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 정신 의학 협회의 분류 기준인 DSM-5에 따라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포함하는 분류군인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품행장애 문서를 참고.
정식 진단명으로 사용되다가 재분류된 단어인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소시오패스란 G. E. 패트릿지가 1930년 사이코패스 장애의 사회적 괴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별도로 만들어낸 용어로서 실제로 정식 명칭으로 규정된 병명이 아니다. 즉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의 하분류 혹은 사실상 동일 의미에 해당되나, 다양한 대중매체 등에서는 분명히 분류되어 마치 타종 병명인 양 오용되고 있다. 소시오패스는 1950년대 이후부터는 학회에서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도 오늘날의 범죄 심리학계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비전문가들이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해 쓴 책 등에서만 사용된다. 당장 이 문서에서 사용된 출처도 마사 스타우트라는 단일 학자가 저술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도서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책뿐이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 병명이 될 뻔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병명이 '반사회성 성격 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1]로 통일되면서 현재 버전의 DSM-5[2]에는 정식 진단명이 아니다. 소시오패스 체크리스트
전문가들 사이에 다소의 견해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사이코패스는 1차성 저감정자(혹은 선천적 저감정자), 소시오패스는 2차성 저감정자(혹은 후천적 저감정자)로 구분하며, 넓게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 사이코패스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과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발달되지 않았고,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만큼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특정 환경이나 계기 등이 사이코패스 형질을 발현시켜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명백한 반사회적 행동이나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경우 반사회성 성격 장애에 해당되도 반사회성 품행 장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낮은 것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무감정 증상에 동반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이들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비롯해 여타 다른 성격 장애 등에서도 종종 보이는 증상이다. 따라서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을 무조건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어쨌든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간에는 아직 정확히 선을 그을 수 없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그러니 이 문서의 글을 읽었다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아무에게나 해당 기준들을 분석/적용하려고 하지는 말 것을 권한다. 또한 전문가에게도 성격 장애의 진단은 매우 조심스런 일이다. 이 문서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특징에 대해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도록 교양 수준에서 풀어 쓴 것이지 장애측정진단서가 아니다. 따라서 의학적인 검사를 거치지 않은 이상 누군가가 이 글에 부합해 보인다고 그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단순히 도덕적인 결함이 보인다고 누군가를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악마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 해도 악인이 아닐 수 있고, 멀쩡한 일반인이라 해도 뼛속까지 악인일 수 있다.
2. 특징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감정의 수준이 매우 결여되어 있어서 평소에는 가장 기본적인 쾌감과 불쾌감 정도의 감정밖에 느끼지 못한다.[3] 반면 대부분의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보다 상대적으로 더 감정적이고 사회적이다. 따라서 사이코패스와 달리 소시오패스는 오래동안 같이 지낸 가족 등 다른 사람과 미약하게나마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4] 그러나 연인 관계에서는 대체로 상대방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5] 실제로는 별다른 감정이 없으며, 성욕 해소나 경제적인 이득 등을 위해서 이성을 사귀는 등 '진심이 아닌 이해타산적이고 목적을 따지는 연애'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토사구팽을 당연시하고 바람이나 환승 역시 전혀 개의치 않는다. 반대로 소시오패스인 본인이 차이거나 바람 피는 걸 알게 되면 큰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거라서 편집성 성격 장애나 자기애성 성격 장애, 경계선 성격 장애 등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헤어질 때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과거의 학대를 연상시키는 상황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분노나 불안을 느끼는데, 이를 '소시오패스적 동요'라고 지칭한다.[6] 사회 적응도가 낮은 소시오패스일수록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며,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상대방을 충동적으로 죽여서 뉴스에 나오는 상당수의 사례가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통념과 정반대로 충동적 강력 범죄자는 소시오패스에, 사기범은 사이코패스에 많다.[7] 그렇다 보니 둘 다 범죄자라는 편견이 있지만, 전체 비율로 따지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실제로도 많은 수의 소시오패스는 사회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으며, 거의 대부분은 그냥 일부 사적인 관계에서 트러블이 많은 조금 묘한 인간 정도로 인생을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는 근본적으로 DSM의 성격 장애의 정의가 법 및 보험과 관련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괴리 현상이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일반인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지루함을 느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직업, 연애, 취미 등 어느 한 가지에 안주하지 못하고 약물을 남용하기도 한다. 독특하게도 정서 중추가 일반인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약물의 정서적 의존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니코틴, 알코올, 대마초같이 약한 약물에 대한 의존이 낮다는 거지 모든 중독에 면역인 초능력자라는 소리는 아니다. 마약에는 당연히 중독된다.[8]
선천적인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증세로 인해 양심의 결여를 보이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게 소시오패스는 대개 후천적으로 그런 증세가 발현이 된다고 한다. 주로 감수성이 많은 어린 시절에 방임, 가난, 가정폭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학대, 학교에서의 집단따돌림 등을 당하면서 소시오패스 형질이 발현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전체 인구에서 4% 정도를 차지할 만큼 생각보다 꽤 흔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망정 본인의 가족이나 친척, 지인 중에 한 사람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본인이 스스로를 혹시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노스리지 캠퍼스의 교수 하워드 캠러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도덕적 정체성뿐 아니라 확고한 자아 정체성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양심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본색을 드러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고한 자아감이 없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정체성의 핵심이라 여기는 중대한 인생 계획을 침해하고도 자신이 진실성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소시오패스 진단을 받은 당사자 M. E. 토머스[9]는 <나, 소시오패스>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 감정의 색깔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밝은 색조는 회색빛 감도는 우중충한 내 음영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자아와 명백한 운명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스스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어떤 식으로든 보듬거나 고수해야 할 정확한 자아라는 감정이 없다. 내 삶은 대부분 그날그날의 우연한 사건, 반응 체계 없는 충동적인 의사 결정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나와 유전적 성향도 다르고,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찾아 공허감을 달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나는 대체로 냉담하다.(107쪽)
우선 내게는 자아라는 것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림을 그렸다가 흔들면 지워지는 그림판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다시 그린 그림에 불과하다.(200쪽)
자아를 구축하지 않고도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간접적으로 관찰하면서 내 자아를 인식한다.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인정하는 걸 보면서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우리가 우주에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관찰이나 측정으로 아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의 중력이 주변 물체의 움직임을 왜곡하는 효과로 그 존재를 아는 것과도 같다. 소시오패스는 힘을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암흑 물질과 닮았다. 비록 평범함 속에 묻혀 그 존재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당신도 우리가 발휘하는 힘의 효과는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를 인식한다.
'이런 식으로 빤히 응시할 때마다 내가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구나.'
점묘화법으로 그린 초상화처럼 이렇게 수백만 번의 사소한 관찰을 모아 그린 그림이 내 자아에 대한 인식이다.(204쪽)
내게는 어떤 식으로든 보듬거나 고수해야 할 정확한 자아라는 감정이 없다. 내 삶은 대부분 그날그날의 우연한 사건, 반응 체계 없는 충동적인 의사 결정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나와 유전적 성향도 다르고,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찾아 공허감을 달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나는 대체로 냉담하다.(107쪽)
우선 내게는 자아라는 것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림을 그렸다가 흔들면 지워지는 그림판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다시 그린 그림에 불과하다.(200쪽)
자아를 구축하지 않고도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간접적으로 관찰하면서 내 자아를 인식한다.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인정하는 걸 보면서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우리가 우주에 암흑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직접적인 관찰이나 측정으로 아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의 중력이 주변 물체의 움직임을 왜곡하는 효과로 그 존재를 아는 것과도 같다. 소시오패스는 힘을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암흑 물질과 닮았다. 비록 평범함 속에 묻혀 그 존재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당신도 우리가 발휘하는 힘의 효과는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를 인식한다.
'이런 식으로 빤히 응시할 때마다 내가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구나.'
점묘화법으로 그린 초상화처럼 이렇게 수백만 번의 사소한 관찰을 모아 그린 그림이 내 자아에 대한 인식이다.(204쪽)
3. 사이코패스와의 차이점?
사이코패스와 마찬가지로, 선천적-후전적인 요인에 의해 도덕이나 양심을 처음부터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무언가를 계기로 욕구보다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둘 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같은 분류에 속하는 데다 둘을 구분짓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학계에서는 실질적으로 크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10]일 뿐 사실상 별 차이 없다는 견해가 주류다.[11] 다만 인터뷰 등 질적연구의 측면에서 소시오패스의 개념을 인정하는 학자들의 구분법에 따르면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쉽게말해 사이코패스는 도덕과 양심에 대해 학습은 가능해도 공감하지 못하지만, 소시오패스는 공감할 수는 있어도 그 수준이 극히 미미하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는 애초에 자신의 행위가 범죄, 정확히는 '정서적으로 꺼림칙한 행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이며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드는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저지른다. 정리하자면 사이코패스는 선악의 개념이 없고, 소시오패스는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에 유독 쾌락살인마가 많고 선악을 따지지 않는 소시오패스는 사기를 잘 친다'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꼭 한 부류가 특정 범죄를 중점적으로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14] 둘 다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특정 사례가 부각돼서 굳어졌을 뿐이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모두 감정의 문제를 떠나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회적 가면을 쓰고 행동할 수 있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학습에 의한 조건반사적 반응인지, 타인의 감정에 맞춰서 하는 연기인지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창작물에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머리가 좋은 걸로 그려지는 것은 약간 근거가 있긴 해도 결국 현실적인 내용은 아니다. 지능은 소시오패스 여부와 상관없이 개개인마다 다르다. 일반인이 실현 가능성을 철저하게 따져서 더 빠르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멍청하면 금방 잡힐 수도 있다. 반대로, 지능은 높지만 극도로 낮은 공감능력 때문에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당연한 걸 놓쳐서 허무하게 잡히기도 한다.
"The Sociopath Next Door"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만약 누군가가 뚜렷이 소시오패스로 확인된다면, 그 정보를 가지고 사회가 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다른 어떤 진단도 그처럼 정치적, 전문적인 질문들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시오패시를 지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싫어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 소시오패스는 과연 장애인가, 아니면 단지 기능상의 문제인가? 그 반대편도 불확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양심을 지닌 사람이나 집단은 그것(양심)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양심은 그저 대중을 가두는 심리적 울타리일 뿐인가?[15] 애초에 '장애'라고 확답을 내리기도 애매한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애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그저 폭력적인 사이코패시쯤으로 생각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현저히 법을 위반했으며, 붙잡힐 경우 수감되거나 어쩌면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들, 즉 살인자들, 연쇄 살인범들, 대량 학살자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는 더 많은 수의 비폭력적인 소시오패스들을 알고 있지 못하며, 대개는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들 모두가 파렴치한 범법자들은 아니며, (무엇보다) 우리의 형식적인 법제도는 그들에 대한 방어막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 대다수의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흉내 내며 그들 틈에 숨는다. 소시오패스라는 것이 탄로 나면 경멸의 의미가 잔뜩 담긴 병명 탓에 예측 불허의 부정적인 결과가 튀어나올 수 있어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애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그저 폭력적인 사이코패시쯤으로 생각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현저히 법을 위반했으며, 붙잡힐 경우 수감되거나 어쩌면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들, 즉 살인자들, 연쇄 살인범들, 대량 학살자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는 더 많은 수의 비폭력적인 소시오패스들을 알고 있지 못하며, 대개는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들 모두가 파렴치한 범법자들은 아니며, (무엇보다) 우리의 형식적인 법제도는 그들에 대한 방어막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 대다수의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흉내 내며 그들 틈에 숨는다. 소시오패스라는 것이 탄로 나면 경멸의 의미가 잔뜩 담긴 병명 탓에 예측 불허의 부정적인 결과가 튀어나올 수 있어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진짜로 소시오패스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확정이 있는 '잠재적 가해자 혹은 예비 범죄자'는 아니다. 상술했듯이 감정이 없거나 무딘 이상 사회에 어떻게든 녹아들어서 '생존'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성향이 있는지조차 깨닫지도 못한다. 위에 인용된 책의 제목이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조차 쉽게 가려낼 수 없는 걸 일반인들이 파악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좀 더 체계적, 전문적, 실용적으로 알고 싶다면 소시오패스에 대해 25년간 연구한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Martha Stout)'의 저서이자 위에서 인용된 『The Sociopath Next Door』(정발명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혹은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를 참고하자. 마사 스타우트의 통계 출처에 의하면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로, 대략 100명이 모인 집단에서 98%의 확률로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소시오패스가 있다. 이 책에서는 선천성과 후천성을 동일한 연관 정도인 50% 정도로 보고 있으며 선천성을 타고난다 해도 환경적인 촉발제가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다만 환경적 요인이 무엇인지 모른다. 일반인의 경우 연관성이 높은 교육 정도, 가정의 소득 수준 모두 관계없이 발현되며 교정의 가능성은 없다.
4. 소시오패스=잠재적 범죄자?
사이코패스와 마찬가지로 소시오패스에 대한 인식 역시 주로 '잠재적 범죄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인이라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시오패스라고 무작정 잠재적 범죄라고 볼 순 없는 게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상술했듯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 정도에 불과하기에 실제 흉악범들 중에서는 소시오패스가 아닌 일반인의 비율이 더 많다. 사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아닌 일반인 중에서도 범죄자가 상당히 많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반대로 생각해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범죄자는 아니다.사실 대다수의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며, 자기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하는 척 가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겉돌 뿐이지 아예 사회 부적응자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뜻밖에, 소수 소시오패스들은 의외로 주변 사람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16] 또 그것이 진심인지,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것인지, 도덕과 윤리 사상을 지킬 줄 아는 것인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그 자신도 그 이유에 대해 자각하고 있지 못할 확률이 높다. 단지 최소한 이렇게 하면 자신이 손해 볼 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일반인을 정신의학적 검사 없이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이자 누군가를 함부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 악마화하는 걸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17]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법은 없다. 최소한 선과 악의 개념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생활이 유지된다는 것은 머리와 논리로 이해할 수는 있다. 거기다 범죄를 저지르면 법적인 처벌을 받아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도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 반대로 범죄 등 도덕 관념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제대로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경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난 소시오패스들은 그 성향과 환경이 시너지를 일으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건 비단 소시오패스뿐만이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해당되는 사항이다. 배운 게 주로 그런 거고, 그런 식으로 이득을 얻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흔히 반사회성 인격 장애는 살인으로 쾌락을 느끼는 쾌락 살인마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론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살인을 저지르고 별 느낌을 못 느끼는 게 대다수이다. 이들이 살인을 할 때의 느낌은 '방해물을 제거한다'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쾌락 살인은 정신 분열, 정신 발작에 가까운 정신 질환인데 이런 질병들과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 간의 유의미한 접점은 알려지지 않았다.[18] 또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는 교육적으로 배운 도덕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시오패스적 사건을 일으켰던 사람들 중에서는 소소한 배려심 정도는 보이게끔 행동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일부 흉악범의 경우 의외로 일반적인 생활을 했거나 훈훈했던 동네 청년으로 회자되는 것이 바로 이런 성질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반인이 교육이나 자란 환경에 따라서 도덕성이 결정되듯이 소시오패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이나 자란 환경에 따라서 충분히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19]
소시오패스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저감정 특성과 무공감성을 십분 활용해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활동력을 보여주거나, 또는 객관적인 고민 상담을 해주면서 인간관계를 장악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20]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통솔력과 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사이코패스나 나르시시스트와 마찬가지로 공감능력과 끈기에서 한계를 보이는 이들의 특성대로 대부분 이기적인 본심이 금방 들통난다.
[1] <이웃집 사이코패스>(폴 롤랜드 저/최수목 번역) 125쪽에서는 'APD(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표기되어 있다.(사실 ADP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Antisocial Disorder Personailty가 되므로 ADP는 오역 또는 오타.)[2] 미국 정신 의학 협회에서 쓴 진단 분류 체계[3] 이들이 일부 학자들에게 지능이 높은 파충류에 비유되는 이유다. 실제로 대부분의 파충류 종은 뇌에 정서 중추가 발달하지 않아서 포유동물과 같은 교감이 불가능하다.[4] 그래서 유명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범 중에서는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이웃에게 '동물 시체 헤집고 다니는 좀 꺼림칙한 별종' 취급은 받더라도 비교적 얌전히 지내다가 독립,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혼자 지내게 되자 더이상 거리낄 게 없어져서 폭주한 사례가 꽤 있다.[5]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나르시시즘 수준에 따라 정말 천상의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연애 기질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나르시시즘 수준이 높을수록 이상적인 사랑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높다.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이것은 연인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을 연기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신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인이 필요없다고 느껴지면 가차없이 버린다.[6] 간헐적 폭발 장애처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만' 느끼는 것은 아니기에 다소 중립적인 표현으로 변경했다. 검색에도 sociopathic rage처럼 특별히 분노만을 강조하는 사례는 없다.[7] 다만 같은 사기범을 비교해봤을 때 사기의 규모와 질의 측면에서는 소시오패스가 월등한 경향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공감능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8] 마약은 뇌의 도파민 체계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에 동물이라면 그 무엇이든 중독시킨다.[9] 사이코패스 제임스 팰런처럼 자신을 '친사회적' 소시오패스라고 정의하고, 실제로 흉악범은커녕 현직 법학 교수다. 그러나 그녀 또한 어린 시절 자잘한 절도, 방화, 폭력 등 무수한 말썽을 저지른 것이 현실이다.[10] 아래의 구분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공감능력의 범주에서 소시오패스가 사이코패스보다 좀 더 우위에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충동성의 측면에서도 사이코패스는 욕구에 대한 충동이 강하고 소시오패스는 감정에 대한 충동이 강하다의 차이이지 결국 둘 다 충동적인 인간상인 건 똑같다.[11] #[12] 영국의 최연소 연쇄살인범 메리 플로라 벨이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유명하다. 죄라는 사회적 개념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 필요성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소시오패스와 달리 아예 '사회'와 '타인의 감정'이라는 개념의 필요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중요한 지점은 개념에 대한 학습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걸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자각에서 오는 본질적인 필요성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외부에 사회와 타인이란 존재가 있으니 파충류처럼 자신의 이익과 쾌감에 따라 그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13] 죄라는 사회적 개념의 필요성에 나름 공감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이익과 쾌감에 따라 매우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사이코패스와 달리 어느정도 선천적인 사회성이 있고 감정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다. 즉 자신의 존재유지를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며 살인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감정에 반하는 행동임은 어느정도 공감하기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로, 살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과 죄책감까지 나아가지는 못해서 자신에게 충분히 이득이 된다면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렇게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고 수치상으로 뚜렷하게 구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에 학계에서는 사실상 다같이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분류한다.[14] 오히려 상술한대로 감정은 소시오패스가 더 잘 느끼다보니 통계상으로 충동적인 강력범죄는 소시오패스가 더 잘 저지른다. 물론 사회성이 소시오패스가 더 높은 만큼 사기의 질은 소시오패스가 더 높은 측면도 있다.[15] 즉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이라고 흔히 표현할 때 나오는 '양심'이, 사실은 그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학습된' 사회적 약속"이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을 위해서 따라야 하는 법과 질서와 같은 개념임에도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감정과 같은 것이라고 인식됐다는 말이다.[16] 주로 공감능력을 친밀한 인물에 한해 약간이나마 발휘할 수 있는 소시오패스가 그렇다. 다만 이런 경우도, 본인의 지능이 매우 높거나 주변인들이 매우 배려심과 존중감이 높지 않은 이상 '일반인처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는 하다.[17] 특히 일반인들은 자신의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동을 한 정치인, 엔터테이너, 역사적 인물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로 비난할 때가 많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단기간에 집단을 상대로 크게 사기치고 도망갈 가능성은 있을지언정 정치인과 연예인이 될 확률이 거의 없다. 정치를 하려면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측근을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이런 능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일 거라 생각하는 히틀러와 스탈린은 오히려 평균보다 공감능력이 높은 편이었다. 또 연예인을 하려면 치열한 연예계에서 사회성으로 살아남고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이 필요한데 주변 사람도 빈번히 적으로 돌리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이런 분야에서 금방 매장당하고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고지능자거나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분야를 찾은 경우, 기업을 운영하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성공할 가능성은 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자기객관화가 잘 되고 나르시시즘, 시기질투, 충동적인 분노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사회적인 자폭을 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18] 물론 질병과의 연관성은 없지만 질병을 앓고 있는 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와 범죄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19]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상당수의 소시오패스는 보통 이렇게 정상인 사이에 끼어서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해 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 일반인들도 아마 그들에게 약간 일반인과는 다른 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게 그럭저럭 용인되는 수준일 것이다.[20] 이는 일부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와도 공통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