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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02:17:48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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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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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양주 낭씨
3.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

1. 개요



대한민국 및 중국의 성씨로, 정작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보첩이 불타버려서 지난 2,000년간의 근간을 알기 어렵다고 한다.

2. 상세

본관은 《증보문헌비고》에 양주(楊州)와 진주(晉州) 등 2개의 본관이 나타난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양주 낭씨만 나타났으나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주 낭씨가 다시 나타났고,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기존의 두 본관 이외에도 순천(順天), 양지(陽智), 의령(宜寧), 동래(東萊) 등 4개의 본관이 새롭게 나타났다.

인구는 1930년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에서 전국에 36가구가 나타났는데, 이 중 경기도에 29가구, 함경남도에 4가구 등이 분포해 있었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국에 328명(양주 245명, 기타 51명, 미상 32명)이 나타났고,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전국에 341명(양주 334명, 진주 3명, 미상 4명)이 나타났다.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浪)씨와 (浪)씨가 함께 집계되어 낭씨의 경우 전국에 181명(순천 34명, 양주 115명, 양지 9명, 의령 9명, 진주 5명, 기타 9명)이 나타났고, 랑씨의 경우 전국에 125명(동래 6명, 순천 22명, 양주 79명, 기타 18명)이 나타났다.

2.1. 양주 낭씨

양주 낭씨(楊州 浪氏)의 시조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자는 당나라의 무장이었던 소정방의 부하인 낭원보(浪元寶)[A]이며, 후자는 조선 인조 때 인물인 낭초(浪礎)[A]이다.

한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1 「앙엽기(盎葉記)」에 수록된 '동국제성(東國諸姓)'을 보면, 이덕무가 1789년(정조 13) 《동국여지승람》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사하며 당시 한성부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성씨를 모두 기록해놓았는데, 이 중에서도 낭(浪)씨가 나타난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45명,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334명,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양주 낭씨 115명과 양주 랑씨 79명 등 총 194명 등으로 집계되었다.

문헌상에는 1784년(정조 8) 정시(庭試) 무과에 병과 639위로 급제한 무예별감(武藝別監) 낭세희(浪世熙, 1744 ~ ?)가 있었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무과에 급제한 낭차명(浪次命)이었다. 낭세희는 무과 급제 후 1790년(정조 14) 한강별장(漢江別將, 종9품)에 제수되었고, 1804년(순조 4) 삼천포 권관(權管, 종9품)에 제수되었다.

또한 1894년(고종 31) 식년 진사시에 3등 738위로 입격한 낭종호(浪宗鎬, 1874 ~ ?)가 있었다. 자는 주경(周卿), 본관은 양주(楊州), 당시 거주지는 한성부였다. 아버지는 1892년(고종 29) 가선대부(嘉善大夫) 행(行) 결성현감(結城縣監) 겸(兼) 홍주진관 병마절제도위(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를 지낸 낭수일(浪壽一)이며, 동생으로 낭인호(浪寅鎬), 낭정호(浪定鎬), 낭채호(浪寀鎬)가 있었다.

그밖에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한 낭처호(浪處浩), 낭세룡(浪世龍) 등이 있다.

3. 나무위키에 등재된 인물



[A] 하지만 바이두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이와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걸로 보아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