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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6:59:06

빈(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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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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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 빈)
2.1. 인물
3. (빛날 빈)
3.1. 인물
4. 빈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5.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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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중화권, 월남성씨. 한국의 성씨로는 賓, 彬 두 종류가 있다.
표기에 따라 민씨, 반씨와 헷갈릴 수 있다.

2. ( 빈)

수성(대구광역시 수성구), 담양, 영광본관이 있다. 고려 원종태자(후의 충렬왕)의 왕후가 될 제국대장공주호위하여 원나라에서 들어온 빈은후(賓殷厚)를 기원으로 한다. 그의 손자 빈서기(賓瑞奇)가 카다안의 침입 때 공을 세워 수성군(壽城君)에 봉해졌다. 중시조는 수성현(壽城縣) 출신의 빈우광(賓宇光)인데 정동행성에서 치러진 과거에 급제하여 원나라로 가 한림학사를 역임하다가 수많은 서적을 갖고 고려로 돌아왔고 충숙왕은 이 공으로 그를 수성군에 봉했다.

한편 대구빈씨 대종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대구빈씨의 시조는 빈우광(賓宇光)이다.빈우광(賓宇光)은 남송에서 벼슬(한림학사)을 하다가 남송 멸망 후 중국의 중요한 서책들을 수만권 가지고 고려말 충숙왕 때 고려에 귀화하였다. 그 공로로 대구의 수성군을 하사받아 정착하며 수성을 본관으로 사용하였다. 훗날 지명의 변경등으로 전국을 통일하여 대구로 본관을 통일한 것이다. 대구빈씨는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 집안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되고 달성,수성,대구외의 본관들은 대부분 그 정착지에 오래 살면서 그 지명을 따서 본관을 정한 경우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후 전국의 빈씨 대표자들이 모여 대구를 본관으로하는 대동보를 만들어 본관을 대구로 통일하였다. 대구 도동 팔공산 자락에 시조묘소가 있으며봄철 한식날을 전후하여 시조묘제를 지내고 있다.
호적상으로 본관을 바꾸는 것은 절차적으로 재판을 받는 등의 번거로움이 있어 일부는 법적으로 아직도 대구가 아닌 달성, 수성, 대전, 여수. 밀양빈씨로 호적에 올라있는 경우가 많으나 점차로 바꾸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5년 인구조사에서 5,593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빈씨의 97%를 차지.

담양 빈씨의 경우 2005년에 귀화한 빈도림교수가 시조로 살고 있는 담양을 본관으로 한다. #

빈도림교수는 이웃집 찰스 2024년 8월 28일 방영분에 출연하였다. #1 #2

2.1. 인물

3. (빛날 빈)

대구, 달성 두 본관이 있는데, 모두 대구와 동조동원으로 보인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대구 9가구, 본관 불명 1가구 등 전국에 10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모두 경성부경기도 광주, 용인시, 이천시 등지에 살고 있었다. 이들 중 당시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운학리(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살던 빈영선(彬永先)씨는 자신의 선조는 몽골인으로, 청나라 광서제 때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빈문(彬文)인데 빈문이 당시로부터 20대 이전 대구광역시로 이주해 오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용인군 포곡면 삼계동(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삼계리)에 살던 빈봉구(彬鳳求)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 전 대구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주해 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증언을 토대로 보면, 청 광서제 때 원외랑을 지낸 빈문이 우리나라 빈씨의 시조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가 대구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본관을 대구로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같은 시기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살았던 빈문현(彬文顯)은 1925년 6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1940년 6월 7일 동아일보 기사 등에서 궁술선수로 전조선 궁술대회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된다.

2015년 조사에서 169명으로 위의 빈씨보다 월등히 적다.

3.1. 인물

4. 빈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빈지노 - 래퍼. 본명은 임성빈

5. 대중매체

현실에서는 매우 적은 희귀 성씨이지만 세련된 어감 때문에 반씨, 은씨처럼 인터넷 소설매체에서 오히려 훨씬 더 출연하는 성씨이다.[1]


[1] 서브컬처를 통해 잘 알려진 성씨라며 김동화 화백의 만화 요정 핑크에 등장한 인물인 빈씨 때문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해당 인물은 성이 빈씨가 아니라 이름이 '빈'이기 때문. 작중에서 사진 전시회에 출품된 빈씨의 작품 아래에 '출품자: 빈'이라고 쓰여 있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빈의 아버지도 아들을 이름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