜 테러사건 이후에도 알카에다의 목표가 해외 주둔 미군에 국한될 것으로 오판해, 본토 방어보다는 해외 경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당국은 알카에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에 공격을 가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방식을 '해외 미군 기지 공격'이나 '항공기 납치를 통한 인질극' 정도로 평가했으며, 감히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규모 자살 공격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빈 라덴이 설정한 테러 개시의 날은 묵묵히 다가왔다.
미국 군사력의 기반인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2004년 공개된 빈 라덴의 녹취록[24]
알카에다의 최종 목표가 된 미국 본토 공격에 있어 빈 라덴은 미국 군사력의 기반은 경제력에 있고, 따라서 미국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세계무역센터를 주요 목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9월 11일을 실행일로 정한 것은 그가 누차 서방의 중동 개입 시작으로 간주한 제2차 빈 공방전이 절정에 달하던[25] 날이었고, 유엔 총회 개막일이자 빈 라덴 자신의 궐석재판 하루 전날이기도 했다.[26] 또한 테러 실행 시간도 이른 아침 시간대라 관광객들이 아닌 출근하는 미국 시민들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2004년 공개된 빈 라덴의 녹취록[24]
3. 전개
| Flight Simulation으로 당시 하이재킹 당한 비행기 행적들을 재현한 영상 |
3.1. 항공기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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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당일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항공기들의 비행경로[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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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항공기들의 충돌 경로 |
3.1.1. 항공기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AA11 · UA175 · AA77 · UA93 비행기 4편이 납치됐고 UA93을 제외한 비행기 3편은 테러의 목표지점에 충돌했다. UA93 편은 승객들의 저항에 의해 목표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추락했다.- 오전 8시 13분경 모하메드 아타를 비롯한 5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아메리칸 항공 11편, AA11편을 납치했다. 이후 AA11 편은 뉴욕으로 향해 오전 8시 46분경 제1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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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 43분경 마르완 알 셰히를 비롯한 5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UA175편을 납치했다. 이후 UA175편은 뉴욕으로 향해 오전 9시 3분경 제2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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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시 51분경 하니 하뇨르를 비롯한 5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아메리칸 항공 77편, AA77편을 납치했다. 이후 AA77편은 워싱턴으로 향해 오전 9시 37분경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에 충돌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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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 28분경 지아드 자라를 비롯한 4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UA93편을 납치했다. 이후 UA93편은 워싱턴 D.C.로 향했으나, 승객들의 저항으로 인해 10시 3분경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광산에 추락했다. 원 목표는 백악관 또는 국회의사당으로 추정.[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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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테러리스트[29]
| |
- 목표물에 충돌
-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제1세계무역센터에 충돌.
| <rowcolor=#fff> 이름 | 나이 | 국적 | 특이사항 |
| 모하메드 아타 (Mohamed Atta) | 1968년 9월 1일 당시 33세 | | AA 11편의 납치 행동대장 마르완 알 셰히의 사촌[30] |
| 압둘아지즈 알 오마리 (Abdulaziz al-Omari) | 1979년 5월 28일 당시 22세 | | |
| 와일 알 셰리 (Wail al-Shehri)[31] | 1973년 7월 31일 당시 28세 | | 왈리드 알 셰리의 형 |
| 왈리드 알 셰리 (Waleed al-Shehri) | 1978년 12월 20일 당시 22세 | | 와일 알 셰리의 동생 |
| 사탐 알 수콰미 (Satam al-Suqami) | 1976년 6월 28일 당시 25세 | |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 제2세계무역센터에 충돌.
| <rowcolor=#fff> 이름 | 나이 | 국적 | 특이사항 |
| 마르완 알 셰히 (Marwan al-Shehhi) | 1978년 5월 9일 당시 23세 | | UA175편의 납치행동대장 모하메드 아타의 사촌 |
| 파예즈 바니하메드 (Fayez Banihamed) | 1977년 3월 19일 당시 24세 | | | |
| 모한드 알 셰리 (Mohand al-Shehri) | 1979년 5월 7일 당시 22세 | | |
| 함자 알 감디 (Hamza al- Ghamdi) | 1980년 11월 18일 당시 20세 | | 아메드 알 감디의 동생 |
| 아메드 알 감디 (Ahmed al-Ghamdi) | 1979년 7월 2일 당시 22세 | | 함자 알 감디의 형 |
-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펜타곤에 충돌.
| <rowcolor=#fff> 이름 | 나이 | 국적 | 특이사항 |
| 하니 하뇨르 (Hani Hanjour) | 1972년 8월 30일 당시 29세 | | AA77편의 납치행동대장 |
| 칼리드 알 미드하르[32] (Khalid al-Mihdhar) | 1975년 5월 16일 당시 26세 | | |
| 마제드 모퀘드 (Majed Moqed) | 1977년 6월 18일 당시 24세 | | |
| 나와프 알 하즈미[33] (Nawaf al-Hazmi) | 1976년 8월 9일 당시 25세 | | 살렘 알 하즈미의 형 |
| 살렘 알 하즈미 (Salem al-Hazmi) | 1981년 2월 2일 당시 20세 | | 나와프 알 하즈미의 동생 |
- 실패하여 추락
-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 펜실베이니아 주 인근에 추락. 테러 목표는 백악관 또는 미국 국회의사당이나 동북부의 원자력 발전소로 추정.
| <rowcolor=#fff> 이름 | 나이 | 국적 | 특이사항 |
| 지아드 자라 (Ziad Samir Jarrah) | 1975년 5월 11일 당시 26세 | | UA 93편의 납치행동대장 |
| 아메드 알 나미 (Ahmed al-Nami) | 1977년 8월 17일 당시 24세 | | |
| 사이드 알 감디 (Saeed al Ghamdi) | 1979년 11월 21일 당시 21세 | | |
| 아메드 알 하즈나위 (Ahmed al-Haznawi) | 1980년 10월 11일 당시 20세 | |
당시 미국의 큰 공항들은 CAPPS I[34]이라는, 공항에 들어온 모든 개개인을 프로파일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는데 논문마다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논문에 따르면[35] 19명의 테러리스트들 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렸고 2차 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항에서 걸린 테러리스트들의 숫자는 19명 중 10명이었는데 이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려들었고 나머지 4명은 가방 속 내용물과 같은 이유로 인해 2차 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수색을 했음에도 이들이 실질적으로 걸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를 벌이기 전에 사전답사로 보이는 행동을 했었다. 한마디로 CAPPS I에 걸리는 행동들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공항을 사전답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CAPPS I과 같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실용성에 의문들이 쏟아져나왔으며 미국이 곧 CAPPS II를 개발하는 까닭이 된다.
알 자지라 방송국에서 사건의 원흉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2004년 생전 비디오를 녹화한 것을 공개했다. 이 비디오가 대테러 전문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
| 비디오 내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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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9.11 테러/반응과 여파#항공|항공]]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2. 첫 번째 충돌: 제1세계무역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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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내레이션[49]: 오전 8시 46분[50]이었습니다. (It was eight forty-six in the morning.) 조셉 파이퍼[51] 서장[52][53]: 맨해튼 가에서는 듣기 힘든 비행기 소리가 들렸죠. 그것도 아주 크게요. (And then we heard, a plane come over. And in Manhattan, you don't hear planes too often. Especially loud ones.) (비행기가 날아오는 소리) (폭발음) 주변 사람: 이런 미친! (Holy Shit!) 한 소방관[54]: 직감했죠. 소방관으로서 최악의 날이 되리라는 걸요.[55] (Right then and there, I knew this was gonna be the worst day of my life as a firefighter.) |
| 아메리칸 항공 11편 오전 8:46 |
1WTC에 충돌한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으로, 대장인 모하메드 아타 등 5명의 하이재커를 제외한 76명의 승객과 승무원 11명을 태우고 비행했다. 초유의 사태에 연방항공국은 긴장했고 미국 공군은 사라져버린 AA11편을 찾으려고 전투기를 내보냈지만 그때는 이미 충돌한 지 한참 지난 뒤인 데다 첫 충돌 비행기가 AA11편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해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불타던 AA11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헛수고를 벌였다.
목격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고의 연쇄 테러의 첫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조종사의 실수나 비행기 오작동으로 충돌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미 첫 번째 충돌 시점에서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공격이라고 인지한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현재 공개되어 있는 9·11 관련 다큐나 많은 영상에서 최초 충돌 직후 사람들이 "의도적인 충돌이었다"라고 증언하는 부분이 꽤 나오며, 당장 이 문서에 링크되어 있는 소방관들의 다큐(첫 번째 충돌이 유일하게 영상 기록된)에서도 의도적 공격으로 의심하는 증언이 포함되어 있다.
오전 8시 49분경, 언론들은 이 사고를 긴급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후 WTC에서 사람들에게 비상대피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 곳은 1WTC였기 때문에 2WTC에 있는 사람들의 피난을 중단시켰고 사람들을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2WTC에 있던 사람들은 건너편에 불이 났나 보다라고 생각했고 2WTC 방송실에서는 "긴장하지 말고 제자리에 편안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다. 당시는 첫 충돌이 '고의 연쇄 테러의 첫 공격'이라는 것이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다. 사실 옆의 1WTC가 곧 무너질 것이었기에 2차 테러가 없었더라도 당장 대피를 하는 것이 옳았으나, 이 정도 규모의 사고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1WTC가 무너질 것이라는 결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62]
3.3. 두 번째 충돌: 제2세계무역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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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테러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에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 |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에 충돌하는 장면[63] |
| 테러 이후 CNN 뉴스에 방송된 2차 테러 제보 영상 |
(전략)
아나운서 브라이언트 검블(Bryant Gumble): So you have no idea right now...[64]
(그러니깐 지금은 전혀 모르신다는 거죠...)
제보자 테레사 르노(Teresa Renault)[65]: Oh There's another one. Another plane just hit... right! Oh my God, another plane has just hit in here another building flew right into the middle of it. Explosion, Right, God, it's right in the middle of the building.
(오, 하나 또 있다. 방금 또 비행기가 충돌했어요... 맞아요! 오 주여, 방금 또 비행기가 다른 건물에 충돌하고 바로 그 건물 한가운데로 날아갔어요. 폭발, 맞아요, 주여, 바로 건물 한가운데서요.)
CBS 뉴스에서 제보자와 전화연결을 하다가 발생한 2차 테러 생중계6분 5초부터
아나운서 브라이언트 검블(Bryant Gumble): So you have no idea right now...[64]
(그러니깐 지금은 전혀 모르신다는 거죠...)
제보자 테레사 르노(Teresa Renault)[65]: Oh There's another one. Another plane just hit... right! Oh my God, another plane has just hit in here another building flew right into the middle of it. Explosion, Right, God, it's right in the middle of the building.
(오, 하나 또 있다. 방금 또 비행기가 충돌했어요... 맞아요! 오 주여, 방금 또 비행기가 다른 건물에 충돌하고 바로 그 건물 한가운데로 날아갔어요. 폭발, 맞아요, 주여, 바로 건물 한가운데서요.)
CBS 뉴스에서 제보자와 전화연결을 하다가 발생한 2차 테러 생중계6분 5초부터
|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 오전 9:03 |
당시 NBC, ABC, CBS 등 미국 지상파 모든 방송이 1WTC의 화재 현장을 속보로 전하고 있었고, 미국인 상당수가 이를 시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미 비행기 충돌로 불타던 1WTC 바로 옆의 2WTC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순간, "미국이 공격 받았다"[67]는 사실을 수천만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위 CNN 동영상의 카메라맨은 항공기소음이 커지던 시점부터 크게 동요해 화면이 크게 흔들렸고, 아나운서와 취재진은 10초가량 말문이 막혀버렸다. 생방송 중 실시간으로 발표 등을 중계하는 게 아닌 이상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10초씩이나 말이 끊기면 방송사고인데, 이 전대미문의 상황은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는 9·11 테러가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음을 증명하는데, 1WTC 충돌 직후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시간차를 두고 옆건물에 또다시 충돌하며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테러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고현장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테러가 가해진 것은 현재까지도 유례를 못 찾아볼 정도로 매우 충격적인 사례이다. 알카에다가 미국의 중심지인 뉴욕을, 그것도 두 번의 공격이 가능하고 충격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갖춘 쌍둥이 빌딩을 선택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 시민들이 두 번째 충돌이 발생하여 경악하는 모습 |
당시 FOX NEWS TV 중계 앵커가 "This seems to be on purpose(이건 아무래도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라고, 즉 테러라고 말했고, CNN 뉴스타이틀이 "America Under Attack(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으로 바뀌는 등 미국 언론을 비롯한 2차 충돌을 목격한 시민들은 테러임을 인지한 것이다. 한국은 1차 테러 이후 한국 시간인 2001년 9월 11일 밤 10시경부터 CNN을 동시통역으로 중계하며 방송 3사가 긴급속보를 시작했고, 하이텔 PC통신 등으로 대화방에서 몇몇 이용자가 자신의 사설 서버에 올린 CNN과 MBC 녹화동영상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전파되어 갔다. 다음날인 9월 12일부터 방송 3사에서 하루 종일 속보방송을 편성하여 내보냈고, 당연히 속보를 보던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다.[68]
당시 미국 현지 방송자료와 뉴욕에 있던 사람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면 두 항공기의 충돌과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까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당시 뉴스 생중계를 보면 사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세계무역센터 인근 고등학교에서 폭발물이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든가 주변건물이나 차에서 폭탄이 폭발했다거나[69], 워싱턴 내셔널 몰에 불이 났다거나 하는 등 온갖 소문으로 인해 방송사부터 뉴욕시 경찰과 구조대원까지 모두 대혼란에 빠진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 최강의 초강대국이라 자부하던 미국의 심장인 뉴욕주 뉴욕시의 맨해튼이 무방비로 테러에 노출됐고, 자살테러에 여객기를 2대씩이나 동원할 만큼 적은 치밀하고 대담한 악질이었으며, 심지어 미국은 그 적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국인들을 혼란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항공기 테러가 가능할 정도의 집단이면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인 데다 정확한 공격 규모와 목표도, 그리고 공격 대상과 공격 주체가 누군지 아무것도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야 조사가 이루어지며 알카에다의 공격임을 알았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초기 상황에서는 연쇄 폭탄 테러나 추가적인 테러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절대 배제할 수 없었다.
특히 CNN에서는 WTC 바로 아래에서 터진 폭탄이 북쪽 타워가 무너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해 이후 음모론의 중요한 떡밥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WTC 충돌부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은 위층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모르는 등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가 대피를 해도 괜찮다는 등 오락가락한 정보를 내보냈기 때문이다.[70]
| |
| The Falling Man(추락하는 남자)[71] |
| WTC에서 뛰어내리는 시민들[시청주의][73] |
하지만 밑에서도 구조할 방법이 없었다. 위로 올라가려면 당연히 건물 내부로 들어가야 했지만, 당시 상황상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밑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소방대원들은 억울하고도 애처로운 분노를 곱씹어야 했고, 무력감을 느끼는 시민들은 그저 하염없이 절망할 뿐이었다. 심지어 1층에서 대기, 지시를 하고 있던 소방관들은 최소 60층 이상의 높이에서 울려퍼지는 엄청난 굉음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 쾅 소리가 났을 때만 해도 소방관들은 엄청난 충격의 소리에 단체로 당황했으나 이내 그게 어떤 소리인지 깨닫고 말을 잇지 못했다.
헬기도 무용지물이었다. 애초에 화재현장, 특히 초고층 건물 화재에 헬기를 동원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재현장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기류를 헬기가 그대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까지 잘 안 되는 상황에 잘못하면 헬기마저 건물에 충돌하거나, 열기에 의해 공중에서 엔진이 폭발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당시 사건 현장에 투입된 헬기들은 구조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건물 곁을 빙빙 돌면서 실시간으로 상황 보고밖에 할 수 없었다.
| 뉴욕 경찰 항공대의 구조 시도[시청주의] |
결국 9시 41분에 뉴욕 경찰국이 "헬기 구조 작업을 포기하라"고 지시하여 헬기를 통한 구조 시도는 중단했다.
1WTC 충돌 이전부터 발생한 심상찮은 징후에 긴장하던 연방 항공국은 사안의 심각성에 크게 경악해 본격적으로 미 공군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담당 인력이 매우 부족한 마당에 휴가까지 간 인원들도 있어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미국 공군도 여러 제보와 항공국이 제공한 정보 등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으나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진 데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정보들이 아닌 헛소문들이 많아서 사태 파악이 늦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사태는 그야말로 상정 외의 상황이어서 공군도 처음 겪는 일이었고 하필 테러 몇 시간 전에 있던 훈련까지 겹쳐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투기를 다시 띄우는 것도 상당히 지체되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미 공군과 연방 항공국을 비롯한 수많은 관제 요원들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납치된 항공기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데, 문제는 미국 상공에 있는 비행기 숫자가 수만 대에 달했던 것이다.
3.3.1. 부시 대통령의 사태 파악
| |
| 백악관 비서실장 앤드류 카드로부터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80] |
"A second plane hit the second tower, America is under attack."
"두 번째 항공기가 두 번째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앤드류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부시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하며.[81]
같은 시각 플로리다 주의 한 초등학교[82]에서 아이들에게 그림 동화책을 읽어 주던 수업에 참관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83]은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으로부터 (두 번째 항공기가 제2무역센터에 충돌했으며)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America is under attack)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에도 아이들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다가 약 7분이 지난 뒤에야 교실을 떠났다.[84][85]"두 번째 항공기가 두 번째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앤드류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부시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하며.[81]
이후 조사위원회로부터 "왜 7분 동안 교실에 머물렀냐"는 지적을 받자 부시는 "학생들과 이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간을 약간 지체했다"고 해명했다.[86]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 상황에서 바로 격앙된 반응을 내서 학생들이나 이를 지켜보던 취재진 등을 당황하게 할 수 없어서 태연한 척했다고 말했다.[87] 사건 당시 백악관 측에서 "부시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즉시 교실을 떠났다"고 과장해서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 다만 소식을 듣자마자 태연한 척을 하다가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지고, 수업 참관에 집중하지 못한 채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부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직후 부시 대통령은 학교 체육관에서 9·11 테러에 관한 첫 번째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부시는 이 뒤로도 이날 수차례에 걸친 대국민 연설로 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을 안심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연설들 중 9월 11일 밤 10시에 한 연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3.4. 세 번째 충돌: 펜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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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교신이 안 되는 비행기들도 있었으며 항공국은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함과 동시에 고층 건물이나 대도시 인근을 지나는 비행기들을 감시해야 했다. 미국 공군은 만일을 대비해 전투기의 추가 출격을 준비하였고, 여객기 격추 명령을 허가받으려 했으나 절차적 문제와 윤리적 문제로 인해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동부 지역이 사실상 비행기 테러 공격에 무방비인 상황이 드러나자 미국 연방정부는 곧바로 백악관과 미국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워싱턴 D.C.와 뉴욕 일대의 모든 주요 시설과 공공기관 건물에 대피 명령을 내렸고 추가적인 납치 비행기 수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메리칸 항공 77편의 교신이 끊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지만, 항공기의 진로를 막을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고[88] 결국 또 다른 항공기가 미국 국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에 오전 9시 37분 46초[89] 충돌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정신이 나가 있던 미국 정부의 지휘 체계는 이로 인해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져 수습이 늦어지게 되었다.
| 펜타곤 충돌 재현 영상[90] |
| <nopad> |
| 펜타곤의 충돌 부분[91][92] |
| <rowcolor=#fff> 층수 | 피해 상황 | 생존 여부 |
| 5층 | 피해 없음 | 전원 생존 |
| 4층 | 피해 없음 | 전원 생존 |
| 3층 | 항공기 파편 피격 | 2명 사망 |
| 2층 | 항공기 본체 피격 | 31명 사망 |
| 1층 | 항공기 본체 피격 | 92명 사망 |
| 아메리칸 항공 77편 오전 9:37 |
결국 미국 연방항공청 국장으로 항공국에서 가장 권한이 높았던 벤 슬라이니[93]가 자신의 권한으로[94] 미국 모든 영공의 폐쇄를 지시[95]하여 국내선 항공기는 무조건 착륙, 국제선 비행기는 북미권에 들어왔다면 캐나다나 알래스카에, 북미 밖이라면 출발지나 제일 가까운 국가의 공항으로 회항해야만 했다.
3.5. UA93편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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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플라이트 93에서 묘사된 UA93편의 마지막 순간 |
|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오전 10:03 |
93편의 승객들은 테러리스트들 몰래 가족들과 연락하여 이 항공기가 자살 테러를 목적으로 납치된 것임을 알아차렸고[97] 저항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필사적으로 테러리스트들과 싸웠다. 결국 항공기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하였고 탑승객은 전원 사망했지만 그 희생으로 테러로 발생하였을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다.
승객들의 저항 덕분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9.11 테러 중 유일하게 테러범들의 목표 달성이 실패한 항공기가 되었으며, 백악관/국회의사당 파괴라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막아낸 공로로 UA93편의 승객들은 사후 미국인들에게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3.6. 세계무역센터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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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9.11 테러/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 붕괴되는 제2세계무역센터 |
| |
| 붕괴되는 제1세계무역센터 |
3.7. 테러 직후
| | |
| 뉴스위크 |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즈[99] |
| 타임 | 더 뉴요커[100] |
| CNN 뉴스 |
| 테러 당시 미국의 영공 상황 역사상 첫 SCATANA가 FAA로부터 발령되자(0:52) 순식간에 비행기들이 사라진다. |
9시를 전후한 뉴욕 WTC 테러에 이은 연쇄 항공기 추락에 뉴욕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등 주요 대도시는 사실상 소개령(疏開令)[104]이 내려졌다. 당시 생중계된 고층건물에 대한 공격에도 미 정부는 여전히 정확한 항공기 납치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주요 시 당국과 기업들이 도심을 아예 소개(疏開)하기로 했던 것이다. 테러가 발생한 오전 내내 사실상 미국의 모든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잠재 타겟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심의 학교도 자체 휴교령이 내렸으며, 이에 따라 패닉에 빠진 인근 시민들이 차량이나 도보로 도시를 빠져나가며 유령도시가 됐다. KBS 헐리웃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도심행 고속도로는 텅비었고, 외곽행은 차량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처럼 미 대륙 영공 봉쇄와 함께 전국의 주요 도시 수십 곳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으니 미국은 적어도 9월 11일 하루 동안은 전시상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7.1. 미국 정부 마비
이 테러는 또 다른 부분으로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테러의 충격으로 뉴욕이 대혼란에 빠진 것은 물론,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정부 체계 자체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비되었기 때문.부시는 지상 테러를 우려해 플로리다 학교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에어 포스 원에 올라탔지만 상당한 시간 동안 전투기의 호위 없이 버텨야 했다.[105] 부시는 당장 워싱턴 D.C로 돌아가기를 희망했지만[106] 부통령 딕 체니와 경호팀, 그리고 보좌진이 모두 뜯어말렸다. 게다가 "다음 타겟은 에인절(에어 포스 원의 암호명)이다"라는 첩보가 들어와서 에어 포스 원의 기장 마크 틸먼 대령이 조종실 입구를 헌병 장교가 경계토록 하고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대통령 경호원들은 경호원 외 모든 기내 무기를 압수한 뒤 전원 대통령 전용실 주변에 집중 배치하고 최측근들도 허가 없이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당시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본래는 각종 규정들을 지켜야 했지만 전부 다 무시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에어 포스 원에 탑승한 사람이면 대통령의 최측근이거나 신원이 입증된 언론인들인데도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듣고 이렇게까지 했을 정도로 당시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심했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도 대통령 주치의는 탑승자들에게 탄저병 예방약을 나눠줬다고 한다.
결국 루이지애나의 박스데일(Barksdale) 공군기지에 착륙하여[107]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시 에어 포스 원을 타고 좀 더 나은 설비가 갖춰져 있는 네브라스카주의 오펏(Offut) 공군기지로 이동했다.[108] 여기에서 부시는 처음으로 제대로 정부 관료들과 화상 회의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이때쯤에는 탑승객 명단 분석을 통해 알카에다의 소행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상태였고, 부시는 이 회의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착수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CIA 국장이 여기서 그날의 공격은 끝난 것 같다고 말했고, 저녁에야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복귀하여 오벌 오피스에서 다시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워싱턴 D.C.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딕 체니 부통령은 즉시 백악관 지하 벙커로 피신했다. 게다가 국무부에서도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감행되었다느니 국회의사당 및 연방대법원 건물에서도 폭탄이 터졌다느니 등의 유언비어들이 펜타곤 항공기 충돌을 전후로 대대적으로 퍼지면서 미국의 주요 정부기관들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미국 상하원 양당 지도부는 테러 직후 급히 전용 방탄차량을 타고 엄중한 호위와 함께 교외의 핵전쟁 대비 시설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의 명령으로 입법부 구성원들을 피신시킨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되었는데, 초기 혼란 와중에는 지도부가 별말없이 피신에 동의했으나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자 많은 의회 지도자들이 워싱턴으로 복귀해서 상황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하지만 벙커에서 상황을 지휘하던 딕 체니 부통령은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이에 의원들은 행정부가 어떻게 입법부의 행동을 구속할 수 있냐고 따졌으나, 체니는 '당신들을 태워다 줄 헬기는 행정부 소속이니 당신들이 아니라 헬기에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논리로 씹어버렸다.
상황이 원체 혼란스러웠던 데다가 당시 에어 포스 원에는 위성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대통령과 보좌진은 큰 도시 위를 지나갈 때나 가끔 잡히는 뉴스 영상을 보고서야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백악관 벙커로 피신한 부통령과 정부 수뇌부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냉전 시대 이후 제대로 설비 개량을 거치지 않은 벙커의 시스템이 낙후[109]되어 있던 탓에 영상이 나오면 소리가 안 나오고 소리가 나오면 영상이 안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산소가 부족해서 벙커에 있는 사람들이 졸음에 빠지는 일까지 발생했다고.[110] 통신장비에도 문제가 있어서 에어 포스 원과 백악관 벙커 간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공중에서 납치한 민항기를 건물에 들이받아 자폭 테러를 한다는 발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작전이지만, 9·11 테러 발생 불과 6개월 전에 FOX 채널에서 방영한 《엑스파일》의 스핀오프 시리즈 《론 건맨》 시즌 1 1화에 미 정부가 민항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한편으로 톰 클랜시가 9·11 이전에 집필한 《Debt of Honor(한국 출판명: 적과 동지)》라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기장이 여객기를 몰고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 중인 미국 국회의사당에 돌진해서 미 정부 요인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111][112] 이 때문에 톰 클랜시는 9·11 직후 한층 더 유명해졌고, 실제로 CNN은 사건 초기 방송에서 톰 클랜시와의 생방송 중 인터뷰를 하루에도 수차례 했다. 사건 당일 방송 그리고 펜타곤은 할리우드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들을 불러 모아 "가능한 모든 미 본토 침공 시나리오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공중 납치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를 한 시도는 이미 예전에도 있었다.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다룬 사건으로 알제리에서 반정부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에서 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파리에 날아가 에펠탑에 자폭테러를 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연료가 부족해 마르세유에 중간기착을 했을 때 프랑스 헌병대 특수부대 GIGN을 투입시켜 막아냈다. 생존자들 중에는 9·11 테러를 보고 "만약 저들이 성공했다면 우리가 저런 꼴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4. 사망자
9.11 테러 희생자 위키피디아 문서테러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고, 피해 지역도 광범위해 사상자 집계에만 수 년이 소요되었다. 뉴욕과 펜타곤에 시신 확인이 안 된 사망자도 많았고, 실종자 역시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테러 당일 구조 작업 중 사망한 뉴욕 소방국(FDNY) 소속 소방관 순직자가 무려 343명이나 되며, 뉴욕 경찰국(NYPD)과 항만청 경찰국(PADD) 소속 경찰관 또한 72명이나 순직했다. 외국인 사망자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102개국에서 사망자가 나왔으며 아직까지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외국인 사망자도 존재한다. 한국인들의 희생도 매우 큰 테러이다.
세계무역센터에 미국 지사가 위치해 있던 국내 기업들의 사무실에서 한국인 희생자 28명 대부분이 나왔다. 초기에 21명으로 알려졌던 한국인 사망자는 실종자까지 합쳐 28명으로 늘었다.
당시 그라운드 제로의 뉴욕의 도심은 9월 11일 이후 수 개월간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고 길거리 곳곳에는 동료, 친지들이 붙인 WTC에 근무하던 실종자들의 사진과 신상이 나붙어있었다. 110층의 고층 건물이 2대나 붕괴됐기 때문에 사망 확인이 된 희생자가 드물었고, 사망자 대부분이 한동안 실종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동안 길거리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인파가 넘쳐났다. 정부 입장에서도 당장 실종자들을 사망자로 확인할 수도 없었고 반년 넘게 이어진 잔해 해체작업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진 잔해 화재로[113] 신원 확인이 안 된 희생자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그만큼 DNA 확인을 통해서 수 년 만에 사망확인이 된 희생자도 많다. 전시상황에 가까웠던 당시 뉴욕의 참상을 엿볼 수 있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희생자 중 1,103명의 유해가 여전히 신원 확인되지 않은 상태[114]이며, 이는 전체 희생자의 약 40%에 해당한다.[115] 신원 미확인 유해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9.11 메모리얼 & 뮤지엄 지하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해당 보관소는 뉴욕시 검시소(Office of the Chief Medical Examiner)에서 관리하고 있다. 뉴욕 검시소는 2,753명의 희생자를 위해 확보한 약 22,000점의 유해 조각 중 약 15,000점에 대해 DNA 분석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2023년 9월 기준으로 발표했다.[116]
| <rowcolor=#fff> 국적 | 사망자 수 | |
| 2,624명 | |
| 67명 | |
| 47명 | |
| 41명 | |
| 28명 | |
| 24명 | |
| 24명 | |
| 17명 | |
| 16명 | |
| 16명 | |
| 16명 | |
| 11명 | |
| 11명 | |
| 10명 | |
| 8명 | |
| 6명 | |
| 6명 | |
| 6명 | |
| 5명 | |
| 5명 | |
| 5명 | |
| 4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3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2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 1명 | |
4.1. 최후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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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9.11 테러/최후의 메시지#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9.11 테러/최후의 메시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이유
위에서도 계속 언급되었지만 당시 미국의 항공 보안은 지금과 달리 구멍투성이였다. 탑승객의 신원 파악조차 제대로 안 한 건 물론 조종실 문도 잠그지 않았고[117] 심지어 무기로 사용될 여지가 있는 소지품까지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118]테러와의 전쟁과 9·11 테러의 전조를 감지한 정보기관들은 1990년대부터 테러를 큰 위협으로 여겨 우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비롯해 연이은 대사관 테러와 USS 콜 테러사건 등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알카에다와의 전쟁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정보기관 일선의 판단과 우려에 비해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찾아온 1990년대의 대호황에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 따위가 초강대국 미국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클린턴 행정부 전반기는 셧다운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인해 중동의 테러조직 따위에는 관심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이후 행정부가 뒤늦게나마 관심을 두려 할 시기에 이번엔 유고슬라비아에서 코소보 전쟁이 터져 모든 관심이 발칸반도로 집중되어 또다시 테러 얘기는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그러다가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등 테러에 대한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세 번이나 암살 작전이 취소되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이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국제법 위반 등의 이유로 두 눈 뜨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미리 화근을 제거할 기회를 놓쳤다는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클린턴 정권에도 9·11 테러의 책임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 당시 미국의 항공 보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도 미국의 항공교통수단은 대한민국의 기차 같은 개념으로 조종석이 달랑 커튼 한장으로 객실과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 탑승구도 티켓 미소지자도 버젓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은 자그마한 칼[119]은 문제없이 기내에 들고 갈 수 있었다. 실제로 9·11 테러의 납치 범인들도 작은 칼로 범행을 저질렀다. 미국의 항공보안에 이러한 심각한 허점들이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 개선을 요구하는 의회, 정부 보고서가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올라왔으나 무시되었다. 이러한 보안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위에서는 CIA와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이 항공국에 위험인물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보 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 CIA와 FBI를 비롯한 정보당국끼리도 정보 공유를 꺼렸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FBI가 정보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CIA는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이었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120][121] 결국 테러리스트들을 찾는 수사관은 단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났고, 이 문제점은 테러가 일어날 때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CIA는 테러 발생 후 자신들이 경고했으나 정부가 무시했다는 것만 강조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할 생각만 하다가 실속은 없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문 스캔들이다.
- 냉전 시기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인권과 법률, 각 국가의 자치권을 무시하면서까지 비밀 공작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973년 칠레 쿠데타로 대표되는 자유민주국가로서의 가치를 정면으로 무시하는[122] 활동들이 계속 벌어지자 여론의 압박을 받은 연방 정부와 의회는 휴즈-라이언 수정법, 해외정보감시법, 행정명령 12333호 등 정보기관 통제를 위해 온갖 통제 수단을 내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과도한 압박이 제대로 된 정보 활동도 방해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도이치 가이드라인'으로 인권 침해나 범죄 이력이 있는 외부 정보원을 포섭할 때 본부의 엄격한 사전 승인을 받도록 강제한 이 지침은 현장에 극심한 관료주의와 위험 회피 성향을 불러왔다. 이에 모멸감과 행정적 압박을 느낀 중동 지역 전문가 등 냉전기의 베테랑 CIA 공작관들이 대거 자진 사직하면서, 결과적으로 알카에다 내부로 침투할 현장 공작망이 완전히 붕괴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 부시 행정부의 안보 담당들도 취임한 지 1년도 안 되었다 보니 알카에다의 존재와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알카에다의 위험도가 고조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아랍 쪽 첩보 담당자들을 제외하면 미국 수뇌부들 중 그 누구도 알카에다의 위험성과 존재를 알지 못했다. 클린턴 정권의 안보 담당자들이 업무를 인계하면서 "알카에다를 경계하라"고 이야기하자 부시의 안보 담당자들이 "알카에다가 도대체 뭐요?"라고 되물어볼 정도였다. 게다가 2001년 4월, 미 EP-3E 정찰기가 중국 공군 J-8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 섬에 불시착한 이른바 하이난 섬 충돌사고로 중국과의 사이가 냉각되면서 알카에다 따위에게는 전혀 신경을 쓸 여건이 안 되었던 상황이었다.
- 당시 냉전이후 체제에서의 테러조직위협에 대한 위험성자체는 USS 콜 테러사건이후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했으나, 냉전시기를 지나며 지나치게 경직화된 정보기관들의 상상력 부족으로[123] 9.11 테러 이전까지 여객기테러의 양상인 납치이후 착륙 후 인질극 및 협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지상의 건물들을 여객기채로 들이받는 극단적인 상황에대해 상정하지 못했다. 특히 CIA등 국외활동 정보기관들은 인도 자나티당이 1998년 5월 11일 다시 라자스탄에서 핵실험을 할것을 선제적으로 탐지하지 못해[124] 도입된 대안분석기법들도 9.11 테러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 2000년 말 로버트 핸슨의 간첩 행각 발각은 9.11 테러를 목전에 둔 미국 정보 공동체, 특히 FBI를 극심한 혼란과 마비 상태에 빠뜨렸다. 내부 보안 유지와 방첩 수사에 대대적인 역량이 집중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했던 대테러 첩보 분석 및 부처 간 정보 공유 체계가 더욱 위축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9.11 테러 직전의 징후를 포착할 조직적 여력을 심각하게 잠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 FBI가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로 건물에 테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2001년 8월에 보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테러리스트들이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을 시기였다.
- 민간항공과 공군이 사용하는 용어도 달라 테러 초기에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아 혼동이 발생해 이미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 등의 혼선이 벌어졌다. 게다가 미국 공군에서는 적국의 침공만 상정하고 있던 상태라 제대로 된 초기대응도 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내륙에서 날아와 공격을 가했는데도 공군의 전투기들은 엉뚱하게도 대서양 방향으로 출격했다. 오로지 미 공군의 강력한 제공권 장악력만 믿고 있던 당시 미국의 방공체계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방공부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리 방공무기가 강력하다 해도 납치된 자국민이 타고 있는 자국의 민항기를 자국 공군이 격추시킨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릭 레스콜라라는 보안 전문가는 언젠가 비행기를 이용해서 타워에 들이받는 테러를 예견했고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릭은 당일 안전교육 중 테러가 일어나자 2,700명가량의 모건 스탠리 직원들을 구하고 사람들을 더 구하려다가 건물이 붕괴되어 죽고 말았다.
- 아랍권에서 갈수록 커져가던 반미 정서로 인해 발생한 테러 조직들이 점점 조직적이고 강력해지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를 과소평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정보기관들 간의 상호 삽질과 알력싸움, 그동안 계속 방치되어 온 미흡한 보안 규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6. 반응과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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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9.11 테러/반응과 여파#|]]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 이후
| 뉴욕의 주간지 <더 뉴요커>의 9·11 추모 표지[125] | ||
| <nopad> | <nopad> | <nopad> |
| 테러 1주년 (2002년 9월 16일 호) | 테러 10주년 (2011년 9월 12일 호) | 테러 20주년[126] (2021년 9월 13일 호) |
Never Forget
절대로 잊지 말라[127]
9·11 테러 당시 미국은 냉전도 끝나서 딱히 외부의 위협세력도 없었기 때문에 대외정책에 대한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예산의 부족으로 슬슬 해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려고 했지만 테러 이후 약 10여 년간 분위기가 반전되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치르는 등 개입정책에 나섰다가 경제위기와 함께 다시 개입이 줄어든 상태다. 물론 9·11에 가담한 알카에다 인사들은 모조리 죽거나 체포되어 끝없는 재판 중에 있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는 단박에 깨강정이 나서 흔적만 남아있게 되었으며 미국을 방해한 탈레반 역시 죽기 직전까지 맞고 명줄만 겨우 붙어 있다가 10년이 다 되어 그제서야 미국이 감당못할 전비로 인해 철수를 함으로써 다시 살아나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되었다.절대로 잊지 말라[127]
미국은 당연히 복수를 갈구하였고, 이 테러의 가장 큰 원흉인 오사마 빈 라덴을 10년 동안 추적한 끝에 은신처를 파악하여 넵튠 스피어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빈 라덴은 자신의 침실에서 데브그루 대원에게 헤드샷을 맞아 비참하게 즉사하였고, 그 시체는 망망대해에 던져졌고 개인 컴퓨터에 담아 놓은 불법 다운로드한 미제영화와 온갖 야동, 야애니들까지 일일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최악의 모욕을 당했다. 아이만 알자와히리 역시 드론의 미사일로 산산조각 나는 최후를 맞았다. 그나마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처럼 너무 일찍 잡혀왔거나, 가담의 정도가 덜하거나 철저한 협조를 통해 선처를 구한 자들만 관타나모 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등 겨우 목숨만 붙어 있게 되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는 그라운드 제로[128]라고 불리고 있으며, 건물 붕괴 후에 쌍둥이 빌딩의 철골 구조물 중 일부가 십자가 형태로 남아 있어 '굴하지 않는 미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이후 그라운드 제로의 화재는 3개월 가까이 이어져 맨하탄 도심 일대가 연기와 분진, 그리고 탄내로 뒤덮였다. 이는 폐허의 잔해가 전례없이 거대한 규모로 지하로 무너져 쌓여 진화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던 데다가 뉴욕의 소방관 상당수가 희생돼 적극적으로 나설 인력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110층에 달하는 초대형 쌍둥이 건물이 붕괴된 잔해였으니 그 규모는 기존 어떤 현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129] 이 잔해를 해체하는데만 8개월 반이 걸렸을 정도였다. 현재 여기에는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이 조성되었고 세계무역센터가 새로 지어졌다. 현장 옆의 빌딩에는 소방관 추모비도 걸려있다.
2011년에 'Park51'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슬림 센터가 근처에 생겼다. 이 사실이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모스크(이슬람교 성원)를 건립한다는 가짜 뉴스로 와전되며 미국인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무너진 건물 주변에 이슬람 성원을 건립한다는 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라는 반대 의견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대립했다. 버락 오바마는 지지를 천명했다. 이 때문에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본인의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130]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항공기 시뮬레이션들은 과거에는 표기되었던 장소[131]들이 사라진다든가 하는 경우들이 생겼다. 이후 조금씩 상황이 진정되며 도시전경 같은 경우 전문적으로 도시전경이나 공항 시너리를 제작하는 업체들이 판매하고 있고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에 와서야 Bing 지도 기반으로 고층건물 풍경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사건 당시 CNN을 비롯한 주요 보도 채널에서 순간마다 쏟아지는 관련 보도들을 소화하기 위해 뉴스 내용을 실시간 자막 스크롤 형식으로 내보내야 했다. 이후 세계의 여러 보도 채널들이 자막 뉴스 보도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테러 2개월 후 또다시 뉴욕, 그것도 시가지인 퀸즈에서 항공기 사고가 일어났다. 다만 이쪽은 테러가 아닌 단순 추락사고였다. 하지만 테러의 여파로 미국은 다시 준계엄령을 선언하고 뉴욕의 교통이 통제되기도 했다.[132]
또한 서방권에서 이슬람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지는 데 기여한 사건이기도 했다. 이전만 해도 이슬람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처럼 그저 중동 쪽의 신비주의적인 종교 정도로만 여겨졌으며 딱히 광기 서린 극단주의 사상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오히려 20세기 냉전 시기에는 미국이 대놓고 공산주의를 막겠다고 반공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하고 대놓고 협력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빈 라덴과 알카에다부터가 대놓고 바로 이 미국의 협력과 지원을 통해 성장한 단체다. 놈 촘스키는 이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에 영향을 끼쳤다면서 비난했다.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남아 있는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차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형을 확정하는 것은 물론 재판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데, 용의자 체포부터 심문까지가 전부 불법으로 자행되었기 때문. 용의자를 비행기로 납치한 뒤, 온갖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해 얻은 증거라서 이것을 증거로 사용하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법불신을 일으킬 뿐만이 아니라 판례법주의인 미국의 판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진노를 일으킨 이들을 사법거래하기에는 자존심이 용서를 하지 못해서 어떻게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태로, 20여 년간 재판장만 8번 바뀔 정도로 답이 없다.
이후 미국 정보부는 큰 테러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을 경우, 적국이라도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정보를 넘겨주는 편이다. 여론이 급격히 바뀌어 적국 정부가 극단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게 예방하려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7.1. 끝나지 않은 피해
9·11 테러 사건 이후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흘러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비행기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 빌딩을 들이받아 폭발하고 붕괴되는 그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어 전 세계 방송에까지 송출되어 나가고, 그 현장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은 진짜로 그 광경을 눈으로 직접 봐버렸으니 이는 사건에 직접 연루된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그걸 지켜 본 모든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보안 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나 수습을 위해 현장에 다가간 각종 구조대원들은 다량의 유해 가스와 먼지를 마신 후유증에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다.[134] 9·11 테러 당일 사망자보다 각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사건 발생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시 현장의 시민들이나 정부기관 관계자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지금도 이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가고 있고 이로 인한 순직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소방 및 구조, FBI 및 뉴욕경찰 등 관련자들의 순직 기록을 보면 9·11 테러 당시 구조 작전 수행으로 인한 순직으로 기록된 사망이 현재도 나오고 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이에 의해 158가지 암이 발병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56가지에 불과하며, 치매,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자살 등 수많은 피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에서 보험 처리도 잘 안 해주기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인터뷰(연령 제한 주의)
9·11 테러 이후 1년간 미국의 무슬림 400명 이상이 애꿎게 보복성 증오범죄를 당했고 그 뒤로도 매년 100명가량이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 이슬람이랑 아무 관련 없는 시크교도들까지 터번을 쓴다며[135] 공격당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로 인해 악화될 무슬림계 미국인들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서 9·11 테러 직후인 9월 17일 워싱턴 D.C의 모스크를 방문해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무슬림계 미국인들 역시 소중한 미국의 국민이다"라고 연설하였다.
피해자가 워낙 많다 보니 무슬림의 피해 사례도 있는데, 특히 미 의회에서도 언급된 사례로 파키스탄계 미국 귀화인으로 뉴욕 경찰 견습생이 된 이슬람 신도 모하메드 함다니의 사례도 있다. 초기에는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의료가방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어 영웅으로 명예 회복되었다. #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4년이 지난 2025년에도 아직도 유해 신원 확인이 진행 중이다. 2023년 9월에는 사망한 1천648번째, 1천469번째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 세월이 지나면서 차세대 DNA 염기 서열 분석 등 법의학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였지만, 여전히 희생자의 40%인 1,103명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7.2. 후속 테러
9·11 테러의 재현, 모방을 노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136]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서 많은 테러 시도가 저지되었지만, 일부는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다. 굵직한 것만 해도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2015년 튀니지 수스 테러,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등이다.이들의 주 목적은 테러를 통해 사회를 이슬람과 반-이슬람으로 갈라 놓고 세속주의 이슬람을 반-이슬람 세계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흑백논리로 몰아세워 궁극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 중심의 세계로 재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국의 증오심을 이용해 이득을 얻은 테러리스트 단체는 많았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잠시나마 실현된 것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리는 교리대로 어겨가면서 같은 무슬림들도 마구잡이로 죽여대는 ISIL의 모순이 밝혀지고, 이라크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토벌 작전 등을 거치면서 이슬람 세계주의는 그 위세가 크게 줄었고 탈레반조차 2021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재수립한 이후에는 외세는 간섭 말라는 식의 지역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다. 현재 탈레반은 자신들이 테러 단체라는 것조차 부정하며, 오히려 호라산 이슬람 국가 토벌에 협조하겠다고 세계에 손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미국 다음으로 테러 피해가 가장 컸던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가장 강하게 내린 조치도 무슬림 공동체를 정보 당국에서 더 철저히 감시해서 테러분자들을 사전에 색출해내는 것과[137] 테러를 선동하는 자들은 법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사회와 격리시키는 정도다.
7.3. 2014년 후유증 사기 적발
| CBS의 9·11 후유증 사기 적발 보도 영상 |
2014년 미국의 전직 뉴욕시 경찰관과 뉴욕시 소방관 등이 9·11 테러 수습과정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4억달러(당시 기준 약 4300억원)라는 거액의 장애연금을 챙겼는데 이 후유증이 허위로 드러나 106명의 관련자가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최대의 연금 관련 사기 사건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주범에는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변호사 레이먼드 래벌리(Raymond Lavallee, 적발 당시 연령 83세), 토머스 헤일(Thomas Hale, 적발 당시 연령 89세), 전직 뉴욕 경찰관인 조셉 에스포지토(Joseph Esposito, 적발 당시 연령 64세), 존 미네르바(John Minerva, 적발 당시 연령 61세)가 주범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미국 당국이 당시 급증한 사회보장보험 관련 사기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는데, 여기에서 적발된 전직 경찰관과 소방관은 헬리콥터 비행을 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블랙잭 게임도 즐겼으며 오토바이와 제트스키를 타고 무술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이도 있었으며, 외출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며 연금을 타낸 전직 뉴욕 경찰관이 낚시여행에서 잡은 대형 물고기를 안고 배 위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이 적발된 것이다.
8.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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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9.11 테러/도시전설#|]]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자잘한 사례를 통해서 실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음모가 존재한다는 식이라 그다지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반면, 9·11 사건은 역으로 정황 자체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 정황을 입증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사실로 받아들였다.[138]
음모론은 크게 2가지인데, '부시 행정부의 자작극이었다\' 설과 '자작극은 아니었지만 미리 테러 정보를 입수하고도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방관했다\'는 설이다.
당시 음모론이 설득력을 가졌던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대사건이었고 전 세계에 극적으로 생중계되었던 점.
-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으로 항공기가 충돌하고 거대한 건물이 한순간에 붕괴되는 장면을 TV 생방송으로 목격했던 이들이 이 충격적인 장면이 사실이라는 것을 수용하기 어려워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부시와 미국 보수 매파의 불리했던 정치적 입지가 극적으로 반전된 점.
- 음모론이 생겨나게 된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당시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 첫 해였고(2001년 1월부터 임기 시작) 중간선거 또한 2002년도에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굳이 정치적으로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어떤 정치인이건 하이재킹으로 민항기를 자국 빌딩에 자폭시킬만큼 무모하진 않다. 물론 미국 정부가 갱단이나 마약 밀수업체, 반군한테 무기나 자금을 지원한 사례는 많다. 이란-콘트라 사건이 대표적.
- 통킹만 사건 같이 미국이 실제로 여론 전환을 위해 조작한 사건이 정보 공개를 통해 대중에 많이 알려진 점.
- 노스우즈 작전 같이 실제로 미국민을 희생시켜서 전쟁 명분을 얻으려 한 사건이 공개.
- 부시 일가가 오사마 빈 라덴 일가와 친분이 있었던 점.
- 빈 라덴의 집안은 '사우디 빈 라덴 그룹'을 소유한, 한국으로 치면 재벌가였고, 부시 일가와는 CIA 국장, 부통령, 대통령을 역임한 아버지 부시 시절부터 친분을 맺어오고 있었다. 특히 아들 부시의 석유 관련 사업에 큰 돈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테러리스트로 전직한 오사마와는 오래 전부터 절연한 상태였다. 오사마 한 명 때문에 가문 구성원 전체가 영문 이름을 'Laden'(라덴)에서 'Ladin'(라딘)으로 개명했다.
- 오사마 빈 라덴과 CIA와 연관이 있었다는 점.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아프간의 무자헤딘 반군을 CIA가 지원했는데, 오사마 빈 라덴도 그러한 지원을 받은 인물 중 하나이다. 즉 "빈 라덴이 CIA의 훈련을 받았다"는 건 엄밀히 말하자면 팩트이다. 물론 당시는 소련이 멀쩡히 살아있던 냉전 시절이었고 빈라덴은 반미 테러리스트가 되기 전이었다.
- 항공기에 탄 희생자들의 명단이 없는 점.
- 부시가 군수 및 석유업체의 지지를 받았던 점.
- 9·11 테러로 인해 강행할 수 있었던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러한 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된다.
- 9·11 직전 관련주 트레이드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특히 풋옵션가격이 기존의 몇 배로 올랐다고
이런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설마 부시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자국민들을 희생시키겠느냐 정도 수준이었고 당시 미 정보부가 사건 이후 보안을 위해 제한된 정보만 공개했던 점[139], 9·11 테러 직전에 보여준 너무나도 허술한 모습이 국회 청문회에서 낱낱이 밝혀지면서 이후 미 정부가 내놓는 반박 자료가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한 점도 음모론이 탄력을 받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후 석유 때문에 벌이는 추악한 전쟁이라는 국내외 비난 여론과 막대한 재정 지출을 감수하고 부시 정권이 적극적으로 강행했던 이라크 전쟁[140][141]에서 자신의 지지 세력이었던 군수업체와 석유기업들의 배만 불린 채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 무기가 실제로는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음모론이 지속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게 된 요인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것이 《루스 체인지(Loose Change)》 다큐멘터리다. 아래는 이들이 주장하는 음모론과 이에 대한 반박이다.
- 비행기에 부딪히지 않았는데 세계무역센터 7번 건물은 왜 무너졌나?
- 철골로 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어떻게 비행기 충돌 하나만으로 자유낙하 속도로 무너졌나?
- 시속 800~950km 항공기의 충돌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또한 충돌과 동시에 4만 리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항공유가 유출되면서 폭발했고 건물 안에 남은 항공유도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연소되면서 건물이 전체적으로 약해져 무너진 것이다.(9.11 테러/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문서 참조) 또한 붕괴될 때 밖으로 튀어나온 외벽 파편들만 보면 아무런 저항이 없으니 자유낙하 속도와 얼추 비슷하게 나오지만 실제 외벽 파편들이 땅에 닿았을 때 아직 건물은 30 ~ 40층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가 붕괴가 꼭대기층인 110층이 아닌 70 ~ 80층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낙하 속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 붕괴된 층보다 20 ~ 30층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편들은 대체 무엇인가?
- 건물 내부가 먼저 무너졌기 때문에 나온 파편들이다. 건물 내부 코어가 먼저 무너지고 그 층들에 있는 수많은 배선, 수도관, 사무용품 등등이 코어와 함께 밖으로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 왜 세계무역센터의 건물주(래리 실버스타인)는 9·11이 발생하기 6주 전에 35억 달러짜리 테러보험과 함께 건물을 임대계약을 했나?
- 6주 만에 테러를 당한 것은 정말로 운이 없던 것이고 테러 보험을 든 것은 세계무역센터는 이미 1993년에 큰 테러를 한 번 당했기 때문에 든 것이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문서 참조.
- 9·11 이전 몇 주 동안 예고에 없던 대피훈련은 무엇인가?
- 전술했듯 이미 세계무역센터는 93년에 초대형 폭탄 테러를 당한 건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훈련은 매우 정상적인 훈련이다.[142]
- 건물 내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또 다른 폭발음을 들었다는데? 특히 소방관들은 건물 안 밝은 섬광을 보았다는데?
-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1,00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열기에 녹은 비행기 동체(알루미늄)가 층에 있던 구멍 곳곳으로 새나가면서 하층부에 있던 물과 만나면서 산화알루미늄이 만들어졌고 이 상태에서 엄청난 열과 에너지를 내뿜어서 폭발처럼 느껴졌다는 가설이다.
- 왜 펜타곤 충돌 현장에서는 보잉 757기 파편이 없는가?
- 비행기가 스쳤다는 펜타곤 잔디밭에는 왜 아무 흔적이 없나?
- 펜타곤에서 엔진이 들이받았을 자리는 왜 멀쩡한가?
- 위 3개 음모론은 펜타곤 피해상황을 찍은 많은 사진들이 소방수나 짙은 연기, 화재에 가려 엔진과 날개 충돌 부위가 제대로 안 보였기 때문에 크게 제기된 설이다. 비행기 파편은 사진으로 전부 나올 정도로 많이 나왔으며 흔적의 경우에는 실제로는 날개, 엔진이 있던 자리도 크게 충격을 받아 그 부위에 흔적이 남을 정도로 부서졌고 기수(機首)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충격이 가해져 날개가 살짝 안쪽으로 꺾이면서 충돌했기 때문에 날개 및 엔진이 들이받은 자리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 펜타곤 직원들은 사고 당시 군용 화약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데?
- 미국 정부는 왜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나?
- 블랙박스를 회수했으면 그것이 더 기적이다. 세계무역센터 충돌 같은 경우에는 충돌 이후에도 1,000도가 넘는 화염이 1시간가량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게다가 2개의 건물이 붕괴된 충격을 생각하면 블랙박스는커녕 잔해를 찾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 펜타곤의 경우에도 충돌 이후 무려 40시간이나 화재가 지속됐는데 이러한 열기에서 멀쩡하게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경우에는 건물이 아닌 평지에 추락하여 화재가 금방 진압되어 FDR(비행정보기록장치), CVR(조종실 음성 녹음장치) 모두 회수에 성공하였고, 2006년에 민간에 모두 공개하였다.
- 흔적 없이 사라진 UA93편은 어디로 갔을까?
- UA93이 추락한 곳이 땅이 진흙에 가까운 광산 지역이라 대부분의 파편이 지하 깊숙이 박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기의 잔해가 매우 많이 남았으며 유골도 발견되었을 정도로 실제로는 많은 파편이 발견되었다.
-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당일 주요 각료들의 비행 탑승을 왜 금지시켰는가? 미 공군은 왜 비행기가 납치된 시각으로부터 2시간 동안 늑장을 부렸나?
- 정말 우연히도 9월 11일에 NORAD의 연례 훈련인 '글로벌 가디언 훈련'이 있었다. 그 때문에 훈련 상황을 위해 주요 각료들이 사령부에 모여 있어 훈련을 진행하였다. 또한 납치된 비행기들이 트랜스폰더를 끄고 추적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어 비행기를 찾기도 어려웠으며, 비행기를 찾은 시점은 이미 테러가 발생한 직후 상황이었으며 처음 겪는 상황에 공군 비행기들도 대서양 쪽으로 발진하여 더더욱 대응이 어려웠다.
- 거짓 전화통화 // 거짓 빈라덴 비디오 // 거짓 납치범
- 초기 혼란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공개된 납치범, 전화 통화, 빈 라덴의 2001년 12월 비디오 등은 나중에 9·11 테러 위원회 연구로 실제 존재했음이 밝혀졌으나, 언론에서 속보 보도로 내놓으면서 급하게 내놓느라 인명을 틀리게 적은 경우가 나중에 음모론으로 공격받은 사례이다.
- WTC 지하에 숨겨져 있던 1,600억 달러의 금괴 중 2억 달러어치만 발견한 점.
- 4WTC에 있던 금괴 양 자체가 잘못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는 2-3억 달러 어치만 있었는데 음모론자들이 언론 보도에 인용된 수치를 단순히 합친 결과 엄청난 양으로 불어난 것.
- 제트 연료의 연소로는 (쌍둥이 빌딩의) 철제 골조를 녹일 수 없다(Jet fuel can't melt steel beams).
- 9.11 테러 음모론 중 가장 유명한 음모론이며, 요약하자면 말 자체는 사실이나 녹지 않아도 충분히 약화된다. 음모론자들은 철근의 녹는점은 대략 1,400도 정도이고 제트연료의 연소온도는 900도 정도인데 왜 철근이 죄다 녹아 건물이 무너졌냐, 화재를 대비해서 철근에는 화재대비 코팅 처리가 되어 있을 텐데 왜 화재로 무너졌냐고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실제로는 시속 수백 km로 여객기가 건물에 부딪혀 기둥, 바닥, 여객기 등 온갖 자재들이 순식간에 파편화된 상태에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기 때문에 충돌층의 대부분의 코팅이 벗겨졌다. 또한 철근이 녹는 온도까지는 도달하기 힘들지만, 건물을 무너뜨리려면 녹게 하지 않아도 그냥 열을 가해서 약하게 만들기만 해도 된다.[143] 쉽게 예를 들어 종이를 돌돌 말아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책을 얹은 상태에서 굳이 그 종이기둥을 치우지 않고 기둥에 물을 뿌려 약하게만 만들면 책의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144] 그럼 철강은 약해져서 건물이 무너졌다고 치고, 저기 흘러내리는 붉은색의 금속성 액체는 무엇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상술한 것과 같이 비행기 동체가 녹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동체는 대부분 초듀랄루민이라는 알루미늄계 합금이 수톤 사용되는데 안타깝게도 듀랄루민은 알루미늄이 주재료답게 녹는점이 660.4도로 금속 중에서는 매우 낮아 화재에도 충분히 용융된다. 애초에 그냥 녹은 금속이 보인다고 다 쇳물이라고 생각하는 점도 음모론자들이 전문가를 자처하기엔 수준이 너무 낮다. 재료공학계열 전문가가 듣는다면 헛웃음이나 치게 할 내용.
한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음모론들 중 하나였으나 screw loose change 같은 반박 영상도 나왔고 다른 반박 의견들도 나와서 《루스 체인지》를 제작한 딜런 에이버리는 그 의견들에 대해 반박하면서 논쟁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서 미국 인터넷에서는 음모론을 비꼬는 뜻으로 Jet fuel can't melt steel beams가 밈화 되기까지 했다.
'9·11 테러 직전 찍은 사진'이라며 한 남자가 쌍둥이 빌딩 옥상 위에 올라가 있고 그 뒤로 비행기가 날아오는 사진이 떠돌아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중에 합성으로 밝혀졌다. 덕택에 이 사진은 Tourist guy라는 이름으로 밈이 되어 버렸다.
이외에도 마약과 관련된 루머도 역시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 공급량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대마 역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UN에서도 당해년도 마약 시세를 알아보는 데 일단 아프가니스탄부터 언급을 할 정도로 마약 생산 대국이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에 문제가 생기면 전 세계의 지하경제가 초비상에 돌입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매우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탈레반[145]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이슬람법에 어긋난다고 마약 생산을 금지했던 것이다. 물론 금한다고 쉽게 걸려들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큰 타격은 받지 않고 있었지만 탈레반은 완전 근절을 위해 UN과 협력하여 아편 생산을 무려 90% 이상 줄여 버렸다. 이는 안티드럭 캠페인 역사상 가장 큰 쾌거라고 모두가 기뻐했는데, 이게 바로 2001년이다. 그리고 이 일 이후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 미국은 아프간을 지목해 탈레반을 몰아냈는데 미국이 점령하고 나서 아편 생산량은 순식간에 원상복구되어 지금까지도 왕성히 아편 생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2004년에 출간된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1권 초판 p247에선 이 테러의 원인을 '유대인의 미국 장악'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애당초 WTC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 있고 이마저도 유대인들이 장악한 터라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07년에 미국의 유대인 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 등이 항의를 하면서 저자가 사과한 뒤 다음 판본에서 지워졌고, 대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장됐다.
한국에는 아직도 9·11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146]
2000년도에 출시된 게임인 데이어스 엑스는 음모론과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비밀조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 주인공이 속한 대테러 조직 UNATCO가 설립된 건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테러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게임 용량 문제로 삭제된 것을 테러 때문에 날아갔다고 설정을 붙인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은 이 일이 미국 정부의 자작극, 즉 Inside job이라고 생각한다.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라는 설정도 그렇고 어떻게든 앞을 내다본 게임이다.
9. 기타
9.11 테러 당시 출동하던 소방관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자세한 내용은 게리 박스 문서 참고.- 9.11 테러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2006년까지도 매일 수백 통의 우편물이 사라진 세계무역센터의 우편번호로 전송됐다고 하며 우편물들은 전화요금 고지서에서부터 보험증서, 와인클럽 홍보물, 대학 동창회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세계무역센터의 우편물을 취급하는 한 우편배달부는 이러한 우편물들을 보고 "언젠가는 그들도 우편물이 전달될 건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며 "다만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우편물들은 보낸 사람에게 반송되거나 일부 기업에선 사람을 보내 우편물을 가져갈 때까지 우체국이 이를 보관하도록 비용을 지불하였으며, 나머지는 파쇄되었다고 한다. 세계무역센터에 지금도 하루 수백 통 우편물
- 사건 발생 이후 [dday(2001-09-11)]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테러 사건들 중에서는 많은 피해를 낸 사건이기도 하다. 9.11 테러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많은 일반인들에게 테러 상황이 장기간 노출되었고 이를 생생하게 기록한 현장 사진 및 영상들이 매우 많다는 점. 보통 일반적인 '테러'는 총기나 폭탄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관련 영상이 많이 남기 힘들다. 폭탄 테러는 순식간에 피해가 발생한 뒤 빠르게 수습에 들어가며, 총기 같은 경우 테러범들 본인이 직접 피해를 주기 때문에 생생한 영상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9·11 테러는 비행기 충돌과 동시에 범인들은 즉사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가 빌딩에 충돌한 후 화염에 휩싸인 모습과 구조 요청을 하는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해야 했다. 때문에 테러 현장을 목격하거나, 관련 영상을 보고난 뒤 PTSD를 호소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 테러 사흘 전에는 30년 가까이 미국의 수사망을 피해다니던 또 다른 항공기 납치범이 체포되었다. 1947년생 흑인 남성 패트릭 크리튼 (Patrick Critton)은 교사였으며, 또한 1960년대 중반과 말에 걸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블랙 파워 계열 단체 중 하나인 뉴 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New Afrika)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흑인 민족주의 단체 중에서도 급진적이었고, 분리주의를 요구하며 은행 강도 등을 저지르고 다니는 등 폭력성도 매우 높은 단체였다. 패트릭을 포함한 5명은 1971년 7월 29일 어퍼 맨해튼의 은행신탁회사 (Bankers Trust) 지점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과의 총격전에 휘말렸는데#, 본 기사에 언급된 부상을 입은 채로 탈출한 강도가 바로 패트릭이었다.[147] 패트릭은 캐나다로 탈출했다가 같은 해 12월 26일 온타리오 주 썬더베이에서 토론토로 향하던 에어 캐나다 932편을 납치해 쿠바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캐나다 형법에 항공기 납치에 대한 죄목이 없었으므로, 패트릭은 송환되지 않고 8개월형을 선고받은 후 10주 만에 풀려나 쿠바에서 몇 년 더 지내다가 1974년 탄자니아로 갔다.
교수 자리도 얻고 결혼해 자녀도 둘 얻는 등 탄자니아에서는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던 그였으나, 1980년대 후반 들어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1991년 미국 여권을 재취득해 1994년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교사 직업을 다시 얻은 그는 SAT 대비반 수업과 흑인 비행청소년들을 교화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비행청소년과의 일화가 온라인 신문에 났고 이를 온타리오주 필 지역경찰 (Peel Regional Police) 미제사건반에 근무하던 도널드 조겐슨 형사가 보게 된다. # 곧 이어 캐나다 경찰과 NYPD의 합동수사가 시작되었고, 패트릭이 납치했던 항공기에서 마신 판타 진저에일 캔에 남은 지문이 1971년 범행 이전 교사로 입직하며 작성된 교육위원회 프로필에 찍은 지문과 일치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기사에 나온 패트릭 크리튼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신중을 기한 NYPD는 패트릭의 출퇴근 경로를 따라 그를 미행하다가 실종된 아동을 찾는 척하며 그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패트릭은 사진을 건네받고 거기에 지문을 남겼으며, 경찰은 이렇게 수집한 세 번째 지문이 나머지와 모두 일치함을 확인해 2001년 9월 8일 토요일에 그를 체포했다. 인정신문(arraignment)이 열린 9월 10일에서야 이 소식이 알려져 9월 11일 조간에 일제히 보도되었고[예시], 해당 소식이 적힌 신문지가 세계무역센터 붕괴 후 잔해 수색팀이 남긴 영상에서도 발견되었다. 이후 패트릭은 맨해튼 연방법원에 보석금 없이 구속되었으며, 캐나다로 송환되어 납치 혐의로[149] 5년형을 선고받고 2년 후 가석방되었다.[150] 2022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 팟캐스트팀의 취재에도 응했다. -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수상쩍은 행동을 한 이스라엘인 5명이 체포된 적이 있다. 차를 타고 온 이들은 무역센터를 지켜보던 중 비행기 테러로 무너지자 춤을 추면서 환호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체는 이스라엘의 첩보원들로 잠정 결론 났다. 기사 이들이 환호한 이유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급격히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도 반유대주의자들이 9.11 테러는 유대인 내지는 이스라엘이 일으켰다는 떡밥의 증거로 써먹는 중이다.[151]
- 9·11 테러 생존자 이동훈씨 7년 만의 회고[152][153]
- 유명한 테러 생존자들로 뉴욕 뉴저지 항만청 경찰관인 존 맥러글린(John McLaughlin) 과 윌 히메노(Will Jimeno)가 있다. 이들은 붕괴 직전에 WTC에서 구조 작업을 하다가 붕괴 조짐을 느끼고 대피하려 했지만, 건물이 붕괴하여 장애물과 파편에 매몰되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두 사람은 살아남았으며, 끝내 구조되어 생환하게 되었다. 이들의 실화는 올리버 스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와 마이클 페냐 주연의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제작되었다.
- 또 다른 유명한 생존자로는 더스트 레이디(The Dust Lady)가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테러 당시 북쪽 타워에서 근무중이던 마시 보더스라는 여성이다. 당시 그녀가 있던 곳은 81층이었으며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난 지점에서 불과 12층 아래였다. 충돌 직후 마시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가 1시간만에 탈출했으며, 다른 건물로 피신하던 그녀를 한 AFP 소속 기자가 찍으면서 9.11 테러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마시 보더스는 별 부상없이 생존했지만 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PTSD와 우울증에 시달렸고,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고생하다가 14년 후 위암으로 사망했다. #
- 마이클 잭슨은 테러 당일에 WTC에서 미팅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자명종이 고장 나서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고장 난 자명종으로 늦잠을 잔 것이 천운이었던 것. 이후 마이클 잭슨은 추모곡 <What More Can I Give>를 발표하였다.
- 두 타워 사이의 광장에서는 당일에 개최할 행사를 위한 사전 작업을 하면서 Muzak사에서 제작한 잔잔한 배경 음악들을 틀어놓았는데, 1WTC에 비행기가 충돌하자 음악이고 뭐고 끌 새도 없이 다들 대피하였고, 그로 인해 지옥도가 펼쳐지는 현장에 현장의 상황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평화로운 재즈 음악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 이 음악은 2 WTC가 붕괴되고 나서야 멈췄다.
- 한국서 활동하는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친구의 부모님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학교 교사는 차마 그 사실을 직접 전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라고 했다고. 기사
-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기 불과 몇 분 전에 탈출해 기적적으로 생존한 도미니카인 펠릭스 산체스(Felix Sanchez)가 불과 2달 뒤 발생한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 2001년,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구전 동요[154]인 내가 제일 존경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해 테러리스트 찬양곡이 나돈다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기사, 기사 2
- 용산국제업무지구에 계획되어 있던 마천루 중 하나인 더 클라우드의 디자인이 당시의 세계무역센터를 연상시켜서 논란이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더 클라우드 문서의 3번 문단 참고.
- 참사 후 복구와 수습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됐다. # 참사 10년이 경과한 뒤에도 인근에서 미처 수습되지 못한 건물, 항공기의 잔해는 물론 심지어 사람의 뼛조각까지 발견됐다. # # 유해 확인 역시 진행 중이다. # 납치범들의 유해도 일부 발굴됐다. #
- 인터넷 검열이 현재와는 달리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9·11 테러 당시 타워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람들을 방송 카메라가 찍었던 고화질 영상들이 우후죽순 인터넷에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가는 상황이 있었다. 이중 몇몇은 땅에 부딪히는 장면을 편집한 채 다시 올라왔지만, 일부는 완전히 유실되었는데, 이중 대부분이 불건전한 제목으로 올라왔다가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LOL SUPERMAN 문서 참고. 롤 슈퍼맨은 2006년 목격담 이후 당최 실마리가 잡히질 않아 실존하지 않고 만델라 효과로 여겨졌지만 FBI의 증거 보관소에 비슷한 영상 자체는 보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 미국의 프로레슬러 젤리나 베가의 아버지가 9·11 테러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세계무역센터 103층의 투자회사 전화 상담사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 미국 역사상 최초로 모든 항공기의 운항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대기의 질이 며칠 동안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졌는데, 이 때문에 환경 다큐멘터리에서 항공기의 해로움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인용하기도 한다.
- 9.11 테러 이후 약 12개월 동안, 테러에 대한 공포로 인해 미국에서 항공기 대신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비행기 사고보다 자동차 사고의 발생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오히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평소보다 약 1,600명 더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만약 매달 한 번씩 비행기 테러가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한 달에 네 번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테러로 사망할 확률은 1/540,000이며, 매년 한 번씩 비행기 테러가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그 확률은 1/6,000,000이다. 이는 미국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인 1/7,000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
10. 대중매체
21세기 세계사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보니 하단에 적힌 것 이외에도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등장했다.10.1. 게임
- 08:46: 오큘러스 리프트 전용으로 나온 게임으로 9·11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게임으로서 9·11 당시 북쪽 타워 내부 상황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엔딩이 탈출해 생존하는 게 불가능하고 질식사해 죽거나 떨어져 자살하는 결말[155]밖에 없어서 영 좋지 못한 평을 듣고 있다. 생존하는 결말이 없는 것은 9·11 당시가 얼마나 비참하고 살인적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112 오퍼레이터: 사건사고가 발생한 곳에 경찰, 소방, 구급 유닛을 배치하는 지령요원 시뮬레이터 게임으로 2차 창작 모드로 뉴욕에서 게임을 시작하면 9·11 테러 신고가 들어온다. 끝없이 들어오는 신고전화와 사건들이 당시 911 지령요원의 심정을 체감할 수 있게 한다. #
10.2. 서적
10.2.1. 소설
- 붉은 하늘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156]: 아버지를 9·11 테러로 잃은 9살 소년이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페이지가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든지, 한 장에 한 문장만 있거나 아예 빈 종이라든지, 텍스트가 겹쳐 알아볼 수 없다든지, 특히 결말부의 사진[157]을 리와인딩하는 기법 등이 특이점이다.
-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 2019년을 살아가던 한국인이 조지 W. 부시에게 빙의하는 대체역사물 웹소설. 이미 두 번째 WTC 충돌이 일어나 앤드루 카드에게 사태를 보고받은 시점에 빙의해서 9·11 테러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빙의한 주인공이 보고를 받자마자 빠르게 국회의사당과 펜타곤에 대피 명령을 내리고 비행 중인 모든 비행기의 조종실 문을 잠그도록 지시해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테러리스트들이 조종실에 들이닥치기 전에 조종실 문을 잠가 회항 후 비상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비상착륙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서 생포한 테러리스트들을 심문한 결과 이들은 백악관을 노렸다고 한다.
- The South Tower: An alternate history of 9/11: The South Tower는 쌍둥이 빌딩 중 남쪽 빌딩인 제2세계무역센터를 의미한다. 제2세계무역센터에 면접을 보러 왔다가 참극에 휘말리게 된 주인공은 대피 도중 사망하게 되면 충돌 직후 시점으로 돌아오는 타임 루프를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충돌 이후 붕괴까지의 56분의 시간이 반복되는 끊임없는 루프를 겪으며, 주인공이 대피와 사람들의 구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은 대체역사물이다. 민감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인해 평가가 좋다.
10.2.2. 논픽션
- 《문명전쟁》[158]
- 《102분》[159]: 세계무역센터에서 항공기가 충돌한 후 북쪽 타워가 붕괴되기까지 102분간 벌어진 일을 그린 논픽션이다.
-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160]: 9월 11일 테러 당일부터 며칠 간 이어진 미국의 SCATANA 발령으로 인해 캐나다 뉴펀들랜드래브라도주 뉴펀들랜드 섬 갠더 공항에 대서양을 횡단하던 수많은 여객기들이 갑작스럽게 착륙한 후[161] 한적한 소도시인 갠더市와 그 주변 마을에 수만 명의 탑승인원들이 몰리며 일어났던 실화를 다룬 논픽션. 후술할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겹치는 등장인물들도 있지만 각자 조금씩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2021년 뮤지컬의 인기에 힘입어 코로나 시기 즈음의 등장인물들의 근황을 추가한 개정판이 한국에서도 발간되었다.
10.3. 만화
- 마블 코믹스: 테러 당시(2001년 11월) 출판된 J. 마이클 스트라진스키가 쓰고 존 로미타 주니어가 그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36은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루크 케이지 등 여러 히어로들이 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출하는 내용으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162] 사고 20주년인 2021년 마블은 조 퀘사다가 쓰고 존 로미타 주니어가 그린 만화 The Four Fives(2021) #1을 출판했다. 이 만화는 스파이더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고 역시 사고를 추모하는 내용이다. 이 만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8) #73, 데어데블(2019) #34, Excalibur #23, Ka-Zar: Lord Of The Savage Land #1, X-Force #23에 추가로 수록되었다.[163]
- 네모바지 스폰지밥 '제발 한 입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징징이가 게살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두 번이나 불타 죽을 뻔한 장면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9·11 테러를 연상시킨다고 미국에서는 이 장면이 잘렸다.[164]
- 릴로 & 스티치 개봉 전에 하마터면 디즈니가 대차게 욕먹을 뻔했다. 개봉이 2002년이었을 테니 9.11 테러는 2001년이었고 원래는 비행기를 타고 도시 한복판에서 추격전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스티치가 해당 사건을 연상시킬 게 뻔하기 때문에 개봉 연기까지하면서 전면 수정하였다. #
- 더 보이즈(만화): 더 보이즈의 세계관에서도 9.11 테러는 일어나지만, 세븐이 출동하여 테러의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현실의 9.11 테러와 달리 대통령인 다코타 밥이 상황통제를 정확히 해서 무난히 대처되나 싶었지만[165], 세븐을 국가 수호 세력으로 사용하고 싶었던 보우트 아메리칸의 꼭두각시인 부통령 빅이 다코타 밥을 소화기로 기절시켜 지휘체계상 권한을 빼앗아버린다. 그리고 빅은 요격을 위해 출동한 공군 전투기를 모조리 회항시켜 세븐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다[166]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이 없었던 세븐은 무작정 비행기 안으로 돌격하는 무식한 전술을 사용했고, 유일하게 비행기 안에 진입한 건 홈랜더와 퀸 메이브 뿐이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항공기를 다룰 줄 아는 유일한 멤버인 블랙 누아르는 진입에 실패한 관계로 결국 비행기는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메이브는 구해달라고 매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뚫고 피칠갑이 된 채 나와버려서 PTSD로 인해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다. 홈랜더는 최후의 수단으로 추락하는 비행기의 후면을 정면타격해 비행기를 수평으로 만든다는 발상을 하지만, 당연히 힘조절에 실패하고 비행기는 두 동강이 나면서 이 과정에서 세븐의 멤버인 마라톤은 머리가 날라가 사망한다.
박살난 비행기는 브루클린 다리에 그대로 들이박혀, 탑승객과 다리 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167] 그리고 바로 이 참사를 계기로 더 보이즈라는 팀이 꾸려진다. 전편후편[168]
10.4. 영화
- 《2001년 9월 11일》[169]: 각각의 에피소드가 11분 9초 1프레임 길이가 되게끔 맞춘 단편 11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에피소드 순서대로 사미라 마흐말마프, 끌로드 를르슈, 유세프 샤힌, 다니스 타노비치, 이드리사 오에드라오고, 켄 로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아모스 지타이, 미라 네이어, 숀 펜, 이마무라 쇼헤이 연출.
- 《화씨 9/11》[170]: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루즈 체인지 제2판》[171]
- 《플라이트 93》[172]
- 《월드 트레이드 센터》[173]: 9·11 테러를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평가받는 명작. 당시 구조작업을 벌이던 뉴욕 뉴저지 항만청 소속 경찰관 및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페냐가 주연을 맡았다.
- 《레인 오버 미》[174]: 9·11 테러로 아내와 세 딸을 잃고 정신적 충격을 겪는 치과의사 찰리 파인맨의 이야기.
- 《디어 존》: 9.11 테러로 군복무가 연장된 남자주인공과 그를 기다리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영화이다.
- 《리멤버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