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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21:44:39

앨리스 쿠퍼

앨리스 쿠퍼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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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앨리스 쿠퍼
ALICE COOPER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앨리스 쿠퍼, 글랜 벅스턴, 마이클 오웬 부르스,
데니스 더너웨이, 닐 스미스
입성 연도2011년
후보자격 연도1995년
후보선정 연도201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folding [ 펼치기 · 접기 ]이름앨리스 쿠퍼
ALICE COOPER
분야음악
입성날짜2003년 12월 2일
위치7012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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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음악 언론 Ultimate Classic Rock이 2021년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를 선정한 순위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비치 보이스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 밴 헤일런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에어로스미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도어즈 토킹 헤즈 R.E.M. 이글스 사이먼 앤 가펑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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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스틸리 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올맨 브라더스 밴드 너바나 라몬즈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ZZ 탑 버즈 레너드 스키너드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카스 그레이트풀 데드 사운드가든 앨리스 쿠퍼 키스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팔리아멘트 / 펑카델릭 벨벳 언더그라운드 스투지스 부커 티 앤 더 엠지스 하트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템테이션스 홀 앤 오츠 시카고 펄 잼 산타나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머틀리 크루 프랭크 자파 & 마더스 오브 인벤션 블론디 두비 브라더스 칩 트릭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저니 보스턴 제퍼슨 에어플레인 픽시즈 본 조비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톤 템플 파일럿츠 캡틴 비프하트 & 히스 매직 밴드 플레이밍 립스 푸 파이터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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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앨리스 쿠퍼
Alice Cooper
파일:AliceCooper.jpg
본명 빈센트 데이먼 퍼니에
Vincent Damon Furnier
출생 1948년 2월 4일 ([age(1948-02-04)]세)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1]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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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if 출력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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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배우
장르 하드 록, 헤비 메탈, 글램 록, 쇼크 록
악기 보컬, 하모니카
활동 1969년 ~ 현재
학력 코르테츠 고등학교 (졸업)
배우자 셰릴 고다드 (1976년 결혼)
자녀 3명
종교 개신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음악 스타일4. 여담5. 디스코그래피
5.1. 밴드5.2. 솔로
6. 빌보드 차트인 목록
6.1. 빌보드 3위~10위 싱글6.2. 빌보드 11~30위 싱글

1. 개요



미국뮤지션. 쇼크록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대부 정도로 평가받는다. 공연할 때 화려한 무대 장식과 분장을 갖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글램록과 같은 화려함을 떠올리면 곤란하고, 무대 위에서 실제 뱀을 목에 감고 노래를 한다든가 대형 단두대를 세워 칼날이 떨어지는 것을 연출한다는 등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가 특징이다.

2. 생애

디트로이트의 스쿨 밴드로 출발한 앨리스쿠퍼 밴드는 1969년 프랭크 자파의 레이블 소속으로 처음 데뷔하여 2장의 앨범을 내놓았지만[2]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자 리드 보컬 Vincent Furnier 는 남들과는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1971년 자신의 이름을 밴드 이름인 <앨리스 쿠퍼>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쇼크록 노선으로 활동을 시작, 비로소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앨리스쿠퍼 밴드는 69년부터 74년까지 멤버 교체 없이, 7장의 앨범을 내며 <I'm Eighteen>, <Under My Wheels>, <School's Out>, <Billion Dollar Babies>, <No More Mr. Nice Guy> 등 2000년대 이후 앨리스 쿠퍼의 콘서트에서 꼭 연주되는 숱한 히트곡들을 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멤버들과의 불화로 1974년 밴드는 해체되고 (앨리스 쿠퍼 자신은 알콜 중독으로 고생 중이었고 다른 멤버들은 가혹한 투어 스케줄에 항의하다가 집단 탈퇴해버렸다.) 1975년 밴드 3집부터 참여햇던 명 프로듀서 밥 에즈린의 지원하에, 앨리스 쿠퍼 홀로 솔로 아티스트로 나서게 된다. 이 때부터 작곡 파트너인 기타리스트 딕 와그너[3]와 함께 다시 한번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대표작은 1975년작 앨범 Welcome to My Nightmare.

지금도 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는 라디오 DJ로도 유명하다. 라디오를 들어보면 이미지외는 다르게 굉장히 젠틀하다. DJ를 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희귀한 LP 컬랙션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다고.

2008년 국내에 내한공연 올 뻔 했으나 취소되었다. 대외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했다고 알렸으나 실상은 티켓 판매 부진. 정작 옆나라 일본에서는 잘만 공연했다. 인터파크에 들어가보면 공연 포스터, 화려한 광고문구와 함께 취소되었다는 말이 허무하게 남아있다. 링크

90년대 이후 쇼크록의 아이콘이 된 마릴린 맨슨과는 앨리스 쿠퍼 본인이 짜증을 낼 정도로 엮이나 둘은 컨셉도 다르고 실상 별 관련 없다. 맨슨이 앨리스 쿠퍼의 열광적인 팬이라서 쇼크록으로 노선을 정했다는 정도? 맨슨이 1996년 안티 크리스트 컨셉으로 한창 유명했을 때 앨리스 쿠퍼와 함께 락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쿠퍼는 자신에게 떨면서 인사를 하는 맨슨에게 "젊은이가 벌써 하느님을 부정하고 모욕하면 어쩌냐"고 나무랐다.[4] 그러한 쿠퍼의 모습에 데꿀멍한 맨슨이 쿠퍼에게만 사실 안티 기독교 컨셉이 앨리스 쿠퍼의 마녀 컨셉트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친분을 텄다고 한다. 그 뒤에는 1999년 발생한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마녀사냥하듯 언론의 비난이 집중된 후유증으로 마약에 쩔어있던 맨슨에게 자신의 알콜 중독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해주고, 재활 시설에 가라고 설득하고 공동으로 투어도 돌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슬래시, 오리안시, 존 5, 롭 좀비 등과 연주하기도 했다. 현재는 할리우드 뱀파이어스 앨범, 헤일스톰과의 투어를 준비하면서 새 EP와 정규를 작업 중이라고 한다.# 일단 5월 투어 후에 6월 나올 할리우드 뱀파이어스 앨범 가사에 대해서는 자기가 거의 손을 안 댔다고. #

3. 음악 스타일

음악적으로는 쇼크 록[5]의 효시를 알린 뮤지션으로 손꼽힌다. 보수적이었던[6] 197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네크로필리아, 성범죄 등 적나라한 요소들을 다룬 노래들은 상당한 반향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당시 앨리스 쿠퍼는 콘서트에서도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마술사와 협력하여 무대에 단두대를 동원하는 등 여러 장치들을 무대에 설치하여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7] 그래서 보통 앨리스 쿠퍼의 진가는 앨범이 아니라 라이브 콘서트라는 평이 많다. 대중음악계에서 공연 전체가 연극을 보듯 하나의 테마로 이루어지는 무대 구성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 바로 앨리스 쿠퍼다.

80년대 W.A.S.P 나 Lizzy Borden, Rob Zombie 같은 이들이 앨리스 쿠퍼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앨범에 참여힌 멤버들에 따라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뀐다. 앨리스 쿠퍼 밴드 시절엔 리듬 기타리스트 마이클 브루스를 필두로 나머지 멤버들의 작곡 실력으로 숱한 명곡을 남겼고, 솔로로 나선 전성기 시절엔 딕 와그너와, 그 후론 케인 로버츠 와의 공동작곡이 많다.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멤버가 아닌 다른 뮤지션들까지 작곡에 참여하여 곡당 작곡가가 3명 4명인 곡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앨리스 쿠퍼가 모든 곡의 작곡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보컬 멜로디와 작사에만 참여하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참여 뮤지션에 따라 음악 스타일의 변화가 많았다. 다만 앨리스 쿠퍼 특유의 긁고 쥐어 짜내는 듯한 짜증섞인 목소리가 워낙에 개성적이라 그렇게 안 느껴지질 뿐이다.

물론 수십년을 같이 해온 프로듀서 밥 에즈린의 역량도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앨리스 쿠퍼는 밥 에즈린을 "비틀즈에게 조지 마틴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밥 에즈린이 있었다."며 칭송했다.

4. 여담

5. 디스코그래피

5.1. 밴드

5.2. 솔로

6. 빌보드 차트인 목록

6.1. 빌보드 3위~10위 싱글

6.2. 빌보드 11~30위 싱글


[1] 자란 곳은 애리조나 주 피닉스.[2] 앨리스 쿠퍼 밴드가 1973년에 싱글로 발표하여 히트를 친 <Elected>라는 곡은 1969년에 낸 그들의 데뷔 앨범 <Pretties for You>에 수록된 "Reflected"라는 곡을 가사만 바꾸어 발표한 것이다.[3] 말이 작곡 파트너지 딕 와그너 혼자 작곡한 곡을 앨리스 쿠퍼와 프로듀서 밥 에즈린이 공동작곡이라고 내놓은 곡이 부지기수다. 오지 오스본의 경우와 비슷[4] 앨리스 쿠퍼의 아버지는 목사이고 할아버지는 전도사였으며 쿠퍼 본인도 열렬한 크리스천이다.[5] 영국밴드 Crazy world of Arthur Brown 이 원조. 68년 보컬 Arthur Brown 과 키보디스트 Vincent Crane이 작곡한 FIRE 라는 곡이 유명하다. 데뷔 전 앨리스 쿠퍼가 이들의 무대를 보고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6] 향락적이었던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달리 1970년대에는 닉슨의 재선 등으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가 우경화하는 경향이 일어났다. 이는 1990년대 빌 클린턴의 당선까지 이어졌다.[7] 다만 이게 너무 과했는지, 투어는 초기 예측에 비해 다소 부진했다. 물론 단순 수익만 400만 달러에 이르는 등, 초기 예측에 못미쳤다일 뿐 투어 자체는 성공적이었다.[8] 간호사 분장에 앨리스 쿠퍼한테 혀로 핥는 포퍼먼스를 하는 그 캐릭터들[9] 종교에 회의적인 다른 락 뮤지션들을 보면 어릴 적 사이비 종교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경우가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