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慘慽
관련 문서: 악상(죽음), 요절
, 노소부정
이 문단은
순전히 자기 의지대로 평화보다 전쟁을 택할 만큼 정신 나간 이가 있을 리 없다. 평화에는 아들이 아비를 묻지만 전쟁에는 아비가 아들을 묻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
헤로도토스
나도 모르게 낙담하여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도다! 하늘이 어찌 이렇게 어질지 못하실 수가 있는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게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은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인가.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 보인다. 슬프다! 내 작은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이순신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10월 14일, 3남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듣고
자식이 부모보다, 또는 손주가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 인생에서 손꼽히는 무엇보다 참혹한 비극이다. 과거에는 자식으로서 행하는 가장 큰 불효로 여겼을 정도이며 현대에도 매우 큰 불효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제각기 감정이 다르지만 대개는 자녀가 죽을 때를 가장 슬프게 여긴다. 자녀를 잃은 사람들을 딱히 표현할 단어도 마땅치 않다고[1] 하는데 이것을 두고 "아내 잃은 남편은 홀아비, 남편 잃은 아내는 과부,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를 일컫는 단어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이순신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10월 14일, 3남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듣고
이는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로 과부는 widow, 홀아비는 widower이며 고아는 orphan으로 칭하지만 영어로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칭하는 특정 명사는 없다. # 굳이 있다면 Vilomah가 지목되지만 이는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단어이며 자식 잃은 부모를 칭하는 데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대부분의 영여 원어민도 이 단어를 모른다.
본 문서명인 참척은 참혹할 참(慘)에 슬플 척(慽)을 써서 '자식을 잃은 부모'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간접적이고 완곡하게 '너무나도 참혹하고 슬픈 감정'으로 돌려서 말하는 것으로 "너무나도 슬프고 비참한 심정이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으니까 만들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양과 동양, 국경과 문화를 가리지 않는다. 다른 언어로도 자식 잃은 부모를 '직접 지칭'하는 단어는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 단장(斷腸)
좁은 의미로는 글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넓은 의미로는 가슴 아픈 이별로 인한 처절한 슬픔을 뜻한다.
이 말이 처음 나온 세설신어에서 어떤 병사가 별 생각 없이 새끼 원숭이를 잡았는데 자식이 납치 당하자 어미 원숭이는 슬피 울며 쫓아오다가 결국 병사가 탄 배에 몸을 날려서 따라잡았지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고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죄다 토막이 나 있었다. 이 일화는 "애간장이 탄다"라는 표현의 시초이기도 하다.
- 서하지통(西河之痛), 상명지통(喪明之痛)
중국 공자의 제자, 자하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사기, 중니제자열전》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돌아가신 후, 자하는 서하에 머물며 가르침을 베풀고, 위문후의 스승 노릇을 하였다. 그 아들이 죽자, 울다가 시력을 잃었다."[2] 참고로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는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지다)이라고 한다.
- lá xanh rụng trước lá vàng(라 사잉 중 쯔억 라 방)
베트남어 표현으로, 직역하면 "푸른 잎이 노란 잎보다 먼저 떨어졌구나."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척을 당하면 부모들은 자손들 장례를 지낼 때 묘지를 만들지 못하고 화장, 바다장, 자연장 등만 가능하며 묘지를 만들 수 없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실제 법적으로는 매장도 가능하다. 이는 유교식 관습이 와전된 것이다. 유교에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불효로 여겼고 자식의 장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편이었다.[3] 이것이 자손의 장례는 제대로 묘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와전된 것이다.[4] 21세기에는 그런 거 없이 호상인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제대로 장례를 치러 선영에 묻기도 한다.
다만, 인식과는 별개로 당대에는 의료 여건이 상당히 열악했기 때문에 영아사망률,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참척을 겪는 것은 생각 외로 흔한 일이었다.[5] 영아 사망률이 10%는 가볍게 넘었던 데다 성인까지 살아남는 비율이 절반 남짓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대에도 현대처럼 10살(초3) 나이 정도가 사망률이 제일 낮고 그 이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사망률이 계속 올라가는 형태였다. 이후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고 특히 영아 사망률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참척을 겪는 비율이 감소하였으나 현대에는 평균 수명이 매우 늘어나면서 100살 노인이 70대 자식을 보내는 등 다시 참척을 겪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자연사인데도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이 늘고 있다.[6] 부모 쪽의 나이가 95~100살 정도가 되면 부모와 자식 중 누가 먼저 죽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7] 부모가 90~100살일 때 자식은 60~70살을 바라보는 게 현실인지라 심각한 불효로 보지는 않는 경우가 많으며 평소 건강 관리에 따라 자식이 천수를 누리고 노환으로 죽더라도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이 간혹 있다. 물론 이미 자식이 천수를 누릴 대로 누린 탓에 좀 덜하겠지만 이래도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다만, 부모의 연세가 높아 충격을 받을 경우 건강이 우려되고, 사망자의 형제자매 혹은 자식이 장성하여 장례를 주관하는데 이상이 없다 판단될 경우 부모를 제외하고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죽는 사람이 천수를 누렸고 심지어 부모가 100살이 넘었더라도 어쨌든 멀쩡히 살아 있다면[8] 참척을 안긴 것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호상이라고 할 수 없어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일반적으로 천수를 누리다 간 사람에 비해 약간 무겁다.[9] 하지만 자녀가 70세 이상의 고령으로 참척할 경우 어머니 등 부모는 살아 있어도 최소 90이 넘는 초고령자다 보니 죽음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자녀도 고령이다 보니 떠나보낼 것을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크게 슬퍼하는 경우는 적다. 자녀가 아니라도 며느리나 사위를 먼저 보내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손주를 먼저 보내는 경우도 있으나 손주는 자연사, 숙환으로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이 매우 장수하고 자신과 자식 둘 다 결혼도 아주 빨리 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당연하지만 아직 한창 창창한 어린아이~청년 나이에 요절한 고인의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차마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다.[10] 정말 장례식장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오열하는 부모의 절규로 가득 차거나#[11] 반대로 사람이 없는 줄 착각할 정도로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득 찬다.[12] 그나마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면 부모도 자식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느 정도 절차적 준비는 해 놓을 수 있지만, 이성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 큰 슬픔과 고통이 되는 건 물론이다.[13]
예감하고 있던 죽음도 이런데 자살, 타살, 사고사 등 예기치 못한 죽음이라면 부모의 마음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애통한 심정일 것이다. 친척이나 지인 장례식장에 간 후기를 남긴 글들을 보면 "이상하리만치 침묵만 감도는 장례식장이 있길래 슬쩍 봤더니 초등학교도 못 간 아이의 장례식장이더라. 생판 모르는 남인데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식의 증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댓글 참조 실제로 화장장이나 장례식장 등지에서 누가 봐도 어린 나이의 영정이 들어온다면 주변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을 잃고 얼어붙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본인도 부모나 조부모상을 당했는데 현장에 미성년자나 청년의 유가족이 있다면 본인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는 감히 슬픔을 드러내지도 못할 정도다. 이 탓에 부모가 나이가 비교적 젊다면(주로 고인의 나이가 매우 어리다면) 이후 다시 아기를 낳는 경우도 있다.[14]
일본의 불교 전승에 따르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아이들[15]이 삼도천 앞에서 돌탑을 쌓는다고 한다. 돌탑을 다 쌓으면 삼도천을 건너 저승으로 갈 수 있는데 문제는 옥졸들이 돌탑이 완성되기 전에 때려부순다는 점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쌓고 다시 부서지고 계속 반복한다. 그런 불쌍한 아이들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옥졸들을 가로막거나 하여 구제해 준다고 한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윤회를 거부하고 돌탑을 쌓으며 부모의 평안을 빈다는 전승도 있다. 이때 옥졸들이 돌탑을 부수는 이유는 그만하고 윤회의 굴레를 밟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강제로 무한 루프를 시키는 일종의 벌이 아닌 제발 편안하게 윤회의 굴레를 밟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달라는 뜻.
한국의 제주도 신화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잘 자라도록 보살피는 신이 삼승할망이라면 아이가 죽으면 저승에서 잘 보살펴 주는 신으로 구삼승할망이라고도 하는 '저승할망'이 있었다. 부모에게 "죽은 아이는 저승에서 신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을 것이다"라고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화로 보인다.
중국의 선문답에도 참척과 관련된 것이 있다. 한 부호가 유명한 선사(禪師)를 모셔 가문 대대로 복을 바라는 글귀를 하나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선사는 "아비가 죽고, 자식이 죽고, 손자가 죽는다(父死,子死,孙死)" 라는 글귀를 적어주었다. 당연히 부호는 극대노해서 이딴 게 무슨 복을 바라는 글귀냐며 선사에게 따졌지만 선사는 "당신의 자식이 당신보다 먼저 죽는다면 당신은 얼마나 비통해할 것이며, 당신의 손자가 당신의 자식보다 먼저 죽으면 당신의 자식은 얼마나 비통할 것 같소. 당신의 가문이 대대손손 내가 쓴 대로 순리를 맞이한다면 가문에 그보다 더없는 번영이 어디 있겠소?" 라고 답하자 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과 그를 나타내는 전승은 서양권에도 존재한다. 헤로도토스는 "평화로울 때는 자식이 부모를 땅에 묻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는다. (ἐν μὲν γὰρ τῇ οἱ παῖδες τοὺς πατέρας θάπτουσι, ἐν δὲ τῷ οἱ πατέρες τοὺς παῖδας.)" 라는 말을 남겼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6단어 소설 루머로 알려진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라는 글귀는 짧은 단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나타냈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자녀가 너무 어린 나이에 사망할 경우에는 참척에서 반쯤 제외시키기도 한다. 어느 정도 자란 상황에서 사망해야 참척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 맘이 그렇듯 걸음마 또는 말도 못 떼고 죽은 자식이라고 해도 가슴에 묻힌 자식이 쉽게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도 출생신고도 못하고 요절한 자식들의 기일과 생일을 반 세기가 넘게 지나도록 챙기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냉혹한 약육강식이 원칙인 세계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데 갓 태어난 새끼들이 맹수들(사자, 호랑이 등등)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어미 얼룩말 뱃속에서 갓 태어난 새끼 얼룩말이 엄마 젖을 맛보기도 전에 사자에게 물려가서 잡아먹힌 예도 있으며 일부다처제를 하는 동물들(사자, 원숭이, 물개 등등)은 여러 아내 무리에서 새 남편이 옛 남편을 쓰러뜨리면 새 남편은 옛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그렇지 않더라도 동물 세계에선 종을 불문하고 새끼 때 생존율이 낮아서 참척이 일어나는 비율이 인간보다 낮지 않다.
참척의 대명사로 알려진 생물로는 개복치가 있는데 3억 마리를 낳지만 성체는 잘해야 5마리 이내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사실이 아니고 와전된 것이다. 어쨌든 드물기는 하지만 참척을 겪은 부모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급사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2. 潛着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골똘하게 집중한다는 뜻의 말이다.[1]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 슬픔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2] 孔子旣沒,子夏居西河敎授,爲魏文侯師。其子死,哭之失明.[3] 일례로 일본에 가 있던 영친왕이 이방자 여사 및 갓난 아들과 함께 형인 순종을 만나러 왔을 때 아직 생후 8개월에 불과하던 아들이 병으로 사망하였다. 본래대로라면 장례를 치르지 않지만 순종은 동생 부부를 배려하여 장례식을 치르게 해 주었다.[4] 의로운 일을 하다가 참척을 안겨준 경우 의사상자 심사 대상일 수 있으므로,임시 묘지라도 만들어 두는 것이 낫다. 단, 화장까지는 미리 해 놓아도 상관은 없는데 현충원 안장이 확정될 경우 무조건 화장을 한 뒤 현충원에 안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망 당시 8세였던 변지찬 군이 의사자로 지정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제대로 된 묘지를 만들었으며 그곳에 잠들어 있다.[5] 조선 건국 이전부터 최고 군벌 집안이었던 이방원도 양녕대군 위로 3명의 자식을 잃었고 왕이 된 이후에도 자식 몇을 일찍 잃었다. 당시로선 최고의 의료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고위층조차도 어린 자식이 죽는 것이 흔했다.[6] 특히 어머니가 아들(주로 장남, 차남)을 먼저 떠나보낼 때가 많다. 대부분 암 같은 중병 아니면 자식이 평소 건강 관리를 잘못해서 노화 속도가 부모에 비해 빨라 노환으로 죽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등 사고사는 일반적으로 나이에 상관 없이 악상으로 본다. 물론 사고사한 사람이 젊은 나이라면 훨씬 더 악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7] 물론 사망률 자체는 부모 쪽이 훨씬 더 높은 것은 맞다.[8] 2024년 기준 부모가 100살이면 자식 중 첫째는 평균 80살, 적어도 70살 정도의 노인인 경우가 보통이다.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였던 과거는 더 심해서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90세로 장수했다 보니 생전에 50살을 넘긴 둘째, 넷째, 여섯째를 먼저 보냈다. 일본의 다카히토 친왕도 생전에 딸 둘,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 중 아들들이 아버지보다 일찍 세상을 떴다.[9] 축구 황제 펠레가 이런 경우로 어머니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망하였다. 본인은 82세, 어머니는 100세. 미국의 정치인 존 매케인은 82세 생일을 단 나흘 앞두고 사망했는데 어머니는 106세였다. 대한민국에서는 LG그룹 구자경, 구본무 부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들인 구본무 회장은 2018년 5월 숙환으로 73세에 사망했는데 아버지 구자경 회장은 아들이 사망한 지 1년 뒤인 2019년 12월에 사망했지만 아들이 사망했을 때 93세로 생존해 있었다.[10] 어릴수록 부모가 생존해 있을 확률이 높으며 고인이 30대 이하인 경우 조부모도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다.[11] 장례식장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처절한 모습을 볼 수 있다.[12] 부모 혹은 다른 유가족이 연신 통곡을 하다 지치거나 아예 실신한 바람에, 곡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 안타까운 경우다.[13] 조 바이든은 맏아들 보 바이든의 참척을 겪은 후 충격이 너무 커 2016년 대선도 포기했을 정도다.[14] 대표적으로 탤런트 이광기로 2009년에 아들을 보낸 후 2012년에 다시 얻었다. 그 외에도 씨랜드 사고의 부모들이 자식을 잃고 늦둥이 동생을 본 가정이 많다. 드라마 이방원에도 내리 세 아들을 잃은 뒤 세 아들을 얻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찾았다.고 표현한 장면이 있다.[15] 유산되었거나 낙태로 인해 빛도 보지 못한 채 죽은 태아들도 포함된다. 불교에서는 태아령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