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스테판 그라펠리 Stéphane Grappell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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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스테파노 그라펠리 Stefano Grappelli |
| 출생 | 1908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
| 사망 | 1997년 1월 28일 프랑스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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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 재즈 바이올린 연주자 |
1. 개요
프랑스, 이탈리아의 재즈 바이올린 연주자. 장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2. 생애
1908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라리보아지에르 병원에서 이탈리아인 교사였던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5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아버지가 징집되어 열악한 환경의 고아원에 맡겨져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1918년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어린 그라펠리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온 뒤 프랑스 국적으로 귀화시킨다. 그라펠리가 12살 때 아버지가 자신의 양복을 전당포에 팔아 얻은 돈으로 바이올린 한 대를 사 줬고, 이후 길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독학하거나 아버지의 도움으로 파리국립고등음악무용원에서 기초적인 음악 이론을 배운다.
15살 때 무성영화 극장에서 반주를 깔아주는 악단에 가입하며 연주자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더 돈이 된다고 판단해 얼마 안 가 피아니스트로 전향한다. 하지만 극장 악단장이 그라펠리의 바이올린 실력을 더 높게 쳐 줬고 몇년 뒤 다시 바이올린을 잡게 된다.
1930년, 극장 악단장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자를 여럿 내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남미로 도주해서 악단이 해체되었다가 다음 해 새로운 단장과 함께 다시 결성된 적이 있는데 이 때 악단에 신입으로 들어온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를 만나게 된다. 이 둘은 1934년 영국 런던의 호텔에서 재회하여 퀸텟 뒤 핫 클럽 드 프랑스(Quintette du Hot Club de France)라는 집시 재즈 밴드를 결성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몇 년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장고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그라펠리는 런던에 남으며 밴드는 해체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프랑스로 귀국해 장고와 다시 만나 활동을 이어가긴 했으나 이 시기의 장고는 기존의 어쿠스틱 기타와 스윙을 탈피하고 일렉트릭 기타와 비밥으로의 장르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반면 비밥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라펠리는 음악적 견해 차이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안가 장고가 은퇴 후 1953년 뇌졸중으로 사망했고, 그 뒤로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영화, TV 프로그램,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활동을 뜸뜸이 이어가다 1967년 힐튼 파리 오페라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실내악을 연주하는 악단에 가입하여 5년여간 일한다. 안정적인 직장과 수익을 보장받았으나, 그 동안 재즈계에서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진 지 오래였다.
1971년, 전환점이 찾아온다. 영국 BBC의 TV쇼 진행자 마이클 파킨슨(Micheal Parkinson, 1935~2023)의 아이디어로 거장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인 예후디 메뉴인과 듀엣을 하게 됐는데, 악보대로 연주하는 메뉴인과 즉흥 연주를 하는 그라펠리의 조합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세 장의 앨범을 내며 그라펠리를 다시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