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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1:52:27

스눕 독

파일:스눕로고.png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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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빌보드와 VIBE 매거진에서 힙합 50주년을 기념하여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Top 50을 선정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제이지 켄드릭 라마 나스 투팍 에미넴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노토리어스 B.I.G. 릴 웨인 드레이크 스눕 독 니키 미나즈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칸예 웨스트 안드레 3000 라킴 엘엘 쿨 제이 제이 콜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스카페이스 50 센트 아이스 큐브 미시 엘리엇 빅 대디 케인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DMX 고스트페이스 킬라 커티스 블로우 KRS-One 메소드 맨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빅 펀 큐팁 블랙 소트(더 루츠) 푸샤 티 로린 힐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릴 킴 티아이 버스타 라임즈 척 디(퍼블릭 에너미) 퓨처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야신 베이 커먼 구찌 메인 루다크리스 닥터 드레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E-40 레드맨 번 비(UGK) 퀸 라티파 아이스-T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제이다키스 MC 라이트 멜리 멜 레브 런(Run-D.M.C.) 릭 로스
같이 보기: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 가장 위대한 록 가수 · 가장 위대한 알앤비 가수 · 가장 위대한 래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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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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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스눕 독
SNOOP DOGG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음악 심볼.jpg 음악
입성날짜 2018년 11월 19일
위치 6840 Hollywood Blvd. }}}}}}}}}


역대 프라임 타임 에미상 시상식
파일:emmylogo.png
최우수 버라이어티 스페셜상 (라이브)
제73회
(2021년)
제74회
(2022년)
제75회
(2023년)
스티븐 콜베어
(스티븐 콜베어의 2020년 선거의 밤)
닥터 드레, 스눕 독, 메리 제이 블라이즈, 에미넴, 켄드릭 라마, 50 센트
(펩시 슈퍼볼 LVI 하프타임 쇼)[1]

파일:WWEHOF.jpg
201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스눕 독
Snoop Dogg
파일:Se6d6dD.jpg
<colbgcolor=#fff><colcolor=#000> 본명 캘빈 코도자 브로어더스 2세
Calvin Cordozar Broadus Jr.
별명 Snoop Doggy Dogg[2], Snoop Dogg,
Snoop Lion, Doggydogg[3]
출생 1971년 10월 20일 ([age(1971-10-20)]세)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85kg
배우자 샨테 브로어더스(1997년 ~ 현재)
자녀 코데 브로어더스(1994년 생)
코델 브로어더스(1997년 생)[4]
줄리안 코리 브로어더스(1998년 생)[5]
코리 브로어더스(1999년 생)[6]
친척 브랜디, 메르세데스 모네, 레이 제이, 네이트 독, 대즈 딜린저, 릴 하프 데드, RBX
직업 래퍼, 싱어송라이터, 배우
종교 래스터패리교
데뷔 1991년 《Over the Counter》[7]
소속사 캐피톨 레코드, 데프 잼 레코딩스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트위치 아이콘.svg
공식 로고 파일:스눕로고.png

1. 개요2. 생애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3.2. 싱글
3.2.1. 빌보드 핫 100 1위3.2.2. 빌보드 핫 100 2위3.2.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4. 필모그래피
4.1. 영화
5. 평가
5.1. 위상5.2. 음악 스타일
6. 여담
6.1. 대마초 사랑

[clearfix]

1. 개요

파일:snoop마무리.gif
I'm representing for them gangstas all across the world
나는 전 세계의 갱스터들을 대표하지
(Still!) Hittin' them corners in them low-low's girl
(여전히!) 로우라이더의 여자들과 즐겨
- Still D.R.E.
미국래퍼방송인스트리머, 배우.

1990년대 초 혜성같이 등장한 서부 힙합의 대부[8]로, 1990년대 초중반 지역 불문 힙합씬 전체에서 가장 인기있고 많은 음반을 판매하는 래퍼였다. 얇고 부드러운 목소리 톤과 여유롭게 말하듯이 내뱉는 리듬감 넘치는 래핑이 특징이다.

2. 생애

미국 내에서 우범지대로 매우 유명한 롱비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교회에서 노래부르며 피아노를 연주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랩에 관심을 지녔다. 그러나 롱비치 폴리테크닉 고등학교 졸업 후 '롤린'20 크립스'란 갱단에 합류해 마약 밀매 등 활동을 해왔고, 이 때문에 코카인 소지 혐의로 교도소살이[9]를 하기도 했으며,[10] 심지어 2013년 <롤링 스톤> 지 인터뷰에 따르면 포주 활동도 했다고 고백했다.

1991년 전 N.W.A. 멤버 닥터 드레에게 스카우트되어 Death Row Records에 합류하면서 예명을 '스눕 도기 독'으로 정했고, 영화 <딥 커버> 주제곡 'Deep Cover'에 참여해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1992년, G-funk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한 닥터 드레의 첫 솔로 앨범 "The Chronic"에서 다수의 곡을 피쳐링해 앨범의 사회현상적 평가와 더불어 주목받으며 등장하였다. 이후 1993년 드레가 전곡을 프로듀싱 한 데뷔 앨범 "Doggystyle"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앨범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데뷔 앨범이 되었다.

이 시기(1992~1994년)는 대부분의 힙합 팬들이 인정하는 독보적인 스눕 독의 최전성기로, 이 시기 스눕 독은 힙합 씬 전체에서 가장 인기있던 래퍼임은 물론 음악계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The Chronic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두 트랙인 Nuthin' But A "G" Thang과 Dre Day는[11] 모두 스눕 독이 피처링했으며,[12] 그의 데뷔 앨범 Doggystyle의 What's My Name,[13] Gin and Juice는 모두 빌보드 핫 100 8위를 기록하며 상당한 히트를 쳤다. Doggystyle의 초동 기록은 7년이 지난 에미넴의 MMLP가 겨우 깼을 정도[14]이며, 당시 막 메인스트림에 올라온 힙합 장르의 앨범 치고는 미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게다가 상업적 성공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았는데, The Chronic이야 웨스트 코스트 힙합 역대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으니 그렇다 쳐도 Doggystyle의 상당수의 곡들은 아직까지 상당수 스눕 독의 대표곡으로 남아있다. 즉, 두 개의 싱글 뿐만 아니라 모든 곡들의 평가가 매우 높은 것. 이렇게 스눕 독은 Death Row Records 시절 힙합 역사상 최초로 장르 불문 대중음악계 전반에 걸쳐서 지배적인 전성기를 보냈다.

자신의 1집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1993년에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스눕 독이 자기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가 경호원으로 고용한 단원 말릭 리(Malik Lee)가 차에서 라이벌 갱단의 몇 명과의 설전 끝에 총을 꺼내 그 중 한 명이던 필립 울더매리안(Philip Woldermarian)을 죽인 것.[15] 말릭 리와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스눕 독은 패닉이 온 채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스눕 독은 경찰에게 이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는데, Death Row Records의 CEO 슈그 나이트가 경찰을 찾아가려는 스눕 독을 막은 것이다. 그 주에는 MTV 뮤직 어워드가 열릴 참이었고 스눕 독은 거기서 1집 앨범 Doggystyle을 홍보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 슈그 나이트는 스눕 독에게 이 날의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경찰에게 가라고 하였다. 실제로 현장에 경찰들이 스눕 독을 잡으러 나타나자 슈그 나이트는 경찰 측과 스눕 독이 스케줄을 다 마치면 스스로 경찰에게 갈 것이라고 합의하였다. 그리고 스눕 독은 모든 것이 끝나자마자 경찰을 찾아갔다. 슈그 나이트는 스눕 독이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백만 불의 보석금을 내주었고 스눕 독은 정상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16] 그리고 4년간의 법정 재판 끝에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1996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시기 일화가 있는데, 1994년 영국 투어 당시 스눕독이 살인자라며 민심이 바닥을 치던 중이여서 스눕독을 추방하자는 기사까지 났었다. 하지만 그때 여왕이 나서서 도와줬다고. 엘리자베스는 당시에 스눕독은 영국에서 죄를 지은 적이 없으니 남아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눕독 본인이 말하길 윌리엄과 해리 왕자[17]가 자기 노래를 마음에 들어해서 두 왕자가 여왕에게 부탁했고 덕분에 이 아름다운 나라에 남을 수 있었다고.[18]

1995년 독자 레이블 '도기스타일 레코드'를 세우고 드레가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레이블을 떠난 후 혼자 힘으로 1996년 2집 "Tha Doggfather"를 발매했지만, 투팍의 유작 정규앨범 <The Don Killunimiti>에 밀려 변변찮은 성적을 냈다. 1998년 자신도 슈그 나이트의 갑질에 빡쳐서 레이블을 떠나 당시 대세이던 마스터 P의 노 리밋 레코드와 계약하여 예명을 '스눕 독'[19]으로 바꿨고, 그해 3집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를 내서 판매량은 그럭저럭 나왔으나, 커버 아트고 프로덕션이고 노 리밋 스타일로 범벅되어 전작보다 못한 완성도에 중구난방식 구성으로 퀄리티 면에서 '최악의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 그는 다시 닥터 드레와 함께 작업해 4집을 내 퀄리티 면에서 균형을 맞췄고, 닥터 드레 2집에서 'Still D.R.E..,' 그리고 'The Next Episode'와 같은 뛰어난 트랙을 만들어냈다. 2000년 팀벌랜드와도 합작해 5집까지 냈으나 커리어 초반만큼은 못했다. 그래도 노 리밋 시기는 상업적으로는 커리어 초반 못지않게 상당히 성공적인 시기였다.

같은 시기 트레이 디, 골디 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ha Eastsidaz'를 결성해 2001년 정규 2집까지 냈고, 2002년 6집 이후 다수의 앨범에서 프로듀싱 팀 The Neptunes와 작업하며 대히트곡 'Beautiful', 메가 히트곡 'Drop It Like It's Hot'[20] 등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투 쇼트클릭E-40처럼 최신 트렌드에 너무 동화되어버려서 서먹함을 느낀 골수 팬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2004년 스타트렉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9년 프리오리티 레코드 Creative Chairman으로 부임했고, 2009년 이후 저조한 성적을 내자 2013년 래스터패리교로 개종 후 레게 앨범을 냈다.

이후에는 대마초 사업을 필두로 앨범 판매량 상관없이 본인의 음악적 실험, 피처링을 통한 신예 발굴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규 앨범으로 펑크(Funk)가스펠 장르의 음악을 내기도 하고 뉴 잭 스윙, 트랩, Nu era G funk 등등 옛날과 현재를 넘나드는 음악적 시도에 집중하는 한편, 여전히 <Wiggle Wiggle>[21], <Young and wild,free>같은 명곡에도 활약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또한 데뷔 초 릴 디키를 비롯해 실력은 있지만 인지도가 부족한 무명 래퍼들의 노래에 자주 피처링으로 샤라웃해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12월에 크리스마스 기념 싱글 곡을 발표했다.

2022년 데스로우 레코즈를 인수한 후 The Chronic, Doggystyle을 포함한 데스로우 시절 작업물들을 NFT로 만들기 위해 음원 사이트에서 전부 내려 힙합 팬들의 원성을 샀다.

2023년 2월 2일 The Chronic에 30주년을 맞이하여 모든 음원 사이트에 다시 올라왔다.[22]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데뷔 이후 활동이 꾸준한 롱런의 대표 중 한명인 스눕답게 발매한 앨범이 굉장히 많다. 1집은 힙합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다른 앨범들의 퀄리티는 오락가락하는 평이다.
퍼렐 윌리엄스의 참여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결과물은 애매하다는 평을 받았다. 빌보드 200 차트 14위까지 올랐다.
웨스트 코스트의 또다른 베테랑인 다즈 딜린저와의 콜라보 앨범이다. 하지만 프로모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묻혔다.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크게 묻혔고, 상업적으로도 이름값에 비해 낮은 성적을 거두었다.
스눕 독의 앨범들 중 간만에 괜찮은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피치포크에서도 7.0점이라는 괜찮은 점수를 주었는데, 이는 피치포크의 성향을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이다.
가스펠 앨범이다. 스눕 독에 가스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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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싱글

3.2.1. 빌보드 핫 100 1위

3.2.2. 빌보드 핫 100 2위

3.2.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4. 필모그래피

4.1. 영화

5. 평가

5.1. 위상

스눕 독의 전성기는 힙합 역사를 통틀어서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0년대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유행시키며 떠오른 퍼렐 윌리엄스의 프로듀싱팀 넵튠즈와 작업하면서 과감하게 음악스타일을 바꾸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한다. 그 후로도 스눕 라이언이라는 이름으로 레게 앨범을 내거나 떠오르는 젊은 래퍼들과 협업 하는 등 꾸준한 시도로 자신의 음악에 변화를 주면서 오래도록 대중으로부터 넓게 사랑받는 위치에 있는 드문 케이스이다. 이는 장르 내에서의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힙합 장르의 특성상, 대부분의 래퍼들이 짧은 전성기를 누린 후 원히트원더로 사라지거나, 음악을 통해 번 돈으로 사업에 매진하며 반은퇴하는 등 커리어를 길게 지속하는 케이스가 거의 없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다. 현재까지도 피처링, 정규 앨범, 싱글을 몇 개월 간격으로 기복없이 꾸준히 발매하고, 30주년 동안 50에 가까운 나이에도 세월을 거스르는 센스와 실력으로 명곡을 뽑아내거나 피처링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때문에 힙합계의 대부로써 자리매김했다.[34]

그래서인지 <아메리카 힙합> 1권에선 그를 '웨스트코스트의 지박령'이라 평하기도 했다.

또한, 본토 힙합 역사상 가장 임팩트 있는 데뷔를 한 래퍼 중 하나이다.[35] 데뷔 직후 몇 년간은 힙합 씬은 물론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가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라킴, 나스, 비기, JAY-Z, 투팍, 닥터 드레 등과 함께 미국 힙합의 전설이라고 평가받으며, 1990년대 힙합의 황금기를 이끈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36]

5.2. 음악 스타일

무덤덤하게 말하는 톤으로 읊조리면서 랩을 하는데, 스눕 독의 음색과 스타일 자체가 아주 독특해서인지 비기 스몰즈, 에미넴, 투팍만큼 발성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37] 굉장히 임팩트있게 들린다. 이 때문에 소위 말하는 빡센 래핑보다는 여유롭고 펑키한 래핑을 구사하며, 스눕 독의 디스코그래피는 대부분 가벼운 붐뱁과 펑키한 지펑크 곡이 주를 이룬다.

스눕 독 최고의 장점은 엇박과 정박을 넘나드는 본인만의 독창적인 플로우. 정말 힙합 씬에서 독보적인 가사 배치를 하는데, 듣는 순간 누가 봐도 스눕 독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임팩트있는 플로우를 가지고 있다. 빡센 랩과 거리가 먼 그의 랩 스타일 특성상 청각적으로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을 변칙적인 리듬과 이를 받쳐주는 라임 설계로 커버하는데, 이런 랩은 강한 톤과 정박의 리듬이 주를 이루던 당시 힙합씬에서 본 적 없던 스타일이였고, 무명이었던 그를 닥터 드레의 정규 1집 앨범 피처링 참여 하나로 미국 최고의 래퍼 자리로 올려놓았다. 때문에 역대 최고의 MC를 꼽을 때에는 스눕 독 말고도 여러 MC들이 거론되지만, 뛰어난 플로우를 가진 MC를 꼽을 때에는 스눕 독이 대다수의 매체에서 1순위로 거론된다. 랩 음악이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방식의 랩 스타일이 등장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래퍼들이 스눕 독만큼 엇박을 구사하기 난해해 하거나, 펑키함과 여유로운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50세를 넘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중이다.[38]

물론 미국의 대다수 MC들은 켄드릭 라마조이 배드애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엇박과 정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래퍼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엇박은 똑같은 박자가 몇 마디 동안 계속 반복된다거나, 최대한 많은 가사를 비트 안에다가 욱여넣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비트와의 조화보다는 뛰어난 랩 실력에 더욱 강조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스타일. 하지만 스눕 독의 엇박은 비교적 적은 가사를 노래 안에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랩이 비트에 스며드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런 그만의 음악적 연출은 스눕 독만이 낼 수 있는 아이덴티티. 게다가 전성기 시절엔 닥터 드레의 완성도 높은 비트와 함께 어울리는 래핑을 구사하였고, 이러한 조합은 1990년대 초반 서부 힙합을 상징하는 The Chronic, Doggystyle같은 전설적인 명반들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힙합씬에서 플로우 마스터로써 인정받기 때문인지, 50 센트가 이끄는 G 유닛을 초청한 TV 쇼에서, 요새 애들은 플로우가 다 똑같다고 깠다. 또한 과거의 래퍼들은 비슷한 스타일은 있어도 똑같은 스타일은 없었는데, 지금은 똑같은 스타일의 래퍼가 사방에 있다며 인터뷰에서 일침을 한 적도 있다. 참고로 저기서 50센트가 "어떤 놈이 날 따라하면 어떻게 하지?" 라고 걱정하자, "요즘 놈들은 너랑 다르게 혀가 멀쩡하거든." 이라고 말해서 그를 안심시켰다.[39] 한국 랩도 미국 힙합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스눕독이 깠던 트리 플랫 플로우를 자주 사용했었다. 그로 인해 해당 영상과 한국 힙합곡들을 합성해서 비교한 동영상도 있다. 가끔 이 영상 원본을 몰라 스눕이 한국 래퍼를 깠다라는 식으로 와전되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또한 단순 트리플렛 플로우를 깠다기 보다는 래퍼들의 억양과 발음을 깠다고 보는 것이 맞으나 해당 영상으로 인해 의미가 와전되었다.

가사의 특징이라면 서부 힙합과 G-funk, 대마초의 상징답게 섹드립과 마약에 관한 것을 많이 집어넣는다. 크립스 갱단 출신이라서 갱스터 문화와 관련된 가사를 많이 넣기도 하는데, 정작 크립스 갱단과 원수 지간인 블러즈 갱단 출신 래퍼인 더 게임과 함께 노래를 낸 적도 있다. 그리고 본인의 고향인 롱비치에 대한 가사도 종종 넣는다. 또한 가사에서나 평소 언행에서나 정치적인 행보도 보인 적이 있는데, 반트럼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흑인 래퍼들에게 경고하기도 했고,[40] 트럼프를 디스한 에미넴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 1월 트럼프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밝히는 인터뷰를 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나에게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다"며 "그는 좋은 일만 했을 뿐"이라고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힙합 레이블 데스로 레코드의 설립자인 마이클 해리스를 사면한 것을 언급했다.

상술했듯 힙합 외의 음악에도 관심이 있어서 '스눕 라이언'이라는 명의로 레게, '스눕질라'라는 명의로 펑크(Funk) 음악 활동을 시작해서 두 명의 모두 정규 앨범까지 냈다. 앨범 단위가 아닌 싱글이나 단발상 시도로는 오토튠 싱잉 랩, 트랩, 딥 하우스, 디스코, 뉴 잭 스윙, 아카펠라, 찬송가 등의 음악을 시도한 적 있다.

6. 여담

파일:투팍 스눕독.jpg

파일:161c5cb02f14aa5ac.jpg

6.1. 대마초 사랑

대마초 애연가로 유명한데, 얼마나 대마초를 많이 피는지 미국에서 대마초하면 스눕 독, 스눕 독하면 대마초일 정도이다. # 대마가 합법화된 주에서 파는 자신의 이름을 딴 대마 브랜드도 있다.[57] 미국에서는 스눕 독의 Smoke Weed Everyday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이다,

2016년, VH1에서 방송한 Martha & Snoop's Potluck Dinner Party에서는 마사 스튜어트와 함께 대마를 이용한 무언가를 했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에서는 백악관에서 대마초를 피웠다고 밝혔다!## 당연히 미국의 국가원수의 공식 집무실이자 관저인 백악관에서 대놓고 대마초를 피우는건 너무 선을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감시 요원의 눈치를 봐가면서 화장실 안에서 잠깐 피우다가 나왔다고 한다.[58] 웃긴 일화가 있다면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 빌 클린턴도 대학생 시절 대마초를 흡연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59]

종교도 그의 대마초 사랑을 막지 못했다. 인터뷰에서 밝히기론 성경 맨 앞장의 부드러운 종이로 대마초를 피워 보았다고 밝혔다. # 떨을 말아 피울 종이가 다 떨어지자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장 얇은 종이를 잘라서 썼다고 한다. 찔리는 건 있었는지 맨 앞장은 글귀 없는 빈 종이라고 덧붙인다. 백미는 "Father, forgive me(하느님, 용서하소서)". 다만 스눕독의 종교는 일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래스터패리교라는 기독교(에티오피아 정교회)의 파생종교이며 래스터패리교는 대마 흡입을 신성시하는 교리가 있다.

Lil DickyEarth[60]에서는 다른 가수들이 동물을 고르는 와중에 대마가 되었다. 칸예 웨스트가 된 케빈 하트HPV 바이러스가 된 릴 야티보다는 낫다는 반응이다.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마를 피웠다. 공항에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기에 당연히 한국 현지조달. 다만 구할 수 있는 양이 너무 적었고, 결국 만족하지 못한 스눕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금 나한테 대마를 갖다주는 사람은 당신이 누구든 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피쳐링을 해주겠다’라는 포스팅을 올렸다[61]. 이렇게 대마 한번 피우기 힘든 한국에[62] 스눕독이 다시 올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공론화 된다면 재방문시 이 일이 문제거리가 될 확률이 높다.

2023년 11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족과의 상의 끝에 대마를 끊기로 결정했다'는 포스트를 '사생활을 존중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포스팅했다. # 자세한 내막은 아직 전해진 게 없으나, 대마와의 인연이 깊었던 그였기에 크게 이슈화가 되었다. 응원하는 댓글과 아쉬워하는 댓글이 반반씩 섞여있다. 허나 며칠 뒤에 올라온 포스트에서 진상이 밝혀졌는데, '연기없는(smokeless) 난로'를 광고하기 위한 낚시성 포스트였던 것.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스눕독의 대마 금연 소식이 소소하게 알려졌던 만큼 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대차게 낚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상황. 하지만 해당 상품은 그렇게까지 잘 팔리지 않아서 CEO가 교체됐다고 한다.

파리올림픽 폐막식 공연에 나오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저 형이라면 성화로도 대마 피울거다'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미국 힙합씬에서는 스눕 독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대마를 흡연하는 래퍼들도 꽤 있어서 스눕 독이 골초로 원탑 먹는 수준은 아니다. 위즈 할리파는 한 달에 대마초 구입비용으로만 USD 10,000(!!!)을 쓴다고 하며, 본인이 대마초 식물 씨앗을 교배해 새로운 대마종을 농사짓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래퍼 치프 키프는 한술 더 떠서 10대 때부터 대마초를 흡연하고 재배를 하기도 했으며, 스눕 독의 흡연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이 피운다. 오죽하면 스눕 독이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하라고 조언했을 정도.[63] 치프 키프는 대마가 불법인 사우스다코타주에서도 대마초를 피우다가 체포당한 적도 있다.


[1] 퍼포머로서 수상.[2] Death Row Records 시절 사용하던 예명으로 Nuthin' but a 'G' Thang, Doggystyle 시절에 이 예명이었다.[3] 트위치에서 방송하면서 본인이 사용중인 닉네임.[4]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2015년 UCLA 소속으로 대학 리그에서 뛰었다. 코델도 키가 191 장신인데 현재는 모델 겸 ShareStix의 CEO. 2024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Creating Brand Value 과정을 수료했다.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5] Laurie Holmond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6] Choc Factory란 브랜드를 창업하였다.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7] 고교 졸업 직후 1989년부터 녹음한 스튜디오 앨범이다. 정식 데뷔는 4월 9일 싱글 Deep Cover로 영화 Deep Cover의 사운드 트랙. 닥터 드레와 같이 한 트랙이며, 닥터 드레는 N.W.A를 탈퇴한 후 처음으로 발표한 노래다.[8] 실제로 그는 Doggfather라는, 대부를 패러디한 제목의 앨범을 낸 적이 있다.[9]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 만화에서도 나온 바 있다. 흑인들이 부르는 랩이 너무 과격하고 어둡다는 백인 기득권층들의 비난에 바로 스눕 독이 반격을 가했는데, 자신이 어릴 적에 빈민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나온 20명 가운데 대부분이 에 맞아 죽거나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서 인생이 아름답고 예의 바르게 살자는 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며 비꼬았다고 한다.[10] 감옥살이를 하면서 래퍼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11] 조지 클린턴의 Atomic Dog펑카델릭(Not Just) Knee Deep을 샘플링 및 차용한 곡이다.[12] 참고로 Nuthin' But A "G" Thang은 정통 힙합 역사상 최초의 메가히트곡이며, Dre Day는 역사상 가장 크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스곡이다. Dre Day의 디스 대상은 Eazy-E.[13] 조지 클린턴의 Atomic Dog펑카델릭(Not Just) Knee Deep을 샘플링 및 차용한 곡이다.[14] 물론 MMLP는 Doggystyle의 2배를 상회하는 초동을 기록했다.[15] 정확히는 필립 울더매리안이 자신이 갖고 있던 총 쪽으로 손을 움직이자 말릭 리가 재빠르게 반응하여 먼저 총을 쏘았음.[16] 일각에서는 이 살인 가담 혐의가 오히려 스눕 독의 1집 앨범 성공에 마케팅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Murder Was The Case 트랙은 제목부터가 당시 스눕 독의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17] 당시 윌리엄과 해리는 11살과 8살이였다[18] 출처, 번역[19] 개명 이유는 원래 예명 '스눕 도기 독'의 판권이 Death Row Records에 있기 때문이다.[20] 퍼렐 윌리엄스가 피쳐링했다.[21] 개그콘서트 니글니글의 그 곡 맞다.[22] 여담으로 닥터드래의 유튜브채널에도 The Chronic에 모든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올라옴과 동시에 기존 뮤직비디오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23] 인트로가 Smoke Weed Everyday다.[24] Akon의 싱글을 피처링.[25] Katy Perry의 싱글을 피처링.[26] Dr. Dre의 싱글을 피처링.[27] Dr. Dre의 싱글을 피쳐링.[28] Chingy의 싱글을 Ludacris와 함께 피쳐링.[29] 50 Cent의 싱글을 Lloyd Banks, Young Buck과 함께 피쳐링.[30] Pussycat Dolls의 싱글을 피쳐링.[31] Wiz Khalifa와 같이 작업.[32] Jason Derulo의 싱글을 피처링.[33] benny blanco, 방탄소년단과 콜라보.[34] 1990년대에는 <Nuthing but a G Thang>, <What's my name>, <Gin and juice>, 2000년대에는 <Still D.R.E.>, <The Next episode>, <drop it like hot> 2010년대에는 <Wiggle Wiggle>, <Young, wild, and free>, <Professional Rapper>, <Earth> 등등. 힙합계에서 상징적인 명곡이거나 힙합을 잘 안 듣는 사람들도 어디서 한 번씩 들어봤을 유행가, 비트에는 한번씩 스눕 독의 손길이 묻어있다.[35] 1992년 닥터 드레와 함께 Deep Cover라는 노래로 데뷔하여 인지도를 올린 후 닥터드레의 The Chronic의 대부분의 트랙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Nuthin' But A "G" Thang이 대히트를 치며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다음 해에 데뷔 앨범인 Doggystyle은 첫 주 80만 장의 판매량으로 2000년 MMLP 이전까지 힙합 앨범 중 역대 최다 첫 주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즉 당시 투팍과 함께 Death Row Records에서 나온 대표적 슈퍼스타였던 것. 이 중에서도 스눕 독이 투팍보다 먼저 인기를 얻어서 Doggystyle을 대박냈으며, 지금에 와서도 1992년~1994년 당시 인기의 임팩트는 1999~2002년 에미넴이나 2003~2005년 50 센트, 2004~2008년 칸예 웨스트 이전에 등장한 힙합씬을 대표하는 전성기이며, 힙합의 역사를 통틀어보아도 상당한 축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36] 예명인 스눕 독은 그 유명한 피너츠의 스누피에서 따왔다. 얼굴이 스누피를 닮아서 어머니가 붙여준 별명이다.[37] 그렇다고 발성이 부족하고 라이브가 약한 것은 아니다. 평균 이상은 하는 편.[38] 2022년 2월 LA에서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쇼에도 출연해 건재함을 과시했다.[39] 50센트가 자 룰이 고용한 킬러에게 총격을 당했을때, 총알이 혀를 관통하여 혀가 부어올라 기도가 막혔고, 결국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발음이 유니크해졌단 건 다 아는 사실이다.[40] 카녜 웨스트를 돌려 깠다는 말도 있었으며, 트럼프의 선거 구호를 비꼰 것으로 보이는 제목의 <Make America Crips Again> EP 앨범을 내기도 했다. 참고로 카녜는 2016 대선 때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지지자다.[41] 하지만 2023년에 진짜 범인이 검거 되었고, 심지어 그의 살해를 사주한 인물도 밝혀졌다.[42] 이 노래 제목을 해석해 보면...[43] Def JAM Records 소속 뮤지션들이 우루루 나온다.[44] 사실 벨붕이다. 유머라곤 하지만 일반인들 랩과 전설적인 래퍼의 배틀이니...실제로 내용상으론 둘 다 재밌지만 반장난으로 하는 건데도 랩 스킬의 차이가 확연하다.[45] 2010년판 'We Are The World'에도 참여한 적도 있다.[46] 마리화나 유저들의 포럼. /r/marujuana가 아니라 /r/trees인 이유는 HIGH한 상태에서 마리화나를 일일이 칠 수가 없어서라고.[47] 랩이 거의 없이 보컬이 주가 되는 앨범이다. 메인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의 색깔이 짙어서 퍼렐 음반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48] 포지션은 와이드 리시버.[49] 이 기사 아래에 있는 페이스북 베스트 댓글 중에서는 노래 제목에서 따온 Nobody wants receiver toDrop it like it's hot 드립이 나왔다.[50] 비슷한 예로 토론토 랩터스의 슈퍼팬 Drake가 있다.[51] 구글에 Snoop dogg nhl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정말 다양한 팀의 저지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52] 덧붙여 이 당시 최우수 힙합 앨범 수상작은 뉴욕 대표 OG정규 12집.[53] 싱어송라이터 옥토버 런던, 2006년 비슷한 장르의 애니메이션 힙합 해리(Hip Hop Harry)를 제작한 프로듀서 클로드 브룩스와 협업했다.[54] Dynamic. Duo. Music comin summer 23[55] 여기서 옆의 패널이 재연하는 것이 굉장히 웃기다.[56] 90년대 당시의 힙합 레이블에는 여성 래퍼들도 한 명 이상 존재했는데, 그들 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데스 로우의 히든 카드였다.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의 대표곡 Boom에도 샘플로 사용된 Afro Puffs라는 히트곡도 보유했으며, 데스 로우가 지원을 더 아끼지 않았으면 더 많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던 비운의 커리어를 보유한 인물이기도 하다.[57] 대마와 롤링 타바코를 마는 데 필요한 롤링 페이퍼 브랜드인 RAW 광고에 스눕독이 들어가있다.[58] 휴지에 불을 붙여가면서 화재 경보기가 작동하는지 시험하면서 피웠다고 한다. 대마는 양말에 숨겨서 반입했다.[59] 도널드 트럼프는 예외. 트럼프는 형이 알콜중독으로 사망해서 술과 담배 및 마약을 매우 혐오해서 입에 대지 않는다. 대선 선거운동 당시 단 한 번도 위의 물질들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정도다.[60] 뮤비 2분 49초 쯤을 보면 된다.[61] 매니저가 정색을 하길래 바로 지웠다고.[62] 대마가 합법화되지 않은 미국 주에서는 경찰이 대마초를 발견해도 그냥 무시하거나 심해봐야 압수로 끝나는 일이 대다수이지만, 한국에서는 즉시 수갑 차고 유치장에 끌려간다. 운 나쁘면 구속될 수도 있다(…)[63] 평소 그냥 대마도 아닌 대마가 들어간 시가인 블런트를 5~6개비 정도 피운다고 한다. 일반 담배가 아닌 시가를 5~6개비 피우는 건 골초 수준을 넘어선 헤비스모커에 속한다. 참고로 시가 애호가로 유명했던 윈스턴 처칠이 하루에 11개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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