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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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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술을 하는 여러 진료과를 묶어 부르는 말
1.1. 역사1.2. 주요 진료과
2. 진료과의 하나
2.1. 외과의 분과2.2. 수련의 환경2.3. 수련 내용
2.3.1. 의대 국시 과목으로서의 외과2.3.2. 레지던트 임상수기
3. 외과 의사
3.1. 현실3.2. 가상

1. 수술을 하는 여러 진료과를 묶어 부르는 말

외부에서 물리적 충격에 의해 발생한 몸 외부의 상처와 내장 기관의 질병을 수술이나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임상과. 외부의 상처를 수술로 치료한다는 점에서 대부분 약물치료로 치료하는 내과와 대비된다. 물론 내과라고 수술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외과라고 약물치료를 안 하는 것도 아니지만 외과는 내과에 비해 수술의 비중이 아주 높기에 일반적인 시선으론 수술로 치료하냐, 아니냐로 구분한다.

외과의사는 영어로 Surgeon(서전)이라고 부른다.

1.1. 역사

영어 'surgery'를 비롯, 유럽권에서 외과를 가리키는 단어는 대부분 라틴어 'chirurgiae'가 어원이며, 이는 그리스어손으로 하는 일이란 뜻의 'χειρουργική'(케이루르기케)를 라틴어로 음차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외과 시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집도된 수술로 쿠푸왕대피라미드를 건축했던 노동자들의 공동 묘지 유적에서 두개골이 인위적으로 절개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1]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개골을 절개해 출혈을 치료하고 뼈 조각을 제거하는 높은 난이도의 수술을 집도하기도 했으며 안과나 치과도 그 수준이 높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천년에 걸쳐 미라를 제조했기에 해부학이 발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해부학은 발달하지 못했고 장기와 뼈, 혈관, 근육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관념적이었다.

서양 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아스클레피오스가 활동한 고대 그리스 시기의 외과학은 내과의 성장에 비해서는 그닥 큰 진보를 이루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고대 로마의 외과학은 백내장과 종양 제거 수술을 일상적으로 행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으며 성형수술 또한 대중적이었다. 고대 로마의 의사들은 세균학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살균이 필요하다는 것을 터득해서 수술 도구를 사용 전에 불로 소독하고 상처 부위를 알코올로 세정하고 꿀을 항생제로 사용했다. 그래서 한때나마 고대 로마인들의 수명이 당대의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길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었으나, 현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의술 수준과 별개로 절대 다수의 로마 시민들은 60세를 넘기지 못했고, 50세를 넘기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중론이다.(Zuiderhoek, 2017)

또한, 고대 로마 제국군의관과 의사들은 겸자와 같은 다양한 수술기구들을 사용했으며 이 시기의 수술 도구들은 현대의 수술 도구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어 수술 도구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외과 의사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시대에는 대접이 박했다. 내과가 고대부터 내려온 이론과 현학을 중심으로 귀족과 상류층을 주로 진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과는 대중이 생활에서 스스로 습득한 '삶의 방식'이었으며 노동 강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국에서는 외과 의사에게 Dr.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Mr.나 Ms.로 부른다,

그래서 중세부터 내과와 외과는 의견 충돌과 차별 문제, 이권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당대에도 내 · 외과 겸업의나 많은 의사들이 내 · 외과 간의 갈등과 충돌을 중단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지금까지도 내과와 외과는 충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세 아랍의 경우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의 유산을 흡수한 덕에 의술이 매우 진보해, 로마 제국처럼 겸자 등 수술도구를 쓰고 봉합 수술을 위해 단백질 실[2]을 사용했다. 로마 제국과 아랍의 외과 의술이 어느 정도였냐면, 오늘날에 비해 훨씬 위험하긴 했지만 제왕절개를 한 사례까지 있다.

허나 편견과 달리 중세 유럽도 로마의 의학을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받았다. 중세 군대의 군의관들도 로마의 군의관들보다 실력이 떨어졌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으며 (Mitchell, 2004) 오히려 더 발전한 측면도 있다. 살레르노 대학을 위시한 여러 의과 대학의 의사들은 그 수준이 매우 높았고 11 ~ 13세기의 의사들은 심장과 폐, 고환의 외상을 치료하기도 했다.[3] 특히 살레르노 의과 대학에서는 로마 말기부터 동로마 제국 시기까지 탈장이 발생한 환자의 탈장 방향에 있는 고환 한쪽을 적출하는 치료법이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중세 암흑시대설을 맹신하는 자들이 로마 제국과 아랍이 무려 겸자를 쓰고 제왕 절개까지 했다고 찬양하지만 실제론 중세 서유럽에서도 겸자는 똑같이 쓰였고, 제왕절개 수술을 성공적으로 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4] 교황청에는 아예 만삭의 임산부가 사망했을 때에, 제왕 절개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제가 장례를 치르면 자동 파문한다는 포고를 내리기도 할 정도였다. 상식적으로도 중세 유럽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전쟁이었고, 왕과 상류층이 근본적으로 전사들이었는데, 외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전쟁이 잦을수록 상처 치료에 대한 경험이 축적[5]되기 마련이고 그러면 의술의 발전은 자연히 뒤따라온다.

이밖에도 외과의들이 모두 이발 외과 의사였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편견이며 역사 왜곡이다. 이발사들은 면도하는 중에 출혈이 생기는 일이 있기 때문에 지혈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메스와도 같은 예리한 면도칼을 다루어서 외과 시술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의료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이발사들이 외과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외과의의 지위 하락과 인원 부족, 그리고 의사의 외과 진료를 금지한다는 종교 회의 포고령 등의 요인들이 있어서였다.

외과의의 지위 하락과 교회의 통제에도 의과 대학의 외과의 교육 과정, 외과의 개인의 후진 육성 과정을 통해 정식으로 인정받은 외과의들이 계속 양성되었다. 이발 외과 의사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주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외과 의학의 전수가 이루어졌고, 정규 외과의들은 이론 교육, 봉합 수술, 해부 실습, 수술 및 해부 참관, 병원 근무 등의 다양한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정규 외과의들은 무자격자인 이발 외과 의사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외과의의 지위 향상과 외연 확대, 내과와의 충돌에서 이기기 위해 이발 외과 의사들과 연대했고, 이발 외과 의사들 역시 외과의의 지위 향상에 큰 관심이 있었기에 정규 외과의들과의 연대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각 지역에 존재한 의과의 길드에는 이발 외과 의사들도 회원으로 활동했다.

돌팔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이발 외과 의사들은 기초적인 지혈, 상처 치료, 화살 제거 정도나 가능하고, 이들이 집도하는 수술은 팔다리를 토막치는 도축에 가까웠단 편견이 있지만, 파레처럼 외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의들도 있었고 의학 연구나 치료법의 개발에 노력한 이들도 있어서 케바케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근대에 접어든 18세기부터 영국프랑스는 외과의사와 이발사의 겸업을 금지하기 시작했으며[6] 영불 양국의 겸업 금지 조치의 영향을 받아 유럽 각국에서 유사한 조치를 취하면서 이발 외과 의사는 사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병원은 내과, 외과의 벽을 넘어 중세 유럽 의료의 대표적인 혁신 중 하나이다. 병원 유적과 건물 배치를 살펴보면, 중세 의사들이 세균 감염 원리를 몰랐어도 경험적으로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서 위생적인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살레르노 의과 대학의 의사들을 비롯해 중세의 많은 외과의들은 위생을 강조해서 외과 진료시에는 반드시 끓인 포도주로 환부를 소독하여 깨끗하게 할 것을 권하고 지혈을 중시했다. 그리고 붕대도 끓인 포도주에 적신 것을 써서 치료 이후의 상처 감염을 예방하려 했다. 또한, 이들은 출혈의 위험성을 경계해서 되도록이면 빠르게 수술을 끝낼 것을 강조하고 함부로 환부를 절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마취의 경우, 에테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환자를 마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낭설이다. 환자의 고통은 외과의들이 늘 걱정하는 것이었고 어떻게든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고대부터 외과의들은 대마, 아편, 만드라고라 등, 마취 효과를 가진 다양한 약재들을 써서 환자를 마취했으며 술도 자주 애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마취제들의 효과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사람마다 마취제를 받아들이는 양이 달라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취제 과용으로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7]

이러한 문제는 1846년, 치과의사 윌리엄 모턴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최초로 에테르를 이용한 마취를 시행한 뒤부터 해결되어 환자는 수술 시의 심한 고통에서, 외과의들은 기존 마취제의 불안정한 효과와 농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근대 외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외에도 외과학의 발달을 촉진시킨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전쟁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외상이 발생하는 전장에서 외과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진료 과목이었고,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각종 외상에 대처하고 이를 예방하는 과정에서 외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사지에 중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운 좋게 관통상이 아니라면 몸 안에 박힌 총알 파편을 다 꺼낼 수도 없고 상처 감염 문제가 심해서 절단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현대에는 환자의 생명 뿐만 아니라 팔다리의 뼈와 신경, 근육 등을 최대한 보존하며 이미 절단된 부위 또한 접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1.2. 주요 진료과

2. 진료과의 하나


Department of General Surgery (GS)

외과는 성형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치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제외한 신체 부위의 수술을 하는 병원의 진료과로, 이에 대응하는 의학의 한 분야를 외과학(surgery)라 한다. 다른 외과계 진료과와의 구분이 필요할 때는 일반외과라고도 한다. 굳이 따지자면 복강장기 가운데 비뇨생식기를 제외한 것, 그리고 턱뼈 아래부터 흉곽 위까지 가운데 호흡기/발성기관과 식도를 제외한 곳을 수술하는 전문과이다.

국내에서는 외과계에서 전공을 정할 때 여러 전공 중 하나로 하지만, 미국에서는 외과를 1-2년 정도 먼저 한 후 다른 분야 전공으로 들어간다.

그냥 '외과'라고 붙은 곳의 경우는 주로 병원의 여러 진료 과목들 중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외과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주로 외상을 크게 입은 경우다 보니까. 그런데 촌락 지역에는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농·어민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외과 의원이 한두 곳씩은 있다. 농어촌 특성상 외과에서 감기약도 처방하는 등 내과 진료까지 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렇게 내과 처방을 하는 건 절대 위법이 아니다. 이건 일반의전문의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각 문서들로 이동하기 바란다.

2.1. 외과의 분과

2.2. 수련의 환경

일반적으로 외과 수련의는 선호도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몇명 분의 수련의가 할 일을 한 명이 하는 일이 많다. 흔히 적용되기 쉬운 외과 수련의의 일반적인 시간표는 다음과 같다.

서울 한 대학병원 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E씨는 유일한 외과 레지던트이다. 외과 레지던트 정원은 8명이지만, 지원자가 없고 있던 이들도 모두 중도 포기하고 나가서 혼자 남았다.

4:30~7:00 / 입원한 환자의 밤 사이 상태 등 경과를 기록한다. 입원 병동을 돌며 소독을 다시 해 주는 등 기본 처치를 한다. 이후 전날 수술한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등을 정리해 다른 의사에게 나눠준다. 이를 토대로 컨퍼런스 회의가 열린다.
7:00~8:00 / 교수와 회진을 돈다.
8:00~17:30 / 본격적인 근무를 한다.17:30~19:00 / 이 시간 즈음 외래 진료와 수술이 끝난다. 이때부터 맡은 환자에게 영상검사나 수술실을 허가해달라는 등의 요청을 한다.
19:00~20:30 / 교수와 다시 회진을 돈다. 만일 회진이 끝나고 응급 환자가 없다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생겼다고 연락이 오면 못 먹는다.
20:30~00:30 / 저녁식사를 마친 후 여기 저기 뛴다.
00:30 / 잠시 잠을 자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간에 연락이 오면 다시 달려간다.

E씨의 근무는 퐁-당-퐁-당으로 1달에 30번 행해진다. 부르면 언제든 뛰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병원 근처에 산다. 쉴 때는 저널이나 환자 케이스 발표 등을 준비한다. 중간 중간 선배 의사나 다른 진료과 전공의가 대신 당직을 서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책임이어서 너무 힘들다고 인터뷰했다. 전공의들에게 오프는 정규근무가 끝나고 퇴근했다가 다음날 출근하는 날을 말한다. 오프가 아닌 당직일에는 36시간 연속 근무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면 주당 108시간 근무가 나온다.
시간 내용 기간
월08-화20 근무 36h
화20-수08 휴식 12h
수08-목20 근무 36h
목20-금08 휴식 12h
금08-토20 근무 36h
토20-월08 휴식 36h

2.3. 수련 내용

2.3.1. 의대 국시 과목으로서의 외과

총 17권 분량 중 2권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다.

2.3.2. 레지던트 임상수기

<R1이 단독 시행할 수 있는 수술>
<R2가 단독 시행할 수 있는 수술> (R1은 지도하에 가능)
<R3가 단독 시행할 수 있는 수술> (R1, R2는 지도하에 가능)
<R3가 단독 시행할 수 있는 수술> (R2는 지도하에 가능)
<R4가 단독 시행할 수 있는 수술> (R3는 지도하에 가능)
<전공의는 단독 시행 불가> (R3, R4은 지도하에 가능)
<전공의는 단독 시행 불가> (R4은 지도하에 가능)

3. 외과 의사

3.1. 현실

이국종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영 좋지 않다. 마치 PC방에서 PC이용료로는 적자고 부대비용으로 버는 것처럼 한국 의료는 기본진료가 적자고 추가 건강보험 진료 혹은 비급여 진료 등을 통해 벌어야만 하는 기형적인 구조인데 외과는 이럴 구석이 별로 없다. 현행 한국의료는 주로 사람 살리는쪽, 즉 '바이탈'에 가까울수록 가격이 후려쳐지는 말도 안되는 구조인데 외과는 모든 외과계열 과에서 가장 사람 살리는 일에 가깝다. 그나마 그 중에서는 사람 살리는데 먼(...) 갑상선과 유방, 대장항문으로 주로 수익을 내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병원 복부 수술쪽은 진짜 적자폭탄이라 교수님들이 열의를 다해 수술하면 그 적자는 구내식당, 주차장이나 장례식장으로 메꾸고 있다.

3.2. 가상

창작물에서는 째고 싶어서 안달난 작자들이 모인 괴상한 집단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1] 출처: NHK 다큐멘터리 세계 4대문명 - 이집트 편. 참고로 이 환자의 수술은 뇌종양 제거 수술로 추정되고 있다.[2] 그냥 실은 수술 후 빼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단백질 실은 꿰매기만 하면 된다. 고양이 혹은 개의 내장을 썼다고 흔히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실제론 양의 내장을 썼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3]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고환 외상에 대해 극중 인물의 대사로 표현한 바 있다. 다만, 신장쪽은 이 시대에 치료하기가 매우 힘들었다.[4] 애시당초 서유럽의 중세를 '암흑시대'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다. 자세한 것은 중세 문서로.[5] 정확한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6] 당연히 양국에서는 내과의들의 극심한 반발이 뒤따랐다.[7] 특히나, 제왕 절개를 할 때에 마취제 과용으로 사망하는 일이 잦았으며 이는 고대부터 외과의들이 어려움을 겪은 문제였다.[8] 충수. 맹장염 수술할 때 절제하는 그 부위 맞다.[9] 실제로도 작중에서 수술을 집도하며, "즐겨 사용하는 메스가 있다"는 언급으로 수술을 하는 의사, 다시 말해 외과 의사라는 사실이 재차 확인되었다. 다만 실존인물 요사노 아키코는 의사와는 무관한 그냥 와카 시인이었다.[10] 모리 오가이는 역사상 실제로도 의사였다.[11] 간, 쓸개, 췌장(이자)을 주로 수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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