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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13:06:35

블랙 플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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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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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이 2011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로 뽑은 "가장 위대한 펑크 록 밴드" 이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그린 데이 더 클래시 라몬즈 섹스 피스톨즈 데드 케네디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기 앤 더 스투지스 블랙 플래그 미스피츠 소셜 디스토션 배드 브레인스
같이 보기: 아티스트, 펑크 명반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파일:블랙플래그_로고.png 블랙 플래그
Black Flag
}}}
파일:Black Flag.jpg
▲왼쪽부터 헨리 롤린스, 그렉 긴, 빌 스티븐슨, 키라 로우슬러
<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데뷔 1979년 1월
EP <Nervous Breakdown>
데뷔 앨범
해체 1986년 6월 27일, 2003년, 2014년
재결성 2003년, 2013년, 2019년
멤버 그렉 긴 (기타)
마이크 발레리 (보컬)
조 노벌 (베이스)
이사이아스 길 (드럼)
전 멤버
[ 펼치기 · 접기 ]
키스 모리스 (보컬, 1976-1979)
론 레예스 (보컬, 1979-1980, 2013)
데즈 카데나 (보컬, 리듬 기타 1980-1983, 2003)
헨리 롤린스 (보컬, 1981-1986)
레이몬드 페티본 (베이스, 1976)
캔자스 (베이스, 1977)
스팟 (베이스, 1977)
척 두카우스키 (베이스, 1977-1983)
키라 로우슬러 (베이스, 1983-1985)
시엘 레부엘타 (베이스, 1985-1986, 2003)
데이브 클레인 (베이스, 2013)
타일러 스미스 (베이스, 2014)
브라이언 미그돌 (드럼, 1977-1978)
로보 (드럼, 1978-1981, 2003)
에밀 존슨 (드럼, 1982)
척 비스킷스 (드럼, 1982)
빌 스티븐슨 (드럼, 1981-1982, 1983-1985)
앤서니 마틴즈 (드럼, 1985-1986)
그레고리 무어 (드럼, 2003, 2013-2014)
브랜든 페르츠본 (드럼, 2014)
장르 펑크 록, 하드코어 펑크, 포스트 하드코어
레이블 SST 레코드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바이오그래피3. 디스코그래피4.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블랙플래그.jpg

사진은 5인조 체제로 활동하던 1983년 당시. 사진 속 인물들도 숱한 멤버교체 과정 중 일환에 불과하다.

미국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 언더그라운드 펑크 씬에서 활동하던 밴드로, 하드코어 펑크의 태동기 대표주자 중 하나로 거론되곤 한다.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멤버의 교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활동했다. 상업적인 성공은 없을지언정 이들의 영향력은 후대에 펑크, 하드코어, 메탈, 그런지 등 다방면에 막강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바이오그래피

기타리스트 그렉 긴과 보컬리스트 키스 모리스를 주축으로 1976년 결성되었다. 1977년 베이시스트 척 두카우스키와 드러머 브라이언 미그돌을 영입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라몬즈스투지스의 영향을 짙게 받은듯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반항적인 사운드로 메인스트림을 지양하며 언더내에서 나름의 반향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패닉이란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1978년 이미 패닉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밴드가 있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렉 긴의 동생인 레이먼드 긴의 제안으로 블랙 플래그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밴드는 음반을 내기위해 음반사들을 찾았지만 모두 거절했고, 이에 밴드는 직접 SST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설립했다. 1979년 데뷔 EP <<Nervous Breakdown>를 발매한 뒤 보컬 키스 모리스는 서클 저크스(Circle Jerks)에 가입하기 위해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보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해피 탐폰스(Happy Tampons)의 론 레예스가 영입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럼의 브라이언 미그돌이 밴드를 탈퇴했고 로보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새로운 라인업으로 EP <Jealous Again>을 발매하고 <서구 문명의 몰락>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했다. 이어서 투어를 진행했는데 투어 도중 보컬 론 레예스가 탈퇴하면서 보컬 자리는 몇달간 공석이 되었다.

밴드의 팬이었던 데즈 카데나가 영입되면서 EP <Six Pack>을 발매했지만 보컬로서 경험이 부족했던 데즈 카데나는 목이 버텨나가지를 않아 기타로 포지션을 전향했다.[1] 그러다 1981년, S.O.A.의 보컬이었던 헨리 롤린스의 영입으로 보컬난은 종결되었다. 헨리 롤린스 특유의 반항기가 넘치는 보컬에 힘입어 밴드의 간판을 자처하면서 활동에 박차를 가한 결과 동년에 1집 <Damaged>라는 역작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 각종 평론단에서도 역사적인 앨범으로 인정받는 앨범으로 사실상 하드코어 펑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훗날 롤링스톤지 선정 500대 명반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밴드활동은 불운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들의 레이블이었던 유니콘레코드는 파산으로 공중분해 되었고, 이후로도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면서 활동에 큰 차질을 빚게되어 결국 1986년 해체하기까지 발매한 앨범들은 별다른 홍보를 받지를 못했다.

1집의 발매 이후 장기투어를 시작하면서 영국에 가게 되었는데, 드러머 로보는 비자 문제로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밴드와 함께 투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디센던츠(Descendents)의 드러머 빌 스티븐슨이 함께하게 되었다. 로보는 밴드가 영국에서 돌아온 뒤 다시 복귀하지 않고 탈퇴 후 미스피츠에 가입한다. 새로운 드러머로 에밀 존슨을 영입했지만 금방 탈퇴해버렸고, 척 비스킷스를 영입했지만 척 비스킷스 역시 금방 탈퇴하고 삼하인(Samhain)에 가입했다. 1983년 영국 투어에서 함께했던 빌 스티븐슨이 영입되면서 다시 5인조가 되었지만 데즈 카데나와 척 두카우스키가 탈퇴하면서 3인조가 되었다.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틀면서 2집 'My War'를 발표하는 등 굵직한 음악적 발자취를 남겼다. "My War"는 지금은 블랙 플래그를 대표하는 명반의 반열에 올라있지만,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엇갈리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전의 전형적인 하드코어 펑크와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인 실험적인 음악성이나 메탈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 등 때문이었다.[2] 그러나 이 앨범은 평단과 팬들의 논란 속에서도 특히 하드코어 펑크 씬 주변의 여러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직접적으로는 슬러지 메탈의 발생을 이끌었고, 이어진 영향은 그런지의 형성까지 이르게 된다.

"My War" 이후로도 블랙 플래그는 1984년에서 85년 사이 Family Man (1984), Slip It In (1984), Loose Nut (1985), In My Head (1985) 총 4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며 그 과정에서 음악적 진화를 계속했다.
헤비메탈의 영향을 펑크 록과 통합한 최초의 펑크 록 그룹 중 하나였으며 나아가 스포큰 워드, 프리스타일 랩, 프리재즈, 브레이크비트, 현대 클래식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펑크 록의 기반에 접목하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지속했다. 블랙 플래그는 동시대의 다른 밴드들이 거칠고 빠른 '쓰리 코드'의 포맷에 머무는 동안에도 더 길고, 더 느리고, 더 복잡한 곡들을 연주했으며 그들의 음반은 많은 동 시대의 펑크 밴드들에 비해 음악적 스타일 상에서 훨씬 많은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블랙 플래그는 1980년대의 대표적인 하드코어 펑크 밴드이자, 동시에 미국 웨스트 코스트 펑크 록의 1세대 중 가장 혁신적인 밴드의 하나였으며 때문에 하드코어 펑크의 선두주자였을 뿐 아니라, 포스트 하드코어의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음악 내적인 면모 뿐 아니라, 인디 레이블 및 자주 제작 흐름의 선구자로서 하드코어 펑크 씬의 형성과 확장 및 DIY를 비롯 펑크 문화의 개척자로도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후 R.E.M.과 함께 미국 인디 록 씬을 견인한 밴드로 추앙받게 된다. 블랙 플래그의 게릴라 콘서트와 음반 유통, 견고한 커뮤니티는 현대 인디 록 씬의 기틀을 다져놨다. [3]
또한 블랙 플래그는 초반 잠시[4]를 제외하고는 1980년대 활동기간 내내 끊임없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특히 "My War"를 비롯 3장의 음반을 발표했던 1984년 한 해 동안 178회의 공연을 했으며, 이듬해인 85년에도 비슷한 횟수의 공연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열성팬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펑크 씬 주변의 여러 뮤지션들에게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블랙 플래그의 공연을 봤던 사람들 중에는 어떤 아마추어 밴드의 드러머도 있었는데, 그는 공연에 감동을 받고 자신의 포지션을 기타로 바꾼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My War" 이후의) 블랙 플래그의 음악에 영향 받은 음악을, 이후엔 그에 더해 "멜빈스 Melvins", 픽시즈, 허스커 두 등에서 영감을 받은 하드코어 펑크를 바탕으로 메탈의 사운드와 팝적인 멜로디 감각이 혼합된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결성해 록씬을 넘어 대중음악계 전반을 뒤흔든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그 '드러머'는 다름아닌 커트 코베인이었다.

그러나 1984년과 85년 사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다소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밴드와 밴드 멤버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만큼의 충분한 상업적 성공에까지는 이르지는 못했고, 1986년에 이를 즈음엔 멤버들 모두 그동안 활동의 피로와 그간의 밴드 활동 및 밴드의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긴장이 쌓여있었다. 매 앨범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했던 것 또한, 블랙 플래그가 이후 록 음악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게 해준 것이었지만 동시에 안정된 팬베이스를 늘려가는 것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일설에는 그 즈음 헨리 롤린스가 당시 대체로 블랙 플래그의 음악적 방향을 이끌어 가던 그렉 긴에게 '왜 우리는 그 전 앨범이랑 비슷한 새 앨범을 내면 안 되는 건데? 사람들이 늘 '쟤들이 또 뭐하는 거냐' 따라잡으려 애쓸 필요 없게 말이야'라고 불만을 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아무튼, 그 결과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밴드가 1985년 발표한 두 장의 앨범 "Loose Nut"과 "In My Head"는 대체로 비슷한 펑크와 메탈이 혼합된 강렬하고 블루지한 일종의 '프로토 그런지'적인 음악적 특성을 보이는 앨범이 되었다. 그러나 "In My Head"는[5] 상당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밴드의 마지막 앨범(정확히는 재결성 이전의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고, 블랙 플래그는 1986년 6월 27일 디트로이트 공연을 끝으로 해산을 맞게 된다.

하지만 밴드는 해산했음에도 이후 블랙 플래그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펑크와 인디 록 씬을 중심으로 끼친 음악 내,외적 영향과 더불어 더욱 높게 재평가되었다.
또한 멤버들 역시 각자의 음악활동을 지속했다. 헨리 롤린스는 "롤린스 밴드 Rollins Band"를 결성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작가, 배우, 방송인 등으로도 활동의 폭을 넓혀갔으며, 진보적 시민 운동가로도 활동을 벌였다. 그렉 긴 또한 "Descendants", "The Lemonheads" 등의 밴드와 함께 펑크, 얼터너티브 씬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세월이 흘러 2013년 역사적인 밴드로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 창단 멤버였던 그렉 긴이 다시 재결합을 선언하면서 부활을 알리게 되었다. 다만, 멤버는 이리저리 바뀌는걸 보아선 고정된 멤버없이 기존곡을 공연위주의 활동으로 가닥을 잡은 듯 싶다. 2013년에 신보 'What the...'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으나, 평가는 별로 좋지 못했다. '30년간 발전이 없다(...)'라는 혹평만 받을 뿐...게다가 2013년 SST/그렉 진과 롤린스를 위시한 다른 멤버들에게 상표권 분쟁 소송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전성기 시절 라인업은 영영 보기 힘들어졌다. 2014년부터는 도로 활동 중단 상태였다가 2019년 다시 결성했다. 물론 헨리 롤린스는 여전히 빠진 상태다.

3. 디스코그래피

4. 여담

파일:블랙플래그_로고.png
참고로 이 로고는 블랙 플래그가 유명해지면서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와 함께 80년대 미국 음악 아이콘 이미지로 꼽힐 정도. [6] 이 로고를 만든 사람은 아티스트 레이몬드 페티본으로 그렉 진의 동생이다. 형의 인맥으로 SST 레코드 전속 아트 디렉터로 일했는데, 잠시 SST에 있었던 소닉 유스와도 연이 닿아 Goo 앨범 아트를 그려주기도 했다.


[1] 이후로는 리듬 기타로 완전히 전향하여 초창기 1집까지 활동하다 1983년 개인적인 음악적 확장을 위해 팀을 탈퇴했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하드코어 펑크씬의 네임드로 남기도 했다. 황혼기엔 미스피츠의 객원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2] 특히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앨범 B면으로, '빠르고,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기존의 하드코어 펑크와 성격이 크게 다른, 블랙 사바스 혹은 둠 메탈 등의 영향이 강하게 엿보이는 무겁고 느리고 음울한 사운드를 들려줬기 때문이다.[3] 다른 걸 말하기 이전에 블랙 플래그가 소속된 "SST 레코드"의 설립자 및 소유주가 바로 기타리스트 그렉 진이었다. 그리고 이후 SST를 통해 데뷔한 밴드들의 면면만 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미니트맨, 허스커 두 Hüsker Dü, 미트퍼펫츠 the Meat Puppets, 사운드가든, 소닉유스, 다이노소어 주니어 등등이 모두 SST에서 데뷔한 밴드들이다.[4] 첫 앨범 Damage의 발표를 전후 기간 동안은 음반사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간[5] 아마도 이 즈음엔 블랙 플래그가 '뭘 하는지 따라잡은' 평론가들에게(...)[6] 때문에 미국 창작물에서는 주로 반항적이거나 힙스터 캐릭터들이 입고 나온다. 조던 필어스(영화) 도입부에 백인 엑스트라가 입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