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Ἑλληνισμό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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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 확장을 통해 그리스의 문화를 정복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 현지 문화가 결합되어 형성된 문화.여기서 Ἑλληνισμός(Hellēnismos, 헬레니즘)란 그리스화(化)[1]를 일컫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이다.
실제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와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상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전쟁 이후 그리스는 정복지에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고 그리스 문화 전파를 위한 의도적인 식민 정책을 폈는데, 이를 통해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어가 현재 중동지방, 중앙아시아, 인도 북부 지방에 퍼지게 된다. 이 영향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훗날 로마 제국이나 파르티아 제국에서도 그리스어가 널리 쓰였다. 또한 인도에서는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등장하기도 했다.헬레니즘 문화의 가장 큰 성과는 학문에 있다. 아테네에서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 철학이 헬레니즘 세계로 뻗어나가며 그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활발한 학술적 교류를 이루어냈다. 그 중에서도 알렉산드리아(이집트)가 특히 유명했고, 이어 아테네와 로도스섬이 최고 교육기관으로 떠오르면서 헬레니즘 세계의 학문을 주도했다. 안티오크는 중동지방에서 그리스어 학습과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로 설립된 대도시였는데, 이후 안티오크는 기독교를 그리스어권으로 전파하는 주요 거점이 되었다. 또한 학술적 목적에서 고전의 보존에도 특히 힘써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비롯한 도서관과 박물관을 곳곳에 설립하여 문학작품과 예술품들을 보존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은 ① 헬레니즘 제국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② 헬레니즘 국왕들의 후원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고대 그리스 과학과 확연히 달랐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세계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술은 헬레니즘 여러 군주의 왕성한 도시 건설에 의해 촉진되어 건축과 조각에서 그 기교의 발달이 현저했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나 아테네는 의외로 걸작이 드물고, 페르가몬, 로도스, 크니도스, 멜로스(밀로), 사모트라케 등 주변 및 섬들의 새로운 폴리스에 많았다
이 시기에는 자치국가였던 폴리스가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의 도시로 포함되면서 시민들의 공적 생활이 크게 변화했다. 즉, '특수성'의 상실로 인해서 '보편성'이 시대의 표지가 되었고, 폴리스 공동체 의식에 대신해서 보편 인류 의식(코스모폴리터니즘)과 개인주의가 시대정신이 된다. 철학은 공동체(폴리스)와 결별하여, 보편주의적인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철학이 되었다. 이제 개인의 영혼 구제가 철학의 핵심 주제가 된 것이다.
헬레니즘 철학은 종교와 결합했다. 공동체의 공적 제사(올림푸스 12신)는 이미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묶어 두지 못했고, 사람들은 보다 강렬한 구원의 증명을 찾았다. 동방의 여러 종교가 밀물처럼 흘러들어와 재래 종교와 혼합되어 광범한 '종교 습합(習合)'을 야기시켰다. 융합이야말로 모든 헬레니즘 문화의 기조 현상이었다.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 훌륭한 변론술(수사학)은 원래 폴리스적인 시민 생활에서 생긴 공생활상의 필요 기술이었는데, 폴리스적 공생활이 해체된 이래 변론술은 쇠퇴하였고, 단순한 수사술이 되었다.(테오프라스토스의 인성론 등) 희극도 마찬가지이다. 폴리스적 정치 생활에 관한 요소는 사라졌고 개인의 인생을 다루는 '신희극' 또는 대중 흥행적이고 선정적인 미모스 등으로 변화하였다.
또 이 시기에는 전대의 소산에 대한 주해서가 많이 쓰여졌으며 이전의 각종 학문들이 집대성되었다. 훈고와 주석이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주류였다.
건축적인 부분에서 보면 조각상은 세부묘사가 갈수록 정교하고 치밀해져서 기술적으로 더욱 숙달되었다. 신전의 기둥은 최초 간소한 도리아식(고전기 초·중)에서 이오니아식(고전기 말-헬레니즘 초기)을 거쳐 코린트식(고전기 중·말)으로 발전하였다.
수학·실험과학·천문학·해부학 등의 소위 자연과학 분야는 헬레니즘 시대에 확실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그 학자들은 오늘날 기준으로도 일류급 학자들이었다. 생물학과 논리학을 포함해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과 사유는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세계 곳곳에 전파되었으며, 학문을 사랑하는 그러한 세계적 환경에서 현대 문명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위대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일례로 아르키메데스는 후대 과학자들에게 영원히 모범이 되는 존재로, 유클리드의 원론은 인류의 과학 문명을 형성한 위대한 저작으로 그 내용은 현재도 학생들의 수학 교과서의 중추 내용이 되어 살아 숨쉰다. 원론은 사실상 수학의 근본 내용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수학뿐 아니라 과학, 법학(헌법부터 시작해, 현대 법 조항들만 훑어보더라도 유클리드 원론에서 볼 수 있던 구조를 법학에서 느낄 수 있다.)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야말로 현대 문명의 중요한 근간이 되어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같은 과학자들이 어린 시절 원론에 깊은 감동을 받고 그런 소질을 계속 계발하여 훗날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
또 생각보다 파급범위가 넓어서 동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줬는데,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 중 하나인 불상이 바로 인도에 눌러앉은 뒤 그대로 현지인과 융합한 그리스인들의 작품이다. 인도 일대에서 원래 부처는 추상화된 기호로만 표시 되다가 알렉산더 이후 인도-중앙아시아 일대까지 진출한 그리스인들이 불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고향 그리스에서 하던대로 부처의 신상을 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불상 조각 문화의 시작이었다. 또한 금강역사의 묘사에서 보이는 헤라클레스와의 유사성도 헬레니즘 시대의 영향으로 평가된다.
3. 성과
과학 | ||
에라토스테네스 | 천문학 | 지구의 자오선 측정 |
아리스타르코스 | 천문학 | 지동설, 달·태양의 거리를 계산 |
스트라톤 | 물리학 | 진공의 이치를 연구 |
헤론 | 수학,물리학 | 기하학에 관한 저서 <도량>을 집필함, 기체의 연구[2] |
아르키메데스 | 수학·물리학 | 지렛대·비중, 원·구의 구적, 순수학문 중심이던 기하학을 실생활에 응용함 |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3] | 수학 | 기하학 원리에 대해 설명한 <원론>을 집필함[4], 연역추리의 방법을 발전시킴 |
아폴로니오스 | 수학자 | 원추곡선[5] 정리의 발견 |
헤로피로스 | 해부학 | 신체 기관의 연구 |
철학 | ||
피론 | - | 회의파 창시 |
제논 | - | 스토아 학파 창시 |
에피쿠로스 | - | 쾌락주의 창시 |
문학 | ||
테오크리토스 | 시인 | <목가>, 미모스 작가 |
헤론다스 | 희곡 | - |
메난드로스 | 신희극 | - |
역사 | ||
폴리비오스 | - | 역사 40권 |
<70인역 성서> | - |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