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Ἀχιλλεύς / Achil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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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양대 주인공 중 한 명이다.[1]2. 생애
본래 바다의 여신이자 50명의 네레이데스 중 한 명이었던 네레이드 테티스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으로부터 구애를 받던 몸이었으나, 프로메테우스가 예언하기를"테티스가 낳은 자식은 무조건 아버지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
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테티스를 포기했다. 그리고 너무 강력한 놈이 태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자식이 더 위대해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 놈'인 펠레우스를 골라서 중매했다. 하지만 펠레우스도 평범한 혈통은 아니었고[2], 제우스의 손자라 아킬레우스는 제우스의 증손자로 태어나게 되었다.아무튼,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나자 테티스는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가 무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물에 담글 때 발 뒤꿈치를 잡고 강에 담갔기 때문에 발뒤꿈치가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3]
이 부분에 대해서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테티스는 자신이 불멸의 신이기 때문에 위대해도, 어디까지나 필멸의 인간인 펠레우스를 남편으로 둔 것에 불만이 컸고, 그래서 자식을 낳을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필멸의 요소'를 없애기 위해 불 또는 물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식들이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 죽었다는 것. 테티스는 자식 여섯 명을 그런 식으로 죽이고, 일곱째로 낳은 아들 리귀론[4]도 마찬가지로 불에 집어 넣었는데,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자꾸 죽는 것을 의심하여 산실을 엿보던 아버지 펠레우스가 뛰어들어 끄집어내는 바람에 리귀론은 살아남았다.[5] 이때 발꿈치가 탔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가스 중 가장 발이 빠른 다뮈소스의 유골에서 발뒤꿈치를 파내 붙였다고 한다.[6] 테티스는 이 일로 펠레우스에게 정이 떨어져 바다로 돌아간다. 펠레우스는 아들의 이름 리귀론을 아킬레우스로 고치고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맡겨 길렀다.
다만 아킬레우스가 불사신이란 이야기는 기원후 1세기 로마의 시인인 스타티우스(Publius Papinius Statius)가 쓴 미완의 서사시 《아킬레이아드》에서 처음 나온 얘기이고, 기원후 1세기 전의 문학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무적의 몸이라는 묘사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맞지만.
그래서 호메로스 세계관인《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도 필멸자라 칼로 쑤시면 들어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아킬레우스 본인도 좀 겁먹는 묘사가 꽤 나온다. 아킬레우스가 갑옷을 항상 입고 다녔고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도 갑옷이 필요하다고 난감해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 [7]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썼던 무장에는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 창, 발리오스와 크산토스라는 두 불사의 말이 끄는 전차, 신이 만든 갑옷과 후에 신이 만든 갑옷을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탈취당한 후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만들어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이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아기 때 헤라에게 버림받은 후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길러주었다. 이 인연과 은혜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언급이 《일리아스》에 나온다. 또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걸작이라고 한다.
이 중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 창은 케이론이 아버지인 펠레우스의 결혼 선물로 준 것으로 펠레우스와 아킬레우스 외에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그리스군 내에서 쓸 수 있는 자가 없었고, 불사의 말인 발리오스와 크산토스는 하피 포다르게(Ποδαργη)[8]의 말이라고 불리는 최고의 명마이며, 신이 만든 갑옷 또한 최고의 갑옷으로 둘 다 신들이 펠레우스에게 준 결혼 선물이었다. 또한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만들어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도 말할 필요가 없는 명품이라 하겠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불사신이 아니라, 발이 빠른 영웅이었다고 한다. 발뒤꿈치에 이리스의 자매 아르케의 날개 혹은 제일 빠른 기가스 다미소스의 뼈를 박아넣었기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것으로 여기서의 발뒤꿈치는 그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다. 유명한 <제논의 패러독스>에서 아킬레우스가 발이 빠른 사람의 대표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리아스》에서도 준족 아킬레우스라는 존칭으로 종종 불린다.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직접 활로 쏘아 죽였거나 혹은 화살이 아킬레우스에게 날아가도록 유도했다는 것도 이쪽 계통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아킬레우스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우선 발뒤꿈치를 쏴서 기동력을 빼앗은 후에 가슴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사실 발뒤꿈치가 약점이라는 건 맞으면 상처입는다는 얘기지, 거기에 화살을 맞았다고 죽는 건 아니기 때문에, 준족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전승에선 발뒤꿈치에 맞은 화살이 독화살이다. 아폴론이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관여한 이유는 트로이 원정 길에 아킬레우스가 아폴론을 섬기는 테네도스 섬에 들렀다가 섬의 왕 테네스의 여동생 헤미테아를 겁탈하려 하자 이를 막던 테네스(아폴론의 아들이란 설이 있다.)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헤미테아는 도망치다가 갈라진 땅 속으로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아폴론과 헤카베의 아들이란 전승이 있는 트로일로스도 아킬레우스가 죽였으니, 아폴론 입장에서는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의 숭배지가 모욕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둘이나 잃은 셈이다.
《일리아스》에서 달리기와 관련된 묘사를 한 부분을 보면 흐르는 강물보다도 더 빠르다고 묘사된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과 싸울 때 트로이군을 크산토스 강까지 몰아붙여 그리스 무쌍을 펼치는데, 강의 신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하신의 자손이니 살려달라는 자를 죽이고 "하신이 뭐 어쨌다고!" 하며 주제도 모르고 큰소리를 쳤다. 이에 크산토스, 스카만드로스, 시모에이스 세 강의 하신들이 강물로 그를 쓸어버려서 죽이려했고, 아킬레우스는 허우적대다 체력이 바닥나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헤라가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세 강물을 불로 증발시키고 하신들을 협박하자 세 강의 하신들이 물러가 위기를 모면했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해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는 예언이 있었다. 즉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업적을 올리면 죽고, 아무것도 안 하고 무명으로 살면 장수하는, 영광과 업적에 집착하며 죽고 사는 고대 그리스인의 시점으론 미치고 환장할 상황이었다.
호메로스 이후의 전승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테티스는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여장을 시켜서 스키로스의 리코메데스 왕[9]의 딸들 사이에 숨겼다. 이때는 '퓌라', 혹은 '케르퀴세라', '아이사'란 가명을 썼다고 한다. 여장이 먹힐 정도의 미소년인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는데 막상 《일리아스》에서의 묘사는 누가 봐도 그리스에서 제일 위풍당당한 전사로 그려진다.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에서 시도때도 없이 하는 게 변신이니 신의 능력을 썼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호메로스가 쓴 아킬레우스가 후대 작가들이 쓴 아킬레우스와 설정이 달랐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사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도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본 남자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외모가 뛰어난 미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10] # 소포클레스의 표현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용사 중 가장 아름다웠던 자(아킬레우스)의 아름다운 아들".#이라고 네오프톨레모스를 칭하고 있으니 아킬레우스가 여장이 어울릴 정도로 굉장한 미청년이라고 봐도 딱히 무리는 없다. 위풍당당한 전사와 미남이라는 부분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하고 말이다.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여장이 들통난 아킬레우스 그런 아킬레우스를 데리고 가려는 오디세우스 |
"아킬레우스가 없으면 이길 수 없다"
라는 신탁을 받고, 방물장수인 척하며 스키로스에 찾아와서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에 무기를 섞어 내놓았다. 다들 장신구 같은 걸 집는데 아킬레우스 혼자 무기를 집었다가 딱 들통났고, 그대로 오디세우스에게 여장이 발각되면서 군대로 가게 되었다. 사실 모양새는 아킬레우스가 전쟁터로 끌려간 듯한 모양새지만,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달리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었기에 굳이 참전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가장 먼저 트로이 땅에 발을 딛은 자는 죽는다"
라는 전승도 씹고 냅다 상륙하려다 어머니 테티스한테 제지당할 정도로 호전적인 아킬레우스가 굳이 도피했다가 끌려갔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아킬레우스 본인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 있었거나 어머니 때문에 붙들려 있었는데, 오디세우스가 오자 냅다 참전해버렸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11] 참고로 이때 아킬레우스의 나이가 15세였고, 리코메데스 왕의 장녀 데이다메이아를 강간해서(그냥 눈맞았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이미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있는 상태였다.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12]》에서는 자신과의 결혼을 빌미로[13] 이피게니아(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려는 아가멤논에게 분노해서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지 못하도록 지키고, 마지막에 스스로 제물이 되려는 이피게니아에게 만약 중요한 순간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자신에게 달려오면 그리스군과 싸워서라도 지켜주겠다는 나름 개념찬 모습을 보인다. 그 전에 이피게니아를 희생시키지 말자고 그리스인들에게 말했다가 오디세우스에게 선동된 병사들에게 돌 맞아 죽을 뻔도 했다.
2.1. 《일리아스》
2.1.1. 아가멤논과의 불화
트로이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온 트로이 여성 브리세이스[14]를 사이에 둔 아가멤논과의 마찰이 유명하다.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동맹국을 공격해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라는 두 미녀를 포로로 잡아와 여종으로 삼았는데, 브리세이스는 자신이 갖고 크리세이스는 아가멤논에게 선물했다. 본래 두 남자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아킬레우스가 크리세이스를 선물한 일로 다소 훈훈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크리세이스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이었다. 크리세스는 많은 몸값을 준비해서 아가멤논을 찾아가 딸을 돌려주십사 간청했다. 그런데 아가멤논은 되려 크리세스를 모욕해서 쫓아냈고, 원통해진 크리세스는 자신이 모시는 아폴론에게 그리스군에 저주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렇잖아도 아폴론 또한 그리스군을 탐탁찮게 여기던 참이었는데, 자신의 사제까지 이런 모욕을 당하자 크게 진노해서 그리스군에 전염병을 퍼뜨렸다.
그리스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신탁을 받았는데 바로 크리세이스와 더불어 소와 양을 합쳐 100마리를 지불해야 아폴론이 분노를 거둔다는 신탁이었다. 당장이 급한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지불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가 자신에게 브리세이스가 아닌 크리세이스를 준 것을 탓하면서 브리세이스를 자신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가뜩이나 아가멤논은 거만한 아킬레우스를 아니꼽게 여겼고, 아킬레우스는 사령관이랍시고 전장에 참전은 제일 안 하면서 전리품만 제일 많이 챙기는 아가멤논을 비웃으며 사이가 나쁘던 차였다. 그러던 이들이었으니 이 사건으로 제대로 충돌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분노했지만, 당장 전염병을 몰아내는 게 급한 다른 장수들은 아가멤논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브리세이스는 아가멤논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아킬레우스는 화를 내며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어머니인 테티스를 찾아가 자기를 무시한 그리스군이 패배하게 만들어 달라고 제우스에게 부탁해달라 요청했다. 아킬레우스를 아끼던 테티스는 자식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제우스에게 찾아갔고, 제우스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모르페우스와 이리스를 시켜 전쟁에 간섭하게 했다. 이 부분이 《일리아스》의 서막에 해당한다.
두 영웅의 자존심 다툼 속에서 그리스군이 불리하게 되자 아가멤논이 먼저 양보를 했다. 평소 아킬레우스와 사이가 원만하던 아이아스, 포이닉스, 오디세우스 세 장수가 아가멤논의 사과와 보상을 전했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제시한 보상은
브리세이스를 돌려주는 건 당연하며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맹세, 지금까지 차지한 수많은 금은보화와 수많은 미녀, 트로이를 함락해 얻는 전리품의 절반,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딸과의 결혼, 자신 소유의 그리스의 도시 7개
로 어마어마한 조건이었다.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보물이나 여성은 자신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자기도 아까운 목숨인데 아가멤논을 위해 바치기 싫다는 식으로 반발한다. Adam Nicolson의 《Mighty Dead》에 나온 해석에 따르면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의 진의를 꿰뚫어보았다고 한다. 아가멤논이 저 조건으로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라고 할 때 덧붙인 말이
아킬레우스가 자신에게 굴복하게 만들라
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더 왕다운 인간이니까. 오디세우스는 당연히 그걸 이야기하면 반발할 게 분명하므로, 그 부분만 빼고 얘기해서 아가멤논이 싹싹 비는 듯한 인상으로 만들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런 아가멤논의 속셈을 간파하고 거절했다는 것이다.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의 친구인 포이닉스가 과거에 아킬레우스처럼 분노에 사로잡혔던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설득하려 했다. 요는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은 접어두고 일단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잔 소리였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도리어 포이닉스는 자신과 아버지의 친구이니 아가멤논이 아니라 자신을 따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해 오히려 포이닉스가 의도치 않게 아킬레우스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어버린다. 사과하러 온 사절들을 일단 옳은 말만으로 설득했으며, 아킬레우스도 내심 맞는 말이라 생각해 이들에게 제대로 반박하기 보단 억지를 부리거나 머뭇거리면서 말을 피했다. 심지어 아이아스가 설득에 나섰을 땐 그의 말이 다 옳다고 인정했지만 그래도 아가멤논을 도우러 간다곤 안 했다. 그걸 지켜보던 파트로클로스가 나서서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에 이르지만 결국 먹히지 않았다.
2.1.2.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그리스측이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불리해지면서 배들이 정박된 해안까지 밀리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파트로클로스를 보내 자신과 친한 장수들이 다쳤나 보고 오라고 했는데, 그런 파트로클로스의 사정을 들은 네스토르가지금 온 연합군이 죽어나가고 있다
며 파트로클로스에게 호소했지만, 파트로클로스도 지금의 아킬레우스는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급박해진 그리스 측은 적어도 아킬레우스의 맹우인 파트로클로스라도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아킬레우스인 척을 해주면 트로이군이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아킬레우스 측에 제안했다.여전히 아킬레우스는 비관적이었으나 파트로클로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라도 나서겠다면서 아킬레우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아킬레우스는 마지못해 자신의 무장과 병력 전부를 파트로클로스에게 양도함으로써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행으로 트로이 전쟁에 복귀했다. 트로이군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런 위장 작전은 금방 들통났지만, 파트로클로스도 상당한 실력자[15]인 데다가 아킬레우스의 정예군까지 합쳐져 위장 작전이 들통나든 말든 트로이군을 몰아붙이며 다시 전황을 비슷한 수준까지 돌려놨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파트로클로스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성벽 근처에 갈 생각은 꿈에도 말아라"
라는 아킬레우스의 충고를 까먹고 성벽 근처까지 가서 적들을 상대하다가 헥토르를 이기지 못하고 전사했다.[16]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매우 슬퍼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자신이 직접 찾아가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해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최상급 무구들을 갖춰서[17] 트로이 전쟁에 복귀했다. 자신의 뮈르미돈 부대와 함께 파트로클로스 전사 이후 사기가 오른 트로이군을 다시 성안으로 몰아넣는데, 잔뜩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이때 안면이 있던 트로이 군인들이 애원할 때도 상관하지 않고 전부 도륙했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복귀 전까지 파트로클로스 빼고
"내가 아는 사람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차라리 잘됐다. 그리스든 트로이든 서로 싸우다가 다 죽어라"
같은 소리나 하던 인물이었다.2.1.3. 헥토르와의 결투
성문까지 진격했던 아킬레우스가 아폴론의 꾀에 빠지는 바람에[18] 트로이 군대는 성 안으로 전부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헥토르는 성문에서 단신으로 아킬레우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아킬레우스가 나타나자 헥토르는 (자기를 살리려고 아폴론이 불어넣어 준) 공포를 느끼고 도망쳤다. 이에 데이포보스로 변신한 아테나가 나타나 도와주겠다며 용기를 줬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맞섰다. 싸우기 전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승자가 누구든 상대를 존중해 시신을 보내주자고 제안했지만 아킬레우스는 무시하고 헥토르에게 창을 던졌다. 헥토르는 재빠르게 아킬레우스의 투창을 피하며"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가 내 등을 찌르는 일은 없다!"
라고 외쳤다. 즉, 자신이 죽더라도 끝까지 도망은 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빗나간 창을 헥토르 몰래,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헥토르가 창을 던지지만 그의 투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뚫지 못한 것을 분해하며, 데이포보스에게 다음 투창을 달라고 하나 데이포보스로 변신했던 아테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19] 헥토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검을 뽑았다. 검을 든 헥토르와 창을 든 아킬레우스가 서로에게 돌진해 맞붙었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입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그의 몸에 맞지 않아 생긴 틈의 목을 창으로 꿰뚫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창이 기도 옆을 비껴나간 덕에 말을 할 수 있었던 헥토르는 유언으로 자신의 시체만은 모욕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모욕하며 거부했다.[20] 이에 헥토르는 이렇게 대답하고 숨을 거둔다.[21]그래, 나 이제 너를 알겠고, 무슨 일이 닥칠지 보이는구나.
너를 설득할 순 없는 일이었다. 네 횡경막에 도사린 기백은 진정 무쇠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나 네 아무리 대단하기로서니, 파리스가, 그리고
포이보스 아폴론께서 스카이아이 문에서 너를 죽이게 될 바로 그날, 널 향해
신들이 품은 분노의 탓이 내가 되지 않도록, 이제 헤아려보아라.
일리아스 22.356-360, 이준석 역
너를 설득할 순 없는 일이었다. 네 횡경막에 도사린 기백은 진정 무쇠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나 네 아무리 대단하기로서니, 파리스가, 그리고
포이보스 아폴론께서 스카이아이 문에서 너를 죽이게 될 바로 그날, 널 향해
신들이 품은 분노의 탓이 내가 되지 않도록, 이제 헤아려보아라.
일리아스 22.356-360, 이준석 역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가 입고 있었던 자신의 원래 갑옷을 벗겨 전차에 실은 뒤 분풀이로 그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트로이 성을 돌며 파트로클로스의 원한을 풀었다. 이 때 트로이를 지원해 준 아폴론이 폭발했다.[22] 그 결과 어머니 테티스가 또 제우스한테 불려갔다.
그 후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시종 한 명만 대동한 채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킬레우스를 만나러 왔다. 프리아모스는 많은 몸값을 가지고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받으러 와서 애원했지만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죽인 원수의 시체를 내줄 수 없다며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경비를 부르고 목을 치려고 한 아킬레우스였지만 프리아모스 왕으로부터 자식 잃은 아버지의 큰 슬픔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헥토르를 죽여서 큰 전공을 올렸으니 예언 속 사망 플래그 조건을 달성한 사실, 자신의 아버지도 자기를 잃고 자식 잃은 슬픔에 평생을 괴로워할 것.을 떠올리고 통곡한다.[23]
결국 아킬레우스는 호랑이 같은 증오의 눈빛을 거두고, 프리아모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제우스의 뜻이라 여기며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주기로 한다. 더불어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수 있도록 12일간의 휴전을 보장하며, 음식까지 대접했고 푹 쉬도록 배려해줬다.
- [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의 묘사 펼치기 · 접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는 《일리아스》와는 다르게 묘사됐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의 전투에서 오히려 아킬레우스의 검을 못 쓰게 만들고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싸우자고 말할 정도의 여유까지 보였다. 아킬레우스가 물러난 후, 헥토르는 화려한 갑옷 차림의 그리스 장수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쓰러뜨렸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기습하기 위해 부하들을 불러들이고 헥토르에게 향했다. 마침 헥토르는 노획한 갑옷을 입기 위해 무장을 해제한 무방비 상태에다 혼자였다. 아킬레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헥토르를 죽이고 자신이 헥토르를 쓰러뜨렸다고 외친다.
전체적으로 아킬레우스가 굉장히 비열하게 묘사된 작품으로, 결투에서 헥토르를 압도하지도 못해 부하들과 함께 기습을 해서 죽이고, 이를 자신만의 공로로 돌리는 불명예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2. 《아이디오피스》
이후 트로이를 도우러 온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숨을 빼앗았는데, 죽이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죽은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가져갔다고만 하기도 하고, 말에서 내려 입을 맞췄단 이야기도 있고, 시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그 밖에도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며, 에티오피아의 왕인 멤논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이렇게 아킬레우스의 포스는 엄청나게 강력했다. 그런데 왜 이 정도 전력으로도 10년씩이나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브리세이스 건을 보면 알 수 있듯 10년간 트로이 공성전만 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를 거치고 이 성 저 성을 무너뜨려가며 트로이에 당도한 것이었다.[24]
남들 몰래 헥토르의 장례식에 참여한 아킬레우스는 우연히 한 여자를 보게 되는데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였다. 첫눈에 폴릭세네의 아름다움에 빠진 아킬레우스는 그녀를 잊지 못하다가 정찰하던 중 성밖에 있는 헥토르의 무덤에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빠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폴릭세네를 만나게 된다. 폴릭세네는 상대가 아킬레우스인 것을 알고 사랑하는 오빠 헥토르와 트로일로스를 죽인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단 아킬레우스와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트로이 근처의 도시 팀블레(timble)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신들 앞에서의 맹세를 약속해달라 부탁했고 아킬레우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파리스는 이를 폴릭세네로부터 듣고 신전에 먼저 가서 몰래 숨어 있다가 형의 원수인 아킬레우스의 목숨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무적인 아킬레우스를 죽일 방법이 없었기에 아폴론에게 기도를 드려 신탁을 받았는데 내려온 신탁은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독화살로 쏘라는 말이었다.
수상하니 가지 말라던 대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말을 무시하고 폴릭세네를 만나러 간 아킬레우스는 팀블레의 아폴론 신전에서 파리스의 독화살을 맞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25]
위처럼 긴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히 전쟁 중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이 발뒤꿈치에 맞아 사망했다는 전승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투가 끝난 후 아킬레우스가 성벽을 돌고 있었는데 아폴론의 인도를 받은 파리스의 화살이 그의 목숨을 잃게 했다고도 전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파리스가 죽인 것이 아니라 파리스로 위장한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죽였다고도 하고, 파리스의 화살에 맞은 후 데이포보스에게 확인 사살을 당했다고도 하고, 폴릭세네가 아킬레우스를 사랑하게 되어서 매우 슬퍼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폴릭세네를 만나고 있는 아킬레우스의 발꿈치에 파리스가 독화살을 쏴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후 수습된 시신은 친구 파트로클로스와 같은 무덤에 합장되었으며,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테티스의 바람에 따라 오디세우스에게 보관되었다가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에게 계승되었다.
2.3. 사후 전승
《오디세이아》에도 출연했다. 여기선 저승에서 꽤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잠시 명계로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죽어서 왕이 되느니 노예로 살아도 이승이 낫다.
며 슬퍼했다. 그래도 오디세우스가 "너의 아들이 트로이 함락에 단단히 한몫했다"
라고 하자[26]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아직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지 않은 시점에 오디세우스가 방문한 듯.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등장하기 전 장면에서는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욕하자[27] 함께 동감한다. 참고로 위에서 오디세우스에게 칭찬을 받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귀환 후에 약혼녀 헤르미오네보다 안드로마케를 정실처럼 대우하여 분노한 헤르미오네의 간청을 들은 사촌 오빠 오레스테스[28]에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이게 또 전승에 따라 다르다. 비극에서는 이렇게 되지만 안드로마케를 헥토르의 동생 헬레노스에게 넘겨준 거 외에 별 얘기 없는 전승도 있고 살아남는 전승도 있다. 앞에 주석에서 8~12명의 자식을 얻은 전승도 이쪽이다.《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행복으로 가득 찬 낙원이자 천국 엘리시온에 입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똑같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딸 마카리아의 선처 하에 엘리시온에 들어간 신화 최고의 미녀 마술사이자 아르고 호 원정대에 합류한 여성 영웅 메데이아와 결혼을 하여 부부 관계를 맺는다.
3. 인간 관계
3.1. 파트로클로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그리스/동성애 문서 참고하십시오.부장인 파트로클로스와는 후대인이 보면 마치 동성애 관계처럼 보이기에 현대에도 BL로 유명하고[29][30], 고전기에도 두 사람이 애인 사이인 거냐 아니면 그냥 친구 사이인 거냐는 의문은 큰 떡밥이었다. 또한 두 사람의 역할이 어린 소년(에르메노스)과 성인 남성(에라스테스) 중 어느것이냐도 큰 떡밥이었다. 플라톤은 아킬레우스가 미소년이며, 파트로클로스보다 어리니까 에르메노스라고 주장했고, 아이스퀼로스는 성격과 능력을 볼 때 파트로클로스가 에르메노스라고 주장했다.[31] 그러나 분명히 말하자면, 호메로스는 둘을 연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명시는 커녕 암시조차 한 적이 없다. 고전기 아테네인들은 호메로스가 이들을 연인이라 암시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32]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일 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고전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유행했고, 동성애 문화에 익숙했던 그리스인들이 훨씬 더 오래된 옛 서사시에 자신들의 관념을 투영해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두 남자의 각별한 우정을 두고 호사가들은 동성애 관계였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호메로스 안에서는 그런 암시조차 없다. 반대로 서로 다른 여인들과 잠자리에 드는 장면은 보인다.(9.664-668)
일리아스, 이준석[33] 번역, 아카넷, 2023, p.805
일리아스, 이준석[33] 번역, 아카넷, 2023, p.805
실제로 고대에도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기원전 200년 경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쿠스'는 호메로스는 둘을 연인으로 묘사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며 주류 의견을 뒤집으려 시도했다. 다만 일리아드 중 '우리 둘만'이라는 구절이 연인 관계를 암시한다는 내용에는 동의했는데, 이 구절이 호메로스 본인이 쓴게 아니라 후대에 편집되어 넣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고대 그리스 고전기, 그리고 헬레니즘 제국, 고대 로마 시대까지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는 연인 관계로 설명되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시아 원정을 위해 트로이를 통과할 때 헤파이스티온을 이끌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공동무덤을 참배했는데,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이 명확한 연인 관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대 사람들은 둘을 이미 연인 관계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파트로클로스의 역할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킬레우스의 '시종'으로 번역되는데, 우리말 그대로 노비나 방자 같은 느낌이 아니고 귀족 젊은이가 집안 사정상 다른 귀족 젊은이에게 딸려간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쨌든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는 어려서부터 같이 놀고 공부도 같이 하면서 자랐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운명이라고 한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대하는 것을 보면 직업적인 시종 일을 조금 시키긴 하는데, 현대로 따지자면 친구이자 비서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놈들이랑 그리스 애들이랑 다 죽고 우리 둘만 살아남았으면"
라고 말하거나, 다른 장군들이 "아킬레우스는 모든 아카이아인을 합친 것만큼이나 파트로클로스를 소중히 여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전투에 참여하는 것도 거부할 정도로 브리세이스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는데, 이후 파트로클로스가 죽게 되자 브리세이스 따위 죽는 편이 나았다
며 그녀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마저 거두며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단행하고자 했다.안하무인적인 면이 있는 아킬레우스였지만 유독 파트로클로스에게만은 약한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오디세우스 등의 동료들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안 도와준다고 거절하다가 파트로클로스가 울면서 부탁하니 자신의 갑옷을 내준다. 앞서 언급되었듯 그리스 전사들에게 갑옷은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라 명예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갑옷을 빌려주는 건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화장하여 재가 되어버린 그의 유골을 항아리에 담으면서, 훗날 자신이 죽으면 똑같이 화장해서 파트로클로스의 재와 섞어 매장하라는 유언까지 남겼다.[34] 어찌 됐든 파트로클로스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몇몇 사람들은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의 애동으로 착각하는데, 파트로클로스는 가계도상 아킬레우스보다 연상이다. 고대 도자기 그림을 보면 아킬레우스는 수염이 없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수염이 있다. 영화 <트로이>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검열할 작정으로 이런 오류를 저질렀으며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가르침을 받는 어린 친척 동생으로 등장했다.
3.2. 그 외
처음에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아가멤논이 아낀 애첩 크리세이스도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으로 잡아온 것을 선물로 바친 것이였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이 아폴론의 저주를 받자 어쩔 수 없이 크리세이스를 그녀의 아버지 크리세스에게 돌려보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살짝 정신이 나가서 아킬레우스의 애첩 브리세이스를 빼앗아버린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분노했고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결국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 테티스한테 그리스군이 지게 해달라고 빌기까지 해서 그리스 군은 헥토르에게 도륙당했다. 그제서야 아가멤논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은 브리세이스를 건드리지 않았다며, 신에게 맹세까지 하고, 적극적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예상보다 더 찌질했기에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기 전까지 둘의 마찰은 계속됐다. 결국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를 한다.
헥토르의 장례식에서 보고 첫눈에 반한 트로이의 공주. 그녀와 결혼까지 약속할 정도였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원수를 갚으러 온 파리스에게 죽었고, 폴릭세네는 아킬레우스의 사후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에 의해 아킬레우스의 산제물로 바쳐졌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동맹 도시 리르네소스를 약탈하면서 잡아 온 애첩으로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굉장히 아꼈으며,[35] 브리세이스도 남편 미네스가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음에도 그가 다른 그리스 장수들보다 자신을 잘 대해줬다고 말한다. 아가멤논이 본인의 애첩 크리세이스를 잃고 억지로 브리세이스를 빼앗자, 대노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손을 떼고 그리스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결국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고 그의 복수를 위해 아킬레우스가 다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용서를 빈 아가멤논에 의해, 막대한 선물과 브리세이스를 돌려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에 머리 끝까지 열받은 나머지 '브리세이스 따위는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스키로스에서 여장을 하고 숨어 있었던 아킬레우스를 전쟁으로 끌어들인 장본인. 아킬레우스의 절친 중 한 명이며 전쟁 전부터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를 존경했었다.
프리아모스 왕 본인은 물론, 트로이 왕가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들을 학살했으며 거의 50명을 죽였다고 한다.[36] 아킬레우스의 아들 필로스(네오프톨레모스)는 프리아모스 왕과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죽이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첩으로 삼았으며, 헥토르의 동생 헬레노스를 노예로 삼았다.[37] 거기다 트로이에서 돌아가려고 할 때 헥토르의 여동생 폴릭세네를 산 제물로 바치라고 유령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38]
헥토르 사후 트로이를 도우러 온 아마존의 여왕. 아킬레우스의 투창에 맞아 절명하는데, 죽어가는 펜테실레이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아킬레우스가 첫눈에 반했다. 상심한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 병사 테르시테스는 그를 시체와 사랑에 빠졌다며 조롱했을 뿐더러 심지어 펜테실레이아의 시체에서 안구를 파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테르시테스를 때려 죽이게 된다.[39]
3.3. 가계도
부모는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아들은 네오프톨레모스.
며느리는 전승에 따라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 헤르미오네나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
손자는 암피알로스,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 헤르미오네의 피를 이은 자식은 한 명도 없다.
아킬레우스의 피를 이은 것은 헤르미오네가 아니라 안드로마케였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죽이고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 던져 죽인 후, 아름다운 안드로마케를 전리품으로 삼아 에피루스로 데려가서는 첩으로 삼았다. 결국 헤르미오네는 찬밥 신세가 되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고, 안드로마케는 아들 몰로소스를 낳았다. 결국 궁정내에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고,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까지 연관되면서 아킬레우스의 대가 끊길 뻔했지만, 펠레우스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델포이에서 헤르미오네의 사촌오빠인 오레스테스에게 암살당했다.
후손도 굉장히 걸출한데, 아킬레우스는 몰로소스의 계보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피엘로스의 계보에서 피로스 1세, 페르가모스의 계보에서 페르가몬의 조상이었다.
4. 평가
4.1. 인품
4.1.1. 긍정적 평가
고대 그리스 문명 안에서 아킬레우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 때문에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아킬레우스의 피를 이었다는 말이 있었던 올림피아스와 결혼해 자신을 아킬레우스의 계승자로 칭했으며,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또한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 1세도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혈통임을 자처했다. 또한 헬레니즘 문화가 전성기를 맞으며 극에 달하자, 에게 해, 흑해 등지엔 아킬레우스에게 바쳐진 섬과 항구가 너무나 많아졌고, 결국 아킬레우스를 모시는 신전과 사제수도 증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많은 그리스의 극작가들이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대표작으론 아이스퀼로스의 《아킬레스》 3부작(Achilles Trilogy), 소포클레스의 《아킬레스의 연인》(The Lovers of Achilles)이 있지만 일부만 전해진다.4.1.2. 부정적 평가
이런 아킬레우스 숭배 사상은 기원전 5세기 말부터 점점 사그라들다가, 로마 문명이 지중해를 잠식하면서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로마인들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이아스를 시조로 모시며, 트로이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았고, 무엇보다 아킬레우스의 숙적인 트로이의 왕세자 헥토르를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의 취급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었다.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는 아킬레우스를 폭력적인 야만인 도살자로 표현했으며, 시인 호라티우스는 나약한 여자와 어린 아이들조차 살려준 적 없는 살인마라 말했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킬레우스를 전사로서 표현하기 보다는 브리세이스나 폴릭세네 등 그가 지닌 수 많은 여성 편력을 배경으로 한 부정적인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로마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한 변호 연설에서 살인자와 그의 심부름을 한 심복을 아킬레우스와 그의 마부에 비유했는데, 당대 로마인들에게 아킬레우스가 어떤 이미지인지를 알 수 있다.4.1.3. 현대인의 관점에서
현대인의 관점에서 봐도 아킬레우스의 성격과 행적은 영웅의 이상향 같은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일단 전쟁이라는 중대사에 참전한 입장에서 총지휘관과 개인적인 불화 때문에 전우들의 죽음도 나 몰라라 하고 틀어박혀 있던 것이나,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 포함 온갖 포상을 제안하며[40] 숙이고 들어가도 "뭘 얼마나 주든 내 알 바 아니고, 난 아가멤논 그 작자가 싫다"라며 막무가내로 화해 시도를 파토내고 여기에 그리스 군의 영웅이란 작자가 어머니인 테티스에게 "나 없이는 절대로 그리스 군이 승리할 수 없도록 제우스께 말씀드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고자질까지 하는 모습은 영웅의 행적치고는 찌질하기 짝이 없다.파트로클로스가 죽은 이후에는 헥토르는 물론 트로이군 전체를 거의 갈아버릴 듯이 복수심에 불타는데, 이전에는 파트로클로스에게 "그리스군이고 트로이아군이고 다 죽어버리고 그냥 우리 둘만 남아서 고향 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투덜거리던 인간인지라 전쟁을 핑계로 분풀이나 하고 다니는 인간이라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물론, 아군 입장에서는 동기가 무엇이든 앞장서서 적들을 다 죽여주면 좋은 거지만 말이다. 당장 본인이 빈정상해 군대를 이탈한 동안 희생된 아군의 목숨, 자신의 무장으로 전장에 나간 파트로클로스에게 죽은 트로이아 청년들의 목숨이 몇인데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한 것만 온 세상의 잘못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분노를 달래기 위해 세객으로 왔던 아이아스, 포이닉스, 오디세우스가 아군의 병사들의 생명이나 주요 지휘관끼리 맺어온 10년간의 우정이나 서로간의 존경, 친구인 그들이 처해 있는 생명의 위기상황에 대해 논하면서 풀고 나오라고 말할 때 별다른 반박을 못하고 아무튼 아가멤논이 싫어서 안 된다는 투는 역시 찌질이 감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4.1.3.1. 옹호
그러나 아가멤논과의 불화에 대해서 아킬레우스도 변호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우선 찌질하기론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이나 피장파장이니 아킬레우스 탓만 할 것도 못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목숨 걸고 나설 이유가 없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인 파리스와 헬레네의 불륜은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서 헬레네를 두고 구혼자들이 몰려올 때 아킬레우스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구혼자일수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큰이모뻘이다.)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명에다, 헬레네가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하든 그녀에게 큰 일이 생기면 다같이 구하러 가자는 제안을 직접 하고서도 안 가려고 발악하던 오디세우스와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목숨 걸고'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이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면 그곳에서 전사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킬레우스가 참전하지 않으면 그리스는 트로이아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신탁도 있었단 것. 일신의 용맹도 있고 해서 그리스 장수들이 갖은 수로 모셔 온 장수가 바로 아킬레우스인 것이다.그러니 아킬레우스 입장에서는 정말 애먼 남의 집안 싸움에 어쩔 수 없이 목숨 걸고 도와주러 왔는데 취급이 이따위니 폭발할 만도 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싸움의 원인이 된 그리스군 진영의 돌림병의 화근도 아가멤논이었는데, 총지휘관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뺏어가는 짓을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현대인의 눈에야 온전한 인격체인 브리세이스를 '전리품' 취급하고 그 '전리품' 때문에 아가멤논과 불화하는 게 블쾌하게 보일지라도, 당대 전쟁에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전리품'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대가였다는 점을 전제하고 일리아스를 읽어야 한다. 현대전으로 치면 사령관이 에이스 파일럿의 봉급을 뺏으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인데, 여기서 아킬레우스가 화를 안 낼 리가 없다. 게다가 일리아스의 아카이아군은 특정한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사들의 사적인 은원관계로 얽힌 연합군일 뿐이다. 아킬레우스가 아카이아군을 저주했어도 매국노니 뭐니 하는 논리가 끼어들 건덕지도 없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아킬레우스는 안 가도 되는 전쟁에 억지로 참전했는대, 정당하고 합법적인 노동의 대가를 빼앗긴 것이다. 호메로스가 정말 잘 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표면적으로 총사령관이 아가멤논인 만큼 그의 명에 복종하고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다. 하지만 매우 강하게 가고 싶지 않았는데도 모셔온 객장이라는 위치와 아가멤논의 무능함과 졸렬함이 갈등구조를 강화하고 이야기의 생명력을 강화한다.
지휘 체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구수가 곧 국력인 고대 사회에서 아가멤논의 미케나이가 왕초 노릇을 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그리스군의 각 대표 장수들은 모두 각국의 왕이나 왕자로서, 등급의 차이가 없는 동등한 지배 계층이었다. 일례로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도 강대국인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문명권(아카이오이)'의 일원으로서 긴밀하게 묶여 있긴 했지만,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나 삼국지의 군벌들처럼 표면적으로나 복종해야 할 공동의 주군을 모시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웃나라들이었다. 아가멤논이 맹주이자 총사령관이긴 했어도 다른 장수들을 그의 '부하'라고 하기에는 미묘했다.[41] 철저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수행하는 군대 체계는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편제, 의사 전달, 직책, 전술 등이 자리잡혀야 가능한 것이다. 일리아스의 묘사를 보면 그냥 민족들끼리, 그러니까 왔던 때 그대로 뭉쳐서 야영을 하고 전투에 나갔다는 정도일 뿐이다. 개전 후 10년째 되는 시점에서도 이 상태니 편제나 명령 전달 체계는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드는 것은 당시의 군사적 특징이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비판이다. 달리 말하면 아가멤논은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아킬레우스급 인물을 자르거나 그에게 하대할 권한이 없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같은 연합군이었지만 서로 장교들끼리 으르렁대던 영국군과 미군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거기에 아킬레우스는 비록 왕은 아니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왕이었기에, 현대로 따지면 왕자 수준으로 아가멤논 등과 비교해 결코 꿇리지는 않는 위치이며, 그리스군의 핵심이라 불리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런데 아가멤논이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으니 폭발하는 게 당연한 것. 스포츠 팀으로 비유한다면 감독이 팀 내 최고 에이스를 박대한 격이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분량이 워낙 길어서 안 느껴지는 것이지만,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벌인 기간은 고작 3일이다.[42] 이것도 아킬레우스 개인이 그런 것이고, 사흘째 되는 날에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군을 이끌고 참전하니 실질적으로 그의 군사력까지 물러나 있던 기간은 이틀 남짓이다. 그러니까 아킬레우스의 파업이 두드러진 시간은 기껏해야 10년 중 2~3일이다.
4.1.4. 종합 평가
총평하여, 여러 신화, 특히 <일리아스>에서 보이는 아킬레우스의 성격이 다혈질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43] 좋게 말해서 긍지를 중시하고 감정에 솔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에 자기 자존심과 파트로클로스 빼곤 보이는 게 없는 성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아닌 게 아니라 일리아스의 첫 구절은 시인이 무사 여신에게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즉 <일리아스>라는 대서사시 자체가, 호메로스가 무사에게 "아킬레우스가 빡쳐서 날뛴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주문을 넣자 여신이 들려준 얘기인 것이다. 사실 이런 특징은 그리스 신화의 신과 영웅에게 보편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므로[44] 이를 아킬레우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우선 감안해야 할 것이 초기 그리스의 영웅적 인간형은 쉽게 말해서 '무심'의 인간형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생각과 언행이 완벽히 일치하기 때문에, 화가 나면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슬프면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이 당연했고, 이것은 삼국지연의 등의 동양적 영웅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유일하게 영웅이면서 속내를 감춘 이는 오디세우스로,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 '현대적'인 영웅상을 나타내고 있다.
분노의 화신 같은 존재로, '일리아스' 라는 대작 자체의 핵심 주제가“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라아스 등을 통해 서양 문학사에 수많은 영향을 남긴 호메로스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는데도 이 '분노' 라는 주제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일리아스> 에서 아킬레우스의 성격을 마냥 미화해서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오만, 고집불통, 철없음, 자기 과신, 매정함, 지나친 파트로클로스 편애 등은 이미 서사시 안에서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의 사절로 오디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가 찾아왔을 때, 그나마 오디세우스는 점잖게 충고를 했지만 아이아스는 "이렇게 시건방지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한테 부탁한답시고 찾아온 우리가 바보였다"라는 투로 거칠게 화를 낸다. 심지어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친우이자 연인인 파트로클로스에게도 "전우들이 저렇게 불타 죽어가고 있는데 토라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네가 정말 피 흐르는 사람새끼냐"라며 까인 적도 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 아킬레우스가 참전 의사를 밝히며 회의장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는데 다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난 원수 갚기 전에는 식사고 뭐고 집어치울 생각인데 다들 저랑 같이해 주시죠"라는 참으로 그다운 이야기를 꺼냈으나, 오디세우스에게 "매번 싸움에서 전우들이 죽는데 그때마다 슬프다고 단식을 하면 우리는 원수를 갚을 방법도 사라질 거요. 슬픔은 이해하지만 오늘 하루만으로 끝내고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다."라고 충고를 받기도 했다.[45] 출전한 다음에는 스카만드로스 하신(河神)의 경고도 무시하고 트로이아 병사들을 학살하다가 열받은 하신에게 죽을 뻔하기도 한다. 아무튼 아킬레우스는 서사시 안에서도 성격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 결점이 있는 영웅이다.[46] 네스토르나 오디세우스 등 비교적 신중한 인물들에게 그의 성급함과 감정적인 성미를 지적받기도 한다. <일리아스>가 그리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처음에는 아가멤논으로, 후반에는 헥토르와 트로이로 그 대상을 돌리며 점점 강성해진다. 아가멤논을 상대로는 옹졸한 소인배인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눈이 돌아버린 이후에는 광기 어린 복수의 화신처럼 트로이아군을 살육하며 날뛴다. 이때 아킬레우스에 대해서 쓰이는 직유의 상당수는 짐승에 대한 것이다.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능욕하는 장면에서는 도리를 벗어난 수준의 분노, 광기 어린 잔혹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막바지에 이르러, 정확히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부터 아킬레우스는 위의 철없는 싸움꾼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어나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트로클로스의 추모 경기에서 그는 주최자의 입장으로 자신보다 연배가 위인 다른 장수들에게 모임을 '주최'하고 시합 판정에 대해 '중재'를 하는 등, 철없는 젊은이가 아닌 완숙한 어른으로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심지어 이를 갈던 아가멤논에게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네며 그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라스트 신이라 할 수 있는 프리아모스 왕과의 만남에서 아킬레우스의 태도를 보자. 처음에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왕의 요구에 "그놈은 내 친구를 죽인 천하의 원수다!"라며 호통을 치지만, 이에 프리아모스가 "그러는 당신도 내 아들들을 수도 없이 죽인 나의 원수가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나의 원수인 당신의 무릎을 붙잡고 애원한다"라며 눈물을 흘리자 당혹감을 느낀다. 이어서 왕이 아킬레우스의 늙은 아버지를 떠올리라며 호소하자, 아킬레우스는 왕을 "가엾으신 분"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잔혹한 운명과 전쟁의 고통에 대해 함께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반환하고, 프리아모스의 부탁대로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휴전 협정까지 힘써줄 것을 약속한다. 이 시점에서 아킬레우스는 분노와 광기를 극복하며 무뢰배의 행실을 버리고 성숙한 품위를, 자신의 적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소중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며 도살자의 잔인함이 아닌 전사로서의 명예를 손에 넣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폭풍우 같은 분노'를 노래한 이 서사시의 마지막이, 분노로 날뛴 끝에 적장의 목을 베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원수와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며 슬픔을 나누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는 결국 <일리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아킬레우스가 끝없이 분노를 터뜨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분노로부터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일리아스가 분노가 마지막에는 마침내 인간미에 패배하는 이야기 라는 평가도 있다.
사실 고대 그리스[47]에선 아무래도 그리스 민족 개념이 약했다. 이웃 폴리스도 서로 마음이 안 맞으면 동족이고 뭐고 서슴없이 칼을 겨눴던 시대에서 트로이의 헥토르 또한 '사람도 아닌 야만인'이 아니라 같은 신을 믿는 그리스 문화권이었다. 아킬레우스가 그리스 편에서 싸운 것은 헥토르가 개인적인 원수이기도 했고, 그 외 여러가지 사정상 좀 더 친한 이쪽을 도와줬을 뿐이지, 그리스 전사에게 있어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 속한 폴리스다.[48] 때문에 아킬레우스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단순히 자기 여자 뺏겼다고 징징대는 찌질남이 아니라, 굳이 목숨 걸 이유는 없던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의 동맹에서 10년동안 싸워줬는데도 전후 논공행상에서 최고의 전사였던 자신이 그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상당한 불이익을 지속적으로 받은 데다 화룡점정으로 이미 받았던 여자를 도로 뺏기는 명백한 모욕까지 받은 경우이기 때문에 단순히 찌질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에 덤으로 아킬레우스는 신들이 내린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앞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언제든지 이쯤에서 돌아가서 겁쟁이라는 오명은 대강이나마 피한 상태에서 목숨이나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는데 아가멤논의 자극까지 받아 싸울 의욕이 거의 사라져 있던 것이다. 즉 자기 배에 틀어박힌 아킬레우스의 행동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의 고뇌, 또는 필멸이지만 어쨌든 소중한 자신의 목숨과 사나이다운 명예나 명성, 그리고 그것에 뒤따르는 불멸성 사이에서의 고뇌라고 해석이 되었던 것이며, 어차피 아킬레우스도 결국 자신이 싸우다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상태였다는 것을 그리스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우정과 복수를 위해서 일어선 사나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훨씬 견고한 도시들의 공동체인 로마가 들어서면서 트로이 멸망에 공조한 데다가, 그리스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아킬레우스는 공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적인 이유로 싸우고 삐지고 하는 영 뭔가 아닌 인물로 보였는지 단테의 신곡에선 지옥에 떨어졌다. 그래도 지옥 중에서도 아주 깊숙한 구렁텅이에 떨어진 오디세우스나 디오메데스보단 사정이 나아서 색욕 또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이 가는, 지옥 중에서는 그나마 위쪽에 있는 제2옥에 위치해있다. 여기 있는 이유는 폴릭세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킬레우스의 행적을 어떻게든 안 좋은 쪽으로 엮으면 더 밑바닥으로 처넣을 수도 있을 텐데 그냥 정욕에 관련된 죄목만 물어서 2옥에 넣어둔 걸 보면 나름 대접해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중대한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대 기준으로는' 위대한 영웅의 전형으로 숭배받은 인물이고, <일리아스>라는 문학의 주인공으로서는 격정과 아집, 성숙의 양태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저지른 행적이나 성격이 현대 기준으로 혹은 非그리스적 세계관에서 볼 때[49] 다분히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하는 입체적 인간상으로서 특유의 매력을 뿜어내는 영웅이기도 하다.
4.2. 다른 영웅들과의 비교
헥토르나 아이아스를 비롯한 쟁쟁한 영웅들이 개입한 트로이 전쟁 안에서도 특출난 강함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다시 참전했을 때, 홀로 수많은 트로이 군의 군단을 학살했으며 끝내는 트로이 최고의 명장이자 총사령관 헥토르까지 결투 끝에 칼을 찔러 죽인다. 트로이의 운명이나 다름없던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사실상 트로이 전쟁을 반 이상 혼자 끝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하지만 일리아스에서 노장 네스토르에게 "내가 젊었을 때 알던 옛날 영웅들에 비하면 아킬레우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냉정한 혹평을 들었다. 네스토르의 평가는 절대 틀린 말이 아닌 게, 그가 젊었던 시대 혹은 그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는, 말 그대로 자연재해급 강함을 자랑하는 거대 괴물들을 쓰러뜨린 훨씬 엄청나고 화려한 스케일의 영웅들이 맹활약하던 시대였다. 현대보다 훨씬 극심한 당대의 성차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용맹과 뛰어난 실력만으로 신수를 무력화시키고 업적을 인정 받은 여성 영웅도 둘이나 있다.[50]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메데이아, 디오스쿠로이를 빼면 거의 대다수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하긴 했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불세출의 힘과 용맹, 지혜, 마법, 음악 등등으로 누구도 죽일 엄두도 못낼 괴물과 재앙들을 쓰러뜨리거나 사람들을 구하고 나라와 문명을 부흥시키면서 신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희대의 거물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네스토르는 그리스군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아르고호 원정이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등 올스타전 수준으로 규모가 크고 위험천만한 빅 이벤트들에 많이 참가했다. 그들만큼 특출나거나 눈에 띄는 업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자기보다 먼저 사망한 아래의 영웅들과 동시대를 살아 오래 장수하여 트로이 전쟁 시대까지 살아남았기에 경험치와 연륜만큼은 아키아아군을 통틀어 탑급을 달리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이는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아버지 펠레우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네스토르가 반신 주제에 신족 출신 괴수도 아닌 고작 자기보다 한참 약하고 만만한 반신이나 순혈 인간들만을 무참히 도륙내고 학살하고 다니는 아킬레우스를 낮잡아 보고 애송이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다.
- 아테나가 가져다준 무기들로 고대 바다의 신들인 케토와 포르퀴스의 딸[51]이자 한번 눈이 마주치면 상대를 석화시키는 힘을 지닌 뱀머리 괴물 메두사와 바다 괴물 케테아를 퇴치한 페르세우스.
- 아테나의 후원 아래 페가수스를 몰고 키메라를 퇴치한 벨레로폰.
- 가이아와 타르타로스가 낳은 사상 최강의 신수 튀폰을 감쪽같은 속임수로 낚아서 제우스의 힘줄을 되찾고, 아레스와 데메테르의 아들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52]를 쓰러뜨린 카드모스.
- 에우뤼스테우스가 내린 12과업을 모두 해결하고 네메아의 사자, 휘드라, 스팀팔로스의 새들을 토벌하고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케리네이아의 암사슴, 크레타의 황소,[53] 아레스의 아들이자 트라케의 폭군 디오메데스의 네 식인 암말들, 게뤼온의 황소 떼, 명계의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생포한 헤라클레스.
- 그리스 최강의 팡크라티온 실력자로 아뮈코스 왕[54]의 두개골을 한 방에 박살내 죽인 반신 영웅 폴뤼데우케스.
- 그런 폴뤼데우케스와 일기토를 벌였고, 약혼녀 마르펫사를 되찾기 위해 아폴론과 싸운 이다스.
- 아르고 호 원정대를 조직하고 그리스 전역의 난다 긴다하는 영웅들을 홀로 지휘했던 이아손.
- 피네우스를 핍박하던 괴조 형태를 취한 폭풍의 여신들인 하르퓌아이 자매들을 압도하고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인 제테스와 칼라이스.
- 불을 내뿜는 황소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이빨에서 태어난 용아병 스파르토이들을 본인이 만든 마법 부적과 돌멩이 하나만으로 격퇴하는 계획을 짜고, 콜키스의 용[55]을 단독으로 만든 마법약 하나만으로 잠재워버리고 탈로스까지 무찔러 황금양털을 탈환한 메데이아.[56]
- 펠리아스 사망 기념 레슬링 시합 때 아버지 펠레우스를 팔씨름으로 꺾고,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는 순혈 인간의 몸으로 아르테미스의 가호를 받은 신수(神獸) 칼리돈의 멧돼지의 급소에 화살을 명중시켜 우승을 차지한 아탈란테.[57]
- 아탈란테의 화살을 맞고 잠깐 무력화된 칼리돈의 멧돼지에게 창을 던져 막타를 날린 멜레아그로스.
- 무력이나 마법, 지혜 없이 오직 특출난 리라 연주와 가창력을 비롯한 음악적 재능로 거센 파도와 폭풍을 잠재우고, 명계의 왕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타나토스, 카론, 케르베로스마저 감동시키고, 신수 세이렌의 유혹까지 물리친 오르페우스.
- 아리아드네 공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크레타의 황소와 미노타우로스 부자를 쓰러뜨린 테세우스.
- 혼자만의 지혜로 신수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풀고 자살로 몰고 간 오이디푸스.
이들이 싸우거나 처치한 네임드들만 해도 아킬레우스가 쓰러뜨린 적들과는 클래스가 다른 인외급의 괴물이거나 신족의 혈통과 힘을 물려받은 초월적인 신수들이다. 아킬레우스의 할머니, 할아버지뻘 대선배들에 해당하는 영웅들 중에는 인외급의 강함을 자랑하는 괴물들을 처치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최소 나라를 세운 창업군주나 부모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폴리스를 통치한 왕들도 몇몇 있었다.[58] 아킬레우스의 최고 업적이라고 해봐야 반신의 몸으로 잡몹이나 다름없는 수만명의 인간 병사 학살, 홀몸으로 트로이아군을 지휘한 총사령관이자 순혈 인간 영웅 헥토르, 그리고 신적인 전투력을 지닌 반신 영웅 펜테실레이아와 멤논을 죽인 것뿐이다. 본인은 바다의 여신이자 네레이드 테티스의 아들인 반신일 뿐만 아니라 아이아키다이 일족의 왕세자라 위의 영웅들에 뒤지지 않는 고귀한 혈통과 신분의 소유자지만, 고국 퓌티아로 돌아가 펠레우스의 왕위를 잇기도 전에 숙적 헥토르의 동생인 파리스에게 발뒤꿈치에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
물론 아킬레우스의 시대에는 이미 이전 세대의 영웅들에게 괴물들이 대부분 멸종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가 신급 괴물들과 싸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영웅들 중 이전 세대 선배들처럼 괴물을 퇴치한 인물이라면 딱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본인을 전장으로 끌고 간 결정적인 장본인인 오뒷세우스뿐이다. 트로이군 최고의 지장이었던 오뒷세우스는 신족의 무구나 지원도 없이 정면전이 아닌 오직 주 특기인 인내심과 지략, 잔꾀만으로 괴물을 무력화시켰다. 해신 포세이돈의 피를 이은 거대한 외눈박이 반신 괴물 폴뤼페무스를 포도주에 취하게 한 뒤 끝을 뾰족한 창처럼 갈아서 만든 나무로 눈을 찔러 맹인으로 만드는 계획을 펼치고, 탈출에 성공했다. 아킬레우스 역시 이전 세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신들과 괴물들을 상대로 선전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하급신으로 분류되는 강의 신 포타모이이자 외종조부이기도 한 스카만드로스에게 함부로 반말로 깝쳤다가 죽을 뻔한 만큼 반신으로서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5. 기타
-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몰로소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신격화에 이용됐다.
- 중세부터 그를 주제로 한 비극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이 아킬레우스 외의 다른 인물들[59]을 주제로 한 데에 비해 중세부터는 제목부터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인 작품들이 많다.
- 이 영웅의 이름을 가진 고생물이 있다.
- 신곡 지옥편에서는 2층인 색욕 지옥에서 벌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 아폴론의 신전에서 파리스의 독화살을 맞고 사망할 당시 맞았던 부위가 발목과 발뒤꿈치를 잇는 부분이어서 이를 통칭한 '아킬레우스의 뒷꿈치'라고 불리는 'Achilles' Heel'이 있는데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물에 넣었을 당시 발뒤꿈치를 잡았던 탓에 그 부위만 급소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례했다. 영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의미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 이름은 아킬레우스그리스어 혹은 아킬레스라틴어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영어식으로 읽으면 '아킬레스'(Achilles) 정도로 읽힌다. 인기가 높아서 정복왕 알렉산드로스 3세도 아킬레우스를 숭배했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는 자신과 헤파이스티온의 관계를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했다.
- 아명 혹은 본명은 '리귀론(Ligyron)'으로 그 뜻은 '어머니의 젖에 입술을 댄 적 없는 아이'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어머니 테티스가 물[60]에 아이를 담그는 것을 보고, 아버지 펠레우스는 아이가 죽게 될까봐 이를 만류했었다.[61] 그러자 테티스가 홧김에 이들 부자를 떠났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했다. 펠레우스는 이후 아들의 이름을 리귀론에서 아킬레우스로 바꿨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어릴 적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인생의 중요한 혹은 위험한 순간에만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을 만나곤 했다.
- 이름을 분석하자면 '슬픔'을 가리키는 단어 ἄχος(아코스)와 사람들의 '무리/국가' 등을 가리키는 λαός(라오스)가 합쳐진 이름이라고 하며, 이를 따른다면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슬픔'이란 뜻이 된다. 그가 전쟁에 참여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댄 것과, 그 자신도 요절해서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에게 슬픔을 안겨줬음을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아킬레우스에서 유래한 말로는 아킬레스건(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뜻)과 아킬레우스의 방패가 유명하다.
6. 관련 문서
[1] 《일리아스》를 시작하는 첫 구절이 "여신들이여 노래하소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며, 마무리를 짓는 마지막 구절은 "그들은 그렇게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이다. 즉, 이 거대한 서사시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헥토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2] 대영웅으로 아들이 자란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윤기의 경우에는 대상을 본인의 지상의 손자 중 한명으로 해서 관리가 쉽게 하는 식으로 했다고 해석했다.[3] 아기장수 우투리나 북유럽 신화의 시구르드도 그렇지만, 전신이 금강불괴이지만 딱 한 부위만큼은 상처를 입는 인물이 창작물에 있다면, 차후 반드시 그 유일한 약점이 되는 부위에 상처를 입어 죽게 되는 클리셰가 있다. 99%가 무적이라도 1%의 헛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라리 전신이 무적이 아닌 일반인들보다도 명줄이 짧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다만 우투리나 시구르드랑 다른점은 아킬레우스의 죽음의 경우 그 부분의 상처만인게 아니라 해당 화살이 독화살이기에 죽는다.[4] '입술이 없다'. 어머니의 젖에 입술을 댄 적이 없는 아이라는 뜻.[5] 이 일로 아이에게 붙은 별명이 ‘불에서 구해진’이란 뜻의 퓌리소스(Pyrisous)이다.[6] 비슷한 일화로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맬 때(노파로 변장한 상태였다.) 자신을 정중히 대접한 왕가의 아이를 불멸자로 만들기 위해 불에 넣는 것을 왕비가 보는 바람에 실패한 적이 있다. 메타네이라 문서로. 메타네이라의 경우를 볼 때, 원래부터 신이 하는 대로 놔두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인 듯하고, 테티스의 경우 자식들이 계속 실패해서 죽은 이유가 펠레우스의 간섭 때문이었다면 정이 떨어졌다는 뒤의 해석도 앞뒤가 맞아떨어진다.[7] 사실 이건 고대 그리스의 전사들에게 갑옷이란 것이 명예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래서 전사한 적군의 무구를 전리품으로 빼앗고 아군의 무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8] 보통 용모가 미형이 아닌 하피들 중 자신의 자매 셋과 함께 인간보다도 더 아름다운 형상을 지닌 네 하피 중 하나가 바로 그녀라고 한다. 참고로 포다르게를 비롯한 저 네 하피는 아르고 호의 원정 전승에서도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아르고 호의 원정에 참여한 이들 중 북풍의 아들들인 칼라이스와 제테스가 여행 도중에 만난 피네우스라는 노인의 식사를 빼앗던 하피들을 쫓아가 칼질하려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중도에 나타난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그들을 제지한다. 이리스는 칼라이스&제테스 형제에게서 도망치던 하피들 중 제일 뒤처졌던 포다르게가 실은 자식을 배고 있었기에 빠르게 날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그녀가 신의 아이를 뱄으니 그녀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덤으로 하피들에게 괴롭힘 받고 있었던 피네우스의 형벌도 이제 끝났으니 하피들이 그를 괴롭힐 일도 더는 없을 거라고 이리스가 말해준다. 포다르게의 이름 뜻이 '빠른 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리 중에서 가장 뒤처졌던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이리스가 두 형제를 막아준 덕에 포다르게는 생존했는데, 이후 태어난 네 마리의 말이 발리오스와 크산토스, 그리고 이 두 말의 형제격인 말들이라고 한다. 이들 모두 명마로 잘 알려졌다고. 이후 어찌된 일인지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포세이돈이 데리고 있었는데, 나중에 펠레우스의 결혼 선물로 준다. 그런데 펠레우스도 아르고 호 원정 참전 경력이 있다. 참고로 포다르게가 신의 아이를 뱄다는 부분은 판본에 따라 다르다. 어떤 판본에선 보레아다이 형제의 아버지인 북풍 보레아스의 아이를 뱄다고도 하고(이 경우 포다르게를 죽여서 이복동생을 죽이는 존속살해를 저지르지 말라고 이리스가 경고하기도 한다), 어떤 판본에선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아이를 뱄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포다르게의 뱃속에 있었을 때 아르고 호 원정대를 만난 적이 있는 셈이다.[9] 헬레네의 구혼자들 중 한명 이였다.[10] 일단 아버지부터가 여장했을 때 안 어색했던 모양으로 보이는 데다 할머니가 그 아름답다는 테티스이니...[11] 구스타브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다른 전승이 있다. 아녀자들 사이에 있는 건 같은데, 적이 침공했단 사이렌을 울리고 아킬레우스용 군장을 놔두어 바로 5대기 출동하여 아킬레우스가 징집됐다.[12]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라고도 한다.[13] 정작 아킬레우스 본인은 아가멤논이 자신과 이피게네이아를 결혼시킨다는 소식을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서 처음 들었다.[14] 원래는 리르네소스의 왕 미네스의 아내였으나, 아킬레우스에게 남편과 가족들을 잃고 그의 포로가 된다.[15] 이 전투때만 해도 트로이군에서 헥토르,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BIG 3라고 할 수 있는 강자인 사르페돈을 죽이는 성과를 보여줬다.[16] 헥토르를 수호하던 아폴론이 파트로클로스를 성벽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전투 도중 무장을 강제로 해제시켜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17] 원래 갑옷은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할 때 헥토르가 가져갔다. 여담으로 이 갑옷 또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이라고.[18] 자세히 서술하면, 트로이의 장군 중 하나인 아게노르가 도망가려다가 아폴론의 일갈에 아킬레우스에게 덤비나 간단히 막히고, 되려 죽을 위기에 놓이자 아폴론이 아게노르의 모습으로 변하고 아게노르를 대피시킨다. 결국 이로 인해 그가 성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자 그제서야 정체를 드러낸다. 속았다는 걸 알지만 상대가 12주신인의 일원인만큼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대신 나에게 힘이 있다면 꼭 복수하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이를 갈며 씹어뱉는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저에게 아폴론 님과 싸울 만한 힘이 있다면 아폴론 님을 혼내주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며 멀리 달아난다.[19]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2권에서는 아폴론이 헥토르에게 다가가 트로이의 맹장이 도망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호통치며 도움을 주었고, 반대로 아킬레우스에게는 아테나가 나타나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의 축복을 전해주었다.[20] 저걸 보면 간절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한 아킬레우스가 매정한 놈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 부분을 현대적으로 보면 오히려 아킬레우스의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뒤 그가 입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빼앗아 그걸로 갈아입고 나서 재출정했을 때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먼저 모욕하고자 시도했었으나 다행히도 대 아이아스와 메넬라오스의 분투로 인해 실패했었다. 아킬레우스 입장에선 전쟁 처음부터 프로테실라오스를 죽이고 심지어 형제나 다름없는 수준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저런 모욕행위를 하려고 해놓곤 그 사실을 사과하지도 않았으면서 막상 자기가 죽을 때가 되자 저런 부탁을 하는 헥토르가 정말 비굴하고 뻔뻔하게 보여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었을 것이다. 오히려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리고 아킬레우스가 잔인무도한 성격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헥토르가 저 부탁을 하자마자 아킬레우스가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였던 것을 다시 떠올려 눈이 돌아갈 정도로 폭발해 버려 곧바로 헥토르를 난도질해버려서 확인사살해버리는 짓을 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판국에 그냥 말로만 모욕하며 부탁을 거부한 정도로 그친 것만 해도 아킬레우스 치고는 정말 많이 참아준 거라고 볼 수 있다.[21] 헥토르가 어떻게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안 건지는 불명이다. 다른 전승에서는 신들의 분노를 사면 안 된다고 아킬레우스를 한탄했다. 국내에서는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예측했단 게 뜬금없어 보여서 그런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3권에서는 이 다른 전승 버전을 얘기하는 걸로 나온다.[22] 일리아스 24권에서 아폴론은 아킬레우스를 동정심도 수치심도 없는 자라고 비난하자, 헤라는 헥토르는 필멸의 인간에 불과하고 아킬레우스는 여신의 아들이라고 화를 낸다. 이에 제우스는 둘의 명예가 같을 수 없지만 헥토르는 일리오스에 사는 인간들 중 신들에게 가장 사랑받았고, 그가 자신에게 제물을 많이 바친 일을 언급한다. 이어서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내주도록 테티스를 설득한다.[23] 실제로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자식 뿐 아니라 (전승에 따라 손자는 죽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손자 네오프톨레모스까지 잃어 괴로워했으며(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들은 전쟁터에서 전사한데다 운명에 의한 것이라지만 손자는 아무리 봐도 자업자득이다. ), 전쟁의 원흉이었던 메넬라오스를 "여자 간수도 못해서 전쟁이나 일으킨 놈."이라며 흉봤다. 이후 삶의 목표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헤어졌던 아내 테티스와 재회했다.[24] 이런 사실 덕분에 《일리아스》에서의 기술에서도 그렇듯 헥토르의 군사적인 능력이 더더욱 돋보인다. 실제로도 10배가 넘는 연합군을 용장 한 명이 자신의 무력과 지략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러한 업적을 남긴 영웅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꽤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 모두 생전, 사후,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그 위업을 칭송받는다.[25] 아이러니하게도 파리스도 자기가 사용한 독화살처럼 똑같이 필록테테스가 쏜 히드라 독화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26]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래도 나름 대접해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살해당했다. 그것도 네오프톨레모스가 자신의 아들 폴리테스를 살해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덤볐다가 살해당했다. 이래저래 아킬레우스랑 프리아모스는 상극이었다. 웃기게도 그런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바로 아킬레우스가 죽인 프리아모스의 장남 헥토르의 아내였던 안드로마케였다. 게다가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8~12명의 자식을 얻기까지 했다.[27] 물론 출항을 앞두고 아르테미스를 능멸하는 신성모독을 저질러 그리스군을 병사하게 만들고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아가멤논은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28] 아가멤논 왕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트로이 전쟁의 참전 대가로 아가멤논의 동생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 약혼했다.[29] 두 사람을 거의 연인으로 묘사한 매들린 밀러(《키르케》의 작가)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대표적이다.[30] 한편 고대 그리스의 남성동성애는 남존여비에서 파생되어 남성들만이 향유하던 문화였다. 현대의 여성향 장르인 BL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31] 이는 BL에서 누가 공이고 수냐는 커플링 논쟁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다르다. BL은 현대 여성들이 향유하는 여성향 장르에 해당하며 BL에서 공과 수를 결정하는 요소는 성기의 삽입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남성동성애는 남존여비의 한 갈래로서 "진정한 정신적 사랑은 열등한 여성이 아닌 우월한 남성하고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즉 당대의 남성동성애는 남성 간의 정신적 교류를 중시했고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는 연령, 사회적 지위, 역할 등 정신적, 사회적 요소에 따라 결정되었다. 육체적 관계도 있었지만 대부분 입맞춤이나 성기를 비비는 정도였고 성기를 체내에 삽입하는 건 남성 간에 할 짓이 아니라며 터부시했다.[32] 아이스퀼로스 135, 136 radt, 플라톤 '향연' 179e - 180b, 아이스키네스 '티마르쿠스에 대한 반론' 133, 141p - 150p[33]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34]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사후 파트로클로스와 합장되어 함께 묻혔다.[35] 천병희 역 일리아스 9권 342~344행에서 아킬레우스가 "나 또한 비록 창으로 노획한 여인이긴 하지만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소. 그런데 그자(아가멤논)는 지금 내 품속에서 명예의 선물을 빼앗고 나를 속였소."라고 언급할 정도.[36] 다만 사랑하는 장남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성을 빠져나와 아킬레우스에게 간곡히 요청한 프리아모스를 보며 자신의 운명과 고국에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시신을 돌려주기도 했다.[37] 아킬레우스 본인이 이미 죽고 없는 상태이긴 했다.[38] 전승에 따라 폴릭세네가 적극적으로 오빠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킬레우스를 꼬여냈다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파리스의 함정에 빠져서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결국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좋은 꼴을 볼 순 없었을 것이다.[39] 과거 테르시테스는 아킬레우스와 불화를 겪고 있는 아가멤논을 상대로 디스를 퍼부었고, 이에 빡친 오디세우스는 그런 테르시테스를 꾸짖으며 지팡이로 등과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다른 그리스 병사 앞에서 그런 수치와 수모를 당한데다 영웅들에게 찍히기도 했으니 사리고 다니는 게 현명했겠지만, 그 놈의 입버릇과 인성을 고치지 못해 위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 더군다나 이 놈은 죽어서도 펜테실레이아에게 엿을 먹였는데, 테르시테스의 사촌이었던 디오메데스가 분노하여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강에 던져버린 것이다(...).[40]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를 좋아했다고는 봐야 하지만 그것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어떤 남성과 여성간의 1:1 로맨스나 낭만의 형태는 아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가 빈정이 상한 가장 큰 이유는 '아카이아 청년들이 내게 준 명예의 선물'인 만큼 자신의 명예를 위한 전리품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가멤논의 행태에 빈정 상한 것이다. 단 마음에 든 남자 노예였다면 아마 이 정도로 화를 내지 않았을테니 여자 노예인 브리세이스를 이성적으로 좋아했다는 건 맞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형태가 아닌 것이지.[41] 굳이 비유하자면 18로 제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42] 일리아스에서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의 전투는 딱 나흘 동안 전개된다. 첫째 날에 아킬레우스가 삐쳐서 빠진 뒤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결투 등이 벌어지고, 이틀째에 헥토르가 활약해 여러 장수들이 부상을 입는다. 사흘째에 파트로클로스가 참전했다 전사하고, 나흘째에 아킬레우스가 참전해서 헥토르를 죽인다.[43]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레소스》에서도 아이네이아스가 아킬레우스는 성미가 불 같고 힘과 용기가 절륜하다고 한다.[44] 당장 '정의로운 국가의 수호신'인 제우스가 신화 속에서 하는 짓을 보자. 더불어 사실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 자체도 매우 감정적이다. 신들에게는 여신들의 자존심 경쟁 탓에, 인간들에게는 눈 맞아 야반도주한 불륜 남녀 탓에 벌어진 전쟁이다.[45] 일단 점잖은 표현이지만 "지금 여기서 친구 죽은 사람이 너뿐인 줄 알아? 이 전쟁통에 일일이 명복 빌다간 다 굶어 죽어. 다 귀한 목숨인데 네 친구 가지고 유난 좀 떨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46] 이건 대개의 그리스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영웅 신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탁월한 인물이 성격적 결함(하마르티아)으로 인해 파멸을 맞는 비극적인 성격이 꼽힌다.[47] 정확히는 페르시아 전쟁 이전.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그리스인'이란 정체성이 생겨난다. 그 이후에 쓰여진 그리스 비극에선 트로이를 야만족이라고 부른다.[48]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페르시아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 측에서 그리스 놈들 좀 놀라고 급해서 연합한 거지 결코 끝까지 연합하고 있을 놈들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었고, 실제로 그리스 연합군도 더 큰 희생을 얻는 포지션을 강요하거나, 자기들 폴리스를 내주는 식의 전략을 짜려 하거나 하여 수틀리면 언제든지 돌아가서 자기들 폴리스나 챙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49] 사실 고대 그리스적 세계관에서도 호메로스 시기를 지나 세련된 윤리학자들의 시기에 다다르면 아킬레우스가 비판되기도 한다. 플라톤 역시 히피아스에서 호메로스와 아킬레우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둘 다 생몰년도가 추정이지만 호메로스가 죽고 나서 100년도 넘어야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가 태어나고, 그리고 다시 또 150년은 지나야 인간에게 고개를 돌린 최초의 철학자라는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고 소크라테스가 노년에 거둔 제자가 플라톤이며 그 플라톤이 다시 또 노년에 거둔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즉 까고 말해서 아킬레우스는 고대에서도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윤리나 사회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인물이란 것이다. 당대 기준으로는 위대한 영웅의 전형이라고 숭배받았다고는 하나 그 당대라는 것이 고대 기준으로도 이 인물의 윤리성이나 결함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 말고도 호메로스가 이상하다고 말하던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나 작가들은 많았다.[50] 이 두 여성 영웅들인 아탈란테와 메데이아는 아킬레우스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인물들인데. 아탈란테는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당시 멧돼지의 어금니에 맞아 죽을 뻔한 펠레우스를 구해준 은인이고 메데이아와는 엘리시온에 가서 부부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즉, 메데이아는 네오프톨레모스의 계모이자 펠레우스의 둘째 며느리이기도 하다.[51]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가이아와 폰토스의 딸로 소개되어 있다.[52] 이쪽은 아예 드래곤의 형상을 한 신족, 그것도 12주신 2명의 아들이라는 빵빵한 혈육을 가진 존재이다.[53] 미노타우로스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자 포세이돈이 미노스에게 자기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만들어준 신성한 흰 황소이다.[54] 포세이돈의 아들로 폴뤼데우케스와 똑같은 반신이다. 이방인들에게 권투 시합을 신청하여 때려 죽이던 베브리케스 인들의 왕이었다.[55] 이 콜키스의 용은 전쟁의 신이자 군신 아레스가 콜키스의 왕이자 메데이아의 아버지 아이에테스에게 직접 선물한 강력한 신수(神獸)로, 헤라가 부리는 100개의 눈이 달린 거대한 괴물 아르고스처럼 절대로 잠들지 않는 불멸의 눈을 가졌다.[56] 메데이아의 경우 아탈란테와 더불어 아르고 호 원정대의 유이한 여성 영웅들 중 한 명이다. 아르고나우티카에 나오는 원정대의 남성 영웅들마저 실력과 기개에 감탄하여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순수한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 헤라의 저주로 인한 광증에 시달리던 헤라클레스와 아탈란테는 메데이아가 제조한 마법 치료제로 상처를 치유받기도 했다.[57] 특히 아탈란테는 멧돼지의 어금니에 찔려 죽을 뻔한 펠레우스를 구하기 위해 화살을 쐈는데, 이때 화살이 정확히 멧돼지의 급소에 적중했다. 아킬레우스에게 있어 아탈란테는 아버지의 은인인 셈.[58] 메데이아,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카드모스, 오이디푸스.[59] 아이아스나 아가멤논 등[60] 혹은 불[61] 이들 부부 사이에는 아킬레우스 이전에도 자식이 있었고, 테티스는 그 아이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불사의 존재로 만들려고 했으나 인간 아기가 그것을 견뎌낼 리 만무하고, 다 죽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막 태어난 마지막 아이에게까지 같은 짓을 하려고 하니, 펠레우스 입장에선 당연히 막을 수 밖에 없었다.[62] 아킬레우스와 함께 최고의 미남 & 미소년으로 분류된 신화의 인물들은 이아시온, 키뉘라스, 안키세스, 파리스, 니레우스, 케팔로스, 티토노스, 파르테노파이오스, 파트로클로스, 이도메네우스, 테세우스, 아도니스, 가뉘메데, 휘아킨토스, 나르키소스, 헤르마프로디토스, 힐라스, 그리고 크뤼십포스가 있다.[63] 학습관련 웹툰 사이트 이만배에서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