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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안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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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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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천안시
경상북도 경주시, 안동시
부산광역시
황해도 해주시, 개풍군
인구 519,719명(2015년)
사이트 안동김씨대종회
1. 개요2. 역사3. 인물
3.1. 정재계 인사3.2. PD3.3. 작가3.4. 연예인3.5. 체육인3.6. 인터넷 방송인
4. 분적(分籍)된 김씨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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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1]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나, 신 안동 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라고 하기도 한다.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명장이자 수상격인 문하시중·첨의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 중시조이다.[2]

2. 역사

고려 공민왕신돈을 탄핵하고 고려가 망하자 첩첩산중에 은거한 충신 김사렴과 그의 아우이면서 조선 왕조 1등 개국공신 김사형의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김사렴으로부터 안렴사공파, 김사형으로부터 익원공파가 분파하였다. 진주 대첩김시민(金時敏) 목사(牧使), 강홍립이 이끌고 출정했던 후금 정벌군의 전선 지휘관으로 훗날 명나라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는 김응하 등도 모두 선 안동 김씨다. 김시민, 김응하는 모두 충무공의 시호를 받았다.[3] 현재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는 김구 주석이 있다.

선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심에는 김자점(金自點)이 있다. 김자점(金自點)은 1623년 3월(광해군 재위 15년)에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르고 후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된다.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당하고 호란이 끝난 뒤 조야의 처벌 요구로 유배당한다. 1639년(인조 17년) 사면되고 1640년(인조 18년) 복직되지만 효종 때 산당 세력에게 탄핵당해 1650년 파직되고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당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청나라에 '효종이 북벌론을 지지하고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한다' 밀고하여 나라에 큰 혼란을 불러오게되는데, 다행히도 이경석, 이시백 등의 활약으로 청나라 군대를 돌려보낸다. 이후 김자점은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당하지만 그 후에도 손자며느리인 효명옹주 저주사건, 아들과 손자들의 군사반란이 발각되면서 역모죄로 사형당하고 가문은 몰락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가 바로 김자점의 방계 후손인데, 백범 일지에서 집안이 '상놈의 패를 찼다'고 언급하는 사건이 이것이다.

그러나 김자점의 정치적 몰락으로 인해 가문이 몰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에도 좌승지 김구만(龜萬)뿐만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사가 총 9명[4], 도승지, 병조참판을 역임한 김광국(光國) 등이 있는 것을 보면.[5]

3. 인물

3.1. 정재계 인사

3.2. PD

3.3. 작가

3.4. 연예인

3.5. 체육인

3.6. 인터넷 방송인

4. 분적(分籍)된 김씨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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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족보 및 씨족원류에 따르면 김숙승은 경순왕과 낙랑공주 왕씨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의 차남이라 한다.[2] 김방경(金方慶)의 동생인 김현경의 손자 김영규(최영규)는 수성 최씨의 시조가 되었다.[3] 유독 한 분이 넘사벽으로 유명하지만 조선의 충무공은 모두 9명이다[4] 김영수, 김응해 등[5] 물론 그동안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들 입장에선 몰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