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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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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권한대행 |
<colcolor=#fff> 경상남도지사 慶尙南道知事 Governor of Gyeongsangnam Province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박완수 / 제38대 (민선 8기) |
취임일 | 2022년 7월 1일 |
정당 | |
관사 | 경상남도청 공관 |
홈페이지 |
1. 개요
1.1. 경상남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2. 대선 출마3. 명단4. 역대 선거 결과4.1. 1960년 지방선거4.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4.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4.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4.5. 2004년 재보궐선거4.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4.8.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4.9.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4.10.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4.1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4.12.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5. 역대 정당별 전적6. 역대 후보별 순위7. 도정 지표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지사는 경상남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불렀으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경상남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황철(黃銕)이다.
경남도립거창대학과 경남도립남해대학의 이사장을 당연직으로 맡는다.
동부 경상남도는 인접한 부산광역시 및 울산광역시와 비슷한 정치 성향을 보이지만 농어촌지역이 많은 서부 경상남도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는 부산광역시나 울산광역시보다 다소 보수 성향이 강해 부울경 권역 안에서는 민주당의 사지로 불린다. 하지만 민주당계 후보인 김두관, 김경수가 당선되기도 하는 등 대구광역시/경상북도처럼 완전한 보수 텃밭은 아니고 경상남도 역시 전체적으로는 격전지이다. [1]
2010년 이래로 3명의 경상남도지사[2]가 연달아 모두 지사직을 중도 사퇴하거나 박탈 당해 행정부지사 권한대행 체제를 거쳤다.
2018년 김해시 을이 지역구였던 김경수 후보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을 꺾었던 김태호 후보를 상대로 10% 격차로 승리했다. 참고로 서부 경상남도에서도 일부 지역은 승리했다.[3]
역대 민선 도지사들은 서부 경상남도 출신이 많으며[4] 아직까지 도청소재지 창원시를 포함한 동부쪽 태생 도지사들은 없는 게 특징이다.[5] 정작 동부 경상남도가 부울경 최대 도시인 부산광역시와 가깝고 도내 중심 도시 창원시도 있어 서부보다 인구가 두 배 이상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중견 정치인들이 성장기를 보내던 1950년대~1970년대 시기는 아직 이촌향도가 완료되기 전이라 서부 경상남도 농촌 인구가 많아서 그랬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6] 다만 정치적 본거지가 동부인 경우는 종종 있는 편이다.[7][8]
1.1. 경상남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경상남도지사 선거는 정규 선거 8회 및 재보궐선거 2회로 총 10번 치러졌다. 경상남도지사 선거 적중 지역은 다음과 같다. 의외로 동부, 서부가 고루 있는데 상술했듯이 더불어민주당 계열 지사들이 서부 출신인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2. 대선 출마
역대 민선 도지사들 중 2024년 기준 현직 박완수를 제외하면 전원이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출마 하마평에 올랐으며 이들 중 김경수, 박완수를 제외하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해 도지사 퇴임 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적이 있다. 전국 타 광역지자체장에 비하면 대권에 도전한 사례가 많은 편이다. 출마하지 않은 김경수조차도 친문을 중심으로 대권 후보로 종종 거론된 것을 보면, 수도권도 아니고 한낱 지방 광역자치단체장이 주목받는 것이 특이해 보일 수도 있다.[10] 또한 대권 출마를 선언하거나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것 외에도 홍준표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거대 양당의 본선 후보로 출마했었는데 이와 같이 거대 양당의 본선 후보를 배출한 적이 있는 광역자치단체장은 서울특별시장[11], 경기도지사[12] 뿐이다.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일단 경상남도지사직은 옆동네 부산광역시장 자리와는 달리 관료들보다는 주로 야망있는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졌던 적이 많다. 인구수가 비슷한 옆동네 부산광역시장이 민선 이후 20년 가까이 관료 출신이나 중앙정계와 관련이 별로 없는 지역 밀착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에 전원 대권주자와는 거리가 멀어왔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김혁규 전 지사는 도지사 이전에 김영삼 진영에서 활동한 바 있고, 김태호 전 지사는 불과 만 39세에 민선 거창군수에 당선되는 등,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김두관 전 지사도 마찬가지로, 이장부터 시작해 남해군수와 행정자치부장관까지 오르는 신화를 쓰면서 인간승리를 이룬 젊은 정치인이었다. 홍준표 전 지사는 경상남도지사직에 오기 전부터 이미 4선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의 대표를 역임한 거물이었다. 김경수 전 지사 또한 정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지만 최초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경남지사 당선이라는 이력과 친노, 친문 세력의 적자로 주목받았다. 그래서 순수 관료 출신 경상남도지사는 박완수 지사가 유일하다.
두 번째로, 경상남도가 접경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잠재적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서울특별시장이나, 경기도지사는 자체적으로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고, 인접 지역(+강원도, 충청도)으로의 확장성이 크다. 그리고 최근에 잠재적 대권 주자로 뜨고있는 충청남도지사는 정부 기관이 많은 세종특별자치시와 대전광역시와 인접해 있다. 그러다보니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인접 지역에도 큰 영향을 받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민은 서울특별시장 투표권이 없지만, 서울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점에서 경상남도는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내륙인 충청북도 다음으로 인접한 광역자치단체가 많은 지역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제2 도시인 부산광역시는 동쪽 모서리에 있기 때문에, 바닷길 항로상으로는 요충지지만 한반도에 한정해 보면 지역적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다 보니 부산광역시장은 중앙 정치에 있어서 인지도와 득표의 확장성은 경상남도지사보다도 떨어진다.
세 번째로, 경상남도의 인구와 경제력이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는 2017년 12월 기준으로 경기도,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지역총소득과 GRDP도 광역행정구역 17개 가운데 3위~4위를 유지하고 있다. 1차 산업인 농업&어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규모도 전국 2위를 기록하는 등, 여러 산업이 골고루 발전해 있다.
이렇게 입지 조건이 좋다 보니, 도지사로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증명만 하면 향후 중앙정치에서 더 높은 직책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부울경 정치권에서 경상남도지사는,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 비교적 최근에 떠오른 충청남도지사 직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주자로 발돋움하는 전국 4대 교두보로 여기고 있다. 이래서인지 유독 재보궐선거도 잦고 행정부지사의 권한대행 체제도 여러 차례 있었다.[13]
첫 민선 도지사인 김혁규는 도지사 사퇴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들어가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에 불복한 이후 불출마로 선회하고 이회창 지지 선언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김혁규를 대신해 권한대행을 맡은 장인태 전 행정부지사가 경상남도지사 재보궐선거에 나가기 위해 사퇴하여 권한대행이 바뀌는 상황도 벌어졌다. 장인태 전 부지사는 2위로 낙선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임 경상남도지사 김태호와 당시 현직 경상남도지사 김두관이 각각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똑같이 경선 3위로 탈락했다. 김태호는 임기를 마치고 출마한지라 별로 까일 건 없지만, 김두관의 경우 역임하던 지사직을 도중에 버리고 경선에 뛰어든 터라 당시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얻은 귀한 지사직을 버렸고, 이 때문에 새누리당 홍준표가 재보궐선거를 통해 경상남도지사로 올라서면서 김두관에 대한 비난이 잇달았다. 김두관은 다음 선거에서도 패배하는 등 후유증이 컸다. 이 때문에 김두관 이후로는 경선 출마를 이유로 지자체장을 사퇴하는 사례가 없어졌으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낙연 전 의원이 본선도 아닌 경선 출마 단계에서 의원직을 사퇴하여 종로구 선거구가 상대당의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넘어가는 사례가 또 나타났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홍준표가 역시 지사직을 내려놓고 본선에 뛰어들었다. 이쪽은 그래도 본선까지 올라간 뒤 사퇴했지만 더 논란이 커진 케이스다. 경선 과정에서 지사직을 버리지 않아 공식적인 선거 활동이 불가능했었다. 선거 활동 과정에서 홍준표 정부를 만드는 게 박근혜를 살리는 길이라고 발언하는 등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일부 위반이 있었다고 판단되어 선거법 준수 촉구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홍준표는 재보궐선거 비용이 300억이 든다면서 사퇴 시한인 자정을 3분여 앞두고 사퇴서를 경상남도의회에 제출했다. 이로 인해 꼼수 사퇴라는 비판이 잇달았고, 다음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재보궐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본선 2위로 탈락했다. 이후에는 당대표를 거치고 정치 기반을 대구광역시로 옮겼다. 그리고 나이로 인해 사실상 마지막 도전으로 점쳐졌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아예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출마가 좌절되었다. 현재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고, 2027년에 열리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높다. 상술했듯이 나이는 많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올리면서 경쟁자였던 윤석열 후보를 꽤나 위협했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도전을 할 가능성이 높다.
김경수 전 지사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지사직을 상실하면서 모든 역대 민선 도지사가 대권을 도전한 적이 있다는 오래된 전통은 일단 깨질 전망이다. 더군다나 김경수는 이 사건으로 인해 2028년이 되어서야 피선거권이 회복되는지라, 특별사면을 받지 않는 이상 이미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김경수는 1967년생으로 피선거권이 회복되어도 만 61세밖에 되지 않는지라, 정치를 재개할 여지는 있다.
2022년 7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박완수 현 지사는 정치 경력은 풍부하지만, 일단은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로 거론되지는 않고 있다. 박완수 지사는 재선 국회의원에 미래통합당 사무총장까지 하는 등 중앙정치 경력도 풍부하지만, 경상남도청 고위공무원 출신에 창원시장을 3번이나 역임하는 등 지역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이렇듯이 경상남도지사 중에서는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한 이후에는 좀처럼 치고 오르지 못하고 있다.[14] 그나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두관, 김태호, 홍준표가 모조리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재개하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2년 뒤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 4년 뒤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김두관과 김태호의 맞대결에서 김태호가 당선되었다. 과연 이들 중 최소 1명이라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돼서 이 징크스가 깨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3. 명단
3.1. 일제강점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장관 | 가가와 데루(香川輝) | 1910년 10월 1일 ~ 1913년 2월 14일 | [15] |
초대 | 사사키 도타로(佐々木藤太郎) | 1913년 2월 14일 ~ 1921년 12월 26일 | [16] |
2대 | 사와다 호조(沢田豊丈) | 1921년 12월 26일 ~ 1923년 2월 24일 | |
3대 | 와다 준(和田純) | 1923년 2월 24일 ~ 1928년 1월 31일 | [17] |
4대 | 미즈구치 류조(水口隆三) | 1928년 1월 31일 ~ 1929년 1월 21일 | |
5대 | 스토 모토이(須藤基) | 1929년 1월 21일 ~ 1929년 11월 28일 | |
6대 | 다니 다키마(谷多喜磨) | 1929년 11월 28일 ~ 1930년 12월 24일 | |
7대 | 와타나베 도요히코(渡辺豊日子)[18] | 1930년 12월 24일 ~ 1933년 8월 4일 | |
8대 | 세키스이 다케시(関水武) | 1933년 8월 4일 ~ 1935년 4월 1일 | |
9대 | 하지 모리사다(土師盛貞) | 1935년 4월 1일 ~ 1937년 5월 26일 | |
10대 | 아베 센이치(阿部千一) | 1937년 5월 26일 ~ 1938년 9월 10일 | |
11대 | 야마자와 와자부로(山沢和三郎) | 1938년 9월 10일 ~ 1941년 11월 19일 | |
12대 | 니시오카 요시지로(西岡芳次郎) | 1941년 11월 19일 ~ 1943년 3월 27일 | |
13대 | 오노 스에오(大野季夫) | 1943년 3월 27일 ~ 1945년 3월 28일 | |
14대 | 노부하라 사토루(信原聖) | 1945년 3월 28일 ~ 1945년 8월 15일 |
3.2. 대한민국
3.2.1. 관선 1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초대 | 김병규 (金秉圭) | 1946년 1월 23일 ~ 1946년 12월 20일 | [19] |
2대 | 김철수 (金喆壽) | 1947년 1월 7일 ~ 1948년 10월 17일 | |
3대 | 문시환 (文時煥) | 1948년 10월 18일 ~ 1949년 11월 14일 | |
4대 | 양성봉 (梁聖奉) | 1949년 11월 15일 ~ 1953년 10월 7일 | |
5대 | 이상룡 (李相龍) | 1953년 10월 21일 ~ 1957년 2월 14일 | |
6대 | 김규진 (金奎鎭) | 1957년 3월 1일 ~ 1959년 11월 23일 | |
7대 | 신도성 (愼道晟) | 1959년 11월 24일 ~ 1960년 4월 30일 | |
8대 | 이기주 (李基周) | 1960년 5월 2일 ~ 1960년 10월 6일 | |
9대 | 정종철 (鄭鍾哲) | 1960년 10월 7일 ~ 1960년 12월 28일 |
3.2.2. 민선 1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20] | 비고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10대 | 이기주 (李基周) |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5월 23일 | [[신민당(1960년)|]] |
3.2.3. 관선 2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11대 | 최갑중 (崔甲中) | 1961년 5월 24일 ~ 1961년 8월 24일 | |
12대 | 양찬우 (楊燦宇) | 1961년 8월 25일 ~ 1963년 12월 16일 | |
13대 | 이계순 (李啓純) | 1963년 12월 19일 ~ 1968년 5월 20일 | |
14대 | 이기수 (李基洙) | 1968년 5월 21일 ~ 1969년 5월 12일 | |
15대 | 김효영 (金孝榮) | 1969년 5월 13일 ~ 1971년 6월 11일 | |
16대 | 정해식 (丁海植) | 1971년 6월 12일 ~ 1974년 2월 4일 | |
17대 | 강영수 (姜泳琇) | 1974년 2월 5일 ~ 1976년 10월 11일 | |
18대 | 조병규 (趙炳奎) | 1976년 10월 12일 ~ 1978년 12월 23일 | |
19대 | 김성주 (金聖柱) | 1978년 12월 26일 ~ 1980년 7월 9일 | |
직무대리 | 이남두 (李南斗) | 1980년 7월 10일 ~ 1980년 7월 17일 | |
20대 | 최종호 (崔鍾鎬) | 1980년 7월 18일 ~ 1982년 5월 24일 | |
21대 | 이규효 (李圭孝) | 1982년 5월 25일 ~ 1985년 2월 20일 | |
22대 | 김주호 (金周浩) | 1985년 2월 21일 ~ 1986년 8월 28일 | |
23대 | 조익래 (趙益來) | 1986년 8월 29일 ~ 1988년 12월 12일 | |
24대 | 최일홍 (崔一鴻) | 1988년 12월 13일 ~ 1990년 12월 27일 | |
25대 | 김원석 (金原奭) | 1990년 12월 28일 ~ 1993년 3월 3일 | |
26대 | 윤한도 (尹漢道) | 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 | |
27대 | 김혁규 (金爀珪) | 1993년 12월 28일 ~ 1995년 3월 29일 | |
28대 | 안명필 (安明弼) | 1995년 3월 30일 ~ 1995년 6월 30일 |
3.2.4. 민선 2기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21] | 출신지 | 비고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29대 | 김혁규 (金爀珪)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민주자유당|]] | 경남 합천 | [22] |
30대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
31대 | 2002년 7월 1일 ~ 2003년 12월 14일 | [23] | |||
권한대행 | 장인태 (張仁太) | 2003년 12월 15일 ~ 2004년 5월 3일 | 행정부지사 | 경남 남해 | [24] |
김채용 (金采溶) | 2004년 5월 4일 ~ 2004년 6월 5일 | 경남 의령 | |||
32대 | 김태호 (金台鎬) | 2004년 6월 6일 ~ 2006년 6월 30일 | | 경남 거창 | |
33대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34대 | 김두관 (金斗官) | 2010년 7월 1일 ~ 2012년 7월 6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경남 남해 | [25][26] |
권한대행 | 임채호 (林采虎) | 2012년 7월 7일 ~ 2012년 12월 19일 | 행정부지사 | 경남 함양 | |
35대 | 홍준표 (洪准杓) | 2012년 12월 20일 ~ 2014년 6월 30일 | [[새누리당|]] | 경남 창녕 | |
36대 | 2014년 7월 1일 ~ 2017년 4월 9일 | [27][28] | |||
권한대행 | 류순현 (柳淳鉉) | 2017년 4월 10일 ~ 2017년 8월 16일 | 행정부지사 | 경남 합천 | [29] |
한경호 (韓經浩) | 2017년 8월 17일 ~ 2018년 6월 30일 | 경남 진주 | |||
37대 | 김경수 (金慶洙) | 2018년 7월 1일 ~ 2021년 7월 21일 | | 경남 고성 | [30][31] |
권한대행 | 박성호 (朴性鎬) | 2019년 1월 30일 ~ 2019년 4월 17일 | 행정부지사 | 경남 김해 | [32] |
하병필 (河炳弼) | 2021년 7월 22일 ~ 2022년 6월 30일 | 경남 하동 | |||
38대 | 박완수 (朴完洙)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경남 통영 |
4.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민선 경상남도지사 | ||||||
1960 | 1995 | 1998 | 2002 | 2004 | ||
신민당 | 민주자유당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
이기주 | 김혁규 | 김태호 | ||||
2006 | 2010 | 2012 | 2014 | 2018 | ||
한나라당 | 무소속 | 새누리당 | ||||
김태호 | 김두관 | 홍준표 | 김경수 | |||
2022 | ||||||
국민의힘 | ||||||
박완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 1위: [[신민당(1960년)|]] 이기주 38.20% 2위: 안성수 33.50% | |||||
1995년 | 1위: [[민주자유당|]] 김혁규 63.84% 2위: [[자유민주연합|]] 김용균 36.15% | |||||
1998년 | 1위: 김혁규 74.64% 2위: [[새정치국민회의|]] 강신화 12.84%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허문도 12.50% | |||||
2002년 | 1위: 김혁규 74.50% 2위: [[새천년민주당|]] 김두관 16.88% | |||||
2004년 | 1위: 김태호 61.60% 2위: [[열린우리당|]] 장인태 27.50% 3위: [[민주노동당|]] 임수태 10.90% | |||||
2006년 | 1위: 김태호 63.12% 2위: [[열린우리당|]] 김두관 25.41% 3위: [[민주노동당|]] 문성현 10.10% | |||||
2010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김두관 53.50%2위: 이달곤 46.49% | |||||
2012년 | 1위: [[새누리당|]] 홍준표 62.91%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권영길 37.08% | |||||
2014년 | 1위: [[새누리당|]] 홍준표 58.85% 2위: [[새정치민주연합|]] 김경수 36.05% | |||||
2018년 | 1위: 김경수 52.81% 2위: [[자유한국당|]] 김태호 42.95% | |||||
2022년 | 1위: 박완수 65.70% 2위: 양문석 29.43% | }}}}}}}}} |
4.1. 1960년 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간주(鄭刊周) | 29,369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70% | 낙선 | |
2 | 이기주(李基周) | 239,107 | 1위 |
[[신민당(1960년)|]] | 38.20% | 당선 | |
3 | 이박규(李璞珪) | 31,600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00% | 낙선 | |
4 | 조유로(曺有路) | 20,532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30% | 낙선 | |
5 | 안성수(安星洙) | 209,884 | 2위 |
| 33.50% | 낙선 | |
6 | 강주수(姜周秀) | 51,370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8.20% | 낙선 | |
7 | 표문회(表文會) | 18,176 | 8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90% | 낙선 | |
8 | 김세존(金世尊) | 25,947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34,136 | 투표율 31.59% |
투표 수 | 611,186 | ||
무효표 수 | - |
4.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혁규(金爀珪) | 1,177,397 | 1위 |
[[민주자유당|]] | 63.84% | 당선 | |
2 | 김용균(金容鈞) | 666,756 | 2위 |
[[자유민주연합|]] | 36.1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621,029 | 투표율 73.05% |
투표 수 | 1,914,773 | ||
무효표 수 | 70,620 |
4.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혁규(金爀珪) | 939,358 | 1위 |
| 74.64% | 당선 | |
2 | 강신화(姜信和) | 161,703 | 2위 |
[[새정치국민회의|]] | 12.84% | 낙선 | |
4 | 허문도(許文道) | 157,337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2.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09,058 | 투표율 61.08% |
투표 수 | 1,288,171 | ||
무효표 수 | 29,773 |
4.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혁규(金爀珪) | 920,706 | 1위 |
| 74.50% | 당선 | |
2 | 김두관(金斗官) | 208,641 | 2위 |
[[새천년민주당|]] | 16.88% | 낙선 | |
3 | 임수태(林守泰) | 106,367 | 3위 |
[[민주노동당|]] | 8.6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27,548 | 투표율 56.53% |
투표 수 | 1,259,142 | ||
무효표 수 | 23,428 |
4.5. 2004년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태호(金台鎬) | 454,883 | 1위 |
| 61.60% | 당선 | |
3 | 장인태(張仁太) | 203,272 | 2위 |
[[열린우리당|]] | 27.50% | 낙선 | |
4 | 임수태(林守泰) | 80,290 | 3위 |
[[민주노동당|]] | 10.9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86,918 | 투표율 32.80% |
투표 수 | 750,126 | ||
무효표 수 | 11,681 |
2003년 12월 15일, 김혁규 전 경상남도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함과 동시에 경상남도지사직을 내려놓는다.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이른바 PK 지역이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이자 동시에 친노의 뿌리였는데,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등장 이후 PK의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이제 막 형성되던 때였다. 김혁규는 뿌리를 PK에 둔 친노 집권 세력인 신당 열린우리당에 합류하기 위해 이같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 2004년 1월 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특보[33]로 임명됐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당선권인 4번 자리를 공천 받고 원내에 입성한다.
4.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두관(金斗官) | 343,137 | 2위 |
[[열린우리당|]] | 25.40% | 낙선 | |
2 | 김태호(金台鎬) | 852,377 | 1위 |
| 63.10% | 당선 | |
4 | 문성현(文成賢) | 135,823 | 3위 |
[[민주노동당|]] | 10.10% | 낙선 | |
5 | 김재주(金在珠) | 18,906 | 4위 |
[[국민중심당|]] | 1.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375,265 | 투표율 57.83% |
투표 수 | 1,373,815 | ||
무효표 수 | 23,572 |
4.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달곤(李達坤) | 705,986 | 2위 |
| 46.49% | 낙선 | |
7 | 김두관(金斗官) | 812,336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3.5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2,506,393 | 투표율 61.42% |
투표 수 | 1,549,690 | ||
무효표 수 | 31,368 |
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달곤 | 김두관 | 격차 |
전체 | 48.5% | 51.5% | 3.0%p경합 |
하지만 2012년 7월 6일 김두관이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겠다고 돌연 경상남도지사직을 사퇴해버리는 바람에 공석이 되었다.[35] 그래서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된다.
여담으로 이로부터 10년 뒤, 두 후보는 각각 양산시 을 국회의원과 창원시 진해구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4.8.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홍준표(洪準杓) | 1,191,904 | 1위 |
[[새누리당|]] | 62.91% | 당선 | |
| | 사퇴 | |
[[통합진보당|]] | |||
4 | 권영길(權永吉) | 702,689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7.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603,893 | 투표율 76.79% |
투표 수 | 1,999,770 | ||
무효표 수 | 105,177 |
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홍준표 | 권영길 | 격차 |
전체 | 60.9% | 39.1% | 21.8%p |
비록 대선 때문에 별달리 주목을 못받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는 점으로 PK 민심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선거는 아니라는게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재미있게도 야권의 유력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모두 부산광역시 출신이란것도 그렇고... 이 때문에 여야에서는 일찌감치 후보군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간 텃밭으로 여겼다가 상실했던 새누리당은 고토 회복을 노리고 있다. 안상수 전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가 거론되고 있고 경상남도 내에서는 박완수 전 창원시장과 이학렬 전 고성군수도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분위기는 홍준표 전 대표와 박완수 전 창원시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중인데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중앙의 홍준표 전 대표보다는 박완수 전 창원시장의 지지율이 더 높은 편이다.
한편 야권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선거라서 후보 선정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호남 지역구를 내놓고 외가쪽 고향인 함안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장영달 전 의원, 이근식 전 행자부장관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경상남도 창녕군이 고향인 박영선 전 의원의 차출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외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나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강기갑 전 대표가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한 탓에 권영길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37]
민주통합당과 야권내에서는 야권 연대의 성사가 선거 승리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서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권영길 전 대표를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실제 경상남도 지역 여론조사 결과에서 권영길 전 대표가 출마시 박완수 전 창원시장에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권영길 전 대표는 일단 자신은 출마할 생각이 없고 야권 단일 후보가 확정되면 그 후보를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다면 자신이 출마할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안철수 후보측은 사실상 정당 기반이 없는 탓에 이 선거에 대해서 난감해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혹은 야권 단일 후보)가 러닝메이트가 되는 상황이라 안철후 후보측도 러닝메이트격인 후보를 내야할지 고심중인것으로 알려진 상황.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2년 11월 4일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완수 전 창원시장 등을 경선에서 누르고 새누리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었다.
새누리당이 후보를 확정한 반면,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아직도 후보를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단 민주통합당은 먼저 민주통합당 후보를 확정한 뒤에 야권 단일 후보를 내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당초 민주통합당에서 거론되던 장영달, 이근식, 박영선 등의 인사들은 여러 이유로 고사하거나 유야무야 되었고 11월 10일부터 11월 11일까지 후보자 공모에 나섰다.
이후 2012년 11월 12일에 최종적으로 후보 신청자들이 공개되었는데 공민배 전 창원시장, 김영성 전 창신대 외래교수, 김종길 전 민주당 경남도당 대변인, 김형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확정되었다. 민주통합당은 이들 네명의 후보를 경선 참여자로 확정하고 2-3차례의 TV 토론을 거쳐서 국민참여경선과 경상남도 주민 여론조사를 각각 50%씩 반영하는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김형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나 김형주 전 정무부시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의 인사로 알려져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의 매개고리가 아니냐는 말도 있다. 이에 대해서 김형주 후보는 부인한 상황.
한편 출마를 고심하던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진보정의당은 권영길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야권연대 차원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고 진보신당 연대회의측도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통합진보당은 이병하 전 경남도당 위원장을 후보로 선정한 상황.
민주통합당과 권영길 전 대표간의 연대는 이뤄질것으로 보이지만 변수는 통합진보당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이 선거가 김두관 후보의 사퇴로 인해 일어났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부정적인데 대한 반발성의 성격이 짙은 상황이다. 일단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확정되면 민주통합당-권영길-이병하의 3파전이 될 전망인데 단일 후보가 세워질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권영길 전 대표가 경상남도 지역 진보 세력의 일치를 위해서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야권 연대에 이죽거리기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결국 통합진보당은 야권 연대에 불참, 독자 출마를 선언하고 만다.
얼마 전 홍준표의 경비원 막말 파문이 발생하여 더욱 알기 힘들게 되었다.
2012년 11월 21일 민주통합당내 경선 결과 과반수로 공민배가 후보로 확정되었다.그리고 단일화 후보 선출은 여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했으나 공민배 후보가 모 지역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자신만 초대 못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여론조사 무효를 선언했다. 그리고 결국 야권 단일화가 무산될 뻔 했으나 후보 등록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단일화가 재개. 여담으로 여론조사는 공민배 후보의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됐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11월 26일 공민배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에 관계없이 단일화 후보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 권영길 후보로 단일화되었다.
결국 양강 구도로 치러진 경상남도지사 선거에서,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가 비교적 큰 표차로 무소속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4.9.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홍준표(洪準杓) | 913,162 | 1위 |
[[새누리당|]] | 58.85% | 당선 | |
2 | 김경수(金慶洙) | 559,367 | 2위 |
[[새정치민주연합|]] | 36.05% | 낙선 | |
3 | 강병기(姜炳基) | 79,015 | 3위 |
[[통합진보당|]] | 5.0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658,347 | 투표율 59.79% |
투표 수 | 1,589,673 | ||
무효표 수 | 38,129 |
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홍준표 | 김경수 | 격차 |
전체 | 59.8% | 36.6% | 23.2%p |
4.10.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경수(金慶洙) | 941,491 | 1위 |
| 52.81% | 당선 | |
2 | 김태호(金台鎬) | 765,809 | 2위 |
[[자유한국당|]] | 42.95% | 낙선 | |
3 | 김유근(金酉根) | 75,418 | 3위 |
[[바른미래당|]] | 4.2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765,485 | 투표율 65.78% |
투표 수 | 1,819,391 | ||
무효표 수 | 36,673 |
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김경수 | 김태호 | 격차 |
전체 | 56.8% | 40.1% | 16.7%p |
사실 이렇게 된 데는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서부 경상남도 지역이 먼저 개표가 시작된 것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불과 10,760표 차이의 접전이 일어난 것 두 개였다. 사실 언론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겠느냐만 워낙 결과가 예상된 선거였던데다 다음 날에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가 열리므로,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곳이 이 지역 말고 없어서 일부러 격전지라고 집중조명한 측면이 있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게, 김경수의 동부 경상남도와 김태호의 서부 경상남도의 구도로 이어진 가운데, 중부-서부 경상남도에서 서부 경상남도 인구 최대 도시인 진주시와 김경수의 고향인 고성군, 서부 경상남도의 농촌이지만 화개장터 등의 영호남 교류의 영향으로 보수세가 약한 하동군, 그리고 내서읍과 양덕1·2동의 영향으로 보수세가 많이 약해진 마산회원구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고 동부 경상남도에서 50% 후반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태호 후보를 무려 10% 이상의 격차로 눌러버렸다. 결과적으로 동부 경상남도의 어마어마한 인구,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출신지, 지역의 세부적인 특성 등이 김경수 후보가 승리를 거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4.1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문석(梁文錫) | 431,569 | 2위 |
| 29.43% | 낙선 | |
2 | 박완수(朴完洙) | 963,473 | 1위 |
| 65.70% | 당선 | |
3 | 여영국(余永國) | 58,933 | 3위 |
[[정의당|]] | 4.01% | 낙선 | |
4 | 최진석(崔振碩) | 12,353 | 4위 |
[[통일한국당|]] | 0.8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804,287 | 투표율 53.39% |
투표 수 | 1,497,400 | ||
무효표 수 | 31,072 |
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양문석 | 박완수 | 격차 |
전체 | 30.2% | 65.3% | 35.1%p |
양문석 후보는 자신의 출신지인 통영시와 낙동강 벨트에 속해 있는 김해시, 양산시와 김두관 의원의 근거지였던 남해군,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거제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선 30%를 넘지 못했지만 경상남도 전체 읍면동 통틀어서 대우조선해양 본사에 위치한 거제시 아주동에서는 박완수를 제치고, 과반 득표를 하며 그나마 유일하게 1위를 기록함으로써 변성완와 달리 유종의 미라도 거뒀다.[40]
한편 박완수 후보는 자신의 근거지였던 의창구에서 무려 69.38%를 받았고, 나머지 창원시 지역에서도 60%대 중반~70%대 초반을 받고 김해시, 양산시에서도 넉넉한 격차로 이김으로써 승리에 쇄기를 박았다.
4.12.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남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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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5.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41] | |
1회 | - | 김혁규 | 김용균[42] |
[[민주자유당|]] | [[자유민주연합|]] | ||
당선 63.84% | 낙선 36.15% | ||
2회 | 강신화 | 김혁규 | 허문도[43] |
[[새정치국민회의|]]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12.84% | 당선 74.64% | 낙선 12.50% | |
3회 | 김두관 | 김혁규 | 임수태[44] |
[[새천년민주당|]] | | [[민주노동당|]] | |
낙선 16.88% | 당선 74.50% | 낙선 8.60% | |
재보선 | 장인태 | 김태호 | 임수태[45] |
[[열린우리당|]] | | [[민주노동당|]] | |
낙선 27.50% | 당선 61.60% | 낙선 10.90% | |
4회 | 김두관 | 김태호 | 문성현[46] |
[[열린우리당|]] | | [[민주노동당|]] | |
낙선 25.40% | 당선 63.10% | 낙선 10.10% | |
5회 | - | 이달곤 | 김두관[47]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46.49% | 당선 53.50% | ||
재보선 | - | 홍준표 | 권영길[48] |
[[새누리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62.91% | 낙선 37.08% | ||
6회 | 김경수 | 홍준표 | 강병기[49]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통합진보당|]] | |
낙선 36.05% | 당선 58.85% | 낙선 5.09% | |
7회 | 김경수 | 김태호 | 김유근[50]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당선 52.81% | 낙선 42.95% | 낙선 4.24% | |
8회 | 양문석 | 박완수 | 여영국[51] |
| | [[정의당|]] | |
낙선 29.43% | 당선 65.70% | 낙선 4.01% | |
9회 | ○○○ | ○○○ | - |
| | ||
- | - |
6.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1회 | 김혁규 | 김용균 | ||
2회 | 김혁규 | 강신화 | 허문도 | |
3회 | 김혁규 | 김두관 | 임수태 | |
재보선 | 김태호 | 장인태 | 임수태 | |
4회 | 김태호 | 김두관 | 문성현 | 김재주 |
5회 | 김두관 | 이달곤 | ||
재보선 | 홍준표 | 권영길 | ||
6회 | 홍준표 | 김경수 | 강병기 | |
7회 | 김경수 | 김태호 | 김유근 | |
8회 | 박완수 | 양문석 | 여영국 | 최진석 |
7. 도정 지표
도지사 | 도정 구호 |
김혁규 | <colcolor=#000,#fff> 도민제일주의 실현 세계일류 경남건설 |
2만불시대! 도민과 함께 열겠습니다[52] | |
김태호 | 세계로 미래로 뉴 경남 |
김두관 | 대한민국 번영 1번지 경남 |
홍준표 | 당당한 경남시대[53] |
김경수 |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 |
더 큰 경남 더 큰 미래[54] | |
박완수 | 활기찬 경남, 행복한 도민 |
8.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김두관, 김경수 지사는 서부 경남 출신 정치인이다. 민주당에게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지역 출신인게 오히려 선거에서 상대 표를 잠식할 수 있는 메리트로 작용한건데, 실제로 이 둘은 지사 선거 당시 서부 경남의 핵심인 진주에서 과반을 넘기면서 완승했다.[2] 김두관, 홍준표, 김경수.[3] 여기에는 김경수가 서남부 지역인 고성군 출신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도시 진주시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지역적 배경이 한몫했다. 민주당이 초선에 50대 초반인 김경수를 국회의원 당선 2년 만에 과감히 차출한 것은 바로 서부 경상남도 표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고 올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4] 김혁규-합천군, 김태호-거창군, 김두관-남해군, 김경수는 진주시 생활권인 고성군 개천면 출신으로 진주고등학교를 졸업.[5] 그나마 현직인 박완수 지사는 마산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이후 창원시장을 역임한 만큼 동부 경상남도 출신이라는 인식이 다소 존재한다.[6]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서울특별시나 경기도 출신이 현재 기준 윤석열 1명 뿐인 것과 같은 이유다. 그마저도 본인이 충청도 본적을 내새워 충청도 색깔이 강한 편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역임할 만한 중견 정치인들의 성장기에 해당하는 시대에는 아직 수도권에 편중된 개발이 진행되기 전이라 서울특별시나 경기도 인구 비중이 농촌에 비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7] 김혁규 전 지사는 부산광역시에서 고교, 대학을 졸업했고, 김경수 전 지사는 김해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김태호 전 지사는 거창군수를 역임하고 김해시에서 국회의원 재선을 했는데, 이 경우는 경상남도지사 역임 이후의 사례라 좀 애매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거창군에서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김두관 전 지사는 남해군수를 역임했는데(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포시 갑,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부 경상남도의 양산시 을에서 당선되었다. 박완수 지사는 창원시장을 거쳐 창원시 국회의원 재선을 지냈다.[8] 가장 복잡한게 홍준표 전 지사인데, 서울특별시에서만 4선을 했다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며 정계 은퇴 선언까지 했다가 김두관이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이유로 경상남도지사직을 사퇴하면서 냉큼 그 자리를 가져오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그 이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복귀했는데, 본인 스스로 중고등학교를 다닌 대구에 가장 애착이 크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태어난 고향인 창녕군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합천군 또한 부산광역시, 창원시, 진주시보다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라서 홍준표의 지역 기반은 사실상 TK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이후 홍준표는 민선 8기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민선 사상 최초로 두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게 되었다.[9] 통합 이전 창원시가 아닌, 현재 통합창원시를 의미한다. 일반구별로 들어가면 이 중 의창구만이 적중 지역에 들어간다.[10] 서울특별시장이나 경기도지사도 대권에 도전하지 않은 사람이 2명씩 있다.[11]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이명박.[12]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이재명.[13] 참고로 충남과 경남은 농어촌 위주라 인구가 적고 보수적인 서부, 공업지대 성격이 강해 인구가 많고 민주당 지지세가 어느정도 존재하는 동부로 나뉘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14] 홍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상남도지사가 선출직 최고 커리어다.[15] 초대 장관.[16] 2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17] 경상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18] 이름 보고 착각하기 쉬운데 남자다.[19] 경상남도 홈페이지 근거. 경상북도지사의 경우와 달리 미군정시기의 도지사를 포함했다.[20] 선거 당시 당적.[21] 선거 당시 당적.[22] 1995.12.6. 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23] 2003.12.1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 출마를 위해서 지사직 사퇴. 사퇴 직후 열린우리당 입당.[24] 경상남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였다.[25] 2012.2.16. 입당.[26] 2012.7.6.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경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27]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28]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29] 세종특별자치시 행정부시장 한경호와 직을 맞교환.[30] 2019년 1월 30일 법정 구속되었으나 2019년 4월 17일 보석되어 직무을 재개했다.[31] 2021년 7월 21일 3심에서 댓글조작과 관련 혐의로 컴퓨터업무방해죄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지사직 박탈.[32] 김경수 전 지사가 1심에서 법정구속된 때부터 보석이 인용될 때까지 권한대행을 맡음.[33]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수시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자리로 무보수 명예직이다.[34]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원래부터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왔고, 당선 이후 2011년 친노 계열들이 만든 시민통합당 창당에 합류한 뒤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했다.[35] 결국 이 선택은 김두관의 정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겼고,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도 힘들게 차지한 경상남도지사 자리를 다시 보수 정당에 넘겨줬기 때문에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36] 실제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대통령 선거 경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논란 끝에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했다.[37] 권영길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뒤에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언젠가 진보정의당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표명하기도.[38] 물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야권 후보인 김두관 후보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지만, 김두관 후보가 당시 무소속이었다는 점이 당선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39] 개표 초반엔 서부 경상남도 vs 동부 경상남도 구도로 가며 김태호 후보가 앞섰지만, 후반부에 창원시 성산구, 김해시, 양산시 등지에서 몰표가 나오고 중부 지역인 마산회원구, 진주시가 김경수 우위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결국 김경수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2014년의 한을 푸는 순간이였다.[40] 다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에 위치한 김해시 진영읍에서조차 패했을 정도면 사실상 최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41] 3% 이상 득표자만 기재.[42] 보수 정당 후보.[43] 보수 성향 후보.[44] 진보 정당 후보.[45] 진보 정당 후보.[46] 진보 정당 후보.[47] 민주당계 성향 후보.[48] 진보 성향 후보.[49] 진보 정당 후보.[50] 제3지대 정당 후보.[51] 진보 정당 후보.[52] 2003년 4월 15일에 교체하였다. #[53] 홍준표 전 지사 사퇴 이후에 이 도정 지표를 계속 써야하는냐는 논쟁이 있었으나, 권한대행들은 직전 경상남도지사의 도정 지표를 계속 써왔던 관례에 따라 그냥 두기로 결정하였다. #[54] 2021년 6월 28일 정식으로 현판 교체. #[55] 구단주 겸임.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23] 2003.12.1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 출마를 위해서 지사직 사퇴. 사퇴 직후 열린우리당 입당.[24] 경상남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였다.[25] 2012.2.16. 입당.[26] 2012.7.6.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경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27] 2017.2.13.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28]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29] 세종특별자치시 행정부시장 한경호와 직을 맞교환.[30] 2019년 1월 30일 법정 구속되었으나 2019년 4월 17일 보석되어 직무을 재개했다.[31] 2021년 7월 21일 3심에서 댓글조작과 관련 혐의로 컴퓨터업무방해죄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지사직 박탈.[32] 김경수 전 지사가 1심에서 법정구속된 때부터 보석이 인용될 때까지 권한대행을 맡음.[33]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수시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자리로 무보수 명예직이다.[34]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원래부터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왔고, 당선 이후 2011년 친노 계열들이 만든 시민통합당 창당에 합류한 뒤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했다.[35] 결국 이 선택은 김두관의 정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겼고,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도 힘들게 차지한 경상남도지사 자리를 다시 보수 정당에 넘겨줬기 때문에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36] 실제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대통령 선거 경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논란 끝에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했다.[37] 권영길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뒤에 노동 중심의 새로운 진보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언젠가 진보정의당과 만났으면 좋겠다고 표명하기도.[38] 물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야권 후보인 김두관 후보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지만, 김두관 후보가 당시 무소속이었다는 점이 당선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39] 개표 초반엔 서부 경상남도 vs 동부 경상남도 구도로 가며 김태호 후보가 앞섰지만, 후반부에 창원시 성산구, 김해시, 양산시 등지에서 몰표가 나오고 중부 지역인 마산회원구, 진주시가 김경수 우위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결국 김경수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2014년의 한을 푸는 순간이였다.[40] 다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에 위치한 김해시 진영읍에서조차 패했을 정도면 사실상 최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41] 3% 이상 득표자만 기재.[42] 보수 정당 후보.[43] 보수 성향 후보.[44] 진보 정당 후보.[45] 진보 정당 후보.[46] 진보 정당 후보.[47] 민주당계 성향 후보.[48] 진보 성향 후보.[49] 진보 정당 후보.[50] 제3지대 정당 후보.[51] 진보 정당 후보.[52] 2003년 4월 15일에 교체하였다. #[53] 홍준표 전 지사 사퇴 이후에 이 도정 지표를 계속 써야하는냐는 논쟁이 있었으나, 권한대행들은 직전 경상남도지사의 도정 지표를 계속 써왔던 관례에 따라 그냥 두기로 결정하였다. #[54] 2021년 6월 28일 정식으로 현판 교체. #[55] 구단주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