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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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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법륜
法輪 | Pomnyun
파일:법륜스님 프로필.jpg
속명 최석호(崔錫鎬)
법호 지광(智光)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53년 4월 11일 ([age(1953-04-11)]세)
경상남도 울산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1][2]
종교 불교
직업 승려, 사회운동가
현직 정토회 지도법사
사단법인 에코붓다 이사장
재단법인 평화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좋은벗들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제이티에스 이사장
Join Together Society America 이사장
학력 경주고등학교 (졸업)
대표상훈 국민훈장 모란장 (2018)
막사이사이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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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유년 시절에서 출가까지2.2. 서암과의 만남2.3. 승적 문제
3. 활동4. 윤회관5. 관련 단체 및 SNS6. 저서7. 방송 출연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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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 출신 승려(수행자)이자, 사회운동가, 구호운동가, 환경운동가, 통일전문가,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2.1. 유년 시절에서 출가까지

파일:68889_93448.jpg_M800.jpg
법륜과 그의 스승 도문

1953년 4월 11일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족관계는 위로 세 명의 형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있다. 첫째 형과 셋째 형은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바 있는 농민운동가이다.[3]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으며, 종교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와 연이 닿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하면서부터이며, 경주고등학교 1학년 때는 경주지역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분황사[4]에서 은사 도문을 만났다. 도문이 법륜을 불러 세우려 하자 당시 시험기간이었던 법륜은 바쁘다고 말했고, 도문은 대뜸 "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학교요."
"그 전에는?"
"집에서요."
"그 전에는?"

과거를 되짚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갔다. "어머니 뱃속 전에는 어디서 왔나?" 하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자, 질문은 미래를 향했다.

"어디로 갈거냐?”
"학교요"
"그 다음은?"
"집이요."

미래에 대한 질문 또한 끝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죽겠죠."라는 대답까지 이르자 도문은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가는데?"라고 물었으나 법륜은 역시 대답을 못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라는 말을 들은 것이 출가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프린스턴대 영상 17세(1969년)에 절로 들어갔지만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절에서는 승복을 입고,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생활을 했다. 당시에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겠다는 꿈을 세우고 주말마다 고철을 주우러 다닐 정도로 열혈 불교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경주고등학교 2학년부턴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 이기영으로부터 불교대학 1·2학년 교재를 받아와 공부를 시작했으며, 경주고등학교 3년 때는 불교대학 3·4학년 교재로 자습했다. 스승 도문은 “넌 수재여서 동국대 불교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할 것이다.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다 총장을 거쳐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이 되어 국민에게 이바지하라.” 권했지만, 법륜은 스승의 뜻을 거절했다. “‘도문(스님) 대학’을 나왔으니 그만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겠습니다.”# 법륜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그렇다고 승려가 되는 과정을 택하지도 않고 일반인 신분으로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2.2. 서암과의 만남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565393_STD.jpg
30대 초반 포교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인지하는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았다.[5] 불교 정화운동에 참여하며 한국 불교계의 실상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불교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불교를 버릴 생각까지 하며 미국으로 떠났다가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서암(西庵, 1917~2003)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미국의 한 작은 사찰에서 우연히 누군지도 모르는 노승(서암)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불평을 여러 시간 동안 늘어 놓았다. 서암은 묵묵히 듣다가 "여보게,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 논두렁이 절이라네. 그것이 불교야" 말하였다. 법륜에게 이 말이 다시 한번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귀국 후에도 서암과의 인연은 이어져, 1986년 비원포교원을 개원하였을 때 서암이 3일간 법문을 해주었다.[6] 비원포교원의 크기가 20평으로 불상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어 고민하던 때, 법륜은 서암에게 불상을 놓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서암이 "산 부처 앉을 자리도 없는데, 죽은 부처 두어서 뭐하게?"라고 말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법륜은 불상 대신 부처 사진을 걸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정토회에도 이어져, 공간이 좁은 법당이라면 불상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다.

2.3. 승적 문제

도문을 만나 출가를 시작했고,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았으나, 정작 스승이 조계종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적 및 소속 종단이 없다.

출가 후, 20년을 스님이 아닌 재가법사로서 활동하는데 90년 말에 스승 도문이 "인제 들어와서 활동을 해라." 하였다. 법륜이 도문 스님에게 "스님, 도에 무슨 안팎이 있습니까?" 묻자, "도에는 안팎이 없지." 답했다. 그러자 법륜이 묻기를 "그런데 왜 자꾸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러십니까?" 하니 도문 스님이 "네가 밖을 고집하니까 안이 생기지."라며 응했다. 법륜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안팎이 없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밖을 고집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삭발을 하고, 도문은 사미계는 옛날에 받은 걸로 하고, 계율에 대해서만 다시 설하고 비구계와 법사계를 받고 전법을 받았다. 그때가 91년 1월이었다.

91년에 사미계를 받으려 했지만 단일 수계가 없던 해여서 사미계를 받지 못하고, 도문이 승적문제에 대해서 '네가 20년 밖에서 나가 살면서 장가를 간 것도 아니고 딴 짓 한 것도 아니고 불교 활동했으니까 승적문제는 내가 한 번 의논을 해보겠다'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당장 수속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다 단일 수계를 지나쳐버리고 계를 못 받게 됐다.

조계종에선 법륜이 단일 계단에 참여를 안 했기에 승려로 인정을 할 수 없다기에 법륜은 승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8월 25일부터 진행되는 행자교육원 입방원서를 다시 썼다. 그런데 그 해 6월부터 '북한돕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두 달간에 걸쳐 마무리하고, 8월 15일날 회향한 후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총무원장 스님, 강원용 목사와 함께 대통령 면담신청 날짜가 8월 29일로 잡혔다.

당시, 정토회의 책임자들은 합동 수계에 대한 안건을 대중공사(숙의형 전원 토의)에 붙였다. 합동 수계에 간다면 한창 진행 중인 북한 돕기 운동에 차질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중공사 결과, 법륜 스님이 수계 교육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결정이 나왔고 법륜은 그 결정을 따랐고 현재 승려증 없는 승려로 남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소속 종단 및 승적이 없는 법륜과 정토회에 대해 각 종단측 인물들 및 신도들에게서 사이비 취급을 받으면서 불교 종단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즉, 냉정하게 말하자면 법륜은 종단의 정식으로 인정받은 스님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명백히 사이비는 아니다. 상을 두지 않는 원불교조차 사회적으로 봤을 때 믿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윤회사상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법륜은 믿음과 신앙으로서의 윤회사상은 존중은 하나, 깨닫음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 말하고 오히려 과학적인 접근과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불교사상엔 신앙적 영역에 속할 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정토회조차 종교라 지칭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스님이라 할 수 없지 않느냐 라 평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세속의 평가다. 민주주의 국가 시점에서의 종교는 믿음의 영역으로서 존중의 대상이지 법을 기준하여 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세속으로서의 시각으로 보자면 석가부터 윤회사상을 중점으로 깨닫음을 주고 다니지 않았다.[7] 그를 기준으로 하자면 깨닫고 행하는 것 역시 승려로서의 일이라 볼 수 있다는 것 이고, 모든 종교가 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사회인 개개인이 결정하는 면이 있기에 법륜을 승려라 칭하는 것 역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법륜은 승적이 아닌 자발적인 행보로서 세간의 인정을 받은 승려라 할 수 있다. 수행을 중심으로 하여 정토회를 이끌고, 철학으로서의 종교가 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각 지역, 세계 각 지역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즉문즉설이 상당히 자주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보면 법륜의 뜻과 철학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3.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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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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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단체 및 SNS


참고로 위 SNS 모두를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SNS를 통해 '즉문즉설' 질문을 할 수는 없다. 질문을 하려면 강연장에 가서 질문할 기회를 얻거나, 온라인 즉문즉설(정토회 문의) 시간에 사전 질문기회를 얻어야 한다. 또한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학생신분으로 질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6. 저서

7. 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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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윤회관 정토회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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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2]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3] 큰형 최영준은 가톨릭 농민운동을 했고 둘째 형은 미국에 산다. 셋째 형 최석진은 학생운동, 농민운동을 했고 감옥 생활도 오래 했다.#[4] 원효가 신라시대에 건립한 바로 그 절[5] 경주 시내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던 때였다. “어느 날 사시 예불을 모시고 있는데 불우한 상이군인 한 사람이 법당으로 들어왔다. 절에 중이 되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상이군인은 홍보전단에 적힌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한 자여! 여기 부처님께서 마련하신 좋은 안식처가 있으니 여기로 오십시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왔노라고 말했으나, 그런 그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보낼 수 있을까, 다른 절을 소개해 줄까' 궁리만 하던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헌신적으로 일하는 법사’라는 아상이 깨어짐을 느꼈다.#[6] 깨우침,서암 큰스님과의 인연(법륜 스님)#[7] 윤회사상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윤회 자체가 고통이며 계속 환생의 굴레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즉, 깨우침을 얻어야 세속에서의 불행으로 벗어난다는 것 이기에 윤회를 인정한다 하여 깨닫음을 얻는다 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와 달리 불교가 말하는 본질적인 깨우침에 있어선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말 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