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1:21:05

이정미(법조인)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헌법재판소 재판관 (대법원장 지명, 대통령 임명)
이공현
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노무현 대통령 임명
이정미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이명박 대통령 임명
이선애
양승태 대법원장 지명, 황교안 권한대행 임명
<colbgcolor=#911B2B><colcolor=#E4B477> 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정미
李貞美 | Lee Jung-mi
파일:1707115254664-1.jpg
출생 1962년 6월 25일[조기입학] ([age(1962-06-25)]세)
경상남도 울산시
(現 울산광역시)
현직 법무법인 (유)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
재임기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 이명박 대통령 임명)
2011년 3월 14일 ~ 2017년 3월 13일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2]
2013년 3월 25일 ~ 2013년 4월 11일[3]
2017년 2월 1일 ~ 2017년 3월 13일[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911B2B><colcolor=#E4B477> 가족 배우자 신혁승[5], 슬하 1남 1녀
학력 마산여자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80 / 학사)
종교 기독교(개신교)[6][7]
약력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제16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전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 (2011.03. ~ 2017.03.)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2017.02. ~ 2017.0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

1. 개요2. 생애3.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2번 역임했다. 국민들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는 선고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1962년 울산[8]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원래 학창시절 꿈은 수학교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산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9년, 10.26 사건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모습을 보고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고민하다가 법대로 진학했다.[9]

1984년 사법시험에서 5명의 여성 합격자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본래 검사를 희망했으나 검찰시보를 해본 후 본인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대신 판사가 되었다. 이후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다. 2011년 3월,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된다. 직업과 육아 2가지 모두에 충실하려다 보니 두 자녀가 자고 나면 일을 하는 식으로 잠을 줄여가며 바쁘게 살았고, 따라서 외부 활동이 거의 없어 헌법재판관 지명 때까지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2013년, 전자배당을 통해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심 재판관을 맡은 바 있다. 2017년 2월 1일부터 퇴임할 때인 2017년 3월 13일까지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비서울대, 여성 법관의 대표격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소수파 배려명분으로 지명한 케이스다.[10]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도중 박한철 전 소장이 퇴임하면서 소장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본인 임기 내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종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본인의 퇴임[11] 전주 금요일3월 10일, 최종 선고하여 결국 이를 실천했다.

헌재,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재판관 8대 0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3일 후인 2017년 3월 13일 퇴임하였고 8분간의 짧은 퇴임식을 한 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하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선애를 지명하였다. 헌법재판관 퇴임 후 모교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임용되었다. 석좌교수 위촉 기간은 1년이라고 한다.

2020년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중 한명으로 언론에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7월부터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상임고문변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로고스 측에서는 이정미의 합류로 막강한 헌법소송 대응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

2022년 종부세 위헌소송의 법률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 주목을 받았다. 본인은 정치적 해석 없이, 종부세가 위헌적이라는 생각 하에 법률대리인으로 참가한다고 밝혔다. #

이어서 3월에는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의 김형준의 변론을 맡았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했다. 이는 안창호헌법재판관도 마찬가지.

3. 경력

4. 여담


파일:external/img.tf.co.kr/20172405148824175100.jpg
파일:external/dispatch.cdnser.be/20170107095543_1.jpg


[조기입학] 국민학교를 7세에 입학해서 1961년생과 동창이다.[2] 헌법재판관 6년의 임기 중 2013년, 2017년 두 번 연속으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상황이 기록되었다.[3] 송두환 재판관 퇴임으로 인한 공석에 헌법재판소법 의거, 선임재판관으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취임 전까지 권한대행 수행.[4]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퇴임으로 인한 공석에 헌법재판소법 의거, 선임재판관으로 재판관 임기만료까지 권한대행 수행.[5]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부총장을 역임한 후 2023년 퇴임했다. 경제학자이자 서울특별시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조순의 조카(누이의 차남)이다.[6] 출처.[7] 서울특별시의 모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퇴임사 마지막에도 "지금까지 늘 함께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대한민국과 헌법재판소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넣었다. 그런데 극우 개신교 세력에서는 그가 출석하는 교회의 신학적 성향을 트집삼기도 하였다.[8] 집안 대대로 울산 출신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울산 토박이. 그러나 고등학교는 마산여자고등학교를 나왔는데, 1970년대는 평준화가 되어 있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마치 대학 진학하듯 서울특별시나 가까운 타 도시로 진학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 때문에 유료 인명사전 서비스에서는 마산(창원) 인맥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9] 이를 따와서 만든 뉴스룸 오늘의 한마디가 있는데 10.26 사건으로 운명이 바뀐 여고생. 약 40년 뒤 '박근혜 시대'를 마감짓고 떠나다. 라는 말로 2017년 3월 13일 퇴임하는 그녀에게 JTBC 뉴스룸 '오늘'에서 한마디를 남겼다.[10]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는 주선회 전 헌법재판관이 있었다.[11] 3월 13일 월요일.[12] 만약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가 아닌 7인 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이었다면 협박죄가 아닌 내란목적 살인 예비·음모·선전·선동의 적용도 가능했을 것이다. 헌법재판관, 그것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그 자체로 헌법기관인데다 실제 살인이 이루어졌을 경우 헌법재판관 개인의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탄핵기각을 넘어 헌법재판소에서만 가능한 탄핵심판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었다. 7인 체제에서의 헌법재판관 살인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국헌문란, 즉 내란에 해당한다. 단, 그 경우라도 자수하였으므로 형의 감경이나 면제가 가능하기는 하다. 어쨌거나 8인 체제였기에 내란죄는 면한 것이다.[13] 썰전 247회에서 박형준 패널이 말한 내용과 유사하다. 요약하자면, 사법기관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는데 판사 한 명을 비난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