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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03:38:20

네이션 오브 이슬람

파일:NoiFlag.png
깃발
설립일 1930년 7월 4일
본거지 일리노이주 시카고
지도자 일라이저 무하마드
말콤 엑스[1]
루이스 파라칸
사이트 파일:NoiFlag.png공식 사이트

1. 개요2. 역사
2.1. 분열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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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tion of Islam(NOI)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슬람의 국민"에 해당하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미국이슬람 단체다. 1930년 메카에서 디트로이트로 이민 온 월러스 D. 파라드가 결성하였다. 말콤 엑스가 이 단체 출신으로 유명하다.

정통 수니파 이슬람 등과 교리상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미국 흑인 민권 운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 무슬림 개종자들은 기독교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쿠란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 단체 멤버들은 정통 수니파 이슬람과는 다른 독특한 교리와 가치관을 지니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2. 역사

초창기 미국의 이슬람 개종자의 상당수는 미국 흑인이었는데 이들은 기독교가 백인에 의해 강요된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이슬람을 택했다.[2]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창립자 파라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조상들은 레콩키스타 시절 스페인을 지배했던 모리타니-세네갈계 무슬림 무라비트 왕조의 후손[3]으로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사상을 보급하였으며 흑인이 고대에 예언을 계시받은 서아시아 출신 샤바즈 부족[4]의 후손으로 문명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였고 흑인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피조물이고 백인은 악마가 창조한 피조물로서 흑인이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주장을 내세웠다. 파라드의 추종자들은 파라드를 신의 현신으로 여겼고 그의 부하 일라이저 무함마드[5]를 그의 예언자로 믿었다.

1932년 파라드는 실종되었고 일라이저 무함마드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이라는 단체 이름대로 흑인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 사상에 심취한 이로는 말콤 엑스가 있었는데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가르침대로 흑인 분리주의와 백인에 대한 강경한 대항으로 유명해졌지만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백인 무슬림들의 예기치 못한 환대[6][7]를 경험한 후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떠나 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2.1. 분열

말콤 엑스는 1964년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절연한 후 독자적으로 모스크를 세웠으며 사람은 인종을 떠나 모두 평등하며 인종간 화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결국 그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배신으로 간주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 회원들에 의해서 1965년 뉴욕에서 암살당했다.

말콤 엑스 사후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두 분파로 분열되었다. 일라이저 무함마드의 아들 와리스 딘 무함마드가 이끄는 다수파는 인종 분리 프로파간다를 포기하고 수니파 이슬람의 보편적인 관행과 신앙을 수용하고 백인도 포용하며 대신 흑인과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강조했으며 단체의 이름을 미국 무슬림 협회(American Society of Muslims)로 변경했다.

한편 루이스 패러칸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해체에 반기를 들고 일라이저 무함마드는 구세주이며 자신은 일라이저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인종 분리주의, 반유대주의 성향을 이어갔다. 초창기에 수니파 이슬람 교리와 갈등하며 적대하던 패러칸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이후 주마 예배(이슬람의 금요일 주일 예배)와 라마단을 수용하며[8] 걸프 아랍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5 퍼센트 사람들의 국가(Five-Percent Nation)"라는 조직도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기원했는데 흑인 우월주의와 대중 문화를 융합시켰고 랩 음악으로 청년층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소통했다. 창시자는 '클래런스 13엑스'라는 말콤 엑스 비슷한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1969년에 피살되었지만 단체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독교의 신흥종파들처럼 자신들이 심판의 날에 유일하게 구원받을 최후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3. 여담



[1] 수니파로 개종[2] 위와 같은 단순한 이유로 개종한 흑인들도 많았으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이슬람의 교리상 일단 개종하면 흑인이건 백인이건 인종을 가리지 않고 대우한다는 이유로 개종한 자들도 있었다. 실제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동료 중에는 빌랄이라는 이름의 노예 출신의 흑인도 있었다. 자세한 정보는 해당 문서 참조.[3] 물론 무라비트 왕조는 중동계 코카소이드인 베르베르인 왕조다.[4] 이슬람 개종 이후 말콤 엑스의 성이기도 하다.[5] 이슬람 개종 전 이름은 일라이저 풀[6] 무슬림이라고 인종차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옛날에는 사하라 횡단 아프리카 노예무역 등 흑인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의 역사도 분명 있지만 하지 같은 평생의 한번급 성지순례에선 자연스럽게 인종을 초월한 같은 무슬림이란 통일감이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나 현대나 하지 성지순례 갔다 온 여행기, 회고 문학 등을 관통하는 주제가 전 세계에서 몰려온 그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느낀 영적 일치감이기도 하고. 게다가 백인 무슬림이라고 하면 현대 보스니아 같은 남동부 유럽인들이 많은 만큼 사회적 약자로서 겪은 시련은 이들에게도 익숙한 주제이기도 하다.[7] 메카에서는 심지어 최악의 앙숙인 수니파시아파도 원칙적으로 다툼을 벌여서는 안 된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 한겨레 정문태 기자가 탈레반 지도자를 만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메카에도 테러를 저지를 수 있나?"라는 질문을 했더니만 세상에 별 미친 질문을 다 한다는 식으로 벌레 보듯 경멸하는 눈으로 "거기 갈 때는 무기도 가지고 가면 안 된다"며 더 말도 하기 싫다고 피했다는 일화도 있다.[8] 바꿔 말하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금요일 예배 같은 이슬람의 기본적인 정체성마저도 취사선택 과정에서 제외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일요일 대신 금요일을 주일로 잡으면 모일 때 불편하긴 했지만 대놓고 금요일 예배를 부정한 것은 다른 무슬림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