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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9 16:09:55

성송연


파일:external/photos.hancinema.net/photo56014.jpg

1. 개요2. 특징3. 명대사4. 러브라인5. 줄거리
5.1. 1~4회5.2. 5회 ~ 31회5.3. 32회 ~ 45회5.4. 46회 ~ 61회5.5. 62회 ~ 77회
6. 수상

1. 개요

2007년 ~ 2008년 MBC 창사 46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이산》(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의 히로인.

아역(1~4회)은 이한나가, 성인 역(5회~74회)은 한지민이 연기했다.[1] 77부작 중 74회에서 죽음으로 하차하지만 마지막회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75, 76회를 제외하고 사실상 전회차에 등장한다.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나 허구적 설정이 많이 첨가되었다. 참고로 의빈 성씨의 실제 이름은 성덕임이다.[2]

2. 특징

3. 명대사

4. 러브라인

5. 줄거리

5.1. 1~4회

"임오년 윤5월 열아흐레, 당시로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내 운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첫 회 송연의 나레이션)

이름은 성송연[4]. 원래 도화서 화원의 딸이었으나[5] 역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9살 터울의 남동생 성송욱[6]은 부잣집으로 입양보낸다. 그리고 자신은 친척의 소개로 궁녀로 입궁하는데[7], 이 때가 마침 임오년(1762년, 사도세자가 죽은 해)이라 입궁 첫날 밤 정조(이산)와 인연을 맺는다.

산은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음식을 전하기 위해, 송연은 선배 나인들이 야참을 가져오라고 시켜서 시민당을 서성이다 만나게 된 것.

다음 날 궁 밖에 나간 할아버지 영조를 설득하기 위해 산과 송연은 함께 궁 밖으로 나간다. 이 때 도망치다 다친 송연의 팔에 피가 나자 산이 '금색 술띠'로 묶어주는데 이 술띠는 후에도 둘의 사랑을 상징하는 징표로 자주 등장한다.

산은 우여곡절 끝에 영조를 만나 애원하지만 사도세자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망연자실한다. 송연은 산을 돕다 궁에서 쫓겨나고[8], 둘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5.2. 5회 ~ 31회

10년 뒤, 송연은 도화서 다모가 되어 있다. 그리고 청국 사신단을 위한 잔치에서 도화서 별제 박영문의 수종다모로 입궁한다. 이 때 태감 왕유가 송연을 희롱하며 침소로 들이려 하는데, 이를 산이 구해준다.

화가 난 왕유는 다모가 하는 일이 뭐냐며 꼬투리잡고, 박영문은 송연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왕유는 그 말을 증명해보이라며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일부러 어려운 화제(영모화-기린)를 내지만 송연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화첩에서 이를 본 기억을 떠올려 완벽하게 그려내 왕유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다.

한편 노론 세력들은 청국 조공품인 백우포(흰 천)를 훔쳐 산을 곤경에 빠트린다. 이 때 송연이 황우포(누런 천)를 호분(흰색 안료)으로 염색하는 아이디어를 내 산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산은 도화서 별제 박영문에게 자신을 구한 다모의 그림을 보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어릴 적 송연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낸 그림 주제 "부용화만개 금향잔포의"(붉은 연꽃 활짝 피면 무명 저고리엔 금색 향기가 남아)에 따라 그린 그림을 보고 송연임을 알아본 산은 감격한다. 그렇게 둘은 재회하게 된다.

산은 송연이 그림에 재주가 있음을 알고 여자라고 안 되고, 신분이 낮아서 안 된다는 낡은 관습은 자신이 바꿀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또 청나라 여성 화원의 화첩과 화각붓을 선물한다.

한편 다모인 송연이 화사 경합을 보게 되자 강두치는 이를 막기 위해 송연에게 일부러 못 쓰는 안료를 재료로 준다. 이 때문에 송연은 안료없이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지만 당당하게 5등으로 화사 경합을 통과해 화원 교육을 받게 된다.

산과 송연이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된 화완옹주와 정후겸은 송연에게 접근한다.[9]

5.3. 32회 ~ 45회

효의왕후 처소에서 나오던 송연은 마침 효의왕후를 보러 온 산과 마주친다. 송연은 효의왕후와 함께 처소로 들어가는 산을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미쳤나봐 성송연..네가 감히 저하를"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산 역시 효의왕후를 앞에 두고도 송연 생각에 잠기지만 그 감정을 깨닫지는 못한다.[10]

산이 송연을 가까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된 효의왕후 처소 김상궁은 이를 혜경궁 홍씨에게 일러바치고, 혜경궁은 송연에게 청국 예부사에 가서 그림을 배우라고 강요한다. 그러면서 죽은 사도세자도 사가의 여인들을 가까이 해 영조의 눈 밖에 났다며, 산의 앞날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으면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송연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눈물로 떠난다.

떠나기 전 날, 산은 낮에 송연이 우는 모습을 보고 걱정되어 도화서를 찾는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장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송연은 산에게 서찰을 남기고 떠난다.

산은 송연이 떠나고 나서야 자신이 송연을 마음에 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혜경궁에게 말한다. 이를 또 효의왕후가 듣고 눈물을 흘린다(...)

송연은 청국에서 화원이 되지만 몇 년 뒤, 정변이 일어나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산과도 눈물로 재회한다. 영조는 송연을 불러 어머니 숙빈 최씨의 유품인 쌍 옥가락지를 건네며 맑은 심성으로 산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11]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며 숨을 거둔다. 산은 노론 세력들의 온갖 음해를 이겨내고 마침내 보위에 오른다.

5.4. 46회 ~ 61회

효의왕후는 산에게 송연을 후궁으로 삼고 싶다고 한다.효의보살 산은 송연을 독서당으로 불러 의사를 물으려 한다. 그런데 잠시 산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독서당에서 잠든 송연을 보고 혜경궁이 불같이 화를 낸다. 송연은 결국 후궁이 되는 것을 포기한다.

참고로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친정가문의 청지기의 딸인 의빈 성씨를 어린 시절 입궁시켜 곁에서 친히 길렀다고 한다. 그래서 정조 역시 의빈 성씨를 어린 시절부터 알아 왔으나 극중에서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극중에서 혜경궁은 산이 효의왕후에게서 끝내 왕자를 얻지 못한다면 반가의 규수 출신인 후궁에게서 왕자를 얻길 원하고 있었다. 실제로 홍국영이 자신의 여동생을 산의 후궁으로 들이려 할 때 몹시 반가워 했으며 그녀가 입궁해 원빈 홍씨가 되자 임신 여부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했다.[12] 그러다 보니 자연히 중인 신분에 불과한 송연이 후궁이 되는 걸 반대했던 것.

후에 어진화사가 된 송연은 산의 얼굴을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도화서를 찾은 산은 송연이 우는 모습을 보고 후궁이 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었냐고 묻지만, 송연은 겨우 화원이 되었는데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애써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13]

이 때 마침 송연의 잃어버린 동생 송욱이 천주교 신자가 되어 등장한다. 송연은 송욱을 숨겨준 죄로 의금부로 압송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송연은 송욱과 눈물로 재회하며 파주 교하현으로 떠난다.

5.5. 62회 ~ 77회

산은 송연을 데리러 직접 교하까지 간다. 송연은 애써 거절하지만, 산은 송연이 오지 않으면 궁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밤이 다 되도록 송연을 기다린다. 산에 대한 마음과 혜경궁의 반대 사이에서 갈등하던 송연은 결국 산과 함께 입궁한다.[14]

승은을 입고 소용(정3품)으로 봉해진 송연은 문효세자가 되는 원자[15]을 출산하고, 이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서 의빈으로 승급한다.[16] 그러나 문효세자가 고작 5세 때 홍역으로 요절했고, 이때 둘째[17]를 임신 중이던 송연 역시 장결병(간경화)에 걸려 앓기 시작한다.[18] 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송연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일체의 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으로 산의 어진을 완성한 뒤 병으로 태아와 함께 숨진다.

이후 산이 의빈묘와 효창묘(문효세자의 무덤)에 들르는 장면이 나온다.[19]

마지막회(77회)에서는 궁을 향해 걸어가는 산과 송연의 모습으로 다소 몽환적이고 동화같은 엔딩을 맞는다.

6. 수상

배우 한지민이 이 역할로 2007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1] 이한나와 한지민은 7년 후 영화 《플랜맨》에서도 함께 출연하였다.[2] 다만, 의빈 성씨의 휘(事實)가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드라마 이산을 제작하던 때라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3] 그래서인지 2021년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에서는 이쪽 계열로 캐릭터 묘사가 바뀌었다.[4] 실제 의빈 성씨의 이름은 '덕임'.[5] 실제 의빈 성씨는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정조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 가문 청지기의 딸이었다.[6] 가공인물이다. 실제 의빈 성씨에게는 두 명의 오라버니와 언니가 있었는데 오라버니 성식은 어영청 군교, 언니는 영의정 홍낙성(혜경궁 홍씨의 6촌 형제)의 첩이었다.[7] 실제로는 혜경궁 홍씨가 궁녀로 들인것이다.[8] 실제 의빈 성씨는 계속 궁녀로 있었다.[9] 이는 혜경궁이 송연을 오해하는 계기가 된다.[10] 실제 역사에서는 정조의 일방적 구애에 가까웠다.[11] 이병훈 PD-김이영 작가의 후속작 《동이》에서 숙종이 숙빈 최씨에게 옥가락지를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12] 참고로 혜경궁은 이때 자신의 친정가문에서 왕자를 낳을지도 모르는 후궁이 생긴다고 기뻐했지만 이 역시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설정이다. 실제 혜경궁은 홍국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니 그 여동생인 원빈 홍씨도 좋게 생각했다고 보기 어렵다.[13] 실제 의빈 성씨가 정조의 승은을 거절한 까닭은 효의왕후가 아직 임신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14] 실제 정조는 의빈 성씨에게 두 번째로 거절당하자 의빈 성씨의 사속(궁녀가 부리는 하인)에게 책벌을 내렸고(...) 그제야 의빈 성씨는 정조의 마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15] 실제 문효세자의 이름은 '순'이지만 극중 '향'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문효세자의 이름 '순'은 누릴 향 자에 해 일 자를 더한 한자인데, 제작진이 이를 누릴 향 자로 오인한 것이다.[16] 실제로는 성씨가 의빈이 된 것은 1783년 2월, 의빈이 낳은 원자가 세자로 책봉된 것은 1784년 7월이니까, 의빈이 된 것이 먼저이다.[17] 실제 의빈 성씨는 문효세자에 이어, 생후 2개월이 못 되어 요절한 옹주를 출산했으며, 셋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죽었다. 그러나 당시 극이 종영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원활한 전개를 이유로 사망 당시 송연이 임신하고 있던 아이를 둘째로 설정했다. 여담이지만 극 방영 당시에 출간된 소설 '이산 정조대왕'에서는 송연과 함께 죽은 이 태아가 딸임이 암시된다. 송연 사후에 산마저 승하하자 산이 송연, 문효세자,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있는 환영을 송연의 옛 친구인 박대수(이종수)가 봤다는 묘사가 나온다.[18] 의빈 성씨가 병사한 것은 맞으나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다.[19] 실제로 정조는 의빈 성씨를 아들 문효세자의 곁에 묻고 자주 거둥(왕의 행차)하였고 때문에 오늘날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고개의 이름이 거둥고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