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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23: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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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법률상으로는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으나, 의학계에서는 죽음의 기준으로 봄. }}}}}}}}}

1. 개요2. 현대 한국에서의 장례
2.1. 장례 비용2.2. 상조 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2.3.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2.3.1. 수의
2.3.1.1. 삼베 수의 일제 잔재설
2.4. 증명서2.5. 인터넷 데이터2.6. 장례식 절차의 축소?
3. 문상 및 장례식장 방문 예절4. 동물과 인간의 장례5. 장례방식6. 종교별 장례법7. 시신 처리 방식8. 그 밖의 장례 방식9. 장례식 풍경
9.1. 한국9.2. 해외
9.2.1. 테마 장례식
9.2.1.1. 테마 장례식 종류
9.3. 운구중 버스전용차로 이용 관련
10. 공영장례11. 반려동물 장례식12. 관련 용어13. 장례식을 다룬 대중매체14. 언어별 명칭1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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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례(葬禮)는 "장사(葬事)[1]를 지내는 일"을 뜻하고 동의어로는 장의(葬儀)가 있다. 장례식(葬禮式, funeral)은 이것을 치르는 의식을 뜻한다.

보편적인 방식과 절차가 지방, 문화권, 종교 교리, 시대에 따라 다르며 문화이기에 시시각각 달라지나, 보통 망자를 저승으로 무사히 보내준다는 관념과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현대 한국에서의 장례

현대에는 고인을 장례식장으로 모시면 장례지도사가 장례 일정을 잡아주게 되며 보통은 3일장을 진행하며 1일차 : 안치실에 안치, 분향소 설치 → 2일차 : 입관 → 3일차: 발인으로 진행된다. 짧게 진행할 경우에는 안치 발인이라 해서 안치 후 24시간이 지난 후에[2] 입관을 하고 바로 발인 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사의 경우에는 가족이 많은 경우 집안 어른들이 진행을 하거나 집안 어른들도 잘 모를 경우 장례지도사가 제사를 안내해 준다.[3] 제사가 지방이나 동네, 가정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장례지도사가 안내해줄 때 다른 부분이 있어도 중요한 것은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기며 넘어가면 된다. 보통 국의 위치나 제사 방식으로 지적이나 문의가 올 경우 집안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면 된다 하고 자리를 뜨게 된다. 종교에 따라서 스님, 목사, 연령회장(천주교)과 입관시간을 조율하며 스님이나 목사의 경우 입관 전에 입관 전, 입관할 때, 또는 입관 후에 예배하는 등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참조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치르던 장례 방식은 매장이었지만, 현대 한국에서 대부분의 경우는 화장을 거친 다음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8년 들어서는 90%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특별하지 않는 이상 3일장을 하게 될 경우 장례 순서는 보통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병원에서 사망하여 병사할 경우
  1. 원하는 장례식장 연락
  2. 운구 후 상담[4]
  3. 빈소에서 초제나 예배
  4. 다음날 입관[5]
  5. 저녁 상식(제사)이나 예배
  6. 계산 후 발인[6]
순으로 이루어진다.

자택이나 요양원의 경우[7] 원칙으로는 타살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경찰에 신고를 하여 조사를 하고 외인사인지 병사인지 확인을 하고 모시는 것이 맞으나 무턱대고 112로 신고할 경우 살려야 하는 사람을 못 살릴 수 있으므로, 잠자듯 천수를 누리다 사망한 경우에는 비긴급 민원상담인 110으로 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찰에 신고해서 망자를 앞에 두고 요란해지는 것을 가족과 이웃들이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에[8][9] 상조회나 장례식장과 연락을 통해 먼저 장례식장으로 운구를 한 다음, 병원 장례식장은 응급실에서 검안을 하고, 사설 장례식장은 따로 검안의를 불러서 검안을 할 수 있다. 위의 1번과 2번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보통 병사로 나올 경우 위의 절차와 같이 운영되며 이상이 있으면 외인사나 기타 및 불상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때는 위에서 4번인 입관을 대기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검시를 받아야 한다. 이후 검시필증이 발행되면 입관을 진행한다. 요양원은 보통 병사로 나오지만 아주 가끔 검안의가 학대의 징후나 의심스러운 경향이 있다면 외인사, 기타 및 불상으로 나오게 된다.

외인사, 기타 및 불상의 경우 몇 가지 추가사항이 있는데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해서 검시를 받은 후에 검시필증을 받아야 한다. 검시필증이 나오기 전에는 시신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 응급실의 경우에는 해당병원 장례식장 안치실로 우선 옮기게 되며 야외의 경우 원하는 장례식장으로 옮기게 된다. 보통 다음날 점심 때면 발행이 되며 그동안 1일차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다음날 검시필증이 발행되면 입관을 하게 된다.

2.1. 장례 비용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물가상승률을 더해 장례비용을 계산한 결과 평균 1,8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추산했다.

장례비용은 장례식 전체과정을 지원하는 장례지도사, 접객도우미, 차량 등을 제공하는 장례서비스 비용이 평균 500만 원, 빈소, 안치실, 입관실 등 장례식장 시설 이용료가 하루 최소 45만 원에서 355만 원, 조문객 음식 비용이 1인당 2~3만 원, 이외에도 제단 꽃, 제수 음식, 장지 및 봉안함 비용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장례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장례비용을 상속세에서 공제받는 방법과 상조에 가입하는 방법이다.

장례식에 직접 사용한 비용 중 1,000만 원은 상속세에서 공제되며, 장지 비용도 500만 원까지 공제할 수 있어 지출증명서를 제출하면 최대 1,500만 원을 상속세에서 차감받을 수 있다.

상조 서비스는 가입한 연도 당시 가격으로 비용을 낼 수 있어 빨리 가입하는 것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보통 매월 3만 원 가량 납부하며, 상품에 따라 금액이 다른 경우도 있다.

2.2. 상조 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상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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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

장례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하지 않았어도 상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장에는 전문 장례지도사가 상주하므로 장례 비용만 지불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처리 해준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콘티를 짜주며, 진행하는 대로만 하면 된다. 상주는 장례 절차에 신경 쓸 여지는커녕 슬플 여지도 없이 매우 바쁘다. 연락하랴, 조문객 받으랴, 여기에 장남/장손이라면 설상가상이다. 친인척이 많다면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잠은 커녕 잠시 쉴 시간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쁘다.

3일 간 장례지도사들도 장례식장에서 외박하며 상주의 곁을 지킨다. 장례지도사들은 시신을 만지는 일, 긴 외근시간과 환경,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저임금 때문에 (망자의 마지막 길을 보내주는 좋은 일을 해준다는 인식과는 별개로) 웬만한 3D업종 뺨치는 직종이라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 이는 상조회사가 더욱 악독하다. 대학의 장례지도학과가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상가가 없을 경우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많이 쉬게 된다.

장례식을 치르거나 상주가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국가유공자나 기초생활수급자는 그에 알맞은 증명서를, 또한 의사에게 공식적으로 발급받은 고인의 사망증명서를 반드시 장례식장에 제출해야 한다. , 유골함, 수의, 화장터, 봉안당(납골당) 역시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카탈로그로 가지고 있다. 맨손으로 찾아가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 매장은 수목장림 등이 아니라 개인적인 매장터가 필요한 경우 직접 산역꾼[10]을 고용해야 하며, 바다 한가운데에 유골을 뿌릴 경우 자신이 탈 배를 미리 구해야 한다. 물론 이 경우도 장례지도사에게 말만하고 비용만 지불하면 다 알선해 준다.

즉, 사망진단서(또는 시체검안서)[11]를 가지고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여[12] 장례식장에 가기만 하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해준다. 라는 것 때문에 예전에는 장례식장에서 폭리를 취하더라도 일반인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근래에는,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평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말그대로 장례식장이 하라는 대로 다 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으나 상조업체가 난립하면서 그나마 폭리 수준이 조금 꺼졌다.

개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영정으로 쓸 사진뿐이다.[13]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가족 사진을 찍을 때 사진 하나 찍어둠으로써 영정 사진으로 대용해도 되고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영정 사진으로 대용한다. 또는, 회갑, 고희, 팔순 때 촬영한 사진도 동원되기도 한다. 이 경우 아무래도 사진이 작기 때문에 화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요즘은 대행업체가 있기 때문에, 업체에서 알아서 편집/보정을 해준다. 그냥 일상복 입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간단하게 찍은 사진이라도, 업체에서 컴퓨터로 보정/편집해서 남자의 경우 보통은 정장, 여성의 경우 정장 또는 한복을 입고 있는 격식있는 사진으로 편집해서 준다. 군경의 경우 생전 입어본 적이 없는 추서 계급이 달린 정복을, 혹은 교육생 상태인 경우 생전 입어본 적이 없는 정복을 착용한 영정 사진도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김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서 유언장에 장례식 방식 및 장소를 미리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 좋다. 집안에 여러 종교가 있는 경우, 어떤 형식으로 장례식을 해주기를 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본인이 미리 자신의 유언장유산 분배와 함께, 장례식의 구체적인 견적을 어느 정도 선으로 제시해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예 자식이 이를 알고 부모 뜻대로 장례를 치러 드림과 동시에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겠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에 가면 영정사진 액자를 얼마로 할지, 국화를 얼마짜리 국화로 놓을지, 예복은 얼마로 할지 등등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 때 자식된 입장에서는 제일 저렴한 50만원짜리 액자로 하면 왠지 죄송한 마음 때문에 수백만 원짜리 액자를 구매해서 사진을 모시게 되고, 그런 식으로 국화도 50만원 짜리는 죄송하니까 백 단위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예복도 조금 더 비싼 것으로, 생에 정말로 1번밖에 없는 예식인데 유골함은 좋은 유골함으로 선택하게 된다. 부모의 은혜는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서 갚을 게 아니라 지금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드리는 게 최고라는 걸 알지만, 막상 장례라고 하는 현실에 부딪히면 간소함을 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대에 와서는 고인의 뜻에 따라 허례허식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부모에게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것도 고인의 뜻대로 해드림과 동시에 허례허식 방지를 위해서다.

천상 장례식장, 화장시설, 봉안시설의 비용은 같은 지역이라도 크게 다른데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알아보는 것인데 법적으로 벽에 비용과 제공되는 항목을 게시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상담받으면서 비교할 수 있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종파와 목사마다 입관 참관 예절 방식이 다른데 입관 전, 입관 중, 혹은 입관 후에 예배를 본다. 목회자와 연락을 통해서 입관방식과 스케줄을 확인하게 된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연령회장이 천주교 장례예절을 하기 때문에 연령회장에게 입관 시간을 정하게 하고 장례예절의 순서는 보통 얼굴 덮기 전에 장례예절 관에 모시고 장례예절 입관이 끝난 후 영결식장에서 미사를 진행하게 된다. 천주교의 연령회장이나 회원들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 소지자인 경우가 많으며 모든 절차를 직접 진행한다.

기독교가 아닌 일반 불교유교식으로 진행할 경우 성복제, 발인제를 지내게 되는데 이런 제사의 경우 방법을 모른다면 장례지도사가 진행을 대신 해 준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은 제사란 것이 지방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대신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현대에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 묵념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현역 장병이 공무 상[14] 순직한 경우 보통 국군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되며[15], 서울지방경찰청/경기/인천경찰청 등 수도권 경찰관은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을, 그 외의 지방청 경찰관과 전국 소방관은 외부 장례식장을 이용한다.[16] 경찰관과 소방관의 경우 문상객에게 대접할 음식과 순직 경찰관과 소방관에 바칠 제물은 각 경찰상조회와 소방상조회에서 준비한다.[17]

2.3.1. 수의


실제로 서울에서 삼베수의가 아닌 평상복을 수의로 하자는 캠페인이 있었으나 1회에 그치게 되었는데 화학섬유에 의해 화장로 운영관리 및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화장로가 생각보다 많이 민감하기 때문에 종이관, 평상복에 의한 손상이나 화장지연이 자주 발생하며 2022년 중반 중국의 무역 제재로 오동나무 1.5 관이 들어오지 못하자 종이 재질의 관이 많아졌고, 이에 지자체 화장시설에서 종이관에 의한 문제로 각 장례시설, 상조회에 공문을 보낸적이 있다. 하지만 지역마다 종이관에 대한 인식이 다른 듯하다. 2014년 기사를 보면 종이관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수원시의 경우 매월 70~90개의 종이관이 사용된다고.[25] 탄소배출이나 장례식 비용을 생각하면 나무관보다 종이관이 나은 데다, 땅에 묻을 용도도 아니다 보니 비싼 나무를 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삼베수의를 입는 이유중에 옷 자체가 매우 크기때문에 고인의 체형을 상당부분 조정해주는 효과(대부분의 노인은 사망시점에서 매우 왜소하기 때문에)가 있다는 점인데, 그냥 평상복 하나만 입혀놓으면 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가 삼베수의를 권유한다. 그로 인해 2019년 이후 평상복을 수의로 하자는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평상복은 장례식장이나 장례지도사에게 수입이 안 된다는 문제가 큰 데다, 유족들은 상심한 상태라 세세하게 체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하지만 삼베도 여러 겹을 겹쳐 입는 거에 불과하기에, 평상복도 내복을 입히거나 여러 겹 입히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이며, 아예 서양처럼 양복을 입힌다는 선택지도 있다. 즉, 삼베는 100% 바가지 쓰면서 사야하는데, 평상복으로 대체하면 그 수입이 사라지므로, 장례식장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통찰력이 있는 어르신들은 죽기 전에 수의 대신 평상복이나 생전 가지고 있던 양복 혹은 한복으로 해달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한다. 평소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히던 옛날 한국 전통에도 맞고, 삼베수의라는 일제 잔재도 극복하고, 바가지를 피해서 자식들의 경제 사정도 챙겨주는 1석 3조의 효과이므로. 양복이나 한복의 경우 웬만한 가정에서는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이 한국의 전통이었으므로 현대 한국의 전통 수의는 양복 혹은 한복이 되는 셈이다.

현대 일본, 미국, 유럽 및 중화권은 장례식을 할 때 고인에게 양복을 입힌다.[26] 하지만 평소에 입던 옷으로 입관을 하게 되면 옷이 꽉 끼기 때문에 시신을 자주 움직이게 되고 체액이 흘러나오게 되는 등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노인분들의 경우 욕창이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고 많이 왜소하게 보이기 때문에[27] 마지막 가시는 길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장례지도사들이 추천하지 않는다. 삼베가 질이 안 좋다고 터부시되는데 삼베에는 기본적으로 항균, 독성이 있기 때문에 매장할 경우 벌레를 잘 막아주고 거칠고 흡습성이 떨어져 배출이 잘 되기 때문에 체액이 잘 배출되어 육탈이 잘 된다. 장례식장이나 상조에서 판매하는 수의를 보면 보통 가장 저렴한 1~2호는 면이나 화학섬유로 되어 있는데 화장 전용으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매장의 경우에는 사용이 불가하며 수의가 비쌀수록 삼베 함유량이나 풀을 많이 먹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의는 많이 거칠기 때문에 입관 시 장례지도사들의 손이 많이 까지게 된다. 이는 물론 99%의 케이스인 자연사한 노인들의 경우고 젊은 층이 고인일 경우 서양식 정장이나 한복 등을 수의로 입혀도 따로 제지하지는 않으며 유가족 의사를 존중해준다. 최근엔 조금씩이나마 방부처리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문제는 전혀 없다.

수의를 생전에 입던 옷이나 정장을 준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수입이 되지 않기에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는 권하지 않는다. 매장의 경우에는 화학섬유로 된 평상복은 육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거부된다. 삼베와 똑같은 면 100%라면 괜찮다.

화장의 경우에는 우선 옷의 단추를 모두 제거하며 지퍼의 철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유골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양복이나 생전에 입던 옷을 화장하는경우, 화학섬유로 된 옷일 경우 화장 화로에서 화학섬유에 의한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하여 화장로에서 화장을 거부하기 때문에, 100% 천연섬유로 된 옷을 입히는 게 좋다. 면이든 양털이던, 비단이든.

물론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는 수입이 안 되니 눈치를 주겠지만, 당당하게 고인의 의사를 따라 한복이나 정장 등을 입히는 경우도 최근 많아졌다. 사실 수의가 워낙 비싸고 모양새가 안 좋아 젊은 사람이 요절하면 수의를 평상복으로 입힌다.[33]
2.3.1.1. 삼베 수의 일제 잔재설
위 항목 서술의 각주에서도 언급되어있지만 삼베 수의가 일제 잔재라는 주장이 있다. 기사, 기사 2,

다만 조선 후기 때 비단 수의를 쓰는 것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포(삼베)의 사용이 청렴함과 검소함을 상징한다며 이미 삼베 수의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제 아무리 일제 시기 때라지만 한국이 유교 문화로 인해 일제가 시킨다고 부모의 수의를 따랐을 것 같지 않다는 주장도 있지만, 식민지라는 현실과 가난 앞에서는 답 없다. 부모가 지어준 소중한 이름마저 강제로 바꾸었고, 그 소중한 상투마저 잘랐다. 당장 한국어와 한글마저 쓰지 못하도록 했던 시대에, 유교 문화니까 일제가 시킨다고 따랐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일제의 무단&문화통치는 장난이 아니다. 한국문화 말살정책을 펼쳤던 일제가 한국의 유교문화라는 이유로 장례식 문화를 그냥 놔둘 이유가 없다.[34]

당연히 일본식 장례를 강제로 따랐을 가능성이 높으며, 유교 문화를 생각하면 오히려 삼베 보다 좋은 재질로 부모님을 장사 지내고 싶어했을 것이다. 당장 조선후기까지 비단이 수의로 쓰였다는 게 그 증거다.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옷이 비단이니, 부유한 집에선 비단옷을 수의로 입힌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입고 비싼 옷을 버리자니 너무 낭비기도 하고, 영조시절부터 근검 절약을 강조하는 기풍도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이 비단이 비해 싼 삼베를 추천했지만, 조선시대 내내 부모에 대한 효를 엄청 강조하여, 문종같은 임금조차 3년상 지내다가 몸이 나빠져 요절한 나라에서, 돌아가신 부모에게 비단 대신 싼 삼베옷을 입히세요라는 캠페인이 쉽게 정착될 수가 없다. 당장 현대 명절 제삿상을 봐도 언론에서 아무리 간결하게 차리라고 해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게 일상인 나라다.

즉, 삼베가 널리 퍼진 건 어디까지나 조선후기 삼정의 문란과 세도정치로 인해 가혹해진 수탈을 거치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나라가 가난해져서 비단같은 사치를 부릴 수 없게 되었고, 6.25 전쟁마저 터져서 나라가 쫄딱 망한 수준까지 가 버려, 가진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히던 문화가 쇠락했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와 식민지라는 현실 때문에, 일제가 강요한 일본식 장례문화인 삼베가 남았을 뿐이다. 전통문화였던 가장 좋은 비단옷이나 면 한복은 고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가족이 계속 물려입어야 하니까.

그리고 삼베의 장점은 비싼 가격이란 단점 하나로 모두 무효화된다는 점에서 새로 살 필요 없는 양복보다는 못하다. 저급 중국산 수의가 유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애들과 장례식장만 배불려주니 경제적으로도 굳이 지켜야 할 문화가 아니며, 굳이 살 필요가 없는데 한 번 불에 태우려고 수십만~수백만을 쓴다는 거 자체가 낭비이자 환경파괴다. 무엇보다 저급 중국산 수의가 90% 유통되는 현실반론에서 굳이 삼베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평상복은 0원인데다 조선시대 때 비단 옷을 입혔던 것을 현대화한 것이지만, 삼베는 추가로 돈이 들기 때문.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장례식 비용 때문에, 고독사한 친척의 사체를 인수거부하고 무연고로 장례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기다 고인은 입은 줄도 모르고, 딱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다. 그야말로 가장 재화낭비이자 전통문화 및 환경파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현대 대한민국에서 양복 같은 서양식 복장을 입히고 입관하는 것도 생전 입던 가장 좋은 옷을 입히던 한국 전통의 재해석,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2.4. 증명서

장례식 이후에는 학교, 회사 등에 증명서를 내야한다.

공설묘지, 공설화장시설, 공설봉안시설, 공설자연장지, 국유지에 조성된 수목장림 그 밖의 자연장지, 법인묘지, 사설화장시설, 사설봉안시설 및 사설자연장지의 설치(조성)·관리인은 매장·화장·봉안 또는 자연장을 한 경우에는 소정의 증명서(예: 사망증명서, 시신 화장 증명서)를 신고인 또는 신청인에게 발급하고, 소정의 관리대장(예: 봉안 관리대장)을 기록·보관해야 한다.[35]

2.5. 인터넷 데이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례절차 중에 고인의 생전 인터넷 활동기록이나 데이터 등 사생활 정보도 함께 처분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카페 가입내역, 각종 사이트 계정, 기타 등등의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며, 디지털 장의사라고 하여 고인의 가입정보 및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지워 주는 직업도 등장했다.

또한 이와 유사하게 소위 "디지털 유산"에 대하여 상속권을 요구하면서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즉, 남겨진 고인의 정보들을 보호해 주거나 내지는 삭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가족들에게 유산상속 개념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흔히 '잊힐 권리 논쟁'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도 의외로 발빠르게 법제화 논의를 밟고 있는 중이다. 기사 일부는 그것들에 대한 당연한 상속을 주장하지만, 고인의 사생활일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태.

간혹 유족의 결정으로, 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지우지 않은 흔적은 하나의 작은 디지털 분향소가 되어 네티즌들의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의 피해자 '오카보노'가 운영하던 블로그나 세월호 희생자 '하루카씨'의 마지막 글[36], 종현이 쓰던 SNS와 같이 고인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상의 글들이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현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군 인트라넷에서는 참사로 순직하는 인원이 발생할 때마다 임시로 분향소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페이스북 환경설정에서는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포스팅/사진/영상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는 "기념 계정"이라고 해서, 사망 증명서 또는 뉴스 링크와 함께 고객센터에 문의 할 경우 해당 계정은 로그인이 막히며[37] 프로필에는 고인을 추모하며... 라는 문구가 생긴다. 또한, 탐색 페이지에 노출되지 않고 게시물은 그대로 남고 공유 대상도 그대로다. 아니면 그냥 계정을 삭제 해버릴 수도 있다.#

Apple, 삼성의 경우 유산 관리자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해당 기능을 사용하여 자신의 가족이나 주변인을 유산 관리자로 미리 지정해두면 계정의 주인이 사망했을 때 사망 관련 증명서들을 제출할 경우 일부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을 부여받는다.Apple ID의 유산 관리자를 추가하는 방법, 삼성 유산 관리자

2.6. 장례식 절차의 축소?

현대 한국에서 최근에는 주로 진행되는 3일장의 형태가 많이 변형되고 있다. 과거에 5일장도 많이 시행되었으나 5일장도 현대에 들어서는 거의 진행하지 않는 유형의 장례식인 것을 생각한다면 3일장도 미래에 가서는 사라지거나 크게 줄어들 수 있는 장례식 문화라는 점이다.

장례식 문화가 축소되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현대 사회 들어 핵가족화가 이뤄지면서 가족의 개념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과거에 비해 장례식에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줄었기에 과거처럼 며칠동안 조문객을 기다릴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판데믹 이후로는 장례식이 하나의 큰 가족 행사처럼 진행되는 움직임에서 매우 축소된 분위기인지라 장례식의 간소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장례식 비용 또한 큰 걸림돌로 꼽힌다. 장례식과 같은 경우에는 매우 특수한 행사이기도 하지만 3일장과 같은 정식 절차를 전부 밟고 치룰 경우 드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유교에서 장례식 절차를 검소하고 검약하게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각 집안의 사정을 고려해서 집안의 수준에 맞게 검소하고 검약하게 진행하는 것인데 현대 한국에 들어서는 3일장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루지 않으면 다른 가족과 비교 당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로 인해 가정 수준에 맞지 않는 3일장이 이곳저곳에서 성행하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가 장례식 문화나 절차에 대해 접해볼 기회도 상당히 적어졌고 관심도 급격하게 낮아진터라 전통적인 절차의 장례식이 서서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도 젊은 세대가 처음 장례식장에 갈 경우 장례식 문화를 잘 몰라 어리숙하는 모습을 개그 소재로 삼은적이 있지만 실제로도 최근 한국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는 가족의 범위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3일장과 같은 형태의 장례식이 비효율적이고 매우 피로하다는 단점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장례식이 발전하고 바뀌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기정사실화다.[38]

장례문화적 요소보다 화장 등의 후속절차가 미비해 장례절차가 길어지는 사례들이 대다수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2일장과 같은 간소화된 형태의 장례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문제로 독거 노인, 고독사등의 문제가 떠오르면서 연고나 가족이 없는 사망자의 처리 또한 쉽지 않다 보니 앞으로 이러한 형태의 간소화된 다양한 유형의 장례식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나 한국이 심각한 저출산 사회로 향하게 되는 상황이라 몇십년 뒤에 장례를 치룰 젊은 인력들이 부족한만큼 장례의 간소화와 별개로 장례식 관련 업종의 인력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 문상 및 장례식장 방문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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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물과 인간의 장례

흔히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망자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다루기도 한다.[39] 동물도 지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인식하긴 하지만, 일정한 절차를 가지고 의례로서의 장례를 치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의 경우, 건기에 새끼가 견디지 못하고 죽으면 뼈의 냄새를 맡고, 모여서 애도한다. 까마귀, 어치, 제비 등의 도 동료가 죽으면 무리 전체가 그 근처에서 울면서 머물다가 떠난다. 이처럼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지 않은 동물들의 특성이나,[40] "의례로서의 장례"는 인간 밖에는 치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초의 매장 풍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왜 이와 같이 매장이라는 새로운 행위를 했느냐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망자의 시신은 썩은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들을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로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했기에, 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시신을 땅 속에 묻는 행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41]

이후 시간이 흘러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장례로 볼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동굴 밖 따로 지정한 곳에 망자의 시신을 묻고, 망자가 생전에 즐겨 사용한 석기 도구류, 망자가 생전에 즐겨 착용한 장신구 종류를 시신과 함께 묻어 주었다고. 즉, 망자의 소유물이나 재산이라고 여겨졌던 물건을 죽어서까지 사용하라고 함께 넣어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원시적인 믿음인 셈.

다만 호모 날레디의 집단 매장 및 장례를 치른 흔적과 물건을 망자와 같이 매장을 한 것도 발견되면서 장례 문화는 호모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5. 장례방식

6. 종교별 장례법

당연한 말이지만 국내의 장례법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거나 하여 설령 천주교개신교장이더라도 유교장의 풍습을 아예 외면 하진 않으므로 엄격하게 특정 장례법에 완전히 맞추기보다는 양쪽의 예절을 따져보고 절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개신교장이면서도 절을 인습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장이든 샤워나 머리를 감는 행동은 실례라는 인식이있지만 기본적으로 유교식으로 성복을 한 후에는 목욕재계를 했다. 현대에는 간단하게 머리에 물을 묻히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집안에 따라 다르며, 아예 유족 측에서 각 조문객이 믿는 종교 방식대로 하라고 퉁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나 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와 그 전통을 따르는 이들이 비교적 골고루 분포하는(=주도 종교가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고인의 장례식에는 다양한 종교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골고루 조문하는 경우가 흔하고, 이들을 모두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각 종교의 장례법간에 어느 정도의 절충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다른 조문객들은 절을 하는 분위기라도 고인의 영정 앞에 절하는 것을 금지하는 개신교인들은 절을 묵념으로 대체하고, 이 역시 적절하게 조의를 표한 것으로 인정받는 식. 가끔 자신의 종교나 의례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이들이 다른 장례법에 따른 조의를 문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이들은 대부분 빈축을 사게 된다.

6.1. 불교

불교화장을 주로 한다. 불교의 화장은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는다. 종파에 따라서 칠공을 한지로 막고 그 위에 먹으로 눈, 귀, 입 등을 표시하는 법도 존재한다. 이후 유골을 부수어 유골함을 만들고 부도에 안치한다. 덕망이 높은 승려는 생전에 업적을 필적하여 탑에 모셔두곤 한다.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리는 공덕의 표시로 사용되며 유골과 함께 보관되거나 사리와 유골을 따로 안치한다.

이는 신자(신도)가 아니라 스님들의 장례를 치르는 방식이며, 불교 신자의 경우에는 유교식으로 치르되 나무로 된 염주,[53] 다라니경을 관에 넣거나 명정[54]에 연꽃을 그려넣는다. 고인이나 유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스님들이 빈소를 찾아와 입관식ㆍ영결식ㆍ화장 때 염불을 외며 고인의 명복을 비나 기독교(천주교)와 달리, 염습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스님이 제례를 주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장례지도사가 주도하기 때문이다.[55] 간단히 말해 유교식으로 하되, 입관에 들어가는 물품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6.2. 유교

유교매장의식을 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장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화장묘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매장 방식이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56] 보건복지부 장사정보시스템에서 설명하고 있는 전통 유교식 장례 절차는 총 19개에 달한다. 아래의 설명은 위 링크의 설명을 기본으로 하므로 유교의 의례서에 따른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링크를 방문하길 추천.

한국 유교는 동네나 지방, 집안마다 그리고 집안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절차나 형식이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고인을 기린다는 마음만 중요하게 가지면 된다는 거다. 현대에는 장례지도사가 제사방식도 안내해 주고 3일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57] 아래 내용과는 다른부분이 많이 있다.

유교적 절차에서는 임종 전부터 의례가 시작된다. 우선 '천거정침'이라 하여 자리를 옮긴다. 임종을 맞는 분을 그 분이 평소 거처하시던 곳인 정침에 모시는 절차로, 유교적 세계관에서 안정된 죽음은 죽음의 장소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침'에 모신 상태로 임종하지 않은 모든 죽음을 '객사'로 치기도 한다.[58] 이어 사람이 죽으면 첫 절차로 고인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 북향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세 번 '복(復)'을 외친다.[59] 죽은 이의 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초혼'[60]이라 하며, 이때 외치는 말을 따라 '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극이나 중국역사드라마에서 황제나 큰 인물이 죽으면 내관이 지붕에 올라가 웃옷을 흔들면서 죽음을 알리는것이 이것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왕이나 황제의 죽음이라면 '상위복(上位復)[61]', 왕후나 황후의 죽음이라면 '중궁복(中宮復)'이라 외친다. 집안에 따라 이 단계에서 저승사자에게 대접하는 상인 사잣밥을 차려내기도 한다.

첫날 행해야 할 절차는 크게 네 가지이다. 상주와 그 외에 장례를 주관할 사람들이 문서담당, 금전출납 담당, 손님맞이 담당, 의례 주관자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상을 맞아 겉옷과 과 신발을 벗는 '입상주(立喪主)', 사후경직으로 시신이 굳기 전에 시신을 주물러 풀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수습하여 한지로 묶는 '수시(收屍)', 시신을 깨끗하게 닦는 '습(襲)', 사람들에게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이다. 사망 2일 후에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을 수 있도록 삼베로 감싸 묶는 것을 '소렴'이라고 하는데, 소렴 때 '반함'이라 하여 시신의 입 안에 흰 이나 엽전, 구슬 등을 물리기도 한다.[62] 일반적으로 수시와 습과 소렴을 함께 행하며, 그래서 염습이라 한다. 염습한 후 명정을 쓰며, 명정을 쓴 이후에는 가까운 사람은 들어와 조문하고 곡 할 수 있다. 이후 염습한 시신을 3일 혹은 5일간 살아 있는 이와 같이 대한 후 관에 집어넣는데 이것을 전통 절차에서 '대렴'이라 하며, 현대에는 흔히 '입관'[63]이라고 한다. 전통 절차에서 대렴을 3일차에 행하는 것은 부모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효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64] 입관시 시신이 관이 움직일 때마다 관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보공을 채운다.[65]

4일차에 '성복(成服)'한다. 모든 복인(服人), 즉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다. 죄인이라는 의미로 삼베 옷을 입고 가슴에 최를 달며,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이때부터 탈상까지 쭉 상복을 입는데, 그 기간은 고인과 촌수가 얼마나 가까우냐 등에 따라 다르다.[66]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의 다섯 가지 복제를 '오복'이라 하며, 입는 기간은 다시 예법에 따라 다르다. 참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상에 3년간 입지만 재최는 1년, 9개월, 5개월 등으로 나뉘는 식으로 매우 복잡하다.[67] 이 오복에 따라 고인을 위해 상복을 입을 의무가 있는 친인척을 '유복친(有服親)'이라 한다. 이때부터 '조(弔)'를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문상(問喪)'이다.

또한 이 즈음부터 '치장(治葬)'을 시작한다. 무덤 터를 잡고 고유제, 즉 산신에게 미리 알리는 제사를 치른 다음 미리 묘혈을 판 뒤 회격이라 하여 석회를 바른다. 관도 준비하는데, 역청을 바르고 칠성판[68]을 까는 등 복잡하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관은 죽은 뒤에 머무를 유택이니 맏사위가 준비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정통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선비, 대부도 3개월을 지내며[69] 제후 5개월, 천자 7개월을 지낸다. 이 기간 동안 미리 무덤 조성 준비를 하는 것. 무덤에 들어갈 지석[70]을 준비하고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을 작성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조선 왕실의 치장은 '산릉도감'이라 하여 임시관청을 설치하여 감독했으며, 산릉도감의 제조는 가까운 종친이 맡았다.

그 후 상여에 옮기고 장지(시신을 매장할 위치)로 가는 의식을 '발인' 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미리 물건을 진열해두고 한 차례 제사를 올린 뒤 곡을 하는 등 발인 준비를 하는 것을 '천구'라 한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에서는 이 천구 절차에[71] 상여꾼들이 손발을 맞추고 상엿소리를 연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발인할 때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방상씨 탈을 앞세워 명정, 만장, 공포, 상여 등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행진한다. 상여 뒤에는 상주, 복인, 상복을 입을 의무는 없으나 친인척 관계인 무복친, 일반 조문객 순서로 따라가는데, 만약 죽은 사람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별세한 경우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복인의 뒤에 따른다. 발인 도중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노제(路祭)' 라고 한다. 원래는 발인하여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치르는 제사를 뜻하지만 현대에는 굳이 노제를 따로 준비하여 지낼 경우 고인과 생전에 연이 깊었던 곳을 둘러둘러 가는 식으로 진행된다.[72] 제주도에서는 발인 전날을 일포라 하여 일포날 문상을 간다.

을 넣은 뒤 흙을 다져 봉분을 만드는 것을 '급묘(及墓)'라 하는데, 묘혈에 관을 내려놓는 절차를 흔히 '하관'이라 부른다. 하관한 뒤 흙을 채우고 땅을 다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달구질'이라고 한다. 많이 할수록 좋으나 홀수회차를 맞춰야 한다.[73] 봉분을 만드는 동안 '제주'라 하여 신주에 글씨를 넣는 일을 진행하고, 제주가 끝나면 한 차례 제사를 지낸 뒤 발인을 따라 왔던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곡을 하며 돌아가는 것을 '반곡(反哭)'이라 하는데, 봉분이 완성된 뒤 후토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석을 묻는 것까지 지켜볼 자식이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 이제 우제를 치르는데, 총 세 번 치르며 가장 먼저 장사 당일 첫 번째 우제인 초우제를 지낸다. 장지까지 거리가 너무 먼 경우 집에 돌아와 치르지 못하고 여관 등에서 치르기도 한다. 십간을 번갈아 강일(剛日)과 유일(柔日)로 나누는데, 초우제 이후 첫 번째 유일에 재우제를 치르고,[74] 재우제 다음 첫 강일[75]에 다시 삼우제를 치른다. 일반적으로 고인을 땅에 묻은 뒤 사흘이 되면 삼우제까지 다 치르게 된다.

고인의 벼슬이 없거나 낮아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사지내는 유월장을 치를 경우 삼우제 다음 졸곡제(卒哭祭)를 치른다. 그 이상인 경우 3개월 후에 치른다. 이때부터 수시로 하던 곡을 멈추고 아침저녁에만 곡을 올린다. 흉사를 당해 치르는 제사가 점점 일상적인 제사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국가의 경우 길가빈군흉(吉嘉賓軍凶)의 오례 중 흉례가 길례로 전환되는 시점이며, 이 시점부터 임금은 상복을 벗고, 관례적으로 이 시점에 실록 편찬도 시작된다.

그리고 사후 1년이 지나 처음 돌아오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소상'이라고 한다. 재최 1년복을 입는 사람은 이때 탈상한다.[76] 3년간[77]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78]를 지내고, 두 번째 기일에 '대상'을 치른다. 상주상복을 벗고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대상을 치르면 신주를 사당으로 모시며, 이때 5대조의 신주가 사당에서 철거되므로 따로 고하는 제사를 지낸다. 대상이 지나면 빈소를 철거하지만 여전히 일상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대상 두 달 후, 27개월째 되는 날에 평상시로 돌아가 담담해지기를 기원하는 제사인 담제를 치르고, 27개월 혹은 28개월째에 치르는 길제를 통해 집안의 종손이 바뀌었음을 공표하고 완전히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상례의 모든 절차가 완료되며, 이후는 제례로 대체된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작은 절차들은 다 생략한 것이다. 문종, 인종삼년상 제대로 치르려다 건강악화로 죽었다는 설이 제기되는 이유. 현대에는 삼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종, 염습, 입관사망 3일째에 발인하고 장례를 마무리하고, 문상은 발인 전까지만 받는 경우가 많다. 탈상 시기는 각기 다른데, 사십구재(齋) 때 탈상을 하기도 한다. 삼우탈상이라고 하여 삼우제를 치른 후에 탈상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장례 후 3일째가 되는데, 현대에는 초우제, 재우제는 생략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장례식을 치른 당일에 탈상하기도 한다.[79]

에도 시대에 조선 및 명의 유신들을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인 일부 유학자들이 불교식 장례를 거절하고 유교식 주자가례에 입각해 매장 및 삼년상을 치르기도 했는데, 이 경우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않는 이들을 기리시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6.3. 기독교

대부분 자연사, 병사,[80] 사고사, 전사 등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죽음이면 모두 대상이 되지만 자살은 자기자신을 살해했다는 죄로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 단, 가톨릭의 경우 1983년 이후부터는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에 의한 일종의 병사로 보고 자살자를 위해서도 장례미사나 사도예식을 치러주는 추세이다.

교파별 의식에 따라 다르지만 성직자가 집전한 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매장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장도 부활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여 존중하는 추세다. 장례에 대해서는 교파별로 명칭이 다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죽은 이를 위한 전통적인 성찬례를 별도의 준비된 기도문으로(위령 감사송이나 혹은 레퀴엠용 미사곡 등) 바치는 경우가 있으나, 동방 교회처럼 그러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 장례식은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빈소에서의 추도식 등 각종 예절, 성당에서의 장례 예식 혹은 장례 미사/성찬례, 그리고 최종적인 매장 혹은 화장 및 유해 봉안의 시점까지 모두 포괄한다.

한국 천주교에는 연도라는 고유한 장례 의식이 있는데 상여소리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장송 음율과 천주교의 위령기도가 결합한 것으로 특유의 구성진 가락에 맞춰 시편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이어 바치며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계획이 확정되면 우선 상조회사보다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성당이나 유족이 다니는 성당에 먼저 연락을 해야 천주교식 장례 의식을 원활히 치를 수 있다. 성당 사무실에 연락을 하면 사무장이 연령회 측에 연락을 취하게 되며 연령회장은 성당에 고인의 부고를 신자들에게 전파함과 동시에 주임신부와 일정을 조율해서 장례미사 일정을 잡는다.

한국의 천주교식 장례예식에서 장례미사는 발인 때 장례의 마무리 느낌으로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고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 기간 중 매일 1대 이상의 미사를 거행하는 사례도 있다. 현직 사제의 가족이 선종했을 경우 조문을 온 사제들이 돌아가며 장례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특히 주교몬시뇰 이상 고위 성직자가 선종했을 경우 빈소에서는 물론 시간대를 나눠서 주교좌 성당 등 빈소 이외 공간에서 별도의 합동 연도와 장례 미사를 번갈아 진행한다. 장례미사는 빈소 내 공간에서 할 수도 있고 고인 또는 유족의 소속 성당에서 거행할 수도 있다. 미사의 시점은 상황에 따라 다른데 발인 때 할 수도 있고 발인 이후에 할 수도 있다.

보통은 장례 기간 중 장례미사보다 연도를 더 자주 하는데 연도는 빈소 조문이 시작된 첫날부터 발인 직전까지 이어진다. 연도는 자녀와 문상객들,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성당의 신자들이 돌아가며 반복 진행하는데[82] 이것이 천주교식 장례 예식의 중심이 된다. 장례 미사 때 사제와 평신도의 의 위치가 다른데 사제가 신자들을 제대에서 바라보듯이 놓여지는 반면, 평신자는 그 반대로 제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시신이 놓여진다. 이는 각각 사제가 마지막으로 집전하는 미사, 그리고 신자가 마지막으로 바치는 미사를 의미한다.

천주교의 연령회는 장례지도사(장의사)들을 편치 않게 바라보는 인식이 있다. 몇몇 분을 제외하고 입관을 장례지도사가 진행하고 미사 안내를 연령회장이 하게되는데 천주교식 장례 과정을 잘 모르는 장례지도사가 장례 과정에서 딴지를 거는 경우도 있고 악수(장갑)를 풀고 고인 분의 손을 다시 피거나 영결식장에 대해 흉을 보거나 미사 준비를 대충해서 촛농을 떨어트리고 더럽히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성당에서는 연령회장이 평소 잘 알고 있는 장례지도사나 상조회사 등과 연결해주는 경우도 있다.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장례 미사 때 때도 고위 성직자의 경우가 아니면, 관을 훤히 보이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와 비슷한 문화권의 전통으로, 정교회에서는 원래 장례 예식이 끝난 후 참석자 모두가 망자의 안식을 빌며 시신에 돌아가면서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며 관에만 입맞춤을 하며 작별을 고한다.

한편 정교회에서는 죽은 이를 위한 추도식을 장례 기간 중 죽은 지 3일째, 9일째, 그리고 40일째에 한다. 추도식을 할 때는 '꼴리바'(Koliva)라는 특별한 예물을 앞에 두고 하는데, 밀이나 보리 등을 쪄 익혀, 포도, 설탕, 달콤한 향료 등 버무린 뒤 위에 슈가파우더 등을 뿌려 하얗게 장식하고, 이 외에 다양한 달콤한 말린 과일 등으로 장식하여 초를 올린 것이다. 이 달콤한 향료들은 망자가 영혼의 세계에서 달콤한 안식과 낙원에서의 행복함과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주재료인 밀 등 곡물은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큰 열매를 맺는' 성경 속 비유에 근거하여, 썩는 육신이나 이 썩을 육신이 부활로 썩지 않은 몸이 되어 큰 기쁨을 누릴 것을 의미하며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토착화되어, 가장 비슷한 음식인 '약밥'을 만들어 예물로 올린다.

성공회의 장례예식은 많은 부분 천주교의 예식과 비슷하다. 다만 '연도'라는 절차가 없어 간소화된 느낌을 받는다. 또한 성공회는 국가나 지역으로 나뉘어진 각 관구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예식의 형태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성공회 교인들이 조문 시에 절을 하는 것은 떠난 조상의 혼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기념하고 그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도록 기원하는 예를 한국의 전통적인 형식에 맞추어 표현하는 것이다.

위의 세 교파에서는 상장예식이 시간과 단계별로 세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는 상장 예식이 별도의 전례서로 편찬되어 있고, 이는 로마 미사 경본, 입교 예식서, 축복 예식서 등과 함께 '로마 전례서'(Rituale Romanum)을 구성한다. 정교회는 망자의 사망 시점부터 망자가 죽은 후 40일째, 최종적인 영혼의 세계의 들어간다는 날 이후부터 하는 일반 추도식까지 포함하여 작은 포켓용 핸드북으로 전례서가 나와있다. 성공회는 성공회 기도서에 상장 예식이 들어있으며, 신자/비신자를 위한 기도문과 매장/화장 등 다양한 경우를 위한 기도문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성공회를 제외한 보수 개신교 일각에서는 장례예배라는 표현 자체가 교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배의 목적은 어느 때나 절대자에 대한 것이어야지 특정 개인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83]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계의 주류는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것이다. 비신자의 사망에 있어서도 가족이 신자일 경우 가족의 요청을 받아 목사가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 장례예배나 추도식 그리고 빈소에서 기도를 드릴 때 직접적인 그 영혼의 안식을 빈다는 등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유족에 대한 위로와 기억 정도에만 그치도록 주문한다. 이는 개신교 교리인 '산 자는 죽은 자와 교통할 수 없다'는 것과 '죽은 사람은 그 즉시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에 근거하여 가르치기 때문이다. 빈소에서 국화꽃을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개신교인들을 위해서다.

또한, 근대 이후 엠버밍 기술의 부활 및 발전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멕시코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톨릭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보통 9일장으로 진행하는데, 그렇다고 9일동안 연속해서 빈소를 지키는 건 아니다 (물론 발인 전까지는 지킨다). 누군가가 세상을 뜨게 되면 그 다음 날에 장지로 향하는 경우가 많아 별세부터 발인까지 걸리는 시간은 20시간도 채 안걸리고, 발인 이후에는 일단 일상 생활로 복귀한 뒤 매일 저녁마다 장례미사를 치르는 등의 행사를 한다. 이게 더 길어서 9일장이 되는 것이다.

장례 예식의 엄숙함은 천주교개신교보다 훨씬 무겁다. 개신교의 경우 장례예식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 개신교에서 '죽음' 은 고인이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하나의 이동절차이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가 기도하거나 산 자의 기도로 죽은 자의 행선지에 변화가 있다는 믿음이 없다. 그러기에 개신교식 장례는 그저 고인을 추억하는 형태로만 진행된다. 반면 천주교는 개신교에 없는 연옥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고,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통해 죽은 자가 천국으로 가는 날이 앞당겨 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84] 장례 기간 내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연도)를 바치고 장례미사, 입관예식, 출관예식, 화장예식, 하관예식 등이 모두 기도서에 맞춰 딱딱 정해져있기 때문에 확실히 엄숙하다. 성공회는 공식적으로 연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도'를 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회 장례의 개략적인 형식은 천주교와 비슷한데, 전체적으로 간소화되어있는 느낌을 주며, 엄숙함의 정도도 천주교보다는 덜하지만 일반적인 개신교보다는 무거운 면이 있다.[85]

서구권의 경우, 장례식이 끝난 뒤 매장하기 직전 유족과 성직자 등 장례식 참석자들은 떠나고, 그들이 다 돌아간 뒤 인부들이 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묘가 완전히 조성된 뒤 다시 보러 오며, 사자가 땅에 묻히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탓으로 보인다.

또한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조문객이 오면 헌화로 대신한다.

6.4.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불에 더러운 것을 태우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풍장이나 조장을 하고 있다. 현대에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런 장례의식은 많이 쇠퇴했다.

6.5. 유대교

현대 유대인들의 경우, 고인이 사망하면 시신에 엠버밍 처리를 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최대한 빨리 땅에 묻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그날 또는 그 다음 날 꼭 땅에 묻어야 한다. 장례식에서 유가족들은 케리아(קריעה)라는 전통을 따라 옷을 조금 찢는다. 시신을 수습할 때부터 땅에 묻힐 때 까지, 셰미라(שמירה)라는 의식에 의해 시신을 누군가가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타흐리힘(תכריכים)이라는 아마포 재질의 옷으로 싸서 그대로 무덤에 묻었지만 지금은 시신을 관에 모시는 것도 보편적이다. 장례식이 끝나면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묘지로 이동해서 간단한 의식을 한 후 한 명씩 무덤 옆에 준비되어있는 삽을 들고 흙을 세 번 떠서 묘지에 뿌린다.

묘지가 완성되어 묘비도 올라가면 묘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꽃을 두고 가거나 둥그런 돌멩이를 올려두고 간다. 묘비에 돌멩이를 올려 두는 것은, 냄새를 맡고 시신을 파먹기 위해 묘를 파헤치는 야생동물 등을 막기 위해서 하던 관습이다.

6.6. 이슬람교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을 하는데, 염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혀 무덤 안 묘실에 모신다. 관은 사용하지 않는다. 2015년 서거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도 그 수많은 재산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을 관 없이 수의로만 싸서 공동묘지에 매장했다고 하여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내세에서 부활하여 심판을 받기 때문에, 묘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등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샤리아에 나와있는 이슬람교의 정통 장례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신을 이맘 앞에 두고 고인이 남성일 경우 이맘은 시신의 머리 쪽에 서서, 고인이 여성일 경우 시신의 중간에 서서 장례예배를 주관한다. 이 때 시신의 머리가 메카를 향하게 한다. 첫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쿠란의 알-파티하장(개경장)을 암송한다. 두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무함마드를 위한 기도를 암송한다. 세 번째 타크비르를 한 후 망자를 위한 기도[86]를 한다. 그 후 네 번째 타크비르를 하는 것으로 장례예배를 끝낸다. 그 후 시신을 매장하거나 매장이 불가능하면 대안책으로 바다수장한다.

튀르키예의 장례문화를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인이 사망하면 의사를 통해 사망을 확인하고, 가까운 모스크에서 이맘을 불러서 장례식을 준비한다. 다만 이곳 풍습이 유교매장례와 달리 최대한 빨리 매장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기 때문에, 부고를 요란하게 돌리지는 않으며 대개 아침에 죽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저녁에 죽은 사람은 다음 날 아침에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고인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타지에 나가있으면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흔하다. 대신 부고를 늦게 접하거나, 거리가 멀어서 장례식에 참가하지 못한 고인의 친족이나 가족은 무덤을 방문해 예의를 갖춘다.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예배 후에 치러지며, 이때 이맘은 모인 조문객들에게 "고인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데 조문객들은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이맘과 조문객들이 매기고 받으며 세 번 반복한다. 다만 고인이 진짜 나쁜놈인 경우에는 조문객들중에 "이놈은 무엇무엇을 한 천하의 잡놈이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식으로 고인을 성토하기도 하고, 실제로 이래서 조문객과 유가족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드물게 뉴스에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고인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묻어주는것이 상례이다. 위의 문답은 이승에서 사람들이 고인을 용서했고, 고인이 선한 사람이었음을 증언하니 천국에 가기를 기원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갓집에서는 헬와라는 달콤한 과자를 대접하는데, 상갓집 일손이 바쁠 때면 고인의 이웃들이 과자와 음식을 준비해서 부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결식 전에는 조문객들과 유족들이 다함께 모여서 헬와를 만들어 나눠먹는데, 헬와를 만들때 냄비속의 헬와를 한 사람씩 나와서 숟가락으로 저으며 "그는 생전에 내 빚을 탕감해주었다."와 같은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나누며 추모하는 의식을 한다. 이때 울거나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금물인데, 사람이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다가 지나치게 슬퍼하면 고인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결식때는 남자들만이 장지로 향하며,[87] 묘지에는 널판을 깔고 고인의 시신을 모시고 온 관을 열어 시신을 꺼낸 후 시신을 관 없이 안치한 다음에 널판으로 그 위를 잘 덮고 그대로 흙으로 덮는다. 봉문은 대개 관모양으로 돌벽을 쌓는 식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생전 고인의 지위를 본뜬 '터번' 모양의 비석을 세웠지만, 오늘날은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쿠란의 구절을 담은 비석을 세운다. 와하브파와 달리 하나피파나 알레비파는 비석을 세우는것이 전통이다.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조문객과 고인의 이웃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열고 상복은 입지 않는다.

7. 시신 처리 방식

장례 및 시신 처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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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화장 자연장
(수목장 · 잔디장 · 화초장)
수장 수분해장a 해양장*
빙장× 퇴비장× 천장(天葬)
(조장 · 풍장)×
○ 대한민국 법률상 허용, × 불허, △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 a 동물만 허용, * 유권 해석상 허용, 2025년부터 자연장의 한 형태로 법률상 허용될 예정 }}}}}}}}}

8. 그 밖의 장례 방식

매장된 시신 근처에 나무를 심는 수목장이 있다. 이외에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뼛가루)을 고인이 생전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 뿌려주는 형태가 있지만 스님들의 다비식 이후 산에 뿌리는 것이나, 바다를 제외하고 허가없이 아무 데나 뿌리면 잡아간다. 다만 바다에 뿌리는 건 정부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사 그러나 산분장도 합법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이킹들은 고위 신분에 한해서 고인의 생전 귀중품들과 같이 배에 띄운 다음 배까지 태워서 가라앉히는 독특한 장례문화를 갖고 있었다. 발할라에 가기 위해서라고. 간혹 배를 멀리 띄워보낸 다음 불화살로 맞춰 태운다는 심히 간지나는 설정이 붙곤 하는데, 이는 매체의 영향일 것이다. 실제로 배를 불태우면서 멀리 띄어보내는 건 맞지만, 불화살에 대한 내용은 정확한 점이 없다. 멀리 있는 배를 화살로 맞추기도 어렵고 그걸로 불을 붙이는 건 더욱 어려우며, 빗맞추기만 계속하다가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배가 너무 멀리 나가기라도 하면 엄청난 결례가 될 테니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88] 혹은 이미 불붙인 배에다가 화살을 더 쏘던것이 와전되었을수도 있다.

스웨덴에서는 2000년대에 빙장(氷葬)이 고안되었다. 시신을 액체질소로 급속냉동시킨 후 분쇄해[89] 작은 입자들로 만들고, 수분을 제거한 뒤 생분해성 관에 넣어 매장한다. 즉, 동결건조법을 장례에 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매장한 유골의 완전분해는 1년이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매장과 달리 토양의 오염도 적고, 화장과 달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친환경적이라고 여겨진다.[90] 그래서 녹색장이라고도 불렸으나 빙장 설비를 개발하던 회사가 2015년 설비를 완성하지 못하고 파산하여 실제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토막 내어 독수리들에게 주는 조장을 시행한다.[91] 이를 두고 야만스럽다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지리 특성에 따른 장례 방식이니 이해해야 한다. 산지라서 땅이 거칠어서 제대로 파기도 어려워 묻을 수도 없고 묻는다 해도 기후가 건조해서 시신도 잘 썩지 않으며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하기 힘들기에 택한 장례 문화이다. 예전에 몰지각한 외국인들이 이 장례식을 마구 촬영한 후 야만스럽다 하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해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서인지 요즘은 그런 비난이 없어졌다.[92] 더불어 이 조장은 티베트 말고도 과거 흉노미국원주민들[93], 이란인도 등지의 조로아스터교 신자[94] 등. 많은 민족들이 채택한 방식이었다. 특히,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먹은 독수리가 하늘을 날면 죽은 자의 영혼 또한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그 밖에도 극지방 이누이트들은 똑같이 죽은 사람을 북극곰에게 줬다. 여기도 추운 지역이라 시체를 묻을 수도, 묻어봐야 썩지 않고 땔감도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생겨난 장례였다. 이쪽도 곰에게 시신을 먹힌 사람은 곰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곰이 사람들에게 사냥당해 먹히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서는 죽은 이를 깨끗히 씻은 다음에 먹는 식인 장례도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매우 좋지 않다. 파푸아뉴기니의 포어족은 친척이나 지인들이 사망자의 시신 일부를 먹는 장례문화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망자의 혼이 산자들과 함께 하게 된다는 믿음이라고. 그러나 이 풍습 탓에 전염병이 돌아 많이 죽었다고 한다. 이는 데드 아일랜드에서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장례방식으로 풍장(風葬)이란 것도 있다. 시신을 외딴 곳에 방치해 썩게 놔두는 방식으로, 위의 조장과 다른 점은 짐승이 함부로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높게 지은 오두막에 시신을 안장하고 거적 등으로 가리거나 또는 동굴, 높은 나뭇가지 위 등의 장소에 시신을 안장한다.

형벌 중에서는 죽은 후 장례를 금지시키는 형벌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사형수인데 사형으로도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극악무도한 형벌이였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 역시 반역자인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외숙부 크레온이 금지하자 이에 안티고네가 반발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갈등 구조.

미국에서는 한때 우주 관련하여 SF 소설 작가나 우주 과학에 기여한 사람 중 몇몇을 선발하여 화장한 재를 로켓에 심어 우주로 내보내는 우주장을 1997년부터 실행했다. 참고. 이렇게 우주장으로 장례를 치른 사람 중에는 스타트렉의 작가 진 로덴베리, 슈메이커 레비 혜성을 관측한 학자 유진 슈메이커, 전직 우주 비행사인 고든 쿠퍼 등등의 명사들도 있다. 특이한 사례로는 명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있는데, 명왕성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에 유골 일부가 탑재되어 태양계를 떠나간 최초의 유골이 되었다. 이런 우주장을 대행해 온 셀레스티스 사는 우주장을 치를 사람들에 대해 신청을 받고 있으며, 2019년 6월에 스페이스X 팰컨 헤비 로켓의 미 국방부 미션인 STP-2 미션에서 152명의 유골들을 지구 궤도에 올렸다. 링크

미국의 우주장이 꽤 신박한 장법이어서인지,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우주장례라는 것을 상품화했다. 말 그대로 유골을 로켓을 이용해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우주장례 비용은 한화 약 450만 원으로 의외로(?) 저렴하며 인공위성에 실려 240년간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은 950만 원이다. 이외에도 달까지 운반하거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등의 방식이 있다고는 하는데 물론 실제로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다. 달은 지구 모두의 유산이라 했던 것 같은데 시신을 달로 그냥 보내도 되는 걸까

그 외에도 퇴비장이라는 것도 등장하였는데, 워싱턴주가 2019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오리건, 콜로라도, 버몬트주, 캘리포니아(2027년 도입)에서 시행 중이다. 고인의 시신을 풀, 나무, 미생물 등을 활용해 30∼45일 동안 자연적으로 분해하고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눕혀서 무덤을 만드는 형태의 매장형 장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아무래도 인구가 14억이니 그렇게 했다가는 땅이 남아나질 않을 것을 우려한 조치일 것이 높다. 그래서 국가에 큰 공헌을 하거나 어지간히 큰 위인이 아니거나 관을 쓰지 않고 시신을 자동차에 태워서 묻는 경우, 직립매장으로 묻는 경우, 시신이 너무 뚱뚱해서 화장장 소각로나 빙장장 냉각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95] 그리고 소수민족의 종교적 원인을 제외하면 시신을 관에 담아 눕혀서 묻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대신 묻더라도 관을 세워서 묻는 직립매장의 형태나 수장이나 화장이나 빙장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한다.

화학적으로 시신을 처리하는 수분해장이라는 장례법도 있는데, 주로 시신을 강알칼리 용액에 담가[96] 대부분 액체로 분해시켜 버리고, 뼈나 보철물 등 알칼리에 녹지 않는 성분을 유족에게 전달하는 형태다. 빙장과 쌍벽을 이루는 가장 친환경적인 장례 방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시체를 화학약품으로 녹여서 대부분을 하수도에 흘려보낸다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가 극히 좋지 않기에 널리 쓰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햄프셔주는 수분해장을 합법화했다가, 불과 2년만에 지나치게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금지시켜 버렸을 정도.

한국을 제외하고는[97] 바다에서 선원이 사망 한 경우 선원장례가 치러지고 바다에서 죽은 선원의 시신은 자신의 고향인 바다[98]에 돌려 보낸다는 전통에 따라 고향인 바다에 장사지내는 수장의 방식로 장사되는 것이 전통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예비 망인의 주최 하에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가정마다 다르지만 이렇게 장례를 치르는 경우 보통은 "장례 파티"라는 이름으로 잔치에 준해서 치르며, 고인이 될 예정인 사람이 말기암 환자 등의 경우라 죽는 방법에 대해 숭고한 결단을 내린 경우가 많으므로 고인드립은 당연히 무례한 행동이다. 잔치에 준해서 즐기되 예비 망인과의 좋았던 기억을 공유하는 게 예의이고, 예비 망인도 참석자들에게 와줘서 감사하다는 식으로 환대하는 게 예비 유족에 대한 예의다. 이렇게 장례를 치른 경우 고인이 운명하시고 난 후에는 별도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바로 입관 후 장지로 향하며, 이런 식으로 장례를 치른 경우 가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안장 후 바로 탈상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형태의 장례식이 흔하다고 하며,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창안한 장례 방법이기도 했다.[99]

고대에는 순장이라는 잔인한 장례가 있었다. 죽은 사람의 배우자나 시종 등을 함께 묻는 것으로, 이들을 죽인 다음에 묻는 방식과 산 채로 묻는 방식이 있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장례식 때 관을 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의식이 있다. 이를 담은 동영상 이 영상을 이용한 이른바 '관짝 댄스'로 불리는 Coffin Dance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

9. 장례식 풍경

9.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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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월드컵 때는 한국 팀이 골을 넣자, 장례고 뭐고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포함한 전원이 춤추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난리법석이 TV 뉴스를 타기도 했다.[100] 전국민이 흥분의 도가니로 둘러싸인 월드컵 분위기가 장례식의 침울함마저도 이겨버린 인상깊은 영상으로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어느 외국인 기자가 대한민국의 장례식장을 직접 가 보고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입니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술자리를 벌려서 육개장, 수육, 모듬전, 소주, 막걸리 등을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고[101] 밖에서는 윷놀이를 하고 있고,[102] 서로 싸우고,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링크. 아무래도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데 모였으니 반쯤은 명절 분위기이다. 이를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슬픔이라는 감정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켜 배설하는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가시는 길 안녕히, 홀가분하게 돌아가시라는 의미이다. 물론 이런 풍경도 고인이 충분히 연로한 상태에서 노환으로 타계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말로 고인을 떠나보내야 하는[103] 입관이나 발인 등의 의식을 행할 때만큼은 그렇게 신나게 놀던 사람들도 울음을 터뜨리며 여느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침울한 분위기가 된다.[104]

이러한 한국 특유의 장례 분위기를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 <축제(祝祭)>가 있다(임권택 감독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실제 진도군에서는 '다시래기'라 하여 출상 전날 밤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논다. 일종의 재담극.[105] 뿐만 아니라 출상 때에도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상여를 따라간다. 꽹과리 등 악기 필수. 이 때 상여를 매고 가면서 부르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상여소리가 유명하다.[106] 관련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상당히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러한 형태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졌는데, 그 근거로 하멜 표류기에 의하면 조선 시대에는 한술 더 떠서 풍악까지 곁들여서 상주는 곡을 하지만 조문객들은 즐겁게 즐긴다는 모습도 서술되어 있을 정도이다.

다만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집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거의 모든 걸 해결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옆에 모르는 가족도 장례식을 하고 있어 고성방가를 자제하게 되고, 음주 단속과 도박 단속을 강력하게 하면서 장례식장에서 음주와 노름도 자제하는 형태로 바뀌었으며, 대다수가 도시에서 살고 자가용을 끌면서 상주와 밤을 새워줄 필요도 없어져서 이러한 문화는 많이 사라진 상태다.[107]

사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장례식장의 분위기의 밝은 정도는 고인의 사망 당시의 나이에 비례한다. 즉, 고인이 고령일수록 밝고, 젊을수록 어둡다.

망자가 나이가 많아서 노환자연사로 잠을 자듯이 편히 가면 호상(好喪)[108]이라 하여 식장 분위기도 그리 어둡지 않고 오히려 "그래도 당신께서는 오랫동안 잘 살다 편히 가셨다." 라며 동네 지인 및 동년배들이 분위기를 좀 띄워준다.

조선 시대에도 장례 후에 장구 치고, 북 치면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으며, 아예 중국의 주자가례에서 언급된 엄숙주의적인 유교식 장례를 지배층이 제대로 도입하는 것조차 실패한, 한국 유교 전래 이전의 풍습이 남은 나름 유서 깊은 문화다. 600년대에 편찬된 수서에서 고구려에서는 "처음 상을 당했을 때는 곡을 하고 울지만, 장사를 지낼 때는 북을 치고 풍악을 울리며 장례를 치른다."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다. #

만약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게 되면, 유족을 신경쓰며 일부러 슬퍼하는 기색을 보일 필요는 없다. 사실 노환으로 죽은 사람의 장례식 풍경이 의외로 가벼워지는 것은 서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장례식에서는 일가 친척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참석하므로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수 십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하니[109] 의외로 분위기가 가벼워진다. 이러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지, 지인, 옛 이웃, 친구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추억을 나누면서 울고 웃다 산 사람들간의 관계도 재확인하고, 감정적인 해소도 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어도 노환으로 자연사한 사람의 장례식은 은근히 축제 분위기를 띄는 건 충분한 사회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참고로 옛날부터 한국은 장례식이 침울하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너무 우울하지 않게 어느 정도 분위기를 띄웠다.[110]

반면 고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자살한 경우, 대형 사고로 줄초상이라도 나면 자연히 식장 분위기는 엄청나게 침울해진다.[111] 드물게 살다가 주변에 젊은 지인이 요절, 특히 자살 등으로 고인이 되었을때 당장 사랑하는 가족인 상주들 심정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조문객들도 뭐 위로의 말도 찾기도 힘들고, 오랜만에 못 본 사람 만나서 인사할 분위기도 아니고 정말 그 자리에 있는거 자체가 모두에게 괴로운 장례식이 된다. 설령 고인이 고령이라 해도 사고를 당했거나 흉악범죄의 피해자이거나 실종 후 시신으로 발견되는 등의 참혹한 죽음을 맞았으면 분위기가 어둡다. 이럴 땐 분위기 봐서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다. 다만 고인이 범죄를 저질러서 죽었다면 분노에 휩싸이거나 조롱하는 분위기고, 살신성인하여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당했다 던지 하면 유가족들이 의로운 행동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침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호상이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이럴 때도 행동에 있어 조심하는 것이 낫다. 아무리 분위기가 호상에 준한다고 해도 의사자 선정 등 여러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청년이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 분위기는 정말 참담해진다.댓글 참조 목놓아 울다가 지쳐서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뭔가 위로를 하고 싶어도 이만큼 충격적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얼마 없어, 말을 꺼내는거 자체가 무안해져 자연스럽게 슬픔만 짙게 깔린 어색한 침묵이 형성되니 정말로 문상 가는거 자체가 모두에게 비극인 경험. 게다가 고령일수록 조문객들이 고인에게만 인연이 있거나, 반대로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이 고인의 자녀 등과 관계가 있어 조문하는 경우가 대다수가 되지만, 나이대가 어릴수록 고인보다는 가족들 전체와 이런 저런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더욱 그렇다. 특히 젊은 사람이 범죄자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 불의의 사고 같은 누가봐도 비극적인 경우로 장례식이 열렸을 경우 모이는 사람 태반이 서로 다 아는 동네, 학교 친구이고 평소에는 같이 모이면 떠들썩하게 즐거운 분위기였을 사람들이 눈물도 다 빠질만큼 울다 탈진한 유족들 두고 우울하고 어색하게 있는건 정말 가는 사람도 트라우마 걸릴만한 괴로운 일이다. 장례식에서 댄스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연히 뉴스에 보도된 이후 욕을 얻어먹었다. 만수무강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호상이라면 백번 이해가 간다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으나, 해당 영상에서 언급된 장례식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한 악상이었고, 고인의 유언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마다 한 편에 큰 방이 있고 거기서 식사를 대접하는데, 문상을 오는 사람들이 들러서 술과 밥을 얻어먹는다. 물론 부의금은 내지만 식대는 상주와 유족 측에서 부담하는 데다, 문상객이 더 달라면 더 주는 업체들이 대부분. 음식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개의 경우 육개장편육, 수육은 사실상 필수로 들어간다.[112] 여기에 더해 김치, 소고기, 새우젓, 전이나 부침 및 산적, 떡, 가자미무침, 사이다, 식혜, 마른안주, 코다리조림, 과일 정도가 더 붙는다. 기사, 기사 2. 도시의 중산층 가정, 농어촌 마을 이장댁에서 장례를 치르면 식비만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데,[113] 당초 요청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가면 계속해서 영수증이 추가된다. 기사. 그리고 이 때마다 상주로부터 서명도 받아간다. 장례가 끝나면 청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빈소를 지키던 상주도 장례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조문객들과 이야기 할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상주 직계 친척들이 빈소에서 대기하고, 상주는 식탁에서 문상객과 함께 술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조문객도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니 늦게라도 문상을 왔는데 상주를 봐야 한다면 식당 쪽을 살펴보자. 다만 그마저도 21세기 이후에는 자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이전 같으면 날밤을 새야할 정도의 장거리 문상도 하루 당일에 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조문객 1명당 조문 시간 자체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음주도 줄어들었다. 음주운전 단속도 갈수록 엄격해지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율이 높은 일본 같은 경우 70대인 고인의 자녀가 상주를 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더욱 진행되면서 한국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추세. 옛날이었으면 자신의 장례식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 이들은 체력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70대 자녀의 자녀가 되는 고인의 손자 역시 50을 바라보는 경우가 대다수라 체력이 팔팔하지는 않아서 장례식이 진행될수록 피로가 누적된 유족들이 "장례식 두 번 치르다가는 줄초상 나겠다."라는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뱉기도 할 정도다. 또한 자식들도 50, 60을 바라보면서 부모가 일찍 결혼하여 자녀가 일찍 태어난 뒤 이들이 90살, 100살 넘게 살 경우 자식은 60, 70살이 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예전에는 가장 큰 불효로 여겨졌던 일인 자식이 먼저 죽는 일도 늘고 있다.[114]

이에 21세기 들어서는 빈소를 안 차리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고 좌식 생활이 좋지 않다는 인식과 맞물려 기존의 좌식 빈소를 입식 빈소로 바꾸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구파티마병원이 지역 최초로 입식 빈소로 새단장하였다. 서울의 경우도 신촌 세브란스병원이나 중앙대 병원의 장례식장이 입식이다. 기사

장례식에 갔다오면 집 안에 들어오기 전에 몸에 소금을 뿌려주는 것이나 소금을 사오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부정을 정화하고 잡귀를 쫓아낸다는 믿음에서 유래되었다. 혹은 조문 후 가게집(음식점이나 구멍가게 등도 포함)을 반드시 찍고 집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같은 이유로 장례식장에 조문 갔던 사람은 당일에 결혼식장, 돌잔치 같은 경사에는 가지 않는다.[115] 상주 등 직계 가족의 경우 탈상 이전에는 경사에는 안 갔다.

9.2. 해외

필리핀에서도 상갓집에서 도박을 하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과 달리 합법이다. (물론 이 동네도 사회적 용인 범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걸 넘어서서 하는 도박은 당연히 불법이다.) 동네에 장례식이 열리면 그쪽으로 몰려가서 판을 벌인다. 이 판돈 중의 일부는 조의금으로 걷어서 상주에게 전달한다.

베트남에서는 상갓집에서 놀거나 술을 마시는 등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관이 묘지 안으로 들어갈 때 문상객과 유족이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환호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톨릭 국가답게, 고인이 그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현실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축하하는 뜻이라고.

뉴질랜드에서는 망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하카를 추기도 한다. 수백명의 교복입은 남학생들이 비장에 찬 모습으로 부르는 하카는 그야말로 장관. 20초 부터 감상

북유럽 국가에서는 바이킹의 영향으로 장례식을 웅장하게 치르는 편인지라 상당히 분위기가 시끄럽다. 그래서 노르웨이 같은 곳에 장례식에 가보면 큰북을 세게 두드리거나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바이킹의 영향이 강한 지역인 아이슬란드의 경우 장례식 때 큰북을 두드리며 행진을 하거나 함성을 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장례식을 한국보다 간소하게 치른다. 한국에서는 고인과 인연이 없어도 유족과 인연이 있다면 조문을 오지만, 일본에서는 고령에 접어들면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 목록을 미리 작성해두고 유족도 그 목록에 있는 이들에게만 부고를 전하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부고를 전해 조의금 부담을 지우는 것은 메이와쿠 문화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문객도 발인 전날 등 정해진 두세 시간 외엔 받지 않고, 그 외 시간에는 유족들끼리 지낸다. 단독주택이 흔한 특성상 집에 빈소를 차리는 경우도 많으며, 서양처럼 관을 열어놓아 조문객들이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는 문화도 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소금 봉투를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부정한 잡귀를 쫓아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파일:관짝밈.gif

서부 아프리카 문화권, 남부 아프리카 문화권의 장례식도 일종의 축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즐겁게 노래를 부를 모습이 보여지는데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116]


대만의 흔한 장례식 풍경. 중화권 문화에서의 경우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올수록 호상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장례식장 분위기를 밝게 하고 조문객들을 많이 모으는 편인데 대만의 경우 일본의 고등학생 동아리 활동과 중화권 장례식의 분위기를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인 반면, 중국에서는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조문객들을 모은다는게 좀 심히 과했던지라 뱀쇼에 심지어는 스트립쇼까지 펼쳐지는 지경이 되자 정부에서 법으로 장례식장에서의 스트립쇼를 금지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경우 'wake'라 하여 발인 전날 밤새 술 먹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 추면서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문화가 있다. 때문에 장례식장 분위기가 앞서 서술한 한국 장례식장처럼 왁자지껄, 화기애애하다. 구전가요 <피네간의 경야>[117]포그스 노래 <The Body of an American>이 바로 이 wake 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도 장례식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백파이프를 신나게 불면서 춤추는 등 잔치스러운 분위기다.


아일랜드 장례식장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서도 상술한 한국이나 다른 문화권의 잔치스런 장례식 답게 [118] 재즈 뮤지션이나 문화계의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인근 음악가들이 전부 악기들고 몰려와 "Just a Closer Walk with Thee (주님과 좀 더 가까이 걸으리)" 같은 인기 장송곡들을 연주하며 대규모 행진을 하는[119] 재즈 장례식이란 전통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보자.


중간에 관을 들고 흔드는건 고인이 음악에 맞추어 마지막 춤을 춘다는 것이다.

미국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으며 애초에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장례식 기준이 미국에서 영향을 받은 편이다. 다만 미국은 장례식 분위기가 한국보다 더욱 정숙하고 엄격하지만 케이크나 샌드위치같은 평상시에도 먹는 음식들을 제공하고 장례식 절차도 생각보다 복잡한 편은 아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3일장이나 5일장 그런 것도 없다. 더군다나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고인에게 양복을 입힌다.

화장률이 95%가 넘어가는 국가로는 일본, 홍콩 등이 있다.

9.2.1. 테마 장례식

푸에르토리코나 아르헨티나,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시신을 생전 모습이나 원하는 방식으로 꾸며서 테마를 정해놓고 하는 테마 장례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즉 산 사람인 것 처럼 장면을 연출한다고 한다.


9.2.1.1. 테마 장례식 종류

9.3. 운구중 버스전용차로 이용 관련

운구중 장의버스와 같이 다니는 경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면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장례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일단 범칙금통지서가 날아온 뒤 사망진단서 등 증빙자료를 경찰에 제출하면 감경해주는 방식이다. 반드시 장의버스와 같이 다녀야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설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으니 주의.

10. 공영장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공영장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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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1. 반려동물 장례식

"뽀삐야 행복하렴"…장례업체 찾는 펫팸족

현대에는 애완동물의 장례를 치러주는 전문 업체가 많아졌다. 주로 사람처럼 수의를 입히고 화장을 하며 간단히 예의를 표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 의식도 주인의 종교에 따라 달라진다.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화장한 유해는 유골함을 구입해[120] 담아 따로 묻든지 뿌리기도 하고 추모보석(Lucete) 같은 것으로 만들어 별도로 보관해 추억하기도 한다. 주로 개와 고양이의 비율이 높으나 그외의 동물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2022년 기준 애완동물에 대해 매장화장을 할 수 있으며 장례 및 납골을 동물장묘업 등록을 한 자가 운영하는 동물장묘시설에 위임할 수 있다. 또한 동물등록이 되어있는 반려동물이 죽은 경우에는 등록 말소신고를 해야하니 유의.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를 참고하자.

12. 관련 용어

13. 장례식을 다룬 대중매체

14.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장례식()
한자 (장례식)
그리스어 κηδεία
네덜란드어 begrafenis (de), begrafenis- ceremonie (de)
독일어 die Trauerfeier, die Bestattungsfeier, Begräbnisfeier
라틴어 funus, munus, supréma/suprema, exséquĭæ/exsequiae, funerátĭo/funeratio
러시아어 похороны
마인어 upacara pemakaman, upacara kematian
몽골어 оршуулах ёслол, БЭЛБЭСРЭЛ
베트남어 nghi thức tang lễ
스웨덴어 jordfästning
스페인어 funeral, exequias, misa, réquiem, honras, velatorio, responso
아랍어 مراسيم الجنازة
에스페란토 funebro
영어 funeral
이탈리아어 mestièro, mortorio, funeràle, mortòrio, fùnebre
일본어 [ruby(葬式, ruby=そうしき)](소우시키), お[ruby(お葬式, ruby=おそうしき)](오소우시키), [ruby(葬儀, ruby=そうぎ)](소우기)[121]
중국어 [ruby(葬礼仪式, ruby=zànglǐyíshì)], [ruby(葬礼, ruby=zànglǐ)]
태국어 งานศพ, พิธีศพ
튀르키예어 cenaze töreni, Cenaze
포르투갈어 mortório, exéquias, enterro, enterramento
폴란드어 egzekwie, pogrzeb, stypa
프랑스어 cérémonie funèbre, pompes funèbres, service funèbre, funérailles, obsèques, enterrement
타갈로그어 libing

15. 여담


[1]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일[2] 장사법에 의해 24시간 이후 화장이나 매장이 가능하다.[3] 상조, 장례식장은 상관없다.[4] 식대, 빈소, 일정 등등[5] 보통 점심 전후 10시나 13시, 15시 정도에 진행한다.[6] 어떤 장례식장이든 발인 전에 계산을 하게 된다. 계산을 하면서 관리대장이나 시신반출동의서를 작성한다.[7] 의료기관인 요양병원은 자체적으로 사망진단을 할 수 있다.[8] 사망지를 관할하는 경찰서형사과 형사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수사대 요원까지 현장에 파견된다.[9] 애초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 수많은 어른들이 죽기 전 병원으로 향한다. 유명한 인물들 중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자신이 죽기 전 가톨릭계 병원인 메리놀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마지막 고해성사 & 병자성사 및 천주교식 장례 절차가 시작된 것. 의사가 사망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아닌 한 유족들이 범죄 혐의를 의심받을 필요가 없고, 예비망인 자신도 심적 부담이 덜 들기 때문이다.[10] 관을 묻기 전에 미리 매장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포크레인 등으로 땅을 파두는 직업. 개장·이장 전문이라는 현수막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역꾼이다.[11] 장례식장, 화장터, 봉안당, 상주 및 유가족의 결석계 등 수많은 곳에서 요구하므로 사망진단서를 최소 10장은 구비하자.[12]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그냥 사설구급차를 부르면 된다. 소방구급차는 집에서 노환으로 자연사한 시신을 운구하지 않는다. 소방구급차는 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니까. 무작정 사람이 죽었으니 와달라고 119를 부르면, 구급요원은 무조건 경찰에 사건을 인계시킨다. 보통은 저러지 않으나 간혹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112나 119를 부르는 일이 있다.[13] 사실 이것은 평소에 미리 찍어놓는 게 좋다. 노화에 따른 자연사나 암에 걸려 죽는 거라면 그나마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으니 좋지만 전쟁터에 갔다가 전사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늙고 병들고 나서의 초췌한 모습으로 남기 싫다는 이유로 요즘은 건강할 때 미리 찍어두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경우 종종 너무 예전 사진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14] 공무 이동 중 교통사고, 각종 안전사고 혹은 적과의 교전행위 등[15] 때문에 육군에는 영현병 주특기가 있다. 해군/해병대 및 공군 장병도 어차피 순직하면 국군병원으로 오게 되니 해군과 공군에는 영현 특기가 없다.[16] 수도권의 경찰관도 사실 거리상 외부 장례식장을 많이 이용한다.[17] 사실 전쟁을 치르지 않는 평시에는 장례를 치를 일이 많은 직종이 경찰관과 소방관이다. 순직률은 둘 다 비슷하나 경찰관이 근소하게 더 수치는 더 높은데 부상 및 과로사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의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총기소지가 금지된 나라치고는 경찰 순직율이 높다. 최근엔 사제총기가 범람해 일선 경찰관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자주 접하는 뉴스는 소방공무원 순직이다. 문자 그대로 불 속에 들어가거나 고공에서 로프 하나에 의지해 구조작업을 벌이거나 급류를 타야하는 등 워낙 위험한 곳에서 근무하는지라 화재진압 및 구조작업 중 순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도 구급차 사고나 현장에서의 2차 사고 등으로 순직하기도 하며 화재 및 구조는 사고는 곧 사망으로 직결된다. 노후한 소방헬기가 추락하는 참사도 있다. 그래서 상조회가 존재하는 것이다.[18] 군인/경찰공무원/소방공무원, 성직자 등으로 군경이나 소방관은 각자 정복을 착용한다.[19] 물품이 부족해 그렇다.[20] 고인이 중고교생인 경우. 다만 학교를 자퇴했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던 학생, 교복이 없는 학교에 다닌 학생이라면 교복이 없으니 평소 학생이 좋아했던 일반 사복을 입힌다. 학교 폭력이나 교사의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한 자살, 타살이라면 학교를 좋아할 수 없을 테니 유족들이 안 입히기도 한다.[21] 고인이 군인인 경우로 A급 전투복 아니면 장교의 경우 각 군 정복을 입힌다.[22] 고인이 경찰관이거나 소방관인 경우로 정복을 입힌다.[23] 이 기사의 주장을 따른다면 조선 후기 이전.[24] 반론이 있긴 하지만 삼베 수의를 입히는 것은 일제의 잔재이고, 조선총독부가 1934년에 만든 의례준칙이라는 책에 처음 나오며 삼베 상복은 고인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사람들이 자신은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입었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25] 목관 대신 주목받는 종이관[26] 미국, 유럽 같은 경우는 건물에 매장하는 경우도 흔하고 싱가포르는 따로 장례식장 없이 공터나 교회 내에서 임시로 장례식장을 설치하여 누구나 조문할 수 있게 해준다. 일본 같은 경우 양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통 기모노를 입는 경우도 있다. 중화권도 중국 전통의상을 입히기도 하는데 이쪽은 대개 자연사한 노인들이나 50~60대 중년들의 경우고 젊은 층은 정장이나 드레스 등을 입힌다.[27] 삼베수의 경우 몇 겹으로 입기 때문에 체형을 보정하게 된다.[28] A급 전투복 혹은 정복으로 여군은 치마와 바지 중 선택이 가능하다.[29] 해군/공군은 과거부터 인사참모부에서 관리하였고, 육군은 일본군의 영향 때문에 군수참모부에서 관리하였다. 그러나 이게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죽은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냐는 맹렬한 비난이 쏟아져 2014년 3월 1일부로 육군 쪽에서도 일본군의 악습을 없애고 기존 군수파트에서 해군/공군처럼 인사파트로 이동되었다. 해/공군도 순직 장병 대우에 대해 적절한 예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약간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물건 취급했던 육군과는 달리 인사 부서에서 다룬다는 게 민간인의 장례와 마찬가지로 장례 기간 중에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게 되기 때문에 민간인 유교식 장례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상식적으로 용납 가능한 수준이라 그냥 넘어갔다. 따로 장례파트를 신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30] 여성은 치마와 바지 중 택1이다.[31] 임용예정 교육생의 경우 정식 소방/경찰관과 같은, 혹은 유사한 임무수행 중 순직할 경우 순직 전일에 시보기간이 끝나 임용한 걸로 처리가 되고 훈장이 수여된다. 묘비에도 소방사/순경 계급으로 표기된다. 과거에는 그냥 민간인 취급이었지만, 충남 아산소방서 소속 3명 여성 소방관 순직 사건이 발생한 후 문재인 정부에 의해 소방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하여 순직 전일에 시보 기간이 끝나고 임용하는 걸로 처리되었다. 덕분에 충청소방학교 소속 2명의 여성 교육생은 소방사 계급으로 안장되었다. 그리고 이는 2018년 현충일 1주일 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그해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소개되었다.[32] 특히 가톨릭의 경우 주교와 같은 고위성직자가 선종을 하게되면 해당교구의 주교좌성당 내부에 빈소가 마련이 되는데 보통 시신을 유리관에 안치하여 신자들에게 공개한다.[33] 일본, 중화권, 미국, 유럽이나 기타 다른 나라들은 매장이나 화장을 할 때 정장이나 전통옷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엠버밍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요즘들어 엠버밍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정장, 한복 등을 삼베 수의 대용으로 입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도 과거에 석실묘나 회곽묘가 있었을 시절에는 시신이 썩더라도 부패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나중에 석실묘나 회곽묘가 다시 늘어나면 양복이나 생전에 입는 옷으로 장례를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석실묘나 회곽묘는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34] 일제의 무단&문화통치는 한국에서만 시행한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유교식 장례는 모두 신토식으로 바꾸게 했다. 신토식은 기존 불교식을 일부 바꾼 것이고, 실제로 화장시설이 있는 곳이 대부분 사찰이며, 메이지 시기에 사찰과 신토의 통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35]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0조[36] 2014년 4월 15일에 올린, 내일 수학여행 가는데 밀린 애니를 못봤다고 하소연하는 글이었다. 글을 올리고 약 32시간 후 사고가 터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며 몇천개의 댓글을 달며 기원하였으나 사람들의 염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5일 후인 4월 20일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416 단원고 약전> 5권 참고)[37] 기념 계정을 풀지 않는한 아무도 로그인할 수 없다.[38] 특히 한국식 장례 문화는 현대 사회에서 정석대로 진행하면 3일장에 조문객을 밤 늦은 시간까지 받으면서 술도 마시고 장례도 제때제때 진행해야되는데 이게 소수 가족으로 진행해도 인원이 부족해 부담이 커서 문제고 반대로 대형가족이 진행하면 가족이 너무 많아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 까다로운 절차이다.[39] 실제로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로 출제되기도 했다.[40] 다만 동물들은 생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애도 반응은 전체에서 보이는 죽음의 장면들에서 놀랍도록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41] 2010년대 들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통혼을 했을 정도로 오랜 교류를 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들도 현대적 의미의 장례를 했다는 학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42] 임기 또는 현역에 한하며 임기종료로 인한 전임자나 이임자 및 퇴직자는 해당되지 않는다.[43] 임기 중에 순직했을 때만 장례식이 치러진다.[44] 임기 중 순직했을 때만 해당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전직 행정수반이나 전직 공무원은 해당되지 않는다.[45] 해당 지역에 거주 중 사망한 자에 한하며,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46] 고현버스터미널에서 사망한 보육원 생활 중학생의 경우 시민들의 요구와 장례식 없이 화장한다는 보고를 받은 당시 변광용 거제시장의 지시로 시장 (市葬)으로 승격되었다.[47] 거제시 시민들이 상주를 자처했다고 하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을 대신해 상주 역할을 했다는 기사도 있다. # 이를 보아 거제시장 (市葬)과 거제시민장 (市民葬) 사이 정도, 형식상으로는 시장 (市葬)으로 치러졌던 듯 하다. 아무래도 미성년자라는 점이 시장 (市葬)으로의 격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48]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하며 도중 사직했거나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49] 특히 수학여행 도중 혹은 등교중 대형참사로 학생 여럿이 사망한 경우.[50] 재학 중 사망한 자에 한하며, 졸업생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거제시 중학생의 예시처럼 행정장으로 격상되는 경우에는 그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절차에 따르기에 학교장으로 치러지지 않는다.[51] 현역자에 한하며 전역자 및 퇴역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비군훈련, 특이상황 등으로 동원된 예비군인 경우 해당 동원부대의 부대장으로 치러진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52] 이광종의 경우는 경력이 다소 부족하여 축구협회장이 어려웠으나 협회의 지원과 장례 규모는 축구협회장 못지 않았다고 하며, 유상철의 경우는 축구협회장도 가능했으나 가족들이 축구인장을 원했다고 한다.[53] 옥이나 돌로 되어 타거나 썩지 않는 제품은 에 함께 넣을 수 없다. 불법이다.[54] 관을 덮는 붉은 천. 관보(관싸개)와 별개의 물건이며, 위에 고인의 성명과 성씨가 한자로 적혀져 있다.[55] 고인이 질병 등으로 요절한 경우 고인이 다니던 절의 스님들이 조문을 오고 염불을 외기도 한다. 스님이 해당 고인의 생활에 주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은 장례를 주도하지 않는다.[56]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묵자가 이를 비판하고 맹자가 반박한다. 묵자vs맹자는 윤리와 사상에서 흔하디 흔한 떡밥이다.[57]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넉넉하다 해도 고인의 의사에 따라 임종 전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면 빈소를 차리지 않고 2일장(흔히 안치발인이라 한다. 입관하고 바로 발인 나가는 형식.)도 가능하다.[58] 특히 임금이 정침에서 죽지 않는 것은 큰 문제로, 공적인 공간에서 고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59] 이때 옷은 허리부분을 붙잡고 흔든다. 영상물에서는 흔히 한복의 동정을 붙잡고 흔드는데, 잘못된 것이다.[60] 지붕이 아니라 산정에서 외친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김소월의 시 '초혼'이 묘사하는 것이 이 절차라 보는 시각도 있다.[61] 성상(上)이시여, 다시 그 자리(位)로 돌아오(復)소서.[62] 이 반함은 보통 '저승길 노잣돈' 정도로 인식된다. 배가 고플 테니 을 물려주고, 저승까지 여비가 필요할 테니 노잣돈으로 엽전이나 구슬을 넣는다는 식.[63] 현대에는 고인이 생전에 매우 아끼던 사람의 경우 입관시 참례시키지 않기도 한다. 고인이 이승에 미련을 못 떼기 때문이라는 듯.[64] 같은 이유로 대형 사고가 나서 구조대원들이 출동했는데,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시신수습이 아닌 구조활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유교적인 이유 때문이다.[65]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정인보의 '자모사'에 등장하는 '보공 되고 말어라'의 그 보공이다.[66] 예송논쟁 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주범, 아니 예송논쟁 자체를 유발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장자와 차자를 포함한 여러 아들, 장자부와 차자부를 포함한 여러 며느리에 대한 상복이 다르기 때문에 장자 대접이냐 서자 대접이냐를 놓고 싸운 것.[67] 심지어 '단문복'이라 하여, 3개월만 입는 시마 이하의 복제도 있다.[68] 5푼 정도의 두께로 북두칠성 모양 구멍을 뚫은 판. 죽음을 상징한다고 하며, 고문할 때 뉘이는 칠성판의 유래다.[69] 벼슬이 낮거나 없는 사람은 '유월장'이라 하여 죽은 달을 포함해 3개월간 장례를 치르지만 벼슬이 높은 공경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을 지냈다.[70] 무령왕릉 지석에는 모월 모일 이곳의 토지신께 고유하고 얼마에 값을 치러 무덤터를 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71] 정확하게 '천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다.[72]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는 서울광장에서 치러졌고, 신해철의 노제는 그의 분당 작업실 등을 지나는 루트로 진행됐다. 그리고 송해의 경우에는 평소 자주 들렀던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을 지나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앞에서 노제를 치렀고 가수이자 극단 학전의 대표였던 김민기는 구 학전 앞에서 노제가 진행되었다.[73] 무덤을 만드는 사람들이 땅을 다질 때 노래를 부르는데 이를 달구소리 또는 회다지소리라고 한다. 달구소리는 장송곡이자 노동요로, 무덤을 만들 때 뿐만 아니라 집터를 다질 때에도(당연히 가사는 다르다) 부른다.[74] 예를 들어 유일인 '을'에 해당하는 날 장사를 치렀으면 다음 유일인 '정'에 해당하는 날 재우제를 치른다.[75] 강일과 유일이 번갈아 오기 때문에 그래봐야 재우재 다음날이긴 하다.[76] 물론 재최 1년복 이하 재최 9개월, 5개월, 3개월과 대공, 소공, 시마는 이미 탈상한 후이다.[77] 여기서 3년은 사실 햇수로 3년이지 실제로는 만 2년을 의미한다.[78] 삭망제(朔望祭). 각각 삭제와 망제로 엄격히 구분하기도 한다.[79] 이 경우 자신은 고이 보내드리고 장례가 끝난 후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고인의 유언 혹은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유족 입장에서는 부모 잃은 슬픔에 극단적으로 간소화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토요일에 죽은 사람일 경우 월요일 오전이 아닌 일요일 오후에 발인을 해서 주말 안에 모든 장례 절차를 해결하고 월요일부터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하기도 한다.[80] 당뇨합병증으로 갑자기 천국 가는 것이라든가. 참고로 가톨릭 신부들이 취약한데 금욕이 의무화된 데다 온갖 스트레스 받는 걸 술, 담배, 폭식으로 푸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81] 정교회는 장례예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성찬예배 전통과 명칭은 없다. 다만, 성찬예배 중간 혹은 끝에 '장례예식'을 별도로 거행한다.[82] 성당의 연령회를 중심으로 연도를 진행하며 고인이 레지오 마리애나 남성 신자 단체에서 활동했을 경우 단체 단원들이 돌아가며 연도를 한다.[83] 엄격하게 야훼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예배에 목적을 따로 두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 교인들은 삶과 예배를 분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일들이 크고작은 예배인 것.(사실 이것은 개신교에서 더 강조하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일터에서 일을 하든 그 자체로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고, 예배가 또 그 자체로 그들의 삶인 것이다. 이들에게는 장례와 같은 큰 일에 미사 또는 성찬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84] 그래서 신도의 선종 순간을 지켜볼 때와 장례식 과정에서 통곡하거나 너무 큰 소리로 흐느끼지 말고 가능한 한 담담하게 임하는 것이 예의다.[85] 천주교의 형식을 개신교의 정신으로 행하는 성공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86] 오 하나님! 우리들 중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볼 수 있는 자들과 볼 수 없는 자들, 어린이들이나 어른들, 남성들이나 여성들 모두를 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일 우리 중 누군가를 살게 해 주신다면 그 사람이 무슬림으로 살게 해주시고 또 누군가를 죽게 하신다면 그가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 죽게 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고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관대함으로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천국의 문을 더 넓게 해주시고 그를 깨끗한 물과 눈, 그리고 우박으로 정결히 씻어주소서. 흰 천에 묻은 오물이 깨끗이 씻기는 것처럼 그의 잘못을 깨끗이 씻어 주십시오. 오 하나님! 그에게 주어질 보상에 인색하지 마시고 그와 우리 모두의 죄를 사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87] 여자들도 고인과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들은 함께 장지로 향하지만 고인이 세상에 미련을 남길 수 있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고인의 부인이나 고인이 특별히 아끼던 아들, 딸은 동행하지 않는다.[88] 비록 매체 속의 등장이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에드무어 툴리가 아버지 호스터 툴리의 시신을 실은 배를 불화살로 맞추는데 실패하며 분위기를 아주 좋지 않게 만들자 삼촌인 브린덴 툴리가 대신 활을 잡아서 장례절차를 마첬다.[89] 분쇄라고는 해도 시신을 통째로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린다던가 하는게 아니라, 회사측 홍보에 따르면, 급속냉동된 시신은 결정구조가 변화해서 작은 충격만 줘도 부서진다고 한다. 즉, 시신을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 시신이 잘게 분쇄된다.[90] 빙장에서도 기체가 발생하기는 한다. 시신을 냉동할 때 사용되는 액화질소가 기화하면서 질소 가스가 발생하고,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발생한다. 물론 질소와 수증기는 환경에도, 인체에도 아무런 해가 없는 기체이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문제시될 부분이 전혀 없다.[91]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글판에서 생생하게 촬영한 바 있는데 그야말로 원초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참 특이하게도 독수리들이 사람이 죽으면 알아서 모이고 시신을 가지고 오면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잡지에선 조장이 아니라 천장(天葬)이라고 부른다고 나온 바 있다.[92] 한비야도 한 백인 관광객이 조장을 비난하다가 현지인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배경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죽은 시체를 그냥 당신의 집안에 두고 방치할 것인가?"라는 분노 어린 반박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져 그냥 물러선 것을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93] 소설 <마지막 모히칸>에서도 친구이던 원주민 운카스가 죽자 이렇게 장례를 한다. 이걸 보고 백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자, 황량한 배경에서 저것처럼 아름다운 장례는 없다는 주인공(백인이지만 원주민들과 자라났다)의 반론에 백인들은 반론도 못했다.[94] 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집안이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던 터라, 그가 사망하자 가족들이 조장을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프레디의 가족들이 사는 곳이 대도시인 런던 한복판이라서 조장이 불가능했으므로, 브라이언 메이 등의 다른 멤버들의 제안으로 런던 교외의 공동묘지에 매장하는 것으로 대신했다.[95] 중국 최고 비만 남성인 쑨모 씨가 사망하자 쑨모 씨의 시신이 화장장 소각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정부에서 쑨모씨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96] 알칼리는 단백질을 녹이는 성질을 가지는데, 사람의 몸은 대부분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97] 한국에서는 선원이 사망할 때 냉동고 등 적절한 곳에 보관했다가 육지에 도착할 때 고국 혹은 고인의 본거지로 이송되어 일반인들과 다름 없는 장례를 치른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선원들의 전통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바다에 묻혀도 화장한 유해가 묻히기에 선원들의 전통을 그나마 지키는 경우도 있다.[98] 한 평생을 바다에서 일한 선원들에게는 바다가 고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전통에 따라서 선원의 시신을 바다에 장사지내게 된다.[99]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자 약을 물리치고 친구들을 계산초당으로 불러 임종 파티를 열었다 한다.[100] 당시 경기는 예선 3라운드 포르투갈전[101] 단적인 예로, 장례식에서 섰다를 하면 10과 4의 "장사"를 제일 높은 족보 "38광땡"보다 패를 더 높게 쳐주는 불문율이 있다. 상주에게 돈을 빌리면 끗발이 좋다는 속설도 있고, 또한 깊은 시름에 빠진 상주에게 위로차 말이라도 한 번 더 붙일 겸 "상주님, 돈 좀 빌려주세요"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웬만하면 상주도 이 날만큼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흔쾌히 빌려준다. 물론 빌리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 정중하게 말하자.[102]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장례식장에서 의례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손님을 맞이하고 발인까지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면서 상갓집 안에서는 화투놀이를, 바깥 마당에서는 윷놀이판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103] 고인의 모습을 정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104]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장례식 에피소드를 통해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실제 당시 상갓집의 분위기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105] 중요 무형문화제 제81호.[106] 영화 축제를 보면 이 때 상여소리를 하는 상두를 시키기 위해 그 동네의 유명한 소리꾼을 데려와서 상여소리를 요청하는 게 있다. 문제는 소리꾼이 그 날 술을 과하게 해서 누워버리는 바람에 결국 마을에서 노래 잘 부르는 아저씨가 땜빵을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107] 1980년대 말 시민아파트까지는 공동 주택임에도 옛날식으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일이 많았다. 아파트 복도, 공터, 놀이터까지 활용하였고 망자가 살던 동 주민은 물론 인근 동의 지인들까지 문상을 갔다.[108] 장의를 관리하는 이른바 장의사를 뜻하는 말도 호상(護喪)인데, 한자만 봐도 다르니 사용시 요주의. 요즘은 유병장수 시대라 노환으로 편히 죽는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병사(病死)가 당연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병사라 하더라도 고령으로 병상에 누워 지병으로 사망했으면 호상(好喪)으로 친다. 그래서 현대에는 보통 90세가 넘어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 호상으로 보는 분위기다. 단, 치매,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이나, 성병(에이즈, 매독 등)같이 사회적 인식이 아직까지 나쁜 병은 망자 본인도 오랫동안 고생하고 주변 가족들도 마음고생한 몹시 끔찍한 병이라 이런 종류의 병으로 죽은 건 절대 호상으로 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망자가 오래 살다 갔다 해도 생전에 이런 병을 앓은 경우에는 절대 호상 소리를 입 밖에 꺼내선 안 된다.[109] 예를 들어, 50넘은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을 30년 넘어서 재회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110] 물론 그렇다고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들에게 "호상이시네요."라는 말을 하는 무례함은 범하지 말자. 아무리 호상이라고 해도 남이 그런 소리 하면 문상 온 일가친척들은 화가 나고, 그 자리에서 상주 및 상주 가족들한테 한대 맞을 수도 있다.[111] 세월호 참사 때 단원고 학생들의 장례를 도왔던 장례식장 대표가 그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분위기에 충격을 받아, 자신의 수익을 전부 털어서 유가족 지원과 단원고 기부에 쏟아부었던 일이 있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계속 단원고 학생들의 교복을 사 주는 등의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112] 편육은 업체측에서 제공하는 가장 싼 메뉴에 속한다는 점도 있긴 하다.[113]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충실히 했다면 부의금이 식비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닌 경우가 많다. 사실 대부분이 해당되는데, 적당히 했다 해도 조문객 수는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98%는 감당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114] 대표적으로 2018년에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향년 73세)이 있다. 그의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은 아들보다 더 나중인 2019년에 94세로 작고했다. 사실 구본무 회장도 친아들을 먼저 보낸 적이 있었는데, 조카 구광모 현임 회장을 양자로 입적시키기 전까지는 그가 유일한 아들이었고, 후사도 없이 20대에 요절했었기 때문에 대를 이을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심각한 불효로 여겨졌었다.[115] 어쩔 수 없이 둘 다 가야만 한다면 경사를 조사보다 먼저 가면 된다.[116] 아예 국장을 주관한 제이컵 주마 당시 대통령부터 이런 분위기를 조성했다.#[117] 영미문학의 오감도로 불리는 동명의 악명높은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118] 서부 아프리카 문화권, 남부 아프리카 문화권 영향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119] 주로 묘지까지 갈때는 슬픈 노래를 연주하며 엄숙하게 가고 고인이 묘지에 영원히 안식을 취하러 들어가고 유족과 다른사람들이 나오고서는 흥겨운 노래를 연주한다고 한다.[120] 동물 장례식장에서 판매하고 있다.[121] 장례 중 종교적 의식(rite) 부분에 해당한다. 장의사는 장+의사(doctor) 가 아니라 장의+사 인 것.[122] 단 나중에 이걸로 비판을 받긴 했다. 감독도 축구보다 가족을 챙기라며 참석할 것을 권했지만 그대로 뛴 모양.[123] 물론 김동선과 같은 예외는 있다.[124] 비슷하게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권에서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동전 두 닢을 망자의 입 속에 넣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125] 장의사들이 슬쩍 가져가는 경우도 있는데 당연히 유가족들도 알고 주는거다. 일종의 .[126] 사실 액자 속에 그려진 창고는 관아의 돈을 넣어두는 창고였고, 훗날 한자경은 욕심을 부려 돈을 더 가져가려다가 죽을뻔한 걸 전우치가 살려준다.[127] 원래는 사망판정 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이 가능하지만(사망 오진이나 범죄 증거인멸 등의 우려) 전염병 사망자는 예외다.[128] 일반적으로 원수지간인 사람의 장례식에는 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형제끼리는 방계가족이므로 참여가 필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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