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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0 00:18:42

이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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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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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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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반기문 박정희 노무현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이건희 김수환 김대중 김구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노무현 박정희 김구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주영 유관순 김대중 반기문 안중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부모님 이국종 이건희 안창호
16위 17위
문재인 김연아
※ 응답수 50명 미만인 18위부터는 공개하지 않음.
2024년
※ 202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세종대왕 박정희 김대중
6위 7위 8위 9위 10위
김구 부모님 정주영 안중근 유관순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이건희 신사임당 반기문 문재인 유일한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애창곡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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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00e0e><colcolor=#ffffff> 국군대전병원장
이국종
李國鍾 | Lee Guk-jong
[1]
<nopad> 파일:124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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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4월 22일 ([age(1969-04-22)]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전주 이씨[3]
직업 외상외과 / 간담췌외과 전문의
현직 국방부 의무자문관
국군대전병원[4]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교수[5]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 교수
재임기간 국군대전병원
2023년 12월 27일 ~ 현직
링크 아주대학교병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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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00e0e><colcolor=#ffffff> 학력 명덕고등학교 (1회 / 졸업)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M.D.][7])
아주대학교 대학원 (의학 / 석사[M.M.Sc.])
아주대학교 대학원 (의학 / 박사[Ph.D.][10])
가족 아버지 이범홍[11], 배우자[12], 슬하 2남[13]
병역 대한민국 해군(해상병 349기) 일병 전역[14]
해군 명예계급
대위 (2015.7. ~ 2017.4. / #)
소령 (2017.4. ~ 2018.12. / #)
중령 (2018.12. ~ 2023.12. / #)
대령 (2023.12. ~ 현재 / #)
종교 가톨릭 (세례명: 블라시오)[15]
약력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연구강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과교실 전임강사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16]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17]
UCSD 외상센터 연수
로열 런던 병원 외상센터 연수
아주대학교의료원 외상연구소장
국군대전병원(2023.12.-)
상훈 미국 백악관 감사장 (2009, 2010, 2012)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2010)
국민포장 (2011)
제3회 홍진기 창조인상 (2012)
제22회 여의대상 길봉사상 (2012)
수원시 문화상 (2013)
제11회 포니정 혁신상 (2017)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9)
해병대 명예해병 (명예부대원)
합동참모본부 명예합참인 (명예부대원)
해양경찰청 명예 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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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의사로서의 모습4. 의사로서의 실력5. 일화6. 의료 관련 견해7. 파일:대한민국 해군기.svg 대한민국 해군과의 인연8. 매체에서9. 어록10.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사, 교수, 작가[18], 군인[19].

중증외상 분야간담췌외과 전문의[20] 외상 및 외상 후 후유증, 총상 치료 부문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다. 당시 이국종이 이끌던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 의료팀 역시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외상 센터이며, 국내 최고의 외상외과 의료진으로 꼽혔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더 이상 수술을 집도하지 않으며 국군대전병원의 병원장으로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국종/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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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사로서의 모습

그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에 몇 안 되는 외상외과 전문가이며, 능력뿐만 아니라 외과의로서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유튜브에서 관련 다큐 몇 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일례로, 언제 어디서 수술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수술복을 입고 다닌다. 의사 가운 안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진이 매우 드물다.[21]

기존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중증외상[22]이라는 분야를 언론 등을 통하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23]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국종이 몸담고 있는 외상외과학은 여러모로 최고난도 수준의 의학 분야이기도 하다. 외상외과의 의사들은 외상으로 생기는 트라우마, 치료의 가능성 희박 등으로 3대 외과[24]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의사들이 이곳을 오기를 꺼린다. 얼핏 보면 응급의학과 혼동하기 쉽지만, 수많은 경증/중증 환자를 함께 돌보아야 하는 응급의학과에서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중증외상환자를 케어할 수가 없다.[25] 특히 전문적인 외과 수술의 경우 응급실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 필요하다. 따라서 집중치료와 수술 및 소생이 필요한 부분을 별도로 중증 외상외과학이라 부른다.

중증 외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각 핵심분야[26] 의료진은 항시 응급 대기 상태여야만 하며,[27] 항시 계획되지 않은 응급수술[28]을 하는데, 그 범위가 엄청나다. 팔다리/두부/흉부/복부에 걸쳐 수혈팩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쓰며 광범위하게 진행한다. 당연히 의료 처치 혹은 수술 중 사망률도 높고,[29] 죽기 직전에 병원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아, 환자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의료진의 노력은 엄청나다. 레이디스 코드권리세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치료 도중 사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중증외상 환자의 82% 가량이 사고가 난 후 1시간 이내인 골든 아워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 국내 상황은 8시간 동안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할 판이다. 물론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며 개선 중이긴 하나 근시일 내에 변할 가능성이 없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인명구조가 최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민원이나 재산손해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30]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헬기가 출동하면 사고지점 바로 옆에 내리거나, 심지어 바로 위에서 호버링하면서 응급요원을 레펠로 투입한 뒤 환자를 싣고 병원 주차장이나 옥상 헬리패드에 바로 내려 환자를 병원으로 보낸다.

한국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난리 난다. 야간에 도심지에 헬기가 내렸다간 당장 인근 주민들의 폭발적인 소음민원에 부딪히고 뉴스에서 시민들이 겁이 났느니 하는 방송이 나온 뒤 민관 양쪽에서 신나게 깨질 것이다. 물론 귀순사태 이후 바뀐 여론에 의해 이러한 상황의 인식이 달라져 위와는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수도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한다.

유사시 레펠로 투입할 만큼 전문적인 항공구조 훈련을 받은 응급구조 요원이나 장비도 민간병원에는 드물고[31], 환자를 싣고 병원에 가려고 해도 근처 헬리패드에 내린 뒤 다시 차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처구니없게 거기서부터 병원까지 가는 와중에 교통체증 등으로 시간이 수십 분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아래에서 나오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이국종이 말하는 어려움의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단, 이렇게 차원이 다른 대응 속도 및 규모는 미국대한민국보다 선진 국가이기 때문이기에 한국이 의료적으로 후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국이 총기사고와 살인범죄 발생이 잦은 미국보다 중증외상의 위험에서 비교적 먼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늦게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증외상을 끼칠 정도로 인체에 강력한 이슈가 적기 때문에 중증외상에 대한 인식이 늦게 일깨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더 가까이에 일본만 봐도 중증외상 위험이 큰 국가들이 아님에도 이에 대한 대처가 미국에 준할 만큼 잘 되어 있다. 한국이 영국이나 일본보다 의료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님에도 중증외상 환자를 길바닥에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게 하는 건 분명한 문제이다. 결정적으로 범죄나 총상에 의해서만 중증 외상 환자가 생기는 게 아니다. 교통사고, 산업재해, 추락사고 모두 사지육신이 문자 그대로 짓이겨지는 전형적인 중증외상의 사례이고,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산업재해에 있어선 여전히 후진국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으로, 이국종이 지적하고 호소했던 사례들이 쌓여가면서 공론화 된 덕에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나가기 시작했다.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가 지나갈 때면 차로를 다같이 열어주는 문화가 정착되고, 미국의 사례처럼 구급차와 소방차 등이 신속출동을 해야할 때 길을 비켜주지 않고 방해하는 악질 운전자에 대해서는 밀어버리게 하자는 지지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법도 개정되었다. 구급 출동으로 통행을 요청했음에도 비켜주지 않는 차량에 대해서 과태료와 벌금 부과를 하는 처벌규정이 신설되었고, 강제집행으로 옆으로 끄집어내거나 밀어버릴 수 있고 이에 대한 소송 책임을 면책하도록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도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그나마 도로교통에서 겪는 문제만큼은 이국종의 오랜 호소에 사람들의 공감대가 이루어졌으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이런 문제가 없더라도 야간 닥터헬기 운항은 현실적인 운영 문제로 매우 힘들다. 민간 닥터헬기의 경우 인건비 문제로 조종사를 많이 고용해도 3~4명 이상을 고용하기 힘들다. 헬기 1대에 정, 부조종사가 탑승을 해야 하니 4명이 주야로 24시간을 대기하며 근무하려면 하루 12시간씩 365일을 근무해야 한다는 말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업무량을 견디다 못한 조종사들이 이직해버리면 그대로 시스템이 멈춰버린다. 설령 인원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과업무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운행 중에 사고라도 치면 차라리 헬기 안 띄운 게 나을 정도의 대형사건이 날 수 있다. 119나 해경 등 정부기관에서 야간에 인명구조를 나가는 것도 민간에 비해 비교적 인원이 더 있고, 누군가는 주야간으로 근무를 하는 힘든 환경을 감수하기 때문인 것이다.

권역중증외상센터 설립 취지가 바로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현실은 시궁창. 16년 9월 30일, 전북대학교병원에서 발생한 중증외상소아환자 사망사건으로 권역중증외상센터 무용론에 정점을 찍었다.

권역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놓기만 하고 제대로 된 지원도 없고, 수가 인상도 없고, 의사를 더 뽑을 환경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강제시행을 한 꼴이다. 애초부터 센터가 있으면 뭐하나? 실질적인 환경 개선은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외상파트 전공을 꺼리는 이유는 희생정신의 부족이 아니라, 전공을 해도 전공을 살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증외상이란 것이 365일 24시간이 상시 대기 상태일 수밖에 없는 분야[32]이기도 하고, 국내 10만 명 모든 의사를 통틀어 최일선[33]에서 고군분투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인데, 이국종 본인은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이 너무나 미흡하다는 점을 항상 비판하고 있다. 2017년 판문점 귀순 사건을 계기로 국민 여론도 많은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2018년 들어서는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운영하는 닥터 헬기의 담당의가 되었다. 헬기의 무전기가 고장났음에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행정당국의 태도에 분노해 무전기를 바닥에 패대기쳐 부수기도 했다.해당 기사 심지어 무전기 같은 기본적 장비 지원을 부탁하고 OK를 받은 게 무려 8년 전 일이라고. 이 시점까지 8년 전 약속했던 물건을 받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창궐한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국종에게 닥터헬기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이국종은 레지던트 시절부터 인요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인요한은 특별귀화 1호 한국인으로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인요한의 사비를 들여 만든 한국형 앰뷸런스가 현재 우리가 아는 소방 앰뷸런스의 모태가 된다.

4. 의사로서의 실력

"북한 병사 생명을 살린 천부적인 재능의 외과의사”
라울 코임브라 (미국 외상학회 회장, 이국종의 스승)[34]기사
이국종 교수는 국내에 몇 없는 더블 보드 외과의이자[35]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최고의 외상외과 의사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총상을 수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사이며, 대한민국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는 거의 대부분 이국종에게 인계된다.[36] 이국종이 외상외과를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시 병원장이 이국종에게 외상외과를 하지 말라고 꾸짖었고, 심지어 이국종과 일할 레지던트를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문의가 되었는데도 날마다 당직을 서며 병원에서 자면서 일했고, 마지막으로는 미국에서 총상을 배워 오겠다고 하였지만 “한국에서 그걸 배워서 뭐하겠냐”,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면서 이때도 주위의 반발이 심했지만 결국 배워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되어 아덴만 여명 작전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에서 석해균 선장과 귀순자를 직접 수술하여 살려냈다.

이국종은 또한 대한민국에 손상 통제 수술(Damage Control Surgery)을 최초로 도입한 의사다. 손상 통제 수술이란 당장 생명에 위험을 줄 부위부터 응급수술로 막고,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기다린 뒤 수술을 마무리하는 수술법을 말한다.[37]기사 이국종은 2003년 미국 외상센터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손상 통제 수술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처음에는 "수술을 하다 마는 경우도 있느냐?", "환자가 무슨 실험 대상이냐?"며 많은 외과의사가 이 수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손상 통제 수술 500여 건을 통해 0~5%이던 기존 중증 복합 외상 환자의 생존율을 30~40%까지 올리자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때도 북한 병사를 이 방식으로 살렸다. 이후 대한외과학회는 대한민국의 모든 외과 의사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외과학 교과서를 새로 발행하면서 목차에 손상 통제 수술을 넣었고 이를 이국종이 단독 집필했다.

5.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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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의료 관련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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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일:대한민국 해군기.svg 대한민국 해군과의 인연

파일:external/pds.joins.com/0ab1c38e-3a21-4a56-815e-0f80b6d80a15.jpg
대한민국 해군동정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이국종.[38]
이국종은 대한민국 해군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의사군의관이 아닌 수병 출신이다. 의과대학 4학년을 마친 시점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의사의 길을 포기하려고 아주대학교에 제적 신청을 내고 1992년 해군 갑판병[39]으로 입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간부들이 의과대학 졸업을 포기한 내게 다시 의사의 길을 걷도록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들은 뱃사람 정신을 강조했다. 어떤 큰 파도도 헤쳐나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뱃사람이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소금기, 기름때에 찌든 군복이 값진 것이라며 학업을 계속하라고 독려해주셨다"라고 이국종은 후술했다. 대신 부친 이범홍이 6.25 전쟁대한민국 육군제1군단 직할대 통신병으로 싸우다 지뢰에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여서 복무기간 감면 혜택을 받아 6개월만 복무하고 전역했다. 관련 기사


군 전역 이후,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최고의 메디컬 스쿨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외상외과 연수를 받을 때, 지도교수가 미국 해군의 군의관 출신인 브루스 포텐자(Bruce Potenza) 예비역 군의대령(2급 상당)이었다. 2003년 귀국한 이국종은 지도교수인 포텐저 대령(2급 상당)의 추천을 받아 2003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중증외상환자 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때문에 아주대학교병원헬리포트에는 미국 육군의 헬기도 자주 온다.[40] 이국종은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백악관으로부터 감사장을 2번 받았고, 미국 육군으로부터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감사장을 받았다. 또한 이국종은 2007년~2008년 영국 로얄런던병원 연수 시절 영국 해군 군의관들과 함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영국군을 치료했다.

그리고 2015년, 명예해군이 됨과 동시에 해군 홍보대사가 됐다. 관련 기사 명예해군이 되면 해군 대위 계급(5급 상당)을 주고 관련 피복[41]도 지급되며, 준장급(1급 상당) 의전을 받는 만큼 아무나 받는 칭호가 아니다. 처음엔 항해특기 장교의 병과휘장을 달았으나, 의사라는 직업 특성을 반영해 이후 의무 병과휘장으로 바꿔 주었다.

군의관으로서 복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제 의사이니만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에서 총기 사건·사고가 터지면 국내에도 몇 없는 총상 치료가 가능한 의사인 이국종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감사해하는 마당이며, 실제로 이국종은 도서 지역의 군 외상 응급상황 발생을 대비하여 정기적으로 해상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해상훈련에 참여할 때는 준 군의소령으로 해군해양의료원의 통제하에 잠수함이나 상륙함 등에 승함하여 훈련하며, 현역 군인과 마찬가지로 잠수, 공중 강하, 현수 하강, 헬기 이송, 도하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그야말로 만능 의사다.

2017년 4월엔 소령(4급 상당)으로 진급, 명예해군 첫 진급자라는 기록을 세웠다(관련기사).

대한민국 해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간혹 세미나 등에 해군 정복 차림으로 참석한다는 증언이 있다. 한 예로 2017년 12월 1일 JSA 대대 장병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되어 왔을 때도 해군 정복 차림으로 참석하였고,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눌 때도 먼저 '소령 이국종'이라고 관등성명을 대기도 하였으며, 같이 동석한 해군참모총장 출신의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도 거수경례를 하였다.[42]
해상 훈련을 위해 함정에서 생활할 때에도 자신보다 어린 상급자(함장 등)에게 경례를 철저히 하는 모습에 장병들도 민간인 홍보대사가 아닌 현역 군인과 동일하게 예우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후술할 SBS 희망TV와 앞서 국군대전병원장 재임 중 영상을 보면 공식적으로도 현역 장교와 동일한 예우를 받는 듯하다.[43]

2017년 10월 23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해 KUH-1 수리온 파생헬기인 KUH-1M 메디온 의무후송전용헬기를 둘러보러 간 영상에서도 해군(NAVY) 점퍼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영상

2017년 12월 1일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의 북한 병사 치료 이후 청와대에 해군 복장을 입고 갔다. 같은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이국종의 모습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고 한다. #

한 인터뷰에서 19세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해군사관학교를 가고 싶다."[44]고 했다.

2018년 12월 3일부로 해군 명예중령(4급 상당)으로 진급이 확정되었다. 진급 후 기존에 패용하고 있던 미국 육군 공중강습휘장 대신 해군 선임조종사 휘장을 달았는데 해당 휘장은 실제 조종 교육 수료 등을 하지 않아도 해군에서 그에 상응하는 공훈 등을 세운 이에게 명예의 의미로 수여할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이순진 예비역 대장 역시 보병 출신임에도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서 사령관으로 근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 지휘조종사 휘장을 수여받아 패용하고 있다. 이국종은 군민 여러 분야에서 비행의(Flight Surgeon) 자격을 인정받고 실제로 활동한 바 있기에 이 휘장을 수여받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

2020년 12월 13일,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주최한 소통콘서트 2020 군인의 품격 3편에 출연하여 '끝의 시작, 위기의 기회에 대하여'라는 내용으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후술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화 출연 당시에도 해군 동근무복 차림으로 출연했다.

명예 해군 활동의 일환으로, 바쁜 와중에도 해군 함정이나 근무지들을 돌며 장병들에게 강연 및 의료활동을 하기도 한다. 해군해양의료원에서는 가끔씩 이국종 중령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도...

2020년 초부터 아주대학교에서 해군으로 파견되어, 현재는 해군에서 일을 계속 하고 있고 2022년 8월, 해군을 넘어 국방부 의무자문관을 맡기도 하였으며 2023년 4월에는 해군작전사령부네이비 씨 고스트 발전위원에 위촉되었다. 나아가 2023년 8월부터는 국군대전병원장 공모에 관심을 보였는데 2023년 12월에는 명예 해군대령(2급 상당)으로 진급[45]과 동시에 국군대전병원장에 전격 임명됐다.[46]

8.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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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혁의 모티브가 바로 이국종 교수. 푸른밤에 출연했을 때 제목과 드라마에서 나오는 외과 의사 묘사에 대하여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골든 타임은 잘못된 표기라서 드라마 작가에게 미리 주의를 줬으나, 드라마 제목이 이걸로 나와서 대부분 사람들은 물론이고 높으신 분들까지 골든 타임이라고 언급한다고 푸념하며 골든 아워로 정정해야 함을 피력. 다만 제목에서의 불만과 달리 닥터 헬기의 도입, 타과와의 갈등, 자기 사생활보다 먼저 환자를 챙기는 모습, 현재의 열악한 외상외과 시스템의 구조까지 있는 그대로의 의료계를 굉장히 잘 반영한 드라마였다.
* 2016년작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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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에서 이국종을 오마주한 장면이 방송됐다. 이국종 본인이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는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도 이국종과 닮은 인물로 섭외했으며, 안경과 의상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오마주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2025년작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드라마)
작중 등장인물인 백강혁 교수가 이국종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외과 전문의 이국종입니다.
엄청난 고통과 싸우는 환자들에게 달콤한 위로를 전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힘들지만 버티세요. 이렇게 말할 수밖엔 없는데요.
사실은 의사인 저도 병원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이를 악물고 그저 버티는 중이라고만 고백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위로도 좋지만 때론 '그냥 버티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누구나 힘들고 저마다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서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1월 6일 방송 내용 中
현재까지 세바시 레전드 에피소드 중 하나로 세바시 유튜브 조회수 1위이다. 2017년 8월 7일 월요일에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주제로 출연했다. 여기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구조 헬기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의 점들을 비판했다. 당시 방청객 중에서도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 영상에서는 이국종이 전국에서 몰려온 헬기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장면에서 울분을 토했는데, 사실 그 이전에 벌어진 상황은 더 막장인 상황이었다. 전국에서 민관군의 온갖 항공기들이 수십대가 몰려 오면서 공역이 문자 그대로 폭주하는 상황인데, 정작 해상 구조작업에 도움이 될 장비와 인원을 태운 헬기는 없었다. 참고로 이때 박준영 전라남도지사를 태운 헬기가 구조작업을 하던 해경 헬기에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져서 뉴스에도 나왔다. "재난이 벌어질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누가 지휘를 한다" 같은 시스템이 없었다.
* SBS 스페셜 - "생존조건 - 권역외상센터"
2017년 10월 29일 방영. 493회에 출연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 "칼잡이의 비망록 - 외상센터의 민낯을 기록하다"
2017년 12월 16일 방영. 1104회에 출연했다. 현재 한국의 의료 체계. 특히 권역외상센터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평하면서, 사람들 청원으로 헬기가 5대 추가되었지만,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권역 외상 센터를 처음 설치했을 때의 데자뷰처럼만 보일 뿐이라며 심히 염세적인 태도를 보였다.
* "대학병원이랍시고 있는 것들이 환자들을 응급실 앞에다 6시간도 넘게 방치하고 있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아침까지 응급실 앞에 사람이 있으면 레지던트들이 자기네가 골치 아파진다면서 권역 병원에다 집어던진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방송 내에서 공개된 권역외상센터의 실태는 상상을 초월했는데, 그중에서도 대전권역외상센터는 지정을 받아놓고서, 환자가 실려오면 그냥 다른 데로 넘겨버리면서 지원금만 꼬박꼬박 받아 챙기고, 전남권역외상센터는 응급환자 전담으로 임명되어서 지원금을 주는 의사들을 데려다가 일반 진료를 보게 하면서, 그 원장이 자기 입으로 직접 '효율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대로 하면 대한민국 의사들은 다 굶어죽는다. 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그나마 성실하게 운영 중인 곳(부산권역외상센터 등)의 경우에는 지원하는 의사들이 적기에 이틀에 한 번 꼴로 15시간 당직을 세우는 정신나간 스케줄을 짤 수밖에 없었음이 드러났다. 사실상 제대로 권역 외상 센터의 본 목적에 맞게 일하는 의사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케줄에 지쳐 떨어져 나가거나 현실과 타협 혹은 업무를 땡땡이치려는 먹튀 의사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걸 또 병원 측을 양심이 없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게, 권역외상센터는 그 특성상 응급환자가 실려올 때까지 다른 환자는 받지 않으며, 치료비나 지원금도 충분치 않아 항상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다가 대한민국 의료체제는 이런 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해놓고서도, CT 등을 찍어서 별 이상이 없어 보이거나 상황 참작 없이 약물을 규정 이상 혹은 그 외의 것들을 썼다며 이를 근거로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을 더 절감시키기에 급급하다. 즉, 정부에서는 자기네들이 정해놓은 의료체제가 어떻게 발목을 잡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제도가 의사들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 채널A 나는 몸신이다 시즌1 - "200회 강연특집 이국종 교수에게 듣는다! 생사의 조건 - 중증외상센터"
2018년 11월 06일 방영. 여러 방송에서 언급한 것처럼 외상센터와 닥터헬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연을 했다.
* JTBC 스페셜 탐사 스포트라이트
* 2018년 12월 20일 방영. 178회. - "이국종, 외상센터 25시!"
외상센터와 이국종 교수를 닮은 외상외과팀 후배 의료진들을 다룬 내용.
* 2020년 1월 16일 방영. 228회 - "추적 탐사 바이패스와 이국종" 1부
* 2020년 1월 23일 방영. 229회 - "이국종 외상센터 떠나다" 2부
1,2부는 유희석 아주대학교의료원장 욕설 사건을 다뤘다.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2년 3월 17일에 방송된 20회 인질을 구출하라 - 해적과의 일주일 편에 해군 동근무복 차림으로 출연했다.[49]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오만 현지에서부터의 석해균 선장 국내 이송과 치료 과정을 증언하면서도, 오히려 당시 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아래 영상 15분 55초부터)

9. 어록

외과 이국종입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53]
EBS 다큐멘터리 <명의(名醫) - 골든타임 운명의 1시간 중증외상센터> 편 中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54]
EBS 다큐멘터리 <명의(名醫) - 골든타임 운명의 1시간 중증외상센터> 편 中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다.
#[55]
수술방 안에는 삶과 죽음만 있다. 무승부는 없다.
동아일보 2017년 11월 22일자#
"사실 제가 목숨을 걸었던 건 아니잖아요. 최영함 승조원들은 완전히 목숨 내놓고 작전한 거거든요. 진짜 부상자도 많이 나오면서. 아덴만 여명작전에 참전했던 바로 그 대원들은 지금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대로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해요. 저는 한국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정말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버텨 나간다고 생각이 들어요."
위에서 언급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대원들에게 공을 돌리며.
"밀려드는 중증외상환자에 치여 지내면서 약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되는 각종 외압에 난 계속 우울했지만 그냥 최대한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담배를 끊지 못했다. 오직 음악이 휴식공간이 되었고 야구에 빠져 지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편안해하는 것이 최소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난 철저히 그런 것에 의지해 견뎠다. 직장에서 밥벌이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주변 상황 때문에 더 이상 우울해질 수는 없었다.
남의 인생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매우 행복하며 멋지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 우울한 종말이 찾아온다. 구내식당의 점심 반찬이 잘 나온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소소한 즐거움과 같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야 우울증을 간신히 견디기라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남들도 다 힘들다’를 생각하고 인생이 ‘그렇고 그렇다(It is what it is)’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울함도 감소한다."
- 이국종이 집필 중인 '내가 겪는 우울증'을 바탕으로 인터뷰 한 내용. 현실적인 행복에 관한 조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 계신 만큼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목격하실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세요?)

많이 어렵습니다. 많이 어렵고요. 물론 저희가 신앙적으로는 ‘주님의 뜻이다’.[56]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까지도 쉽게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많이 하는 기도 중에 그런 게 있거든요. 저희가 인간이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주님의 뜻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늘의 뜻이, 주님의 뜻이 사도 제자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희가 전달하는 역할 같은 걸 못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저희가 부족하면. 사람이 하는 일에 최선을 못하면 주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 그 환자 개개인한테 가는데, 거기서 저희가 전달자 같은 역할을 많이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거니까요. 주님의 뜻이 제대로 끝까지 환자 개개인 분들한테 가지 못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저희가 중간에서 역할을 잘못하는 것이니까요. 부담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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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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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hn Cook-jong Lee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2]서울특별시 강서구[3]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18세손 '鍾' 항렬, 나잇대에 비해 높은 항렬에 속한다. 독립유공자인 이위종과 같은 항렬.[4] 전문임기제군무원 가급. 군무원 1~4급 상당으로 경력에 따라 보수 산정, 전문임기제와 같은 전문경력관 형식의 군별 직급체계 하에서는 가군 이상이면 상당 직위를 인사권자(전문임기제군무원의 경우 국방부 장관)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보수 또한 상하한액(가급은 하한액) 내에서 보다 자유롭게 정해진다. 현재 국군병원의 경우 군의관이 아닌 외부에서 영입된 의사 인력을 모두 가급으로 채용하는데, 그래서 어떤 가급은 이국종 교수처럼 병원장이고, 어떤 가급은 임상의사인 것이 가능한 것이다.[5] 국군대전병원장직을 역임하면서 2023년 12월 27일부로 휴직 중이다.[M.D.] [7] 1기로 입학해 군 복무 후 2기와 함께 졸업했다.[M.M.Sc.] [Ph.D.] [10] 박사 학위 논문: 수술전 문맥지결찰이 간절제술 후 잔존간의 재생에 미치는 영향 (2002)[11] #[12] 이국종은 가족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아서 배우자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다. 본 사람들이 있는데 배우자도 의사라는 말이 있다. [13] 각 2000년 / 2002년생. 참조[14] 1차 해상은 갑판병으로서 경기함(DD-923) 복무, 2차 육상은 그 당시 대방동 해군본부서 근무. 부친이 6.25 전쟁 참전 상이용사(전상군경)라서 국가유공자 가족 병역특례에 따라 6개월간 단기 수병으로 복무하고 일등병으로 전역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재학중이던 아주대학교의과대학을 자퇴할 생각을 하고 입대했으나, 동료 장병들의 격려로 학업을 이어나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 병장 계급장을 부착한 하약정복 차림의 사진 때문에 병장 전역자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당시 전역 전 병장 계급장을 부착한 후 찍은 사진이다.[15] 기사[16] 외상외과장은 현재 정경원 교수가 맡고 있다고 한다.[17]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겸임, 현재는 정경원 교수가 맡고 있다.[18] 후술하겠지만 골든아워라는 책을 집필했다.[19] 대한민국 해군 명예 대령. 현직 국군대전병원의 병원장이다.[20] 간담췌 외과 전공 후 펠로우 이후 의과대학 내 보직 발령 받을 때 외상외과로 발령받았으므로 간담췌 외과 전문의 자격증 또한 보유한 것으로 추정. 다만 처음부터 외상외과를 전공한 것은 아니고 간담췌외과를 전공했으나 국내에 교수 자리가 없어 일자리를 찾다가 2002년에 외상외과 교수로 발령 받았다고 한다.[21] 이국종의 책 『골든아워』에서 말하길, 근무복은커녕 수중에 먹고 죽을 돈조차 없었으므로 수술복을 근무복처럼 입었다고 한다. 현장으로의 잦은 출동 탓에 흙먼지를 뒤집어 쓰거나 땀, 핏물에 수술복이 젖는 일이 잦았다고 하나 수술복을 입고 있어야 그나마 쉽게 갈아입을 수 있어 감염방지에 도움이 되었다 한다. 원칙적으로 수술복은 수술실 안에서 입고 수술 후에는 세탁실로 보내는데, 수술복을 여러 벌 구비해놓고 하나의 수술을 마무리한 후에는 새 수술복으로 갈아입었을 가능성이 높다.[22] 교통사고, 추락, 총상, 폭행 등으로 치명적인 외상. 국내에서 중증외상 환자가 매년 10만여 명이 발생하지만, 중증외상 이송 및 진료 체계가 취약하여 완치 가능한 중증외상 환자의 사망률이 35%에 달한다. 이는 미국, 영국 등 기타 선진국의 중증외상 환자 예방 가능 사망률 10~15%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23]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의 20%(약 1,600억 원)를 2017년까지 사용해 전국에 16개의 중증 외상 센터를 건립하게 된다.[24] 외상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25] 이국종이 직접 설명하는 응급의학과 외상외과의 차이점 영상.[26] 중증외상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흉부외과, 영상의학과, 임상병리과 등.[27] 제자이자 동료인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외과 정경원 교수의 경우, 부산에 있는 집에 1년에 4일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한다. 정 교수도 이 교수 못지않은 헌신과 신실함의 대명사이며, 이 교수가 '얘는 진짜다'라고 경탄한 사람이다. 독실한 신자로 매일밤 통성기도로 환자들의 안위를 빌고 자곤 했고, 가족이 있는데 아예 병원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국종은 아주대 센터가 망해도 그가 돌아갈 곳이 있도록 부산대 외상센터의 향배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28] 수술 며칠 전부터 입원하여 많은 검사를 하고 철저하게 계획한 수술과 응급수술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중증외상 수술 전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흉부, 복부 등을) 열어봐야 안다."이니 말 다했다. 환자의 모든 외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데다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일단 개흉/개복한 다음 출혈을 잡고 망가진 장기를 꿰메거나 절제하는 것이 수술의 1차 목표.[29] 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가족의 죽음 앞에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는 보호자들에 의하여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멱살을 잡히는 것은 예사요, "살리지도 못할 거면 왜 수술했냐", "수술 전에는 괜찮았는데 수술 후에 이상해졌다.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니냐?"라거나, 심지어는 "우리한테 돈 뜯으려고 수술하자고 한 것 아니냐?"라는 등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욕을 먹는 것은 기본이다. 고소 협박, 심한 경우는 죽여버린다는 둥 협박까지 당하기도 한다.[30]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소방서에서 출동 시 구조에 방해가 되는 차량이나 물건은 그대로 소방차로 들이받아 길을 열거나, 도끼로 까부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이렇게 막 부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응급상황시 현장요원에게 부여하는 힘이 막강하고, 관련 법이 잘 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31] 한국에서 레펠강하를 가장 많이하는 특전사, 특수부대도 국가에 돈이 없다고 열기구로 훨씬 낮은 고도에서 겨우 훈련한다. 민간분야에선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무리하게 산지 등에 착륙하다 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 섬이 많은 전라남도의 경우 위급환자 발생 시 헬기를 이용해 광주광역시의 조선대학교부속병원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간호전문대 방향으로 올라가면 헬기착륙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역 뉴스에도 위급환자 이송 사실이 나오고, 수십 년째 계속되어 학생들도 헬기가 왜 오는지 알기때문에 소음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고 일상으로 생각한다. 전라남도의 경우 섬들까지 포함하면 지역이 굉장히 넓지만 의와로 의료기관 수가 적다보니 위급환자는 광주로 바로 이송하는 것이 환자에게나 의료진에게 도움이 된다. 전라남도에는 의과대학이 없기에 항구가 있은 목포나 순천에 대학병원급의 대형병원이 없다. 그래서 전라남도가 계속 도내 의과대학 및 부속병원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32]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기 때문.[33] 귀순 병사, 즉 진짜 최전방 환자까지도 상대할 정도로 이국종은 야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34] 라울 코임브라 교수는 이국종 팀의 북한 귀순병의 수술 집도를 직접 참관하였으며, 기생충이 북한군의 몸 속에서 나오자 당황한 이국종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라울 코임브라 교수는 미군 군의관 대령 출신이고, 이국종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해군 명예 대령을 맡고 있다. 또한 코임브라 교수는 전 세계의 외상센터 모델을 구축한 바 있고, 이국종 교수 또한 한국의 외상센터 체계를 구축하고 이끌어나가고 있는 인물이다.[35] 간담췌외과, 외상외과[36] 물론 다른 외상외과 전문의들도 치료는 가능하나, 총알의 제거나 큰 수술이 필요한 경우 거의 대부분 이국종이 집도한다.[37] 손상 통제라는 이름은 해군군사특기 중 하나인 손상 통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군함이 폭격을 당했을 경우 일단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피격 부위만 긴급 보수한 후 항구로 끌고 와 수리를 마무리하는 방식을 뜻한다.[38] 계급장은 소령 계급장이고, 정복 약장 위의 휘장은 미국 육군공중강습휘장(Air Assault Badge)으로, 미국 육군에서 헬기 레펠 훈련을 마치면 수여하는 휘장이다. 그 아래에는 상훈인 국민포장과 적십자기장이 달려 있다.[39] 1차 해상은 경기함(DD-923) 복무, 2차 육상은 그 당시 대방동 해군본부서 근무. 1992년 3월 입대로 몇몇 뉴스에서 나오는데, 이 때 입대 기수는 해상병 349기다.[40] 참고로 미국 육군의 헬기, 에어 앰뷸런스를 포함하여 하루 한두 번 이상은 헬기가 오는데, 헬기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꽤 장관이니 기회가 된다면 보도록 하자.[41] 동/하정복 및 근무복, 육상 및 함상 전투복이 지급된다.[42] 실제로 명예 소령은 정복을 포함한 피복을 입을 권리를 가지며, 정복 차림에서는 경례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미국명예 훈장(Medal of honor) 수훈자도 마찬가지다.[43] 함정 승,하함 시 영송병이 경례하는 모습과 승,하함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해당 함정(부대) 지휘관 및 외빈에 대한 함상예절 중 하나이다.[44] 생애 단락에 상술했듯 시력 때문에 해군사관생도의 꿈을 접고 의사를 택했다고 한다.[45] 현 체계 상 문민이 받을 수 있는 명예계급의 상한이 대령이다.[46] 행정체계상으로는 전문경력군관 가군으로 3급 부이사관 대우로 임용되어있다.[47] 글 쓰는 의사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고, 2016년도에 수필가로 정식 등단하였다. 본인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글을 자주 올린다.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다. 자세한 것은 남궁인 참조. 응급의학과에 관심이 있다면 JTBC 말하는 대로 3회, 잡스 6회를 참고할 것.[48] 여담으로 이때 유희열에게 자신은 유희열의 프로그램 마무리지으러 나오는거 같다는 농담을 했다.[49] 이때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는 반응까지 있었다.[50] 참고로 본인 팬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기도 하다.[51] 물론 의료계의 논란을 의식해서 '제가 들은 얘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수입과 관련된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52] 지금까지 손석희는 인터뷰에서 교수나 전문가가 나오면 보통 칭호를 교수 또는 인터뷰 대상이 소속한 단체 직급 등으로 칭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이었다. 즉 일반적이라면 이 교수님 혹은 센터장님이 보통의 그의 호칭.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이국동에게는 이국종 박사라고 호칭하면서 손석희 나름대로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였다.[53] 실제 이국종과 만나는 환자의 보호자들이 가장 먼저 그에게 듣게 되는 말이다.[54] 이것은 이국종과 만난 환자가 사망했을 때 보호자들이 가장 먼저 그에게 듣게 되는 말이다. 절대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55] 실제로는 존경하는 선배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어록은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메인 배경인 돌담병원의 의국에 사훈처럼 걸려있다.[56] 프로필에 적혀있듯 가톨릭 신자이다.[57] 제일 좋아하는 곡이 린킨 파크의 'New Divide'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매진 드래곤스의 음악을 자주 듣는다고. 그의 나이대를 감안하였을때, 록분야에서는 편견 없이 폭넓게 음악을 듣는 듯 하다.[58] 9회 참조[59] 5회에 건물에 깔린 환자를 이송해 1시간 만에 무수혈 수술을 해야 되는 상황이라 이 수술을 시도하였다.[60] 각하라는 호칭은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 이후로 잘 쓰이지 않게 되었으며 현재는 거의 대부분 '대통령 님' 이라고 호칭을 붙인다. 이국종이 얼마나 사회와 동떨어진 채 의술에만 집중해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61]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의 해군참모총장이기도 했던 김성찬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국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한다.#[62] 이국종은 '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다'며 인터뷰에서 말했던 바가 있다.[63]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후보 모두 낙선했다.[64] 졸업은 2기와 함께 했다. 졸업 후 군대를 간 것이 아닌 대학교를 휴학하고 군 복무를 했다.[65] 오은영이 아주대학교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하던 시절 이국종은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국종이 여기에 대해 따로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오은영은 모두가 알다시피 정신과 의사이고 이국종은 외과 의사이므로 아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수업을 들었거나 학교에서 마주쳤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66] DJ인 배철수의 휴가로 인해 결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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