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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1:21:31

구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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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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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구인회
(1947~1969)
제2대
구자경
(1970~1995)
제3대
구본무
(1995~2018)
제4대
구광모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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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LG그룹 제3대 회장
구본무
具本茂|Koo Bon-moo
파일:LG_구본무_회장.jpg
<colbgcolor=#6b6b6b> 출생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
(現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1][2]
사망 2018년 5월 20일 (향년 7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지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화담숲[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능성 구씨 (綾城 具氏)[4]
화담(和談)[5]
직업 기업인
학력 삼선고등학교[6][7] (졸업)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상학 / 중퇴)
애슐랜드 대학교 (경영학 / 학사)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경영학 / 석사)
부모 아버지 구자경 어머니 하정임
형제자매 남동생 구본능, 구본준, 구본식
여동생 구훤미, 구미정
배우자 김영식[8]
자녀 장남 구원모[9]
장녀 구연경
차녀 구연수[10]
양자 구광모[11]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종교 불교[12]
혈액형 B형

1. 개요2. 가족 관계3. 그의 경영이념4. 야구 관련5. 여담6. 수상경력7. 사망 및 경영 승계 작업 진행 상황

[clearfix]

1. 개요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1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하라.
대한민국기업인. LG그룹 제3대 회장.

2. 가족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그의 경영이념

4. 야구 관련

재계에서 삼성 이건희 - 이재용 부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등과 더불어 소문난 야빠로 알려져 있다. 1군은 물론 2군 선수들까지 70여 명의 이름과 학력을 전부 다 외웠을 정도. 럭키금성그룹은 야구팀 LG 트윈스MBC 청룡을 인수한 첫 해인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1995년에 그룹명을 LG로 고쳤으며[13] LG 트윈스 창단 원년부터 2007년까지 17년간 구단주를 맡아 팀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단목 행사'라는 이름으로 LG 트윈스 선수단 + 프런트 + 그룹 계열사 사장단에 LG 트윈스 출입기자까지 부르는 전체 단합행사가 있었는데 구 회장이 직접 생각하고 주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단목'은 구 회장의 외가이자 생가가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 행사는 21세기가 되고 구 회장이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넘겨준 후 사라졌다고 한다.

김용수의 회고에 따르면, 구본무 회장은 2군 선수들 이름까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팀에 관심이 많았고[14] 가끔씩 선수들을 자택으로 불러서 격려했다. 또한 선수들을 불러서 회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 "밖에서 피지 말고 안에서 피워라."라고 할 정도였다. LG의 보수적인 문화를 감안하면 선수들과 격의없이 어울린 모습이 의외로 보일 정도. 그 만큼 선수들에게 너그러웠다는 것이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1994년 우승 이후 일본산 아와모리 소주를 사서 우승주로 만든 것과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자, 나중에 LG 트윈스가 우승했을 때 한국시리즈 MVP에게 주기 위해서 당시 가격으로 8천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준비한 것도 그의 야구팀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15] 심지어 1999년에 부진하자, 2000년에는 아예 '우승시 백지수표'라는 큰 보너스까지 걸었을 정도였다.

1990년대 중반에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 내 최초 돔경기장 건설에 의욕을 보인 것도 구 회장이었는데, 1997년 외환 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LG는 2000년대 초에 잠실을 떠나 뚝섬 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2000년 들어서 동생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이후에도 1년에 몇 경기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직관을 왔다고 한다. 참고로 구본무 회장의 또 다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KBO 총재가 되면서 구본준 구단주 대행이 사임하고, 당시 LG U+ 신용삼 사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다가 신용삼 대표 퇴임 이후에는 구본준 부회장이 다시 겸임했었다. 지금은 4세 경영체제로 접어들면서 구광모로 구단주가 바뀐 상황.[16]

5. 여담

6. 수상경력

7. 사망 및 경영 승계 작업 진행 상황

2018년 5월 17일에 와병으로 인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위독한 상황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구 회장이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12층 특실 121병동에는 이날 정오부터 친인척들의 병문안이 잇따랐다.

구 회장이 입실한 곳은 무조건 허가 받은 사람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방문자들 중 본인을 구 회장의 직계 친인척이라고 소개한 한 중년 여성은 “구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상태”라며 “발만 주무르다 나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두 차례의 뇌 수술을 받은 바 있는 구 회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와병하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구 회장이 수술 후유증으로 위독한 상태라는 소문이 나왔다. 보도

결국 같은 해 5월 20일 오전 9시 52분, 입원해 있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하고 말았다. 이때가 향년 73세. #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 받는 것이 싫어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연로한 데다가 멀리 천안시에서 거주하고 있는데다 본인도 건강이 영 좋지 않아 빈소를 찾지 못했다.[30]

이보다 불과 이틀 전인 5월 18일 LG그룹은 구본무의 양자(실제 혈연관계는 조카) 구광모가 승계하는 4세 경영을 본격 선언했다. 다만 2018년에 아직 40세에 불과했고, 직급도 아직은 상무라서 경영 전선에서 본격적으로 대두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본무 회장의 와병 중에 LG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둘째동생 구본준 부회장의 경영 정리[31]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32]

장례는 평소 소탈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던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이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렀으며, 화장 한 뒤 곤지암 인근에 수목장에서 진행되었다.[33] 조문과 조화를 사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그 외에는 LG그룹 내 사장단들이 일부 방문한 정도. 장례를 간소하게 치른 것에는 LG그룹 특유의 유교적인 문화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 유교식 장례에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다.

부고가 전해진 당일 LG 트윈스는 앰프 응원을 중단하고 원래 SEOUL 유니폼을 입기로 했으나, 대신 LG 트윈스 선수단의 기본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달았고, 선수단 전원도 스타킹을 올린 농군패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주장 박용택의 제안에 선수단이 동의했다고 한다. 한편 이날 LG 트윈스는 한화 이글스에게 시즌 첫 승을 거두며 회장님의 영전에 승리를 전했다. 한화 역시 LG의 요청에 동참하여 앰프 응원을 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과도 친분이 있었던 듯 하다. 1945년생 동갑내기이고 연대 동문이라 친분이 있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구 회장 장례식 때 박 회장은 3일 모두 빈소를 찾았고 발인까지 함께 했다. 관련 기사

[1] 진양 하씨 집성촌으로, 구본무의 외가가 있는 곳이다.[2] 관련기사[3] 수목장으로 안장되었다.[4] 도원수파 28세 본(本) 동(東) 항렬.[5]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갖고 있다. LG그룹 소유 리조트인 곤지암리조트 옆의 대형 생태 수목원 '화담숲'이 그의 호를 따서 만든 곳이다. 실제로 구 회장은 생전에 이 숲을 가꾸는 과정에서 상당한 애착을 가졌으며 별세 후 그 의 시신도 화장 후 화담숲에 수목장 형태로 매장됐다. 화담숲 내 소나무 정원에는 구 회장을 기리는 추모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6] 1960년부터 1971년까지 존재했던 고등학교로, 삼선중학교와 함께 설립되어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1가에 있었다. 1972년 2월, 9회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이건무, 진태구 등이 동문이다.#[7] 한때 서울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지기도 했다.#[8] 金英植. 구 안동 김씨 김태동(金泰東)의 딸.[9] 19세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10] 장남이 사망하여 아들을 낳고자 했으나, 셋째로 딸이 태어났다.[11] 첫째 남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즉 구본무에게는 장조카다.[12] #[13] 물론 LG그룹에서는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그룹명 변경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밝히는 중이다. 단, 이미 내부적으로 LG 라는 이름으로 바꿀 계획을 잡은 상황에서 야구단이 호성적을 보이자 제대로 홍보효과가 나서 그룹명을 바꾸는데 탄력을 받았다고 보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미 LG 트윈스 외에도 'LG' 사명을 건 계열사들이 있었기 때문.[14] 삼성 구단주인 이건희도 야구를 좋아했다고는 하나 2군 선수들 이름까지 외우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한화 구단주인 김승연도 마찬가지.[15] 다만 LG는 98년에도 준우승을 했다. 우승주도 우승시계도 02년에도 준우승을 하면서 주인을 찾지 못 했고, 6668587667을 겪었다... 결국 구본무 회장은 우승주와 우승시계가 주인을 찾는 모습을 살아생전에 보지 못했다. 구 회장이 2018년 별세한 뒤 5년이 지난 2023년에야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의 주인은 오지환으로 결정되었다.[16] 하지만 구광모 회장은 구단주 대행을 두고 있는데 그 사람이 그의 생부이자 KBO 총재를 맡았던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17] 옵티머스 G의 제품명은 한국 내수용이 LG-F180, 글로벌 모델이 E975이다. 펫 네임은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한 별명이다.[18] 롤렉스 116598 SACO, 롤렉스 데이토나 레오파드라고 불리는 모델로, 1994년 당시에는 8만달러가 넘던 시계였다. 2022년 현재는 한 번도 차지 않고, 뜯지도 않은 새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며 중고의 경우 관리상태가 아주 좋은 것은 약 16만달러에 이른다(00년대 중반 제품까지 있으므로 94년 제품의 가격은 다를 수 있다)[19] 사실 그 때만 해도 LG 트윈스의 우승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 결과적으로 LG 트윈스는 2년 연속으로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20] 다만 오지환 본인은 받길 사양하고 구광모 회장에게 주겠다 했는데, 이유는 선대의 유품이 부담스러워서라고. 대신 모두가 볼 수 있게 전시해달라고 인터뷰에서 부탁했다.[21] 삼성그룹이 이병철 회장 사후 2세 경영으로 넘어갈 때에 이병철 회장의 딸인 이인희의 몫으로 한솔그룹이, 이명희의 몫으로 신세계백화점이 주어졌다. 이숙희는 LG가문의 며느리였던 탓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없었고, 이순희는 알머스(영보엔지니어링)을 물려받았다. 나머지 딸들은 정실 자식이 아니었던 탓에 승계받은 회사가 없다.[22] 아워홈 구지은 대표이사가 이례적인 경우이다.[23]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파일:record-image_ (5).jpg[24] 같은 해에 구본능은 아내인 강영혜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구광모는 그 때 고3이었는데, 친어머니의 사망에 충격을 받았다고.[25]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맥킨지의 LG전자 프로젝트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스마트폰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선택할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맥킨지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MS와 구글의 운영체제에 집중하라는 얘기였다.[26] 당시 LG상사 부회장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LG전자 부회장으로 전보되었다. 사실상 오너가 직접 LG전자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27] 다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애물단지 취급이던 MC 사업부를 청산해야 했다. 남용 시절의 삽질로 인해 LG전자는 후발주자의 입장이었으며 계속해서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28] 하태경 의원은 “명분만 맞으면 앞으로도 돈 낼 것이냐”고 질책했고, 이에 구본무 회장은 “연금이나 불우이웃 돕기 같은 일에는 앞으로도 지원을 하겠다”고 답했다.[29] 허영만 화백이 1948년생으로 3살 연하이다. 다만 학년, 기수 문화에서 자유로운 해방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2~3살의 나이차이를 막론하고 친구로 지내는 케이스가 많았다.[30] 프로필 상단을 보면 알겠지만, 기구하게도 구본무 본인도 생전에 아들을 먼저 잃었다. 1년 후 겨울에 부친 구자경도 결국은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숨졌다.[31] LS그룹, LIG 등의 예전 사례를 볼 때, 현재 갖고 있는 LG 지분을 일부 계열사와 바꾸어 분사/독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로도 구본준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 추대 이후 고문으로 물러나 지분을 정리한 후 LG상사를 비롯한 계열사들을 가지고 LX그룹으로 분가한다.[32] 하지만 이와 반대로 범 LG가 기업들이 일부나마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LG그룹의 4대 총수 구광모 회장의 친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그룹 계열사들을 LG그룹에 다 편입시키고 자신의 지분만을 구광모 회장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 게다가 LG그룹의 문화 특성상 장자승계 원칙도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 희성그룹에서 구본식계 계열사가 LT그룹으로 분가한 것도 이런 것과 연관성이 추정된다.[33] 체육훈장 수훈자라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있었지만, 본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숲에 묻히고 싶어했던 듯. 대기업 회장들 중 국립묘지에 묻힌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포스코 초대 회장이자 국무총리 및 군인을 지낸 박태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