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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02:51:35

화이트스네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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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heavyharmonies.com/whitesnake.jpg
(1987년도 멤버)[1][2]
파일:attachment/uploadfile/whitesnake_wallpaper.jpg
(로고)
한국 팬카페

1. 개요2. 역사3. 특징
3.1. 라이브 영상
4. 디스코그래피5. 여담

1. 개요

화이트스네이크는 1977년 결성된 영국의 하드 록/헤비 메탈 밴드다.

2. 역사

딥 퍼플 출신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인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데이비드 커버데일딥 퍼플 시절이 아니라 이 시절에 전설이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만든 '5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등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시절의 공이다.[3]

파일:external/pbs.twimg.com/BiRZubECQAAKWLl.jpg
좌측부터 데이비드 커버데일,닐 머레이,이안 페이스,미키 무디, 아래 버니 마스덴,존 로드

처음에는 블루스 하드록 밴드로 시작하여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딥 퍼플 시절의 동료 존 로드이안 페이스의 참여도 화제였으며, 훗날 유명해지는 베이시스트 닐 머레이도 여기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레인보우를 거친 코지 파웰이 참여하기도 했다.

트윈 리드 기타리스트 였던 버니 마스덴과 미키 무디 또한 초기 화이트스네이크 사운드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특히 버니 마스덴Here I Go Again 과 Fool For Your Loving 같은 밴드의 대표곡을 작곡하여 화이트스네이크의 성공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파일:external/www.blastmagazine.net/whitesnake84.jpg
1984년 라인업. 좌측부터 닐 머레이,존 사이크스,코지 파웰,데이비드 커버데일,존 로드,멜 갤리.[4]

이후 1984년 Thin Lizzy 출신의 젊은 기타리스트 존 사이크스가 가입한후 Slide It In, 1987(Whitesnke) 등의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화이트스네이크의 헤비메탈적인 성향이 형성되게 된다.

파일:external/d2zvpytoa1rk5g.cloudfront.net/whitesnake-85rock-rio-remastered-esition1.jpg

3. 특징

거물 혹은 나중에 더 큰 거물이 되는 기타리스트들이 많이 거쳐간 밴드로 알려져 있으며, 이 밴드를 거쳐간 기타리스트들은 존 사이크스, 아드리안 반덴버그, 스티브 바이, 비비안 캠벨, 워렌 디 마티니, 덕 앨드리치 등이다. 현재도 렙 비치 와 함께 활동중. 화이트스네이크는 아니고 개인활동으로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와 함께 Coverdale & Page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딥 퍼플 시절까지 생각해보면 오지 오스본 이상가는 기타 복 받은 보컬 아니 기타 덕후(..) 심지어는 아드리안 반덴버그스티브 바이 두명을 양쪽에 세워놓고 활동한 적도 있을 정도. 아래 1987년 영상에서도 양쪽에 서 있는 기타리스트는 비비안 캠벨[5]아드리안 반덴버그[6]로서 둘 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80년대 헤비메탈 스럽게 사운드를 변신하기 전에도 대단한 기타리스트들이 참가했었는데, 70년대 후반에 참여한 지금은 고인이 된 멜 겔리 또한 글렌 휴즈의 트래피즈 출신의 실력파였다.

그리고 원년 멤버로 참여했던 미키 무디와 버니 마스덴,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베이시스트 닐 머레이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미키 무디는 슬라이드 기타의 달인이었으며, 버니 마스덴딥 퍼플존 로드이안 페이스와 함께 PAL 이란 밴드에서도 활동했으며 오늘날의 화이트스네이크를 있게 한 곡 Here I Go Again 의 공동작곡가 이기도 하다. 닐 머레이는 화이트스네이크를 시작으로 바우와우, 블랙 사바스, MSG 등을 거치며 밥 데이즐리[7] 와 함께 마당발 베이시스트로 유명해진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그리고 블랙 사바스 같은 밴드 때문에 거의 공식화된 1밴드 1기타의 룰을 깨고 리듬, 리드 기타를 멤버에 넣는 방법을 채택한다. 앨범 버전에선 기타를 2파트로 나눠서 녹음은 했지만 무대에선 결국 1기타리스트라 기껏 녹음한 2파트를 다 들려주지 못해 그걸 무대위에서 보여주기 위했던 선택.

하지만 초창기 키보디스트였던 존 로드는 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무대위에 기타가 많으면 다른 악기의 사운드가 묻히게 되고 리듬/리드 기타의 때문에 키보디스트의 역할은 거의 줄어들고 기껏해야 배킹으로 사운드를 좀 깔아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딥퍼플 시절 서로 각 파트들이 제때 들어오고 제때 빠지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요시 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그외 루디 사르조와 토미 알드리지 그리고 코지 파웰도 있었고, 그 딥 퍼플의 전 멤버였던 존 로드, 이안 페이스가 같이 활동한 적도 있고 라이브 한정으로 글렌 휴즈조 새트리아니가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1987(WhiteSnake) 앨범에서는 말이 필요없는 드러머계의 전설 에인슬리 던바가 함께 했으며 80년대 초반 합류했던 베이시스트 콜린 하지킨슨은 유명한 재즈 베이시스트이기도 했다. 화이트스네이크를 거쳐간 멤버들과 그 연관인물은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후반의 메탈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들이다.

또한 커버데일은 이 나이에도 날이 갈수록 보컬 기량이 상승하고있다(...) 점점 원숙해지는 기량에 음역은 딥 퍼플 시절보다 상승했다. 화이트스네이크 버전 Burn에서는 딥 퍼플 시절엔 고음부를 글렌 휴즈가 담당했으나 지금은 본인이 직접 한다.[8] 라이브에서의 컨디션이 왔다갔다하는 게 단점이지만 컨디션 최상인 경우 디오옹에 범접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아래 2005년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1987년 발매한 'Whitesnake' 앨범은 미국에서만 무려 8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파워풀한 'Here I Go Again' 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바 있으며, 'Is This Love'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다.

록발라드 풍의 편안한 곡 (Deeper The Love 등등) 부터 정통 헤비메탈을 보여주는 곡 (Still Of The Night 등등) 까지, 여러 장르의 곡을 만드는데다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밴드가 바로 화이트스네이크라 할 수 있겠다.

2011년 'Forevermore' 앨범발매 후, 내한했으며, 나이트레인저에서 활동한 조엘 훅스트라가 기타리스트로 가입 후, 2015년 딥 퍼플 시절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The Purple Album , 2019년에는 Flesh & Blood 앨범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헤비메탈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고있다.

2022년 고별투어를 끝으로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밴드를 떠난다. 2021년 7월 밴드의 코러스 역할로 가입한 디노 젤루식[9]가 보컬 자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3.1. 라이브 영상


1984년 일본 라이브. 당시 멤버였던 존 사이크스의 기타 솔로가 인상적인 라이브이다.


1987년 MTV 라이브.[10]


2005년도의 모습. 반음 다운튜닝을 하긴 했지만 엄청난 포스를 보여준다.

4. 디스코그래피

5. 여담

화이트스네이크는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오너 밴드로 다른 멤버들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계약 관계형 밴드였는데, 1987년에 저 1987(White Snake) 앨범이 대박을 터뜨릴 것 같자 흥행 보너스를 주기가 아까워서 그 전에 멤버들을 전부 해고했다는 썰이 있다. 이는 데이비드 커버데일 얘기가 나오면 메탈 팬들이 두고두고 씹는 안주거리다. 그 외에도 존 사이크스와 밴드를 했을 때, 존 사이크스의 보컬, 기타, 작곡 삼박자맨 세 가지[13]를 모두 갖춘 재능에 질투를 느껴 잘랐다는 소문도 존재한다.

위에서 전부 해고할 때 짤린 기타리스트가 바로 존 사이크스인데 존 사이크스는 해고 이후 블루 머더[14]라는 트리오 슈퍼 밴드를 만들어 활동. 때문에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실력은 나무랄데 없지만 인간성에선 좀 까이기도 했다. 사실 오너 밴드라는 개념이 문화, 예술계에선 너무 돈미새같이 보이는 편견도 있긴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당사자간 주장이 엇갈린다. 커버데일이 사이크스를 해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1987(White Snake) 앨범에 상당수의 곡을 사이크스가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밴드가 갈린 유력한 썰로는 커버데일의 건강문제로 촉발된 커버데일과 사이크스의 밴드 내 알력싸움 폭발로 꼽힌다. 이미 곡들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완성이 되었는데, 앨범 발매 전인 1986년에 커버데일이 보컬에 큰 문제를 갖게 되는데 다들 성대결절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성대결절이 아니고 비중격만곡증으로 중격이 주저앉아 코 수술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커버데일은 이전까지 사용하던 보컬 스타일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른바 메탈 매니아들이 환호하는 1987년 이후의 스타일이 이때 정립된 것이다. 당장 데뷔~1985년까지의 보컬과 1987년 이후의 보컬은 특히 고음처리만 들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 수준이다. 문제는 커버데일의 수술로 화이트스네이크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대부분 비즈니스 관계였던 멤버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커버데일의 절친이자 리더인 커버데일 다음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존 사이크스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이크스는 당시 인터뷰에서 커버데일이 신경종을 앓고 있을 뿐 보컬 녹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을 정도. 사이크스는 과거 커버데일이 건강이나 가족문제로 밴드를 해체한 경험을 알고있으며, 설사 커버데일이 수술이 잘됐다고 해도 보컬 스타일이 바뀔 것이고 새로운 스타일이 원래 커버데일의 음역대에 맞게 작곡한 곡에 제대로 사운드와 매칭이 되겠느냐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것이다.

이미 곡은 만들어 두었고 이대로 밴드를 사장시킬수 없었기에 사이크스는 이른바 Plan B를 준비하였는데 문제는 바로 이것이 커버데일이 모르는 상황으로 진행되었고 또 그것 재기를 위해 준비중이었던 커버데일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이크스는 블루 머더로 활동하려던 시기에 예정에 두었던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을 화이트스네이크의 새 보컬리스트로 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블루 머더에 대해 좀 많이 아는 팬들은 레이 길런이 보컬을 하려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도주를 하고 어쩔수 없이 사이크스가 보컬을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앞서 나열된 사건들을 살짝 이어보자면 1987 앨범을 준비하던 화이트 스네이크가 리더인 커버데일의 코 수술로 활동이 불분명해지자 2인자였던 존 사이크스가 플랜 B를 가동하여 새로운 보컬로 앨범 발매를 강행하려던 걸 리더인 커버데일이 모르는 상황에서 진행되다가 커버데일에게 알려지게 되어 이에 격노한 커버데일과 사이크스간에 불화로 밴드가 아작이 난 스토리가 된 것으로 정리가 된다.[15]

그렇게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분노에 휩싸인 악덕사장(?) 커버데일은 일종의 반란세력인 사이크스,머레이,던바까지 기존 멤버를 모조리 해고하고(존 로드는 이전에 탈퇴) 새로운 밴드멤버들로 구성하여 1987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게 화이트스네이크 역사상 최고로 히트하게 되는 스토리로 이어지게 된다. 먼저 말했던 문제로 멤버들이 모두 해고 되고 기타리스트인 비비안 캠벨아드리안 반덴버그, 베이시스트는 루디 사르조, 드럼에는 토미 알드리지를 새롭게 영입하였다.[16] 사르조나 알드리지 같이 이런 상황에 익숙한(?)[17] 전문가부터, 젊은 나이에 이미 로니 제임스 디오의 홀리 다이버를 연주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비비안 캠벨, 밑바닥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색깔을 잡아온 아드리안 반덴버그등 이미 떠난 밴드멤버들의 역량에 뒤처지지 않는 뛰어난 아티스트들을 즉시 다시 모을수 있었다는 점도 커버데일의 카리스마와 친화력, 운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커버데일은 종종 과거에 자신의 밴드에 있었던 멤버와 세션들을 자신의 공연장에 불러 우정을 과시하곤 한다. 존 로드같은 데뷔 초에 모셨던 대선배서부터 업어키운 후배들까지. 그런데 유독 존 사이크스는 눈에 띄지 않는다. 초창기 멤버들까지 부르고 심지어 딥 퍼플 시절 고음이 안되어 고음을 채워주던 글렌 휴즈와도 협연을 하는 등 커버데일의 인스타그램에 가보게 되면 지난날의 추억을 하는 듯 과거 멤버들과의 사진을 종종 올리는데 그 수많은 과거 멤버들 중에 존 사이크스만 없다.


[1] 좌측부터 루디 사조, 토미 알드리지, 아드리안 반덴버그, 데이비드 커버데일, 비비안 켐벨이다.[2] 중앙 상단이 아즈리안 반덴버그이고 하단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다.[3] 딥 퍼플 시절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너무 심각한 사투리와 고음불가로 이름이 높았으며(그래서 Burn같은 곡은 베이스를 가장한 보컬리스트인 글렌 휴즈가 고음 파트를 맡았다), 성대결절 이후로 오히려 노래가 일취월장해서 80년대에 보컬로 꽃을 피우게 된다.[4] 멜 갤리는 1984년 월드투어때는 동참했지만 이 라이브 앨범 발매 전 그룹을 탈퇴해서, 해당 음반 커버에서 잘렸다.[5] DIO, 데프 레퍼드 등에서 활동[6] 본인의 이름을 딴 Vandenberg라는 밴드로 메이저에 입성하였고 이후 드러머인 토미 알드리지와 함께 Manic Eden이라는 밴드로 활동. Peavey Vandenberg라는 시그니쳐 기타도 유명하다.[7] 레인보우 등 에서 활동[8] 1987(WhiteSnake) 발매전 성대결절로 인해 보컬생명이 끝날수 있었는데 수술 후 상태가 오히려 호전되어 오히려 못부르던 고음부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9]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주로 파워 메탈 곡에 피처링 보컬로 자주 기용됐었다. 본인 솔로곡은 발라드 성향이 강한 편[10] 곡의 이름은 'Still Of The Night'이다[11] 리믹스를 한 이유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한것이다.[12] 아울러 'Is This Love'도 메탈밴드 답지 않은 서정적인 곡으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성급하게 연인과 이별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곡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곡이다.[13] 거기에다 잘생김(...)[14] 베이스는 데이빗 길모어, 지미 페이지, 콰이어트 라이엇, 데릭 셰리니언과 활동했던 토니 프랭클린, 드럼은 제프 벡과 활동했던 카마인 어피스. 그 외에도 코지 파웰이니,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이니 하는 당대의 테크니션들이 거쳐간 밴드[15] 일썰로는 평소 커버데일을 존경하던 레이 길런이 사이크스의 추천으로 화이트 스네이크 곡을 부르게 되어 영광으로 알고 있다가 난데 없이 격노한 커버데일과 맞닥뜨리게 되어 그곳을 황급히 빠져나왔다라는 식 - 그렇지 않고서는 블루 머더 초기 보컬로 배정된 그가 이유없이 도주한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후 레이 길런은 자신의 밴드 Badlands를 만들어 활동함.[16] 이 시기에는 키보디스트를 새로 안 뽑았기 때문에 1987년~1988년 라이브에서는 비비안 캠벨과 아드리안 반덴버그, 루디 사르조가 번갈아가면서 키보드를 맡았다.[17] 이런 짓 자주하는 양반으로 끝판왕인 오지 오스본까지 겪어본 사람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