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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22:26:03

월남


1. 越南2. 月南
2.1. 이상재의 호

1. 越南

1.1. 베트남의 한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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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南'을 베트남어 독음으로 읽은 것이 Việt Nam이며, '볫남' 또는 '비엣남' 정도로 발음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본어 표기 베토나무(ベトナム)의 영향으로 '베트남'으로 정착되었다.[1]

越南은 불란서(프랑스) 같은 식의 단순 음역어 이름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자권 문자인 쯔놈[2]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라면 한국어 이름이 남월(南越)이어야 하지만 베트남어는 형용사가 뒤에 오기 때문에 거꾸로 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거꾸로 한 것이 직접적인 유래이다. 베트남도 한자문화권 국가이고 베트남어에도 고유어와 한자어가 존재하지만, 현재 베트남에서는 한자를 거의 안 쓰고 로마자(쯔꾸옥응으)를 쓰기 때문에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한자어 국명을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월남'이다. 결국 이하와 같은 대응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中國(중국) : Zhōngguó~ㄓㄨㄥ ㄍㄨㄛˊ(중궈)
= 日本(일본) : にほん~にっぽん(니혼~닛폰)
= 越南(월남) : Việt Nam(베트남, 비엣남)

따라서 '월남'이 '베트남'의 '음역어'라는 국어사전의 설명은 오류이다.
같은 한자어 국명이라도 중국, 일본, 월남은 다른 한자어 국명과 그 본질이 조금 다르다. 이 세 국명 이외의 다른 국명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원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을 우리가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즉 한자로 음역한 국명이다. 그러나 「중국」 「일본」 「월남」이라는 말은, 해당 나라에서 한자가 사용되었거나 사용되고 있으므로, 따로 한자를 통한 음역 과정을 거쳐 지어진 이름들이 아니다. 그 이름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한자로 짓고 자기들 한자음으로 읽어온 자기 나라 이름을 우리가 그저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중국, 일본, 월남 같은 이름은 진짜 한자 국명이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월남 같은 국명이 한국어 어휘 목록 안에서 지니고 있는 질긴 생명력은 부분적으로 이 이름들이 진짜 한자어라는 사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종석, 원음주의에 짓눌린 외국어 표기
냉전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을 월남, 자유월남 또는 월남공화국으로,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은 '비엣민에 의해 설립된 불법 정권'이라 하여 비엣민(越盟)을 한국어 독음으로 읽은 월맹이라 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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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자를 유일한 공식 문자로 사용 중인 중국어권 국가는 원어 발음을 별도로 음차하지 않고, 越南을 중국어 독음으로 해서 'Yuènán(웨난)'으로 읽는다.

북한에서는 베트남을 윁남이라고 표기한다.

1.2. 경계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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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렇게 해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월남민(越南民)'이라고 한다. 반대어로는 월북(越北)이 있다.

넓은 의미의 '월남민'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 6.25 전쟁 당시 남한으로 넘어온 이들부터,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귀순자,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북한이탈주민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월남민'이라고 하면 첫 번째 경우만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같은 첫 번째 경우의 월남민이라 속하더라도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이전에 월남한 이들과 6.25 전쟁 당시에 월남한 이들은 성격은 크게 다르다. 먼저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 월남한 이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들어선 소련군정북조선인민위원회의 탄압에 반대하여 월남한 사람들[4]. 둘째, 원래 남한 지역 출신이나 일제의 식민지 총동원정책과 남농북공(南農北工) 정책에 따라 북한 지역으로 일시 이주했으나 해방 후 남한으로 귀향한 사람들, 셋째, 일제강점기 때 만주나 해외로 이주했다가 해방 이후 북한 지역을 거쳐 남한 지역으로 귀환한 사람들, 넷째, 원래 북한 지역 출신이나 정치·사상적 문제와 무관하게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남한 지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 마지막으로 38선을 넘나들며 비밀공작이나 밀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다.

6.25 전쟁 당시에 월남한 월남민의 대다수는 전쟁 초반인 1950년 12월부터 1951년 초순에 발생하였다. 당시 유엔군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역으로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여 북한 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그러다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인해 유엔군은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 유엔군의 진격과 점령에 협력했던 주민들이 공산군의 보복을 피해 대부분 월남하게 되었다. 또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패닉에 빠진 미국은 만주와 북한 지역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검토한 바 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북한 지역 주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생명 부지를 위하여 남한으로 쇄도하게 되었다. 또한 북한군이 남한 지역에서 후퇴하는 과정에서 남한 지역의 청·장년을 이른바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강제 징집해 데리고 간 것처럼 국군 또한 후퇴 과정에서 북한 지역의 청·장년을 국민방위군으로 징집하여 후퇴하게 되면서 그들도 이후 월남민에 포함된다.

이들 월남민의 대부분은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호전되지 않는 전황에 하염없는 피난 생활만 계속하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끝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5] 이들은 이후에도 ‘피난민증’을 부여받고 한동안 피난민으로 생활하다가 1962년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되면서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6.25 전쟁과 공산주의자 계열의 여러 종파의 대대적인 숙청을 거쳐 김씨 부자의 조선로동당 일당 독재, 부자 세습 정치가 완료되었다. 숙청에 칼날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도 못 피했듯이 이러한 공포 분위기를 피해 북한의 고위급 정치인이 계속 북한이탈주민이 되고 있다. 언론에 알려진 가장 저명한 월남 인사는 황장엽이다.

1962년 최초 북한이탈주민 이후 지난 2006년 2월 말 1만 명을 돌파했고, 2010년 11월 2만 명, 그리고 6년이 지나 다시 1만 명이 추가로 늘어 2016년 11월 누적 북한이탈주민 3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자세한 내용은 신상과 관련된 개인정보이므로 대한민국 법에 따라 보호해야 한다.

2. 月南

2.1. 이상재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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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한국어의 음소 배열 제약으로 인해, 파열음 뒤에 비음이 이어지면 파열음의 비음화가 일어난다. 즉 '비엣남'이라고 써도 [비엗, 남\]과 같이 의도적으로 끊어 읽지 않는 이상 [비엔남\] 정도로 발음되어 오히려 원음과 멀어진다. 그래서 영어 등의 다른 외래어를 표기할 때는 'picnic[ˈpɪknɪk\] → 픽닉(X), 피크닉(O)'과 같은 식으로, 비음 앞 파열음 [k, t, p\]를 표기할 때 받침 'ㄱ, ㅅ, ㅂ'이 아니라 '크, 트, 프'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picnic'을 '픽닉'으로 표기하면 비음화가 일어나 발음이 [핑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볫남'이나 '비엣남'보다는 '베트남', '볘트남', '비에트남' 등이 더 적절할 수 있다.[2] 그렇다 해도 본래 한자이기 때문에 문자로는 서로 호환될 수 있다. 그래서 越南을 한국 독음으로 읽은 것이 월남인 것이다.[3] 냉전 시기 대한민국에서, 대만 섬에 있는 화민을 '자유중국'으로 부르고,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산당이 세운 불법 정권이라고 보아 '중공'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다.[4] 반공주의자, 토지개혁 당시 토지를 몰수당하고 탄압받은 지주, 유산가, 종교인, 친서방인사, 자본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공산당에 반대하는 일체의 모든 인사들이 대거 탄압받고 월남의 행렬을 이룬다. 그 와중에 재조선 일본인인 히키아게샤도 포함되어 있었다.[5] 사실 휴전협정 본문에는 서로의 지역으로 월경한 자로서 귀향을 원하는 자의 귀향을 허용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되었다.