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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6:33:33

김준식(작가)

파일:김준식_1.jpg
이름 김준식(金俊植)
출생일 1959년 6월 21일 ([age(1959-06-21)]세)
출생지 충청남도 연기군 (現 세종특별자치시)
가족 배우자, 아들
신체 172cm, O형
본관 선(先)안동김씨
학력 경희대학교 (학사)
소속 담론연구회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작가생활2.2. 사회참여활동2.3. 담론집필
3. 논쟁거리4. 전망 혹은 진보적 작가론5. 작품목록
5.1. 장편 소설5.2. 에세이집5.3. 담론5.4. 사회참여 공동저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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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담론문학은 통상 우리가 이해하는 문학과 차이가 있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 돌려말하는 대신 사실을 주요 구성요소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보다 직설적이며 허구보다 오히려 실체적 이야기를 서정과 서사의 융합을 통한 일원성 구조로 이끌어 나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담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데, 먼저 숙고해야할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의 학문용어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담론 역시 서양의 시각으로 규정해 왔다는 사실이다. '담론이란 특정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행위를 끌어내기 위한 언술의 집합이다'라는 미셸푸코의 정의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김준식 작가는 이런 관점을 극복하고 우리 고유의 성어, '고담준론(高談峻論)과 우리 한글의 담론적 구성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즉 '고담'은 신화나 종교 같은 추상성을 담지하는 이야기로, '준론'은 사실과 진실에 논거한 실제적 이야기로 보고, 이 양자를 전일적으로 결합하여 담론을 정의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담론문학 [1]역시 이런 범주에서 자기정체성을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문학의 본령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문학이란 시간에 실린 에너지가 파동에 의해 생명으로 응결하여 살아가는 동안 내는 생의 소리를 질서정연하게 엮어 세상에 퍼트리는 일이다. 그것은 씨알 하나가 흙의 기운과 공명하여, 자라고, 꽃 피워, 결실을 맺는 것으로 자기 본질과 대면한 후 재귀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렇듯 생명의 한 주기를 관조해서 얻은 전일적 사랑(神性)의 추구가 소위 지배체제 내 유미적 행위보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를 확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개체의 존엄을 확보하려는 예술의 본원에 가깝다고 본다. 김준식 작가의 담론문학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괜찮은 작가란 사람과 사랑을 억압하는 것에 화내는 사람이다' 라는 독특한 모토 아래 30여 년간 활동해 왔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담론문학가.

작가, 그는 무엇인가.

2. 생애

1959년 7월 26일, 충청남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농부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5남 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소은씨와 초록빛 자전거』 [2]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집안은 몹시 가난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돕다 이듬해 공장에 다니는 누나의 헌신 덕분에 상급 학교에 진학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8년 효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어머니의 정성어린 사랑으로 올곧게 성장하는 행운도 함께 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누나가 야간작업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조간신문 배달원, 건설 현장 잡부, 길거리 장갑 장사, 상가 야간 경비 등으로 고학을 하며 끈질기게 자신을 지킬 수 있던 원력도 그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가난은 그를 예민하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미 체화한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가슴에 고인 슬픔을 인문학적 예술로 풀어야할 숙명을 안겨 주었다. 특히 공순이 라는 비하의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동생에게 헌신한 누나의 짧고도 서러운 생은 그의 평생을 관통하면서 인식과 의식에 관여한다. 그가 이제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여성접대부가 있는 유흥업소에 가지 않은 것도 이렇듯 죽은 누나의 인격화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실존적 의지와 욕망의 차이에서 오는 불안, 과도한 자의식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동시에 개인의 심리적 갈등에 그치지 않고 사회활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가 힘들게 대학을 마친 이후 몇 년 동안 건설 현장의 노무자로 일한 것도, 이후 현대건설과 한라건설의 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연구소 기획과장으로 특진하던 1995년 봄, 퇴사하여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이런 남다른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숙명성 때문이었다. 이런 성장기는 앞서 말한 그의 독특한 담론적 문학관과 깊이 연결되는데, 이 과정이 그의 에세이집인 『사랑하며 아파하며』 [3]에 잘 드러나 있다.

2.1. 작가생활

김준식 작가는 여느 작가와 출발부터 달랐다. 소위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습작과 출판을 통해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이런 남다른 글쓰기 경로는 그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한데, 일제의 잔재이자 당시 군사정권에 기생하던 언론에 의한 등단체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기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의 치열한 탐색이었다. 그에 있어 작가란 여러 에너지를 응집시켜 하나의 생명으로 서는 씨알의 내적 힘처럼 고유한 생명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이 타율적 규정에 좌우되는 순간 존재의 의지가 퇴색된다고 본 것이다. 작가는 지배담론의 규정을 초월하는 생명체 고유의 존엄함과 자주성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자기 결정권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정언명령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지배체제의 한 요소인 엘리트 규정적 심사에 의해 작가로 결정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런 통과의례적 제도는 예술성을 확장하기보다 오히려 억압한다는 입장이다. 작가는 끊임없는 글쓰기의 일상을 통해 자기정체를 확보해 나가야 하며, 이에 대한 주변의 연속적인 평가와 신뢰, 그리고 비판을 동반하면서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것으로 보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 왔다.[4]

1995년 봄 직장을 정리한 그는 자신과 주변에 글쟁이로 살아가겠다고 말한 후 2년여 동안 외딴섬과 사찰에서 생활하며 글을 써서 두 권짜리 장편소설,『하늘이 높으면 끌어 내려라』을 인세 출판한다. 물론 이런 그의 도전을 기성 문단이나 언론에서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 세 번째 작품인『사랑하는 당신에게』가 순전히 글의 힘으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월간에세이[5] 사나 유력 일간지 등 여러 곳에서 원고청탁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평판과 조명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작가란 글을 쓸 때만 사람이라는 단호한 자세를 견지하고 이후에도 문단 활동 등 사교적인 행위를 삼가며 오로지 작품쓰기에 주력했다. 이 시기 사랑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소은씨와 초록빛 자전거』 『약속』 『비익조』 [6] 등을 연속으로 출간하면서 점차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2.2. 사회참여활동

글쓰기 이외의 활동엔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하던 그는 2012년 봄 이를 전환한다. 2002년 비익조를 출간한 이후 거의 10여 년 만이었다. 그동안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 캐어를 제1 순위에 둔 채[7] 여분의 시간에 월간에세이사에 <세 여자의 길쭉한 발을 씻어주며>라는 연작에세이를 일 년 넘게 싣는 등 짧은 글쓰기를 하면서 대하소설 『바람과 초원의 딸』 [8]을 쓰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2012년 5월,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통합진보당이 분열하던 과정이었다. 당시 그는 '누가 사람과 사랑을 억압하는가' 만을 기준으로 사유를 단순히 했다. 그리고 기득권에 핍박을 받던 이정희 대표에 진실과 사랑이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 옹호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여러 지인들이 손해보는 일이라며 말렸지만 개의치 않고 사회참여형 글쓰기를 계속한다.이는 진보냐 보수냐의 편향적 이데올로기 범주를 넘어서는 일로 참과 거짓의 문제였고, 생명의지에 공명하는 일이며, 그동안 소신으로 지켜오던 담론문학 모토의 적극적 실천이었다. 이를 계기로 철학가인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최진섭 작가 겸 도서출판 말 대표 등 진보인사들이 모여 발간한 공동저작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9] 『내린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의 필진으로 참여한다.

결국 이 사건은 우리 헌정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평가될 정당해산으로 귀결되며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점을 남겼다. 이후 정치는 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담론문학의 부재를 또 한번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진보정당해산 판결은 결국 법리 상 특정 언어의 해석문제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정당 해산의 주요 논거로 삼았던 '진보적 민주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 담론어를 북한 김일성이 먼저 말했고, 통합진보당이 그를 당의 강령으로 삼은 만큼 <종북 정당> 이라는 억지 논리였다.[10] 그럼에도 글쓰기 일상을 마치 천명이나 받은 것처럼 말해 자신의 주가를 높이던 유명 작가들은 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극우화된 집권세력이 어용언론을 동원한 언어의 변태적 해석을 무기로 벌인 마녀사냥의 부당함에 말을 전업으로 다루는 작가들이 침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꼴이 된 셈이다. 이를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충정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정합성이 많이 떨어진다.우리 국문학의 원류인 향가와 가사는 물론이고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등 고전은 결코 정치사회담론성을 배제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1] 그러므로 이런 부조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거대 언론사를 축으로하여 작가가 양산되고 길러지는 한국문단의 한계와 협량을 그대로 노출시킨 사건 중 하나라고 하겠다.

2.3. 담론집필

이 같은 사회 참여적 글쓰기와 활동은 자연스럽게 그의 담론문학의 영역을 더욱 넓히고 구조의 정밀함을 배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2020년 여름 발간한 『아무르 자주담론』 이 그의 결정체이다. 이는 결코 장구한 염원이나 계획하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한 작가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힘든 한국문단의 담론문학 부재라는 편향된 풍토와 구조 속에서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왔기에 숙명처럼 마주한 일이었다. 그는 여기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이를 융합시킨 문채로 592페이지에 이르는 사회과학적 '담론'을 완성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내용 역시 분량에 걸맞게 방대하다. 일만 년 한겨레 문명을 재조명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함수적 기울기를 통해 우리 겨레의 미래 비전을 말하고 있다. 특히 국가자주 문제에 있어 그가 이 담론을 통해 제시한 <열린 자주>는 신선하면서도 독특하다. 자주 문제는 그동안 우리 근현대사를 '자주인의 수난사'라 정의할 만큼 민감하고 논쟁적인 일로 끊임없는 쟁투의 대상이었다. 한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를 다루는 다양한 관점과 그에 따른 수많은 정파가 존재했고, 주변 강대국의 패권 등 외변을 먼저 살피는 상황적 자주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르 자주담론은 이런 기조를 과감히 탈피한다. [12] 먼저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내재적 가치를 찾아내어 그를 토대로 국가의 자주문제를 재구성하면서 이를 '열린 자주' 라고 명명 했다. 아무르 자주담론이 그동안 사마천의 사기후한서 등 중국 역사서의 쪼가리를 모아 우리 상고사를 정리한 기존 강단사학계의 종속적,사대주의 사관과는 달리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사관을 확대하여 상고사를 재구축한 것도 이에 뿌리를 둔 것이다. 담론은 국가를 한 단위로 하는 인식의 틀을 새롭게 짜는 일로 역사가 중심축일 수밖에 없는데, 아무르 담론은 이처럼 문학적 상징과 철학의 논증을 통해 이를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었다.

3. 논쟁거리

이 같은 담론문학관은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논쟁거리를 양산했다. 문학의 예술성을 중심에 두고 벌린 참여문학순수문학이라는 해묵은 논쟁[13]이 그 일단인데, 담론문학관은 그 같은 논쟁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치열하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 소위 근대학문이 시작되면서 구축된 기성 문단의 권위까지 '사대주의적 지배 담론에 예속된 도구로 봐야한다' 라고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자연히 기존 권위와의 불화로 이어져 작가로 하여금 아웃사이더의 험로를 가게했지만 그는 그런 수고로움을 피하지 않았다. 월간에세이의 청탁을 받아 '세 여자의 길쭉한 발을 씻어주며' 라는 연작에세이를 싣던 중 조선비즈의 원고청탁을 거절하며 생긴 파장이나, 1999년 여름에 발간한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 교보문고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르면서 발생한 우리문학사와의 출판권 침해 재판 등에 휘말린 것 역시 이에 연유했다. 동시에 대사회적 글쓰기를 시작하자 진보언론 매체엔 민중의소리에서 만인보의 한 인물로 선정하고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14] 진보활동에 기여한 공적이 적다며 거절한 것도 그의 연장선이다. 그러면서도 통합진보당 해산처럼 첨예한 정치문제를 다루기 위해 공동발간한 책의 필자로 적극 참여한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술을 통한 정치적 행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문학인이라는 기존의 범주와 헤게모니 를 벗어나거나 허무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논쟁이 일었다. 하지만 담론문학은 바로 이렇듯 지배담론이 규정한 권위적 경계에 매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런 과정이 오히려 내적 자유를 확장시켜 예술성을 보다 심화시키는 것으로 간주한다. 글이란 삼라만상이 뿜어내는 소리를 응집시켜 질서 있게 엮어내는 일로 여러 에너지의 응결인 씨알과 동의이음어와 같다고 정의하는 담론문학관의 한 본보기였다.

4. 전망 혹은 진보적 작가론

담론문학관에서 글은 글로서만 그치면 의미가 매우 제한적이다. 우주의 여러 에너지가 우호적 부딪침에 의해 한 생명으로 응결되면서 이름 붙여진 씨알의 존재가, 발아를 시작으로 마침내 자기와 똑같은 얼굴의 씨를 남기고 온 자리로 돌아갈 때만 전체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글 역시 이런 자주성과 진보성을 바탕으로 인간 삶에 기여할 때 비로소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는 한 편의 글이 자가 분열을 통해 한 세계(문명의 작은 고리)를 이루는 과정이기도 한데,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묘한 시간의 인연과 생명을 움트는 활성화된 에어지가 더해져야한다. 우선, 우르르 꽝꽝꽝! 천지를 흔드는 벽력같은 기척이 안과 밖 동시에 파고들어 단단한 아집의 껍데기를 깨고 숨길을 틔워야 한다. 이런 일련의 생명과정은 글과 씨앗의 자기 혁신이자 비로소 전체를 품는 순간이다.

시간이 여기에 이르면 글과 씨알은 역사가 되는데, 이때 글을 쓴 작가는 씨앗을 일군 농부처럼 정작 철저하게 소외된다. 추상의 글이 세상에 퍼져 실상을 구축하거나 하나의 심미로 작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하나의 씨알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자라나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워내는 것은, 이미 글이 아니고 씨앗이 아닌 까닭이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웅적, 선구적 파동이다. 그렇게 자기 계발적 분열로 숙성된 글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시대의 소임을 다하고 나면 시대의 중심에너지 범위에서 벗어나 우주로 흩어진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큰 원을 타고 흐르는 재귀이다. 이때 비로소 씻눈을 틔운 씨알이 자라 같은 얼굴의 씨알을 남기듯 실상의 실천을 마친 글은[15] 회귀하여 작가의 이름으로 남는다. 이것이 진정한 작가의 자주적 창의성이다.

5. 작품목록

5.1. 장편 소설

5.2. 에세이집

5.3. 담론

5.4. 사회참여 공동저작집


[1] 김준식 작가의 언론 기고문 '작가란 무엇인가?' 중에서[2] 스프츠서울,2001.7.20일자 '출판특집서평, 김준식의 자전적 성장소설[3] 불교신문 2015.5.1일자 사랑하며 아파하며 서평, 세상의 중심인 당신 진짜 주인공 만나길[4] 에세이집 '사랑하며 아파하며' 제4부 나눔이야기편, 작가론[5] 2003년 10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연작에세이, '세 여자의 길쭉한 발을 씻어주며'를 등재[6] 조선일보 2002.7.5일자 문학신간 안내[7] 2001년 3월, 어머니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시작한 이래, 치매가 병발하면서 어머니를 16년 동안 캐어한다.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도 그래서 취득했다.[8] 민중의소리 2014.8.8일자 문화란 '바람과 초원의 딸, 우리가 모르는 기황후의 진실[9] 2012.8.9 도서출판 들녘 출판사 간행, 교보문고 등 서점 배포[10] 진보진영은 물론, 서강대학교 임지봉 교수, 경희대학교 김윤철 교수 등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이 진보정당 강제해산의 부당성을 말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의 출처 역시 사살관계에 부합하지 않다. 그말은 김일성이 태어나기 전인 대한제국 때 이미 조합된 세계사적 담론어였다.[11] 한국학술지인용색인 등재 논문, 김형석 한양대교수 저, 비극성 관점에서 본 고전소설 결말 구조 연구 참조. 2018.3.13 등재 확정 분[12] 철학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의 '아무르 자주담론'의 독후감에서. 2020년 8월 14일[13] 한국학중앙연구원 간 백과사전, 순수참여논쟁, 문학과 정치,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논쟁을 말한다.[14] 2012년 여름 민중의소리 기자로부터 만인보 등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함[15] 열린 자주와 평등을 말하다. 2020년 가을 <리뉴얼 홍범구주(新 洪範九疇)를 통한 '아무르 자주담론'의 해설서에서 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